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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이민100주년사람들

미국 워싱톤에서 순수 한국말 방송을 시작한 “워싱톤 미주방송”의 박용찬아나운서

미국이민 100년사 속의 워싱톤 한인들 현장을 찾는다

미국 워싱톤에서  순수 한국말  방송을 시작한  

         “워싱톤 미주방송 박용찬아나운서


                                                                 
                                       
                                                                      
                                                                         박용찬 아나운서
                                                                       

박용찬아나운서 그는 누구인가
? 1980년대 워싱톤 한인사회가 본격적으로 꿈들 거리던 시절 이민자들의 정신적인동반자로서 한인방송을 이끌어 온 장 본인이다.

지금으로부터 28년전 볼티모어에서 전파를 띄운 이래 오늘의 미주방송이 있기까지의 애환은 바로 지역 교포의 이민사라고 있다.

워싱톤 미주방송은 당시 이국땅 미국에서 한국어 방송을 듣게 되는 감회는 감격하였다 라기 보다는 차라리 기적이라는 느낌마저 들었던 것이다.

고국의 소식은 물론 우리나라의 문화전수 고달픈 이민생활의 유일한 위안의 소스가 되어왔고, 이렇게 지역 교포사회와는 떼어 놓을 없는 하나의 공동체로서 함께 울고 웃으며 성장하여 왔다.

워싱톤미주방송은 현재http://kbc-news.com 인터넷 방송도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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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본사 주 조정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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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조정실

1980년에 설립돼 개국 28주년을 맞은 워싱톤 미주방송의 박용찬대표는 서울출생이며, 건국대 행정학과를 졸업하고 방송인 생활을 시작하면서 그의 아내인 이화대학 가정과 출신인의 한인숙 여사와 12녀를 두었으며, 1961 기독교방송 아나운서를 거쳐 부산 MBC아나운서, PD, 목포MBC방송부 차장, MBC TV 보도국 기자와 라디오국 PD 역임, 또한 원주문화방송 방송부장을 거쳐 현재 워싱톤 미주방송을 28년간 이끌어 오면서 한국정치의 동서남북, 지구촌의 반대편에 있으면서도 한국정가의 양지와 음지를 꿰뚫어보고 있는 박대표의 날카로운 코멘트는 한국 정가의 많은 정객들도 관심을 갖고있다.

워싱톤 미주방송은 개국 당시에 처음 전파를 내보낸 이래 여러 가지 어려운 여건에도 불구하고 우리 교포사회의 발전을 위하여 많은 기여를 결과로 하루에 불과 시간 밖에 방영하지 못하던 것을 지난 1985 8 15일부터 1 방송 체제를 갖추고, 하루에 16시간을 현재 미국에 사는 한국인들의 생활정보, 고국의 정치, 경제, 문화, 사회들을 생방송으로 재미동포들에게 고국의 소리를 전해주며, 오늘날 개국 28주년을 맞았으며, 교포여러분들의 조국에 대한 향수를 달래주는 동시에 정보와 지식을 제공해 주는 이민정착의 길잡이 역할을 함으로써, 위싱톤 일원 20만여명 교포들의 친근한 벗이 되고 있다.

워싱톤미주방송태생은 볼티모어 메일랜드 한인회장 정장훈씨가 선거공약에 따라 100 여명의 볼티모어 교포들이 성금 $8,625 미국방송 송신시설을 이용해 1980 6 22 메릴랜드 한인방송을 설립한 것이 시작이다.

당시 문화방송 출신의 박용찬, 유순길 아나운서가 매주 한시간씩 고국뉴스, 교포뉴스, 미국생활 정보를 방송했으나, 5개월만에 운영난에 봉착하자 박용찬 사장이 인수해 상업방송으로 개편하고 1980 11 24 ()워싱톤미주방송 으로 명칭을 변경, 워싱톤과 볼티모어를 cover 하는 교포방송으로 발돋움하게 되었고, 1981 1122 사옥을 볼티모어에서 워싱톤으로 이전하였다. 또한, 출력이 높은 WPKX방송과 송신계약을 맺고 AM730KHz 워싱톤 미주방송 시대의 문을 열면서 뉴스와 까십프로(감초아줌마) 통해 교포들의 관심을 집중케 했다. 핫뉴스가 미얀마 아웅산 참사 소식이었다. 모국의 5 공화국 시대에 한국계 신문들이 모두 제도권 언론에 들어가자 지사 형태로 발행되는 교포 언론들도 영향을 받아 제자리 걸음을 워싱톤 미주방송은 과감히 알릴 있는 모든 것을 보도함으로써 방송 언론으로서의 신뢰를 쌓아갔던 것이다.

