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풍 :: 2017/06/19 글 목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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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문경제개발구 안에 있는 조선공업원(북한공단)에서 일하는 북한 여성 근로자들이 점심식사를 마치고 일터로 돌아가고 있다.
도문경제개발구 안에 있는 조선공업원(북한공단)에서 일하는 북한 여성 근로자들이 점심식사를 마치고 일터로 돌아가고 있다.
사진-(사)코리아선진화연대 제공

 

동남아 일원에서 노동자로 일하다 몇 해 전 남한으로 망명한 심 모 씨는 북한 해외 노동자는 해외에서도 철통같은 감시로 탈출하기가 어렵다고 자유아시아방송과 회견에서 밝혔습니다. 특히 해외 노동자는 북한과 달리 1년 12달 쉬는 날이 거의 없고, 하루 12시간의 노예와 같이 일하지만 받는 돈은 1달에 10여 달러 그러나 그것마저도 이것저것 제하면 1년에 1만여 달러 정도 받는다면서 국제사회가 나서서 북한인민들 노예 생활에서 벗어나도록 도와주기를 간절히 바랐습니다.

 

자유아시아방송 목요대담 오늘도 동남아 일원서 일하다 탈북한 심 모 씨의 증언 함께 듣습니다

 

임금은 미국 돈인 달러로 받습니까? 아니면 북한 돈으로 받습니까?

 

: 말레이시아 경우 말레이시아 화폐인 링깃으로 줘요. 북한으로 들어갈 때 달러로 교환해 주거든요. 링깃으로는 북한에서 쓸 수가 없으니까 달러로 환산해 주는 거지요. 3년 일했다면 회사에서 관리해 주다가 3년 치를 관리자들이 계산해 주는 거지요.

 

북한의 해외 노동자로서 쉬는 날은 정해져 있습니까? 그리고 북한 노동자에게 주고 싶은 이야기가 있으면 해 주시지요.

 

: 정확히 언제 쉰다는 것은 없어요. 일하는 나라에서 쉬라는 날짜에 맞춰야 하거든요. 우리가 쉬겠다고 하면 안 되니까요. 북한 큰 명절에도 못 쉬어요. 외국 회사에서는 북한 명절과 관계가 없으니까 회사에서는 공사 기일을 빨리 마치려면 끝날 때까지 일해야 되니까 쉬는 날이 거의 없다고 보시면 됩니다. 전 세계 북한 노동자에게 부탁하고 싶은 게 있습니다. 우리 노동자들이 각성해서 정신 차리고 북한 정부와 싸우든지, 대화 투쟁을 해서 돈을 많이 받았으면 좋겠습니다.

 

해외 노동자들 감시도 받습니까?

 

: 탈출하기는 힘든 조건이에요. 감시를 너무 잘하기 때문에 예를 들어 한 직장에 30명이면 직장장이 있고 이외 두세 명이 더 감시하고 있거든요. 직장장 자체도 감시하고요. 그리고 매주 토요일마다 체크하고 생활 총화를 하기 때문에 빠져나오기 참 어려워요. 나가서 일하는 경우 몇 명 이 조가 되어 나가 일을 하지만, 그중에 한 명이 감시를 하거든요. 그래 서로 사람들이 마음에 맞아야 되는데 마음이 맞기가 힘들어요. 왜 서로 의심을 하잖아요. 이 사람에게 말했다가 위에 가서 말하지 않을까 그래 서로 서로 감시를 하다 보니까 탈출할 생각을 할 수가 없게 되어 있는 거에요. 감시라는 게 북한에서 왜 만들었는지 이젠 알 것 같아요. 서로서로 감시하게 해서 못나가게, 서로 의심하며 믿지 못하니까 자기 속을 털어 놀 수 없잖아요. 안타깝습니다. 철창 없는 감옥과 같지요.

 

심 씨가 앞으로 하고 싶은 일은 무엇입니까?

 

: 앞으로 국제사회에 북한 근로자들의 참혹한 상황을 알리고 북한의 잘못된 것을 바꿀 수 있도록 노력을 하겠습니다.

 

UN 등 국제사회가 할 일이 있다면은요.

 

: 북한 해외노동자들 인권개선에 위해 고용하는 나라가 나서기는 어려울 것 같고요. 미국, 유엔 등 국제사회에서 북한 해외노동자들 문제에 대해 이슈화 시키고 한쪽으로는 고용하는 나라에서 북한 인권 개선에 힘쓰도록 촉구하면 나아지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북한 해외 여성 노동자들은 어떻게 생활하고 있습니까?

 

: 정말 불쌍합니다. 여성 근로자라고 하면 식당에서 일 많이 하잖아요. 식당 아니면 간호사, 쿠웨이트 쪽에 나가 있습니다. 그러나 대부분 식당으로 나갑니다. 식당 경우 손님이 많으면 돈이 되지만, 손님이 없으면 돈 못 버는 날이 많잖아요. 그런데다 여자들은 젊은 20대 인데 그들도 외국에 나간다고 조사해서 성분이 좋은 사람 내 보내는데, 이 사람들 돈 벌려고 나와 보니까 자기 생각대로 안 되어요. 특히 여자들은 여성들로서의 생활이 있잖아요. 그런데 그것도 감시해요. 못 하게끔 말이에요. 저녁에 일이 끝나고는 다 태워서 숙소까지 데려가고 데려가서는 저녁에 모여 앉아서 총화를 하고 여자들도 어려워요.

