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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008년 중국 선양(瀋陽)에서 열린 남북 첫 공동 문학잡지 '통일문학' 창간 기념행사에서 남과 북, 해외 문학인들이 행사를 마치고 기념촬영을 하는 모습.
지난 2008년 중국 선양(瀋陽)에서 열린 남북 첫 공동 문학잡지 '통일문학' 창간 기념행사에서 남과 북, 해외 문학인들이 행사를 마치고 기념촬영을 하는 모습.
연합뉴스 제공


여러분 안녕하십니까? 통일문화산책 진행에 이현기입니다.


우리 조상들이 남겨준 전통문화가 광복 이후 남과 북으로 나뉘어져 지금도 생성돼 오는 서울문화 평양문화의 단면들을 살펴봅니다.


TEASER: 북한문학에서는 서정시도 투쟁의 가치를 가져야 합니다. 시는 ‘시대를 선도하는 투쟁의 기치’가 되어야 하기 때문에 시의 서정성도 전투적 역할을 하기 위한 것이라고 규정합니다.


판문점선언 이후 남쪽 문화계에선 남북교류와 공동사업이 바로 닥칠 일처럼 기대가 높은 것 같더군요. 그래서 통일문화산책 오늘 이 시간에는 그런 기대와 문제점을 북한문화평론가 임채욱 선생과 함께 살펴 보겠습니다.


임채욱 선생: 한국 문화계에서는 기대가 높은 것 같습니다. 문학계는 올해가 월북 작가·예술인 해금 30주년을 맞아서, 그러니까 금지가 풀린 지 30년이지요, 그래서 기념학술대회도 열면서 남북한 문학교류 가능성을 점치기도 한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무용계도 남북 춤 교류를 위한 세부 프로그램을 짜는 행사를 가졌고 미술계도 북한화가들 그림을 전시하면서 미술교류를 모색한다고 합니다. 공연예술분야는 이미 한 차례 교류가 있었는데 지속적인 교류행사를 준비 중이지요. 그 가운데는 

북한 교예단과 교환공연을 희망하고 있는 서커스 단체도 있지요.


문화예술 전반에 걸친 교류나 공동사업 추진동향에 앞서서 오늘은 문학분야에 국한해서 어떤 움직임이 있는지를 알아볼까요?


임채욱 선생: 문학단체들의 움직임도 구체화되고 있겠지요. 그 가운데서 문학전공자들은 올해가 납북되고 월북한 문인들 작품이 해금된 지 30년이 되는 해라서 이를 기리는 뜻에서 납북문인이나 월북문인들에 대한 연구성과를 나누고 이를 바탕으로 한 남북한 연구교류도 조심스럽게 짚어보는 분위기 입니다. 하지만 교류를 바라고 기대하는 가운데도 북한문학을 다시 살펴보고 우리 문학 현실을 검토하다 보면 여러 가지 명암도 드러나는 것으로 보입니다.


그런 내용에 대해서 언급해 주시지요.


임채욱 선생: 첫째 북한문학은 당의 문학이란 인식을 하지요. 작가가 상상력을 자유롭게 구사하면서 창작을 한다 하더라도 그 내용은 당이 요구하는 방침을 지켜야 한다는 것이지요. 그 어떤 작품도 검열과정 없이 발표되지는 않지요. 둘째 북한문학은 주체사실주의 창작방법에 의하지 않고는 생산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주체사실주의는 사람을 중심으로 해서 그린다는 것인데, 무슨 작품이고 사람이 중심이 안 되는 게 있느냐는 의문이 나지요? 하지만 북한문학에서는 김정일 주장대로 공산주의 세계에서 통용돼 오던 사회주의적 사실주의가 사람을 바르게 그리지 못해서 김정일 선대통치자가 사람의 역할을 잘 그려내는 주체사실주의를 창안했다고 말하지요. 주체사실주의에서는 사람이 세계의 지배자이고 개조자란 것을 명확하게 잘 그리게 됐다는 주장입니다. 그게 그건데 김정일 문패로 바꿔 단 것입니다.


그럼 북한문학이 의도했던 사회주의적 사실주의는 폐기된 것입니까?


