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워싱턴-이현기 leeh@rfa.org
2017-05-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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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의 지하교인들이 성경을 읽고 있다.
북한의 지하교인들이 성경을 읽고 있다.
사진-'서울 USA’ 비디오 캡쳐

 

최근 미국 워싱턴 DC에서 전 세계에서 기독교인 600여 명이 한자리에 모여 각자 자신들의 나라에서 어떻게 기독교인들이 핍박 받는지에 대한 증언을 했으며, 앞으로 어떻게 선교할 것인가에 대한 의견 수렴을 했다고 이 모임에 참석한 탈북자 출신 김충성 목사와 주경배 선교사가 자유아시아방송과 회견에서 밝혔습니다. 이들은 북한에서 간부들이 RFA, 자유아시아방송 등 자유의 소리를 통해 변화 돼 가고 있으며, 중동의 봄이 이제는 올 때가 됐다고 말했습니다.

 

자유아시아방송 목요대담 오늘도 핍박 받는 기독교인 모임에 참가한 탈북자들 만나봅니다.

 

핍박 받는 기독인들 모임에 참석한 주경배 선교사와 김충성 목사는 북한 간부들이 외부 방송을 가장 많이 듣기 때문에 그들에게 국제사회가 어떻게 북한을 지켜보고 있는지를 확실하게 알려 줘야 한다고 말했습니다.

 

주경배: 자기가 다음에 옮겨 디딜 발을 보고 있습니다. 간부들이 RFA를 다 듣고 있습니다. 중동의 봄이 이제는 올 때가 됐습니다.

 

김충성: 북한의 고위층이 외부 소식을 가장 먼저 듣습니다. 그 고위층에게 맞춤방송을 해야, 당신의 선택이 자녀들에게 도움이 될 수도 있지만, 당신이 잘못된 선택을 하면 북한 인민들뿐만 아니라 당신 자녀들에게도 재앙이 될 수도 있다는 것을 확실하게 해주고, 국제사회가 당신을 지켜보고 있다는 메시지를 확실하게 해 줘야 합니다.

 

외국 기자들 북한 지하의 성도들 어떤 기도를 하는지를 물었습니다.

 

김충성: 북한 성도들은 이런 기도를 합니다. 하나님 예수 믿는 자를 핍박하는 것 때문에 북한 땅에서 데려 가실 목숨이 더 있다면 예수 먼저 믿은 우리를 데려 가십요. 대신에 예수, ‘예’ 자도 들어보지 못한, 하나님의 ‘하’자도 듣지 못한 우리 부모형제들, 북한인민들에게 기회를 주셔서 저들이 다 예수 믿고, 복음 듣고, 그리고 천국 갈 기회를 달라고 기도하고 있다. 나는 죽고 하나님의 그들을 찾아가서 사람들을 살리는 그런 기도를 하고 있다. 그래서 우리가 하는 기도가 어느 곳에 있든지 주 예수와 함께하면 그 어디나 하늘나라라고 했던 찬양처럼 우리가 살 수 있다는 메시지를 전했습니다.

 

김충성 목사는 이미 복음 안에서는 통일이 됐다고 말합니다.

 

김충성: 이미 복음 안에서 주신 통일입니다. 눈에 보이는 통일이 아니에요. 삼팔선이 열리고 자유 왕래하는 통일은 안 믿는 사람들이 원하는 통일입니다. 우리 크리스천들은 이미 북한 안에도 예수 믿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래 복음으로 하나된 이미 이루신 통일안에서, 북한 안에 있는 우리 지하교회 성도들을 잘 도와서 그들을 통해서 그리스도의 사랑이 북한 전역으로 퍼져 나갈 수 있도록 그리고 그 땅에서 예수 군대가 일어설 수 있도록 협력해 주시고 함께 기도해 주십요. 라는 메시지도 전했습니다.

 

외국 기자들이 북한에서 어떻게 복음을 전하느냐고 물었습니다.

 

김충성: 북한에서 복음 전하다 죽습니다. 그래서 당신 삶으로 보여 주세요. 한 번 안아주고 당신 눈빛으로 그리고 당신이 섬기는 그 섬김으로 해 주시고, 지금 북한이 가장 싫어하는 것이 기독교다. 왜냐면 기독교가 들어가게 되면 강반석의 일가부터 시작해 기독교인이었다는 게 들키니까 성경에 있는 것처럼 ‘진리가 너희를 자유케 하리라’ 했고, 빛이 들어가면 어둠이 물러가는 데 예수그리스도가 들어가게 되면, 빛 되신 예수가 들어가게 되면 북한이, 김정은 정권이 무너질 수밖에 없기 때문에 계속해서 기독교인들을 잡고 있다고 했고,

 

외국 기자들 평양 과기대에 대해서도 물었습니다.

 

김충성: 평양 과기대는 매 건물마다 다 김일성 김정일의 초상화가 붙어 있다. 건물을 놓고 봤을 때는 거기는 우상 섬기는 곳이다. 그런데 제가 평양 과기대 이야기 하다 울컥해 울었어요. 말을 못하고 있으니까 왜 우느냐고 물어보시더라고요. 그래서 평양 과기대 학생들과 평양 과기대에서 헌신하고 있는 교수님들 때문에 울었다. 그분들이 크리스천들인데 예수 믿으라고 말을 못 한다. 학생들에게 그러나 그분들의 삶을 보고 학생들은 예수를 알고 하나님을 알고 있다. 그래서 그 학생들이 입으로 예수그리스도를 시인은 못 하지만, 그 마음속에 하나님의 사랑이라는 것을 충분히 알고 있다고 얘기를 했고, 그리고 또 한가지 평양 과기대는 여학생이 없습니다. 남학생들만 있습니다. 남학생들이 있으니까 평양 과기대에 이제 어떤 일들이 일어나고 있는지는 당신이 크리스천이라면 기도해 보십요. 기도하면  하나님께서 분명히 환상을 보여 준다고 했어요. 기도하면 그곳에서 어떤 역사가 일어나는지 분명히 보여 준다고 했습니다. 그래서 북한을 위해서 기도해 주시고,

 

주 선교사의 증언 내용 함께 들어봅니다.

 

주경배: 저 같은 경우는 북한을 떠났지만 그리고 인권은 찾았지만, 가족에 대한 그리움 때문에 힘들었는데 예수를 만나고 진짜 자유를 찾았고, 가족을 데려오기 전에는 너무 힘들어서 그 좋은 음식도 입에 들어가지 않았는데, 예수를 만나고 자유를 찾고 해방이 되고 그리고 그 사랑을 아니까 고향 형제들에게 이걸 전해야 되겠다는 사명이 생겨서 다시 일어서서 그 땅에 복을 전하는 데 구체적으로 어떻게 전하고 있는 가를 들려 줬어요. 탈북민들에게는 북한 사람들이 남이 아니고 정말 가슴 아프게 떼어 놓고 온 자기 자식이고, 형제고 부모거든요. 그래서 그 형제들에게 다 연결하고 있으니까 이제는 북한 선교를 위해서, 북한 하면 핵무기 김씨 일가 이런 것 먼저 생각하지 말고, 북한 내에서 역사하시는 예수님, 고통 같이 하는 예수님 바라보면서 그들에게 복음을 전하는 것, 탈북자들은 다 연결이 되어 있거든요. 그래 탈북자를 통해서 돕자! 막연하게 북한 정부에 가서 어떻게 하거나, 어떤 방법을 찾지 말고, 선교사들 평양까지 안 가도 탈북민들 통하면 검증 강화할 필요가 없거든요. 자기 가족이니까요. 탈북민들 통해서 도와라, 탈북민들이 한국에 와서 예수 만나 사명자가 되어서 고향에 사랑으로 돕는 것을 다 사명을 갖고 왔으니까 탈북민들 통해서 하고, 현재 3만여 명이 왔으니까 3만 명이 다 가족에게다 복음 전할 수 있게끔 하는 것이 여기 함께 기도하는 분도 좋고 우리도 살고 북한 주민도 사는 길이라고 간증했습니다.

 

주 선교사의 북한 한 가정 품기 운동 이야기도 들어봅니다.

 

주경배: 탈북자 중에는 태영호 공사, 김 씨 가족인 강명도 씨 그리고 저 시골 농부의 딸까지 어부의 아들까지 다 왔거든요. 각계각층에서요. 지역에서도 다 왔거든요. 그래서 우리는 지금 어떤 방법으로 하느냐면, 우리 가족 중에 누가 어디가 아프냐 한 사람 한 사람 적어 봤습니다. 아들, 딸, 아버지, 어머니, 형제, 친척, 친구, 이웃들, 직장동료, 선생, 선배 다 적어 봤습니다. 저희 가족만해도 부부간의 240명 가족이 있더라고요. 그래 다 카드를 가명으로 해 만들었습니다. 지역만 써서 기도하는 분에게 이 사람을 위해 기도해달라고, 이 사람이 당 간부일수도 있고, 어느 수용소 소장이기도 하고, 국경의 군인이기도 하고, 농부이기도 하고, 그게 사실이거든요. 이제 막연하게 하지 않고 이 사람을 놓고 기도해 이 사람이 변해 구원되면, 북한이 변한다. 그래 한 사람씩 입양해서 하루에 한 번씩이라도 이름을 불러 달라고, 기적이 일어나기를 바라면서 ‘한 가정 품기 운동’을 펼치고 있습니다.

 

주 선교사는 탈북민들이 북한 사람들을 먹여 살리고 있다고 설명합니다.

 

주경배: 고향을 품고 도와야 해요. 한국에서 평양까지 돈 가는 게 빠르면 10분에 송금이 됩니다. 시장에 신용이 형성되었거든요. 그래 탈북민들이 북한사람들 먹여 살리고 있습니다. 그래 제일 아픈 것, 아픈 상처를 들어내서 고을 도울 때 진짜 치유가 일어난단 말입니다. 그래 탈북자를 먼저 세워서 돕는 자들이 탈북자를 통해 북한 안에 한 가정을 품고, 연결돼서 매 가정마다 통일의 끈이 이어지도록 돕는 사역을 하고 있습니다.

 

목요대담 오늘은 핍박 받는 기독교인 모임에 참가한 탈북자들 만나보았습니다. 지금까지 인터뷰에 RFA 이현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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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미국 워싱턴 DC에서 전 세계에서 핍박 받는 기독교인 600여 명이 한자리에 모여 각자 자신들의 나라에서 어떻게 기독교 인들이 핍박 받는지에 대한 증언을 했으며, 앞으로 어떻게 선교 할 것인가에 대한 의견 수렴을 했다고 이 모임에 참석한 탈북자 출신 김충성 목사와 주경배 선교사가 자유아시아방송과 회견에서 밝혔습니다. 북한에선 기독교인이 많아 지고 널리 전파 될 때 북한체제가 무너질 것을 북한 당국자들이 알기 때문에 가장 악독하게 탄압하고 있다고 말했습니다. 한편 주경배 선교사는 북한에서 RFA자유아시아방송을 듣고 탈북을 결심했다고 증언했습니다.

목요대담 오늘은 핍박 받는 기독교인 모임에 참가한 탈북자들을 만나봅니다.

김충성 목사께서 이번 모임에 참석해 느낀 점이 있으면 소개해 주세요.

