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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일문화산책

통일문화산책(남북한의 다문화사회 모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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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9일 서울 송파구 서울놀이마당에서 열린 '사랑의 송편 빚기'행사에서 다문화 주부, 주민 등이 오색 송편을 빚고 있다.
지난 19일 서울 송파구 서울놀이마당에서 열린 '사랑의 송편 빚기'행사에서 다문화 주부, 주민 등이 오색 송편을 빚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제공


여러분 안녕하십니까? 통일문화산책 진행에 이현기입니다.


우리 조상들이 남겨준 전통문화가 광복 이후 남과 북으로 나뉘어져 지금도 생성돼 오는 서울문화 평양문화의 단면들을 살펴봅니다.


TEASER: 화교가 우리나라에 살기 시작한 것은 130년이 넘습니다


지난 6월 미국 트럼프대통령과 북한 김정은 위원장이 만난 싱가포르는 화교국가라고 알고 있는데 실제는 다민족국가라지요? 한국은 다민족국가는 아니지만 이제 다문화사회라는 말이 낯설지 않을 정도로 여러 민족들이 들어와 사는 나라가 돼 간다고 봅니다. 하지만 북한에는 다문화사회 현상을 볼 수 없다고 알려집니다. 그래서 오늘은 남북한의 다문화사회에 대해 북한문화평론가 임채욱 선생과 함께 이야기 나눠보겠습니다.


임채욱 선생: 그렇습니다. 싱가포르는 중국계 화교가 80%가까운 인구지만 말레이시아계 사람, 인도계 사람이 함께 사는 다민족국가입니다. 따라서 문화도 다문화국가로 볼 수 있지요. 말씀대로 한국사회는 지금 다문화사회가 돼 갑니다. 다민족국가라고 할 수는 없지만 외국인 거주자가 5%정도면 다문화사회라고 한다는데, 한국에 거주하는 외국인이 4%수준에 이르고 있다니까 얼마 안 있으면 5%수준이 되지 않을까 보입니다. 그러면 말 그대로 다문화사회가 되는 것이지요.


한국에 다문화사회가 돼 간 경위는 어떻습니까?


임채욱 선생: 한국에서 산업이 한참 팽창하던 1990년대 중반부터 노동자들 부족현상이 나타납니다. 이에 대처하려고 외국인 비숙련 노동자들을 불러들이는데 이들을 비롯해서 농촌을 중심으로 외국인 여성과의 결혼이 늘어나고 북한에서 탈북한 동포들이 들어오게 되면서 여러 문화가 섞이게 됩니다. 그전에 낯선 문화라면 그저 중국인 화교 정도만 있던데 비해서 아주 다양한 문화를 접촉하게 된 것입니다. 동남아 사람들 문화, 중국 조선족문화, 몽골족 문화, 저 중앙아시아 사람들 이스람 문화도 만날 수 있게 된 겁니다.


화교는 오래 전부터 남북한에 다 있는 존재가 아닙니까? 화교야 낯선 사람들이라고 볼 수는 없는 것 아닙니까?


임채욱 선생: 그렇긴 합니다. 화교가 우리나라에 살기 시작한 것은 130년이 넘습니다. 정확하게 말하면 1882년부터인데, 화교는 그 전보다는 줄어들었지만 지금 한국에 한 2만 5000명 정도, 북한에 1만 명 정도가 있다고 합니다. 한 때 8만 명이나 되던 때에 비해 많이 줄어든 것이지요.


8만명이나 됐습니까? 그런데 상대적으로 북한에 많은 편인 것 같은데 화교인구가 줄어든 것은 이유가 있습니까?


임채욱 선생:  1940년대 초반에는 8만 명에 이르기도 했다는 통계가 있지요. 북한에서는 김일성 통치시기에 화교가 대우를 받았습니다. 김일성이 만주 땅에서 활동할 때 도움을 준 사람 중에 중국 사람이 많았고 이들이 해방 후 북한에 들어와서 화교로 살았다고 합니다. 그전부터 있던 화교와 함께 화교로 살았지요. 지금 북한에서는 화교에 대해 표면적으로는 차별정책을 취하지는 않지만 별개의 존재로 보지 않고 북한공민들처럼 노동에도 동원되고 군대에도 가야 하지요. 10년씩이나 군대생활을 해야 하니 이를 피해서 중국으로 이주하는 경우가 늘어난 것이지요. 한국에서도 화교는 줄어들었는데 몇 가지 정책에 따라 화교 경제활동이 위축됐기 때문이라고 하지요. 1957년 무역법을 통해 화교상인의 대외무역을 막았고 1961년에는 화교가 신규로 토지를 사들이지 못하게 했습니다. 이런 저런 이유로 1972년부터는 화교인구가 줄어들기 시작했습니다.


