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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명깊은설교

세상은 악하고 인간은 약하다-와싱톤 한인교회 김영봉 목사

2012년 4월 29일 주일 설교
김 영봉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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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www.kumcgw.org/2010new/sermons/2012/sermons_042912_hvod.asp


"세상은 악하고 인간은 약하다"
(Evil Is Strong And We Are Weak)
--에베소서 6:10-13


1.

오늘로서 주기도문 연속설교를 마칩니다. 우리가 알고 있는 주기도문은 "대개 나라와 권세와 영광이 아버지께 영원히 있사옵나이다. 아멘"으로 끝이 납니다. 이 송영(doxology)에 대해서도 한 주일 묵상해 볼 수 있겠으나, 기도 자체는 여섯 번째 기도 즉 우리를 위한 세 번째 기도로 끝이 납니다.

우리를 시험에 들게 하지 마옵시고,
다만 악에서 구하옵소서.

이 기도의 의미에 대해 묵상하기 전에 먼저 몇 가지 짚고 넘어갈 것이 있습니다. 얼른 보면 자명해 보이지만, 오해와 오역의 소지가 몇 가지 있기 때문입니다.

첫째, '시험'이라고 번역된 헬라어 '페이라스모스'(peirasmos)의 의미를 따져 보아야 합니다. 이것은 '유혹'이라고 번역할 수도 있고, '시험'이라고 번역할 수도 있습니다. 영어 성경에서는 주로 '유혹'으로 번역합니다(Lead us not into temptation). '유혹'은 죄에 빠지게 하는 것을 말합니다. 반면, '시험'은 믿음을 흔드는 것을 가리킵니다. 유혹은 물론 우리의 믿음을 시험합니다. 하지만 우리의 믿음을 흔드는 것은 유혹 말고도 많이 있습니다. 시련이 시험이 되기도 하고, 의심이 시험이 되기도 합니다. 그러니 한글 번역이 영어 번역보다 잘 되었다고 할 수 있습니다.

둘째, "다만 악에서 구하옵소서"라는 구절에서도 따져 볼 것이 있습니다. '악에서'라고 번역된 헬라어는 '악한 자에게서'라고 번역할 수 있습니다. 성서학자들의 다수가 '악에서'라고 번역하기보다는 '악한 자에게서'라고 번역하는 것이 옳다고 믿습니다. 그러므로 이 기도는 "악한 행동에서 구해 주십시오"라는 뜻도 아니고, "악한 상황에서 구해 주십시오"라는 뜻도 아닙니다. '악한 자'의 손아귀에 잡히지 않게 해 달라는 뜻입니다.

그렇다면 '악한 자'는 누구를 말합니까? 예수님의 말씀과 행적을 비추어 볼 때, 그것은 사탄을 가리킵니다. 우리 말로 '악마'(devil) 혹은 '마귀'(demon)라고 번역되기도 합니다. 예수님은 하나님을 대적하여 인간을 노예로 삼고 하나님의 뜻을 방해하려는 영적 세력이 있다고 믿었습니다. '사탄', '마귀', 그리고 '악마'는 악한 영적 세력의 우두머리를 가리키는 동의어입니다. '귀신' 혹은 '악령'이라고 부르는 영적 존재들은 사탄의 지시에 따라 활동합니다. 예수님은 신화로 혹은 상징으로 혹은 비유로 이 영적 세력에 대해 말씀하신 것이 아닙니다. 그분에게 있어서 사탄과 악령은 엄연한 실재였습니다.

과학적 세계관에 완전히 설득된 현대인들은 예수님의 이 세계관을 받아들이기 어려워합니다. 또한 '마귀'니 '악마'니 '귀신'이니 하는 말들이 전설이나 동화에 많이 나오기 때문에 미개한 시절에나 가질 수 있는 믿음이라고 생각합니다. 예수님을 하나님의 아들이요 진리의 계시자라고 믿는 사람들 중에도 사탄이니 악령이니 하는 말이 나오면 외면하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그들은 이렇게 말하는 셈입니다. "예수님은 다 옳았지만, 사탄에 관해서는 착각하셨다."