김충성: 제일 핍박 받는 나라의 국기를 무대 중앙에다 설치를 했다는데, 거기에 북한국기가 있어요. 인공기를 봤을 때는 저걸 왜 거기에 놓았는지 내려라! 하고픈 마음이었는데, 알고 봤더니 가장 핍박 받는 나라를 거기에 올렸고, 맨 처음으로 북한 탈북민이 스피치를 했습니다. 세계적으로 유명한 찬양 사역자가 오셨어요. Amazing grace(놀라운 은총)을 연주하는 데 카메라를 비추는데 바로 뒤 인공기가 인접해 있는 거에요. 인공기를 보는데 아! 하나님. 북한이 보이는 거에요. 그 찬양을 들으면서 북한이 보이는 거에요.

주경배 선교사께서도 이번 모임에서 느낀 점이 있다면은요.

주경배: 저는 일단은 북한을 위해서 전 세계인이 모여서 함께 기도하고 있다는 게 감사하고 항상 감사하는 거지요. 그런데 확 가슴 치는 것은 아! 이 소식을 그대로 전해야겠다. 북한사람들에게는 자기를 위해서, 김일성 외에, 자기네를 위해서 진심으로 위해주는 사람도 있고, 마음이 있다는 것, 큰 힘이거든요. 그래서 그걸 전할 수 있다니까 우리 탈북자들이 전하는 것 보다 진짜 입니다. RFA가 나팔수이니까 큰 힘이 되는 거에요.

주 선교사는 북한에서 RFA 자유아시아방송을 들었다고요.

주경배: 제가 아마 90년말부터 2000년대 초 고난의 행군이 지나면서 본격적으로 듣기 시작했는데 2000년대 초 중반에는 매일 듣다시피 하고, 그런데 그때 첫 기억나는 게 오래돼서 잘 기억은 안 나지만, 탈북민들이 쓴 책을 다 낭독하는 프로그램, 제일 기억에 남는 건 장길수 소년이 쓴 ‘눈물로 그린 무지개’, 이건 기억이 잊혀지지 않거든요. 그 다음에 강철환이 쓴 ‘수용소의 노래’, 이영복이 쓴 ‘나는 경호원이었다.’ 다 프로그램마다 특성이 있더라고요. 그리고 북한에 대해서 엘리트 층에 대해서 말해 줘도 잘 납득이 안됐는데 이한영이 쓴 ‘대동강 로얄 패밀리’ 낭독을 빠짐없이 듣던 생각이 나고 RFA가 일단 잘 들립니다.

김 목사께서도 북한에서 자유아시아방송 들으셨다고요. 어떤 내용이었습니까?

김충성 목사: 저도 들었어요. 자유아시아방송 이라면서 무얼 들었느냐 면, 농장에 비료 받으러 평양에 올라갔어요. 드라마로 만드셨더라고요. 비료 받으러 평양에 올라갔는데 양강도에서 온 도당책임비서하고 황해도에서 올라온 누군가하고 싸우는 거에요. 아니 우리 양강도는 동무네보다 우린 ‘도’란 말이에요. 우린 도인데 우린 왜 비료를 안주고, ‘시’에 비료를 주느냐! 하면서 비료 받는데 술 몇 박스 갔다 주며 로비 하는 그런 드라마를 들었는데 그걸 RFA에서 들었어요.

주 선교사께서 북한에서 자유아시아방송이 잘 들렸는지 설명해 주시지요.

주 선교사: 저는 함경북도 최 북단 해령 시라고 거기 산골에 들어가 있었습니다. 거기서 잘 들렸습니다. 그리고 뭘 들었느냐면 이진서입니다. 하는 거 생각나고, 탈북자들의 소식을 아주 구체적으로, 현실적으로 RFA가 들려주고 있더라고요. 방송(대북방송)들이 여러 특성들이 있는데 RFA는 현실적으로 상황을 신속하게 잘 반영해 주더라고요. 제가 알건 데는 탈북자들이 북한에서 라디오를 듣는 설문을 해보면 제일 많이 듣는 게 RFA입니다. 제일 잘 들리는 건 극동방송, VOA, RFA, KBS 2 라디오가 제가 사는 지역에서 잘 들리는 순서인데 대체로 주위 사람들 보니까 RFA이 잘 듣더란 말입니다.

주 선교사께서 탈북을 결심하게 된 어떤 계기가 있었으면 들려주세요.

주 선교사: 소식을 신속하게 빨리 전해주고, 그 소식 때문에 탈북을 결심했는데 방향을 모를 때 RFA 들으면서 탈북자 상황실태, 방향, 가령 어느 공관을 뛰어 들어갔다는 등 탈북자들 탈출과정의 소식들 들으면서, 어느 쪽으로 가야겠구나! 어떻게 해야겠구나! 두리 하나 선교회 천기원 목사라는 것도 기억하고, 저는 못 만났는데 어쩌든 방송을 통해 들은 상황을 생각하고 나는 어떻게 할 것인가! 방향을 잡았어요. 여기 오니까 아는 게 많고, 보는 게 많으니까? 하고 싶은 것 하지! 북한은 오히려 순수합니다. 아무리 세뇌됐다고 해도 오직 한가지만 알고 그러니까 북한에서 ‘무식을 광명’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오직 한길 밖에 모르니까 곁을 볼 것 없고 욕심나는 것 없이 김 씨 일가 밑에서 오직 살아야겠다. ‘자유와 인권을 위하여’라고 하는 사람은 한 둘이 되겠지요. 사실은 단순한 이유로 국경을 넘는데, 나도 진짜 살아야겠다는 본성에 충실했다고 봐야지요. 오다 나니까 이렇게 왔습니다.

주 선교사께서 방송사에 주고 싶은 이야기가 있다고요.

주 선교사: 방송사에 가면 권하는 게 그겁니다. 북한 동포를 위해 방송하는 거 우선 감사 드리는 데 그 보이지 않는 곳에 자유의 소식을 전해 줘 감사 드리는데, 자유세계에선 가수나 탤런트면 무리 지어 쫓아 다니는데, 북한, 진짜 반응이 없는 곳 향해서 이렇게 묵묵히 방송해 주시고 헌신해 주시니까? 참 감사하고 북한에서 들을 때는 저 어마어마하게 생각하고 워싱턴에 있다니까 다 간첩이고 반동소굴 이렇게 생각했거든요. 그런데 와 보니까 동내 누나, 엄마, 형님들, 아저씨들 같은 분들이 이렇게 편하게 계시니까? 진짜 감사하고 편안합니다.

두 분께서는 북한 주민들 어떻게 방송 듣는지 설명해 주세요.

주, 김: 방송 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그들이 들을 수 있는 기재, 그 다음에 1회성으로 하지 말고 그걸 저축해서 USB 등에 담아서, 그 시간에 놓치면 다시 들을 기회가 없거든요. 북한에서는 다시 듣기가 안됩니다. 우리는 방송을, 라디오를 들은 게 아니라 온 몸으로 먹었습니다. 그게 빛이거든요. 그러니까? 그 방송 시간 지나면 얼마나 아쉽습니까? 이제는 USB보내는 사역을 하고 있습니다. 그래 USB에보내면 다시 들을 수 있으니까? 라디오나 USB를 같이 보내면 좋을 것 같습니다.

주 선교사가 북한에서 어떤 방법으로 라디오를 들었는지 들려주시지요.

주 선교사: 어떤 라디오로 들었느냐 면, 저는 중국산 신바우라고 카세트 식 녹음 장치가 있습니다. 그래 너무 커서 중형으로 바꿨거든요. 중고로요. 그래 부속 다 뜯어서, 라디오 가지고 있으면 단속하니까. 천정에다 숨겨 풀로 발라 놓고 밤에는 꺼내서 듣는데 신속하게 움직여야 합니다. 이불 안에 넣고, 잘 들리지 않으니까 안테나 선을 입에 넣기도 하고, 손에 잡으면 잘 들려, 기계가 우리에겐 중요하지 않지요. 그 소리가 중요하니까요. 온몸이 기계가 될 수 있어요.

북한에서 RFA라는 영어 약자를 아셨습니까?

주 선교사: 이북에 있을 때는 자유아시아방송으로 쉽게 들어오지요. RFA는 영어니까 잘 모르는데 자유아시아방송은 쉽게 알지요. 여기오니까 혀 꼬부라져서 RFA그러지 그 당시는 RFA라 하면 잘 들어오지 않고요.

목요대담 오늘은 워싱턴에서 핍박 받는 기독교인 모임에 참가한 탈북자들을 만나봤습니다. 지금까지 인터뷰에 RFA 이현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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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05-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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탈북자들과 미국 인권운동가들이 지난달 26일 주미 중국 대사관 앞에서 북송 된 탈북자들을 위해 기도하고 있다.
탈북자들과 미국 인권운동가들이 지난달 26일 주미 중국 대사관 앞에서 북송 된 탈북자들을 위해 기도하고 있다.

 

RFA PHOTO/이경하

 

북한에 자유를 촉구하는 제14차 북한자유주간 행사가 지난달 23일부터 28일까지 미국 워싱턴DC 일원에서 탈북자 20여명이 참가해 자신들이 겪은 북한의 심각한 인권상황을 증언했습니다. 북한자유주간 행사 중 자유아시아방송을 방문한 탈북인들은 북한을 변화시키기 위해서는 인민들이 들을 수 있는 방송과 삐라를 통해 북한주민들 개혁에 나서야 한다고 밝히기도 했습니다.

 

목요대담 오늘은 북한자유주간에 자유아시아방송을 방문한 탈북인들 이야기로 함께 합니다.

 

탈북인 최 모 씨는 이번 북한자유주간 행사 중에 북한에 자유의 소식을 전하는 것이 중요해 자유아시아방송을 방문했다고 들려줍니다.

 

최 모: 김정은 정권이 저렇게 국제사회의 말도 안 듣고 대북제재에도 불구하고 계속 핵과 미사일을 만들어 내니까? 미국 정부에다 강력하게 북한에 무력을 사용하는 것도 좋지만, 그보다 더 좋은 게 북한에다 정보를 공유해야 북한 주민들, 하부에서 변화가 있어야 북한정권이 물러난다. 이런 걸 알려 주려고 왔었고 그중에 한가지가 북한에 대해서 이런 방송을 하고 있는 자유아시아방송을 그래서 행사에서도 가장 중요하게 우리가 생각하고 방문했습니다.

 

또 다른 탈북인 최 모 씨는 북한에 라디오나 삐라를 통한 정보 유입이 중요하다고 강조합니다.

 

최 모: 저는 아직도 방송을 중요시합니다. 왜냐면 북한 주민들이 실질적으로 방송을 많이 듣고 있고, 삐라 등을 많이 봅니다. 저도 북한 00에서 장교로 생활하면서, 저는 방송은 많이 못 들었어요. 그런데 삐라는 많이 받았어요. 삐라를 많이 보면서 김정은의 실체를 알게 되었고, 김부자의 실체에 대해서도 알게 되거든요. 김정은이 3형제라는 것도 삐라를 보고 알았어요. 그걸 보면서 정보 유입이 얼마나 중요한 걸 알았거든요. 여기 와서 제가 방송에 들어간 것도 북한 주민들한테 계속 주입을 시키더라도 그동안 세뇌 교육을 너무 받다 보니까?  한 번에 무너지진 않아요. 하지만 계속 우리가 방송이나 삐라를 통해서 주입을 시킨다면 언젠가는 무너지겠다라는 생각을 해서 북한 형제자매들한테 빨리 알려 줘서 나와 같이 군 복무하던 군인들이 하루빨리 이제는 김정은에게 등을 돌리고, 총을 돌리라! 이걸 말해 주기 위해 방송에 다니고 있고, 행사에도 참가 했거든요. 앞으로도

저는 계속 북한 인권을 위해서 투쟁할 것입니다.

