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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의 한국인

재미한인 최연홍 시인의 삶과 행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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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6년 최연홍 씨가 어머니가 살아계실 때 함께 링컨 메모리얼 방문했다.
사진-최연홍 교수

미국 여러 대학 강단에서 교수로 활동한 바 있는 최연홍 시인은 충북 영동 출신이다. 그는 연세대 재학 중 현대문학에 데뷔를 시작으로 많은 시편을 미국의 여러 문예지와 PEN International (런던)에 발표 했으며 미 의회 도서관에서 계관시인 초청으로 한국시인으로는 처음으로 시 낭송을 한 바 있다. 그가 쓴 ‘애리조나 사막’은 미국 남서부를 그린 최고의 시편으로 선정돼 미국 대학교재에 수록되는 영광과 폴트갈어로 번역되기도 했다. 바로 최연홍 시인에게는 그 무엇보다도 ‘어머니’ 사랑을 그린 시가 그의 가장 값진 시가 아닌가 싶다.

자유아시아방송 지구촌의 한인들 오늘은 최연홍 시인의 어머니 사랑과 12명 한인의 영시 I Am Homeland 발간 소식으로 함께한다.

최연홍 시인은 어머니의 참사랑을 이렇게 들려준다.

최연홍 시인: 저는 어머니의 지극한 사랑으로 지금까지 살고 있다고 생각하고 있고, 어머니는 우리가 가난했던 시절에 돈 70달러 들고 미국 유학을 떠났을 때부터 어머니 살아 계신 동안 아침에 정안수를 떠놓고 장독대에서 기도를 드리면서 아들의 건강, 아들의 성공을 기도했던 분입니다. 한국의 모든 어머니들이 위대한 어머니 이시지만, 저와 저의 어머니의 관계는 어찌 보면 표현하기 어려운, 어머니가 무남독녀여서 그랬는지 몰라도 저한테 주신 큰 사랑을 갚기도 어렵고 헤라리 기도 어려웠습니다.

최연홍 시인은 어머니에게 효도하기 위해 잘 나가는 미국의 교수도 마다하고 한국에 나가 어머니의 마지막 7년을 함께하게 된다.

최연홍 시인: 제가 96년 한국의 시립대학에 돌아가게 된 이유는 어머니가 병들어서 제가 어머니와 몇 년이라도 함께 해야 내 불효가 씻기리라고 생각하고 한국을 찾아갔다가 오히려 2-3년 후에 객원 교수직을 마치고 돌아 나올 수가 없었습니다. 어머니의 병은 더 깊어졌고 그래서 어머니 삶의 마지막 7년을 어머니와 같이 지냈고 그리고 제가 시립대학에 재직 중에 어머니는 운명하셨습니다.

최연홍 시인의 어머니 시를 함께 듣는다.

어머니

-소리쟁이 풀씨를 훑어 뿌리며

최연홍

1967년 6월 비행기 높이 떠오르는
김포공항 송영대에서
아들을 외국으로 보내며
한없이 울고 계셨던 나의 어머니
새벽달이 뜰 때마다 장독대에서
매일 깨끗한 물 한 대접 떠놓고
아들의 건강과 꿈을 위해 기도하셨던
나의 어머니
저는 매일 어머니의 편지를 기다리고 살았습니다.
위에서 아래로 써 내려간 편지
좌에서 우로 써 내려간 편지
그 항공우편이 저를 지켜 주었습니다.
어머니의 기도가 몇 만 리 밖에 사는
아들을 지켜주었습니다
홀로 계신 어머니의 여생을 위해
미국에 아내와 아들, 딸을 두고 귀국했습니다.
7년 동안 어머니와 함께한 세월이 행복했었습니다.
어머니가 운명하실 때
아직 체온이 남은 어머니를 포옹할 수 있었던
마지막순간이 영원히 떠나질 않습니다.
어머니의 언 몸을 石棺에 넣고
고향으로 운반해 下棺하던 시간
우리들은 모두 통곡했습니다.
학교 선생님이셨던 어머니께선 6. 25 전쟁 중에
호박을 따 서 머리에 이고 시내에 가서 팔고
밤에 돌아 오셨지요
그 때는 돈암동 전차 종점까지 전차를 타고
오셨고,
미아리 고개를 걸어서 넘어 오셨지요
그 때 미아리 언덕엔
폭격을 맞아 깨어진 전차가 하나 놓여 있었어요.
아홉 살의 저는 그 전차 위에서 매일 밤, 별을
바라보며
어머니를 기다리고 있었어요.
어머니의 모습은 칠흑 같은 밤에도
알아 볼 수 있었습니다
어머니, 깨어진 전차 옆에서 소리쟁이 풀씨를 훑어 뿌리며
당신을 기다리던
이 아들을 기억 하십니까

