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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일문화산책

통일문화산책(나라길 시작점과 수준원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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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세종로 사거리와 광화문 광장 일대.
사진-연합뉴스 제공

여러분 안녕하십니까? 통일문화산책 진행에 이현기입니다. 우리 조상들이 남겨준 전통문화가 광복 이후 남과 북으로 나뉘어져 지금도 생성돼 오는 서울문화 평양문화의 단면들을 살펴봅니다.

TEASER: 한 나라에 두 개의 표준이 있을 수 없듯이 하나의 수준원점으로 통일돼야 모든 사물을 정확히 알게 되고 계량을 옳게 해서 바른 생활을 할 수 있지요.

작년 8월 북한은 남북한이 같이 쓰던 표준시를 바꿨습니다. 통일이 되면 다시 표준시도 하나로 되겠지만 국토의 시간뿐 아니라 공간 면에서도 같아져야 하겠지요? 바로 나라길 시작점과 수준원점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통일문화산책 오늘은 나라 길과 시작점 이 두 가지가 현재 어떻게 다르게 돼 있는지 북한문화평론가 임채욱 선생과 함께 살펴보겠습니다.

임채욱 선생: 나라길 시작점은 우리나라 전 도로의 기준이 되는 기점을 말하는데 남북이 다르지요. 분단 전에야 물론 서울 광화문네거리였지만 분단 후 남쪽은 그대로인데 북쪽은 평양에 새로 정했지요. 수준원점도 그러한데, 수준원점은 우리가 해발 몇 미터 할 때 그 기준이 되는 기점을 말하는데 이것도 남북한이 분단 후 달라졌지요. 남쪽은 인천 앞바다를 기준으로 삼고 북쪽은 원산 앞바다를 기준으로 삼고 있지요.

그 달라진 것을 도로기준점부터 구체적으로 설명해주시면?

임채욱 선생: 어느 나라나 한 나라의 모든 도로는 그 기준이 되는 지점이 있습니다. 그것은 도로의 길이를 재는 기준이 됩니다. 서울에서 평양까지 197㎞라고 하면 그것이 시작되는 지점이 있어야겠지요? 그게 서울에서는 광화문 네거리라는 것이고 그 광화문 네거리는 우리나라 전체 도로를 재는 기준점이 되는 것이지요. 광화문네거리에 도로원표가 설치돼 있는데 정확히는 이 도로원표가 기준이 되는 것이지요. 북한에서는 이 도로 기점 즉 나라길 시작점이 평양 김일성광장 주석단 밑을 중심축선으로 정하고 있지요. 여기에 표식비를 세워두고 있지요. 그런데 북한의 도로기점이 처음에는 대동교에서 창광산쪽으로 난 도로와 평양 제2백화점에서 인민대학습당 쪽으로 난 도로가 만나는 지점, 즉 중구역 중성동 해방산여관 마당에 있었는데 지금 이곳으로 옮겨졌지요. 1996년 김정일이 평양의 가장 중심지는 김일성 광장이고 그 광장에서는 주석단이 중심이기 때문에 그리로 옮기라고 해서 그렇게 된 것입니다.

말하자면 북한 도로의 기준점이라고 하겠는데 무슨 표식이라도 세워뒀나요?

임채욱 선생: 표식비가 있습니다. 김정일은 표식 비를 광장 어느 쪽이 아니라 중심이 되는 주석단 밑 중심위치에 세우도록 했고 그 도안도 직접 지도했다고 합니다.

수준원점이 달라진 것에 대해서도 말씀해주시지요.

임채욱 선생: 본래 우리나라 수준원점은 인천 앞바다였습니다. 하지만 바다의 어느 일정한 곳을 정하기보다는 어느 지점의 평균 해수면 높이의 평균값을 정해서 그에 해당하는 지점 육지에 수준원점을 표시하고 있지요. 그게 인천에서는 남구 용현동 인하공업전문대학이 있는 곳입니다. 이곳에 대리석 기둥으로 해발고도 26.6871m를 표시하고 수준원점으로 하고 있습니다. 북한에서는 원산 앞바다 해수면 높이를 0으로 하고 이를 철근콘크리트로 만든 기둥을 세워 표시하고 있습니다.

수준원점이 왜 바다에 세워지지 않고 육지에 세워져야 하는지요?