 

해외에서 현지 나라의 방송을 들으시고 어떤 것을 느끼십니까?

 

: 중요한 거는 이게 거짓말이로구나! 또 북한식으로 생각하면 말이 안되는구나! 하는 것을 많이 느끼지요. 진실인 줄 알면서도 그러나 북한에 가족이 있잖아요. 사람이 모성애가 있어서요. 알면서도 바뀌지 않는 것이 바로 모성애 인 것 같아요. 북한은 그걸 이용하는 거지요. 너희들 북한에 부모 있지, 대사도 자식을 나두고 나가도록 하잖아요. 그 혈연관계를 이용하기 때문에 어쩔 수가 없는 거지요.

 

김정남 암살 사건 소식을 들으시고 어떤 생각 하셨어요.

 

: 제 생각에는 정말 불쌍하다는 생각이 들고요. 그것도 공항에서 당했다고 하니까. 참 불쌍하구나! 김정은이 얼마나 무서웠으면 저렇게 죽일까, 생각하기조차 부끄럽습니다. 어떻게 저렇게 형을 죽일까 그것도 일반 사람이 아닌 형을 죽일까 자기가 얼마나 두려우면 죽일까 하는 생각을 하면서 정말 이건 말이 안 되는 데 그런 생각이 듭니다.

 

혹 노동 현장에서 고문하는 경우도 있습니까? 아파서 병원에 가는 것은요.

 

: 일과 관련해서는 고문당하는 경우는 없고요. 일하다 사고당하면 돈이 없어서 싸구려 병원에 가서 치료받는 일은 종 종 있습니다. 외국에서 고문은 할 수가 없기 때문에요. 중요한 것은 사람들 일 시키는 게 중요하지 고문시켜 일 안 시키면 돈이 적어지니까, 사고 났을 때 최대한 빨리 나아서 일하게끔 하는 것이 중요하잖아요.

 

노동자 선발은 어떻게 합니까?

 

: 각 도에서 오는 게 아니고 평양시에 있는 사람이 주로 나갑니다. 모든 기관들이 평양시에 있기 때문에요.

 

노동자로 있다 귀국하면 잘 사는 편입니까?

 

: 북한의 삶보다는 나아지지요. 그래도 돈을 좀 벌어서 들어가니까? 그래 사람들이 다 북한 내에 있어서는 그만큼의 돈도 못 버니까? 고생은 하지만 조금 삶이 나아지기 때문에 많이 나오려고 하지요.

 

자유아시아방송 목요대담 오늘도 동남아 일원서 일하다 탈북한 심 모 씨의 증언 함께 들었습니다. 지금까지 인터뷰와 진행에 RFA 이현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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몽골의 봉제공장에서 근무하고 있는 북한 노동자들.
몽골의 봉제공장에서 근무하고 있는 북한 노동자들.
사진-북한인권정보센터 이승주 연구원 제공

 

동남아 일원에서 근로자로 일하다 몇 해 전 남한으로 망명한 심 모 씨는 북한 해외 노동자는 지옥과도 같은 감시와 통제 속에 삶의 질은 전 세계인이 상상할 수 없을 정도로 고통 속에 살고 있다고 자유아시아방송과 회견에서 밝혔습니다. 심 씨는 외국 나가서도 당 일꾼으로 생활총화에 참가해야 하고, 보위지도원 등 2중 삼중의 통제 속에 하루에 12시간 이상의 일해야 하는 참혹한 생활을 하고 있다고 증언했습니다.

 

자유아시아방송 목요대담 오늘도 동남아 일원서 일하다 탈북한 심 모 씨의 증언 함께 듣겠습니다

 

지난 시간에 북한 해외노동자들 어렵게 생활하고 있다고 증언했는데 하루 보통 몇 시간 일 합니까?

 

: 최소한 12시간 이상은 일하거든요. 쉬는 날은 별로 없어요. 쉬는 날이 있다면, 북한에서 큰 명절이 있지만, 현지 나라에서는 저희 명절이 아니잖아요. 우리는 외국의 조건에 따라야 하거든요. 그런 북한명절에도 일 나가려면 나가고 저녁에 일 끝나고 들어와서는 대충 술이나 한잔 마시고 자는 식으로 생활을 하거든요.

 

귀국할 때 돈은 어느 정도 모아 가지고 갑니까?

 

: 생활을 잘 못 하면 도중에 1년 채우고 나가는 사람, 2년 채우고 나가는 사람, 사고 나서 나가는 사람, 이런 사람은 돈은 1달 100달러면 1200달러 정도, 어떤 사람은 그 정도도 못 받아 갑니다. 위에서 매달 실적을 따져서, 북한은 연대적 책임이 있잖아요. 혼자 못하면 전체 책임으로 연등분해서 여러 사람이 책임을 가하기 때문에 그나마도 떼 내는 돈이 있어요. 그러다 보니까 1년에 1100달러 2년 있다 가는 사람은 그나마도 돈 가지고 가는 사람은 다행인데, 러시아 등 어떤 지역 경우는 돈을 주지 않고 돈표라는 걸 주거든요. 돈표라는 것은 북한 외화 상점에 가서 물건으로 교환하는 표인데 그것도 제대로 바꾸지 못하는 상황이어서 참으로 어려운 상황입니다.

