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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일문화산책

통일문화산책(붉은색 선호의 북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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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양 류경정주영체육관에서 열린 남북통일농구경기 모습.
평양 류경정주영체육관에서 열린 남북통일농구경기 모습.
연합뉴스 제공

 

여러분 안녕하십니까? 통일문화산책 진행에 이현기입니다.

 

우리 조상들이 남겨준 전통문화가 광복 이후 남과 북으로 나뉘어져 지금도 생성돼 오는 서울문화 평양문화의 단면들을 살펴봅니다.

 

TEASER: 북한에서 붉은 색 선호는 이른바 항일유격대 대원들이 쓴 말에서부터 왔다고 보겠습니다.

 

월드컵축구경기는 끝났습니다. 우승팀 프랑스의 파랑색 유니폼, 뢰불레와 준우승을 한 크로아티아의 국기색 무늬 유니폼이 90분간 경기장을 누볐습니다. 그간 출전국 32개국은 각기 자기나라 색깔이나 무늬가 든 유니폼으로 관중의 시선을 끌려고 했습니다. 한국 팀은 전통적인 붉은 색 유니폼을 입었었지요. 그래서 통일문화산책 오늘은 색깔과 관련해 북한문화평론가 임채욱 선생과 함께 이야기 나눕니다.

 

임채욱 선생: 네, 붉은 색 경기복을 기본으로 했지요. 이번에 한국뿐 아니라 3위를 한 벨기에, 그리고 스위스, 덴마크, 스페인, 영국 등이 빨강색을 입었고 프랑스를 위시해서 일본 등 몇 나라는 파랑색을 입었습니다. 노랑색 상의를 입은 나라는 브라질, 스웨덴, 컬럼비아 등이고 드물게는 검은색에 가까운 유니폼도 있었고 독일은 검은색 하의에 흰색 상의가 주된 유니폼 이였지요. 흰색은 모든 팀이 다 준비한 색깔이지요. 이 밖에도 아랍국가들은 녹색을 선호했지요. 이번에 아주리라고 하는 이탈리아 팀 파랑색 유니폼이 안보였고 오렌지 색갈로 유명한 네덜란드 유니폼도 볼 수 없었지요. 만일 북한팀이 출전했더라면 붉은색과 남색, 그리고 흰색이 배합된 유니폼을 입었겠지요. 북한 깃발인 남홍색오각별기 문양색깔과 같지요.

 

색채는 이처럼 한 나라를 상징적으로 나타내기도 하는데, 남북한은 그전엔 색깔전쟁이랄 수 있을 정도로 붉은 색을 둔 심리적 경쟁도 했었지요?

 

임채욱 선생: 남북한 간에 색채전쟁이랄까 하는 것이 없을 수 없지요. 주로 붉은 색을 두고 벌어진 일이지요. 최근에만 해도 평양에서 열린 남북한 농구시합에서 북한팀은 붉은색 운동복을 입고 남한팀은 파랑색 운동복을 입었는데 아마 북한팀이 붉은 색을 양보하지 않았을 것 같아요. 왜냐하면 북한에선 붉은색을 유난히 선호하고 집착하는 편이기 때문입니다.

 

그런 연유가 있을 것 같은데요?

 

임채욱 선생: 무엇보다 김일성 부자가 붉은 색을 매우 선호했지요. 선대통치자이던 김정일은 1960년대 초 자기 아버지가 제일 좋아하는 색은 붉은색이고, 꽃 중에도 붉은 꽃을 좋아하고, 깃발도 붉은 깃발을 좋아하는데, 자기도 붉은 색을 제일 좋아하고 깃발도 붉은 깃발을 좋아한다고 말했습니다. 붉은 색에는 김일성의 한 생이 어리어 있고 김정일의 혁명철학이 깃들어 있다고 주장 합니다. 그래서 주민들도 이를 닮아서 세상에서 붉은 색을 제일 좋아하게 됐다고 말합니다.

색깔이란 것은 개인적으로 좋아하는 기호색이 있을 거고 선호하는 색이 다 다를 텐데 북한에서는

 

통치자가 좋아하는 붉은색을 주민들도 좋아한다는 것 아닙니까?

 

임채욱 선생: 북한에서 붉은 색 선호는 이른바 항일유격대 대원들이 쓴 말에서부터 왔다고 보겠습니다. 그 유격대원들이란 사람들은 붉은 동무, 붉은 마음, 붉은 바람, 붉은 기, 붉은 탄알 같은 말을 썼다는데, 이로부터 ‘붉은’ 형용사가 붙은 말들, 이를테면 붉은 사상, 붉은 수도, 붉은 예술가, 붉은 교육자 같은 용어가 일상적으로 쓰이게 된 것입니다. 거기에다가 김일성은 붉은기 운동을 벌였고 김정일은 붉은기 철학을 내세웁니다. 이러니 주민들이야 붉은 색에 관련된 것은 모두 선호하게 된 것이지요. 개인적인 기호야 물론 없다고 할 수 없겠지만 표면적으로는 붉은 색을 좋아하는 체라도 하는 것이지요. 가히 붉은 색으로 상징조작을 한 것이고 색채정치를 한다고 봐야죠. 색깔이 놀라운 힘을 가지고 사람의 감정과 행동, 건강에 큰 영향력을 미치는 것을 정치에 활용하는 것입니다.

