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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일문화산책

고려를 보는 남북한의 관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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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회 외교통일위원회 나경원 위원장 등 위원들이 2일 북한 개성 만월대 남북공동발굴조사 현장을 시찰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제공

여러분 안녕하십니까? 통일문화산책 진행에 이현기입니다. 우리 조상들이 남겨준 전통문화가 광복 이후 남과 북으로 나뉘어져 지금도 생성돼 오는 서울문화 평양문화의 단면들을 살펴봅니다.

TEASER: 만월대는 개성 송악산 기슭에 위치하고 있었는데 서기 919년 고려가 건국되던 이듬해에 세워져서 1361년 홍건적이 침입으로 불타버릴 때까지 440년간을 왕궁으로 있던 곳 /북한이 만월대 등 개성역사지구를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에 등재하기 위해 신청했는데 2013년 7월에 등재.

지난 11월 2일 한국 국회의원 22명이 개성에 있는 만월대를 방문했습니다. 국회 외교통일위원회 소속인 이들 외에도 지원 인원 58명도 갔습니다. 수십 명이 남쪽에서 북쪽 땅을 찾은 것인데요. 10여 년 전부터 남북한 학자들은 유물 발굴에 매달려 왔습니다. 통일문화산책 오늘은 고려에 대한 남북한 역사학자들의 견해를 북한문화평론가 임채욱 선생과 함께 살펴보겠습니다.

임채욱 선생: 아시다시피 개성 만월대는 다른 고려시대 유물들인 고려 성균관, 왕건릉과 함께 2013년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되어 있기도 한 곳인데 이번에 간 남쪽 일행들은 고려시대 성균관, 왕건릉도 찾아 봤다는군요. 만월대는 남북한 간 합의로 2007년부터 발굴을 진행 중인데, 중간에 한 몇 년 끊겼다가도 다시 이어지고 있는 남북한 간 민족문화 동질성 회복의 교류협력의 현장입니다. 고려 왕궁터였던 만월대는 조선조 이후 폐허가 되다시피 돼서 ‘황성옛터’라는 대중가요로 많은 한국 사람을 울린 그곳이기도 합니다.

만월대에 대해 자세하게 설명해 주시지요.

임채욱 선생: 만월대는 개성 송악산 기슭에 위치하고 있었는데 서기 919년 고려가 건국되던 이듬해에 세워져서 1361년 홍건적이 침입으로 불타버릴 때까지 440년간을 왕궁으로 있던 곳이지요. 동서가 445m, 남북 150m의 터에 세워진 왕궁이지만 지금은 건물을 연결하던 돌계단이나 기왓조각, 도자기 파편들 철제장식품들이 발견되고 있을 뿐입니다. 이 만월대를 불태운 홍건적은 원나라 지배를 반대한 중국 한족 반란군으로 그 세력이 중국 안에서만 끝나지 않고 요동반도를 거쳐 우리나라에까지 쳐들어왔으니 만월대가 불타던 그 해에는 10만 대군이 쳐들어왔지요. 이에 공민왕은 지금의 안동까지 피난을 가야 했지요. 이러한 만월대가 남북 공동으로 발굴하게 된 장소가 된 것입니다.

함께 발굴하게 된 경위를 좀 더 자세하게 설명해 주시지요. 그리고 발굴 뒤 복원도 같이하게 되는지요?

임채욱 선생: 2003년 개성에서 남북역사학자들이 만났을 때 남쪽에서 개성 만월대를 공동발굴하자는 제의가 나왔지요. 이것이 실마리가 돼서 2004년 남북역사학자협의회가 꾸려지고 2007년 발굴이 처음 시작되었는데, 현재 남쪽 학자 15명, 북쪽학자 30명이 함께 작업하고 있지요. 이렇게 된 배경에는 분명히 중국의 동북공정 추진이 있는 것입니다. 동북공정에 대해 남쪽 학자들이 북한에서 반박을 옳게 못 한다고 지적하면 그들은 곤혹스러워했지요. 그러면서 남쪽 학자들이 강조하는 민족 동질성 회복이란 당위성을 외면할 명분이 없었던 거죠. 그래서 지금까지 나온 유물만도 1만여 점에 이른답니다. 물론 그동안 천안함 폭침 때문에 함께 하는 작업이 중단됐다가 이듬해 다시 시작하는 우여곡절도 있었습니다. 발굴이 다 끝나면 자연 복원문제도 나올 텐데 그건 북한당국이 결정할 문제이고 다만 이 유물들을 잘 볼 수 있도록 보존센터나 박물관을 세워서 남북한이 공동으로 관리하면 좋을 것 같습니다.

