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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일문화산책

통일문화산책(이름짓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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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양시 인민대학습당과 김일성 광장 모습. 사진-연합뉴스 제공

 

여러분 안녕하십니까? 통일문화산책 진행에 이현기입니다.

 

우리 조상들이 남겨준 전통문화가 광복 이후 남과 북으로 나누어져 지금도 생성돼 오는 서울문화 평양문화의 단면들을 살펴봅니다.

 

TEASER: 김정일은 시외전화라고 하면 못 알아듣는다고 방송전화로 고친 거라든가, 1990년 10월 대학 이름 60여 개를 이른바 혁명 열사 이름을 따서 바꿨거나 또 공장이름을 감춘다고 숫자로 표시한 것은 희한한 일이지요./ 김일성 김정일이 이름을 지어주면 그 학생은 당에서 키워주거든요. 그러면 대학 졸업시키고 그리고 당 군 핵심요직에 배치하기 때문에, 그 학생은 누구나 함부로 다치게 못 하는 그런 신성한 사람이 되는 거지요.

 

임채욱 선생의 서울문화 평양문화 통일문화 책 ‘이름짓기 이모저모’에 보면 남북한이 지은 태풍의 이름이 사용된 예입니다. 2000년 7월 여름의 한가운데에 있던 한반도에 ‘기러기(Kirogi)’라는 태풍이 지나갔다. 우리말 이름이 붙은 최초의 태풍입니다. 기러기도 잠시 철 따라 왔다 가고, 태풍도 잠시 철 따라 사라지는 것이다. 이름 치고는 아주 적격인 것 같다. 기러기라는 이름은 1999년 11월 서울에서 열린 태풍위원회 총회에서 공식 채택된 이름으로, 북한이 제출한 이름이다. 한국이 제출한 ‘개미(KaMI)’라는 이름은 2000년 11번째 태풍에 붙여졌는데 아무튼 남북한이 이렇게 사이좋게 이름을 만들어 쓴 적도 있다고 했습니다.

 

북한문화평론가 임채욱 선생은 남북한에서 이름 지을 때 공통점은 ‘대’자 쓰기를 좋아한다고 했습니다.

 

임채욱 선생: 서울에서는 한강 다리가 23개가 더 되는데 한두 군데를 빼고는 모두 동작대교, 한남대교, 영동대교와 같이 대교가 붙었습니다. ‘대’자 좋아하기는 남북한이 같은 것 같지요. 북한에서도 인민대학습당, 평양대극장이 있지요.

 

임채욱 선생이 들려주는 좋은 이름, 나쁜 이름입니다.

 

임채욱 선생: 서울에서는 상점 이름이나 상품이름에서 외국어가 많아서 눈살을 찌푸리게도 하지요. 물론 우리 말을 사용한 아름다운 이름도 많아서 미소를 짓게도 하지만 우리 말도 문법에 맞지 않게 억지토박이 말도 많지요. 먼저 우리말 예쁜 이름들을 볼까요? 가락지금은방, 마을약국, 나무그늘 다방, 때때옷 한복집 같은 것들이 있고 기리네, 하늘연못, 버팀목, 산마음, 디딤돌 없어지지 않는 이야기 같은 출판사 이름도 있습니다.  하지만 누리에, 새로봄, 포그니, 실다이 같은 억지 이름도 있어 우리 국어를 나쁘게 사용하고 있지요.

 

임채욱 선생은 그뿐 아니라 억지 이름도 많다고 설명합니다.

 

임채욱 선생: 고기먹는 집 이름에서 돼지땡기는 날, 돼지집합소, 돼지가 웃통 벗는 날, 춤추는 찜닭 피리 부는 똥집, 닭이 냄비에 빠진 날이 있고 오늘은 삼겹살데이, 싼집 찾다가 열받아서 내가 차린 집 같은 이름도 보이고 심지어는 음식점 이름으로 대한독립만세도 있습니다. 북한에서는 한국의 외래어로 치장된 이름들을 두고 “서울에서는 막걸리 파는 곳이나 팥죽 파는 곳도 막걸리 센터니 팝죽센터니 해야 잘 팔린다”고 꼬집는데 사실이지요. 정말 유치한 이름이 많은 게 사실입니다.

 

임채욱 선생은 남북한이 함께 쓰던 말까지 바뀐 것이 참 아쉽다고 했습니다.

 

임채욱 선생: 남북한에서 정권수립 후 발생한 사안과 관계되는 이름이야 어떻게 붙여지든 상관없겠지만 광복 이전부터 같이 쓰던 이름이 바뀐다는 것은 그만큼 남북한의 공통분모가 줄어든다는 것이지요. 어쩌겠습니까? 이름 바꿨다고 시비할 수 있는 일도 아니니까 문제이지요. 새 이름 하나만 보더라도 북한에 있는 새 393종 중에서 191종이 남한과 다른 이름을 가지고 있다고 합니다. 남한보다 북한에서 이름을 바꾼 것이 많다는데, 새 전문가들이야 국제적으로 통용되는 학명을 가지고 의사소통이 되겠지만 일반주민들이야 무슨 수로 의사소통을 하겠습니까?

 

또한, 임채욱 선생은 북한 지도자가 이름 짓기에 숫자로 표시한 것은 희한한 일이라고 들려줍니다.

