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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일문화산책

통일문화산책(남북한 출판물 편집 교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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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러분 안녕하십니까? 통일문화산책 진행에 이현기입니다. 우리 조상들이 남겨준 전통문화가 광복 이후 남과 북으로 나뉘어져 지금도 생성돼 오는 서울문화 평양문화의 단면들을 살펴봅니다.

TEASER: 당의 유일사상확립 10대 원칙’에 의하면 출판물에 실릴 글을 쓸 때는 언제나 수령님의 교시를 정중히 인용하고 그에 기초하여 내용을 전개하며 그와 어긋나게 글을 쓰는 일이 없어야 / 북한당국이 장마당에서 출판물을 팔거나 개인 도서관을 운영하다가 적발될 경우 본인은 법적으로 징벌하고 가족들은 모두 농촌으로 추방한다는 방침을 선포한 것으로.

지난 23일은 세계인의 독서 증진과 지적 소유권을 보호하기 위해 유네스코가 1995년 제정한 ‘세계 책의 날’입니다.

이날 전 세계 80여 개 국가에서 기념행사가 열리는 가운데 한국에서도 서울 청계광장 특설무대를 중심으로 ‘두근두근 책 속으로’라는 캐치프레이즈 아래 ‘2016년 세계 책의 날 기념행사가 열렸습니다.

책의 날과 관련해 통일문화산책 오늘은 남북한 출판물 편집, 교열에 관해 북한문화평론가 임채욱 선생과 함께 이야기 나눠보겠습니다.

책 만들기나 출판물 편집 교열에서 남북한이 특별히 차이가 난다든가 특색을 찾을 수 있습니까?

임채욱 선생: 먼저 이런 것을 명심해야 될 것 같습니다. 북한 출판물에서 오자(誤字), 즉 글자가 잘못된 것은 ‘죽음’이란 사실입니다. 다시 말해서 죽음과 연결시킬 정도로 오자를 허용 안한다는 말이지요. 오자가 나왔다면 안 할 말로 숙청 깜이지요. 그런데 사람이 하는 일에 실수가 전혀 없을 수가 있겠습니까? 신이 아닌 다음에야 실수한 모습이 드물게라도 나타나지요. 그런 실수를 찾은 게 있습니까?

임채욱 선생: 저야 찾아낸 것이 좀 있지요. 하지만 그보다 왜 북한에서는 이처럼 완벽성을 기하려고 애쓸까 하는 것을 봅시다. ‘당의 유일사상확립 10대 원칙’에 의하면 출판물에 실릴 글을 쓸 때는 언제나 수령님의 교시를 정중히 인용하고 그에 기초하여 내용을 전개하며 그와 어긋나게 글을 쓰는 일이 없어야 한다라고 돼 있죠. 글 쓸 때 뿐이 아니고 강연을 하거나 보고를 하고 토론을 할 때도 당연히 해당되는 것이지요. 그러니 글자 한 자 틀리게 할 수 없거니와 철자, 토씨 하나도 틀리면 안 되지요. 여기에서 철저한 교열, 교정의 원칙이 나온 것이고 세부적으로 자세한 집필방침이 제시돼 있으니 오자가 나온다는 것은 ‘죽음’이나 마찬가지가 되지요.

그럼 오류나 오자가 나온 게 어떤 것인지 한 번 소개해주시죠.

