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통일문화산책

통일문화산책(남북한의 인천 상륙작전)

오디오 오디오 (다운받기)

여러분 안녕하십니까? 통일문화산책 진행에 이현기입니다. 우리 조상들이 남겨준 전통문화가 광복 이후 남과 북으로 나뉘어져 지금도 생성돼 오는 서울문화 평양문화의 단면들을 살펴봅니다.

TEASER: 북한에서는 “인천상륙작전”을 일명 “개미허리 작전”이라고 부르기도 하는데요. 탈북민들도 인천상륙작전은 누구나 알고 있는 유명한 작전인데요. / 한국에서 지난 달 개봉된 <인천상륙작전>이란 영화는 상륙작전을 성공시키기 위해 인천에 잠입시킨 첩보부대의 활약상을 그린 영화이지요.

백과사전 위키백과에 인천 상륙 작전(仁川上陸作戰, Battle of Incheon)은 한국전쟁이 한창이던 1950년 9월 15일 UN군 사령관 더글러스 맥아더의 주도로 시작된 상륙작전이다. 이 작전에는 7만 5천여 명의 병력과 261척의 해군 함정이 투입되었고, 대한민국의 서울 탈환으로 이어져 한국 전쟁 전반의 전세를 뒤집는 계기가 되었다고 설명하고 있습니다.

한국에서는 지금 인천상륙작전이란 영화가 관객 1000만 명을 향해 가고 있다고 하지요. 북한에서도 인천상륙작전을 모티브로 하는 영화가 있다고 아는데요, 인천상륙작전의 실제상황과 이를 형상화한 영화에 대해 북한문화평론가 임채욱 선생과 함께 살펴보겠습니다.

먼저 인천상륙작전을 소재로 한 남북한의 영화내용을 알아볼까요?

임채욱 선생: 네. 한국에서 지난달 개봉된 <인천상륙작전>이란 영화는 상륙작전을 성공시키기 위해 인천에 잠입시킨 첩보부대의 활약상을 그린 영화이지요. 엑스 레이(X Ray)라는 이름의 이 첩보수집 작전에 투입된 10여 명의 부대가 북한군 복장으로 인천지역에 침투해서 인천지역 방어사령관을 기만하면서 첩보를 얻고 탈출과정에서 북한군 방어진지를 파괴한다는 내용인데, 실제 사실에 영감을 받아 새롭게 구상했다는 제작배경 설명대로 어디까지나 픽션이 비중을 크게 차지하는 팩션영화라고 할 수 있습니다.

실제상황은 어떤 것이었습니까?

임채욱 선생: 실제로 맥아더 장군이 이 작전, 즉 정식명칭이 크로마이트 작전입니다만 이 작전을 위해 한국군 17명을 적진에 침투시켰는데, 이들은 인천지역 방어현황을 수집, 보고하고 팔미도 등대를 확보해서 상륙함정의 작전을 도왔지요. 이들 부대가 3주에 걸친 임무를 완수하고 철수하는 과정에서 전투가 벌어져서 임병래 해병 중위와 홍시욱 하사가 전사했지요. 영화는 해안포위치, 인민군 병력 수, 기뢰설치 상황 등의 첩보수집 활동과 임무완수 후 철수하는 과정에서 벌어지는 전투를 형상화했는데, 이들이 인천지역 북한군 수백 명과 전투해서 상륙지점을 확보하는 것으로 그려져 있지요. 그런데 상륙지점을 확보하는 이 전투는 실제와는 다른 허구인데 좀 과장되게 그려졌다고 볼 수 있어요. 실제는 임병래 중위와 홍시욱 하사가 인민군이 포위를 좁혀오는 위험한 상황에서 동료부대원들이 탈출할 수 있도록 인민군을 다른 방향으로 유인하던 총격전에서 전사했던 것입니다.

북한의 인천상륙작전 영화는 어떤 것이지요?

임채욱 선생: 북한영화는 인천상륙작전을 막아내는 월미도 주둔 포병중대의 활약상을 그린 영화로 1982년에 제작됐지요. 제목도 <월미도>로 연합군의 상륙작전을 3일만 버티고 막아내라는 상부 지시대로 대포 4문으로 미군 구축함도 격침시키고 상륙함정과 상륙군에 큰 피해를 입히면서 잘 막아내서 낙동강 전선의 인민군이 후퇴를 잘하도록 보장했다는 내용이지요.

그럼 북한영화 <월미도>도 사실에 입각해서 만들어진 영화라고 하겠죠?