 

탈북 여성 심 모 씨는 미국에 와 북한을 위해 일하는 사람이 많다는 것을 알았고 앞으로 북한 여성들의 인권 회복에 앞장서고 싶다는 포부도 밝혔습니다.

 

심 모 : 제가 북한을 떠나 한국에 와 자유를 느껴 보고, 그다음에 북한에서 적대시하던 미국이란 나라에 와 미국이란 나라를 봤을 때 북한에서 상상을 못 했던 너무나도 큰 나라이고 아름다운 곳입니다. 북한 사람들은 항상 미국놈 나쁜 놈이라고 생각을 했고, 미국이란 나라는 우리 북한에다 전쟁을 일으킨 나라라고 생각을 했는데, 그것이 아니고 세계 각국 사람들 다 모여서 북한 인권을 위해 행사하는 것이 여기 미국에 있고, 미국의 중심지인 워싱턴에 와서 보니까 너무나도 많은 사람들 북한을 위해서 기도를 하고, 또한 북한 인권을 위해서 노력을 하는 것을 보고 미국이란 나라에서 모든 게 이루어진다는 데 너무 큰 감동을 받았고요. 앞으로도 자유북한방송이나 그리고 우리 북한 사람들(탈북민)을 통해서 선도해서, 통일은 반드시 오기 마련이니까? 저희가 그 길을 열어 나가는데 앞장서도록 노력하고, 그리고 특히 저는 여성 인권을 위해서 활동하는 활동가여서 우리 북한 여성들이 지금 중국이나 아니면 북한에서 지금 이루어지고 반인륜적 인권사례를 세계에 알려서 하루빨리 우리 북한 여성들이 다 같이 행복한 자유를 누릴 수 있는 그날이 왔으면 좋겠다는 다짐을 하고 있습니다.

 

탈북인 박 모 씨는 북한 인민들의 인권 개선을 위해 한몫을 하려고 미국에 왔다고 말합니다.

 

박 모: 단체장들 몇 명과 다른 분들도 왔는데 어 우리가 몇 명은 안 되지만 그래도 북한에 있는 2000만을 대표해서 거기서 겪었던 일,  거기서 배우고 중국을 거쳐오면서 느꼈던 인권에 대한 자유민주주의 대한 걸 미국에 와 전 세계에 알리고, 그것으로 인해서 북한국민들에게 자유 세계의 진정한 자유를 알리는데 한 몫 할 수 있다는 데에 자부하고 앞으로도 북한 국민을 위해서 인권 활동을 하고 자유민주주의를 위해서 많은 노력을 하겠다는 그런 각오를 가지고 있습니다.

 

대북 전단에 관한 이야기 자유북한운동연합 박상학 대표에게 들어 봅니다.

 

: 제가 서울로 떠나기 전 며칠 전에도 대북전단을 보냈습니다. 북한주민들은 요즘 좀 알고 싶어 하는 게 뭐냐면 수령의 맏아들이었던 김정남 암살에 대해서, 정말 우리 지도자라는 김정은이 자기 형은 그렇게 살해했느냐 많은 사람들이 의문시하고 주시하고 있습니다. 그런 걸 그 객관적인 그래서 사실 자료를 통해서 대북전단을 만들어서 이번에도 오기 직전에 한 30만장을 북한에 보냈거든요. 그래 대북전단은 이 순간에도 계속 북한 동포들에게 보내지고 있습니다.

 

탈북자 백 모 씨가 북한의 잘못된 행위를 국제사회가 그대로 내버려 둬서는 안 된다고 말합니다.

 

: 우리는 아주 오래전, 한 세기 전에 대학살, 유대인 대학을 기억하고 있어요. 그래서 유대인 대학살에 대해 사람들의 인식이 아직도 고양되어 있단 말이에요. 그런데 지금 일어나고 있는 대학살에 대해서는 너무도 관심이 없고, 외면하는 게 안타까운 심정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아직도 학살이 진행되고 있는 그 땅이 너무 폐쇄적이기 때문에 지금은 옛날이 아니고, 21세기에 아직도 강제 낙태시키고 사람들을 마구 총살하고 가둬서 고문하는 이런 나라가 있다는 것 자체가 말이 되지 않는, 있을 수 없는 일입니다. 그런데 북한에 대해서 외면하고 위정자, 독재자들에 대해서 우리가 아직도 제대로 인식을 하지 못하는 것에 대해서 너무 안타깝습니다. 그래서 우리가 진짜 평화를 사랑하고 자유를 사랑하는 국제인들이고, 세계의 사람들이고 또 그러한 세상을 만들기 위한 어떤 그런 게 있다면 북한에 더 관심을 가지고, 이라크를 들어가 대량 살상무기를 없애기 위해 했듯이 그리고 미국이 자유국가가 침공을 당했을 때 단호하게 대응 했듯이, 전 세계를 상대로 위협하는 북한에 대해서도 단호하게 대처를 해 줬으면 하는 그런 바람이 있습니다

 

탈북인 최 모 씨 2300만 북한 인민들의 자유를 찾아주기 위해 북한자유주간에 참가했다고 말합니다.

 

최 모: 저도 북한에서 왔지만 하루빨리 북한에 있는 2300만 인민들이 빨리 자유를 찾아 가지고 우리와 같은 똑 같은 자유를 함께 누렸으면 좋겠다는 이런 심정을 가지고 저는 이 행사에 참가했습니다.

 

탈북인 최 모 씨 미국에서 느낀 이야기도 들어 봅니다.

 

최 모: 미국에 와 보니까? 우린 북한에 있을 때 세뇌 교육을 받았다고 하니까? 미국은 철천지원수고 미국이란 나라는 사람을 막 침략하고, 죽이고 하는 나라라고 생각했거든요. 그런데 실지 제가 그런 교육을 받았던 제가 미국 와서 보니까? 정말 인도주의적이고 사람도 너무나도 편하고 좋고 한국하고 또 미국 봤을 때 미국분들이 양보라든가, 너그럽다든가, 이런 면에서 봤을 때는 더 우월하다고 봤습니다.

 

목요대담 오늘도 북한자유주간에 자유아시아방송을 방문한 탈북인들 이야기로 함께 했습니다. 지금까지 인터뷰에 RFA 이현기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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워싱턴-이현기 leeh@rfa.org
2017-05-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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워싱턴 디시 소재한 중국 방송 CCTV 사무소 앞에서 탈북인들이 탈북자 북송반대 시위를 하고 있다.
워싱턴 디시 소재한 중국 방송 CCTV 사무소 앞에서 탈북인들이 탈북자 북송반대 시위를 하고 있다.
RFA PHOTO/ 이경하

 

지난달 23일부터 28일까지 워싱턴 디시 일원에서 제14차 북한자유주간 행사가 열렸습니다. 또한, 지난 27일에는 세계탈북자총회도 열렸는데 탈북자 대표들은 북한 김정은 정권의 핵과 미사일 도발을 규탄하고 열악한 인권 탄압 실태를 폭로하기도 했습니다. 자유북한운동연합의 박상학 대표는 김정은이 존재하는 한 북한 인민들이 계속 정치범 수용소로 보내지고 더 많은 사람들이 굶주림에 죽어갈 이라면서 말이 아니라 행동에 나서야 할 때라고 강조했습니다. 행사가 진행되는 지난 25일에 20명의 참가 탈북자들이 자유아시아방송을 방문해 북한의 인권상황에 대해 증언하고 북한 주민들을 위해 자유의 소리를 더 많이 보내 주기를 요청하기도 했습니다.

 

목요대담 오늘은 저희 자유아시아방송을 방문한 탈북자들의 이야기로 함께 합니다.

 

먼저 박상학 대표께서 이번 행사에 탈북인들 몇 분이 참가하셨고, 어떤 분들이 참가했는지 설명해 주시지요.

 

박상학: 제14회 자유북한주간 행사에 탈북자 분들 20여 분이 참가했습니다. 이분들은 절대다수 가 서울에서 북한 인권 단체에서 리더로 일하시는 그런 분들입니다. 또 자유아시아방송에도 많은 정보를 제공하고, 또 서울에서 벌어지고 있는 그런 얘기들을 북한 주민들에게 전달해 주는 역할 하신 분들도 꽤 있습니다.

 

이번 행사에서 탈북자들이 한 일은?

 

박상학: 이번 행사에서는 우리 탈북자들의 목소리 즉 북한의 인권 문제가 언론의 조명을 받지는 못했습니다. 왜냐하면 북한의 핵실험이라든가, 중-단거리 미사일 실험 때문에 국제 사회가 거기에 집중되다 보니까? 이번 14회 자유주간에 참가한 북한인권단체의 활동이 언론을 통해 잘 나가지는 않았습니다. 그러나 우리의 목소리가 이 미국에서, 자유세계를 향해 우리 탈북자들 북한 김정은 3대 정권에 대해 자신들의 체험을 통한 비판을 국제사회에다 계속하려고 합니다.

 

이번 행사에 참여한 탈북인들 각오가 남 다를 것 같습니다.

 

박상학: 현재 오신 분들 중에 정치범 수용소에 수감되었던 분들도 있고, 북한에서 노동 단련대 라든가 이런 강제북송 이라던가 이런 엄청난 인권유린을 겪은 실지 체험자들도 여러분 있기 때문에 이런 분들이 RFA라든가 미국 언론을 통해서 국제사회에 북한의 참혹한 인권 유린 상태를 계속 고발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북한주민들에게 한마디 해 주시지요.

 

박상학: 지금부터 14년 전에 제 1차 북한자유주간 일주일 동안 행사를 했습니다. 3대 수령 독재로부터 겪는 북한인민들의 참혹한 인권 유린에 대해서 국제사회에 고발하고 또 미국 의회나 국민들에게 호소해서 이런 잔인한 독재, 살인을 특히 정치범 수용소 같은 현대사회의 가장 반인륜적인 그런 행위를 하는 김정은 정권을 (사실은 우리 탈북자들의 노력만으로는 안 되니까)국제 사회에 호소해서 김정은 정권을 붕괴시키자는 차원에서 시작된 운동이 북한자유주간입니다. 북한자유주간이 14회째지만, 우리 바람은 15회때는북한의 김정은 독재가 무너지기를 확실히 기대합니다.

 

북한민주화위원회 허광일 대표 자유아시아방송이 북한주민들에게 자유의식을 일깨워 주기를 바랐습니다.

