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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일문화산책

통일문화산책: 주체사상으로 무장시키는 북한 문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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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년 12월 24일 북한 김정일 최고사령관 추대 23주년 기념일을 맞아 만수대언덕에서 북한 인민군 장병, 노동자, 학생들이 김정일 동상을 참배하고 있다.
사진-연합 뉴스 제공

여러분 안녕하십니까? 통일문화산책 진행에 이현기입니다.

수천 년 전통으로 이어져 내려오는 우리 조상의 고귀한 문화의 단면들이 지금도 우리의 삶 속에 이어져 살아 숨 쉬고 있습니다. 수천 년의 우리 조상의 전통문화 속에는 슬픔과 기쁨 그리고 사랑과 삶의 원천을 만들고 생성해 간다 할 것입니다. 우리 조상이 남겨준 문화의 산실들이 지금 남과 북으로 나누어져 생성되어져 가는 우리 문화의 긴 면목을 찾아가 보려고 합니다.

탈북시인 장진성: 북한체제의 정당성은 주민의 삶을 통해서 사회 발전을 통해서 증명돼야 되는데 북한 정권은 지금 그렇지 않거든요

여성탈북자: 북한에서는 외래어는 쏙 빼고, 한자도 쏙 빼고, 그래 아주 유순한 순한 조선말을 쓰게 했는데 이게 바로 평양 말투 문화어라고. 

오늘 첫 번째 시간으로 서울문화 평양문화 통일문화의 저자 임채욱 선생으로부터 남 북한 문화의 특징에 대해 알아봅니다. 임채욱 선생은 자신의 책 머리에서 사실상 북한문화는 통치자의 혁명사상을 당의 ‘유일사상’으로 구현하고 북한주민을 ‘주체사상’으로 무장시키는데 기여하는 이념 홍보의 문화였다고 폄하하고 그러나 이러한 내용 중에서도 통일문화를 형성하고 나아가서 통일한국의 문화 폭을 넓히는 데 유용한 내용도 있을 수 있다고 했습니다. 그렇다면 북한에선 자신들의 문화 어떻게 자랑하고 있을까?

임채욱 선생: 북한은 말 그대로라면 주민 누구나가 글을 짓고 노래 부르고 춤추며 그림을 그리고 악기를 다룰 수 있게 되었다고 자랑하는 곳입니다. ‘온 나라의 예술화’, 또 ‘전 주민의 예술 소조원화’라는 구호대로 이를 실현했다고 1990년대 초까지는 자랑했지요. 북한이 선전하는 대로라면 김일성은 한문 시를 짓고 취미가 독서여서 죽기 전날에도 소설을 읽었으며, 김정일은 고등중학교 시절에 이미 2천 권의 책을 읽고 400여 편의 논문을 썼다고 합니다. 대단한 일이지요. 지도자가 이러니 주민들도 강연회, 강습회, 독보회, 자습회 형태로 하루 8시간씩 학습을 한다는 곳이 바로 북한입니다. 이런 사실만 놓고 보면 북한주민은 공부도 많이 하고 예술향유도 많이 하는 곳으로 되지요. 하지만 하루 8시간 학습을 위해 일반주민은 김일성, 김정일 관련 책자를 항상 소지해야 하지요. 그러니까 학습을 한다지만 ‘김일성 노작 1만 페이지 읽기 운동’ 같은 정치사상 관련 학습이 주가 되기에 참으로 따분하기도 하겠지요. 북한 영화를 보면 직장에서 이 학습을 피하려고 출장 간다는 꾀를 부리는 장면도 있지요. 그리고 ‘온 나라의 예술화’란 듣기 좋은 구호도 구호로 끝나고 있습니다. 1990년대 중반에 닥친 ‘고난의 행군’ 시기를 겪으면서 구호대로 실현되지 못하고 있지요.

한반도가 광복의 기쁨도 잠시 남북으로 갈라지면서 북한에서는 문화 정책을 어떻게 전개해 갔는지 궁금합니다. 그리고 북한의 지도자는 문화정책에서 어떤 역할을 했을까요. 임채욱 선생의 이야기를 들어봅니다.