임채욱 선생: 평가절하 되지요. 그러니까 우리나라에서 사회주의적 사실주의에 따라 된 소설들, 1920년대 후반기에서 1930년대에 걸친 작품들, 이를테면 조명희의 <낙동강>, 이기영의 <고향>, 한설야의 <황혼>, 강경애의 <인간문제>, 송영의 <일체 면회를 거절하라> 같은 작품은 평가절하 되지요. 뿐만 아니라 1970년대까지 사회주의적 사실주의에 입각해서 생산된 북한의 문학작품들도 다 평가절하 되는 것입니다. 그렇게 해서라도 김일성, 김정일의 문예이론을 공식화하려는 것이지요.


또 다른 문제점이랄까, 교류에 장애가 되는 것은 어떤 것이 있을까요?


임채욱 선생: 문학작품의 주제설정이 제한적이란 면을 강조할 수 있지요. 소재는 어떤 것이 되더라도 주제가 되는 것은 정해져 있다는 것이지요. 수령을 숭배하는 주제가 아니라든가, 당 정책을 거스르는 행동을 세차게 비판하지 않는다든가, 6.25전쟁 때의 투쟁을 외면한다든가 하는 주제가 작품으로 될 수는 없는 것이지요. 그러니까 북한문학은 수령을 우상화하고, 당 정책에는 오류가 있을 수 없다는 무오류성, 노동현장의 치열한 모습, 혁명적 낙관주의, 다시 말해서 혁명에는 비극이 없다는 내용을 담은 작품만이 허용되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이런 면이 남북문학교류에 장애요소로 된다는 것이지요?


임채욱 선생: 그렇지요. 하지만 모든 일에는 명암이 있듯이 위급할 때 사람보다 수령의 초상화를 먼저 구한다는 것이 북한주민의 일반적인 행동방식인데, 최근 어떤 작품은 초상화 구한다고 주민의 희생이 있었다는 것을 은유적으로 표현해낸 것도 있고(유봉동의 열여섯집, 2017) 바다에 빠진 대원을 구출하고 자기가 희생되는 비극도 묘사되고(서른두송이의 해당화, 2016), 또 민주주의에 대한 북한주민들의 열망을 약간 읽을 수 있는 작품도 보입니다. 이런 것은 교류의 밝은 면이라고 하겠지요. 하지만 아직은 어두운 면이 더 크게 보이는 것이 사실입니다. 무엇보다 북한문학에서는 아직도 6.25전쟁 때 이야기를 서사로 하는 작품이 많다는 것은 또 다른 부분의 어두운 면입니다.


문학교류가 이뤄지려면 문학인뿐 아니라 일반주민들도 상대방 작품을 읽어야 하는데 아직 이런 분위기는 아니지요?


임채욱 선생: 그렇다고 할 수 있지요. 북한 문학작품을 쉽게 접할 수 있는 환경조성은 되지 않고 있지요. 북한에서도 남한문학을 바로 보지 못하고 있지요. 그들 이데올로기적 관점으로 해석하다 보니 남한의 민중문학을 자의적으로 해석해서 민중문학이 마치 북한체제를 미화시킨다는 듯이 평가합니다. 가령 황지우 시인의 <꽃피는 삼천리 금수강산>이라는 작품을 <삼천리 금수강산>으로 제목을 바꾼 뒤 이 작품에서 남조선 인민들의 마음이 자주적이고 창조적인 생활이 꽃피는 북녘 땅으로 줄달음쳐 온다고 묘사했다는 식입니다. 그래서 남한의 민중문학은 주체사상의 영향을 받은 것이라고 평가합니다.


필요에 따라 남한작품들을 왜곡되게 해석하고 또 소개도 하고 있군요.


임채욱 선생: 그렇지요. 필요에 따라 남한 작품들을 출판도 한 일이 있습니다. 1996년에 북한 문학

예술종합출판사는 한국 작가들 단편소설 10편을 묶어서 단행본으로 냈는데 그 제목을 <수난자의 목소리>로 했습니다. 실린 작품들은 민중문학 쪽 작품인데 <벌집사람들>(김하기), <달맞이 꽃>(김영현), <흰철쭉>(이청춘), <출행>(한문경), <아메리카 드림>(정도상) 등이 수록됐지요. 미국으로 유학 간 아내와 자식을 만나려고 미국대사관에 비자 신청을 하는 과정에서 겪는 굴욕이라든가, 다가구 주택에 사는 무명작가이야기, 운동권대학생, 여공, 노점상 등 하층민의 고달픈 삶을 그린 작품들입니다. 북한에서는 황석영의 <장길산>도 출판한 일이 있지만 이런 것은 다 예외 없이 “한국 사회의 부패상을 폭로하고 반동적인 사회에서 고민하고 몸부림치는 민중의 모습을 나타내고 있다”고 선전하려는 의도로 출간한 것이지요. 아울러 원조자란 탈을 쓴 미 제국주의자를 욕하고 남한 하층민을 통한 체제우월성을 보이는데도 유리한 작품들이라고 본 것이지요.


