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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일문화산책

통일문화산책(윤동주를 기리는 남북한 시인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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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러분 안녕하십니까? 통일문화산책 진행에 이현기입니다.

우리 조상들이 남겨준 전통문화가 광복 이후 남과 북으로 나뉘어져 지금도 생성돼 오는 서울문화 평양문화의 단면들을 살펴봅니다.

TEASER: 인공지능시대라지만 인간성을 지키는 마지막 보루는 시가 될 것 같다고 확신하는 사람도 시인이라 하겠습니다. 또 축구가 시와 같다고 주장하는 시인도 있습니다.

올해는 시인 윤동주 탄생 100주년입니다. 스물여덟의 짧은 생애였지만 우리나라 시단에 독특한 자취를 남겼습니다. 통일문화산책 오늘도 북한문화평론가 임채욱 선생과 함께 남북한에서 윤동주 탄생 100주년을 기념하는 행사의 이모저모를 알아봅니다.

임채욱 선생: 시인 윤동주 하면 바로 떠오르는 시 구절이 있지요?

죽는 날까지 하늘을 우러러
한줌 부끄럼이 없기를,
잎새에 이는 바람에도
나는 괴로워했다.
별을 헤는 마음으로 모든 죽어가는 것을 사랑해야지
그리고 나한테 주어진 길을 걸어가야겠다.
오늘 밤에도 별이 바람에 스치운다.

그 유명한 <서시>지요. 순수성이 느껴진다고 나 할까, 순수하게 살아가려는 내면의 의지를 읽을 수 있는 시라고 보지요. 윤동주가 일본 후꾸오까 형무소에서 눈을 감은 것이 광복되기 여섯 달 전인 2월이었습니다. 올해가 탄생 100년이므로 한국에서는 여러 가지 행사가 열릴 예정입니다. ‘서울시인협회는 1월 11일 윤동주 100년의 해’를 선포하면서 세미나를 이미 열었고 한국 문인협회는 1월 23일 윤동주 문학을 토론했고 한국작가회의도 4월 27일부터 심포지엄과 문학의 밤 행사를 하려고 합니다. 윤동주 모교인 연세대도 기념사업회를 조직하고 추모행사와 음악회를 열고 국제세미나를 열며 중국땅에 있는 윤동주 묘소와 후꾸오까를 잇는 순레길 탐방도 개최한다고 합니다. 탄생일인 12월 30일 전후해서는 더 많은 행사가 열리겠지요.

북한에서는 윤동주를 어떻게 보고 있는가요?

임채욱 선생: 매우 긍정적으로 보고 있어요. 일제식민지 통치 밑에서도 인간의 양심과 민족의 절개를 지켜간 애국적 시인의 한 사람을 보고 있지요. 식민지 청년이 가진 설음과 울분을 안고 조국의 운명을 걱정하면서 시들을 썼다고 보고 있지요.

문학적인 평가는 어떻습니까?

임채욱 선생: 윤동주의 시들은 별과 하늘과 아침과 새벽과 같은 신선한 것들을 어둠과의 대조 속에 부각시키려고 하는 방편으로 상징적 수법을 활용하는 편인데, 이것은 그가 시작활동을 한 1940년대 초를 다른 시기의 진보적 시와 연결시킨 의의가 있다고 보지요.

화제를 바꿔서 좀 진부한 질문입니다만 시인이란 어떤 사람들일까요?

임채욱 선생: 시가 어떤 것이다, 시인이란 이런 사람들이다 라고 대답하기는 어렵습니다. 하지만 이것 하나는 알고 있습니다. 죽으려고 하다가 한편의 시를 보고 마음을 고쳐먹은 사람도 있고 경영자의 외로움을 시가 달래줬다는 경우도 있지요. 인공지능시대라지만 인간성을 지키는 마지막 보루는 시가 될 것 같다고 확신하는 사람도 시인이라 하겠습니다. 또 축구가 시와 같다고 주장하는 시인도 있습니다. 야구가 산문 같다면 축구는 시처럼 명료하다는 것이지요. 산문은 기승전결 형태로 주제가 끝에 다시 언급되면서 돌아오는 것입니다. 야구에서 점수를 내려면 한 바퀴 돌아서 홈으로 돌아오는 것과도 같지요. 또 쌀로 밥을 짓는 것은 산문을 쓰는 것이 되고 쌀로 술을 빚는 것이라야 시를 쓰는 것이 된다고 주장합니다. 쌀로 밥을 짓는 것은 물리적으로 변화하지만 쌀로 술을 빚는다면 이건 화학적 변화를 가져오는 것이기에 그렇게 말하겠지요. 한국의 어떤 시인은 세상에 쓸모 없는 시는 없다고 까지 말합니다. 그래서 그는 현상모집에서 낙선한 시만 모아서 시집을 내고 있기도 합니다. 탈락한 시들 가운데서도 독자의 가슴에 와 닿는 시 한편쯤은 반드시 있을 거라 믿고 있지요. 시인은 “개인의 아픔에서 출발해 결국 시대와 역사의 고통을 노래한다”고 보는 조동일 교수의 관점이 와 닿습니다. 윤동주도 개인의 아픔을 식민지 조국의 아픔으로 승화시키려고 했던 것입니다.

윤동주묘소가 중국 땅에 있고 윤동주를 중국조선족 애국시인으로 소개되고 있다죠?

네. 중국 연변 지린성 옌볜조선족 자치주 룽징(龍井)에는 윤동주 생가가 있는데 ‘중국 조선족 애국시인 윤동주 생가’라고 표지판이 돼있습니다. 이것좀 곤란 하지요. 남북한 어느 문인단체라도 덤벼들어 바로 잡아야 할 일입니다.

일본에도 윤동주를 기리는 사람들이 많다고 들었습니다.

네. 그렇습니다. 오무라 마스오(大村益夫)라는 올해 83살된 대학교수가 있습니다. 그는 일본 학자 중에서도 윤동주 연구에서 가장 이름이 난 사람인데 한국근대문학을 공부하다가 윤동주를 접하게 됐고 이후 윤동주 연구책과 논문을 많이 내고 있는 분이지요. 중국 용정 땅에 있는 윤동주 묘소를 찾아낸 것도 이 오무라교수였습니다. 1985년 5월 용정에서 윤동주묘소를 찾아냈을 때 우리나라에서는 윤동주시인이 일본 형무소에서 옥사했는데, 중국 땅에서 일본사람이 찾아냈다니까 비애를 더 느끼게 된다는 반응이였지요. 그가 용정시내에서 차로 1시간 거리였던 야산의 공동묘지에서 산짐승이 파헤치듯 한 묘소에서 ‘시인 윤동주’라고만 새겨진 묘비를 발견했을 때 얼마나 감격스러웠겠습니까. 그는 지금도 윤동주시인이 세상을 떠난 후쿠오까 형무소 땅에 윤동주 시비를 세우려고 했던 사람이지요.

끝으로 윤동주 시와 시인으로서 윤동주는 어떻게 봐야 할까요?

윤동주 시는 순결함이 특징이 아닐까 합니다. 그는 시에서 일제에 대한 저항의식을 직접적으로 나타내는 것은 없지만 자신의 나약함을 부끄러워하고 그 부끄러움을 시로 정직하게 옮긴 시인입니다. 행동이 아니라 고뇌하면서 순결한 영혼으로 불의에 저항한 것으로 봐야 합니다. 시인으로서의 윤동주는 조심스러웠지만 나약하지는 않았다고 결론을 내릴 수 있습니다.

통일문화산책 함께 해주신 여러분 감사합니다. 지금까지 기획과 진행에 RFA 이현기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