임채욱 선생: 북한문화의 한 특징은 지도자가 문화정책의 큰 줄기만 말하는 게 아니라 물고기 순대 만드는 방법도 아는 체하고, 식당 이름 부치는데도 관여하고, 여성들의 옷 입는 것에도 간섭을 하며, 한글 띄어쓰기 방안도 지시하며, 나무에 전선줄이 감긴 것도 잔소리하는 곳에서 문화는 지도자에 대한 흠모와 감동을 일으키는 문화만이 생산되겠지요. 이렇게 주민을 의도된 방향으로 이끌려는 정치성 짙은 문화가 북한문화일 것입니다. 모든 것에서 자랑을 많이 하는 북한 당국은 전통문화 분야에서도 문화유산이 옳게 계승되었고 잘 보존되고 있다고 말합니다. 그러나 그렇게 볼 수가 없지요. 가령 족보를 없앤 것이라든지 전통 상례에서 말하는 3년 탈상을 김일성, 김정일 경우에서 보듯이 틀리게 한다든가 70세 노인을 두고 7갑 노인이라고 말하는 것들을 보면 전통에 대한 올바른 계승은 아니지요.

북한에서 직접 태어나 자라고 공부하고 청년기까지 살아본 경험이 있는 탈북 시인 장진성 씨의 북한 문화의 평가는?

장진성 시인: 캐나다 외신과의 인터뷰에서 외신 기자가 이런 질문을 합니다. 북한에서도 작가 생활을 하고 남한에서도 작가 생활을 했는데 그 차이가 뭐냐! 그래서 제가 북한에서는 선전을 했고, 선전하는 글을 썼고, 남한에 와서는 선전하지 않는 글을 쓴다고 얘기를 했거든요. 이것은 어떤 의미냐면은 북한체제의 정당성은 주민들의 삶을 통해서 사회 발전을 통해서 증명돼야 되는데 북한 정권은 지금 그렇지 않거든요. 하니까? 굳이 선전이 필요 없는 것까지도 선전해야 되는 그런 선전(PROPAGANDA)국가, 체제가 돼버린 거에요. 북한은 전체주의 문화라면 남한은 자유문화다. 무엇이든지, 누구든지, 자기 영감, 자기 사색에 의해서 창작이 될 수도 있고 실현이 될 수 있는 그런 선택의 폭이 다양한 것이지요.

임채욱 선생은 한국에서는 전통이 일부 상업적으로 변질되고 있다면 북한에서는 전통이 정치에 의해 변질되고 있다고 지적합니다.

임채욱 선생: 북한당국의 전통에 대한 무지나 무시는 여러 군데서 나타나지만, 예를 하나 들어볼까요? 북한에서 큰일을 한 사람이 환갑이나 7 순, 8 순을 맞을 때 김일성, 김정일은 잔칫상을 내리는 일이 있는데, 이때 그 잔칫상을 7갑 상이니 8갑 상이니 합니다. 도대체 갑(甲)이라는 것이 무엇입니까? 갑은 60년을 세는 한 기준으로 환갑은 60년이 다시 돌아왔다는 것 아닙니까? 그런데 이걸 6갑이라 하면 어떻게 됩니까? 60X6, 360년이 되는 것 아닙니까. 그러니 6갑이니 7갑, 8갑 해서는 안 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북한에서도 이 잘못을 아는 한 학자가 있었습니다. 그는 민속학자인데 그간 전통을 무시하다 보니 10 간 12지 즉 간지에 대한 개념이 흐려져서 그렇게 된 것이라고 변명을 한 뒤 한자식 6갑상, 7갑상보다 일흔 돌 상, 여든 돌상으로 부르는 것이 좋다는 말까지 했습니다. 그렇지만 이는 채택되지 않았지요. 그것은 전통 무시를 예사로 생각하기 때문이지요. 한국에서 전통이 상업적으로 변질되고 있다면 북한에서는 전통이 정치에 의해 변질되고 있는 것이지요. 남북한에서 전통문화는 이처럼 변질되고 약화돼서 문화유산이 잘 보존된다거나 옳게 계승된다고 보기 어렵습니다.

