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통일문화산책

조상 숭배 행사들

오디오오디오 (다운받기)

visit_grave_b
인천가족공원에서 가족의 묘를 찾은 시민들이 성묘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제공

여러분 안녕하십니까? 통일문화산책 진행에 이현기입니다.

우리 조상들이 남겨준 전통문화가 광복 이후 남과 북으로 나뉘어져 지금도 생성돼 오는 서울문화 평양문화의 단면들을 살펴봅니다.

TEASER: 아빠가 돌아가셨다는데 사실 실감이 안 나요. 아직도 살아계신 것 같아요. 벌초 가면 아빠에게 저희는 여기서 잘 지낸다고 말 한마디 /북한을 다스리는 ‘우리식 사회주의’가 어떻게 변모할지 모르겠습니다만 전통을 깡그리 무시하려고 덤비던 1980년대까지의 모습과는 달라질 것이라고 봅니다.

백과사전 위키백과에 제사(祭祀) 또는 제례(祭禮)는 천지신명을 비롯한 신령이나 죽은 이의 넋, 귀신 등에게 제물(음식)을 바치어 정성을 표하는 행위이다. 그러나 동아시아의 한자문화권에서는 설날이나 추석에 드리는 제사를 차례라고 부른다. 좁은 의미로 동아시아의 한자 문화권에서 천지신명에게 올리는 정성을 나타내며, 넓은 의미로 샤머니즘 및 조상숭배, 애니미즘 등과 관련하여 제물을 바치는 의식 전반을 가리킨다.

지난 2000년 조선일보 ‘제사 때 남한은 두 번 절 북한은 세 번 절’ 제목 기사에서 8·15 광복 이후 월남한 실향민들에 따르면 당시 북한의 제사 예법은 남한의 그것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지방마다 약간씩 차이가 나기는 했지만, 그것은 남북한의 공통적인 현상으로 전체적으로 보면 풍습 자체가 다르다고 볼 수는 없었다.
그러나 분단 반세기를 지나오면서 오늘날 남북한의 풍습은 상당한 차이를 드러내고 있다. 특히 제사풍습은 사회주의 체제하의 북한에서 여러 가지 제약으로 인해 본래의 모습을 거의 잃어버리거나 왜곡된 상태로 겨우 명맥을 이어오고 있다.
특이한 것은 절을 하는 방법인데 남한에서는 재배를 하는 데 반해 북한에서는 무조건 삼배를 한다는 것이다. 이것은 어느 지방에 가도 거의 공통적으로 보이는 현상이다. 지역적 차이가 있다면 삼배를 한 번 하느냐, 두세 번 하느냐 하는 것뿐이다. 언제부터 이렇게 변했는지는 정확히 알 수 없지만, 이제는 삼배하는 것이 거의 굳어 버렸다고 했다.

음력으로 10월 상달이라고 하는 요즘 한국에서는 조상에게 제사를 드리는 시제 또는 묘제가 많이 열리고 있다고 합니다. 시제는 무엇이고 묘제는 무엇인지, 그리고 북한에서도 이런 것이 열리는지, 아니면 이런 행사를 어떻게 보는지를 북한문화평론가 임채욱 선생과 함께 알아보겠습니다.

먼저 조상을 위한 제사에는 어떤 것들이 있는지요?

임채욱 선생: 조상에게 드리는 제사는 크게 세 종류가 있다고 보면 되겠습니다. 첫째가 돌아가신 부모나 할아버지 그리고 그 윗대 어른들에게 드리는 기제사, 둘째가 일 년 사시사철에 맞춰 지내는 시제, 또는 묘제지요. 묘제는 시제를 대체로 묘에 가서 지내기 때문에 묘제라고 하지요. 그리고 셋째가 묘에 가지 않고 명절에 맞춰 집에서 지내는 차례(茶禮)가 있지요. 기제사는 죽은 조상의 죽은 날, 기일을 맞아 드리는 제사이고 시제는 사시사철에 맞춰 조상에게 제사를 올리는 것이고 묘제는 그런 제사를 묘에 가서 지내는 것이지요. 사시사철에 맞춘다는 것은 정초라든가 한식 단오, 추석, 중양절, 동지 등 좋은 날에 맞춰 조상에게 제사를 올리는 것이지요. 그렇다고 지금 말한 한식, 단오, 추석에 빠짐없이 다 지내는 게 아니고 대개는 어느 한두 번을 택하지요. 음력으로 10월은 대체로 어느 집안이나 시제를 묘에 가서 올리는 게 보편적입니다.

시제나 묘제가 오늘날 와서 무슨 의미가 있습니까?