여러분은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예수님은 헛것을 보셨을까요? 아니면, 세계관에 관한 한 그분은 미개한 수준에서 살고 계셨을까요? 아니면, 우리가 보지 못하는 세계를 그분이 보시고 그 세계를 계시해 주신 것일까요? 예수님의 세계관을 우리의 과학적인 세계관에 맞게 고쳐야 할까요? 아니면, 우리의 세계관을 그분의 세계관에 맞게 고쳐야 할까요? "다만 악에서 구하여 주옵소서"라는 번역을 그대로 지킨다면 별 문제가 없을 것입니다만, "다만 악한 자에게서 구하여 주옵소서"라고 번역하는 것이 더 옳다면, 우리는 이 기도를 드릴 때마다 세계관의 충돌을 경험합니다.

2.

셋째, '들게 하지 마옵시고'라는 표현에 대해서도 잠시 생각해 볼 필요가 있습니다. 이 번역은 원문의 의미를 잘 반영하고 있습니다. 새번역에서는 "우리를 시험에 들지 않게 하시고"라고 번역했는데, 이렇게 하면 원래의 의미가 손상됩니다. 이 기도에서 예수님은 마치 하나님께서 우리를 시험에 이끌어 들이는 분인 것처럼 말씀하십니다.

물론, 하나님께서 주시는 시험도 있습니다. 하나님은 아브라함에게 백살에 얻은 외아들 이삭을 번제로 바치라고 명령하셨습니다. 그것은 분명 시험이었습니다. 예수님께서 세례를 받으신 후 광야에서 40일 동안 금식하고 기도하시다가 시험을 당하셨는데, 그것도 역시 성령께서 하신 일이라고 복음서는 보도하고 있습니다(4:1-2). 하지만 시험이 모두 하나님에게서 오는 것은 아닙니다. 야고보 사도는 다음과 같이 말씀합니다.

시험을 당할 때에, 아무도 "내가 하나님께 시험을 당하고 있다"하고 말하지 마십시오. 하나님께서는 악에게 시험을 받지도 않으시고, 또 시험하지도 않으십니다. (1:13)

얼른 생각하면, 이 말씀은 시험에 대한 다른 성경 말씀과 모순되는 것처럼 보입니다. 그러나 실은 그렇지 않습니다. 이 본문에서 말하는 시험은 '유혹'을 의미합니다. 하나님께서 당신의 사랑하는 자녀들을 죄악으로 꼬여 들이실 리가 없습니다. 이런 유혹은 다른 데서 옵니다. 우리의 욕심 때문이기도 하고, 악한 영에게서 오기도 합니다. 아니, 태초에 에덴 동산에서 일어났던 그 일과 같이, 인간의 욕심과 사탄의 유혹이 결합하여 죄에 빠지게 만듭니다. 믿음의 뿌리를 흔드는 시련도 마찬가지입니다. 잘 되던 사업에 문제가 생기거나 건강하던 몸에 이상이 생기면, 사람들은 하늘을 향하여 "어쩌자구 저에게 이런 시련을 주십니까?"라고 하소연을 합니다. 하지만 하나님께서 리모컨을 작동하듯 우리에게 시련이 일어나도록 하시는 경우는 별로 없습니다.