 

허광일: 저는 2003년도에 황장엽 선생님을 모시고 자유아시아방송을 처음 방문했습니다. 그리고 이번에 한 5년 만에 이렇게 다시 방문하게 됐는데, 정말 자유아시아 방송이 북한에 자유의 소식을 전하는데 선봉에 서 가지고 북한 주민들을 계몽시킨 데 대해서 감사드리고 더더욱 14차 북한 자유주간 행사가 성과적으로 치러진 가운데 더더욱 자유아시아방송을 방문한 데 대해서 더없는 영광으로 생각합니다. 그리고 이 방송이 북한주민들이 자유의식을 깨우고 그들을 김정은 압제에서 해방하는데서 정말 선구자적인 역할을 해 주실 것을 진심으로 부탁드립니다.

 

허광일 대표가 북한주민들에게 주는 의견입니다.

 

허광일: 지금 북한주민들은 김 씨 3대세습의 마지막 독재자인 김정은이의 압제하에서 그 어느 때보다도 최악의 인권위기 상황과 국가 위기 상황을 맞이 하고 있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북한이 살아남는 길은 오직 압제자 김정은 독재 정권을 무너뜨리고, 진정한 자유의 삶을 찾아야만이 그들에게 인권이 보장 될 수 있고, 자유를 누릴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북한에서 생활하고 계시는 우리 동포들, 우리 형제 자매들이 정말 오늘의 압제에서 당하기만 하지 말고 이젠 스스로 자신들의 머리를 깨우쳐 가지고 자유세계를 향해서 힘차게 전진하기를 바랍니다.

 

탈북인 백요셉 씨는 이번 행사에 참가는 바로 북한이 완전 자유의 나라가 되기 위해서라고 말합니다.

 

백요셉: 일단 북한 자유를 위한 주간 행사이기에 상당히 고무적입니다. 그래서 북한은 어떻게 보면 상당히 소외되고 잊혀진 나라인데, 거기서 자란 사람들이 그 땅을 떠나왔지만, 탈북자들이 그 땅을 자유화하기 위해서 지금 이렇게 활동하고 있지만, 뭐랄까 탈북자들에겐 힘이 없어요. 저희에겐 힘이 없지만 그래서 미국이라는 거대한 자유국가를 믿고 왔잖아요. 그래서 저희 같은 경우에는 탈북자이고 미약 하지만 또 저희들 밖에는 또 이런 일을 앞장서서 할 수 있는 사람들이 없기 때문에 앞으로도 우리가 힘이 닫는 데까지 나설 것입니다. 북한정권이 어디까지 우리 탈북자들을 위협하고 협박할 지 모르겠지만, 그것이 오히려 우리에게는 큰 자랑이 되고, 또 큰 긍지가 되고 또한, 우리가 자유인으로서의 가치를 높여 주는 것이라고 생각해요. 그래서 좀 더 북한 정권이 완전히 사라질 때까지 북한이 완전히 자유화 될 때까지 꾸준히 활동하고 싶은 그런 생각이 듭니다.

 

탈북인 한 모 씨는 북한의 민주화를 위해 참가했다고 들려줍니다.

 

: 저희는 자유 주간 행사를 해마다 4월 마지막 주 하고, 5월 첫째 주에 진행 하고 있잖아요. 저는 해마다 참석을 했고요. 참석한 것이 이제 8년차 됩니다. 왜 제가 2015년도에도 여기 미국으로 자유주간행사에 참여 했었고요. 그때 와서 제가 느낀 점이 참 저희랑 정말 모든 게 다른 미국인들이 저희 북한 인권을 위해서 북한 민주화와 자유를 위해서 열심히 노력하는 것을 보고 너무 감동 받았고요. 이번에 다시 방문 한 것도 그런 분들과 함께 열심히 한다면 독재국가는 빠른 시간 안에 무너지지 않을까 하는 생각으로 또 다시 미국에 방문 했고요.

 

탈북자 김 모 씨 북한자유주간 행사를 개최해 줘 고맙다고 했습니다.

 

: 우선은 당사자인 한국이 아닌 미국에서 이렇게 북한자유주간을 만들어 주시고 또 그것도 14회 동안 지속적으로 노력을 해 주신 것에 대해 굉장히 감사하게 생각하고, 북한문제가 이제 전 세계적으로 더 많이 알려 지고, 공감이 이뤄져서 북한 문제가 하루 빨리 해결 됐으면 좋겠다 하는 바램입니다.

 

목요대담 오늘은 저희 자유아시아방송을 방문한 탈북자들의 이야기로 함께 했습니다. 지금까지 인텨뷰에 RFA 이현기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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워싱턴-이현기 leeh@rfa.org
2017-04-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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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진각 자유의 다리에서 국제 출판 관계자들이 자신의 언어로 번역된 반디의 ‘고발’ 소설집을 낭독하고 있다.
임진각 자유의 다리에서 국제 출판 관계자들이 자신의 언어로 번역된 반디의 ‘고발’ 소설집을 낭독하고 있다.
사진 제공: 행복한 통일로

북한 고발 소설집 반디의 ‘고발’을 출판한 국제출판인들을 한국 행복한 통일로 단체가 초청해 ‘북한 인권의 현실과 북한 문학의 미래’ 주제의 행사를 지난 3월 말 개최했습니다. 국제 출판인들의 자국 언어로 출판된 ‘고발’ 낭독 행사와 DMZ 방문 행사에 CNN 방송이 취재해 전 세계에 방영했다고 도희윤 대표가 자유아시아방송과 회견에서 밝혔습니다. 도 대표는 또한 국제출판인들과 남한 정착 탈북 작가와의 만남의 시간도 가져 앞으로 탈북 작가들의 해외 진출에도 큰 성과가 있을 것이라고 강조했습니다.

자유아시아방송의 목요대담 오늘은 북한을 고발한 반디의 ‘고발’ 소설을 출판한 국제출판인들 한국 방문 소식을 “행복한 통일로” 도희윤 대표로부터 알아봅니다.

반디의 고발 소설 해외 출판인들 한국 방문 소식과 CNN방송이 취재해 전 세계에 방송했다고요.

도희윤: 지난 3월 29일부터 30일로 물론 전, 후 행사도 있었습니다. 국제 출판 관계자들과 인권활동가들을 대한민국 서울로 초청했습니다. 29일에는 세미나를 가졌고, 30일에는 판문점 제3땅굴 등 DMZ 지역을 탐방하는 행사를 가졌는데요. 미국의 CNN 방송이 이번 국제 출판 관계자들의 ‘판문점’을 방문 하는 것에 관심을 가졌고, 판문점 가는 길목인 임진각 자유의 다리 앞에서 글로벌 출판 관계자들과 조촐한 행사를 가졌습니다. (현재 20개국 18개 언어로 반디의 고발 소설집이 번역 출간 되는 중인데요.) 그날 참석했던 9개 나라의 출판관계자 그리고 또 3분의 인권활동가들이 각각 자기나라 언어로 출판된 반디 소설 ‘고발’ 내용을 읽는 행사를 가졌습니다. 각국 언어로 읽는 행사를 가질 때 CNN이 그 내용들을 다 담았고, 세계 최초로 북한에서 나온 반체제 소설 ‘고발’이라고 하는 책을 소개하는 귀한 인터뷰도 갖게 됐습니다. 저는 개인적으로 여러 가지 질문을 받았습니다. 반디 고발 소설집이 나오게 된 여러 가지 경위 그리고 의미, 이런 행사를 가지게 됐던 어떤 나름대로의 목적, 또 앞으로 여러 가지 계획, 이런 차원에서 장시간 CNN과 인터뷰를 가졌고, 저는 특별히 CNN이 국제적인 언론사로서 북한 주민들에게 전하는 메시지를 담을 수 있도록 협조해 준 것에 대해 감사를 표했습니다.

특별히 반디 소설 ‘고발’을 출판한 국제출판인들을 초청한 큰 의미가 있다면 설명해 주시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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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제출판관계자들이 남북 분단의 상징 판문점을 방문했다. 사진 제공: 행복한 통일로

 

도희윤: 몇 가지 목적을 두고 이 행사를 추진 했습니다. 먼저 국제 출판 관계자들이 분단의 현장인 대한민국의 DMZ 지역을 직접 방문하고, 또한 자기들의 언어로 출간한 북한 반체제 소설 ‘고발’책들의 관련된 내용을 공유할 수 있는 시간들을 가졌습니다. 이것이 아주 중요한 목적의 하나였고요. 또 한가지 북한 문학, 특히 탈북인 문학에 대한 관심을 국제 출판 관계자들이 가져 달라는 차원에서 탈북 작가들과의 만남을 주선 했습니다. 탈북 작가들 사실 국제 출판 관계자들 만나기 어려운 부분들이 많거든요. 우리 탈북작가들 대부분 북한에선 창의성 자체가 억눌린 사회에서 생활을 했기 때문에, 자신이 아무리 뛰어난 창의성을 갖고 있다 해도 그 체제에서는 자기 실력을 마음껏 발휘하지 못하다가, 이제 자유 대한민국으로 와서 늦었지만, 문학적 소양을 가지고 발전해 나가려고 하는 모습들이 나오고 있는데, 이 부분에 국제 출판인들이 좀 더 관심을 두십사 하는 차원이 큰 의미이고 또 뜻깊은 목적이 아닌가 생각됩니다.

10여 명의 국제 출판인들이 참가했다고요. 이번 진행된 행사 평가도 해 주시지요.

도희윤: 이번에 출판관계자들 9개 나라에서 10분이 오셨고, 인권활동가들은 3개국 세 분이 참석하셨는데, 세미나 내용도 좋았고, 또 탈북 작가들과의 대화를 통해서 여러 가지 북한 인권과 문학을 접목했던 것에 큰 의미를 부여하고 싶습니다. 각자 준비했던 그 내용도 너무 좋았고요. 그리고 문학과 인권의 접목이라는 차원의 아주 새로운 부분들을 발견하지 않았냐는 평가도 해 봅니다. 두 번째 날에 진행되었던 이 판문점 땅굴의 현장은 이 분단의 현장을 직접 눈으로 둘러보는 그런 시간을 가졌던 것은 국제 출발인들 차원에서 물론 인권 운동가들은 몇 번 왔던 분도 있고요. 국제 출판인들 같은 경우는 처음 오신 분들이 대부분 이었습니다. 정말 서울은 자유롭게 일상적으로 바쁘게 움직이는 그런 사회에 있다, 바로 얼마 떨어지지 않은 판문점, DMZ라고 하는 분단의 현장을 다녀와서는 아! 정말 이 남북한의 분단 상황, 북한이라는 삼엄한 나라에서 반디 선생이라는 분이 존재했고, 그분이 쓰신 원고지가 자유 세계로 와서 또한 자기 나라의 언어로 출판한 것에 대해 자랑스러워 했고요. 또한, 국제출판인들 뒤풀이 과정에서 ‘아주 좋았다’라는 자신들의 소감, 감상을 남기고 돌아가셨습니다.

국제출판인들을 만난 탈북작가들의 반응은 어떠했습니까?