 

임채욱 선생: 김일성이나 김정일이 이름을 지으면서 그래도 우리 말 이름을 지은 것은 긍정적인 면이 없지는 않지요. 김일성은 다리이름을 지을 때 무슨 교라고 하지 말고 무슨 다리라고 하라고 한다든가, 어려운 약 이름을 우리말로 지으라고 하고 과자나 빵이름도 우리말로 고치라고 말한 것은 좋게 평가하겠는데, 김정일은 시외전화라고 하면  못 알아듣는다고 방송전화로 고친 거라든가, 1990년 10월 대학이름 60여 개를 이른바 혁명열사 이름을 따서 바꿨거나 또 공장이름을 감춘다고 숫자로 표시한 것은 희한한 일이지요. 김철주사범대학, 김형권사범대학 김정숙교원대학 등은 김일성 피붙이 이름들이고 정준택원산대학, 한덕수평양경공업대학 등이 그렇고 6.13광산, 10월 2일광산, 10. 5자동차공장이 그 사례입니다. 그런가하면 특이하게도 엄을룡동무가 지배인으로 사업하는 식료공장 같은 이름도 눈에 띄기도 하는군요.

 

자유아시아방송 정영 기자는 북한에서는 김일성 일가가 신과 같은 존재이기 때문에

김 씨 일가가 지어준 이름은 굉장히 신성시되는 분위기라고 설명해 줍니다.

 

정영: 김 씨 일가가 의도적이든, 의도적이 아니든, 무언가 업적을 남겨야 되기 때문에 그런 작명을 자주 하는 그런 분위기인데 그러면 북한 노동당 선전선동부 사람들은 장군님의 혁명 업적이다. 이렇게 위대성으로 둔갑시켜서 교양하거든요. 그래서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머리가 좋아서 다 지었겠습니까? 그러니까 옆에 있는 간부들이 이렇게 하면 어떻겠냐 건의해서, 그렇게하라 그러면 그것이 김정일 국방위원장이나 김일성 주석이 지은, 그런 작명으로 되는 그런 사례도 더러 있거든요. 김 씨 일가의 작명에 따라서 산이나, 호수, 지명이 달라지긴 했지만, 특별히 조금 안쓰러운 것은 금강산이 묘향산, 이런 천하절승 바위에 자기의 이름을 새기고 자기가 좋아하는 구호들을 세겨 놓는 것은 앞으로도 지양되어야 되지 않을까 생각이 되는데요.

 

정영 기자는 북한에서 1990년대 바위에 글을 새기는 바람이 불었다고 당시를 회고합니다.

 

정영: 1980년대 중반에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생가가 백두산에 있다. 그런 우상 조작 작업이 벌어지면서 거기에 정일봉이라고 새겼거든요. 그다음부터 금강산 묘향산 일대에 위대한 수령 우리와 함께 계신다, 일심단결, 금강산은 천하절승입니다. 이란 글을 세겼는데요. 이게 깊이가 사람 어른 키보다 더 깊고요. 그리고 그걸 또 글자 한 개 길이가 뭐 6미터에서 어떤 것을 10미터까지 너무 크거든요. 그리고 어떤 지방에서는 음각이 있고 양각이 있데요. 그런데 음각으로 하면 눈이 쌓이면 그게 메워지지 않습니까? 그러니까 양각으로 새기는데 글자가 도드라지도록 새기거든요. 그래서 그걸 새기느라 석공들이 아슬아슬한 절벽에 밧줄을 타고 내려가서 글자를 새기다가 죽은 사람도 많은데 이런 것들은 앞으로 통일이 되고 한반도 세세년년 이어가면서 이거 어떻게 처리해야 되느냐 그런 문제도 상당히 고민해야 될 문제인데 황장엽 노동당 비서가 하신 말씀은 어떻게 하겠어요. 고강도 시멘트로 메워버리는 수밖에 없지 않으냐는 이야기도 한 적이 있습니다.

 

정영 기자는 북한에서는 김 씨 일가가 지어준 이름을 만년 보험으로 부른다고 전합니다.

 

정영: 예를 들어서 김일성 김정일이 이름을 지어주면 그 학생은 당에서 키워주거든요. 그러면 대학 졸업시키고 그리고 당 군 핵심요직에 배치하기 때문에, 그 학생은 누구나 함부로 다치게 못하는 그런 신성한 사람이 되는 거지요. 그래서 이와 관련한 에피소드도 많은데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인민들이 이름을 자꾸 지어달라고해서 속상해 했던 시절도 있었데요. 왜냐면 인민들이 김 씨 일가가 이름을 지어주면 앞날이 보장된다. 그래 가는데마다 이름 짓기를 요구하지만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한자에 대한 지식이 해박하지 못한 것으로 알려졌는데요. 예를 들어서 함경남도 제염소를 방문했을때 어떤 제염공 여성이 아이 이름을 지어달라, 임신한 여성의 요청을 들으니까 가만히 생각해보다 갑자기 떠오르지 않아서요. 소금이라고 지어라 여기는 소금 밭이니까 그래 아이 이름이 소금이가 되었고요. 그리고 대흥단군을 찾았을 때는 민원식 부부가 아이 이름을 지어달라고 하니까 갑자기 생각이 안 나니까 그 자리에서 지어주지 못했데요. 그리고 가다가 화가 나 가지고 돌아서 가는데 벌판을 보며 대홍단이란 생각이 나니까 아들를 낳으면 대홍으로 짓고,  딸을 낳으면 홍단이라 지어라. 이래서 민홍단 이렇게 지었데요. 그런데 문제는 제대 군인이 1000명인가 무리 배치 되어서 갔는데 모두가 남자 아이를 낳으면 대홍이라 짓고, 딸을 낳으면 홍단이라 지었데요. 그래 그 마을이 그때 연도에 아이들이 전부 다 대홍이와 홍단이가 됐다는 일화가 있습니다.

 

MUSIC BRIDGE

 

통일문화산책 함께 해주신 여러분 감사합니다. 기획, 진행에 RFA 이현기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