 

해외 노동자 생활 얼마나 하셨고, 해외에서 힘들었던 때가 있으셨을 텐데 몇 가지 예를 들어 주세요.

 

: 저는 한 10년 가까이 일을 했는데요. 정말 고통스런 일이 많아요. 우선 첫째는 북한 정부에서는 나가서 조선 민족의 존엄을 높이라고 하지만, 조선민족의 존엄을 높이려면 돈이 있어야 하는데 돈이 없어 일어난 일이 많아요. 현지의 슈퍼마켓에 가서 물건을 사는 데 어떤 사람은 도적질하다 경찰에 끌려가고, 돈이 없다 보니까? 사람은 견물생심이라고 눈에 보이는 것은 좋아 보이니까 돈이 없으니까 물건 훔치다 경찰에 끌려가면, 윗사람이 와서 해결하는 어쩔 수 없으니까요. 그런 일이 벌어져도 상부에 보고를 안 해요. 왜 그것은 자기들 망신이니까 세부적으로 따지면 일반사람들 정말 어렵게 사는데 간부들은 알면서도 무시하거든요. 또 북한 당국에 알려지게 되면 현지 간부들도 오래 못 가니까 그래 어떠하든 막아보려고 하지만, 그러다 보면 일반 서민들은 그 상황에서 먹고 살아야 하니까 도적질한다든지, 술 먹고 깽판 부린다든지, 정말 있을 수 없는 일들이 현장에서 많이 벌어지거든요. 중요한 것은 현장에 감독하는 간부들이 나쁜 사람들이지요.

 

해외 노동자로 일하면서 일하는 지역 도심 거리를 자유롭게 나가 본 적이 있는 지요.

 

: 나가도 혼자서 못 나가고 최소한 2명 이상 나가는데 거의 집단적으로 내 보내거든요. 집단적으로 나가서 구경도 하고, 그런데 차림세 보면 정말 초라하지요. 외국인들이 보면 북한사람이란 걸 알거든요. 옷차림도 보니까 거지처럼 보이고, 신사다운 행동이 없잖아요. 일하는 사람들은요. 신사답게 행동을 못해요. 나가면 좀 거칠지 않아요. 그러다 보니까 어떤 사람은 물건을 채서 도망치는 사람도 있고, 정말 이루 말할 수 없는 데 이건 북한당국이 알아야 돼요. 북한당국도 문제지만, 현지에서 통제하는 간부들도 북한 상부에서 요구하기 때문에 어쩔 수 없다. 그래 총체적으로 북한당국이 문제인 거에요.

 

해외 노동자들 고통스럽게 사는 데에 대해 북한당국자들에게 주고 싶은 말은요.

 

: 아마 당국은 이런 내용들을 알면서도 모르는 체 할 것 같아요. 당국은 돈만 받으면 되니까 그래서 정말 인간이 아니다. 어떻게 돈을 위해서 자기 나라 사람들을 희생 시키고 이런 일을 하는지 인간성이 없다고 생각하고요. 두 번째로는 말로만 인간미 있게 대하라고 하지만, 하부 말단의 간부들도 스트레스를 받아요. 저 위로부터 욕을 먹으니까 또 아래로 연쇄 반응이 일어나니까 이거 참 어려운 상황이에요. 그래서 저는 북한 당국이 해외근로자들에게 충분한 보상도 해주고 그런 시스템으로 포상금도 주곤 해야 하는데, 그런 걸 안 하기 때문에 정말 어떻게 말하면 무례한 집단이지요. 돈을 위해서는 자기 나라 사람을 희생 시키는 그런 집단이라고 생각하거든요.

 

해외에 나갈 때 봉급에 대한 계약 조건이 있습니까?

 

: 정확히 말하면 계약을 할 때 직종별로 틀리지 않아요. General worker(일반 노동자) 하고 덤프트럭 기사, 드라어버 등 특수직이 나라마다 기준이 틀리거든요. 말레이시아 같은 경우 기술이 있는 사람 경우1500에서 2000 달러 주고, 일반 노동자는 한 500-600달러로 급여가 다 다른데, 다 주는 게 아니고 기술직 경우 한 달에 120에서 140달러, 책임자가 200달러, 그 밑에 있는 당비서, 보위지도원 190달러 등 월급 책정이 되어 있어요. 당비서나 지배인은 일 안 하잖아요. 일도 안 하면서 그 돈 가져가거든요. 그 사람들은 그 돈으로 충분하지만 노동자에게서 돈을 착취해 갖고, 돈도 그 사람들이 관리하잖아요. 외국 회사와 북한 회사가 계약하니까 외국 회사에서는 돈을 개인에게 못 주도록 되어 있거든요. 남한은 그러하지 않는데 북한은 개인에게 직접 돈을 안주고 회사끼리 거래하니까 외국 회사는 얼마 받는지 모르지요. 북한 회사에서는 뗄 것 다 떼지요. 90% 정도 떼서 50%는 국가에 바치고, 나머지 40%는 유지비도 하고 외국에 살려면, 저희들 집에 살면 렌트비 유지비 생활비로 쓰는 거예요. 실지 돈은 노동자들이 다 벌어서 첫째는 국가가 떼어먹고, 또 관리자가 떼어먹고 이런 시스템이다 보니까 북한 노동자들은 노예나 같은 심정이지요.

