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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일문화산책

통일문화산책(남북한의 항일 독립유공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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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러분 안녕하십니까? 통일문화산책 진행에 이현기입니다. 우리 조상들이 남겨준 전통문화가 광복 이후 남과 북으로 나뉘어져 지금도 생성돼 오는 서울문화 평양문화의 단면들을 살펴봅니다.

TEASER: : 연좌제는 공산주의 활동가와 연계돼서 억울한 면이 있는 대한민국 국민을 위해서 없앤 것이지 공산주의자를 위해서 없앤 것은 아니지요.

한국에서는 최근 김일성 숙부와 외숙부에게 훈장건국훈장 애국장을 수여한 사실을 두고 논란이 일었습니다. 국회에서 국가보훈처장에게 질문하기를 김일성 친척에게 훈장을 줬다는데 “그럼 북한에선 김일성 아버지와 어머니도 항일투쟁을 했다는데 이들에게는 훈장을 주지 않느냐니까” 그는 이 사안도 검토해 보겠다고 답변했다고 합니다. 한국국회에서 있었던 일을 한 번 살펴볼까요?

통일문화산책 오늘도 북한문화평론가 임채욱 선생과 함께합니다.

임채욱 선생: 국가보훈처에서 김일성의 숙부 김형권과 외숙부 강진석에게 건국훈장 애국장을 줬다고 합니다. 살아 있는 사람이 아니니까 추서를 한 것이지요. 이들에게 훈장을 준 것은 “해방 이전에 돌아가고 일제와 싸우고 독립운동의 공을 인정했기 때문에 김일성과는 별개로 훈장을 추서했다”고 답을 했지요. 그러니까 김일성과 연결시키는 연좌제를 하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이어서 김일성 아버지와 어머니에게도 훈장을 줄 것이냐는 질문에 검토해보겠다는 답을 했다지요. 아주 어이가 없는 일입니다.

그럼 김형권과 강진석은 한국의 훈장을 받을 만큼 항일독립운동을 한 것입니까?

임채욱 선생: 김일성 숙부 김형권은 열 대여섯 살 때부터 자기 형인 김형직, 즉 김일성 아버지를 도와서 만주땅 무송지역에서 국내 신파지역을 드나들면서 항일운동자들과 긴밀한 연락을 취했다고 합니다. 자기 형이 죽자 김일성, 그러니까 조카가 되는 김일성 지도 밑에 항일활동을 했다고 하는데, 나이는 김일성보다 7살이 많습니다. 스무 세살이 되던 1927년 12월에는 김일성 명령에 따라 김일성이 조직한 조그만 무슨 청년동맹을 책임지고 이끌었다고 하지요. 그리고 한 3년 뒤가 되는 1930년 7월에는 김일성이 조직했다는 조선혁명군에 가담해서 소부대를 이끌고 국내로 들어와서 경찰주재소를 습격해서 악질순사부장을 처단했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곧 잡혀서 감옥생활을 13년 했고 광복되기 전에 옥사를 한 것으로 기록되어 있습니다.

외숙부 강진석은 어떤 활동을 했습니까?

임채욱 선생: 외숙부 강진석은 김일성보다 22살이나 많은데 어릴 때부터 고향인 평안남도 대동군 칠골 마을에서 청년단을 조직해서 항일운동을 했다고 하며 3.1운동 때는 그 지역 시위대를 아버지 강돈욱과 함께 이끌었다고 하지요. 그 뒤 압록강 변 쪽으로 투쟁무대를 옮겨서 조그만 무장단체를 조직하고 그 단체원을 인솔해서 국내에 들어오면 악질지주라든가 일제 관리 등 일제 주구들을 습격해서 처단하는 행위를 했다고 해요. 그러다가 평양에서 잡혀서 감옥에서 13년 8개월을 보냈고 옥사했다고 합니다.

이런 항일투쟁을 했다면 한국에서도 훈장을 받을 수 있는 수준입니까?

임채욱 선생: 비록 이들이 일본군대나 일본경찰과 전투를 한 것이 아니더라도 이 기록대로라면 서훈대상이 될 수는 있을 것입니다. 문제는 이들이 광복 전에 죽었기 때문에 현재 북한공산정권이 들어서는데 전혀 관계가 없다고 하지만 김형권은 공산당조직을 이끌었고 재판정에서 <혁명가>를 불렀다고 하니까 공산주의자라고 볼 수 있지요. 무엇보다 북한정권에서 이들을 북한정권을 세운 혁명열사로 크게 대우하고 있기 때문에 한국정부에서 굳이 훈장을 줄 필요는 없다고 봅니다. 김형권 같은 사람은 그가 활동한 함경남도 풍산군을 김형직군으로 이름도 바꾸고 그 곳에 있는 학교이름도 김형권고등중학교, 김형권사범대학으로 바꾼다든가, 또 동상을 세우고 사적비를 세우는 등 온갖 영예를 다 주고 있지요. 한국정부에서 좌파나 진보적인 항일운동가도 서훈 대상으로 폭을 넓히는 것은 나쁘지 않지만 김일성 가계와 직접 관계되는 이런 사람들은 비록 훈장을 줄 수 있는 기준이 된다고 해도 고려대상이 돼야지요.

글쎄 연좌제를 없앴으니 김일성과 관계된다고 안 줄 명분이 없다는 것 아닙니까?

임채욱 선생: 연좌제는 공산주의 활동가와 연계돼서 억울한 면이 있는 대한민국 국민을 위해서 없앤 것이지 공산주의자를 위해서 없앤 것은 아니지요. 그런 면에서 김일성과 연좌를 시키지 않아서 훈장을 줄 수 있다는 것은 어불성설이지요.

