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통일문화산책

통일문화산책(국민과 인민)

여러분 안녕하십니까? 통일문화산책 진행에 이현기입니다. 우리 조상들이 남겨준 전통문화가 광복 이후 남과 북으로 나뉘어져 지금도 생성돼 오는 서울문화 평양문화의 단면들을 살펴봅니다.

TEASER: 인민은 휴전선 북쪽 지역에서 사용하고 그들 헌법에도 뚜렷이 명시돼 있기 때문에 결국 정치적인 용어가 되는 것입니다. 정치색을 띠는 한 피해야 할 말이 되는 것은 당연하죠 / 북한의 당과 국가만큼 인민과 먼 나라는 없습니다. 북한은 인민이 권력을 행사하는 나라가 아닙니다.

최근 한국에선 ‘국민이냐 인민’이냐 하는 논란이 있었습니다. 통일문화산책 오늘 이 시간에는 북한문화평론가 임채욱 선생과 함께 국민 대 인민의 개념을 살펴보겠습니다.

먼저 논란의 경위를 들어보겠습니다.

임채욱 선생: 지난달 14일 서울 도심에서는 무법천지처럼 보이는 불법시위가 벌어졌습니다. 이때 열린 전교조, 즉 전국교원노동조합 구성원들이 전국교사 결의대회라는 것을 열면서 그 위원장은 “오늘 우리의 투쟁은 15만 노동자, 민중, 인민, 시민, 청년학도들이 함께하고 있습니다”라고 말했지요. 전교조 위원장이란 사람의 입에서 ‘인민’이라는 말이 튀어나온 것입니다. 대한민국 수도 중심지에서 버젓이 인민이란 말이 쓰였으니 놀랄 일일수도 있습니다. 더욱이 학생들을 가르치는 교사라는 사람이 정확한 개념을 써야 하는데 대한민국에서 쓰지 않는 ‘인민’이란 말을 썼으니 알만 한 사람들 사이에서는 그냥 둘 수 없는 일이라는 여론이 일고 있었지요.

그럼 인민이란 말을 왜 쓰면 안 되는지 설명 좀 해주시죠.

임채욱 선생: 인민이란 말은 본래 정치색을 띠지 않을 수 있지요. 쉽게 말하면 사회를 구성하는 사람들, 즉 군주시대로 말하면 백성을 말하는 것이고 공화국에서는 국가 구성원인 사람을 말하지요. 여기까지만 보면 대한민국 같은 공화국에서 인민이라 해서 안 될 것은 없지요. 하지만 통념적으로 한국에서는 국민이라 하지 인민이라 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헌법에서 대한민국의 구성원을 국민으로 못 박고 있다는 것입니다. 반면에 인민은 휴전선 북쪽 지역에서 사용하고 그들 헌법에도 뚜렷이 명시돼 있기 때문에 결국 정치적인 용어가 되는 것입니다. 정치색을 띠는 한 피해야 할 말이 되는 것은 당연하죠.

국민이란 말을 일부에서는 안 좋은 말로 잘못 알고 있는 것 같기도 한데요?

임채욱 선생: 국민은 국민국가의 구성원이란 뜻으로 쓰여 진 것입니다. 안 좋은 말로 알고 있는 사람들은 국민이 일본에서 강조 한 것이고 ‘황국신민’을 줄인 것이라고 알고 있습니다. 그러나 그렇지 않습니다. 국민은 영어로 nation, 독일어로 Nation을 번역하면서 국가, 국민 또는 민족으로 한데서 비롯된 것인데, 독일어에서는 민족을 따로 Volk라고도 하지만 이 경우도 국민을 말할 때도 Nation 외에 Volk라고도 하지요. 이 개념은 서유럽에서 중세 봉건국가가 해체되면서 절대주의 국가를 거쳐 국민국가를 형성하던 시기에 생겨난 개념이지요. 이를 동양 한자문화권에서 국민 또는 민족이라고 번역한 것이지요. 그러니까 국민이 좋지 않는 개념으로 알 필요가 없는 것입니다.

북한에서는 국민이란 말을 일절 안 씁니까?

임채욱 선생: 그렇지가 않습니다. 북한에서도 국민소득, 국민주권 같은 말을 씁니다. 이건 뭣을 말하는가 하면 국가라는 존재를 전제로 하지 않으면 ‘인민’을 쓰겠지만 국가를 전제로 하는 개념에는 국민을 쓰지 않을 수 없기 때문이죠. 인민소득, 인민주권이란 말은 성립이 안되지요. 인민은 본디 국가를 구성하는 요소가 아니라 국가와 관계없이 사회의 물질적 부를 만들어 내는 계급과 계층을 말하기 때문이지요. 본래 공산주의는 사회주의 사회를 거치면서 나라가 없어지기 때문에 인민은 있어도 국민은 상정도 하지 않았던 것이지요. 북한에서 한국의 국민개념에 가까운 것은 공민이라 하겠습니다.

그러니까 북한에서는 국민국가라는 개념은 있을 수 없다는 것인데 그러면 국민국가와 국민의 관계를 좀 더 살펴보면?

임채욱 선생: 쉽게 말하면 국민국가는 국민을 담는 큰 도구라고 보면 될 것 같습니다. 말하자면 그릇과 음식의 관계와 같다고도 하겠지요. 그릇이란 형식이 있어서 음식이란 내용을 담는 것처럼 국가라는 형식이 있어서 국민이 살아갈 수 있는 것입니다. 그렇다고 국가라는 형식이 더 주된 것이고 국민이란 내용이 뒤따르는 것이라고 할 수 없지요. 음식이 없으면 그릇도 소용없듯이 국민이 없으면 국가도 성립이 안 되는 것입니다. 여기에서 잠시 쉬어가는 이야기 하나 해볼까요. 우리는 불의 발견이 인간의 가장 중요한 발견이라고 합니다. 불의 발견으로 사람은 문명을 이루게 되었다고 하는데 한번 생각해봅시다. 불이 있어도 사람이 음식을 담을 그릇을 만들 생각을 못했으면 문명이 발달되었겠는가? 이로써 그릇을 만든 것이 불의 발견 못지 않는 발명이라고 하죠.