결론적으로 임채욱 선생은 서울문화는 자유방임으로 발전했다면 평양문화는 지도자 생각대로 움직이고 발전해온 만기친람 형(온갖 정사를 임금이 친히 보살핀다) 문화라고 지적합니다.

임채욱 선생: 남북한 문화, 다시 말해서 서울문화, 평양문화로 상징되는 두 문화는 분단 후 각기 다른 모습으로 발전해 왔지요. 서울문화가 미국문화 세례를 받을 때 평양문화는 ‘소련을 따라 배우자’라는 모또 아래 모든 사고와 행동방식을 소련을 준거로 했지요. 그 결과 서울문화가 자유방임으로 발전했다면 평양문화는 지도자 생각대로 움직이고 발전해온 만기친람 형이지요. 또 서울문화가 보편성과 국제성을 추구한다면 평양문화는 상대적으로 주체성과 민족성을 좀 더 강조하는 문화로 되고 있지요. 또한, 서울문화가 상업성으로 전통문화를 변질시킨다면 평양문화는 정치성으로 인해 전통문화가 변질되고 있다고 보겠습니다. 그러다 보니 서울과 평양은 혈연공동체이고 언어공동체로는 당장이라도 통합할 수 있겠지만, 문화공동체로서는 이질적인 것이 많습니다. 문화면에서 심층적으로 전통문화를 공유하고 있지만, 표층에서는 이질성을 극복해야 하는 과제가 제기되는 것입니다. 하지만 다른 문화분야에서는 눈여겨봐야 할 부분도 많을 것이기에 앞으로 평양문화의 특이요소들을 하나하나 찾아 볼까 합니다.

한국과 전 세계에 탈북자들이 거의 3만여 명 이상 살고 있습니다. 자신들이 북한에서 어떤 문화를 체험했을까? 한국에서 인기리에 방영되는 채널 A 이만갑에 출연한 한 탈북여성의 이야기 들어봅니다.

탈북여성: 북한에서는 말입니다. 1966년도에 김일성 동지가 교시했습니다, 모두 다 아름다운 문화어를 쓰십시요. 그다음부터는 북한에서는 외래어는 쏙 빼고 한자도 쏙 빼고 그래 아주 유순한 순한 조선말을 쓰게 했는데 이게 바로 평양 말투 문화어라고 합니다.

남북이 분단된 지 어언 70년 남북은 그동안 이념과 체제를 달리하며 각기 다른 길을 걸어왔습니다. 남한은 서양으로부터 다양한 물질문화를 받아들여 식생활에도 큰 변화가 있었으나, 북한은 서양 문화에 인색했던 관계로 아직도 민족 고유 음식과 전통 음식을 그대로 유지하고 있다고 탈북 여성들이 전해줍니다.

북한에서 오랜 전통으로 자랑하는 구름 찰떡을 소개해 드립니다.

먼저 팥은 씻어 일고 물을 넉넉히 붓고 삶습니다. 잘 삶아진 팥을 뜨거울 때 으깨어 설탕(50그람)과 계핏가루를 넣고 고물을 만듭니다. 대추는 깨끗이 씻어 씨를 빼내고 2-3쪽으로 썰어 놓으며, 밤은 껍질을 벗겨 2-3쪽으로 썰은 다음 쪄서 준비하고, 호두 살은 크게 썰어 놓습니다. 참쌀가루에 대추, 밤, 호두, 설탕(50그램), 소금을 넣고 섞은 다음 물을 뿌려 버무리고 시루에 올려 찝니다. 찐 떡은 달걀만큼씩 떼 고물을 묻힌 다음 네모난 그릇에 담고 뜨거운 설탕물을 뿌리며 서로 붙도록 손으로 눌러 놓습니다. 떡이 썰 수 있도록 굳어지면 편으로 썰어 그릇에 나란히 예쁘게 담습니다. 북한의 구름 찰떡 만드는 법 같이 배워 봤습니다.

통일문화산책 함께 해주신 여러분 감사합니다. 지금까지 기획과 진행에 RFA 이현기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