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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일문화산책

통일문화산책(남북한의 표준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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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러분 안녕하십니까? 통일문화산책 진행에 이현기입니다.

우리 조상들이 남겨준 전통문화가 광복 이후 남과 북으로 나누어져 지금도 생성돼 오는 서울문화 평양문화의 단면들을 살펴봅니다.

TEASER: 북한이 일방적으로 표준시를 바꾼다는 것은 남북한이 하나하나 동질화되어 가야 하는 통합에의 가능성을 역행하는 것. / 평양시간을 도입한 것은 사실에 있어서 일본보다는 남한을 의식한 조치.

북한이 광복 70주년을 맞아 8월 15일부터 지금보다 30분 늦춘 표준시를 정하고 ‘평양시간’으로 명명해 실시하고 있습니다. 박근혜 대통령은 지난 10일 "광복 70주년과 분단 70년을 맞아 우리가 남북대화와 동질성 회복을 위한 일련의 조치들을 제안하고 있는 상황에서 북한이 어떤 사전 협의와 통보도 없이 표준시 변경을 발표한 것은 매우 유감"이라고 말한 바 있습니다.

북한 노동신문은 지난 7일 1면에서 “일본 제국주의자들이 우리나라의 표준시간까지 빼앗았다”며 “광복 70돌 일제패망 70년을 맞아 최고인민회의 상임위원회 정령으로 동경 127도 30분을 기준으로 하는 시간을 표준시간으로 정한다”고 보도한 바 있습니다. 지난 15일부터 한국이 오후 4시면 북한은 오후 3시 반이 되는 것입니다. 표준시에서도 남북이 분단되는 상황이 벌어지게 되는 셈이다고 남한 언론들은 보도했습니다.

북한의 표준시 변경을 두고 남한의 전문가들은 집권 4년 차를 맞은 김정은 정권의 복잡한 정치적 셈법이 숨어 있다고 봤으며, 김정일이 주체연호를 만든 것처럼 김정은도 ‘평양시간’을 새로 만들어 정권의 정통성과 주체성을 주민들에게 과시하려는 의도가 있다고 분석했습니다.

자유아시아방송의 칼럼니스트 탈북자 출신 김현아 교수는 평양시간 제정은 남한을 의식한 것이라고 설명합니다.

김현아 교수: 북한은 지난 70여 년간 일제시기에 제정한 표준시간을 그대로 사용해왔습니다. 표준시간 때문에 북한이 정치, 경제, 군사적으로 불편을 겪는 것도 크게 없습니다. 그런데 새삼스럽게 시간문제를 제기하고 평양시간을 도입한 것은 사실에 있어서 일본보다는 남한을 의식한 조치입니다. 남북의 차이가 하늘과 땅처럼 커진 상황에서 북한 지도부가 가장 두려운 것은 남한의 영향입니다. 국경차단, 대남 사업에 종사한 간부들의 숙청 등에 이어 시간제까지 분단 시킨 것은 정권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나라와 민족의 운명을 아랑곳하지 않는 북한 지도부의 본질을 다시금 적나라하게 보여주고 있습니다.

공교롭게도 김정일이 김일성의 출생연도인 1912년을 1년으로 하는 주체연호를 만든 1997년은 김일성이 사망한 지 3년이 지난 시점이었고, 2012년 권력을 승계한 김정은 노동당 제1비서도 승계 3년이 지난 시점에 자신의 브랜드로 권력 공고화를 꾀하는 것으로 보인다고 남한 전문가들은 또한 분석했습니다.

통일문화산책 오늘은 남북한의 표준시에 관해 북한문화평론가 임채욱 선생으로부터 알아봅니다.

북한이 8월 15일을 기해 표준시를 바꿨습니다. 어떤 의미가 있는지

임채욱 선생: 북한이 일방적으로 표준시를 바꾼다는 것은 정통성 확보라는 명분에도 불구하고 남북한이 하나하나 동질화되어 가야하는 통합에의 가능성을 역행하는 것이지요. 무엇보다 표준시는 1시간 단위로 정하는 관례를 완전히 무너뜨리는 것이어서 국제적으로도 혼란을 줄 것입니다. 물론 세계에는 30분 단위로 차이가 나는 나라가 없지는 않습니다. 인도, 미얀마, 이란, 아프가니스탄 같은 나라는 다른 나라와 표준시가 30분씩 차이가 납니다. 그러나 소수 예외 사례죠. 북한이 예외를 택한 것은 실리보다는 명분을 찾으려 하는 것이지요. 하지만 이건 분명 엇박자라 할 수밖에 없습니다. 남북에 시차까지 달라지는 것이니 남과 같이 되려고 애쓰는 격입니다.