당신은 간절하게 평생
성공해서 돌아올 아들을 기다리고 사셨습니다.
저녁 놀 하늘 곱게 물들이는 산 중턱에서
어머니는 금강을 바라보시며 이제 아버지 곁에서
다섯 아이들과 손자, 손녀를 오순도순이야기하며 계시리라
별이 금강에 성호를 그으며 지나갈 것 같은 밤
이제 두 분이 함께
큰아들이 쓴 시편들을 읽으시고 계실까

부모님 묘소에
가을에 핀 보랏빛 제비꽃
가끔 바람이 불면 서울 행 기차 쪽으로 머리를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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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연홍 씨가 1967년 김포공항을 떠나오던 날 가족과 함께 기념사진.

 

최연홍 시인이 부모와 자녀 그리고 형제의 사랑은 평화로운 세계를 이룬다고 설명해준다.

최연홍 시인: 가장 중요한 것은 인간과 인간의 사이에 인연이라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인연에서 어머니 아버지 그리고 형제들의 사랑이 없으면 그다음 사회와의 대화 간격이 생기지 않겠는가 이렇게 보고 있습니다. 가족이라는 건강한 사회적인 단위가 건강해야지 그 다음 개인과 사회에 관계도 좋아지는 것 아니겠는가? 사회문제라는 것이 결국 가정의 문제에서 시작되지 않는가 하는 생각을 갖고 있습니다. 그러나 효라는 개념은 기독교적인 입장에서도 십계명 안에서도 앞에 나오는 계명이 되겠습니다만, 지금 현대사회가 너무 개인주의화 되고 물질적인 기계적인 사회가 되다 보니까 오히려 그 가족이라는 단위의 사랑이 잊혀지고 있고 오히려 무시되지 않는가해서 저는 효의 개념이 인간의 가장 중요한 동기가 아닌가! 어머니가 아들에게 딸에게 주는 기대를 조금이라도 보답하기 위해서 아들과 딸은 그만큼 더 노력하는 것이고 가문의 명예라고 할까? 가문의 영광을 위해서 의식적이든 무의식적이든 자기를 돌아보고 자기를 채찍질하고 자기를 발전시키는 것이 아닌가 이런 생각을 갖고 있습니다. 효가 어찌 보면 충으로 이어지는 게 우리 조상들 선조들이 가졌던 생각이 아닌가 모르겠습니다. 효가 없는 사람이 충을 가질 수 없다는 이런 조선 시대에 유교적인 개념인지 모르겠습니다만, 저는 건강한 사회는 가정이 건강해야지 가능하고 한 사회가 건강해야 나라도 건강하고, 결국은 나라가 건강해야지 국제사회가 건강하지 않겠는가! 어찌 보면 가장 원초적인 이야기가 되겠습니다만, 모든 것은 저는 효에서 시작되고 가정에서 시작이 되고 어머니와 아들딸의 관계에서 비롯되지 않는가 이런 생각을 갖고 있습니다.

최근에 최연홍 시인은 I AM HOMELAND라는 영문 시집을 펴냈다.