여기서 잠시 남북역사학자협의회 기광서 기획위원장이 지난 2014년 자유아시아방송과 회견에서 개성 만월대 남북공동 발굴사업 진척에 관해 밝힌 내용 함께 들어봅니다.

기광서: 개성 만월대 남북공동 발굴은 저희 단체의 가장 중요한 사업인데요. 남북역사학자협의회와 문화재청 국립문화재연구소는 개성 소재 고려 정궁터인 만월대에 대한 발굴조사와 보존사업을 2007년부터 2011년까지 5차에 결처 진행하였습니다. 북한이 만월대 등 개성역사지구를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에 등재하기 위해 신청했는데 2013년 7월에 등재가 됐습니다. 그래서 이 발굴 사업이 더욱 의미가 있게 됐습니다.

학자들 간에는 의견이 일치되는 부분이 있겠지만, 북한 당국이 만월대 발굴을 허용한 것은 특별한 이유가 있을 것 같기도 한데요.

임채욱 선생: 여기에서 남북한이 고려를 보는 관점을 보게 되는데, 한마디로 북한은 고려를 우리나라 최초의 통일국가로 보기 때문이지요. 한국역사학계는 통일신라가 우리나라 최초의 통일국가였다고 봅니다. 신라가 백제를 병합하고 고구려를 멸망시킨 뒤 그 자리에 타고 앉으려는 당나라 군사를 수년에 걸친 전쟁 끝에 드디어 한반도 밖으로 쫓아냅니다. 그러나 북한 역사학자들은 신라가 고구려 땅 모두를 통합하지는 못했다고 주장하면서 고려에 와서 통일국가가 최초로 성립된다는 견해를 가집니다. 이런 연유로 북한정권은 고려를 내세워 고려민주연방제니 하고 있지요. 북한에서는 고조선에서 고구려, 그 다음 발해, 그리고 고려, 조선, 북한정권으로 이어진다고 보면서 고려민주연방으로 이어졌으면 하는 것까지 바라고 있을지 모릅니다. 신라가 3국을 통일했다는 사실은 와전히 부인하는 것이지요.

북한에서 고려를 강조하는 현상들을 어떻게 보시는지요.

임채욱 선생: 그런 현상들은 1990년대에 들어서면서 현저하게 보이는데, 함흥약학대학 이름을 고려약학대학으로 바꾸고 개성경공업단과대학이란 이름도 고려성균관이란 이름으로 바꿉니다. 조선민항을 고려민항으로 바꾸고 동의학을 고려의학으로 바꿉니다. 고려 때 축조된 천리장성도, 여진족 침입을 막기 위해 압록강 하구에서 함경도 정평 바닷가까지 이은 천리장성 있잖습니까, 이것도 고려장성으로 바꿔버리고 말지요. 북한의 어떤 학자는 우리 민족을 고려민족이라고 말하기도 합니다.

이러한 흐름이 고구려와 고려를 연결시키려는 의도라고 볼 수 있겠지요?

임채욱 선생: 물론입니다. 북한에서는 고려를 강조하기 위해서 우선 고구려를 강조합니다. 고구려라는 나라 이름이 높을 고에 구려는 마을이나 성읍을 뜻한다는 것이 한국의 해석이면 북한에서는 고는 동명성왕의 성씨이고 구려는 고대 우리말로 신비하다라는 뜻으로 해석된다면서 고구려는 ‘태양이 솟는 신비한 나라’로 봅니다. 여기에서 고조선에 역사근원을 둔 국호를 이어받았다고 주장까지 나오고 이것이 고려로 그대로 계승되고 이어 고려민주연방에 까지 연결되기를 희망하고 있지요. 김일성이나 김정일은 한결같이 고구려가 삼국시기에 가장 강성했다고 말하지요. 고구려 사람들은 슬기롭고 용맹했으며 무술을 익히기를 좋아했다고 말합니다. 좀 더 보면 고구려를 편애하고 신라를 아주 폄하하고 있지요. 북한 역사교과서는 고조선에서 고구려, 발해로 이어진 다음 고려에 와서 통일국가가 된다는 것입니다.

