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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일문화산책

통일문화산책(남북한의 상징 깃발)

여러분 안녕하십니까? 통일문화산책 진행에 이현기입니다. 우리 조상들이 남겨준 전통문화가 광복 이후 남과 북으로 나누어져 지금도 생성돼 오는 서울문화 평양문화의 단면들을 살펴봅니다.

TEASER: 북한지역에서도 1948년 5월까지 태극기를 사용했지요. 평양에서 열리는 큰 행사 때 단상에는 소련 깃발과 더불어 태극기가 나란히 걸렸지요. 그런데 알고 보면 1947년 11월 북한공산주의자들은 그들만의 깃발을 가만히 만들기 시작합니다.

백과사전 위키백과에 기 또는 깃발은 펄럭이는 천의 조각이며, 흔히 신호나 정체를 보여 주기 위해 상징적으로 사용된다라고 설명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최초의 깃발은 전쟁터의 군대를 보조하는 데에 사용되었으며, 초보 수준의 신호 정체 제공을 위한 일반적인 도구였다는 것입니다. 한국에서 최고 높이의 국기 게양대는 대성동 마을에 있습니다. 게양대 높이는 100m에 20cm 모자란 99.80m이고, 게양대 높이에 걸맞게 태극기의 크기는 가로 19m, 세로 12m에 달합니다. 이 국기게양대는 분단의 아픔을 여실히 보여주는 시설물로 북한에서도 잘 보일 수 있도록 높게 설치한 것이라고 합니다. 이에 맞서 군사분계선 너머에는 북한의 인공기가 마주 보고 있는데, 북한 기정동 인공기 게양대도 원래는 80m 남짓이었으나, 이를 제거하고 약 165m 높이로 다시 만들어 세웠다고 합니다.

8월은 광복의 달, 광복 70년을 맞아 남북한 전역에는 태극기와 인공기가 물결치고 있습니다. 통일문화산책 오늘은 태극기와 인공기라는 남북한 상징깃발에 대해 북한문화평론가 임채욱 선생으로부터 알아봅니다.

먼저 상징깃발이란 어떤 의미인지요?

임채욱 선생: 나라의 상징깃발이란 국기를 말합니다. 국기는 국가, 국화, 국조 등과 더불어 한 국가의 상징이지요. 상징은 실제는 아니지만, 그 자체가 정서적인 반응을 일으키기 때문에 활용성이 매우 높지요. 국기는 한 나라를 상징하는 국가상징 중에서도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는 한 나라의 얼굴이나 마찬가지입니다. 그래서 국기에 대해서는 존엄성을 가지며 경애심을 드러내게 됩니다. 국기에 대한 경의 표시는 국가 자체에 대한 경의 표시와 같습니다. 그래서 나라의 여러 행사에서 다른 깃발들은 최고 통치자에게 깃대를 숙이는 의식을 치를 때도 국기만은 고개를 숙이지 않는 것입니다.

남북한에서 국기가 달라지게 된 것은 언제부터인가요?

임채욱 선생: 우리나라가 일제로부터 광복되던 날, 서울이나 평양을 비롯해서 전국에서 만세를 외치면서 흔들던 깃발은 태극기였지요. 만세와 더불어 소리 높이 부르던 노래는 물론 애국가였습니다. 이때 태극기는 그 도형이 각기 다르기도 했고 애국가 또한 곡조가 영국민요곡이기도 했지요. 하지만 그게 문제입니까, 광복의 기쁨을 한껏 표현할 수 있는 우리 깃발이고 일본 경찰 몰래 부르던 애국가면 그만이었죠. 그러한 깃발이기에 북한지역에서도 1948년 5월까지 태극기를 사용했지요. 평양에서 열리는 큰 행사 때 단상에는 소련의 깃발과 더불어 태극기가 나란히 걸렸지요. 그런데 알고 보면 1947년 11월 북한 공산주의자들은 그들만의 깃발을 만들기 가만히 시작한 것이에요. 김일성은 조선 임시헌법제정위원회란 것을 발족시키면서 이 안에 일단의 미술가들을 배치시켜 국기제정을 지시하게 됩니다. 이 미술가들이 갈피를 잡지 못하자 김일성이 도안의 방향만이 아니라 세부적인 도안까지 직접 지시합니다. 오늘날 북한 상징깃발의 흰동그라미 안 오각별은 김일성 지시로 넣어진 것입니다. 이렇게 완성된 깃발을 1948년 4월 국기로 확정짓고 9월 8일 최고인민회의에서 채택, 공포한 뒤 이튿날 9월 9일 북한정권수립일부터 사용하게 되는 것입니다.

북한이 태극기를 폐지하고 새 국기를 사용하게 되는 이유를 어디에서 찾을까?