 

자유아시아방송 목요대담 오늘은 동남아 일원서 일하다 탈북한 심 모 씨의 증언 함께 들었습니다. 다음 시간에 계속됩니다. 지금까지 인터뷰에 RFA 이현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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돈벌이를 위해 러시아 연해주로 몰려든 북한 건설노동자들이 블라디보스토크 중심 레닌 거리의 한 상가 건물 보수 공사장에서 작업을 하고 있다.
돈벌이를 위해 러시아 연해주로 몰려든 북한 건설노동자들이 블라디보스토크 중심 레닌 거리의 한 상가 건물 보수 공사장에서 작업을 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제공

 

동남아 일원에서 근로자로 일하다 몇 해 전 남한으로 망명한 심 모씨는 북한 해외 노동자는 지옥과도 같은 감시와 통제 속에 삶의 질은 전 세계인이 상상할 수 없을 정도로 고통 속에 살고 있다고 자유아시아방송과 회견에서 밝혔습니다. 심 씨는 외국 나가서도 당 일꾼으로 생활총화에 참가해야 하고, 보위지도원 등 2중 삼중의 통제 속에 하루에 12시간 이상의 일해야 하는 참혹한 생활을 하고 있다고 증언했습니다.

 

자유아시아방송 목요대담 오늘은 동남아 일원서 일하다 탈북한 심 모 씨의 증언 함께 듣겠습니다.

 

북한의 해외 근로자들은 세계 어느 나라에 나가 있습니까?

 

: 북한 해외 근로자는 러시아, 중국, 방글라데시, 말레이시아, 쿠웨이트, 베트남, 인도네시아, 유럽에도 있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북한에서 해외 근로자를 파견하는데 어떤 자격 조건이나 심사가 있습니까?

 

: 당연히 제한이 있지요. 나가기 전에 신원조회를 하지요. 6개월에서 8개월 정도 신분 확인을 하는 거에요. 이 사람이 어디서 태어났으며, 할아버지가 뭘 하고, 고조할아버지 뭘 했고 등 북한의 간부 과에서 개인 신원조회를 해요. 가기 전에 신원조회를 해서 성분이 나쁘면 그 사람은 제외해 버리고, 또 그 가족 중에 미 해명된 사람이 있으면 또 제외 해 버립니다. 특별한 사정이 없으면 이 사람은 해외에 보내도 좋겠다는 결론을 간부 과에서 평가를 해요. 나갈 사람에 대한 보증이지요. 간부 과에서 신원확인을 해서 외국에 나가도 정말 변할 수 없는 사람이라는 것을 간부 과에서 증명해서 중앙당에 올리거든요. 그러면 중앙당에서 그 자료를 가지고 마지막 각 나라별로 나가는 데, 실례를 들면 말레이시아를 나간다 하면 발령장을 발부해 줘요. 중앙당에서 발령이 떨어지면 외무성에서 여권이 나오거든요. 여권을 가지고 또 외무 성가서 교육을 받아요. 각 나라에 대한 풍습이라든가, 그 나라는 어떤 나라이기 때문에 뭘 조심해야 한다. 이런 구체적인 것을 외무성에서 교육을 받고 마지막으로 보위부에서 교육을 받아요.  중요한 것은 보위부에서 교육을 받는 것은 나가서 우리가 사회주의 조국의 존엄을 철저히 지키고, 나가서 절대 정치적으로 말려들지 말고 나가서 우리 사회주의 조국의 위엄과 존엄을 보여줘야 한다는 교육을 해요. 교육을 받고 나서 외국에 나가는 거지요.

 

대체로 해외 파견 노동자들이 전 세계에 어느 정도 나가 있고 가장 많이 나가 있는 나라는요?

 

: 제가 알기로 정확한 숫자는 아니지만, 전 세계에 20만 명이 넘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제일 많이 나간 나라가 쿠웨이트, 러시아, 방글라데시, 아프리카 등입니다.

 

주로 해외에 파견된 노동자들 어떤 일을 합니까?

 

: 거의 건설을 많이 합니다. 정확히 따지면, 집 짓는 것, 길 만드는 것인데 거의 다 집 짓는 일을 많이 합니다. 주택 건설을 많이 하므로 북한의 각 기관마다, 즉 보건성, 체육성, 무역성, 기관마다 외화벌이를 해야 되기 때문에 외화벌이 기관마다 기술 인력들을 뽑아서 일할 현장에 맞는 인력을 뽑아서 외국에 내 보는 거지요.

