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탈북자관련소식/북한관련

탈북자 출신 초등학교 교사의 증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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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 조선중앙통신은 지난 4월 2일 새 학년을 맞아 전국 각 학교에서 개학식이 열리고 있다고 보도했다.
북한 조선중앙통신은 지난 4월 2일 새 학년을 맞아 전국 각 학교에서 개학식이 열리고 있다고 보도했다.
연합뉴스

북한에서 37년 살면서 교육대를 졸업 초등학교 교사를 했고, 한국에 와 각고의 노력 끝에 서울에서 초등학교 교사를 하고 있는 최영주 씨가 최근 워싱턴북한선교회 초청으로 미국 워싱턴에서 와 자신이 북한에서 그리고 남한의 교육 현장에서 직접 체험한 것들을 증언하는 시간을 가졌습니다. 최 씨는 북한에는 90년대 후반 경제난 때는 교사에게 주어지는 배급도 월급도 주지 않아 공교육이 무너지는 걸 체험 했으며 그 당시 학생들 가정 방문을 가보면 배가 고파 아이들이 일어나 인사도 할 수 없었으며, 꽃제비로 장마당에 가야만 제자를 볼 수 있는 참담한 체험도 했다고 증언했습니다.


목요대담 오늘 이시간에는 탈북자 최영주 씨가 초등학교 교사로서 직접 체험한 남한과 북한의 교육현장에 대한 증언을 듣습니다.


최영주 씨는 북한에서 초등학교 교사로 있을 때, 1990년대 후반의 상황을 이렇게 증언합니다.


: 저는 북한에서 37년을 살다가 탈북을 한 최영주라고 합니다. 북한에 있을 때는 초등학교 교사로 학생들을 가르치다가 다 아시다시피 북한의 심한 경제난이 90년 후반부에 있었습니다. 그때 학생들에게 교과서를 줄 수 없었고 또 교사들한테 배급도 월급도 주지 않아서 정말 교육 현장에서 공 교육이 무너지는 그걸 실제 체험했었고, 또 학생들이 학교에 오지 않아서 가정방문을 가게 되면은 아이들이 일어나 인사할 수 없는 그런 상황, 또 엄마가 식량을 구입하기 위해서 장사를 나갔는데 들어오지 않아서 꽃제비로 장마당에 가야만 제자를 볼 수 있는 이런 삶의 현장을 체험하게 됐습니다.


최영주 씨는 먹고 살기 위해 탈북 하게 됐고, 이제는 남한에서 탈북 학생을 지도하는 교사가 됐다고 설명합니다.


: 정말 경제난 때문에 먹고 살아야겠구나! 생각하다 보니 탈북 하게 됐고, 또 미래에 대한 확신이 전혀 없었습니다. 그리고 자유라는 게 무엇인지 모르고 살았습니다. 탈북해 이제는 한국에서 초등학생들을 가르치고 있습니다. 서울의 한 초등학교에 탈북 자녀들이 많이 있습니다. 그 학생들이 학교 적응의 많은 어려움을 겪고 있고, 또 반드시 배워야 되는 공교육에서 잘 따라 배우지 못하고 중도 탈락해서 대안 교육 시설에서 검정고시를 봐 학력을 받아야 되는 이런 어려움이 있기 때문에 

그들을 학교 현장에서 가르치고 있습니다.


최영주 씨는 탈북할 때 자녀를 데리고 왔다면서, 자신은 북한에서 교사가 되기 위해 김일성과 김정일의 역사를 달달 외우고 전교 1등 할 정도로 공부했기 때문에 교단에 서게 됐지만, 하루는 아들이 집에 와 ‘삼국시대’가 뭐냐고 물었는데  몰라 당황했다고 말했습니다.


: 초등학교 5학년이 되는 아들을 데리고 왔는데 이렇게 남과 북이 교육의 차이가 있는지 몰랐어요. 자녀가 하루는 집에 와서 하는 이야기가 ‘엄마 삼국시대가 뭐지!’질문했어요. 그런데 저는 북한에서 교육대를 졸업하고 교사생활을 15년 넘게 했지만, 삼국시대가 뭔지 몰랐습니다. 그러니까 저는 70년대 교육을 받은 북한 교사로서 김일성과 김정일의 역사를 달달 외우고 정말 전교 1등을 할 정도로 공부했기 때문에 교단에 설 수가 있었지요. 그래서 삼국시대가 뭔지 역사 교과서를 봐도 이해를 할 수가 없었습니다.