도희윤: 우리 탈북민 작가분들도 너무 좋았다고 평가해 주셨어요. 그래서 이런 기회를 줘서 너무 감사 하다는 인사 많이 받았는데, 우리 탈북 작가들 직접 명암도 주고받고 또 저녁 식사 자리에서 대화도 나누면서 서로 많은 부분에 대한 교류의 가능성 확인하는 자리였습니다. 앞으로 탈북 작가들이 쓴 글들이 이 메일 등으로 보냄으로 인해서 지금은 반디의 고발을 출간한 직후지만. 앞으로는 탈북 작가들의 ‘문학적 자료도 충분히 자기들이 출판 내지는 활용할 수 있는 부문으로 삼겠다’라는 대화가 오고 갔기 때문에 탈북 작가들에게도 아주 소중한 시간이 됐습니다. 지금도 서로 연락을 취하는 분들도 계시고요. 앞으로 계획을 세우고 만날 분들도 있어서 저희는 나름대로 지원했던 입장에서 흡족하게 생각하고 있습니다.

자유아시아방송의 목요대담, 오늘은 북한을 고발한 반디의 ‘고발’ 소설을 출판한 국제출판인들 한국 방문 소식을 “행복한 통일로” 도희윤 대표로부터 알아보았습니다. 지금까지 인터뷰에 RFA 이현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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워싱턴-이현기 leeh@rfa.org
2017-04-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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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기 북한선교학교가 열리고 있다.
제2기 북한선교학교가 열리고 있다.
사진 제공: 북한선교회

근세 세계 3대 교회 부흥운동은 영국 웨일즈의 부흥, 미국 뉴잉글랜드 지방의 대각성 운동과 평양 대 부흥 운동으로 특히 1907년 평양 대 부흥 운동은 전무후무한 성령의 강한 역사로 말미암아 대 회개운동이 평양에서부터 출발해서 한반도 전역으로 퍼져나간 운동이라고 워싱턴 북한 선교회 정인량 이사장이 자유아시아방송과 회견에서 밝혔습니다. 정 이사장은 워싱턴은 선교 전략적 가치 면에서 가장 탁월한 북한 선교전략의 거점이라며, 21세기를 살고 있는 북미지역 동포들과 교회 지도자들에게 맡겨진 책임은 매우 중요하다며 함께 북한교회 재건에 나서야 한다고 강조했습니다.

자유아시아방송 목요대담 오늘은 워싱턴 북한선교회의 북한의 무너진 교회 재건 사업에 관해 워싱턴 북한 선교회 정인량 이사장과 회견을 통해 알아봅니다.

워싱턴 북한선교회의 제2기 북한선교학교에서 ‘무너진 북한의 교회 재건’하기로 목표를 뒀다고요. 북한선교회의 창립부터 오늘에 이르는 주요활동은요.

정인량: 우리 워싱턴 북한선교회는 2016년 6월 24일에 설립, 이제 1주년을 목전에 두고 있습니다. 설립과 동시 14명의 탈북민을 초청해서 9박 10일 동안 워싱턴 인근 3 교회 북한선교집회를 한 바 있습니다. 그리고 그 기간에 탈북민들을 위한 선교 훈련 세미나 또한 그들이 미국을 방문했기 때문에 미국 문화 체험 관광을 통해 탈북민들과 좀 더 가까이 가는 그런 프로그램을 진행했고요. 그 결과 예수의 제자화 내지는 장차 통일 이후 북녘 동족 선교의 출발점을 놓았다고 자평하고 있습니다. 이후 워싱턴지역의 성도들을 대상으로 두 차례 북한선교학교를 열었고 2017년 10월경에 3차 북한선교학교를 열 계획입니다. 수료자중에 소명자는 탈북민선교를 할 수 있는 협력선교사로 파송할 계획입니다. 올 7월 초에는 한국의 유수한 북한선교학자들을 초청 북한선교심포지움과 세미나 및 선교집회를 열어 워싱턴지역뿐만 아니라 전 미주지역에 북한선교에 관심을 불러 일으킬 계획입니다. 금년 8월에는 통영에서 한국의 탈북민들과 미국의 탈북민 선교에 관심을 가지는 분들과 함께 모여 북한선교를 위한 전략회의를 가질 예정으로 있습니다.

무너진 북한의 교회는 대략 얼마나 되며 북한교회의 수난사에 대한 이야기 들려주세요.

정인량: 1883년 북한 황해도 장연군 소래에 세워진 소래교회가 한국의 최초의 교회입니다. 올해는 2017년이니까 134년이 됩니다. 그리고 그 이후에 평양에 장대현 교회를 비롯해서 우후죽순처럼 북한에 교회가 세워졌고, 1950년 한국동란 발발 전까지 북한에는 약 3천 개의 교회가 있었다고 합니다. 그런데 한국교회의 특징은 선교사들이 들어와 세운 교회가 아닌 한국 사람들에 의해 자생적으로 세워진 교회이며 교회건축도 그렇고 선교사 파송도 그러하고 성경번역이나 반포도 한국인들의 손으로 이루어진 독특한 교회입니다. 그런데 이 모든 것이 북한과 북한교회에서부터 시작되었다는 특징이 있지요. 공산화된 북한지역에는 현재 두 곳의 어용 교회가 있을 뿐 전혀 종교의 자유가 없고, 특히 기독교는 전무하며 아직도 선교와 전도의 불모지로, 어떤 선교학자는 북한을 미전도 종족으로 부르고 있습니다. 공산주의자들과 북한정권이 교회 말살과 그 핍박은 필설로 다 할 수 없고, 단시간에 수많은 순교자들의 피로 강수를 이루었던 것이 북한 교회의 현실인 것입니다.

1907년 평양 대 부흥 운동의 역사적 의의가 있다면은요.

정인량: 1907년 평양대부흥운동은요. 근세 세계 3대 부흥운동에 속합니다. 영국 웨일즈의 부흥, 미국 뉴잉글랜드 지방의 대각성운동과 평양대부흥운동입니다. 그런데 이 3 대 부흥운동중에 특히 평양대부흥은 전무후무한 성령의 강한 역사로 말미암아 대 회개운동이 평양에서부터 출발해서 한반도 전역으로 퍼져나간 운동이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그래서 이 운동을 통해서 교회가 성결한 가운데 부흥을 촉발시켰던 것이지요. 그래서 북한으로부터 남한에 이르기까지 많은 교회들이 이 기간에 세워졌고, 특기할 점은 이것 역시 피선교국이었던 한국교회와 한국성도들에 의해 이루어졌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 부흥운동을 통해서 참으로 재미있는 것은 외국에서 온 선교사들에까지도 큰 영향을 미쳤다는 것을 주목해야 합니다. 이후 한국교회는 사경회 중심의 부흥회가 계속되었다고 볼 수 있습니다.

무너진 북한 교회 재건 사업에 대한 계획이 있으면 설명해 주시지요.

정인량: 1970년에서 1980년에 이르는 십 년 동안 한국교회는 서울 여의도 광장에서 대중전도집회 열기로 가득 찼습니다. 소위 mass evangelism 이란 것인데, 그래서 평양 대 부흥 이후에 한국교회는 미증유의 대 부흥을 맛보았던 것이지요. 평양 대 부흥에 이은 놀라운 축복이었습니다. 이후 한국교회는 경제부흥과 맞물려 세계 선교사상에 찾아 볼 수 없는 물량적 대부흥기를 맞았습니다. 세계 최대 장로교 감리교, 성결교, 순복음교가 다 한국에 몰려 있었고 그것도 강남이라는 좁은 지역에 종교 벨트를 형성하게 되었던 것이지요. 그때 북한교회 재건운동이 시작되었습니다. 북한에서 내려온 목회자들에 의해 시작되어서 남한의 일(1) 교회가 북한의 무너진 3천 개 교회를 한 교회씩 맡아 재건하자는 운동이 요원의 불길처럼 타올랐지만 곧 시들어졌습니다. 그 이유는 여러 가지로 생각해 볼 수 있겠지만, 제 생각으로는 지나친 개 교회 성장 전략으로 인한 연합운동이 결렬되었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우리는 세계선교가 중요한 한국교회의 과제이고 사명이지만 그 중에서도 동족선교가 우선순위라는 것을 잊어서는 안될 것입니다. 워싱턴북한 선교회의 모토 중에 하나는 우리의 땅끝은 예루살렘이 아니라 북한이라는 것을 고취시키는 것입니다. 그 목표는 장차 통일 이후, 속한 시일 내에 북한교회가 재건되는데, 디아스포라 한인교회들 특별히 북미주에 산재해 있는 교회들이 연합해서 이 일을 촉구하고 한국교회 원래로 보존시키자는 데 우리의 목표가 있습니다.

무너진 북한 교회 재건과 워싱턴 동포들이 할 일은?

정인량: 물론이지요. 워싱턴은 사실 북한선교의 요람이 될 수 있습니다. 선교 전략적 가치 면에서 가장 탁월한 북한 선교전략의 거점이라고 저는 생각하는데요. 이는 사도 바울이 로마를 세계 선교의 중심지로 삼았던 것과 같은 맥락이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그 이유는 워싱턴은 오늘날의 로마와 같이 명실상부한 세계의 수도로서 정치 문화 경제 군사 특히 IT산업의 메카이며, 이로서 세계 모든 전략적 단체와 그 모임들이 이곳에서 이뤄지고 있지 않습니까? 특별히 NGO의 요람이기도 한 까닭입니다. 북한선교는 현재적으로는 북한 관련 NGO들과 긴밀한 협력이 요구되는 선교일 수밖에 없습니다. 이런 중요한 지역에 21세기를 살고 있는 동포들과 지역교회들 특히 지도자들에게 맡겨진 책임은 매우 중요하다고 생각해 볼 수 있습니다. 본국교회가 겪고 있는 쇠태기가 이 디아스포라 교회에 파급되는 것을 막는 것은 이런 북한선교에 대한 전향적인 사고의 변환과 이은 실질적으로 행동하는 신앙의 결단이 필요하다고 생각되는 것입니다. 개 교회 성장프로그램에 올 인하면 그 결과는 뻔합니다. 동족선교가 북한교회재건과 직결된다는 것을 의식하고 이 문제에 대하여 함께 고민하고 실질적인 도움의 장이 펼쳐지기를 소원합니다. 그래서 저는 7월에 있을 워싱턴 북한 선교 심포지엄에서 이런 문제들이 심도 있게 다루어질 것이므로 워싱턴지역의 목회자들 평신도 지도자들의 적극적인 참여와 기도를 부탁드리는 것이지요.

북한 주민들의 삶 속에 복음 선교와 복음 통일에 대한 중요성에 대해 들려주시지요.

정인량: 금번 제 2기 북한선교 학교에 강의를 맡아준 2분의 탈북민 강사들의 간증을 통해 북한의 실정이 얼마나 비참한 것인지 새삼 놀랍고 가슴 저미도록 아팠습니다. 이것은 실제이며 허구가 아닙니다. 따라서 자유를 향유하고 있는 우리들로서는 북한동포들에 대한 책임이 막중한 것이다. 만약 우리들이 서둘러 북한선교와 복음안에서 평화 통일을 대비하지 않는다면 하나님의 진노가 어떤 방법으로 임할련지 예측할 수 없습니다. 그러나 감사한 것은 탈북민을 실제로 돕는 교회들과 선교단체들이 적지 않고 그들의 전략이 만만치 않다는 것이다. 이런 운동들이 1970-1980년대의 북한재건운동처럼 또다시 사그러 들지 않도록 열심으로 기도하고 물심으로 돕고 또 협력하여서 어찌하든지 북한선교를 위해서 하나가 되는 그런 운동들이 이 미주에서 특별히 워싱턴에서 일어났으면 좋겠다 하는 것이 제 간절한 소망 중에 하나입니다.