임채욱 선생: 자기 부모도 아닌 먼 조상에 대한 숭배라든가 그 숭배심을 표현하는 제사를 지낸다는 것이 오늘날 과연 뜻이 있느냐 하는 문제는 요즘 시제를 지내고 묘제를 모신 많은 분들도 회의할 수 있는 문제지요. 전통사회와 달리 친척집단이 나의 이익을 가져다주는 일도 없으니 친척들이 모여 묘제를 지난다는 것도 현실적인 이익을 주는 것은 없지요. 하지만 조상에 대한 후손으로서의 순수한 마음은 누구나 가지기 때문에 조상을 추모하고 자신의 안녕과 친족 간의 화목을 도모한다는 뜻에서 시제나 묘제가 전혀 무의미한 것은 아닐 것입니다.

북한에도 시제니 묘제니 하는 것이 있습니까?

임채욱 선생: 행사는 없더라도 그런 개념은 있다고 봐야지요. 북한에서 전통이 많은 부분 사라졌더라도 그런 개념 자체는 지식인이나 일정한 수준 이상의 인민들 사이에는 있다고 보겠습니다. 우선 성씨라든가, 본관 같은 개념도 아는 사람은 안다고 봐야지요. 이를 가늠하는 사례가 있습니다. 2000년대 초 김정일은 남쪽 언론사 사장들과 만난 일이 있습니다. 이 자리에서 자기 본관이 전주이고 시조는 태서공이라고 밝힌 일이 있지요. 태서공묘는 전주 모악산에 실제 있지요. 김정일은 언제 모악산에 갈수 있으면 참배 하겠다고 말한 것으로 알려져 있지요. 실제로 북한에서 나온 자료에는 김일성 몇 대 조상 김계상이란 사람이 전주에서 북쪽으로 왔다고 되어 있습니다. 그런데 대부분의 북한사람들은 김정일처럼 자기들 본관을 알지 못합니다. 그러니 조상에 대한 관념이 있더라도 그걸 찾을 수 없고 그냥 잊은 체 사는 것입니다. 이것은 남한사람들과 다른 부분이기도 합니다. 북한에서도 바로 당대 부모들은 제사를 지낸다지만 먼 조상, 그러니까 4대조 이상 되는 조상에 대한 시제라든가 묘제는 없는 것이지요.

족보에 대한 관념은 어떤가요?

임채욱 선생: 족보를 보는 것과 관련된 이야기가 있습니다. 1992년 5월 개성에서 ‘성원록’이란 책이 발견되었습니다. 이 책은 고려왕조에 관한 역사책인데 고려 때 편찬되었다고 하나 실제 책은 전해지는 것이 없었습니다. 그런데 김일성이 개성을 방문했을 때 한 노인이, 이 노인 이름은 왕명찬인데, 이 노인이 가보로 내려온 족보를 바치겠다면서 내놓은 책이 있었지요. 그런데 이 책은 군데군데 불에 탄 흔적이 있는지라 그 이유를 물었더니 노인 말하기를 자기 아들이 불태워 없애려는 것을 겨우 막아서 일부가 훼손된 것이라고 했지요. 그 노인의 아들은 봉건시대 유물이라고 없애려 했고 노인은 왕씨 가문의 귀중한 책으로 전해 내려온 것이라고 지키려고 했던 것이지요. 이러한 내력을 가진 이 책은 나중에 북한학자들이 검토해보니 1798년에 간행된 고려성원록이란 책으로 굉장히 중요한 책이었던 것입니다. 족보라지만 단순한 족보 책이 아니라 고려 왕씨의 계보가 실리고 고려 태조의 선대에 관한 기록이 실려 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북한당국은 이 책을 2001년 국보로 지정합니다. 이를 보면 북한에서 족보를 어떻게 취급했는지를 짐작할 수 있지요.

남쪽에서는 족보를 만들기도 하지만 북한에서는 족보에 관한 관념도 아주 초보적인 인식에 머물러 있다고 보겠네요.

임채욱 선생: 북한의 나이 많은 노인들끼리 하는 대화에는 고향이야기라든가 아들딸 시집 장가보낼 때 상대방 성은 어디이고 본은 어디인지 묻게 된다면서 성과 본에 관심을 돌리고 있다고 말합니다. 1980년대까지는 이런 말을 잘 못했습니다. 북한에서도 성씨에 대해 조사한 일이 있는데 212개라고 합니다. 8세기 중엽부터 쓰이기 시작한 우리나라 성씨에서 지금까지 나온 전체 성씨는 모두 728개로 파악하고 있군요. 각 성씨에는 항렬이 있어서 그 순서대로 이름을 짓는데 북한에는 그런 것은 없지요. 김정일 이름은 어머니 이름에서 한자, 아버지 이름에서 한자를 땄으니 그런 것은 무시한 것이죠. 김정남도 아버지와 같은 바를 정(正)자가 들어갔고 김정은도 바를 정자를 썼으니, 어머니와 아들, 아버지와 아들, 할머니와 손자, 증손자에 이르기까지 바를 정(正)자를 쓰고 있군요. 남쪽에서는 아직은 항렬을 무시하는 이름은 잘 짓지 않고 있지요.