이런 관점을 가진 북한문학을 어떻게 수용할 수 있을지 북한문학에 대한 연구가 필요한 시점인 것 같습니다.


임채욱 선생: 북한문학에서는 서정시도 투쟁의 가치를 가져야 합니다. 시는 ‘시대를 선도하는 투쟁의 기치’가 되어야 하기 때문에 시의 서정성도 전투적 역할을 하기 위한 것이라고 규정합니다. 소설도 당의 영도를 포기하면 ‘창작의 자유’를 부르짖으며 도전할 것이라고 쐐기를 박고 있는 북한 문단현실을 잘 헤아리면서 노동당의 조언자이고 동행자인 시인, 작가들을 만나야 되겠지요.


통일문화산책 함께 해주신 여러분 감사합니다. 지금까지 기획과 진행에 RFA 이현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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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년 평양 단군릉에서 열린 개천절 남북 공동기념행사 모습.
2014년 평양 단군릉에서 열린 개천절 남북 공동기념행사 모습.
사진-연합뉴스 제공


여러분 안녕하십니까? 통일문화산책 진행에 이현기입니다.


우리 조상들이 남겨준 전통문화가 광복 이후 남과 북으로 나뉘어져 지금도 생성돼 오는 서울문화 평양문화의 단면들을 살펴봅니다.


TEASER: 북한은 자기들이 프로레타리아 민족이 되려 한다더니 지금은 주체민족이다, 김일성민족이다 하는데 한국국민이 어떻게 그걸 받아들이느냐 하는 것이지요.


8월은 광복과 해방을 생각하는 달입니다. 작년 8월에 이 시간을 통해서 광복에는 우리민족이 항거하고 투쟁했다는 의미가 담겨있고 해방에는 외세의 힘으로 풀려났다는 의미가 느껴진다고 했습니다. 그래서 해방보다 광복의 의미가 더 크다고 말했지요. 하지만 우리는 광복과 함께 분단의 비극을 맞게 됐지요. 통일문화산책 오늘은 북한문화평론가 임채욱 선생과 함께 남북 북단에서 본 문화적 정통성에 대한 이야기 나눠보지요.


임채욱 선생: 네. 우리나라, 우리민족의 분단은 광복의 환희, 해방의 기쁨을 덮어버렸습니다. 당초 미국과 소련이 군사적 필요성 때문에 그은 38선 분단이 지리분단을 가져오더니 곧 이은 정치적 분단으로 이념분단까지 골이 크게 넓어졌지요. 정치적 분단이라는 건 남북한에 각기 이념과 체제가 다른 정권이 들어섰다는 것이지요. 그러고는 동족상잔의 전쟁과 휴전선이란 장벽으로 서로 오고 가지 못하니 문화적 분단까지 돼버려서 결과로 민족분단이 돼버린 것이지요. 올해는 지리분단 73년, 이념분단 70년입니다. 그리고 민족분단 67년입니다. 이 긴 세월, 시간은 화해보다는 대결의 시간으로 더 오래 점철돼 왔습니다. 이제 새로운 시대로 들어가서 분단이 된 순서를 거꾸로 해서 민족분단부터 없애고 이념분단 없애고 지리분단을 없애면 그게 바로 통일일 테지요.


지난번 남북정상회담으로 남북한 간에는 새로운 전개가 가능할 것도 같은데, 지금 말씀하신 것처럼 먼저 민족분단 없애고 다음으로 이념분단 없애고 마지막으로 지리분단 없애면 되는 일인데 그게 그렇게 쉽게 되겠습니까?


