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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일문화산책

통일문화산책(3.1운동에 대한 남북한의 평가)

만해 한용운 선생이 입적한 서울 성북구 심우장에서 3.1절을 하루 앞둔 28일 오후 열린 '3.1운동 100주년 기념사업 추진 선포식'에서 참석자들이 국기에 경례하고 있다.
만해 한용운 선생이 입적한 서울 성북구 심우장에서 3.1절을 하루 앞둔 28일 오후 열린 '3.1운동 100주년 기념사업 추진 선포식'에서 참석자들이 국기에 경례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제공

여러분 안녕하십니까? 통일문화산책 진행에 이현기입니다.

우리 조상들이 남겨준 전통문화가 광복 이후 남과 북으로 나뉘어져 지금도 생성돼 오는 서울문화 평양문화의 단면들을 살펴봅니다.

TEASER: 한국에서는 3.1운동이 일어난 날을 3.1절이라고 부릅니다. 이건 상해임시정부에서 부르던 것을 그대로 따른 것입니다. 그런데 북한은 이날을 ‘3.1인민봉기의 날’이라고 합니다.

3월은 3.1운동의 달입니다. 1919년 기미년 3월 1일에 일어난 이 거족적인 항일독립만세운동은 온 세계 사람의 이목을 모았고, 한국 사람의 거센 투쟁에 놀라서 일본도 잔학한 무단정책을 버리고 이른바 문화정책으로 바꾸게 되지요. 엊그저께 한국에서는 3.1운동 98주년 기념식을 열었는데 북한에서는 별다른 행사가 없었습니다. 보통 하루 전날 ‘3.1 인민봉기의 날’이란 이름으로 보고회 행사를 하는데 그것도 ‘꺽어지는 해’에 만 하지요. 통일문화산책 오늘도 북한문화평론가 임채욱 선생과 함께 3.1운동에 대한 평가를 남북한은 어떻게 달리 하는지를 알아봅니다.

임채욱 선생: 네. 3.1운동은 우리 백성 200만 명 이상이 참가해서 사망자 7500여명, 부상자 16000여명, 감옥에 갇힌 사람 4만 7000명이라는 대규모 항일독립운동이었습니다. 3.1운동은 규모뿐만 아니라 그것이 끼친 영향은 우리나라 역사에서 큰 변화를 가져왔습니다. 무엇보다 동포들의 가슴에 자주독립사상을 강력하게 새겨 넣었고 이 연장선에서 중국 상해에서 대한민국 임시정부를 세웠지요. 북한당국은 이 임시정부도 평가를 하지 않지만 임시정부의 활동이 없었다면 2차대전이 끝날 즈음 열린 카이로 회담이나 포스담 회담에서 우리나라 독립문제를 누가 꺼내기나 했겠습니까?

북한은 상해 임시정부를 어떻게 봅니까?

임채욱 선생: 북한은 임시정부 관계자들을 사대매국노 집단이라고 평가합니다. 임시정부를 차려놓고 애국동포들롤부터 운동자금이나 걷어들여 탕진하면서 서로 물고 뜯는 일이나 했다고 말합니다. 또 총을 들고 싸우지 않고 외교적으로만 독립을 구걸했다고 비난합니다.

이런 관점은 옳은 것입니까?

임채욱 선생: 심한 왜곡이지요. 사람 있는 곳에 대립과 갈등은 어느 정도야 있겠지요. 그런데 독립운동을 싸움으로만 합니까? 힘 있는 사람은 힘으로, 돈 있는 사람은 돈으로, 지혜 있는 사람은 지혜로 하는 것이지요. 그러니 총으로 독립운동 하는 사람도 있고 외교로 독립운동을 하는 사람도 있는 것은 당연한 것입니다. 그리고 임시정부가 무력항쟁을 하지 않은 것도 아닙니다. 광복군을 조직해서 실제로 일제와 여러 곳에서 싸웠고 해방 직전에는 조국에 진공해서 일본군대와 한바탕 붙으려고 까지 했지요. 그런데 일본이 갑자기 항복하는 바람에 그 뜻을 이루지 못했지요. 윤봉길의사, 이봉창의사의 애국활동은 다 임시정부와 관계되는 항일활동 이였지요. 임시정부 사람들은 바람과 이슬을 무릅쓰고 한데서 먹고 자면서 광복을 위해 애썼던 사람들이었습니다. 물론 임시정부만이 아니라 수많은 항일독립운동 단체들 활동도 우리 광복에 큰 몫을 했지요. 하지만 임시정부란 이름으로 활동한 그 중심 되는 공적이 있었기에 중국 국민당정부도 미국, 영국, 소련정부에 한국 독립문제를 제기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

그럼 북한이 보는 3.1운동은 어떠하기에 행사도 크게 열지 않습니까?