임채욱 선생: 네. 실화에 바탕 했다고 말하는데 월미도 전투 상항은 좀 과장된 면이 있어요. 북한에선 이때 월미도에서 전투를 치른 일을 실제로 월미도 방어전투라고 하면서 김일성이 직접 그들이 잘 싸웠다고 말해서 역사 사실화 시켰지요. 그 전투에 대한 기록에서 대포 4문을 가진 인민군 포병중대가 9월 13부터 15일까지 3일간 유엔군 구축함 3척과 각종 함선 13척을 격침시키면서 서울지역 방어부대가 후퇴하는데 시간을 확보하게 했으며 나아가서 낙동강 전선의 인민군들이 후퇴하는데도 기여했다고 말하고 있지요. 구체적으로 첫날 9월 13일 전투에서 유엔군 구축함 2척과 소함정 2척을 격침시켰고, 9월 14일 3시간에 걸친 함포사격으로 1730여 발을 포격하고 항공기 폭격을 당하고도 월미도 포병중대의 분전으로 구축함 1척이 격침되고 상륙함 2척, 상륙정 4척이 격침된 후 물러났으며 마지막 날인 15일 유엔군은 폭격과 포격을 퍼부은 다음 월미도에 상륙하려고 접근해 왔으며 북한 월미도 포병들과 보병들은 1문 남은 대포로 마지막 포탄이 다 떨어질 때까지 잘 싸웠다면서 수백 배에 달하는 적을 상대한 전쟁사에서 유례없는 전투였다고 평가하고 있지요. 그런데 유엔군의 상륙작전은 D-day인 15일 한 번 실시됐지 13일, 14일 이틀에 걸쳐 미리 실시된 것은 아니란 것이 사실입니다. 13일과 14일은 사전 교란포격을 한 것이지요. 그리고 사흘에 걸친 전투에서 구축함 3척을 격침시켰다는데 실제는 3척에 대해 손상을 약간 입힌 것뿐이지요.

두 영화가 소재는 인천상륙작전이지만 접근방식은 전혀 다른 것이어서 같은 차원에서 단순 비교는 할 수 없겠군요.

임채욱 선생: 그렇지요. 영화스토리라든가, 연출, 연기 등을 비교할 Dimension(범위, 규모)이 다르지요. 한국 작품 <인천상륙작전>은 첩보임무를 성공적으로 수행한 뒤 철수하는 과정에서 전사하는 장학수 대위의 활약상을 그렸는데 이것은 실제 해병 중위 임병래를 모티프로 했지요. 영화에서 장학수 대위가 인민군 중좌로 가장해서 인민군방어사령관에게 접근한다는 설정은 허구이지만 영웅적으로 그리려다 보니 전투에서 용감무쌍한 장면을 연출하고 있지요. 반면에 <월미도>는 전투장면보다 병력의 열세에도 불구하고 방어임무를 완수하려는 투지와 애국심에 초점을 두고 차분한 연기를 보여 연출상 어색한 면은 없는 것 같군요. 하지만 기본적으로 팩트자체가 실제하지 않는 허위에 근거해 있지요. 그때 상륙작전에서 월미도로부터 저항을 거의 받지 않고 상륙한 것으로 기록돼 있지요. 작전상 상륙을 가장한 교란작전을 펼치던 구축함이 인민군 포격으로 약간 손상을 입은 외 미군 장교 1명이 전사하고 하사관 몇 명이 부상당한 외에는 피해가 없다고 기록돼 있지요. 이런 면에서 월미도는 영화로는 성공이라 하더라도 역사를 바르게 묘사한 작품으로는 볼 수 없지요.

혹시 인천상륙작전을 영화 외 다른 예술작품 가령 소설로 다룬 것은 없을까요?

임채욱 선생: 네, 많을 것 같은데 의외로 한국에선 소설작품이 잘 안 보여요. 영화 시나리오를 소설화한 작품이 보이긴 합니다. 북한에선 황건이란 작가가 1952년에 낸 <불타는 섬>이 있지요. 단편인데 포병중대장 이대훈 이하 중대원들의 전투장면을 그린 것으로, 주인공 이대훈은 월미도 방어전투의 실재인물로 알려져 있지요. 영화에서는 이대훈이 이태훈으로 나옵니다만 소설에서는 이대훈 실명으로 나옵니다. 아마도 이 소설을 각색한 것이 영화 <월미도>인지도 모르지요. 소설이나 영화에서 여자통신병이 나오는데 소설에선 마지막 교신임무를 다하고 최후를 마치는 것으로 그려져 있고 영화에선 끊어진 전선을 잇는 작업을 결사적으로 하면서 죽어가는 것으로 그려져 있지요.

