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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일문화산책

통일문화산책(남북한 통치자의 연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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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동당 창건 70주년을 맞아 평양에서 개최한 열병식에서 김정은 국방위원회 제1위원장이 연설을 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제공

 

여러분 안녕하십니까? 통일문화산책 진행에 이현기입니다.

 

우리 조상들이 남겨준 전통문화가 광복 이후 남과 북으로 나뉘어져 지금도 생성돼 오는 서울문화 평양문화의 단면들을 살펴봅니다.

 

TEASER: 1988년 9월 8일이면 어떤 시기입니까? 한국에서 88서울올림픽이 열리려고 하던 때 아닙니까? 이때 김일성은 대남관계에서 그간의 지배적인 지위가 흔들린다는 것을 감지 했을 테지요. 그렇지만 한 나라의 최고통치자가 먹는다니 먹히다니 하는 말을 쓴다는 것이 타당합니까? 품격이 아주 떨어지는 말이라고 봅니다.

 

지난 5월 북한 노동당 7차대회에서 김정은은 3시간을 연설했다고 합니다. 이렇게 길게 연설하는 것은 북한에서 흔하다고도 하는데 이를 계기로 남북한 통치자 연설에 대해 알아보겠습니다. 통일문화산책 오늘도 북한문화평론가 임채욱 선생과 함께합니다.

 

먼저 남북한 통치자 연설에 대해 알아볼까요.

 

임채욱 선생: 이번에 김정은은 몸을 흔들면서 3시간가량 연설했다고 하는데 할아버지 김일성은 5시간을 연설한 일이 있지요. 1970년 노동당 5차대회 때인데 이때 김일성은 58살이었으니까 지금 김정은 나이보다 많았지요. 이렇게 연설이 긴 것은 사실 연설이 아니라 보고이기 때문이지요. 북한에서는 연설과 보고를 구별하고 있습니다. 보고가 성격상 좀 더 길 수밖에 없습니다.

 

연설과 보고가 다르다니 어떻게 다릅니까?

 

임채욱 선생: 네. 북한에서 보고는 해당 회의 전반에 관한 문제를 알리는 것이 목적이고, 연설은 어느 한 부분에 대한 것만 언급하는 것을 말합니다. 그래서 보고문은 대체로 긴 편입니다. 가령 당대회 보고문은 당이 이끄는 정치 전반의 문제를 언급해야 하므로 정치, 경제, 사회, 문화, 군사, 대남문제, 국제문제 등 모두에 대한 정책성과와 정책 방향을 하나하나 언급하고 있지요. 연설은 가령 석탄생산관련 행사면 석탄관계 언급만 하게 되므로 상대적으로 짧을 수 있지요.

한국에서는 기념식이나 축하행사에서 주로 축사를 하는데 그 길이가 어떤가요?

임채욱 선생: 한국에서는 대통령취임식사가 좀 긴 편이지 대체로 길다고는 할 수 없을 것 같습니다. 북한처럼 몇 시간씩 낭독하는 일은 없지요.

 

다른 나라에서도 통치자 연설이 긴가요?

 

임채욱 선생: 대체로 공산권에서는 길었지요. 근데 공산권 아닌 국가, 라틴 계통 국가에서 긴 경우

를 봅니다. 남아메리카 콜롬비아에선 대통령 연설이 2시간인데 이어 국회의장이 또 1시간 반을 한 일이 토픽으로 신문에 난 일도 있지요. 또 스페인인가 어디에서도 몇 시간을 연설한 기록이 있어요.

 

보고나 축사 길이 같은 형식 면의 연설은 그렇다 치고 내용 면에서 통치자들이 하는 연설내용에서 남북한에서 특이하거나 특징적인 면들이 있습니까?

 

임채욱 선생: 글쎄요. 작년에 박근혜 대통령이 기자회견에서 통일문제에 대해 질문을 받자 “통일은 대박”이라고 말했죠. 기억되겠지만 이때 ‘대박’이란 용어가 통일의 효과를 적절히 표현하는 함축적인 용어라고 모두들 받아들였지만, 지식인들 가운데는 대통령이 ‘대박’이란 용어를 사용하는 것이 격에 맞지 않는다고 생각했을 수도 있을 것입니다. 왜냐하면 ‘대박’은 뭐랄까, 점잖게 쓰는 말은 아닌 것 같지요. 상스럽게 쓰는 말이지, 공식적인 자리에서 쓰기에는 좀 곤란하다는 느낌을 가졌을 것 같습니다. 이때 “시쳇말로 대박이죠”라면서 앞에 ‘시쳇말’이란 표현을 했더라면 더 좋았겠다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통치자는 말 한마디가 천금보다 더한 무게를 갖겠군요. 말의 품격이 중요한데, 그럼 북한통치자가 말한 것 중에서 특별한 언사를 찾아낼 수 있을까요?