남북한 동질성 회복에도 악영향을 줄 수 있는지

임채욱 선생: 그렇지요. 일찍이 김일성은 한자문제가 나왔을 때 이런 말을 했습니다. “한자문제는 반드시 우리나라의 통일문제와 관련시켜서 생각하여야 합니다. 우리나라의 통일이 언제 될는지 누구도 찍어서 말할 수는 없으나 어쨌든 미국놈이 망하고 우리나라가 통일될 것은 틀림없습니다. 그런데 지금 남조선 사람들이 우리 글자와 함께 한자를 계속 쓰고 있는 이상 우리가 한자를 완전히 버릴 수는 없습니다. 만일 우리가 지금 한자를 완전히 버리게 되면 우리는 남조선에서 나오는 신문도 잡지도 읽을 수 없게 될 것입니다. 그러니 일정 기간 우리는 한자를 배워야 하며 그것을 써야 합니다. 물론 그렇다고 하여 우리 신문에 한자를 쓰자는 것은 아닙니다. 우리의 모든 출판물은 우리 글로 써야 합니다.” 좀 길게 인용했습니다만 이 말은 나름대로 통일을 염두에 두고 동질성을 유지해야 한다는 말이지요. 그런데 이번의 표준시 변경조치는 동질성 유지 같은 것은 염두에도 없으니 할아버지보다 후퇴한 것이 되네요. 심하게 말하면 통일하지 말자는 것이지요.

표준시 같은 문제는 남북한이 합의하든가 또한 통일 이후에 처리해도 되는 문제가 아닌지

임채욱 선생: 그렇지요. 김일성도 1964년 1월 북한 언어학자들과 만난 자리에서 국어 문법에서 띄어쓰기라든가 단어형태를 고정시키는 문제 같은 것은 남북이 통일된 다음에 해결해야 할 문제라고 보고 연구만 해 두는 것이 좋겠다고 했지요. 이처럼 남북한 간에는 통일 이후에 처리할 문제가 많은 것입니다.

표준시 변경은 북한으로서도 부담이 클 텐데 왜 이런 조처를 취했을까요?

임채욱 선생: 우리나라 표준시는 대한제국시기에 정해지면서 동경 127도 30분을 기준으로 했지요. 그 뒤 일제 총독부가 동경 135로 변경했지요. 광복 후 대한민국은 1954년 3월 표준시를 다시 127도 30분으로 바꿨지요. 그러나 1961년 8월 다시 동경 135도 기준으로 변경합니다. 이는 아무래도 1시간 단위로 정하는 국제관례를 따르려고 한 것이지요. 우리가 127도 30분으로 변경할 때도 북한은 동경 135도 기준을 그대로 사용했는데 이번에 이렇게 바꾸는 것은 한마디로 일제잔재를 청산하는데 한국보다 적극적이었다는 것을 과시하려는 면이 강하다고 보겠습니다. 또 한가지, 김정일 위원장이 집권 후 아버지 김일성이 태어난 해 1912년을 주체 1년으로 하는 새 연호를 만들어 내듯이 뭔가 획기적이고도 새로운 것을 정책화하겠다는 의도의 반영이라고 봅니다.

이번 변경이 구체적으로 남북한 간에 어떤 모습으로 나타날까?

임채욱 선생: 남북한이 상호방문을 할 때 비행기 시간 조정이라든가 약속시간을 두 가지로 명시해야겠지요. 우선 개성공단에 드나드는 우리 기업인들은 북한 표준시에 맞춰야 하는 불편함이 있겠지요. 그런 불편함 못지않게 앞으로 남북한 간의 인적교류나 대규모 물류이동 같은 것에 지장이 없을 수 없을 것입니다.

북한 표준시를 평양시간이라고 한다는데?

임채욱 선생: 70년 전 광복 때 서울과 평양은 우리나라에서 첫째가고 둘째가는 도시였습니다. 북한 공산주의자도 그래서 그들 정권의 수도를 서울로 하고 있었지요. 그러다가 1972년 남북대화를 하면서 그 해 12월 헌법을 바꾸면서 수도를 서울에서 평양으로 변경해 버립니다. 이건 뭐냐하면 서울의 우위성을 인정하지 않겠다는 것이었죠. 서울에 대항하는 평양을 부각시키려는 노력을 기우러 오다가 1993년이 되면 드디어 단군의 존재를 내세워 평양이 단군이 태어나고 나라를 세운 곳이라는 주장을 하게 됩니다. 뿐만 아니지요. 평양을 흐르는 대동강을 내세워 우리가 잘 아는 나일강, 티그리스, 유프라테스 강, 인더스, 간지스 강, 황하 등 세계 4대강 문화에 더 보태서 대동강문화가 생겨났다면서 세계 5대 문명이라고도 말하지요. 이런 것들이 모두 다름아니라 평양 정통성을 주장하려는 의도에서 나온 것이지요. 이번에 북한이 표준시를 변경하면서 평양시간이라 한 것도 한반도에서 평양을 서울에 우선하는 도시로 규정하겠다는 의지를 읽게 하고 있군요.

통일문화산책 함께 해주신 여러분 감사합니다. 지금까지 기획과 진행에 RFA 이현기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