사정이 그런데도, 예수님은 마치 모든 유혹과 시험이 하나님에게서 오는 것처럼, "우리를 시험에 들게 하지 마옵소서"라고 기도하라 하십니다. 하나님께서 모든 시험을 일어나게 하신 것은 아니지만, 그 같은 일들이 일어나는 것을 하나님께서 알고 계시지만 그대로 허락하셨기 때문입니다. 세상에서 일어나는 일 중에 하나님의 눈 바깥에서 일어나는 일은 없습니다. 어떤 일은 하나님께서 직접 일어나게 하시지만, 어떤 일은 우리의 선택에 의해서 혹은 자연 질서의 순환에 따라서 일어납니다. 때로 그 일이 우리에게 시련이 되고 유혹이 되어도 하나님은 그냥 두십니다. 처음 인간을 지으실 때 그렇게 하기로 선택하셨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인간이 로봇이나 노예가 아니라 당신의 연인이 되기를 바라셨습니다. 당신을 사랑하되 스스로의 자유로운 선택으로 그렇게 하기를 기대하셨습니다. 그래서 자유의지를 주셨습니다. 물론, 인간이 그 자유를 오용하여 잘못된 선택을 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그 위험을 감수하지 않고는 진정한 자유는 불가능하고, 또한 진정한 연인을 얻을 수 없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인간이 자유 의지로 인해 여러 종류의 시험을 당하는 것은 하나님의 창조 섭리 때문이라 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하나님은 우리가 시험을 당할 때 본체 만체 하고 멀리서 팔장을 끼고 계시지 않습니다. 그분은 지금도 강한 손을 펼치셔서 우리가 당하는 모든 유혹과 시험을 제거하실 수 있지만, 그것은 스스로 택하신 창조 원리에 위배됩니다. 그 대신, 하나님은 부드러운 음성으로 우리의 영혼을 일깨우시고 부드러운 손길로 우리를 돌보십니다. 그 음성과 그 손길이 너무 부드러워 영적으로 예민하지 않으면 그 음성은 들리지 않고 그 손길은 보이지 않습니다. 그러나 영적으로 깨어있으면 그 손길의 도움을 받아 유혹과 시험에 들지 않을 수 있습니다.

이런 까닭에 "우리를 시험에 들게 하지 마옵소서"라고 기도하는 것이 맞습니다. 이 기도는 하나님께서 우리를 시험에 이끌어 들이신다는 뜻이 아니라, 하나님께 도움을 받으면 시험에 빠지지 않을 수 있다는 뜻입니다. 풀어 쓰자면 이 기도는 이런 뜻입니다.

저희가 시험에 들만큼 영적으로 약해지지 않게 해주십시오. 하나님이 주시는 시험이 우리를 연단시킨다는 것은 알지만, 저희가 감당하지 못할 시험을 주지는 마십시오. 저희가 유혹에 빠지지 않도록 늘 깨어 있게 해 주십시오. 시험을 당하여 도움을 구할 때, 저희의 기도를 외면하지 말아 주십시오.

3.

이제야 우리는 주기도문의 여섯 번째 기도의 의미에 대해 생각할 준비가 되었습니다. 우리 자신을 위한 기도해야 할 목록의 세 번째로 이렇게 기도하라고 하신 이유가 무엇일까요? 마음 다해 이 기도를 올리다 보면, 우리에게 어떤 변화가 생길까요? 이 기도는 적어도 세 가지의 진실에 대해 우리의 영혼을 일깨워줍니다. 이 세 가지의 진실은 믿고 살아가는 데 있어서 가장 중요한 것임에도 우리가 너무도 자주, 너무도 쉽게 잊는 진실입니다.

첫째, 세상은 악하다는 진실입니다. 물론, 세상은 아름답습니다. 요즈음 운전을 하다 보면 혹은 숲속을 걷다 보면 혹은 아침 기도를 끝내고 교회 정원을 나가 보면 , 탄성이 절로 터져 나옵니다. 이 세상은 참으로 아름답습니다. 이 세상에서 살아가는 인생은 때로 즐겁습니다. 천상병 시인이 말했듯이, 우리의 삶은 때로 마치 소풍 나온 아이들의 그것처럼 행복하고 즐겁습니다. 하지만 이 아름다운 세상 안에 악이 깊이 스며 있습니다. 때로 악의 현실을 대면하는 것은 고통스러운 일입니다. 신문에 보도되는 사건 사고에 대한 기사를 읽다 보면, 역겨움에 인상을 지뿌리는 일이 한 두 번이 아닙니다.