여기에서 남북한의 항일독립유공자에 대한 관점과 대우와 관련된 사항들을 살펴보면 좋겠군요. 먼저 남북한 항일독립유공자 범위부터 알아볼까요?

임채욱 선생: 네, 남북한 다 항일독립유공자에 대한 예우는 최대로 하려고 하지요. 한국에서는 독립유공자를 순국선열과 애국지사로 구분하고 있습니다. 이 구분은 독립유공 개념상의 구분이 아니라 당사자가 살아 있느냐, 사망했느냐에 따른 것이지요. 사망했으면 순국선열이고 살아 있으면 애국지사인 것입니다. 순국선열은 일본제국주의가 우리나라 국권을 침탈하기 시작한 1895년 앞뒤로부터 1945년 8월 14일까지 국내외에서 국권침탈을 반대하거나 독립운동을 하다가 순국한 분으로 훈장을 받은 분이고 애국지사는 역시 국권침탈을 반대하거나 독립운동을 한 사실이 있는 사람으로 훈장을 받고 생존해 있는 분을 말합니다.

북한의 경우 어떻게 구분하고 있습니까?

임채욱 선생: 북한에서는 독립유공자를 혁명열사와 애국열사로 나누고 있습니다. 혁명열사는 인민대중의 자주위업을 실현하기 위해 몸 바쳐 싸우다가 희생되었거나 빛나는 생애를 마친 투사라고 합니다. 여기에서 자주위업을 실현한다는 것은 곧 항일혁명활동을 통하여 공산주의를 실현한다는 것과 같은 뜻입니다. 그러니까 공산주의 활동을 하던 도중에 사망했거나 아니면 그 뒤 북한정권 수립 뒤에 활동하다가 죽은 사람을 다 포함하는 것입니다. 또 애국열사는 조국과 인민을 위해 원쑤와 싸우다가 장렬하게 희생된 투사라고 하는데 이것은 광복에 몸 바친 것은 물론 사회주의 건설에서 활동한 사람, 통일 활동에 나선 사람을 포괄하고 있습니다.

남북한 항일독립유공자의 개념이나 범위는 약간 다른 면이 있습니다만 어떻든 이들에 대한 예우나 보훈은 잘하려고 한다고 앞에서 말씀하셨는데 구체적으로 어떤지를 알아볼까요?

임채욱 선생: 항일독립유공자에 대해서는 남북한이 다 같이 정권수립의 이념적 기둥으로 삼고 있는 점은 같지요. 하지만 이런 면은 있습니다. 북한은 정권수립전후해서 적극적으로 최대한으로 대우하고 물질적, 정신적 보상을 했다고 보겠는데 한국은 상대적으로 늦게 시작했고 미약한 면도 있습니다. 구체적으로 보면 북한은 정권이 서기 전인 1948년 8월에 ‘국립중앙해방투쟁박물관’을 먼저 세웁니다. 12년 뒤 조선혁명박물관으로 이름을 바꿉니다만 이것은 이른바 김일성 주도로 이뤄진 항일혁명 활동자료들을 통해 정권수립의 정통성을 널리 알리려는 뜻이 담겨 있지요. 그 일환으로 항일무장투쟁 역사라든가, 체험기를 우선적으로 많이 간행했지요. 그리고는 이른바 항일독립유공자라는 혁명가들의 유자녀를 위해서 교육기관을 세우는데 이것이 혁명학원이지요. 혁명학원은 가장 먼저 평양혁명가유가족학원을 세우는데 바로 지금의 만경대혁명학원이지요. 이게 정권이 수립되기 전인 1947년 10월입니다. 그 뒤 강반석혁명학원, 남포혁명학원, 해주혁명학원, 새날혁명학원 등을 각 지역에 세우지요. 무엇보다 이들 혁명학원 출신자들이 엘리트로 성장해서 북한사회 지도층으로 된다는 것입니다. 또한 북한에서는 항일독립유공자들을 위해 혁명열사릉과 애국열사릉을 조성해서 그 업적을 후대들에게 길이 전하려는 사업을 아주 잘하고 있는 셈이지요.

한국에서는 어떻게 하고 있습니까?

임채욱 선생: 한국에선 독립유공자에 보훈이 없다시피 했는데 6.25에 전상자에 대한 군사원호로부터 보훈행정이 시작돼서 이제는 항일독립유공자, 국가유공자들에 대한 보상도 이뤄지고 있지요. 주목할 것은 독립유공자 후손을 위한 자율학교도 세워서 운영하고 있지요. 그래서 이제는 독립운동을 하면 3대가 망한다는 말이 없어졌다고 볼 수 있게 되었지요.

끝으로 독립유공자 보훈정책이 갖는 의미를 다시 한 번 짚어본다면?

임채욱 선생: 빼앗겼던 나라를 찾고 세우는데 애쓴 유공자는 모두 독립유공자이고 이렇게 세워진 나라를 지키다가 희생된 유공자는 의무적 희생자라고 하겠습니다. 국방을 위한 군인이나 공직자가 거기에 해당되겠지요. 하지만 독립유공자는 군인이나 공직자처럼 의무를 가진 것도 아니지만 자발적으로 희생을 한 사람들입니다. 이들에 대한 보훈은 한다고 해도 미흡한 면이 많을 것입니다. 이번 김일성 친척 훈장을 준 것을 둔 비판 중에서 이런 것도 있습니다. 국내 항일독립운동가에겐 활동자료라든가, 서류미비를 이유로 훈장 주기를 미루는 사례도 많은데, 굳이 북한에서 영예를 실컷 안은 두 사람에게 기록의 객관성을 어느 정도 고려했는지 모르지만, 훈장을 추서한다는 것은 공정성에서도 어긋나는 일이란 것입니다.

통일문화산책 함께 해주신 여러분 감사합니다. 지금까지 기획과 진행에 RFA 이현기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