 

해외에 파견돼서 어떻게 생활하는지 궁금한데요. 남한의 경우는 상당히 자유스럽게 자기 개인의 생활을 하고 있기도 합니다만,

 

: 참 진짜 제 생각에 어떻게 말해야 할지 모르겠지만, 정말 힘들게 사는 것 맞습니다. 중요한 것은요. 외국 나가서도 통제받아야 되고, 당 일꾼으로 생활 총화에 참가해야 되고, 보위지도원한테 통제받아야 돼, 정말 2중 삼중으로 통제 받으면서 일은 일대로 해야 하고, 정말 힘들게 살고 있습니다. 실례를 들면, 말레이시아 경우에는 정말 일반 노동자에게 한 달에 주는 돈이, 나라별로 조금씩 차이가 있겠지만, 100달러 안팎이거든요. (한 달 월급이요.)물론 100달러 안팎이고 또 그다음 일하는 방식은, 그룹별로 2-3명내지 더 이상 그룹을 지어서 내 보내지요. 내보내면서 너희들 한 달에 몇 천 달러 들여놔라! 편의를 봐 주겠다 이런 방식도 있는데, 이런 일을 못 하는 사람은 회사에서 관리하고 조금 기술 있는 사람은 혼자는 안되니까? 2-3명씩 짝 지어서 내 보내서 한 달에 회사에 얼마 낼지 계획을 세워줘요. 계획을 못 달성하면 불러들이고, 계획 실행한 사람은 내 보내고 그런 식으로 착취하지요. 그런데 중요한 것은 거의 90% 다 바치고, 본인에게 돌아오는 것은 10%도 안 된다는 것이지요.

 

총 봉급의 10분의 1도 안 되게 받는데,  북한 노동자들 어떻게 사는지요.

 

: 정말 정말 외국 나가서도 어렵게 삽니다. 쉽게 말하면, 북한에서 나올 때는 조선사람의 위신과 존엄을 높이라고 하는데 실제 나가면 존엄과 위신을 높이려면 돈을 풍족하게 써야 하는데 돈은 쓰지 말라고 하고 존엄과 위신 높이라 이거 참 말이 안 되는 현실이지만, 아 정말 힘들게 사는 것 같습니다. 중요한 것은 돈이 없다 보니까? 좋은 집도 못 들어가고, 나라별로 틀리지만, 혼자서 개인 생활을 못하게 하잖아요. 여러 명이 무리 지어 살게 만들고 정말 정말 힘들게 살고 있습니다. 여러 명이 무리 지어 살면서 돈은 벌면 벌수록 바치고, 그리고 나머지는 월급인데 거의 다 못 벌지 않아요. 힘든 일은 강요하면서, 돈은 다 빨아가고, 위에 있는 사람은 좋아요. 그들은 일 안 하고 감시만 잘하면 되니까 그래 정말 우리 해외근로자들 정말 어렵게 살기 때문에 말로 표현할 수가 없습니다.

 

어렵다고 말씀해 주셨는데 구체적으로 식사는 어떻게 하고 잠은 어떻게 자는 등

 

: 쉬게 말하면은요. 잠자리는 허허벌판에 합판 하나 깔아 놓고, 나무 기둥 세워 놓고 지붕은 슬레이트를 올려놓고 비 떨어지면 빗소리 들으면서 여러 명이 한방에서 살고, 밥은 자체로 해 먹으니까. 남자들끼리 돈이 적으니까 여러 명이 돈을 모아서 한 달 치 식량을 사다가 냉장고도 별로 못 써요. 냉장고가 있긴 있지만, 여러 명이 한 달치 먹으려면 양이 많아서 어떤 것은 (냉장고에 넣지 못해 부패한 것) 버리기도 하고요. 그래 먹는 것은 대충 먹는데, 사람들이 돈을 벌어야 한다는 생각 때문에 작은 봉급에서 쪼개서 사다 보니까 먹는 것 정말 어렵고, 일은 소같이 일하고 돈은 또 늦게 받고 계획을 못 하면 삭감하고 정말 힘들게 살고 있습니다.

 

자유아시아방송 목요대담, 오늘은 동남아 일원에서 일하다 탈북한 심 모 씨의 증언이었습니다. 다음 시간에 심 모 씨 증언 계속 이어집니다. 지금까지 인터뷰에 RFA 이현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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클라이밍 여제 김자인이 지난달 20일 555m 높이로 국내 최고층 건물인 서울 송파구 잠실 롯데월드타워를 맨손으로 오르고 있다.
클라이밍 여제 김자인이 지난달 20일 555m 높이로 국내 최고층 건물인 서울 송파구 잠실 롯데월드타워를 맨손으로 오르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제공

여러분 안녕하십니까? 통일문화산책 진행에 이현기입니다.

우리 조상들이 남겨준 전통문화가 광복 이후 남과 북으로 나뉘어져 지금도 생성돼 오는 서울문화 평양문화의 단면들을 살펴봅니다.

TEASER: 김일성 생일을 앞두고 평양에 불러들인 외신기자들에게 빅 이벤트가 있다면서 새벽에 일어나자 말자 집결시켰다는데 알고 보니 김정은이 참석한 여명거리 준공식을 하는 것이었지요.

서울에 롯데월드타워가 생기고 평양에 여명거리가 생겨서 서울시민과 평양시민들 볼거리가 많아졌습니다. 통일문화산책 오늘은 북한문화평론가 임채욱 선생과 함께 한국 롯데월드타워와 북한 여명 거리에 대해 이야기 나눠봅니다.

먼저 롯데타워 이야기부터 시작하지요.