임채욱 선생: 사실의 오류가 있고 식자를 하다가 오자가 생겨난 것이 있겠는데, 먼저 사실의 오류를 보지요. ‘역사과학’이란 책은 북한 역사학계 대표적인 학술지인데, 이 책 1999년 제2호를 보면 천만리라는 이름이 나옵니다. 내용인즉 천만리를 비롯한 훈민정음 창제를 반대한 사람이름이 나오는데 천만리는 최만리의 잘못이지요. 한글 창제를 반대한 사람은 최만리이고 천만리도 실제 있었던 사람인데 임진왜란 때 우리나라에 와서 왜군과 싸우다가 전공을 세우고 우리나라에 귀화한 장수이지요. 천만리는 세종시대와는 150년의 시대적 간극이 있지요. 대중잡지 ‘천리마’ 1986년 5월호(p20)를 보면 심청이 몸을 던진 바다를 ‘임당수’로 표현하고 있는데 인당수가 맞지요. 천리마 1996년 3월호에는 남한노래를 소개하면서 ‘그 사람 이름도 있었건만’이라했는데 ‘잊었건만’이 맞지요. ‘그의 고향은 전라남도 옥구군’이라 하는데 전라북도를 잘못 안 것이지요. 안동군 예안면을 말하면서 ‘동부는 영양군 청가면’이라 했는데 ‘청기면’이 맞지요. 또 충청남도 아산군을 안산군이라 한 것도 있고 단애절벽을 단해절벽이라 말 한 곳도 있지요. 이 정도로 하고 활자를 잘 못 찍은 오식도 눈에 많이 띄는데 몇 가지만 보죠. ‘조선예술’ 1996년 제2호에는 목차에서 11회라 해야 할 것을 10회로 하고 있고 글쓴 필자가 목차에는 한현수고 본문에선 한형수로 된 것도 있고 ‘천리마’ 1996년 10월호 43면을 보면 경애하는 장군님께서는 뭐라 뭐라 한 다음 안겨주시는 인류의 위대한 태양이시다에서 ‘안겨주시는’ ‘는’자가 그만 옆으로 누워버린 모습도 보입니다. 편집상 실수한 것도 보입니다. ‘남조선문제’라는 잡지 1985년 1월호를 보면 ‘령토완 정권’이란 표현이 나오는데 이건 앞뒤 문맥으로 따지면 ‘영토와 정권’이 됩니다. 본문에 있는 기사가 목차에선 빠진 경우도 있고 소제목을 달면서 (1) (2) (4)로 (3)이 빠진 것도 있고 페이지 매기는 것이 잘 못된 것도 드러 보입니다. 대충 이정도 하지요. 그런데 이것은 내가 보기에는 한국의 출판물에서 보이는 오자, 오식에 비하면 아주 양호한 편이지요. 한국에서 발행되는 수많은 책과 잡지들을 보면 말도 안 되게 엉터리들이 많지요. 북한의 다락밭을 다랑밭으로 쓴 것은 또 몰라서 그렇다고 하더라도 한자를 몰라서 틀린거야 수없이 많지요. 무엇보다 성의가 없어서 오식이 난 것이 너무 많다는 것입니다.

그럼 이번에는 북한의 출판물 출판과정은 어떤지요.

임채욱 선생: 북한에서 출판물이라고 하면 신문, 잡지, 도서, 교과서, 선전선동자료, 번역서, 선전화, 지도 등의 인쇄물을 말하는데 넓게는 등사물, 타자물, 복사물도 포함하지요. 출판은 출판대상 원고를 사회적 심의와 합평회를 열면서부터 시작되지요. 사회적 심의는 해당 원고관계 전문가와 관계자를 망라하여 벌이는 심의로, 정치사상적 성격에 치중해서 검토하는 것이고 합평회는 실제 내용을 둔 검토를 말합니다. 출판을 하기 전에 반드시 정치적 검토와 실무적 검토를 거치면서 원고의 정치사상성과 과학성 그리고 정확성을 기하게 됩니다. 이 때 실무적 검토보다 당연히 정치적 검토가 우선되지요. 정치적 검토에는 원고가 당성, 인민성, 계급성에 맞는지가 검토기준이 되고 해당원고가 이론적 수준이 되는가, 독자 수준에 맞게 쓰여 졌는가도 검토하게 되는데 이때는 과학성과 진실성을 보장되도록 하고 있지요. 편집은 원고 검토가 끝나면 편집상의 레이아웃을 하는데 이걸 북한에서는 출판물편성이라고 하죠. 출판의 마지막 단계로 교정이 있게 되는데 실무적 검토가 우선되지만 이 과정에서도 마지막으로 정치사상성, 과학성을 보완할 수 있도록 하지요. 완성된 원고는 마지막 단계로 검열을 하게 되는데 틀린 곳을 고치는 것이 아니라 당의 방침대로 책이 발간되느냐 하는데 기준을 두고 있지요.