거대한 미국속에 전국지는 USA Today 하나이고 Washington Post Newyork Times 정치성이 강할 뿐이다. 따라서 미국의 매스미디어는 독립국가 형태인 각주에 Community News 관심거리다. 우리 동네의 손님이 누가 왔으며, 강아지가 안들어오는 것도 뉴스다.

미국방송은 거의 뉴스, 오락, 음악 분야만을 전문으로 방송하는 것이 특징이며 미국속의 외국어 방송은 스페인어와 한국어방송만이 정규방송이고 소수민족은 중국어, 일본어, 베트남어, 그리스어로 하루 1시간 정도 방송을 하고 있을 뿐이다.

그러나 Korean Community 워싱톤 미주방송은 미국의 기능별 방송을 종합, 다양한 프로그램을 24시간 한국어로 방송을 한다는 것이 오늘날 개국 28주년까지 교포들에게 신뢰와 고국에 대한 향수를 간접적으로 나마 느끼게 해준 손과 발이 되었는 지도 모른다.

교포사회의 경제성과 더불어 미국 사회에서 점차적으로 민족적 아이덴티티의 수립이 가속화함에 따라 미주방송도 단순한 오락이나 뉴스에서 국내외 현장 중계는 물론 독특한 논설 프로를 제작 방송하는 명실공히 지역 한국방송으로 자리를 굳힌 것이다. 또한, 미국방송 개국 축하 음악제도 개국 축하의 의의를 한층 더한 한국과 중국을 잇는 음악의 세계를 보여주게 되었다.

교포들과 함께 가는 방송이 되고자 노력할

워싱톤 미주방송 박용찬 대표는 人間은時代의 아들이라고 헤겔이 얘기한 적이 있습니다만 말을환경의 아들이라고 바꾸어 생각해 때에, 스스로 택한 이민객의 삶이란미주의 환경에서 적응하여 밖에 없었고 본격적인 서양(Western Society) 모습으로 이민생활을 정착해 나아가야 한다 말하며, 미주방송이 1980년에 설립될 때에과연 어떻게 성공적으로 정착할 것인가?“ 생각하고 고심하면서 시작했는데 어느듯 28년이 흘렀고, 돌이켜보면 영어권에 울려퍼진 한국말 방송은 무엇보다 워싱톤 주변의 200마일 상당이나 울려 퍼졌고 방송으로 정착도 쉬웠고, 향수병도 달래었고, 교양도 길렀으며, 고국의 소식을 들을 있었음을 자랑스레 생각한다 말했다.

대표는지금까지 28년을 오직 길로 달려 있었던 가장 보물은 사랑하는 교포들과 동고동락 변함없이 함께해 방송실무자들 때문이며, 그들 거의 모두 KBS, 문화방송, 기독교방송, 극동방송 출신으로 방송경력 15 이상의 전문 방송인들이라는 점이다.

미주방송은 교포들의 아픔을 함께 나누고, 모국 수해 때에는 종일 생방송으로 모금 캠페인을 벌여 동참하면서 시간에 쫓기는 이민 생활에서 일하며 세상 돌아가는 소식을 듣게 하고, 고향의 멜로디로 희망과 위안을 주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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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워싱톤 미주방송 박용찬 대표는교포방송의 기수로 성장해 위싱톤 미주방송은 개국28년의 역사를 딛고 새롭게 도약할 것이며, 커뮤니케이션(Communication) 통한 교포일치운동과 정보시대(Information Era) 따른 신속한 뉴스전달, 우리시대의 숙원인 모국의 통일 문제에 앞장서는 방송이 될것이며, 워싱톤 미주방송은 1980 여러분의 정성으로 세워진 워싱톤 최초의 순수 우리말 방송이인 만큼 앞으로 세계에 흩어져 사는 중국, 소련, 남미의 이민사회를 취재, 같은 해외 이민의 동질성을 소개할 예정이다.

또한, 미국에 사는 2세들에게 한글교육을 철저히 조국을 잊지 않도록 함은 물론, 우리 한인 사회가 한국민으로서의 긍지를 가지고 미국사회 내에 뿌리를 더욱 깊게 내리는데 기여하는 방향으로 발전적 성장을 계속해 나아가겠다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