임채욱 선생: 네. 서울 잠실에 있는 롯데타워는 세계에서 5번째로 높다고 합니다. 123층인데 높이가 555m랍니다. 4월 3일 개장을 앞두고 전날 밤에 불꽃놀이를 했는데 무려 3만 발을 11분간이나 쏘아 올렸다고 합니다. 직접 본 사람들은 대단한 눈 호강을 했다고 합니다. 그뿐이 아니고 이 빌딩을 유명하게 한 일이 또 있었지요. 5월 20일에는 세계에서 여자로서 빌딩 오르기 기록을 가진 김자인 선수가 이 롯데월드타워를 2시간 29만에 맨손으로 올랐지요. 이로써 김자인 선수는 세계여성등반가 중 가장 높은 건물을 오른 기록을 다시 세운 것입니다. 대단한 여자선수입니다.

평양에 들어선 여명거리, 이건 평양 뉴타운이라고 하던데요, 이 건물은 빨리 짓는 데서 대단한 속도전을 냈다고 알고 있습니다.

임채욱 선생: 네. 굉장한 속도전입니다. 연면적 172만m2나 되는 초고층 빌딩을 이번 김일성 생일에 맞춰 완공했다고 합니다. 작년 연말까지 완공하려고 서둘렀지만 잘 안돼서 조금 늦어진 모양이지요. 70층이나 되는 살림집, 즉 아파트들인데 대성구역 용남산 부근 모습을 바꿔났다고 합니다. 북한에서 이 건물 준공을 얼마나 중시했는가 하면 올 들어 김정은이 2번이나 건설현장을 방문해서 4월 15일까지 어떤 일이 있어도 완공시키라고 했고 공사관계자나 노동자들은 ‘기적적인 속도’를 내면서 달라붙어서 통치자의 명령을 완수했다고 합니다. 만리마 속도를 낸 것이지요. 그래서 선전하기를 “수소탄 백발, 천 발 쏜 것보다 더 위력한 승리”가 이룩됐다고 합니다. 천리마속도도 어지러운데 만리마 라니 믿을 수 있는 일인지요?

네. 준공식을 앞두고 평양으로 외신기자들을 불러들여서 바로 이 여명 거리 준공식이란 것이 알려졌지요.

임채욱 선생: 김일성 생일을 앞두고 평양에 불러들인 외신기자들에게 빅 이벤트가 있다면서 새벽에 일어나자마자 집결시켰다는데 알고 보니 김정은이 참석한 여명 거리 준공식을 하는 것이었지요. 외신기자들은 혹시 북한이 신형대륙간탄도미사일 발사장면을 보여줄까 하고 추측도 했던 모양입니다. 북한은 이 여명 거리 고층 살림집 준공을 대북제재가 아무런 소용이 없다는 것을 알리려고 애쓰는 모양새였지요.

여명 거리가 들어선 이곳 용남산은 김일성 대학과 가까운 곳이지요?

임채욱 선생: 그렇지요. 용남산 기슭에 김일성 대학이 들어서 있고 이번에 새로 지어진 아파트에도 김일성 대학 교원들이 우선적으로 입주를 시작했지요. 교수들, 연구들이 입주하는데 학생들도 좋다고 선생님들에게 꽃목걸이도 걸어주고 꽃다발도 주면서 축하해 주고 있다고 보도합니다. 그리고 매일같이 여명 거리 건설자들에게 감사문을 전달하는 모임이 열리고 또 토론과 결의문을 채택하는 행사도 하고 있습니다. 그래도 괴롭다고 말하지 못하고 희한하고 눈이 휘둥그레하게 하는 아파트 풍경에 감격하는 모습만 보이고 있지요.

서울과 평양의 도시모습은 많이 다르지요? 특징적인 것이 있습니까?

임채욱 선생: 이걸 특징적인 것이라고 해야 하나? 서울은 다리가 많은 도시라면 평양은 동상과 탑이 많은 도시라고 할 수는 있겠네요. 서울은 한강을 가로지른 다리가 많지요. 몇 개입니까? 무려 31개네요. 대교라 이름 붙은 것이 27개, 철교라고 된 것이 4개군요. 평양에는 탑이 많은데 대표적인 것이 3개입니다. 주체사상탑, 영생탑, 당 창건 기념탑이지요. 먼저 김일성 광장 건너편에 있는 주체사상탑은 높이가 170m니까 아주 높지요. 영생탑도 있는데 김일성의 영생을 기원해서 “위대한 수령 김일성 대원수님의 만수무강을 삼가 축원합니다”라는 문구가 새겨진 탑이었다가 김일성 죽은 뒤에 “위대한 수령 김일성 동지는 영원히 우리와 함께 계신다”로 바뀌었습니다. 당 창건 기념탑은 대동강변 문수거리에 있는데 당 창건 50주년이 되던 1995년에 세워진 것으로 이것도 상당히 높군요. 기단 높이가 20m인데 그 위에 50m 높이 망치, 낫, 붓을 형상해놓았지요. 아시다시피 망치는 노동자를 상징하고 낫은 농민을, 붓은 지식인을 상징하는 것이지요. 또 보통강구역에 조국해방전쟁승리기념탑이 서 있지요. 6.25전쟁에 승리했다고 탑까지 세워 주장하고 있는 것이지요. 또 있지요. 대동강 가운데 있는 쑥섬에 통일 전선탑이 서있는데 이건 1948년 남북한 정치인들의 연석회의를 기념한 것이지요. 마지막으로 통일거리 입구에 있는 조국통일 3대헌장 기념탑도 상징성을 강조해서 세운 탑입니다.