그런데 그 악의 현실 배후에 '악한 자'가 있다는 사실을 알아야 합니다. '악한 자' 즉 사탄의 본질은 '속이는 자'입니다. 사탄의 속임수는 은밀하고도 사악합니다. 만일 우리 눈에 보이는 악이 전부라고 생각하면 속은 것입니다. 그 배후를 꿰뚫어 보아야 합니다. 그래야만 악의 본질을 제대로 파악할 수 있습니다. 사탄의 속임수에 넘어가 죄악을 자랑으로 삼고 살아가는 사람들이 이 세상에는 너무도 많습니다. 유혹은 도처에 널려있고, 악은 강합니다. 그 악한 자가 "우는 사자와 같이 삼킬 자를 찾아 두루 다니기"(벧전 5:8) 때문입니다. 사탄은 자신의 정체를 드러내지 않고 사람들을 자신의 협력자로 혹은 노예로 만드는 데 뛰어난 재간을 가지고 있습니다.

둘째, 인간은 약하다는 진실입니다. 젊은 시절, 저는 한 동안 이 기도가 너무 소극적이고 방어적이라고 느꼈습니다. "인생아, 오너라. 내가 싸워 이기겠다"고 큰 소리치던 저였기 때문에 적극적으로 시험과 유혹을 대면하여 보기 좋게 승리하고, 악과 싸워 이기기를 바랬습니다. 그렇게 하는 것이 능력 있는 믿음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러고 싶었습니다. 그러니, 예수님같은 분이 이렇게 나약한 기도를 가르치셨다는 사실이 납득이 되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나이가 들면서 인간이 얼마나 약한 존재인지를 거듭 확인하게 되었습니다. 저 자신에게서 그 진실을 거듭 확인했습니다. 그러면서 많이 겸손해졌습니다. 다른 사람의 잘못을 두고 비난하기에 민첩했던 제가 이제는 저 자신을 돌아보는 일에 더 관심을 두고 삽니다. 저 자신에게도 다른 사람들이 행하는 모든 죄와 악의 가능성이 있음을 알기 때문입니다. 한 순간이면 저의 모든 것이 와르르 무너질 정도로 약한 존재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시험에 들지 않게 해 주시기를 기도하는 것입니다. 소심하고 겁이 많아서 그러는 것이 아닙니다. 세상의 악은 강하고 나는 약하다는 사실을 알기 때문입니다.

제가 신학교에 다닐 때, 어느 기독교 월간지에서 당시 한국 교회에서 가장 잘 나가던 어느 목사님의 대담을 읽게 되었습니다. 기자가 그 목사님에게 제기한 질문 중에 이런 것이 있었습니다. "목사님은 교회도 크게 성장시키셨고 부흥집회에도 자주 다니시니, 이성적인 유혹을 많이 받으실 것 같습니다. 그런데 아직 한 번도 넘어지지 않으신 것 같습니다. 무슨 비결이 있습니까?" 그러자 그 목사님이 이렇게 대답한 것으로 기억합니다. "많지요. 늘 유혹이 따라 다닙니다. 그런데도 제가 지금까지 넘어지지 않은 비결은 단 한가지입니다. 36계 줄행랑, 도망치는 겁니다. 이성과 단 둘이 있는 자리를 무조건 피하는 겁니다." 그 목사님은 그토록 많은 영적 은사를 받으셨지만, 자신이 얼마나 약한 존재인지를 아셨던 것입니다.

셋째, 하나님은 강하다는 진실입니다. 세상은 악하고 나는 약하다는 것이 진실의 전부라면 해결책은 둘 중 하나입니다. 토굴을 파고 숨어 살거나, 세상에 자신을 맡기고 세상이 이끄는 대로 살아가는 것입니다. 하지만 악한 세상을 장악하고 있는 '악한 자'보다 더 강한 분이 계십니다. 그분이 바로 우리가 기도하는 하늘의 아버지요, 부활하신 주님이시며, 성령이십니다. 삼위일체 하나님은 창조자시요 전능자이십니다. 악한 영의 우두머리인 사탄마져도 하나님의 통치권 하에 있으며 결국 하나님 앞에 항복하게 될 것입니다. 아니, 이미 예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서 돌아가셨을 때, 악한 자의 본부가 회복할 수 없이 파괴되었습니다.