 

북한에서 붉은 색을 이용한 색채 정치는 어떤 모습이였습니까?

 

임채욱 선생: 대내적으로는 당연했고 대남면에서도 있었지요. 선대통치자 김일성은 이런 말을 했습니다. “리승만은 우리를 빨갱이라고 부릅니다. (그가 하고 싶은 대로 하라고 합시다.) 우리는 자신이 붉다는 것을 부인하지 않습니다. (우리는 검은 색도 아니며 흰색도 아닙니다.) 우리는 붉은 사람들입니다. 적들이 빨갱이이라고 몹시 무서워하면 할수록 우리의 모든 근로자들을 철두철미 붉게 만드는 것, 다시 말하면 공산주의 사상으로 무장시키는 것이 더욱 필요합니다.“(1958. 11. 20) 이 말대로 북한은 붉은 색에 의미를 부여하면서 남쪽의 붉은색 혐오감을 북돋우는 심리전을 써왔지요.

 

이런 색채정치의 대상인데도 한국에서도 붉은 색은 매우 선호되고 있지 않습니까?

 

임채욱 선생: 그거야 자연색으로서의 빨강색을 선호하는 것이지요. 한국에서도 분단 후 오랜 세월동안 가져왔던 붉은 색에 대한 기피나 혐오감을 덜어내고 선호하는 색깔로 받아들이고 있지요. 물론 자연색으로서의 빨강색이야 다 좋아하지요. 자연색으로서의 빨강색은 밝은 색이고 다른 색보다 눈길을 많이 끄는 색채죠. 태양, 불, 생명, 사랑, 정열, 쾌활을 나타내는 색깔이지요. 동양에서는 힘과 권위의 상징이지요. 서양미술에선 빨강색을 숭고함을 표현한 화가(미국 바넷 뉴먼)도 있고 열정과 기쁨을 표현하는 색깔로 보는 화가(프랑스 앙리 마티스)도 있지요.

 

한국에서 붉은 색을 기피하고 혐오한 현상은 어떻게 나타났습니까?

 

임채욱 선생: 붉은 색을 혐오했다기 보다 기피한 셈이지요. 광복 후 한때 홍백전이라고 해서 초등학교 운동회 때도 홍군과 백군이 편을 갈랐는데 언제부터인가 청군과 백군으로 갈라졌지요. 붉은 색을 피하려는 현상이었죠. 5공시절 어느 지방 교육감은 학교 교기 중에서 붉은 색 교기는 자극적인 색깔이라 안 좋다면서 바꾸라고 지시한 일도 있었습니다. 1990년대 말 어느 지역에선 빨강색 간판을 다 바꾸라고 한 일도 있습니다. 이유는 빨강색이 도시미관을 해친다는 것이었습니다. 아마도 이때 등장한 대학생 데모의 붉은기 때문일 것입니다.  또 어떤 정부부처에서는 친절한 공무원에겐 카드에 이름을 올려서 포상을 하는데 그 색깔이 녹색이였습니다. 그때 색채조사에서 실제로 한국사람 들이 선호한 색은 검은색이나 붉은색이였어요. 그러다가 붉은 색에 대한 기피를 벗어버리게 된 계기가 옵니다. 그 계기로 이른바 레드 콤플렉스도 극복하게 됩니다.

지금은 이런 혐오감이나 기피현상, 이를테면 레드콤플렉스에서 벗어났다고 봐야지요?

임채욱 선생: 2002년 월드컵축구를 개최하면서 그런 레드 콤플렉스에서 완전히 벗어났다고 할까요? 물론 그전에도 한국축구팀은 아시아권에서도 빨강색 유니폼을 가장 선호한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한국축구팀은 대외적으로 붉은 악마, 태극전사로 불리는데 붉은 악마가 된 것은 빨강색 아래위 축구유니폼 때문입니다. 어떻든 한국축구팀이 붉은악마로 불린 후부터 빨강색 선호는 폭발적이 됩니다.

 

붉은악마로 불린 경위는 어떤 것이었습니까?

 

임채욱 선생: 그 유래는 1983년 멕시코 청소년 축구경기 때가 됩니다. 그때 한국팀이 4강에 올라가면서 빨강색 유니폼을 입고 맹렬하게 뛰는 한국팀을 한 외신기자가 붉은 악마(The Red Furies)로 묘사한 데서부터입니다. 그 이후부터 한국축구팀은 붉은 악마가 됐고 응원단도 붉은악마 응원단이 된 것입니다. 사실 그전까지는 이번 월드컵에서 3위를 한 벨기에 축구팀이 붉은악마로 불렸는데 지금은 코리아가 차지됐습니다.

 

통일문화산책 함께 해주신 여러분 감사합니다. 지금까지 기획과 진행에 RFA 이현기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