서울과 평양을 문화도시라는 면에서 비교해볼 수 있을는지요?

임채욱 선생: 글쎄요. 문화시설 숫자란 면에서는 서울이 앞서겠지만 도시가 가진 고유한 자기 정체성이 있고 공공성이 높고 문화가 삶에 스며진 도시라는 기준을 갖고 대한다면 어느 쪽이 어떻다느니 말하기 어려운 면이 있지요. 서울은 4대문 안이 옛처럼 보존되지 못한 것 때문에 동양의 고전적 도시가 가진 엄격성이 없어져 버렸지요. 6.25전쟁 후 한강 북쪽의 옛 서울 도심은 그대로 두고 한강 이남을 그때부터 개발하면서 엣도심을 역사의 지역으로 남겨둬야 했는데 그걸 못했지요. 그래서 늦었지만 역사와 자연이 함깨 숨쉬는 도시로 바꾸려고 노력하고 있다고 보겠습니다. 평양도 6.25때 거의 다 파괴돼서 완전히 새로 건설하다시피 했는데, 인민 대학습당, 인민문화궁전, 평양학생소년궁전 등 큰 건물들을 많이 지으면서 도시 면모를 잘 가꿨지요. 그래서 북한 선전매체는 평양은 도시 안에 공원이 있는 것이 아니라 공원 안에 도시가 있다고 말하기도 하지요. 김일성은 평양을 서울과 대등한 것으로 만들려는 야심에서 출발해서 더 낫게 건설하려고 애썼지요. 그러다보니 과학원 건물배치, 봉화갑문 수문위치까지 관여했다고 하지요.

평양에도 100층짜리 건물이 있지요?

임채욱 선생: 아, 류경호텔을 말 하시는군요. 1980년대 말에 착공돼서 옳게 완공되지도 못한 체 서 있는 건물이지요. 105층이라고 하는데 높이가 323m이고 밑변이 160m가 되는 피라미드형 건물이긴 한데, 지금 보통강 구역에 흉물처럼 서 있지요. 이번에 서울에 랜드마크로 선 롯데 월드타워는 건물 자체도 그렇거니와 무엇보다 5층에 타워 건립벽(Wall of Fame)이라 해서 건물공사 관련 글들과 이 건물을 만든 근로자 8820명의 이름이 빽빽하게 새겨져 있습니다. 이 조형물은 이 건물건설에 참여한 모든 근로자들을 영웅으로 칭하면서 그들 가족과 자손들도 명예와 자부심을 갖도록 표현하고 있다는 점입니다. 노동의 가치와 명예를 존중하는 조치이지요. 이게 롯데월드타워가 진짜 랜드마크가 돼야 하는 이유이겠지요.

통일문화산책 함께 해주신 여러분 감사합니다. 지금까지 기획과 진행에 RFA 이현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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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년 북한 개성에서 고려 시대의 왕릉 2개가 새로 발굴됐다.
2016년 북한 개성에서 고려 시대의 왕릉 2개가 새로 발굴됐다.
사진-연합뉴스 제공

 

여러분 안녕하십니까? 통일문화산책 진행에 이현기입니다.

 

우리 조상들이 남겨준 전통문화가 광복 이후 남과 북으로 나뉘어져 지금도 생성돼 오는 서울문화 평양문화의 단면들을 살펴봅니다.

 

보도에 따르면 올해 한국 문화재 당국은 한국 내 유명한 불교사찰들을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하려는 움직임을 보인다고 합니다. 작년에는 한국 내에 있는 서원들을 등재시키려고 하다가 안됐는데, 올해는 어떻게 될련지, 통일문화산책 오늘도 북한문화평론가 임채욱 선생과 함께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이미 돼있는 경주와 개성의 유적, 유물을 한 번 살펴 보겠습니다.

 

남북한에서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신청하려는 움직임이 있습니까?

 

임채욱 선생: 네. 한국문화재 당국은 전라남도에 있는 송광사라든가 몇 군데 사찰들을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신청하려고 하는 움직임을 보이고 있는 것은 사실인 것 같습니다. 북한에선 어떤 움직임을 보이는지 알려지지 않습니다만 남북한의 세계문화유산에 대해서는 개괄적으로 살펴본바 있으나 경주와 개성으로 좁혀서 살펴보는 것은 좋은 일이지요.

 

그럼 경주부터 이야기 해볼까요?

 

임채욱 선생: 그러지요. 경주에 있는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은 아주 많습니다. 한국이 처음으로 유네스코 문화유산을 등재시킬 때, 그게 1995년인데 이 때 경주에 있는 불국사와 석굴암이 결정됐고 2000년에 또 경주역사지구 전체가 문화유산으로 결정됐어요. 불국사는 너무나도 유명해서 한국 사람이면 다 아는 절 이지만 잠깐 설명을 해보면 신라 때 지어진 절이고 대웅전을 비롯해서 극락전, 미륵전 같은 건물들이 많은 큰 절이면서 건물들이 아주 걸작입니다. 가장 눈길을 끄는 것이 대웅전에 이르는 백운교, 청운교라는 계단인데 화강암으로 멋지게 다듬어 진 예술품이지요. 또 대웅전 앞에 있는 두 개의 탑, 석가탑과 다보탑도 그 조형미가 아주 기막힌 예술작품으로 평가 되고 있습니다. 불국사와 함께 지정된 석굴암은 토함산에 있는데, 본존불상과 여러 부처 조각들이 종교성 뿐 아니라 예술성에서도 탁월하지요. 가히 종교예술 작품으로 세계에 자랑하고도 남을 조상들의 유물이라 하겠습니다.