최연홍 시인: 미국에 사는 저를 포함해 12명 시인 각각 10편의 작품을 모아서 120편의 작품이 수록된 I AM HOMELAND 는 캘리포니아에 작은 출판사인 POETIC MATRIX에서 나왔습니다. 제가 이 시집을 준비하게 된 이유는 우리 한국인 1세들이 영어로 시를 발표하는 것을 굉장히 두려워했고, 두려워 하고 있고 그래서 그 두려움을 먼저 깨뜨려야 되지 않는가! 하는 저의 뜻으로 이번 세 번째 편집해 낸 책으로 나왔습니다만, 처음에는 FRAGRANCE OF POETRY 시향이라고 2000년도 초에 편집해 낸 책이고, 두 번째는 AN EMPTY HOUSE(빈집) 이라는 영문 시집을 여기 동인들하고 함께 냈고, 이번에 낸 게 세 번째 영문 시집인데 아직도 이민 1세들한테 영문으로 문학작품을 쓰고 번역하고 발표하는 것을 불가능하다고 생각하고 있기 때문에 저는 계속해서 영문 시집을 저의 영문 시집뿐만 아니라 저의 가까운 친구들에 영문 시집을 격려하는 차원에서 제가 한 원로 시인으로서 해야 될 미션이라고 생각하고 이 일을 추진해 왔고 괜찮은 시집이 나와서 여기저기서 좋은 서평도 받고 있고 미국 대학 한국학 분야의 교재로 쓰고 있다는 소식을 듣고 있습니다.

최 시인은 남은 생애 한인 1세들의 문학 활동을 도울 것이라고 했다.

최연홍 시인 이제 막 책이 나왔기 때문에 좀 더 두고 봐야겠습니다만, 미국 안에 우리 한국계 시인들이 미국 사회에서 인정을 받고 주목을 받을 수 있는 스테이지가 생기지 않을까 하는 행운도 기다리고 있습니다. 물론 문학이라는 게 언어의 장벽을 뛰어 넘어야 되고 그래서 1.5세대 2세대 이창래 같은 소설가가 주목을 받고 있는 작가지만, 아직 시는 미국 안에서 시인으로 각광을 받고 있는 분은 하와이 이민 3세인 케시 송 한 분인데 이민 1세들의 삶 속에 문학적인 금광이 가득하다고 생각하고 있고 그걸 어떻게 캐내느냐 하는 것이 2세들 3세들이 할 일이 아니라 오히려 우리 1세들이 어렵지만 해내야 되지 않는가! 하는 생각을 갖고 있기 때문에 계속해서 이민 1세들의 금을 캐는 작업을 제가 얼마나 문학 활동을 유지할지 모르겠습니다만, 계속하고 싶고 계속 하러 하고 있습니다.

한인 2세들에게 주는 충언이다.

최연홍 시인: 저는 아이들이 아들하고 딸 하나 미국에서 태어났고 미국에서 성장했고 지금 월 스트리트에서 활동하고 있습니다. 저는 우리 젊은 세대들, 우리 다음을 잇는 2세대 3세대들에게 더 큰 희망을 갖고 있습니다. 지금 2세대 중에서는 미국 정부의 주요 부처 고위직에서 일을 하고 있고, 작가들도 많이 배출되어 있습니다만, 모든 한국인들이 한국인이라는 자아의식 자기 어머니의 나라 아버지의 나라를 기억하면서 자기가 미국인이라는 생각을 갖고 있으면 스스로가 한국인이나 미국인이라기보다는 오히려 코스모포리탄 적인 생각을 갖고 자기 자신을 바라보게 되고 자기의 일을 코스모포리탄인 입장에서 반성하고 평가하고 전망하지 않겠는가! 이런게 제가 갖고 있는 생각입니다. 물론 모든 사람들이 국적에 관계없이 한 자연인이지만, 우리는 우리의 모습이나 우리의 혈통에서 2세든 3세든 4세든 5세든 아마 영원히 한국인의 뿌리를 갖고 있는 것을 잊어버릴수는 없을 것입니다. 그렇다면 어머니의 나라 조국에서 오는 그 문화적인 뿌리가 예를 들면 효의 개념이라든가, 충의 개념이 영어로 번역하기 어려운 개념인지 모르겠습니다만, FILIAL PIETY(효) ROYALTY(충)영어 표현이 되겠습니다만, 우리가 한 나라의 시민이라기보다는 두 나라의 시민, 아니 세계인이라는 의식 속에서 자기 하루하루를 경작해 나가고 자기 미래를 계획해 나간다면 우리 한인사회가 그만큼 부유해지고 풍성해지는 사회가 되고 더 많은 존경을 한인들이 세계로부터 받게 되지 않을까 그런 생각을 갖고 있습니다.