임채욱 선생: 북한에서 새로운 깃발인 인공기, 즉 남홍색 공화국 기를 채택하려 할 때 북한 최고인민회의 대의원 중에서도 태극기를 그대로 사용하자는 의견을 내는 사람이 있을 정도로 태극기는 북한 인민들 속에서도 낯선 깃발이 아니었지요. 그러나 그러한 반대의견도 다음과 같은 이유로 무시돼 버립니다. 첫째 태극기는 미군정청에서 발표한 제작방법에 따른 비주체적이어서 새 민주국가에 맞지 않는다. 둘째 태극기의 근거가 되는 주역은 비과학적이고 셋째 도형이 표준성 없이 이러저러 여러 가지이며 넷째 도안이 통일되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이러한 주장이 타당성은 있는지

임채욱 선생: 한마디로 억지주장이지요. 미군정청이 제작방법을 제시하고 권유해서 사용했다는데 남한이야 그렇다 치더라도 북한 땅에는 엄연히 소련 군정이 들어섰는데 미군정청 탓을 하면 됩니까? 둘째 태극기 근거인 주역이 비과학적이라 한 것은 주역의 깊은 내용을 파악하지 못한 탓이기도 하고 태극문양은 주역 이전 전통문양에서도 발견할 수 있다는 것을 몰라서 하는 말이지요. 셋째 도형의 비표준성을 내세우는데 태극을 괘와 연결시켜서 전혀 새로운 뜻으로 만든 것이라는 사실을 몰라서 하는 억지이지요. 넷째 도안이 각양각색으로 통일성이 없다고 하는데 태극기가 제정되던 당시 사정을 몰라서 하는 말이지요. 태극주위에 사괘를 배치한다라고 규정을 했지만 당시 오늘날처럼 텔레비전이 있는 것도 아니고 보니 널리 전파하는 수단이 미비하여 이러저러한 도안이 나온 것인데 이건 새로 통일시키면 될 아우런 문제가 될 게 없는 것이죠.

북한 인공기를 정통성 관점에서는 어떻게 봐야 하는지

임채욱 선생: 인공기에 대한 해설을 보면 “...일제를 반대하여 싸운 항일혁명 선열들의 정신이 깃들어 있으며..”라고 주장합니다. 그건 인공기의 붉은 색깔이 들어간 이유로 말하는 것이지만 색채가 상징하는 게 아니라 실제 일제 때 애국선열들이 앞세운 깃발은 태극기였다는 사실은 엄연하지 않습니까? 이러한 사실 앞에 더 이상 무슨 말이 필요할까요? 알다시피 정통성이란 통치의 정당성을 부여하는 이념적 성격이기 때문에 법통성뿐 아니라 역사와 문화의 유산계승에서도 확보되는 것이지요. 이런 면에서 볼 때 태극기의 역사성과 전통성, 그리고 항일투쟁성은 남북한 민족사적 정통성 주장의 중요한 부분이 되니까 태극기의 정통성을 무슨 논리로 비판할 수 있을까요?

남북이 분단된 지 어언 70년 남북은 그동안 이념과 체제를 달리하며 각기 다른 길을 걸어왔습니다. 남한은 서양으로부터 다양한 물질문화를 받아들여 식생활에도 큰 변화가 있었으나, 북한은 서양 문화에 인색했던 관계로 아직도 민족 고유 음식과 전통 음식을 그대로 유지하고 있다고 탈북 여성들이 전해줍니다.

북한에서 오랜 전통으로 자랑하는 방울쉬움떡을 소개해 드립니다.

준비 재료는 맵쌀가루 1.5킬로그람, 감주 800그람, 흰밭300그람, 꿀 100그람, 후춧가루 0.5그람, 계핏가루 1그람, 생강가루 0.5그람, 석이버섯 5그람, 대추10그람, 잣10그람, 소금 2그람, 참기름 10그람 입니다.

맵쌀가루 삼분의 일을 끓는 물로 익반죽하고, 나머지는 감주로 반죽한 다음 두 가지를 썩어 발효시킵니다. / 흰팥은 물을 충분히 붓고 밥을 짓듯이 하여 뜸을 들인 다음 방망이로 으깨어 고물을 만듭니다. 여기에 꿀, 계핏가루, 생강가루, 후춧가루, 소금을 넣고 떡소를 만듭니다./ 석이버섯은 불렸다가 안쪽면을 깨끗이 손질하여 채썰고, 대추는 씨를 빼내어 채썹니다./ 쌀가루반죽을 한 숟가락씩 떠 놓고 은행 알만 하게 빚은 떡소를 얹은 다음 다시 반죽을 씌웁니다. 그 위에 석이버섯, 잣, 대추로 고명하여 찝니다. 다 익으면 식혀서 참기름을 발라내면 됩니다.

통일문화산책 함께 해주신 여러분 감사합니다. 지금까지 기획과 진행에 RFA 이현기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