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연재:우리역사문화의 요람-이문형

우리 역사문화의 요람(搖籃) (17)-이문형시인

우리 역사문화의 요람(搖籃)  (17)

                                    <참역사문화 운동>


                                       사용자 삽입 이미지            
                                               이 문 형(워싱턴 문인회)


   단군조선의 수도 아사달(阿斯達)

 

乃往二千載有壇君王儉立都阿斯達 開國號朝鮮與高同時

(내왕2천재 유단군왕검입도아사달 개국호조선여고동시)

 

위서(魏書)에 이르기를 <지금으로부터 2000년 전에 단군왕검이 있어 도읍을 아사달에     정하고 나라를 열어 조선이라 일컬으니 요(:)와 같은 시대라 하였다>

()와 요()에 대한 얘기는 뒤로 미루어 놓고 우선 도읍 아사달에 관해서 먼저 살펴 보자. *김종서의 <신시.단군조선사 연구>에서 발췌 간접인용

 

삼국유사 고조선 편에 전재(轉載)된 위서(魏書)의 기록 원문(原文) 중 그 일부인 위의 글 중에서 유단군왕검입도아사달(有壇君王儉立都阿斯達)의 뜻을 살펴본다.

()자는 큰 언덕아, 기슭 아자이다. 그렇다면 큰 언덕 즉 높은 언덕이 아닌 구릉을  의미하며 사()자는 이 사, 모두 사, 잠깐 사, 떨어질 사, 흴 사(白色) 등의 뜻이 있는 데 이 중 색을 나타내는 흴 사로 사용되었고 이것은 꼭 색을 나타내는 의미보다는 하얗 게 밝다로서 밝은의 의미로 사용되었다는 설명이다.

물론 희다, 하얗다는 색깔의 의미로 풀이하며 아사달을 (땅이)하얀 큰 언덕으로 해석하     여 아사(阿斯)를 백산(白山), 백두산(白頭山), 태백산(太白山)으로 연관지어 보는 학자들 도 있다. 그러나 이 학설(색으로 풀이한)이 우선 위서의 원문 풀이에서부터 문제점이 있 으며, 위 밝다는 의미로 해석하는 것이 옳다는 학설이 지배적이므로 앞서 환웅천왕이 건 국한 신시의 건국지가 백산(白山),백두산(白頭山),태백산(太白山)이 아니라는 것을 재삼 확인할 수가 있다.

()자는 땅()이라는 뜻을 가진 고대 한국어다.

햇빛이 가장 잘드는 곳을 한자로는 양지(陽地)라고 하고 천손족(天孫族)의 고유 언어의 복합어로는 양(), 햇빛이 들지않는 곳을 한자로는 음지(陰地)라하며 한자와 천손족 고유어의 복합어는 음(), 천손족 언어로는 응달이라고 한다.

아침을 드러내는 곳, 아침에 가장 해가 먼저 뜨는 곳이라는 의미가 있는 천손족의 고유 한 언어를 가장 가까운 뜻을 가진 한문으로 옮겨놓은 것이 阿斯達(아사달)이라 하며 의 미상의 한문이 곧 조양(朝陽)이니 이는 모두 아침이 가장 먼저 오는 땅 아침 햇볕 아침 햇볕이 비치는 땅을 말하는 것이다.

 

그러면 아사달(阿斯達=조양朝陽)의 위치는 어디쯤일까,

[조양은 지금의 중국 요녕성(遼寧省) 서부지역의 대릉하(大陵河) 유역에 있다.

이 조양과 인근지역인 북표(北票), 건평(建坪), 능원(凌源), 객좌(喀左), 적봉(赤峰) 등의 구릉지대는 해발 500~1000m에 이르는 준 고원지대로 그 서쪽은 해발 1000m 이상의 몽고 고원지대가 펼쳐진다. 또 이 지역의 바로 동쪽 전면과 북쪽 전면으로는 동해(東海) 만큼이나 큰 요녕성(遼寧省), 길림성(吉林省), 흑룡강성(黑龍江省)의 광활한 평원지대가 펼쳐져 있으며 그 남쪽 전면으로는 발해(渤海)를 바라보고 있다]

한편 조선의 영역을 한반도로 고정시키려는 학자(이병도)는 아사달의 달()을 산악(山 岳)의 뜻이라며 아사달을 북한의 평양으로 주장하고 있다.

그러나 평양의 지역적 특성은 동쪽으로 높은 백두대간이 막혀있어 수평선 위로 떠오르는 일출을 볼 수 없고, 한반도의 서쪽에 치우쳐 있어 아침(), 조광(朝光), 조양(朝陽), 조선(朝鮮) 등의 뜻과는 정반대의 현상이므로 합당치 않다는 것은 명확하다는 것을 인식 해야할 것이다..

위 삼국유사에서 채록하여 기록한 위서(魏書)에서는 단군왕검이 조선을 건국하면서 최초 로 아사달에 도읍을 정하였다고만 기록한 반면 <고기(古記)>에서는 1세 단군왕검이 조 선을 세우면서 평양성(平壤城)에 도읍을 정하였으며 다시 도읍을 백악산아사달(白岳山 阿斯達)로 옮겼다. 그 후에 장당경(藏唐京)으로 옮겼다가 다시 아사달로 환도하였으며 여기에서 은퇴하였다>고 기록하고 있다.

 

위 고기(古記)의 기록을 놓고 필자가 혼돈에서 눈을 뜨는데 상당한 시간을 소모하였으므 로 이를 제대로 옮길 수 있을까에 적지않은 부담을 느낀다. 그러나 해석들이 난무하는 이러한 대목들의 정리는 필연이라고 생각한다.

 

우선 위 <古書> 내용을 먼저 검토한 뒤, 평양성(平壤城)이 고유명사가 아닌 <수도><서울> 과 같은 보통명사로 사용된 그 근거를 찾아 보기로 한다.

<평양성에 도읍을 세우고(都平壤城) 처음으로 나라이름을 조선이라 칭하였다(始稱朝鮮)……. (中略)그 후 평양성으로 환도하였다. 아사달에서 은퇴하였다(隱於阿斯達)>는 뜻을 풀이 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