임채욱 선생: 참으로 어렵지요. 지금 남북한 주민은 동족은 틀림없는데 같은 민족이라 말하기에는 정치적으로 난감하지요. 동족이야 같은 핏줄이란 뜻으로 쓰는 말이니까 남북한 주민은 같은 혈족인 동족이지요. 하지만 민족은 그 개념이 정치적 성격을 가지기에 쉽게 한 민족이라 말하기 어렵지요. 그런 성격 규정은 북한에서 까다롭게 한 것이지요. 부르죠아 민족이다 프로레타리아 민족이다 하면서 구분하려 했지요. 북한은 자기들이 프로레타리아 민족이 되려 한다더니 지금은 주체민족이다, 김일성민족이다 하는데 한국국민이 어떻게 그걸 받아들이느냐 하는 것이지요. 그러니 문화, 민족문화도 남북한이 보는 관점이 달라져서 그걸 교류를 하면서도 상대방 것을 쉽게 받아들이기 어려워서 서로가 자기가 정통성을 가졌다고 주장해왔지요.


정통성은 무엇인지, 그 기능은 어떤 것인지를 설명 좀 해주시지요.


임채욱 선생: 정통성은 쉽게 말해서 통치의 정당성입니다. 그 지배가 법적으로 정당하냐, 역사적 계승에서 정당하냐, 다수국민이 그 지배를 동의하냐 하는 것입니다. 말하자면 한 지배집단의 통치를 인정하는 기능을 가지고 있지요.


남북한은 서로가 정통성을 주장하면서 대결해 왔을 텐데, 앞으로 남북한이 항구적이고 공고한 평화체제를 구축하게 되면 의미를 상실하는 것 아닙니까?


임채욱 선생: 정통성문제는 논리의 문젭니다. 정통성은 앞에서 말한 법적으로 정당하냐 하는 것은 법통성이 되고 역사계승에서 정당하냐 하는 것은 민족사적 정통성이 되고 다수국민의 동의를 받느냐 하는 문제는 국력과 국민생활의 우위성으로 나타납니다. 그러니 앞으로 남북한 간에 평화체제를 구축하고 통일을 이룩하는 모든 과정에서 정통성 논리는 등장하고 작용하게 됩니다.


그럼 문화적 정통성은 어떤 의미를 갖습니까?


임채욱 선생: 문화적 정통성은 정통성의 문화적 측면을 말합니다. 무엇이 문화적인 면에서 정통성이냐 하면 민족이 지녀 온 전통을 바르게 계승하는 것이지요. 그 계승이란 게 전통이면 무조건 받아들인다는 게 아니라 옳게 받아들인다는 것이지요.


남북한에서 문화정통성은 어떤 모습을 보여 왔습니까?


임채욱 선생: 한국은 미국문화 내지 서구문화의 세례를 받고 있었고 전통문화도 있는 그대로 받아들입니다. 선택을 하는 게 아니라 필요하면 캐캐묵은 것도 살려냅니다. 그동안 북한은 “소련을 따라 배우자”를 모또로 삼아 북한주민의 모든 사고나 행동양식을 소련을 준거로 삼았지요. 그러던 북한은 1960년대 중반 이후, 1970년대가 되면 ‘주체성’을 내세웁니다. 그게 1990년대가 되면 공산권의 멸망과 함께 민족성이란 것을 또 강조하게 되고 실제 민족문화와 관련되는 많은 유산들을 찾아내고 가꾸고 합니다. 그러니까 주체성을 내용으로 잡고 민족성을 형식으로 활용하면서 남한의 문화풍토를 미제국주의 식민성이라 비판합니다. 이게 북한의 문화정통성 주장입니다.


구체적으로는 어떤 모습입니까?


임채욱 선생: 전통문화도 민족문화이지만 낡고 반동적인 것은 수용하지를 않고 사회주의 문화건설에 필요한 것만 채택합니다. 예를 하나 들어보면 무당이 춤을 추는 것을 살릴 것인가 말 것인가 할 때도 춤사위 기교가 중요해서 살리는 게 아니라 미신에 사로잡힌 허위성을 폭로하고 옛 통치배들을 비난하는데 도움 된다면 살리고 안 된다면 없애버린다는 식입니다. 특히 대남면에서 필요하다 싶으면 적극적으로 찾아 쓴다는 것입니다. 단군에 대한 것이 이런 것인데, 광복 후부터 단군에 대해서는 신화적 인물이라고 무시하고 한국의 단군숭배를 비난해 오더니 1990년대 공산권 멸망 후에는 북한에서도 단군을 중시하게 됩니다. 민족에 바탕하는 문화를 찾는 과정에서 단군에 착안하고 단군릉을 찾아냅니다. 평양에서 약간 떨어진 강동군에 있는 오래된 분묘를 단군릉이라 확정하고 아주 거창하게 개축합니다. 그리고 단군을 실제인물로 모십니다. 이런 것들이 북한이 문화정통성을 확보하려는 한 모습이지요.