북한에서 족보는 없다고 하더라도 그에 대한 관념은 있는지요.

임채욱 션생: 족보야 말로 북한사회에서는 봉건적인 잔재로 여겨지는 존재이지만 전통에 관심 갖는 90년대 이후 족보에 대해서도 노인들 사이에는 서로 이야기 되는 경우가 있다고 합니다. 북한에서는 족보가 봉건지배세력이 자기 가문의 권위를 미화하기 위한 것이라고 봤지만 그것이 가족의 역사이고 봉건지배층의 내력을 밝히는데 중요한 문서라고 보지요. 앞으로 족보를 만들 일은 없겠지만 그런 존재에 대한 교육은 해 나갈 것 같습니다. 그전에는 존재 자체를 언급하는 것조차 금기되었지요. 1990년대 이후 김정일도 전통적인 것도 많이 알아야 한다고 말했지요.

요즘 그래도 북한 잡지에서 성씨와 본관에 대한 기사도 실리고 하는데 이제 남쪽을 의식한 것이 아닐까 하는 것입니다. 족보가 없고 시제 같은 것이 없다고 북한 사람들이 조상숭배관념이 약하다고 볼 수는 없는 것입니다. 먼 조상에 대해서 여러 가지 조건상 의식행사를 못 한다는 것이지 바로 부모에 대해서는 한국국민이나 마찬가지일 것입니다.

앞으로 북한 주민들도 여유가 생기면 먼 조상에 대한 숭배행사도 있을 수 있겠지요?

임채욱 선생: 북한을 다스리는 ‘우리식 사회주의’가 어떻게 변모할지 모르겠습니다만 전통을 깡그리 무시하려고 덤비던 1980년대까지의 모습과는 달라질 것이라고 봅니다. 조금이라도 이런 분야 교류가 있게 되면 단순히 성씨만을 알고 지내지 않고 본관을 찾으면서 족보에도 관심을 갖게 되겠지요. 사실 족보 같은 것은 한 성씨만의 역사를 기록한 책으로만 볼 것이 아니라 공공적인 성격도 가진 기록물로 봐야지요. 자기 조상을 미화시키는 족보도 있지만 족보를 통해 그 당시 사회모습을 찾아내는 데도 활용될 수 있는 긍정적인 면이 있습니다.

지난 2011 자유아시아방송 프로그램 중 ‘젊은 그대’에 출연한 탈북인들의 명절 언저리에 고향 생각하며 북한 가족에게 보내는 내용 잠시 듣습니다.

탈북인: 오빠! 잘 지내고 있죠? 저는 엄마랑 잘 지내요. 아빠가 돌아가셨다는데 사실 실감이 안 나요. 아직도 살아계신 것 같아요. 벌초 가면 아빠에게 저희는 여기서 잘 지낸다고 말 한마디 전해주세요. 제가 나중에 통일되면 꼭 가서 인사드린다고요.
탈북인: 아버지 생각이 나는데요. 아버지에게 한마디 해도 되죠? 아빠, 올 때도 떠난다는 얘기도 못 하고 회령에 있다가 왔는데 나중에 한국에 오기 전에 돌아가셨다는 얘기 들었어요. 가슴에 납덩어리가 떨어진다는 얘기가 무슨 뜻인지 알겠더라고요. 아빠 장례식도 못 가고 풀 한번 못 뜯어주고 흙 한 삽 못 올린 불효자식 용서해주세요. 나중엔 제가 몇십 배로 할게요. 죄송하고 사랑합니다.

Music Bridge

통일문화산책 함께 해주신 여러분 감사합니다. 지금까지 기획과 진행에 RFA 이현기입니다.

'통일문화산책' 카테고리의 다른 글

통일문화산책(국민과 인민)  (0) 2015.12.20
통일문화산책(남북한의 지식인)  (0) 2015.12.18
고려를 보는 남북한의 관점  (0) 2015.12.02
남북한의 백과사전 편찬  (0) 2015.12.02
남북한의 미의식  (0) 2015.12.0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