임채욱 선생: 한국에서는 3.1운동이 일어난 날을 3.1절이라고 부릅니다. 이건 상해임시정부에서 부르던 것을 그대로 따른 것입니다. 그런데 북한은 이날을 ‘3.1인민봉기의 날’이라고 합니다. 명칭에서 벌써 3.1운동을 대하는 태도가 나타나지요. 우선 3.1운동을 실패한 운동이라고 봅니다. 독립선언서를 낭독한 33인을 민족대표라고 보지 않고 부르죠아 사대주의자라고 봅니다. 그리고 그들이 총으로 항쟁을 하지 않고 독립을 청원만 하는 아주 의존적 태도를 가졌다고 비난합니다. 그러니까 북한에선 3.1운동의 정신, 즉 3.1정신이란 것도 모릅니다.

3.1정신은 무엇인지요?

임채욱 선생: 3.1운동이 벌어지던 날 독립선언서를 낭독하지요. 거기에는 정의, 인도, 생존이 민족적 요구라고 밝히면서 광명정대하게 행동할 것을 주장합니다. 결국 3.1정신은 자주와 단결, 그리고 평화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이것이 바로 3.1정신입니다. 북한은 이런 숭고한 정신을 적에게 항복하는 투항주의라고 비난합니다. 그래서 북한에서 ‘3.1인민봉기의 날’ 행사를 하더라도 독립선언서 낭독은 하지 않습니다.

제가 알기에는 3.1운동 때 김일성도 참가했다고 하지요?

임채욱 선생: 북한에서 그렇게 말하고 있습니다. 8살 된 김일성은 30리 길을 걸어서 참가했고 또 연설도 했다고 말합니다. 김일성의 아버지 김형직도 만세운동을 이끌었다고 말합니다. 김형직이 가르치던 청년학생들이 평양에서 일으킨 만세운동이 전국적으로 확대됐다고 말합니다. 그러니까 시작도 서울보다 먼저 한 것이라는 것입니다. 그런 3.1운동인데도 실패했다고 말합니다. 그건 평양에서는 옳게 했는데 서울의 부르죠아 사대주의자 때문에 실패했다는 것을 부각시키려고 하는 저의 때문이지요. 3.1운동에 참가한 군중의 애국적 열기가 아무리 높아도 김일성 같은 지도자의 영도를 받지 못해서 실패했다는 것입니다.

3.1운동은 그럼 북한주장대로 실패한 것입니까?

임채욱 선생: 천만에요. 전 세계사람의 이목을 집중시켜 한국사람에 대한 인식을 새롭게 하게 했고 일본은 우리민족의 기세에 눌려 종전의 힘으로 밀어붙이던 무단정책을 문화정책으로 바꾸기로 한 것도 3.1운동이 가져온 성공의 결과지요. 무엇보다 우리 민족이 자주독립사상을 더욱 더 굳게 갖게 하는 계기를 만들어 새로운 자각으로 교육에 더욱 힘쓰고 문예운동을 일으키고 산업을 장려하게 된 것도 다 3.1운동정신이 가져온 결과입니다.

여기에서 독립선언서의 한 구절을 읊어봅니다.

“我의 固有 自由權을 護全하야 生旺의 樂을 飽享할 것이며 我의 自足한 獨創力을 發揮하야 春滿한 大界에 民族的 精華를 結紐할지로다.”

무슨 말인지 잘 알기 어렵지요? 지금의 말로 바꾸어 보면 이런 말입니다.

“우리가 본디 타고난 자유권을 지켜 풍성한 삶의 즐거움을 마음껏 누릴 것이며, 우리가 넉넉히 지닌 독창력을 발휘해서 봄기운으로 가득한 온 누리에 겨레의 뛰어남을 꽃피우리라” 이미 자유를 언급했고 이런 자유가 실현된 한국에서 기업은 꽃피게 되지요. 최근 서양의 한 교수가 한국의 번영은 정부가 이끈 것이 아니라 경제적 자유를 이해한 정주영 같은 기업인들이 적극 사업보국을 했기 때문이라는 주장을 내놓아서 주목 되고 있습니다. 3.1독립선언서에 이미 자유권을 내세웠으니, 멀리 내다 본 지혜가 아닙니까? 이런 자유가 북한에서는 아직도 차례지지 못하고 있는 것 아닙니까?

통일문화산책 함께 해주신 여러분 감사합니다. 지금까지 기획과 진행에 RFA 이현기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