그러므로 '악한 자'가 제 아무리 강할지라도 하나님의 다스림 아래에 있는 것이며, 이 세상의 악이 아무리 심하더라도 하나님께서 결국 모든 것을 바로잡으실 것입니다. 그렇게 온 세상을 바로 잡으실 때까지, 하나님께서는 당신을 믿는 사람들을 통해서 일하십니다. 우리는 약하지만 하나님의 능력에 의지할 때 그 약함을 극복할 수 있습니다. 희망은 우리 자신에게 있지 않습니다. 하나님께 있습니다. 그분의 능력에 의지할 때, 우리는 시험에 들지 않게 되고, 시험에 든다면 그 시험을 이길 수 있으며, 그 시험에 넘어졌다 해도 '악한 자'의 노예로 전락하지 않습니다. 전능자의 능력으로 다시 일어나 하나님의 나라와 의를 위해 살아갈 수 있습니다.


4.

이렇게 본다면, 이 기도는 절대로 소극적인 기도도 아니고, 방어적인 기도도 아닙니다. 오히려 적극적인 기도이며 전투적인 기도입니다. 이 기도는 기도자로 하여금 뒤로 물러서서 안전한 곳에 숨게 하는 기도가 아니라, 떨치고 일어나 깃발을 들고 진군하게 만드는 기도입니다. 때로 유혹에 넘어져도 다시 일어나 하나님의 나라와 의를 위해 살아가게 만들기 때문입니다. 때로 시험에 흔들려도 하나님의 도우심으로 이겨내고 다시금 하나님의 나라와 의를 위해 살아가게 만들기 때문입니다. 때로 악한 자의 손에 떨어져 시련과 환난을 당해도 그 악한 자에게 항복하지 않고 하나님의 도우심으로 다시 회복되게 만들기 때문입니다.

악한 세상에서 하나님의 뜻을 따라 살려면 시험도 많고 유혹도 많으며 시련도 적지 않습니다. 악한 자 즉 사탄은 하나님의 뜻을 따라 살려는 열망이 강할수록 더욱 더 강하게 공격합니다. "죽은 개를 차는 법은 없다"는 속담이 있습니다. 하나님과 상관 없이 살며 자신의 욕심대로 사는 사람에게 사탄은 관심이 없습니다. 이미 그의 밥이 되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영적으로 깨어 있어서 하나님의 뜻을 찾고 그 뜻을 실천하려는 사람들을 사탄은 주목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기도자는 더욱 더 간절히 이 기도를 드려야 합니다. 그렇게 기도할 때 우리에게 어떤 일이 일어납니까? 오늘 읽은 본문 말씀은 이렇게 선언합니다.

여러분은 주님 안에서 그분의 힘찬 능력으로 굳세게 되십시오.
악마의 간계에 맞설 수 있도록,
하나님이 주시는 온몸을 덮는 갑옷을 입으십시오.
우리의 싸움은 인간을 적대자로 상대하는 것이 아니라,
통치자들과 권세자들과 이 어두운 세계의 지배자들과
하늘에 있는 악한 영들을 상대로 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이 주시는 무기로 완전히 무장하십시오.
그래야만 여러분이 악한 날에 이 적대자들을 대항할 수 있으며
모든 일을 끝낸 뒤에 설 수 있을 것입니다. (엡 6:10-13)

진실로 크시고 강하신 하나님을 믿고 의지하면 기도하되, 홀로 악전고투 해서는 안 됩니다. 믿음의 형제 자매들과 연대하여 진영을 짜고 악한 자를 대적해야 합니다. 그래서 "나를 시험에 들게 하지 마옵시고 다만 악한 자에게서 구하여 주옵소서"라고 기도하지 않고 "우리를 시험에 들게 하지 마옵시고 다만 우리를 악한 자에게서 구하여 주옵소서"라고 기도하는 것입니다. 내가 시험에 빠지지 않고 악한 자의 손길에서 보전되려면 나와 함께 사는 사람들이 모두 그렇게 되어야 합니다.