임채욱 선생: 해수면 높이를 측정하는데서 밀물과 썰물, 파도 등 그때그때마다 높이가 다른 바다에서 기준 수위를 정하기가 쉬운 일이 아니기 때문에 그 평균값에 해당하는 해수면 높이를 정하고 이를 육지 어느 지점을 골라 수준원점으로 삼아서 국토 높이 측정의 기준으로 정한 것이지요. 그 원점의 해발고도가 한국은 26. 6871m지요. 북한은 이보다 좀 더 높은 지점을 원점으로 정했습니다. 그래서 우리나라 산 높이가 한국과 북한에서 조금씩 다를 수 있습니다.

그런 사례가 바로 백두산이라면서요?

임채욱 선생: 한국에서는 백두산 높이가 2,744m로 알고 있지요. 하지만 북한에서는 2750m라고 합니다. 또 중국은 백두산 높이를 2,749m라고 하고 있지요. 이것은 한국, 북한, 중국이 다 수준원점을 다르게 쓰고 있기 때문입니다. 전 세계적으로도 나라마다 다르게 정하고 있지요.

나라길 시작점이 서울에서는 도로원표로 세워지고 한국 각 시군에는 다 도로원표가 있는데 개념상 어떻게 됩니까?

임채욱 선생: 나라길 시작이라고 하면 수도에만 있는 시작점으로 생각할 수 있지만, 길이란 것은 여기저기 사람 사는 곳마다 생겨나는 것이기에 길의 시작점이 수도에만 있는 것은 아니지요. 다만 수도에 있는 시작점은 전국 도로 시작의 상징성을 가지지요. 그래서 도로원표가 생길 때 서울에만 설치하지 않고 10군데에 설치한 것이지요.

처음 생긴 도로원표에 대해 설명을 좀 해주세요.

임채욱 선생: 우리나라 도로원표는 1914년 4월에 서울을 비롯해서 인천, 군산, 대구, 부산, 마산, 평양, 진남포, 원산, 청진 등 열 군데에 설치됩니다. 이때 서울은 세종로와 종로가 만나는 광화문 네거리로 되고 평양은 중구역 외성동 함구문터에 설치되지요. 분단 후 서울은 광화문 네거리를 그대로 전국도로 중심지로 하고 있지만, 북한은 도로원표가 있던 함구문, 즉 해방산여관 마당이 됩니다만 여기를 전국 도로의 기점으로 삼지요. 이것이 1996년 김일성 광장으로 바뀝니다만 이것을 북한 전 지역 도로기준점으로 삼으면서 명칭도 나라길 시작점이라 한 것이지요. 그러니까 같은 개념이나 마찬가지지요. 다시 말해서 서울의 도로원표도 나라길 시작점을 알리는 것이지요.

조선 시대에도 도로시작점이란 개념이 있었습니까?

임채욱 선생: 물론입니다. 조선 시대에는 창덕궁 돈화문이 각처로 나가는 도로의 시작점이었지요. 평양은 한양과 연결되는 길이 평양성 외성과 중성 사이에 있던 성문인 함구문에서 시작되었지요. 함구문을 통해 한양으로 가는 파발마들이 출발을 했지요. 그래서 1914년 도로원표가 설치될 때 함구문이 있던 외성동 함구문터 부근에 설치되게 된 거지요.

나라길 시작점은 통일 후 서울과 평양은 현재대로 그대로 둬도 되는 것 아닌가요?

임채욱 선생: 도시 단위 도로원표야 그대로이지만 전국 도로 출발중심이란 점에서 보면 수도의 도로원표가 나라길 시작점이 돼야 마땅하지요. 지방의 도로원표는 수도와 그 지방, 지방과 지방간의 도로 출발점에 불과하기 때문이지요.

수준원점도 반드시 하나로 통일돼야겠군요.

임채욱 선생: 그렇지요. 한 나라에 두 개의 표준이 있을 수 없듯이 하나의 수준원점으로 통일돼야 모든 사물을 정확히 알게 되고 계량을 옳게 해서 바른 생활을 할 수 있지요. 정치성보다는 어느 쪽이 합리적이냐 하는 과학성에 의해 결정돼야지요.

통일문화산책 함께 해주신 여러분 감사합니다. 지금까지 기획과 진행에 RFA 이현기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