최연홍 시인이 한인들에게 주는 이야기다.

최연홍 시인: 저는 한국의 문학이 여러 장르로 다 훌륭한 작가들도 많이 배출 했습니다만, 한국의 역사가 바로 시의 역사라고 보고 있습니다. 고구려 2대 왕인 유리왕이 황조가라는 시를 썼고, 백제 무왕이라고 알려져 있는 분이 서동요를 써서 신라의 공주를 자기 아내로 맞을 수 있었던 문화, 그리고 고려말에 정몽주 충신이 조선을 세운 이성계의 아들 이방원과 술잔을 나누면서 이런들 어떠하리 저런들 어떠하리 정몽주의 마음을 떴을 때 일편단심 나는 한마음을 둘로 나눌 수 없다고 정몽주가 의연하게 받아들여 시와 시로서 대화하면서 술자리가 끝나고 돌아가는 길에 정몽주는 선죽교에서 이방원의 자객들에게 맞아 죽었던 그런 문화, 저는 한국에 문학이 시의 문학이라고 생각하고 살아왔고, 어렸을 때부터 시인이라는 하늘의 별 같은 분이라고 생각하면서 살아왔는데 제 아버지가 그런 생각을 갖고 저를 많이 격려해 주셨습니다. 여기 와서도 한국어로 모국어로 시를 쓸 수 밖에 없는 사람이지만, 저는 모국어로 시를 쓰는 것은 우리 한국인들에게 보여주는 것도 중요하지만, 미국 안에 살고 있는 내 이웃들한테 미국 친구들에게도 보여줘야겠다. 이렇게해서 인디애나 대학서부터 인디애나 꽃세계라는 THE FLOWERS OF INDIANA라는 시도 썼고, AMERICA라는 시를써서 인디애나 대학에서 문학상도 받았습니다. 그러니까 언어의 장벽이 문학을 깨뜨리는 게 아니고 문학을 어렵게 만드는 것은 사실이지만, 불가능하게 하는 것은 아니다. 저는 이런 생각을 갖고 있습니다. 더군다나 제가 워싱턴에 처음와서 미국의 개관시인, 그때는 개관시인이라고 안했고 미 의회 도서관에 시인 컨설턴트라는 직위로 Gwendolyn Elizabeth Brooks 라는 흑인여성중에서는 처음으로 퓰리처(PULITZER) 상을 받은 시인이 의회 도서관에 와 계셨습니다. 그분이 저를 만나더니 최연홍은 훌륭한 시인이니까? 너는 겁먹지 말고 백인 주류사회에서 너가 아직 대접을 못 받지만 너는 훌륭한 시인이니까? 기 죽지말고 살아라! 고 그웬돌린 브륵스가 저에게 준 이야기고 지금도 그 말이 굉장히 가슴깊이 와 있습니다. 그러니까? 중요한 것은 자기의 마음의 시 이지 영어 VOCABULARY 파워가 조금 적다고 미국인 보다 작다고 시인이 아니라고 하는 생각, 내가 글을 쓸수 없다고 생각하는 그 자체가 제가 생각하기에는 굉장히 겁많은 자의 이야기가 아닌가 생각합니다. 결국 우리들의 삶 문학적인 갈등이라든가, 문화적인 갈등 언어의 장벽 앞에 영어가 나를 웃기내 이런 표현이 바로 시가 되는 것들을 한인 1세들이 모르고 살고 있다는 것 그것을 지적하고 싶고, 누군가 자기 삶을 그대로 미국에 들어와서 부터 살아왔던 삶은 적어나간다면, 일기 형식으로요. 그 자체가 이미 문학작품이다라고 생각하고 있고, 많은 분들에게 격려를 드리고 싶습니다.

자유아시아방송 지구촌의 한인들 오늘은 최연홍 시인의 어머니 사랑과 12명 한인들의 영시I Am Homeland 발간 소식으로 함께했다. 지금까지 기획과 진행에 RFA 이현기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