자유아시아방송 목요대담 오늘은 워싱턴 북한선교회의 북한의 무너진 교회 재건 사업에 관해 워싱턴 북한 선교회 정인량 이사장과 회견을 통해 알아봤습니다. 진행에 RFA 이현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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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04-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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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벽 작가가 신작 트럼프 대통령이 김정은을 훈계하는 그림 들고 백악관 앞에서 지난달 31일 일인 시위를 하고 있다.
송벽 작가가 신작 트럼프 대통령이 김정은을 훈계하는 그림 들고 백악관 앞에서 지난달 31일 일인 시위를 하고 있다.
사진제공: 헨리 송

 

미국 컬럼비아대학의 초청으로 미국에 온 탈북 화가 송벽 씨가 지난 달 31일 미국 대통령 관저인 백악관 앞에서 트럼프 대통령이 김정은 독재자를 국제형사재판소에 제소해 주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자신이 그린 그림을 들고 1인 시위를 벌였다고 자유아시아방송과의 회견에서 밝혔습니다. 송벽 씨가 그린 그림 배경에 세계 지도가 있고, 자유 평화 글씨와 ICC 라고 쓰여 있으며 트럼프 대통령이 김정은을 훈계하는 모습이 담겨 있는데 이 그림을 백악관에 전달하기 위해 절차를 밟고 있다고 송벽 씨를 돕고 있는 헨리 송이 또한 자유아시아방송에 전했습니다.

 

송벽 씨는 이번 미국 방문에서 28일부터 30일까지는 컬럼비아 대학에서 그림 전시회와 학생들에게 북한 실상에 대해 강연했으며, 3일에는 미주리 아시아센터에서 송벽 작가 일일 전시회를 갖기도 했습니다. 그 외에도 오하이오 등지의 대학에서도 전시회와 강연 일정을 갖고 있습니다.

자유아시아방송 목요대담 오늘은 미국 방문 중에 있는 송벽 씨와 지난 토요일 미국 방문과 관련해 인터뷰 했습니다.

 

미국 방문 일정 중 백악관 앞에서 1인 시위를 하셨는데 특별한 이유가 있습니까? 그리고 시위 때 들고 있던 그림을 백악관에 전달 하려고 절차를 밟고 있다고요.

 

: 제가 이번에 트럼프 대통령님에게 저의 작품을 전달 하려고 하거든요. 북한에서 온 탈북 화가 송벽의 간절한 마음 그리고 북한 국민들의 그 처절함, 그 독재자를 하루 빨리 트럼프 대통령님이 많은 관심 가져서 그 독재자를 빨리 끌어 내리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이번에 백악관 앞에 가서 사진도 찍고 그리고 전달하려고 합니다.

 

백악관 앞에서 들고 있던 그림은 어떤 내용의 그림입니까?

 

: 김정은이 트럼프 대통령과 같이 있는 작품인데요. 한 배경에는 세계지도를 그려 넣어요. 그렇게 하고, ICC 국제형사재판소에 김정은을 빨리 제소를 하고 그리고 하루빨리 김정은이가 핵을 가지고 공갈을 하고 위협하는 것을 못 하게끔 해달라는 부탁이 간절하게 담겨 있습니다.

 

송벽 작가는 그림으로 북한인권 상황을 전 세계에 알리고 있는데 지난달 28일부터 30일까지 컬럼비아 대학에서 자신의 새로운 그림 전시회와 함께 북한의 인권상황을 자신이 겪은 경험으로 증언했다고요

 

: 제가 이번에 뉴욕의 컬럼비아대학에 초대 받았거든요 저 여기 온지가 몇 일 됐는데, 컬럼비아대학생들에게 북한에서의 인권과 북한의 실태 그리고 북한 사람들의 삶에 대해서 소상하게 이야기 했어요. 특강도 하고요.

 

뉴욕 컬럼비아 대학에서 참가한 학생들 반응은 어떠했습니까?

 

: 학생들이 그렇게 북한에 대해서 관심이 그렇게 높은 줄을 상상 못 했어요 그래 그 분들에게 왜 북한 사람들만 이세상에서 그런 삶(인권 부재)을 살아야 되는지, 왜 북한 주민만 독재자 김정은 밑에서 진짜 자유가 무언지, 인권이 무언지도 모르고 살아가는 거에요.

 

뉴욕 컬럼비아 대학에서 북한 김정은 독재자를 끌어내리는 것 만이 북한 주민의 희망을 안겨 줄 수 있다고 호소했다면서요.

 

: 저도 북한에서 30년 가까이 살아왔지만, 그래도 내 고향 사람들 반쪽에서 2,500만 국민들의 고통, 제가 너무나도 잘 알기 때문에 이제 세계 사람들에게 호소를 자꾸 하는 거지요. 지금 이것은 북한만의 문제가 아니라 세계에서 집중적으로 조명을 해 가지고 진짜 하루 빨리 북한의 김정은 독재자를 빨리 끝내는 것이 북한주민들에게 희망과 꿈을 주는 거거든요.

 

미국 뉴욕 컬럼비아 대학뿐 아니라 3일에는 미주리 아시아센터에서 그리고 그 외 오하이오 등지의 대학에서도 전시회와 강연 일정을 갖고 계시지요.

 

: 이번에 다른 대학에 들어가는데 많이 기대 되거든요. 그래서 저는 탈북자의 한 사람으로서, 작가로서 김정은 독재자가 무너질 때까지 사명을 가지고 작품활동을 세계 여러 나라 다니면서 진행하려고 합니다

 

이번에 전시한 작품들 설명해 주시지요.

 

: 이번에 새로운 작품으로 김정은의 패러디를 작품화 했거든요. 제목 자체가 살인 미소인데, 그 살인 미소 속에 담겨있는 굶주림, 피의 굶주림으로 입술을 빨갛게 표현 했거든요. 그래 이 독재자가 아직까지도 피에 굶주려 가지고, 수많은 사람들을 총살해 죽이는데 하물며 자기 형까지, 말레이시아에서 암살 하는 걸보고, 이 독재자는 이 세상에서 있으면 안되겠다. 빨리 빨리 끌어 내려야지 하는 생각으로 이번에 새로운 작품으로 김정일 패러디로 선보였습니다.

 

이번 새로운 작품에 대한 반응은 어떠했습니까?

 

: 반응이 너무 좋지요. 전시장에 수많은 학생들이 찾아오고 격려해주고 그리고 강당에서 특강 됐거든요. 많은 학생들이 찾아 준 가운데 저의 입을 통해서 그리고 저의 그림을 통해 북한 현실에 대해 많은 걸 알게 됐다고 저에게 이야기 하고, 저도 놀랬어요. 이렇게 많은 분들과 교수님들이 찾아오고 그래 미국에 올 때마다 새로운 마음가짐을 갖게 되는 거예요. 그래서 더 열심히 해야겠다.  전시회를 더 많이 열어야겠다. 너무나도 좋았어요

 

세계인들에게 들려주고 싶은 말은?

 

: 지금 하고 있는 역할이 그거 이거든요. 북한국민들은 진짜 배불임과 자유를 누리지 못하면서 팍팍함과 고달픔에 살고 있는데 이 독재자는 세계인들에게 핵으로 위협하고, 미사일을 위협하고, 장난감 군사놀이를 하는지, 전 세계인들에게 부탁하고 싶은 말은 제발 그 독재자 밑에서 신음하고 있는 북한 국민들에게 하늘이 가져다 주는 4계절의 풍요로움과 그 여유로운 삶을 살 수 있게끔 세계인들의 많은 관심과 격려 그리고 응원 부탁 드리고 싶습니다.

 

자유아시아방송 목요대담, 오늘은 미국을 방문 중인 탈북 화가 송벽 씨를 만나봤습니다. 지금까지 인터뷰에 RFA이현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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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05-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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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4월 8일 평양 김일성경기장에서 열린 AFC여자축구아시안컵 예선 경기에서 남한과 북한 선수들이 볼을 다투고 있다.
지난 4월 8일 평양 김일성경기장에서 열린 AFC여자축구아시안컵 예선 경기에서 남한과 북한 선수들이 볼을 다투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제공

여러분 안녕하십니까? 통일문화산책 진행에 이현기입니다.

우리 조상들이 남겨준 전통문화가 광복 이후 남과 북으로 나뉘어져 지금도 생성돼 오는 서울문화 평양문화의 단면들을 살펴봅니다.

TEASER: 광복 후 서울에서는 단순한 수준의 간판광고가 생겨났지만 1960년대 말이 되면 네온사인 광고 간판이 등장하고 1970년대가 되면 고속도로를 따라서 옥외 간판광고가 줄을 섰지요.

백과사전 위키 백과에 간판(看板)은 홍보, 광고 등을 위해 나무, 플라스틱, 금속 등 어느 정도 내구성을 재질로 한 일반적으로 판상의 물체이고 주로 야외에서 사용된다고 설명하고 있습니다. 얼마 전 남북한 광고세계를 말하면서 김일성 경기장에도 광고용 간판이 있다고 했는데 오늘도 남북한 간판문화에 대해 북한문화평론가 임채욱 선생과 함께 이야기 나눕니다.

먼저 간판도 문화인지부터 말씀해주시죠.

임채욱 선생: 네. 4월 초 김일성 경기장에서 벌어진 남북한 여자축구시합 장면을 보면 경기장 광고 간판이 보였지요. 음식점 이름도 보이고 기업체 이름도 보였습니다. 간판은 광고행위 중 가장 오래된 것이지요. 그런 의미에서 남북한 간판문화를 살펴보는 것은 의미가 있지요. 간판이 문화라는 것은 단순한 그림이나 디자인에서부터 상상력을 동원해야 하는 창의적인 표현까지 나타나기 때문에 문화인 것이죠. 물론 여기에는 제작기술까지 최신의 것이기 때문이죠.

광고와 간판은 같이 가는 것 같습니다만 간판 자체로서도 기능이 뚜렷한 것 아닐까요?

임채욱 선생: 그렇지요. 간판도 정보제공이란 점에서는 광고와 같지만 광고가 정보제공을 통해 상품판매나 서비스 이용을 목적으로 한다면 간판은 단순히 정보제공 자체가 목적이라 할 수 있지요. 빨간색 등이 어떤 때는 단순한 신호가 되지만 어떨 때는 뜻을 가진 상징으로 되는 것에 비유할 수 있을는지요.

간판은 어떻게 보면 단순히 알리기만 하는 표지가 아니라 종합작품이라고 해도 되겠군요?

임채욱 선생: 그렇지요. 간판은 종합예술이라 할 정도로 예술적 감각과 과학기술이 결합되는 것이지요. 과학기술의 발달은 간판을 온갖 재질과 색채로 만들어내게 됐지요. 재질만 해도 나무에서 시작해서 알미늄채널, 아크릴, 대리석, 철골, 주물까지 온갖 것이 사용되고 디자인은 햇빛에 따라 색상이 바뀌기도 하고 또 어떤 것은 바람에 따라 색상이 바뀌는 수준까지 왔지요. 간판미술과 제작기술이 결합된 최신 전자간판은 가히 신기할 정도이지요. 간판은 한마디로 단순한 표지판에서 각종 마크, 로고, 캐릭터 형태로 표현되는 종합작품이지요.