그럼 한국에선 고려가 최초의 통일국가라는 관점을 어떻게 보는지요.

임채욱 선생: 한국에서는 신라에 의한 통일을 주장하는 학자도 있고 고려에 의한 통일을 주장하는 학자도 있습니다. 이 문제 중심에는 발해가 있습니다. 발해를 어떻게 보느냐에 따라 보는 관점이 달라지는데 발해를 고구려 후예들이 세운 나라로 보느냐, 아니면 말갈족이 세운 나라로 보느냐에 따라 통일문제도 달라지지요. 발해를 세운 대조영이나 상층부 지배층이 고구려 유민들이고 말갈족을 하층민으로 부렸다는 주장이 일반적이기도 하지만 서거정이란 조선조 학자의 <동국통감>이나 안정복의 <동사강목>이란 책에도 발해 역사가 실려 있지 않는데다가 보기에 따라서는 발해는 신라말기의 혼란을 틈타 고조선, 고구려의 옛 땅을 차지한 침범자로 보는 조선시대 학자도 있지요. 이 학자는 발해라는 존재가 우리 역사의 일부가 되기 어려울 뿐 아니라 오히려 역사발전을 가로막은 존재라고 본 것입니다. 발해가 건국한 뒤 한두 차례 신라에서 발해로 사신을 보낸 일이 기록되어 있으나 한 동족으로 봤다는 기록은 없다는 것입니다. 심지어 고려에서도 발해에 대해 동일민족으로 본 것 같지 않다는 것입니다. 현재 한국역사학계에는 발해를 우리 민족의 역사에 넣어야 된다는 주장도 있고 아직은 확신하기 어렵다는 주장도 있지요. 발해를 우리 역사에 넣는다면 당연히 신라에 의한 통일은 백제, 고구려를 아우르는 1차 통일이고 신라와 발해를 아우르는 통일은 고려에 의한 2차 통일이라고 할 수 있겠지요.

신라에 의한 삼국통일은 북한관점에서는 통일이 아니란 것인가요?

임채욱 선생: 발해라는 나라의 존재를 인정한다면 북한의 주장이 맞지요. 하지만 발해가 그 때 신라나 그 뒤의 고려에서 우리 동족의 나라라는 인식이 거의 없었던 것을 보면 북한의 주장이 반드시 맞다고 할 수는 없지요. 앞으로 발해연구가 좀 더 발전돼서 발해를 세운 주체세력이 고구려 후예라고 판명된다면 발해는 당연히 우리 역사에 들어와야 하는 것이고 북한의 주장은 평가를 받을 것입니다.

고려에 대한 북한의 애정이랄까 이런 것이 앞으로 진전될 방향에 대해서도 설명해 주시지요.

임채욱 선생: 북한은 통일문제에 관한 한 언제나 한국보다 더 열렬히 표현한 편이었고 공세적이었습니다. 그러나 이제는 체제경쟁이나 남조선공산화가 어렵다는 전제에서 통일보다 오히려 영원히 분단으로 가려고 하는 것이 아닌가 하는 의심도 듭니다. 지난 8월 표준시를 바꾼 것도 그렇고 언젠가는 ‘조선’이란 명칭도 ‘고려’로 바꾸지 않을까도 여겨집니다. 이 때 영어 KOREA의 K를 C로 바꿔서 COREA로 쓰면서 남쪽과 무관한 나라로 규정하려고 할 의도도 배제할 수 없습니다. 잘 살펴 볼 일입니다.

통일문화산책 함께 해주신 여러분 감사합니다. 지금까지 기획과 진행에 RFA 이현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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