듣건대 북한에서는 지금도 화교가 무역분야에는 활동을 많이 한다고 하더군요.


임채욱 선생: 북한에서는 화교를 오래 동안 제국주의자들로부터 박해와 천대를 받아온 존재로 보면서 중국의 독립과 번영, 부강발전을 바라고 도우려고 했던 사람들로 봤습니다. 그래서 앞에서 봤듯이 김일성 통치시기에는 화교가 우대됐고 그 후손 중에는 지금 북한 경제에 영향을 미치고 있다고 합니다. 그런 모습을 보여주는 사례로 북한 바다 어업권을 가진 사람도 있고 이른바 돈주로 돈을 많이 가지고 장마당에서 힘을 쓰는 사람도 많다는 것이지요. 북한 장마당 돈주들 절반이 화교라는 말도 있습니다. 화교들이 직접 장사를 하지 않아도 북한 사람을 내세워 물건을 대주는데 일설에는 이들 화교자본이 북한 군수산업에도 손을 뻗치고 있다고 합니다.


북한에는 다문화라고 해도 화교들의 문화 외에는 특별한 것이 없겠군요.


임채욱 선생: 화교 외 외국인 거주자가 많지 않으니 다문화사회라고 할 것도 없지요. 화교도 북한공민으로 돼 있고 한국에서처럼 그들만의 중국풍을 띈 축제를 연다든가 하는 일도 없으니 화교문화다운 모습도 보기 어렵습니다. 한국에서는 지역별로 화교축제도 엽니다. 작년 대구에서는 큰 축제를 열어 즐겼고 인천이나 부산에서도 매년 화교축제가 열립니다.


한국에서는 다문화 모습을 늘 상 보고 접할 수 있으니 말 그대로 다문화사회가 돼 가는 것이군요.


임채욱 선생: 그렇습니다. 한국에 거주하는 외국인은 줄잡아 200만 명이라 합니다. 여러 나라에서 온 외국인들 중에는 한국국적을 얻은 사람도 있겠고 얻지 않은 불법이주자도 있지요. 이들은 나름대로 자기들 축제를 열고 그들만의 문화를 향유하고 있습니다. 북한에서는 한국사회의 이런 다문화현상을 비난하고 있지요. 순수단일 민족의 나라에 잡탕문화가 섞여 들어 얼치기 문화가 형성되고 있다고 욕을 합니다. 하지만 문화인류학에서는 순수혈통 보다 여러 다른 혈통사회가 우수한 인재를 낳을 수 있는 바탕이라는 설도 주장합니다. 우리 국민들은 단일 민족성을 중시하지만 그것은 듣기 좋은 말일뿐 세상에 완전한 단일혈통의 민족은 없습니다.


다문화사회에서 요청되는 바람직한 태도는 어떤 것이 있을까요?


임채욱 선생: 외국인 이주자도 공존을 하는 존재라고 본다면 이들에 대해서 인정과 관용의 태도를 취하는 것이 중요하지요. 우선 우리 국민으로 인정하는 것이 중요하고 관용의 태도로 동화시키는 것이 필요하지요. 북한에 사는 화교 중에는 중국말을 못하는 사람이 많다고 합니다. 한국에 사는 화교들이 자기들 학교를 독자적으로 세워서 중국말을 가르치는데 비해 북한에 사는 화교들은 그게 잘 안 되는 겁니다. 북한에도 화교학교가 있긴 합니다만 중국어 과목은 중국사람이 가르치지만 나머지 다른 과목은 북한 교사가 우리말로 가르칩니다. 그러니 북한에 있는 화교 자녀들은 중국말을 아주 잘 하는 편이 못 되는 모양입니다. 독자성과 다양성을 인정해주는 것이 외국인 이주자에 대한 옳은 정책이 될 것입니다.


통일문화산책 함께 해주신 여러분 감사합니다. 지금까지 기획과 진행에 RFA 이현기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