앞으로 문화적 정통성 경쟁은 어떻게 전개될까요?


임채욱 선생: 문화적 정통성은 민족문화의 원형에 충실해야 되겠지요. 또 현대사회에도 적합한 문화를 만들어 내야 확보되는 것이지요. 이런 면에서 볼 때 북한은 선택하는 폭이 너무 커서 전통문화에서도 많은 것을 잃을 것입니다. 전통문화 유산을 대할 때도 없애버릴 것을 고르고 그냥 두기는 하되 활용하지는 않을 것을 찾아내고 그 다음에 이어받을 것을 찾겠다는 정책태도로서는 그 양이 많을 수가 없게 됩니다. 조상으로부터 물려받은 문화라고 해서 모두 계승해야 되는 것은 아니므로 모든 전통문화유산이 다 문화전통으로 살릴 이유가 없다는 것은 일반론으로서는 틀린 것이 아니죠. 하지만 북한처럼 1930년대 ‘항일혁명전통’이 문화유산의 더 중요한 핵이 된다면 그 제한성은 피할 수 없는 것이 됩니다. 제한성이 있는 한 앞에서 말씀 드린 것처럼 민족문화의 원형에 충실할 수는 없지요. 민족문화의 원형에 충실 하려면 역사체험에 충실하고 그걸 왜곡하지 않아야 되는 것입니다.


통일문화산책 함께 해주신 여러분 감사합니다. 지금까지 기획과 진행에 RFA 이현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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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도네시아 자카르타 겔로라 붕 카르노(GBK) 스타디움에서 개막한 2018 자카르타-팔렘방 아시안게임 개회식에서 남북 선수단이 한반도기를 들고 아리랑 연주에 맞춰 공동 입장하고 있다.
인도네시아 자카르타 겔로라 붕 카르노(GBK) 스타디움에서 개막한 2018 자카르타-팔렘방 아시안게임 개회식에서 남북 선수단이 한반도기를 들고 아리랑 연주에 맞춰 공동 입장하고 있다.
연합뉴스 제공


여러분 안녕하십니까? 통일문화산책 진행에 이현기입니다.


우리 조상들이 남겨준 전통문화가 광복 이후 남과 북으로 나뉘어져 지금도 생성돼 오는 서울문화 평양문화의 단면들을 살펴봅니다.


TEASER: 아리랑은 2006년 한국국민들이 뽑은 100대 민족문화상징의 하나로 됐습니다.


인도네시아 자카르타에서 열리고 있는 아시안게임에서도 남북한은 공동입장을 했습니다. 남북한 선수가 한반도기를 들고 함께 입장할 때 아리랑이 연주됐습니다. 이제 아리랑 곡은 세계 사람의 귀에도 익은 곡이 된 것 아닐까 싶기도 합니다. 통일문화산책 오늘도 북한문화평론가 임채욱 선생과 함께 우리의 가락 ‘아리랑’에 대해 이야기 나눕니다.


임채욱 선생: 네, 이번에도 아리랑이 울려 퍼지는 가운데 한국선수 100명, 북한선수 100명이 공동입장을 했지요. 2000년 시드니 올림픽 때부터 쳐서 11번째 공동입장이 됩니다. 말씀대로 외국인 중에서도 관심 갖는 사람에겐 아리랑 가락이 귀에 익은 곡이 될 것도 같습니다. 아리랑은 2012년 인류무형유산이 됐고 남북한의 비공식 국가처럼 알려졌기 때문입니다.


아리랑이 공동입장 때 비공식국가처럼 정해진 경위는 어떠했습니까?


임채욱 선생: 1989년 말 남북한 체육단체 대표들은 그 다음해 중국 북경에서 열리는 아시안게임 단일팀 구성을 위한 체육회담을 열었습니다. 이 회담에서 단일팀 구성은 이뤄지지 않았으나 단일팀이 될 때 사용할 깃발과 곡은 합의를 본 것입니다. 깃발은 요즘 우리가 많이 보는 한반도기고 곡은 아리랑이었습니다. 사실 아리랑은 이때 합의를 봤다고 하지만 1963년 1월에 이미 남북한 간에 정해진 것을 재확인 한 것에 불과합니다.


1963년 1월이라면 1989년보다 26년 전이고 지금으로 치면 55년 전이 아닙니까? 그 때 어떤 연유로 그런 결정이 나왔나요?