이런 점에서 교회는 참으로 중요합니다. 믿음 안에서 진실하게 삶을 나누는 신앙의 공동체가 필요합니다. 그 공동체 안에서 서로 기도하며 섬기며 영적으로 성장하기를 도모해야 합니다. 그렇게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한 몸이 되어 시험에 빠지지 않도록 서로를 위해 기도하며 돌보고, 시험에 빠진 사람을 보살피며, 악한 자의 손에 빠진 사람을 구해내는 일에 힘써야 합니다. 그런 공동체가 없다면, 우리는 전쟁터에 홀로 적군을 상대하고 있는 외로운 병사와 같습니다.

이럴 때, 우리는 비로소 이 세상에 널려 있는 악의 현실과 싸울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이 세상의 악을 모두 치유하시고 새 하늘과 새 땅을 이루시기 전까지 우리를 통해 이 세상의 악을 치유하기를 원하십니다. 우리는 우리 자신이 시험에 들지 않고 악한 자의 손에서 보호받는 것으로 만족해서는 안 됩니다. 끊임없이 우리 자신의 영적 안전과 성장을 위해 힘쓰면서 이 세상에 편만한 악을 줄이기 위해 힘써야 합니다. 교회로 함께 모일 때, 세상의 악은 교회의 주된 관심사가 되어야 합니다. 믿는 사람들은 자신의 가정과 직장에서 악의 현실을 감소시키기 위해서 할 일을 찾고 그 일을 이루기 위해 힘써야 합니다.


5.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지금 여러분은 어떤 상황에 있습니까? 혹시, 유혹을 직면하고 있지는 않습니까? 당신에게 유혹의 미끼를 던진 것은 당신 홀로 싸워 이길 수 없는 '악한 자'입니다. 당신이 얼마나 유혹에 약한 존재인지를 잊지 마십시오. 유혹을 느낄 때마다 "우리를 시험에 들게 하지 마옵소서"라고 간절히 기도하시기 바랍니다.

혹시 이미 유혹에 넘어가 죄악 속에 푹 빠져 있는 것은 아닙니까? 그러지 말았어야 했으나, 이미 틀렸다고 포기하지는 마시기 바랍니다. 포기하면 영영 '악한 자'의 노예가 되어 버리고, 당신은 돌이킬 수 없는 운명을 만나게 됩니다. 아직도 늦지 않았습니다. 하늘 아버지를 향해 "나를 사로잡으려는 악한 자의 손에서 구해 주옵소서"라고 기도하십시오. '악한 자'보다 더 크고 강력한 하늘 아버지께서 손을 뻗어 구해 주실 것입니다.

혹시 믿음의 뿌리까지 흔들리게 할 정도로 심각한 시련에 직면하셨습니까? 환난과 시련의 한복판에서 "하나님, 왜 저에게 이러십니까?"라고 외치다가 지쳐 이제는 "과연 하나님이 계실까?"라고 질문하고 있는 분이 계실지도 모르겠습니다. 극심한 시련을 당하다 보면 모두 다 놓아 버리고 싶은 심정이 됩니다. 이런 상황에서는 기도하려 해도 기도가 되지 않습니다. 그래서 주님께서 이 기도를 가르쳐 주신 것입니다. 예수님은 "몸소 시험을 받아서 고난을 당하셨으므로, 시험을 받는 사람들을 도우실 수 있습니다"(히 2:18). 그러니 그분을 향해 기도하시기 바랍니다. "이 환난으로 인해 시험에
들지 않게 해 주옵소서"라고 말입니다.

