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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일문화산책

통일문화산책(한반도 첫 통일국가에 대한 관점)

2016 경주 신라사대계 발간 보고회
2016 경주 신라사대계 발간 보고회
사진-경상북도청 홈페이지

여러분 안녕하십니까? 통일문화산책 진행에 이현기입니다.

우리 조상들이 남겨준 전통문화가 광복 이후 남과 북으로 나뉘어져 지금도 생성돼 오는 서울문화 평양문화의 단면들을 살펴봅니다.

TEASER: 이번에 발간된 신라사대계는 모두 30권으로 돼 있는데 신라사 전공학자 외에 우리나라 고대사를 전공한 학자들도 합세해서 136명이 참여했다고 합니다.

지난 연말 한국에서 ‘신라사대계’라는 큰 역사책이 발간됐습니다. 그런데 ‘신라사대계’ 책 발간 주체가 정부기관이나 대학이 아니고 경상북도가 주관했는데 관련 내용 오늘도 북한문화평론가 임채욱 선생과 함께 알아봅니다.

‘신라사대계’ 책 어떤 책인지 소개 해 주시죠.

임채욱 선생: 이번에 발간된 이 책은 모두 30권으로 돼 있는데 신라사 전공학자 외에 우리나라 고대사를 전공한 학자들도 합세해서 136명이 참여했다고 합니다. 우선 규모 면에서 대단하지요. 이 30권은 연구총서가 22권이고 자료집이 8권으로 돼 있습니다. 연구총서 22권은 총론이 1권이고 시대별로 서술한 시대사가 6권이고 통치제도, 사회구조, 산업과 경제 등 내용별로 다룬 분류사가 15권으로 돼 있습니다. 한마디로 신라의 역사와 문화에 대한 연구성과를 총 정리한 것이라고 하겠습니다.

대단하군요. 시대사에선 당연히 신라에 의한 삼국통일을 다루었을 텐데 북한의 삼국통일 관점과는 분명 다르겠지요?

임채욱 선생: 그렇지요. 당연히 신라에 의해 삼국통일이 됐고 그 과정에서 7년에 걸친 나당전쟁을 치루면서 신라는 대단히 큰 고통을 겪지만 그럼에도 불굴의 정신으로 당나라에 대항해서 드디어 당을 물리치고 삼국의 통일을 완수했다고 서술하고 있지요. 하지만 북한에서는 신라가 삼국통일을 한 뒤 고구려 유민들이 투쟁해서 발해를 세웠고 그 발해가 고려에 의해 망할 때까지 남에 신라, 북에 발해가 있었기 때문에 남북 2국 시대라고 말하지요. 더욱이 나중에는 신라 땅 안에서 후백제나 후고구려(태봉국)가 일어나서 왕건의 고려에 의해 다시 통일됐다고 말합니다. 결코 통일신라시대가 아니라는 주장이지요.

그럼 북한의 삼국통일관을 말씀해 주시죠.

임채욱 선생: 북한에서는 신라가 통일을 한 게 아니라 고려에 와서 완전한 통일이 되는 것이라고 주장하지요. 신라는 당나라 힘을 빌려서 고구려와 백제를 멸망시키는 것까지는 했지만 그게 삼국통일의 완성은 아니라는 것입니다. 백제, 고구려가 멸망한 뒤 전쟁으로 지친 신라까지 차지하려는 당나라 야욕 때문에 신라는 또다시 당나라 군대를 물리치는 전쟁을 7년 동안이나 벌여서 겨우 이깁니다. 그것도 망한 고구려 백성들이 들고 일어나서 신라를 도와 당나라 군대를 물리치는데 큰 역할을 했기 때문에 가능했다고 보지요. 당나라 군대를 물리쳤지만 압록강 북쪽의 옛 고구려 영토는 차지하지 못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 역사에 죄악을 저질렀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20년 뒤 곧 고구려 유민들이 세운 발해가 건국하니까 완전한 통일을 한 것이 아니란 논리지요.

이 논리대로라면 신라는 우리나라 역사에 큰 죄악을 저지른 것이 됩니까?