우리나라 간판의 역사는 어떻습니까?

임채욱 선생: 기록을 보면 고려 때 지금의 광화문에서 서울시청 부근까지 양쪽으로 긴 행랑으로 이어진 일반 백성들 거주지였는데 거주지를 구분하기 위해서 거주지 이름들을 현판에 새겨 뒀다고 합니다. 가령 흥선(興善), 영통(永通), 광통(廣通), 자양(資養), 행손(行遜) 같은 이름들이 보였다고 합니다. 조선시대에는 일본에 통신사로 다녀온 사람의 건의로 종로통에서 광교통으로 이어지는 거리에는 물건에 따라 그 이름을 적은 현판을 달았다고도 합니다. 일제가 통치하던 1920년대가 되면 간판은 상당히 퍼지는데 가령 1927년이 되면 유명인사 두 사람이 서울의 각 상점 간판을 둔 품평회를 열고도 있습니다. 이때가 되면 이미 간판이 미관을 해치지 않아야 한다는 관념에서 간판 규제도 실시됐지요.

한국에서 간판은 어떤 모습으로 나타납니까?

임채욱 선생: 광복 후 서울에서는 단순한 수준의 간판광고가 생겨났지만 1960년대 말이 되면 네온사인 광고간판이 등장하고 1970년대가 되면 고속도로를 따라서 옥외간판 광고가 줄을 섰지요. 간판이 도시미관을 해친다는 것은 늘상 느끼는 것이지만 간판이 도시미관을 아름답게 꾸미기도 하기에 서울시에서는 5월에 좋은 간판 공모전을 열고 파주시 같은 곳에서는 5월 한 달을 간판문화학교를 열어서 더욱 아름다운 간판 만들기 캠페인도 벌이지요.

이번에는 북한의 간판을 한 번 볼까요?

임채욱 선생: 간판은 정보를 제공한다지만 단순하면서도 알아보기 쉬우면 그 기능을 다한 것이 되지요. 북한에선 바로 이런 점을 두고 간판을 간단하게, 무엇보다 고유한 우리말로 쓰도록 권장하지요. 그래서 간판은 ‘군밤’, ‘군고구마’, ‘얼음과자’ ‘찬 단물’이라고 쓰여져 있기도 하고 ‘학생옷상점’ , ‘녀자옷상점’, ‘신발상점’쓴 것도 보입니다. 또 ‘고기국집’, ‘생선국집’, ‘만두국집’, ‘순대국집’, ‘내포국집’, ‘갈비국집’도 보입니다.

북한은 이런 간판들을 두고 인민들의 구미에 맞게 흔히 쓰는 생활적인 말로 쉽게 쓰여있다“라고 말합니다. 그래서 친근하게 안겨오고 사람들을 흐뭇하게 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나아가서 우리말을 적극 살려 쓰려는 인민의 높은 언어생활수준을 그대로 반영한다고 자랑합니다. 물론 간판제작 기술도 있어서 알미늄 채널을 사용한 것도 있지만 아직은 단순한 재질이 사용되고 있지요.

간판을 둔 학술적 연구도 있겠지요?

임채욱 선생: 물론이지요. 간판학이란 학문이 생겨날 정도로 간판에 대한 연구도 깊어지고 있지요. 가령 간판이 시인이나 소설가에게 어떤 영감을 주었을까, 간판과 관련된 그림이나 영화는 어떤 것이 있을까, 간판이 나타내는 시대상에서 어떤 의미를 찾아낼 수 있을까를 연구할 수도 있지요. 간판은 본래 알림의 기능을 하는 것이지만 이런 기능이 확장되어서 간판은 외관이나 학벌, 또는 경력 등 남 앞에 내세울만한 것이란 의미도 가지고 있지요. 그래서 간판이 좋다니, 간판 때문에 출세했다느니 하고 있기도 하지요. 이런 인문학적 연구도 해볼 수 있지요.

통일문화산책 함께 해주신 여러분 감사합니다. 지금까지 기획과 진행에 RFA 이현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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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네스코 세계무형문화유산인 강릉단오제의 주신인 국사성황신을 인간 세계로 모시는 대관령 국사성황 모시기 행사가 10일 대관령 일원에서 열렸다.
유네스코 세계무형문화유산인 강릉단오제의 주신인 국사성황신을 인간 세계로 모시는 대관령 국사성황 모시기 행사가 10일 대관령 일원에서 열렸다.
사진-연합뉴스 제공

여러분 안녕하십니까? 통일문화산책 진행에 이현기입니다.

우리 조상들이 남겨준 전통문화가 광복 이후 남과 북으로 나뉘어져 지금도 생성돼 오는 서울문화 평양문화의 단면들을 살펴봅니다.

TEASER: 한국이 등재한 문화유산 내용을 유형별로 말하면 세계유산이 12건, 무형문화유산이 19건, 기록유산이 13건입니다. 이는 세계 200개가 넘는 나라 전체로 보면 결코 적은 숫자가 아닙니다.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올린 한국의 문화유산은 아주 많은 편이라고 알고 있습니다. 북한도 뒤늦게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에 등재 하려는 노력을 한다고 하는데 그 현황은 어떤지, 오늘은 남북한의 유네스코 문화유산에 대해서 북한문화평론가 임채욱 선생과 함께 살펴 보겠습니다.

임채욱 선생: 유네스코, 즉 유엔교육과학위원회가 전 세계 문화유산을 목록으로 만드는 사업을 한 이래 한국은 아주 많은 유산을 올리고 있습니다. 기록유산 같은 것은 13개로 아시아에서 가장 많이 올렸고 세계적으로도 4번째입니다. 기록유산뿐 아니고 다른 부문도 많은 편입니다.

문화유산을 여러 부문으로 나눠서 등재하는 모양인데 그 내용을 좀 말씀해 주시죠.

임채욱 선생: 크게 세 부문으로 나눠 심사를 하고 등록시킵니다. 세계유산, 인류무형문화유산, 기록유산이지요. 세계유산은 성격에 따라 다시 문화유산, 자연유산, 복합유산으로 분류됩니다. 한마디로 보존할 가치가 있다고 판단되는 인류문화를 포괄한다고 보면 되겠습니다. 다만 인류의 보편적인 성격을 가져야 하지요. 유네스코가 이 사업을 시작한 것은 1972년부터인데, 이집트 나일강에 댐을 건설하면서 고대 이집트 유적과 유물이 물에 잠기게 되면서 이것들의 보존운동 일어났지요. 이후 없어질 위험에 처한 유물과 유적을 인류가 공동으로 보존하자는 뜻으로 목록을 만들기 시작한 것이 문화유산을 등록하게 된 계기가 됐지요. 처음에는 별로 관심을 두지 않던 나라들도 지금은 서로 다투어서 등재를 많이 시키려고 하게 됐어요. 왜냐하면 지정된 다음 관광자원으로 활용이 가능하기 때문이지요. 관광수입에 아주 좋은 일이지요.

그럼 한국과 북한이 등재한 유산내용을 소개해 주시죠.

임채욱 선생: 한국이 등재한 문화유산 내용을 유형별로 말하면 세계유산이 12건, 무형문화유산이 19건, 기록유산이 13건입니다. 이는 세계 200개가 넘는 나라 전체로 보면 결코 적은 숫자가 아닙니다. 문화유산 심사는 대체로 매년 6월에 하는데 올해 한국은 무엇을 올렸는지 밝혀지지 않고 있습니다만 작년에는 서원을 올려서 심사에서 탈락했어요. 헛발질을 한 것이지요. 한편 북한은 세계유산 2건, 인류무형유산 2건이 전부입니다.

구체적으로는 어떤, 어떤 것이 있습니까?

임채욱 선생: 네. 세계유산이 12건이라고 했죠? 이 12건 중 11건이 문화유산이고 1건이 자연유산입니다. 자연유산 1건은 제주 화산섬과 용암동굴이고 문화유산 11건은 1995년부터 2015년까지 등재된 것인데, 해인사 팔만대장경을 보관한 장경판전, 조선조 왕들을 제사 지내는 종묘, 경주에 있는 석굴암과 불국사, 창덕궁, 수원화성, 고창, 화순, 강화에 있는 우리나라 고인돌 유적, 경주역사지구, 조선조 왕릉들, 안동에 있는 하회마을과 경주에 있는 양동마을, 그리고 남한산성과 백제역사유적지구입니다.

인류무형유산이 19건이나 된다는데 소개해 주시죠.

임채욱 선생: 네. 19건은 2001년부터 작년 2016년까지 지정된 것인데요. 종묘제례, 판소리, 강릉단오제, 처용무, 강강술래, 제주 칠머리당 영등굿, 남사당놀이, 영산재, 한국의 전통목조건축, 매사냥, 가곡과 국악관현악 반주곡, 택견, 줄타기, 한산 모시짜기, 아리랑, 김장문화, 농악, 줄다리기, 제주해녀문화입니다. 기록문화유산 13건도 계속 소개하지요. 1997년부터 2015년까지 등재된 것입니다. 조선왕조실록과 훈민정음 해례본이 가장 먼저 됐고 이어서 직지심체요절, 승정원일기, 고려대장경판(팔만대장경을 말하지요), 조선시대 의궤, 동의보감 등이 이어집니다. 계속해서 5.18광주민주화운동 기록, 일성록, 새마을운동 기록물, 이순신 장군의 난중일기, 유교책판들, KBS 특별생방송 이산가족을 찾습니다 기록물이 있습니다.

그럼 이번에는 북한의 문화유산을 소개해 주시지요.

임채욱 선생: 북한은 간단합니다. 2004년에 고구려 고분군이 등재되고 2013년에 개성역사유적지구가 등재되었습니다. 고구려 고분군은 모두 63기인데 평양과 그 주변지역에 있는 것들입니다. 북한은 이들을 등재시키려고 1998년 7월에 세계유산협약에 가입했지요. 고구려 고분군이나 개성역사유적지구 등재에는 한국도 협력을 했지요. 2003년 고구려 고분군을 신청했다가 보류된 뒤 2004년 다시 신청할 때 한국대표는 각국대표를 상대로 활동하면서 동족애를 과시했다고 합니다. 그 뒤 개성역사지구도 2007년에 등재신청을 했으나 보류판정을 받았는데 지적된 문제점을 보완하는 과정에서 한국학자들도 도움을 주려 했다고 합니다. 그러나 북한은 개성역사지구 등재에서는 프랑스와 협력해서 드디어 2013년 6월에 등재결정을 이끌어 냈다고 합니다. 개성역사지구 등재를 앞두고 북한학자들과 한국학자들이 공동으로 진행하던 고려 왕궁 만월대 공동발굴사업은 안타깝게도 중단상태가 되었어요. 인류무형유산 2건은 아리랑민요(2014)와 김치 담그기 풍습(2015)입니다.

남북한은 동일한 유산을 경쟁적으로 등재하려 할 수도 있겠군요.