최근에 감당할 수 없는 시련을 당하고 계신 교우가 계십니다. 그 모습을 지켜보는 목사도 감당하기 힘들 정도이니, 본인은 얼마나 더 그렇겠습니까? 그분이 당하고 있는 시련은 보통 시험이 아닙니다. 이럴 때 기도가 제일 큰 힘이기는 하지만, 기도밖에는 할 것이 없어서 안타까운 저에게 그분은 큰 위로가 되는 말씀을 전해 주셨습니다. 이 시련을 버텨내기 위해 지난 사순절 새벽기도 설교를 처음부터 하나씩 들으며 마음을 다잡고 있다는 것입니다.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하나님의 도움이 가장 필요할 때 하나님을 떠나는지 알기에 그 교우님의 메일을 받고 저는 깊은 감사의 기도를 드렸습니다.

여러분 중에는 이 모든 이야기가 남의 이야기같은 분들도 있을 것입니다. 심각한 유혹에 직면하는 일도 없고, 믿음을 흔들 정도의 시련도 없습니다. '악한 자'는 이런 상황에서도 포기하지 않고 우리의 믿음을 흔들 기회를 찾습니다. "나는 괜찮다"고 생각하는 동안, 영적으로 무감각해지고 무덤덤해지게 만들어 버립니다. 믿음은 평안하고 안전할 때 가장 위험한 법입니다. 그래서 바울 사도는 "서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넘어지지 않도록 조심하십시오"(고전 10:12)라고 권면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안전하고 평안한 사람도 "우리를 시험에 들게 하지 마시고 다만 악한 자에게서 구하옵소서"라는 기도를 매일 드려야 합니다.

그렇게 기도하고 의지하고 힘써 노력할 때 하나님께서 우리를 지켜 주시고 구해 주시며 강하게 해 주십니다. 그렇게 하여 자신에게 갇히지 않고 하나님의 나라와 의를 위해 희생하며 헌신하게 해 주십니다. 그렇기 때문에 시험에 빠지지 않도록 힘써야 하지만, 시험에 빠진다 해도 두려워할 것이 없습니다. 두려워할 것은 오직 하나님을 등지는 것뿐입니다. 세상이 얼마나 악하며 우리가 얼마나 약한지를 알고 하나님께 의지하고 살아간다면, 설사 시험에 빠진다 해도 걱정할 것이 없습니다. 그래서 야고보 사도는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나의 형제 자매 여러분,
여러 가지 시험에 빠질 때에,
그것을 더할 나위 없는 기쁨으로 생각하십시오.
여러분은 믿음의 시련이 인내를 낳는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여러분은 인내력을 충분히 발휘하여,
조금도 부족함이 없이 완전하고 성숙한 사람이 되십시오. (1:2-4)

그러므로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여러분이 어떤 처지, 어떤 형편에 있더라도 흔들리지 말고 하늘 아버지를 의지하고, 부활하신 예수 그리스도를 주님으로 섬기며, 성령의 충만함을 구하시기 바랍니다. 하나님의 손 안에 있는 한, 그 어떤 시험도 우리를 흔들지 못할 것이며, 오히려 우리를 완전하고 성숙한 사람으로 만들어 줄 것이며, 하나님의 나라와 의를 위해 일하여 이 세상의 악을 퇴치하는 데 우리의 인생이 사용될 것입니다. 그 은혜와 축복이 저와 여러분에게 넘치기를 간절히 기도합니다.

하늘의 아버지,
저희 눈을 뜨게 하셔서
세상의 악을 통해
악한 자를 보게 하소서.
악의 현실 앞에서
저희 자신이 얼마나 나약한지 알게 하시되,
하늘 아버지께서 얼마나 강한 분이신지도
알게 하소서.
매일같이 아버지 앞에 낮아지게 하시고
매일같이 새롭게 일어나
아버지의 나라와 의를 위해 살게 하소서.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