임채욱 선생: 영토라는 관점에서 보면 그런 면이 있지요. 압록강 북쪽의 고구려 영토였던 요동지역 땅을 당나라가 차지한 게 우리 국토를 좁히는 결과가 됐지요. 하지만 영토란 면에서도 고구려가 장수왕 때 국내성에서 평양으로 수도를 옮기게 되는데 이 때 이미 압록강 이북 땅은 통치권에서 많이 벗어나고 있었다고 봅니다. 장수왕은 남쪽의 다른 나라들과 가까이 하기 위해 평양으로 옮겼다고 하지만 북쪽 나라들의 힘에 밀리고 있었던 것이지요. 한국의 한 역사학자는 장수왕의 평양천도, 즉 평양으로 수도를 옮긴 것이 우리 영토를 좁히게 된 가장 큰 잘못이라고 말합니다. 그런데 신라의 삼국통일은 민족문화면에서는 아주 긍정적인 면으로 볼 수 있습니다. 신라는 삼국 중 가장 뒤떨어진 편인데 고구려, 백제가 가지고 있던 문화내용들을 후진상태이던 신라는 깡그리 수용하고 통일된 민족문화를 만들어 낼 수 있었던 것입니다. 신라는 적극적인 문화수용정책을 펼쳐서 백제의 불상양식이나 고구려의 불교사상을 잘 받아들여 융합하고 발전시킨 것은 큰 의의를 가진다고 봅니다.

자기 힘으로 완수할 수 없는 일에 다른 나라 군대를 끌어들인 것이 정당화되지 못한다는 것 아닙니까?

임채욱 선생: 당시 삼국은 언어나 문화내용에서 동일성이 약한 편이었어요. 그래서 같은 민족이라는 의식은 그렇게 강한 편이 못됐죠. 하지만 고대국가로서 세 나라는 다른 나라를 정복해서 통일국가를 이루려는 야먕을 다 가졌지요. 그래서 영토를 넓히는데 경쟁을 하다 보니 어느 한 쪽과는 동맹을 맺고 다른 쪽을 공격한다든가 했는데, 가장 후진적인 위치에 있던 신라가 외교를 잘해서 당나라와 동맹을 맺은 결과이지요. 신라는 처음에 고구려와 동맹을 맺으려고 했지요. 백제의 침략을 막기 위해서는 고구려 힘을 빌리려 했는데 고구려가 응하지 않았지요. 이에 신라로서는 고구려와 백제의 협공을 당하는 입장이 돼서 생존이 위태로웠어요. 결국 당나라와 동맹을 맺어 안전을 도모하려 한 것이지요.

삼국통일 문제는 김정일의 관심사항이라고 알려지고도 있었지요?

임채욱 선생: 신라에 의한 삼국통일을 부인하는 북한 역사학계는 사실상 김정일의 삼국사 인식에 영향 받은 면도 있다고 하겠습니다. 김정일은 김일성 대학을 다닐 때 이미 삼국통일을 다룬 논문을 썼지요. <삼국통일문제를 다시 검토할 데 대하여>인데 이 논문에서 그는 “고구려는 지난 날 우리나라 력사에서 제일 강대한 나라였습니다. 고구려는 삼국시기에 우리나라 력사 발전에서 중심적인 역할을 놀았을 뿐 아니라 그 이후 우리나라 력사 발전에 큰 영향을 준 나라였습니다.” 고구려에 대한 관점은 김일성도 김정일과 같습니다. “지난 시기 우리나라가 제일 강했던 때는 고구려 때였습니다.”란 말이나 “고구려 사람들은 슬기롭고 용맹하였을 뿐 아니라 조국방위를 위하여 충성을 다하는 것을 가장 명예로운 일로 생각하였습니다.” 이 밖에도 많지만 이 정도만 소개하는데 김정일이나 김일성은 한마디로 고구려를 편애하고 신라를 폄훼하고 있음을 볼 수 있습니다. 그리고 이러한 관점의 연장선에서 신라의 삼국통일은 국토의 남부지역의 통합에 불과하다고 평가를 아주 낮게 합니다.

이번에 발간됐다는 ‘신라사대계’는 이런 문제들을 극복하고 있습니까?

임채욱 선생: 주변국가에서 중심국가로 된 신라사가 잘 정리돼 있습니다. 무엇보다 신라의 삼국통일을 통해 우리민족의 정체성이 확립됐음을 확고하게 드러내 보이고 있습니다. 북한에서 주장하듯이 고려가 재통일을 한다는 것은 민족사적으로 볼 때 신라에 의해 1차적으로 통일된 뒤 전근대민족의 핵심인 국민 · 영토 · 언어 · 문화의 공통성이 어느 정도 완성됐기에 이 바탕 위에서 고려가 발해 유민을 흡수해서 최종 완결시킨 것으로 봐야 합니다. 즉 우리민족은 2단계에 걸쳐서 통일민족으로 형성 된 것이라고 볼 수 있는 것입니다.

통일문화산책 함께 해주신 여러분 감사합니다. 지금까지 기획과 진행에 RFA 이현기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