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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일문화산책

통일문화산책(낙서도 문화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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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연천군 중면 마거천 인근에서 보수단체들이 북한 김정은의 사진과 인공기를 훼손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제공

여러분 안녕하십니까? 통일문화산책 진행에 이현기입니다.

우리 조상들이 남겨준 전통문화가 광복 이후 남과 북으로 나뉘어져 지금도 생성돼 오는 서울문화 평양문화의 단면들을 살펴봅니다.

TEASER: 역사적으로 보면 억압사회에서도 저항예술이 꽃피었듯이 숨어서도 표현하려는 욕구는 발동하는 것입니다. 북한같은 곳에서는 낙서도 목숨을 건 행위라서 잘 잡히지를 않지요./ 삐라는 평양을 오가는 급행열차가 지나는 포성역의 김일성초상화 밑에 붙여졌다고 말했습니다.

북한의 노동당 7차대회는 예상대로 김정은에게 당위원장이란 자리의 왕관을 씌워주고 끝났습니다. 김정은은 사업결산을 보고하는 가운데 문화분야는 전 주민을 과학기술 인재로 키우겠다는 인재강국화를 내세웠습니다. 이거야 북한으로서는 바람직한 정책방향이기도 하지요. 하지만 이색적인 사상문화와 변태적인 생활양식은 절대 받아들이지 않겠다는 선언도 했지요. 말하자면 자본주의 황색물결을 막겠다는 것은 당대회 이전이나 마찬가지로 여전한 것입니다. 저희 자유아시아방송은 올해 들어 북한 양강도 삼수군 어느 역에서 김정은을 비난하는 낙서가 발견됐다는 내부소식을 보도했는데 이런 정책이라면 정치적인 낙서는 앞으로도 나올 가능성을 지닌다고 보겠습니다.

통일문화산책 오늘은 낙서도 문화인가라는 문제를 북한문화평론가 임채욱 선생과 함께 살펴보겠습니다. 먼저 낙서란 것은 어떤 의미를 갖는 것입니까?

임채욱 선생: 낙서란 사전적으로 말하면 글자나 그림을 쓰지 말아야 할 곳에 함부로 쓰거나 그리는 행위지요. 내용은 대체로 남을 조롱하거나 욕하는 것이고 좀 낫다고 해봐야 풍자를 하는 것이지요. 그러니 낙서가 온전한 의사전달이 될 수는 없지요. 심하게 말하면 ‘욕망의 일시적인 배출구’나 ‘하수도’같은 역할을 하는 것이라고 보겠습니다. 대체로 형식은 낙서지만 내용은 욕설이지요. 어떻든 낙서는 자기를 숨기는 익명성에다가 욕설로 저항성을 표현하는 속성을 가지기에 없어질 수가 없을 거예요.

낙서를 하는 심리는 어떤 것일까요?

임채욱 선생: 자기를 표현하고 싶거나 자기를 과시하고 싶은데 잘 안될 때나 드러내놓고 하지 못할 내용일 때 글씨나 그림형태로 나타내는 것이 낙서 아닙니까. 그러니까 어떤 표현욕망을 정상적인 통로로는 할 수 없을 때 하는 표현수단이지요. 그러다보니 물론 욕설이거나 음란한 그림이 되는 것이죠. 자기표현 욕구이기 때문에 욕설이 아닌 것도 있을 수 있지요. 먼 외국에 가서 한글로 자기 이름을 써둔다든가, ‘아무게 다녀간다’같은 것은 단순히 자기과시를 하고 싶은 표현욕구라고 할 수 있겠지요.

북한처럼 감시도 심하고 주민들은 ‘하나의 가락에 천만 가락’을 맞추어야 하는 일색화사회에서 어떻게 낙서가 가능할까요?

임채욱 선생: 글쎄요? 역사적으로 보면 억압사회에서도 저항예술이 꽃피었듯이 숨어서도 표현하려는 욕구는 발동하는 것입니다. 북한같은 곳에서는 낙서도 목숨을 건 행위라서 잘 잡히지를 않지요. 이번에 북한 낙서사건은 삼수군에서만 일어난 것이 아니라 평양, 사리원, 평성, 함흥, 청진 등지에서도 비슷한 사건이 있었다는 소문도 있다니 동시다발적이라고 할 수도 있겠습니다. 낙서사건이 나면 필적으로 범인을 찾으려하기 때문에 글씨는 왼손으로 쓴다고 하는군요. 한 지역에서 낙서사건이 나면 그 지방 사람들, 가슴이야 철렁하겠지만 속으로는 공감할 수도 있겠지요.

구체적으로 어떤 낙서였나요?

임채욱 선생: 체제비판보다 수령 한 사람을 향한 것이 많다는군요. 그러니까 자연히 욕설이 되겠지요. 여유 있게 풍자적으로 묘사한 것은 없고 대개가 ‘개XX’같은 인신공격이지요. 물론 ‘김정은 타도’같은 체제전복을 표현한 것도 있고 심지어는 남조선 통치자의 명령을 기다린다는 내용도 있다고 하는군요.

낙서는 한국에서도 골치 아픈 문제라고 알고 있는데요?

임채욱 선생: 물론이지요. 한국도 말하자면 낙서천국이지요. 한국에서는 지하철 광고가 낙서처럼 보이는 것도 있는데 “X같이 느리다면 따져라”라는 것이 지하철 내에 있어서 놀랄 정도지요. 그런데 그 낙서가 종전에는 담벼락이나 뒷간, 즉 화장실이었다면 이제는 인터넷상에서 나타나는 것이지요. 그 많던 낙서들이 다 인터넷으로 옮겨간 거지요. 물론 한국에서도 담벼락이나 화장실 낙서가 없어진 거는 아니고 줄어들었다고 할까요? 인터넷 역시 뒷간이나 담벼락처럼 익명성과 저항성이 허용되니까 그 공간으로 이동만 한 것이지요.