임채욱 선생: 경위는 이렇습니다. 남북한 간에 이 체육회담이 열리는 1963년 다음해 1964년에는 일본 동경에서 올림픽대회가 열리게 됩니다. 그 때 IOC, 국제올림픽위원회에서는 남북한이 단일팀을 만들어 출정하라고 종용을 합니다. 남쪽은 원하지를 않는데 북쪽은 원한다는 의사를 표명합니다. 한국은 정부수립 전인 1947년에 이미 IOC에 가입했는데 북한은 1957년에야 가입이 됩니다. 그건 한국이 한반도 유일합법정부이기 때문에 북한의 체육활동을 한국 올림픽위원회, KOC를 통해서만 하도록 돼 있어서 가입을 시키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북한은 자기들 독자적으로 출전을 못하니까 남북단일팀으로 나가게 해달라고 공산권 국가들을 상대로 애써왔지요. 그래서 국제올림픽위원회, IOC는 남북한 단일팀 구성을 추진시킵니다. 이래서 남북체육대표들이 IOC 관계자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스위스 로잔느에서 만나게 됩니다. 여기에서 단일팀 국기문제, 선수선발문제 등은 합의를 못 보지만 국가만은 아리랑으로 결정됩니다.


아주 흥미 있는 회담이었군요. 국가가 아리랑으로 결정된 과정이 어떻게 됐습니까?


임채욱 선생: 처음에 북한측 대표가 50초 연주될 음악으로 하되 전반 25초는 북한곡, 후반 25초는 남한곡으로 하던가 그 반대로 해도 된다는 의견을 냈지요. 이 때 한국측 대표가 아리랑으로 하자고 제안했고 북한 측이 이를 받아들인 것입니다. IOC측은 국가가 아리랑으로 합의된 것에 회담성공을 희망하면서 국기문제, 선수선발문제를 합의할 것을 종용했으나 결국 국기나 선수선발문제는 합의를 못 봤지요. 국기문제에서 북한 측은 앞면에 태극기, 뒷면에 인공기를 붙이자고 제의했고 한국 측은 미관상 불공평하고 무거워서 펄럭이지도 못한다고 반대를 한 기록도 남아 있습니다.


아리랑 곡이 그런 연유를 거쳐서 남북단일팀 국가처럼 된 것이군요. 이러한 아리랑 가락이 인류무형유산이 됐습니다. 이 과정을 한 번 볼까요?


임채욱 선생: 아리랑은 2006년 한국국민들이 뽑은 100대 민족문화상징의 하나로 됐습니다. 그래서 인류무형유산으로 2011년 지정신청을 했던 것입니다. 아리랑이 남북한 모두의 가락이니만큼 북한과 공동으로 등재신청을 하려고 추진했는데 북한 통치자가 사망하는 바람에 공동추진이 못됐지요. 앞으로 한국에서는 중국조선족 아리랑도 끌어안고 북한지역 아리랑도 포용하는 한민족아리랑 센터도 세워서 아리랑을 세계적인 가락으로 발전시키려고 합니다. 실로 아리랑은 시간적으로 공간적으로 우리 땅과 우리민족을 나타낼 아주 대표적인 상징이라 하겠습니다.


국제문화계는 아리랑을 어떤 관점으로 봤기에 인류문화유산으로 평가할 수 있었을까요?


임채욱 선생: 아리랑 곡이 인류보편의 다양한 사설을 주제로 담고 있으며 곡조는 단순해서 즉흥적인 모방과 편곡도 가능하고 부르기 쉽다는 것이 선택의 점수를 높였습니다. 말하자면 특정지역에만 머무르지 않고 전 국민의 가락으로 세대를 거쳐 재창조되고 여러 모습, 다양한 형태로 전해져서 내려왔다는 점도 인정 됐습니다. 무엇보다 무형유산 보호를 위한 한국의 법제도와 조직이 잘 갖춰진 점도 좋은 평가를 받았습니다.


그럼 아리랑이란 이름을 가진 특정 곡만을 말하는 게 아니라 아리랑가락 전반에 대한 지정이군요.