 

임채욱 선생: 네. 김일성의 그 많은 말 중에서, 50년간 통치를 하면서 얼마나 많은 연설을 했겠습니까. 그러니까 연설만 모은 ‘김일성 저작집’이 수십 권이나 되지요. 또 대를 이어 통치한 김정일 연설은 또 얼마나 많습니까? 김정은도 벌써 상당한 양이 될 것입니다. 여기에서 그 수많은 연설 중에서 생각나는 김일성 말 한마디 하겠습니다. 1988년 9월 8일 김일성은 북한정권 창건 40돌 기념보고를 합니다. 보고니까 당연히 길겠지요. 이 보고문에서 그는 대내 정치와 관련한 정치, 경제분야 성과를 언급하고 대외정책, 대남정책도 말합니다. 이때 대남정책을 언급하면서 이런 말을 합니다. “우리나라의 북과 남에 현실적으로 서로 다른 사상과 제도가 존재하는 조건에서 조국통일을 실현하기 위하여서는 누가 누구를 먹거나 먹히우지 않고 일방이 타방을 압도하거나 압도당하지 않는 공존의 원칙에서 두 제도를 그대로 두고 두 자치정부를 연합하는 방법으로 하나의 통일국가를 형성하여야 합니다.” 1988년 9월 8일이면 어떤 시기입니까? 한국에서 88서울올림픽이 열리려고 하던 때 아닙니까? 이때 김일성은 대남관계에서 그간의 지배적인 지위가 흔들린다는 것을 감지 했을 테지요. 그렇지만 한 나라의 최고통치자가 먹는다니 먹히다니 하는 말을 쓴다는 것이 타당합니까? 품격이 아주 떨어지는 말이라고 봅니다.

 

듣고 보니 좀 그렇군요. 1988년 9월 서울올림픽이 끝난 뒤 공산권에서는 동요현상이 나타나다가 도미노처럼 하나씩 넘어지지요.

 

임채욱 선생: 네. 1990년 10월 3일이면 동독이 소멸되지요. 이런 위기감을 반영해서 김일성은 1991년 신년사에서 당시 한국 6공화국의 북방정책과 통일정책을 북조선을 흡수하는 ‘제도통일’로 보고 이렇게 말하지요. “제도를 단일화하려는 것은 그 실현방도가 어떠하든지 상대방을 먹을 것을 전제로 하는 것인 만큼 어느 측에도 접수될 수 없는 것입니다.” 이 신년사에서도 먹는다는 말을 또 썼네요. 김일성은 아까 말한 북한정권 창건 기념식에서 ‘먹는다’는 말을 한 뒤 외국기자를 만난 자리에서도 하는 등 수시로 했고 김정일도 이 말을 했습니다.

 

또 다른 특이발언들도 한 번 소개해보시죠.

 

임채욱 선생: 한국 박정희 대통령은 1970년대 어느 해 신년기자회견에서 자기는 시골출신이라서 그런지 우유를 마시면 설사를 한다고 말한 일이 있지요. 그때 누군가는 그 말은 큰 국가기밀인데 하고 생각했을 것입니다. 한 국가의 최고 통치자는 그 건강 자체가 비밀일 수 있지요. 소련수상 흐루쇼프가 유엔 연설을 하려고 뉴욕에 왔을 때 미국 정보기관에선 당연히 그 건강을 체크하려고 흐루쇼프가 묵은 호텔에서 대변을 채취했다고도 하지 않습니까. 우스갯말로 냉전 시대에 소련에서 흐루쇼프 머리가 나쁘다고 말한 소련시민이 적용할 법 조항이 없어도 국가기밀 누설죄로 처벌받았다는 이야기도 있잖습니까. 한 국가 최고 통치자 건강은 국가기밀이 될 수 있는 것이지요.

 

북한 최고통치자 연설 중에서 특이하거나 재미가 있는 것 좀 소개해 주시죠.

 

임채욱 선생: 특이한 것도 많고 재미있는 표현도 많겠지만 이런 표현 한 가지 소개하려고 합니다. “평양에 함경도 사람들이 많이 와서 살아 그런지 맛있는 평양 동치미가 점차 없어지고 있습니다. 함경도와 경상도 사람들은 짠 음식을 만드는 방법밖에 모릅니다.” 이 말은 1980년 4월 교육부문 책임일꾼협의회에서 한 연설에 나오는 것입니다. 이런 말 뿐이겠습니까? “전화는 지위가 높은 사람, 낮은 사람 할 것 없이 건방지게 해서는 안 됩니다.” 같은 것 외에도 평양 칠성공원 공사장 흙을 이렇게 처리하라, 평양-남포 사이 도로 양쪽에 파인 곳이 많은데 이렇게 수리하라, 과자를 만드는데 꼭 설탕을 넣어야 하느냐, 숭어국 끓일 때는 양념장을 넣지 말라는 말까지 합니다.

 

사소한 것까지 챙기는 지도자란 뜻으로 보면 있을 수 있는 일입니까?

 

임채욱 선생: 글셰요. 어떻든 김일성 경우 어찌나 연설을 많이 했는지, 세상살이 무슨 말인 듯 다 언급했을 것 같다 싶군요. 얼마나 많이 했는지 한 번 보니 1964년 1월에는 신년사를 포함해서 12번을 하고 있군요. 이것은 사흘에 한 번씩 한 것이 되지요. 왜 이렇게 많이 하느냐, 그건 만기친람을 하기 때문이지요. 만기친람은 아시다시피 왕조시대 임금이 온갖 정사를 친히 보살피는 것을 말하는 것 아닙니까? 바로 북한에서 통치자들이 그렇게 모든 일에 관여하면서 한마디씩 연설한다든가 하니 연설할 일이 많아지는 것이지요. 그러니 북한 선전매체에서는 “사람들이여! 이 나라 어느 공장, 농촌 어촌, 심지어는 개인의 살림살이까지 그이의 자애로운 손길이 닿지 않는 곳이 있다더냐!”라고 하고 있지요. 이 말처럼 통치자 혼자서 애쓰는데 밑에 사람은 손 놓고 있는 것 같은 현상은 사실일 것입니다. 체제가 그런 것이지요.

 

통일문화산책 함께 해주신 여러분 감사합니다. 지금까지 기획과 진행에 RFA 이현기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