자유아시아방송의 칼럼니스트 탈북자 출신 김현아 교수는 지난 10월 19일 방송에서 당 창건 기념일에 김정은 위원장의 육성연설이 남한에서 화제가 됐다고 했습니다. 분석에 의하면 이번 연설에서 가장 많이 언급한 단어는 인민이었으며 별로 길지 않은 연설문에 인민이란 말이 무려 90번이 들어갔으며 한 신문은 인민이란 단어횟수에서 최고를 기록한 연설문으로 평가했다고 지적했습니다.

김현아 교수: 인민은 북한에서 가장 많이 쓰는 단어입니다.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최고인민회의, 인민위원회, 북한의 정권기관의 이름에는 모두 인민이라는 이름이 붙어 있습니다. 그리고 인민을 위하여 복무함이라는 당 구호도 있습니다. 북한지도부는 이러한 이름에 진정으로 인민을 위해 일하려는 당과 국가의 의지가 반영되어 있다고 자랑해왔습니다. 그러나 북한의 당과 국가만큼 인민과 먼 나라는 없습니다. 북한은 인민이 권력을 행사하는 나라가 아닙니다. 당과 국가의 지도부가 주인이 되어 수하에 있는 인민을 보살피는 나라입니다. 그래도 사회주의 국가들이 건재해 있을 때는 소련의 빚을 져서라도 무상치료제 무료 교육제를 유지했고 주민들에게 많지는 않아도 최소한 생계를 유지할 수 있는 정도의 식량배급을 주었습니다. 그리고 그것을 예로 들며 모든 것이 인민을 위해 복무하는 나라라고 선전했습니다.

김현아 교수는 또한 북한에서 인민을 위해 복무하는 나라라고 했는데 그렇다면 과연 인민을 어떻게 대했는지를 설명해 줍니다.

김현아 교수: 사람은 어려운 때 알아본다고 지도부 본질도 어려울 때 나타났습니다. 북한지도부는 나라가 어려워지자 인민을 서슴없이 버렸습니다. 정권을 유지하기 위해서 수십만의 주민이 굶어 죽는 것을 방치했고 아이들이 먹지 못해 키가 자라지 못하고 몸무게가 줄어도 아무 대책도 세우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고난의 행군시기 수십만 톤의 식량을 지원해준 미국에 그 죄를 넘겨 씌었습니다. 북한지도부는 인민이란 이름을 자주 외워도 사실 그들은 인민을 잘 모릅니다. 북한주민들은 지금 통제 때문에 입을 다물고 살지만 나날이 세상소식에 눈을 뜨고 있고 북한체제의 본질을 깨닫고 있습니다. 북한지도부는 인민을 두려워합니다. 인민은 정권을 위해 가장 필요한 존재이지만 반대로 정권을 무너뜨리는 위험요소이기도 합니다. 북한 지도부처럼 인민을 무서워하는 사람들은 없습니다. 1호 행사 때에는 보위부 보안서 호위국을 총동원해서 2중 3중의 방어선을 치고 반경 수십 킬로미터 안에는 누구도 얼씬 못하게 합니다. 지도자와 만나는 사람은 일일이 선발해서 삼엄한 경계망 속에서 만나도록 합니다. 시위와 폭동이 일어날까봐 평양과 각도소재지에는 시위진압용 장비와 보안부대를 상시적으로 배치해두고 있습니다.

앞에서 영어로 nation이 국민과 민족으로 번역되고 있다는데 그렇다면 국민국가나 민족국가는 같은 개념입니까?

임채욱 선생: 다르지요. 국민국가는 그 영토 안에 있는 여러 민족을 다 국민으로 받아들여서 국민으로 주권을 갖게 하는 거죠. 그러나 민족국가는 주된 민족집단을 우선으로 하기 때문에 다른 민족출신 개개인은 이 집단의 부분일 뿐이지요. 국민은 개방적이고 민주주의나 세계 시민적 인권과 연관을 가지고 있지요. 민족국가는 봉건적 요소를 가지고 있는 편이지요. 현재 전 세계적으로 국민국가는 영, 미, 프랑스 등 서유럽을 비롯해서 압도적 분포를 보이고 있지만, 민족국가는 중동유럽과 일본 및 한국에만 국한되는 국지성을 보이고 있습니다.

통일을 위해서는 국민국가의 지향과 민족국가의 지향을 어떻게 조정하면 좋을까요?

임채욱 선생: 통일을 진보적 방향으로 유도하고 조정하기 위해서는 신화적 민족개념에만 의존하는 통일이 아니라 민주주의 원리에 충실한 ‘민주적 통일’이 바람직하며 북한동포들이 북한 전체주의 체제에서 벗어나 민주적 시민권과 인권을 회복시켜주는 방향으로 진행되어야 할 것입니다. 지금 한국에서는 국민국가와 민족국가라는 상충되는 두 국가이념이 있기 때문에 이 양 날개의 조화로운 국가이념을 강화함으로써 국가정체성을 발전시켜야 할 것입니다.

통일문화산책 함께 해주신 여러분 감사합니다. 지금까지 기획과 진행에 RFA 이현기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