임채욱 선생: 그렇지요. 아리랑에는 수많은 종류가 있지요. 하지만 중심이 되는 것은 아라리 계열의 메나리조를 가진 것인데 이런 전통적인 아라리 가락 말고도 1930년대 이후 새로 만들어 진 것도 많지요. 아리랑 연구가들이 꼽는 숫자는 60여 종 360곡 가량이라고 합니다. 가장 유명한 것이 진도아리랑, 정선아리랑, 밀양아리랑이지만 지역명칭을 붙인 아리랑 가락도 수십 곡입니다. 그래서 아리랑에 대한 인류무형유산 지정은 아리랑 가락 전반에 걸친 것이 됩니다.


남북한 공동입장 때 연주되는 아리랑 곡은 그 수많은 아리랑 가락 중에서 어떤 곡을 고른 것입니까?


임채욱 선생: 1920년대 아리랑입니다. 나운규의 영화 <아리랑>이 1926년 10월에 상영됩니다. 이때부터 아리랑에 민족정서가 폭발적으로 늘어나자 일제는 1929년 아리랑을 금지곡으로 정합니다. 아리랑이 항일민족운동의 상징처럼 됐기 때문이지요.

아리랑은 항일민족운동의 상징으로 된 것은 확실합니다. 그런 면을 좀 더 말씀해주시면 좋겠습니다.

임채욱 선생: 항일운동시기 우리나라와 우리민족을 상징하는 이름은 바로 아리랑이였습니다. 님웨일스의 유명한 책 <아리랑>을 비롯해서 최근 독립운동가 김석, 김동진지사 항일운동 투쟁을 기록한 <아리랑은 피가 뜨거운 것이다>에 이르기까지 많은 책들이 아리랑이란 이름으로 출판됐습니다. 손기정 선수가 베를린 마라톤 골인 때 아리랑을 읊조렸다고도 합니다. 아리랑은 항일민족운동의 상징으로도 그렇고 그야말로 우리 민족을 상징하는 가락입니다. 그래서 누구는 아리랑을 우리 민족의 상징자본이라고 까지 말하고 또 누구는 아리랑을 국가로 만들고 우리나라를 아리랑공화국이라고 이름을 고치자는 말도 합니다.

분단 후 남북한에서 새로 태어난 아리랑 가락은 피눈물 흘리면서 부르던 아리랑이 아니라 행복과 기쁨이 넘쳐나는 아리랑이라고도 합니다.

임채욱 선생: 그렇습니다. 언젠가는 남북한에서 새로 나온 아리랑 가락만 가지고도 큰 잔치를 벌이고 아리랑이 한반도만의 가락이 아니라 전 세계 사람이 부르는 노래로 만들 때가 오리라고 믿습니다.


통일문화산책 함께 해주신 여러분 감사합니다. 지금까지 기획과 진행에 RFA 이현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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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FA 원문보기 장마당 인근서 옥수수 먹고 있는 여인들. 사진-9월 17일 자 갈렙선교회 제작 영상 캡쳐 00:00/00:00 탈북자 구출과 한국 정착에 앞장서는 갈렙선교회가 지난 9월 17일 자 ‘옥수수 맛 좋습니다.’제목의..

탈북자 출신 초등학교 교사가 본 미국

RFA 원문보기 (왼쪽)북한 조선중앙통신은 새 학년을 맞아 전국 각 학교에서 개학식이 열리고 있다고 보도했다. (오른쪽)서울 옥수초등학교에서 겨울방학을 마치고 첫 등교를 한 학생들이 교실에서 손을 들어 보이고 있다. 사진 - ..

탈북자 출신 초등학교 교사의 증언

RFA 원문보기 북한 조선중앙통신은 지난 4월 2일 새 학년을 맞아 전국 각 학교에서 개학식이 열리고 있다고 보도했다. 연합뉴스 00:00/00:00 북한에서 37년 살면서 교육대를 졸업 초등학교 교사를 했고, 한국에 와 각고..

탈북 여학생과 지도교사의 미국 방문이야기

RFA 원문보기 큰샘 학생들이 미국 국회의사당을 방문해 기념사진을 찍었다. (사진 중에는 가이드와 미국에서 공부하는 탈북학생도 참가) 사진제공: 큰샘 00:00/00:00 큰샘 방과후 교실은 탈북학생들을 남한 학교에서 잘 적응..

2015년 시애틀 탈북자 통일 선교 대회 특집 1부:나는 보았네
뉴저지 정성호 원로목사의 신간
뉴저지 정성호 원로목사의 신간
뉴저지 정성호 원로목사의 신간
세계평화를 위한 중대한 제언-뉴욕 서병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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