한국에선 출판이 자유롭게 되기 때문에 당국의 간섭은 없지만 대신에 질 낮은 책도 많이 출판되지요.

임채욱 선생: 사람이 실수를 하면 신은 용서한다고 합니다. 그렇다고 해서 신의 용서만 앞세우지는 않겠지만 한국 출판물은 워낙 수준이 들쑥날쑥이라 뭐라고 한마디로 말하기 어렵지요. 그렇지만 간혹 보면 정성이 모자라서 틀린 오자, 편집상의 실수 등을 흔하게 봅니다. 일일이 매거하기 힘들정도입니다.

북한 출판물 편집에서 특별히 특징으로 나타나는 것도 있습니까?

임채욱 선생: 책 출판에서 내용이야 다르지만 형식은 거의 비슷하겠지죠. 그런데 북한에서는 잡지 목차에도 필자이름과 신분, 교수, 박사니 부교수 학사니 하는 자격을 붙이는 것을 봅니다. ‘청년문학’ 2001년 8월호를 보면 목차에 필자를 비전향장기수 김동기라고 명기한 것도 보입니다. 의도적으로 밝히고 있는 것이지요. 북한잡지의 목차를 보면 이름뿐 아니고 신분상의 호칭을 밝히는 것도 특이한 점이라 하겠습니다.

북한이 당국의 허가를 받지않은 출판물들에 대해 지난 2013년에 단속에 나선 적이 있습니다. 특히 개인이 몰래 프린터를 소지하거나 해당기관들이 보유하고 있는 프린터로 불법 출판물을 복사하는 행위를 역적행위로 규정해 단속했다고 소식통들은 전한 바 있습니다. 문성휘 기자가 보도한 내용 함께 듣습니다.

문성휘 기자: 북한당국이 장마당에서 출판물을 팔거나 개인 도서관을 운영하다가 적발될 경우 본인은 법적으로 징벌하고 가족들은 모두 농촌으로 추방한다는 방침을 선포한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이는 최근 급격히 늘고 있는 불법출판물을 뿌리뽑기 위한 취한 조치라고 소식통들은 밝혔습니다. 양강도의 소식통은 “이제부터 일체 출판물들을 장마당에서 못 팔게 됐다”며 “장마당에서 책(도서)을 팔거나 집에서 도서관을 운영하다 잡힐 경우 가족들까지 모두 추방한다는 지시가 내렸다”고 말했습니다. 북한에서 최초의 출판물 거래는 ‘고난의 행군’시기 학생들의 교과서를 몰래 팔던 장사꾼들에서 비롯됐다며 하지만 최근 중국을 통해 불법 출판물들이 대량으로 들어오면서 책(출판물)장사를 금지할 수 밖에 없는 상황이 되었다고 소식통은 덧붙였습니다. 함경북도의 대학생 소식통도 “그동안 불법 알판(DVD)나 한국노래만 통제하던 사법기관들이 때늦게 불법도서 확산에 관심을 두기 시작했다”며 “이미 개인들에게 팔려나간 불법도서만 따져도 그 량이 엄청날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그는 불법적으로 유통되는 도서의 대부분이 중국 연변에서 출판되는 조선말잡지들과 소설들이라며 이런 잡지나 소설들은 따로 값을 지불하지 않아도 얻을 수 있어 밀수꾼들 속에서 ‘밑천 안 들이는 장사’로 불린다고 얘기했습니다. 그런가하면 최근까지 장마당에서 많이 팔린 불법도서들로는 ‘세계 육담집’, ‘기자활동상식’과 같은 일반 상식도서들이며 그 외 ‘인간의 한계’, ‘육식동물’, ‘아버지의 휴가’와 같은 중국 퇴폐소설들이 개인들의 프린터로 복사돼 팔렸다고 강조했습니다.

통일문화산책 함께 해주신 여러분 감사합니다. 지금까지 기획과 진행에 RFA 이현기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