최 씨는 탈북 청소년들이 겪는 어려움에 대해 설명합니다.


: 탈북 청소년들이 겪는 어려움의 첫 번째는 교과의 차이, 영어의 차이, 학교에서의 문화적 차이, 또 제도적 차이가 많기도 많지만 부모 역할의 부재, 이것이 뭐냐 면 우리 아이들이 학교에 오게 되면 북한에서 배우지 못했던 것에 대한 어려움, 또 수학이라든지, 국어의 차이가 상당합니다. 그러니까 아이들은 남한에 들어오는 순간부터 좌절감을 겪게 되고 그 좌절감을 해소 하는데 많은 시간이 필요합니다.


북한에서 온 엄마들은 중국에서 겪은 고통이 한국에서도 계속되고 또 자녀에게도 대물림 한다고 지적했습니다.


: 우리 엄마들이 중국에서 겪은 고통이, 그 트라우마가 한국생활에서 연속이다 보니까 그 영향이 자녀들에게 이어집니다. 그래서 아이들은 자신이 겪고 있는 병명이 뭣인지도 모르고 불안과 고통, 한국에서 말하는 주의력 결핍 즉 심리적 불안에 대한 약을 먹어야만 불안이 안정이 되는 증상이더라고요. 그것이 탈북가정 자녀들에게 나타나는 것으로 사회문제가 되고 있습니다.


최 씨는 북한에 교과서나 참고서 각종 교육자료가 부족해 북한 학생들이 배울 기회를 놓치는 경우가 많다고 설명합니다.


: 북한을 말씀 드린다면 남북한의 학교와 비교했을 때 북한교육이 남한과 차이가 많습니다. 학교에 가 보니까 남한에는 너무 교과서가 많고, 참고도서도 많고, 선택도 많고요. 그런데 북한에서는 선택을 배우지 못했습니다. 한국에는 비디오라든지, TV라든지, 오디오라든지 교육자료가 풍부해 본인만 열심히 하면 배울 기회와 가능성이 많습니다. 그러나 북한에는 전혀 그렇지 못 하거든요. TV도 없고, 교과서가 부족하고 학용품이 부족해서 아이들이 배울 기회를 놓치는 것이 북한의 교육 현실입니다.


최 씨는 기독교를 접했다는 이유로 어려움을 겪는 선배의 이야기를 들려줍니다.


: 기독교를 놓고 말하면 북한에 하나님을 믿는 사람들은 숨어서, 비밀리에, 몰래 기도를 할 수 밖에 없는 북한사회상의 특성이 있습니다. 제가 체험했던 것은 제가 너무도 좋아하고 사랑했던 선배가 약사였거든요. 중국에 한 전도사가 먹을 쌀과 옷을 지원하니까 중국에 나간 거지요. 북한에는 먹을 것이 없으니까 쌀을 주는 걸 받고, 또 거기 가야만 쌀을 받으니까 성경책을 접하게 된 겁니다. 그 성경책을 접하고 난 그 부모님은 하나님을 믿게 된 거지요. 그러니까 이미 북한에 해방 전부터 하나님을 믿던 가정이라 그 어머니가 성경책을 받으니까 나무 행복하고 몰래 몰래 믿다가 딸보고 그 성경책을 읽으라고 한 거에요. 딸은 엄마 시키는 데로 뭔지 모르고 성경책을 읽었는데, 그걸 자기 친구하고 이야기 했는데, 그 친구가 보위부에 신고한 거에요. 그래서 갑자기 공개재판을 하더니 그 가족들을 보위부에서 관리소로 보냈습니다. 그 당시 공개재판을 목격하면서 하나님이 그때는 뭔지도 몰랐어요. 그저 저는 미신을 믿는 것으로 알고 미신을 믿으면 저렇게 감옥에 가야 하나 했는데 그 정도로 북한에는 아직도 기독교를 믿으면, 배척해야 되고 관리소로 가야 되는 것이 북한 사회입니다.


워싱턴에 많은 기독교인들이 북한을 위해 기도하는 것에 감동 받았다면서 자신도 북한을 위해 할 수 있는 일을 찾을 것이라고 했습니다.


: 저도 하나님을 믿으면서 북한을 위해서 할 수 있는 일을 찾고 또 북한을 위해 많은 기도도 하겠습니다.


목요대담 오늘 이시간에는 탈북자 최영주 씨가 초등학교 교사로서 직접 체험한 남한과 북한의 교육현장에 대한 증언 내용으로 함께 했습니다. 지금까지 진행에 RFA 이현기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