중국의 이름 있는 산에 다녀온 많은 한국사람은 중국 명산에 새겨놓은 바위글씨들을 보면서 거대한 낙서를 봤다고 하는데, 북한의 산천에 새겨진 자연바위글씨들도 그렇게 볼 수 있을까요?

임채욱 선생: 북한 산천에는 자연바위글씨들이 아주 많지요. 백두산, 금강산, 묘향산, 칠보산 할 것없이 김일성 부자를 우상화하는 내용의 글발들, 찬양하는 노래가사들, 구호들이 눈에 띄는 바위마다 새겨져 있지요. 북한에서는 이 글씨들을 ‘기념비 서예의 한 분야’라면서 예술의 반열에 올렸는데 그게 예술이라고 보더라도 형식은 예술인데 내용은 ‘수령우상화’를 담은 것이지요. 그러니까 우리 민족 전체로 보면 낙서라고 봐도 되지요.

낙서에 좋은 낙서가 있고 나쁜 낙서가 있을까요? 한국에선 프로 낙서 꾼이 설치면서 낙서문학이니 낙서그림이 생겨났다면서요?

임채욱 선생: 글쎄요, 낙서하는 행위가 형식이라면 글씨나 그림은 내용이겠는데, 낙서를 행위로만 보자면 좋은 낙서, 나쁜 낙서가 있을까요? 다 나쁘지요. 하지만 내용이 문학적이거나 그림이 아주 높은 수준이라면 예술이라고 할 수 있겠지요. 실제 한국에선 낙서를 문학의 경지로 올린 시인도 있고 그래피티라고 해서 벽이나 화면에 스프레이로 즉흥적이고 충동적인 그림을 그리는 사람도 있지요. 외국에선 그래피티(graffiti)가 예술로 인정받고 있다고 함니다만, 한국에서는 아직까지는 그런 것까지는 아닌 것 같습니다.

그럼 북한에서 그래피티가 나타나는 것을 상상할 수 있을까요?

임채욱 선생: 그런 날은 북한에 자유가 오는 날이지요. 욕을 담은 낙서는 인간의 기본 충동이고 인권이기도 한데 공산사회가 무너진 것도 이런 기본 충동을 막아서라는 연구보고서도 있지요. 한국에선 대통령 욕을 하는 낙서가 눈에 띄지만 그냥 넘어가는 것도 다 인간의 기초적인 충동을 막지 않으려는데 있지요. 배설하는 하수도를 막으면 상수도로 오물이 넘쳐나겠지요.

북한에서 김정은 노동당 제1비서를 비난하는 낙서(삐라) 사건이 연이어 발생한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사법기관이 몇 달째 조사하고 있지만 범인의 윤곽도 잡지 못한 채 각종 루머가 확산되고 있다고 현지 소식통들은 전했습니다. 북한 내부소식 김지은 기자가 지난 3월 보도한 내용 함께 듣습니다.

김지은 기자: 북한이 김정은의 영도력을 선전하며 우상화에 박차를 가하고 있지만 김정은을 비난하는 낙서사건은 계속되고 있다는 소식입니다. 지난 3월 양강도의 한 주민소식통은 “지난 1월 1일 양강도 삼수군 포성역에서 김정은을 비하하는 낙서가 발견돼 지금까지도 필체조사가 계속되고 있다”며 “삐라는 평양을 오가는 급행열차가 지나는 포성역의 김일성초상화 밑에 붙여졌다”고 말했습니다. 소식통은 “다른 사건이라면 몰라도 김정은 비난 낙서사건은 조심스러워 이제야 전하게 되었다”면서 “설날에 발견된 낙서는 먹물 글씨였는데 ‘김정은 개새끼’라고 쓰여 있었던 것으로 알려졌다”고 밝혔습니다. 소식통은 “1월1일 포성역에는 신년행사로 많은 주민이 동원되었기 때문에 사건소식이 전국에 퍼졌다”고 자유아시아방송에 언급했습니다. “포성역은 1991년 금광개발로 인한 포성노동자구가 생기면서 새로 개통한 철도역”이라며 삼수천 기슭에 늘어선 주택과 포성중학교, 문화회관, 병원, 상점 등 문화보건시설과 상업 및 편의봉사망을 갖추고 있는 곳이라고 소식통은 덧붙였습니다. 소식통은 이어서 “삐라(낙서)가 발견된 직후인 1월 3일에는 김정은의 신년사 과제를 관철하기 위한 주민결의모임이 포성문화회관에서 있었다”며 “모임에는 천여 명의 포성노동자구 주민들이 모였다”고 설명했습니다. 소식통은 “신년결의 모임에 참가한 주민들은 ‘신년사’내용에는 관심 없고 하나같이 새해 첫날 발견된 삐라 내용에 대해 웅성거리는 분위기였다”며 “신년사를 관철하자는 충성의 결의모임이 오히려 김정은 비하낙서를 주민들 속에 널리 알리는 장으로 바뀌었다”고 말했습니다. 소식통들은 “삐라(낙서)사건이 양강도 삼수군 포성역에서만 발생한 것은 아니다”면서 “최근 평양과 사리원, 평성과 함흥, 청진 일대에서도 사법당국의 철저한 필체조사가 진행되는 것으로 보아 김정은을 비하하는 낙서사건이 곳곳에서 발생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고 강조했습니다.

통일문화산책 함께 해주신 여러분 감사합니다. 지금까지 기획과 진행에 RFA 이현기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