남의 <인천상륙작전>과 북의 <월미도>에 대한 각각의 평은 어떻습니까?

임채욱 선생: <월미도>에 대한 북한의 평은 대단하죠. 월미도 전사들이 세운 애국적 공훈은 당과 수령에 대한 충성심 때문에 가능했고 그것을 형상화하면서 혁명적 낭만을 주체의 인생관과 잘 결합시키고 특색 있는 연기와 은근한 정서를 깐 음악까지 해서 전쟁을 주제로 한 영화창작에서 새로운 경지를 보여줬다고 하지요. 말하자면 주체사실주의 영화를 만들었다는 평이지요. 반면에 <인천상륙작전>은 영화평론가들의 평이 춤을 추듯이 들쭉날쭉입니다. 좌파평론가들은 이 영화가 국뽕영화라고 비판하는데 여기에서 국뽕은 나라 국과 히로뽕을 합친 말로 지나친 애국주의를 표현하려고 만든 용어지요. 따라서 좌파평론가들은 이 영화에 대해 점수를 주지 않지만, 김일성 침략으로 시작된 6.25전쟁을 반전시킨 인천상륙작전의 의미를 안다면 국뽕이고 뭐고 말할 수 없을 것이라는 것입니다. 그래서인지 영화관람객은 <인천상륙작전>에 몰리고 있는 현상을 보이고 있지요. 인천상륙작전, 크로마이트작전은 사실 얼마나 성공률이 낮은 것이었나 하면 그 작전 기획에 참여한 한 미군이 표현하기를 “우리는 생각해 낼만한 모든 자연적, 지리적 장애물 일람표를 작성했는데, 인천은 바로 그 모든 장애물을 고루 갖춘 작전지역이었다”는 것이지요. 성공률 5000분의 1이란 작전이 성공된 것이지요. 무엇보다 한국에서 제작한 <인천상륙작전>은 북한의 <월미도>처럼 팩트가 틀린 것은 아니지요. 영화 <월미도>는 월미도라는 섬을 벗어나지 않는 영화지만, <인천상륙작전>은 인천, 북한최고사령부, 인천시내, 도꼬 유엔군사령부가 등장하는 영화로 상식적으로 보면 리얼리티가 떨어지는 부분이 있지만 극적 흥미를 보태려고 전투장면을 과장한 것 외에는 팩트 자체에 틀린 것은 없다고 보겠습니다. 이런 관점에서 보면 <월미도>와 <인천상륙작전> 두 작품의 비교는 의미 없는 것이지요. 앞으로 통일 후 새로운 <인천상륙작전> 영화가 나오는 날을 상상하면서 기다려 보지요.

캐나다에서 북한 관련 소식을 전하는 장소연 기자가 캐나다에서 상영되고 있는 ‘인천상륙작전’ 영화에 대한 탈북자들의 반응을 지난 8월 23일 보도한 바 있습니다. 관련내용 함께 들으시겠습니다.

장소연: 북한에서는 “인천상륙작전”을 일명 “개미허리 작전”이라고 부르기도 하는데요. 탈북민들도 인천상륙작전은 누구나 알고 있는 유명한 작전인데요. 인천상륙작전을 막아낸 해안 포병들을 다룬 북한 영화 “월미도”는 북한에서 가장 유명한 영화 중의 하나이고 이 영화의 주제가인 “나는 알았네”는 북한 사람이면 모르는 사람이 없을 정도로 모든 북한주민들 속에서 사랑받고 있는 노래입니다. 북한에서 무력부 군관이었던 캐나다에 거주하고 있는 탈북민 김석일 씨는 영화 “월미도”에서 북한은 해안포병들이 3일간이나 맥아더의 5만 대군을 막아냈다고 선전하고 있는데 실제로는 정확히 14시간을 견지했다며 이는 북한의 비밀문서고 에도 기록되어 있는 사실인데 영화를 통해 사실을 날조하고 있다고 지적합니다.

김석일: 우리가 저 영화를 보면서 느껴야 할 것이 뭐냐면 일단은 자유를 위해서 그만큼 희생이 많았다는 것, 이것을 잊지 말고 봐야 하고, 북한에서는 영화 “월미도”가 김일성 우상화를 위해서 쓰였다고 봐야지요. 그러니까 북한에서 월미도가 말하는 것은 뭐냐면 조국이 바로 김일성이고 김일성이 곧 조국이라고

통일문화산책 함께 해주신 여러분 감사합니다. 지금까지 기획과 진행에 RFA 이현기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