임채욱 선생: 그렇지요. 가령 작년에 북한이 기록문화유산으로 등재하려고 한 ‘무예도보통지’ 같은 책은 남북한 다 같이 소유하고 있기 때문에 서로 먼저 하려고 할 수도 있지요. 이런 문제를 생각하면 남북이 공동으로 우리 땅의 문화유산들을 세계에 알릴 수 있는 시대가 오기를 바라게 되지요.

오늘 이 시간에는 남북한의 유네스코 문화유산을 목록만 나열한 셈이 됐는데 다음 기회에 하나하나 소개하는 기회가 있었으면 합니다.

임채욱 선생: 그거 좋지요. 우리 문화유산을 애호한다는 면에서 알면 알수록 사랑하게 되기 때문에 한 가지씩, 한 가지씩 소개하면 좋지요.

통일문화산책 함께 해주신 여러분 감사합니다. 지금까지 기획과 진행에 RFA 이현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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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 대성산 유원지에서 열린 국제아동절 기념 행사 모습.
북한 대성산 유원지에서 열린 국제아동절 기념 행사 모습.
사진-연합뉴스 제공

 

여러분 안녕하십니까? 통일문화산책 진행에 이현기입니다.

 

우리 조상들이 남겨준 전통문화가 광복 이후 남과 북으로 나뉘어져 지금도 생성돼 오는 서울문화 평양문화의 단면들을 살펴봅니다.

 

TEASER: 한국에서는 1957년에 ‘어린이 헌장’을 선포하고 1970년부터는 공휴일로 지정돼 하루를 마음껏 즐기는 어린이날이 되고 있지요.

 

백과사전 위키백과에 어린이날(Children's Day)은 여러 나라에서 기념일로 정해져 있는 날로, 이날에는 특별히 부모들이 어린이들과 함께 시간을 보내거나, 어린이가 평소에 가지고 싶어했던 물건 등을 선물해주기도 한다고 설명하고 있습니다. 한국에서는 어린이날이 5월 5일이지만, 북한은 6월 1일 그리고 나라와 종교·문화권 등에 따라 기념일이 각각 다르다고 합니다. 통일문화산책 오늘도 북한문화평론가 임채욱 선생과 함께 남북한 어린이날에 대해 알아보겠습니다.

 

먼저 남북한 어린이날이 다르지요.

 

임채욱 선생: 네, 푸른 5월에는 어린이를 위한 날이 있습니다. 그런데 북한에는 어린이날이란 표현은 없고 어린이와 관계되는 날은 6월 1일과 6월 6일이 있습니다.

 

어린이날 표현이 없는 것은 어떤 연유가 있는가요?

 

임채욱 선생: 6월 1일은 국제아동절로 그전 공산권에서 기념하던 것을 그대로 따르고 있고 6월 6일은 조선소년단 창설기념일로 소년단 어린이들의 기념일이지요. 소년단 어린이 나이가 만 7살부터 14살까지니까 한국에서 초등학교 6학년 나이까지에 해당되는 어린이들이지요.

 

국제아동절을 설명하신다면?

 

임채욱 선생: 북한에서 1950년부터 기념했으니까 올해 6월 1일이 67주년 기념일이 됩니다. 국제아동절은 1949년 9월 모스크바에서 공산권 여성단체인 국제민주여성연맹이 6월 1일로 정한 것인데 이 6월 1일은 나치스 독일군이 1942년 6월 체코슬로바키아 수도 프라하에서 수많은 어린이를 학살했다는 사실에 근거해서 이 어린이들을 추모하자는 뜻으로 결정된 것이라고 합니다.

 

북한의 조선소년단 창설일은 어린이날이라고 보기가 좀 어렵지 않나요?

 

임채욱 선생: 북한에서 어린이 범위를 몇 살까지라고 정한 건 없지만 6월 1일 아동절에는 유치원이나 애육원, 애육원은 어린 고아를 맡아 키우는 곳입니다만 유치원과 애육원 어린이만을 대상으로 하는 편이어서 6살에서 만 14살까지의 어린이에겐 기념일이 없는 셈이지요. 그래서 소년단 창설일이 어린이날을 대신한다고 볼 수도 있는 거지요.

 

그럼 소년단 창설일에 큰 행사를 합니까?

 

임채욱 선생: 소년단에 입단하는 어린이에게는 아주 뜻있는 날이 되지요. 입단식 행사는 꽤 중시되는 것인데 붉은 넥타이를 매주고 소년단 뺏지를 달아주면서 혁명을 이을 후비대가 될 것을 강조하는 날이기에 소년단 입단 당사자에겐 이를 뜻있게 받아들이는 날이 되지요.

 

북한에서 유치원이나 애육원 어린이를 위한 국제아동절 행사는 어떻습니까?

 

임채욱 선생: 비교적 성대하게 열어왔지요. 김정은도 매년 애육원을 방문해서 어린이 사랑을 보여주는데 올해도 그렇게 하겠지요.

 

국제아동절이나 소년단 창설 기념일을 한국의 어린이날과 비교하기에는 범주상의 문제가 약간 있겠습니다만, 기왕 말이 나왔으니 한국 어린이날도 설명해 주시지요.

 

임채욱 선생: 어린이날 5월 5일은 처음에는 5월 1일이었어요. 일본이 우리나라를 지배하던 그 시절 일본대학에서 아동예술과 아동심리학을 공부한 방정환(1899~1931)선생은 1922년 5월 1일 여러 동지들과 ‘어린이날’을 제정합니다. 그는 이듬해 1923년 3월에는 <어린이>라는 아동잡지를 창간하고 5월 1일에는 어린이날 기념식을 엽니다. 이 기념식에는 서울시내 소학교 학생 1천여 명이 모였고 기념식 후 200명 소년들은 서울을 4구역으로 나눠서 행진도 했습니다. 행진하는 도중에는 ‘어른에게 전하는 부탁’ 전단과 ‘어린이에게 전하는 부탁’ 전단을 나눠졌다고 합니다.

 

그런데 언제부터 5월 5일로 된 것이지요?

 

임채욱 선생: 5월 1일은 마침 만국노동자들의 축제일인 메이데이였지요. 그러다보니 좌익활동가들이 이날을 소년운동의 날로만 보지 않고 계급해방운동의 뜻도 겸하는 날로 보게 됩니다. 당초 방정환선생도 어린이를 종래의 윤리적 압박과 경제적 압박으로부터 해방을 목표로 했지만 계급해방과 같은 인식은 없었는데 좌익은 무산소년운동을 내세우면서 대립을 벌여갔지요, 이렇게 되다 보니 1927년 5월 1일에는 어린이날 기념행사도 따로따로 열렸지요. 이에 서로 비판을 하다가 1928년 다시 함께 기념행사를 열었지요. 이때는 전국에서 어린이 50만명이 참가했다는 기록을 남기지요. 하지만 1년도 안돼서 또다시 분열하게 됩니다. 무산소년운동을 주장하는 좌익이 소년운동단체를 장악해서 방정환선생이 이끄는 단체인사들을 쫓아내버립니다. 이처럼 좌파와 우파의 주도권 쟁탈 여파로 어린이날 기념행사는 두 쪽으로 쪼개졌고 그 뒤 다시 합해졌다가 하면서 행사만은 1937년까지 이어졌지요. 1937년 이후부터 광복되던 1945년까지는 일본제국주의에 의해 중단된 것은 당연하고요.

 

그럼 5월 5일은 광복 후에 바꿔진 것이겠네요?

 

임채욱 선생: 그렇지요. 광복 후 어린이날 부활을 말씀 드리기 전에 한 가지 언급할 것은 우리나라 어린이날을 제정하는데 주동이 된 소파 방정환선생은 1931년에 별세를 합니다. 그는 아동교육가였고 아동문학가였으며 아동인권운동가이고 독립운동가였지요. 그가 좌우익의 어린이날을 둔 상징쟁탈전을 보면서 눈을 감았는데 눈을 감는 그 순간에도 소년사랑을 실천했다고 하지요. 광복 후 어린이날 부활을 논의하던 소년운동권은 1946년부터 5월의 첫 일요일인 5일을 어린이날로 바꾸었지요. 이에 대해서는 5월 1일 메이데이를 피해서 정했다고도 보기도 하는데, 5일이 마침 마르크스 생일이어서 좌익에서도 묵인한 것 아니겠느냐는 추론도 있을 수 있지요. 어떻든 1946년 5월 5일 광복 후 첫 어린이날은 서울 종로에 있는 휘문중학교 교정에서 열렸는데 이날 국민의례가 어떠했는지는 알려지지 않는데, 남녀 4명의 어린이가 ‘800만 소년-소녀의 선서문’을 낭독했다고 합니다. 그 내용은 “다시는 집도 말도 빼앗기지 않고 새날 새 조선의 주인으로써 열심히 배우겠다”는 것이었습니다. 이날 여운형 같은 정치인이 축사도 했다는 것입니다.

 

그 뒤 어린이날은 계속 이어져 오는 거군요.

 

임채욱 선생: 한국에서는 1957년에 ‘어린이 헌장’을 선포하고 1970년부터는 공휴일로 지정돼 하루를 마음껏 즐기는 어린이날이 되고 있지요. 그리고 5월 1일부터 7일까지를 아예 어린이주간으로 정해서 온갖 기념행사를 하고 있지요.

 

다른 나라도 어린이날이 있다고 아는데요?

 

임채욱 선생: 네. 있는 나라도 있고 없는 나라도 있네요. 미국, 영국, 프랑스는 어린이날이 없다고 하네요. 캐나다는 있고 동북아시아는 대체로 있고 옛 공산권은 6월 1일 국제아동절을 그전처럼 지키고 있다고 합니다. 홍콩이나 대만은 중화민국정부가 1931년에 제정한 4월 4일을 그대로 지키고 있는데 홍콩은 중국영향으로 6월 1일로 바뀌고 있다는 것입니다. 일본은 좀 특이한데 남자어린이는 5월 5일로 공휴일인데 여자어린이는 3월 3일로 법정공휴일이 아니라고 하는군요.

 

남북한의 어린이날과 국제아동절 행사를 비교한다면 어떻습니까?

 

임채욱 선생: 한국에서 어린이날은 어린이 단체 등 민간부문이 주가 돼서 나름대로 성대하게 준비한다면 북한은 당국의 지도 밑에 민주여성동맹이란 부녀단체가 아주 조직적으로 행사를 실시하고 있지요. 행사내용을 사회주의 보육체계가 우수하다는데 두다 보니 한국 어린이는 썩고 병든 자본주의 사회에서 시들어 가고 있다고 비난하는 것도 매년 빠지지 않지요. 무엇보다 북한에서 국제아동절이나 소년단창설기념일은 공휴일이 아니란 점은 ‘세상에 부끄럼 없어요’라는 구호를 무색하게도 하지요.

“오월은 푸르고나 우리들은 자란다 오늘은 어린이 날 우리들 세상” 어린이날 노래의 한 구절처럼 ‘어린이 날 우리들 세상’이 남북한에서 같아지는 날이 언제 오려나요? 이날이 남북한 (1천만) 어린이가 진정 행복해지는 어린이날이 되겠지요.

 

통일문화산책 함께 해주신 여러분 감사합니다. 지금까지 기획과 진행에 RFA 이현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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