 

하나하나 자세하게 설명하려면 끝이 없겠군요. 그럼 다음으로 경주역사지구에 대해서도 설명해 주시지요.

 

임채욱 선생: 경주역사지구도 유물, 유적이 아주 많기 때문에 하나하나 언급하기는 어렵고 개괄적으로 설명하지요. 우선 5개 지구로 나뉘는데, 월성지구, 황룡사지구, 남산지구, 대릉원지구, 산성지구, 이렇게 됩니다. 월성지구는 신라시대 궁궐이 있던 곳을 중심으로 한 곳입니다. 이곳에서 가장 유명한 유물은 첨성대입니다. 언젠가 한 번 첨성대를 말한 일도 있습니다만 두말할 필요가 없는 우리나라 국보이지요. 7세기 전반에 세워졌는데 오늘날까지 남아있으니 얼마나 대단합니까? 작년 9월 추석을 전후해서 경주에 지진이 있었지만 첨성대는 아무런 피해가 없었다니 얼마나 다행스러웠습니까?

 

월성지구 다음은 어딥니까?

 

임채욱 선생: 월성지구 다른 것은 생락하고 다음으로 황룡사지구로 가볼까요? 황룡사라는 절을 먼저 말해야겠지요. 이 절은 지금 없지만 고려시대 몽골군에 의해 불타지만 않았다면 세계 사람들이 다 놀랄 눈으로 볼 절이지요. 그 규모가 얼마나 컸을까요? 절터가 2만여 평이고 없어졌지만 어마어마한 양의 황금으로 만든 불상이 있었고 경주박물관에 있는 성덕대왕신종, 이른바 에밀레 종이라고 하는 종보다 4배가 큰 종이 있었다고 합니다. 대단한 크기이죠. 무엇보다 목조로 된 9층탑이 있었는데 높이가 80m가 되는 큰 탑이었지요. 1976년부터 이 절터를 발굴하고 조사하고 있는데 지금까지 나온 유물만 4만점이 넘습니다.

 

북한 것도 다뤄야 하니까 아무래도 경주역사지구에서 아직 설명 못한 곳은 생략하거나 다음으로 미루고 개성지구를 다뤄야겠네요?

 

임채욱 선생: 아 그렇군요. 경주이야기만 하다가 개성이야기는 못할 번하네요. 북한 개성지구는 2013년에 지정되는데 고려 궁궐터인 만월대, 남대문, 고려시대 성균관, 숭양서원, 표충사라는 절과 선죽교 그리고 고려시대 왕릉이 포함되고 있습니다. 먼저 만월대. 여러분, <황성옛터>라는 노래 아시지요? “황성옛터에 밤이 되니 월색만 고요해”라는 가사로 불리는 이 노래는 고려 궁성터인 만월대의 달 밝은 밤에 망한 나라의 역사는 무상함을 노래한 것인데요, 이애리수라는 가수가 극장에서 이 노래를 부르면 모든 관객들이 따라 부르며 눈물을 흘렸다고 하지요. 이에 일본경찰이 못 부르게 고함치면서 막아섰다는 노래지요. 이 노래가 표현하는 무대가 만월대인데 송악산 남쪽 구릉지에 위치하고 있지요. 넓이가 37만m2로 서기 939년에 세워졌는데 1361년에 홍건적이 침입해서 불타버렸지요. 그 후 복구되지 않은 체 지금까지 내려오는데 이 궁궐터를 2007년부터 남북한 학자들이 공동으로 발굴을 하고 있지요. 다음 개성 남대문은 개성 북안동에 있는데 6. 25전쟁때 파괴됐지만 1954년에 복구했는데 북한 국보로 지정돼 있지요. 남대문 안에 걸려있는 연복사 종도 북한의 보물급으로 돼 있습니다.  다음 고려성균관을 볼까요? 고려성균관은 고려시대와 조선시대 최고교육기관이었지요. 건물들은 1만 제곱미터의 넓은 터에 서울에 있는 성균관처럼 대성전을 중심으로 200여 칸이 유교 건축형식대로 지어져 있습니다. 현재는 고려박물관이란 이름으로 9000여점의 유물을 가지고 있는 고려시대 전문박물관으로 돼 있습니다.

 

숭양서원, 선죽교에 대해서도 설명해 주시지요.

 

임채욱 선생: 선죽교는 “이 몸이 죽고 죽어 일백번 고쳐죽어 백골이 진토 되어 넋이라도 있고 없고 님 향한 일편단심이야 가실줄이 있으랴”라는 시조를 지은 포은 정몽주가 죽은 다리라서 너무나 유명하지요. 2000년대 들어서서 남쪽 사람들도 많이 찾은 곳 중 하나지요. 숭양서원에 대해 말씀드리지요. 숭양서원은 자남산 동남쪽에 있는데 정몽주를 비롯해서 서경덕, 김육 등의 유명한 유학자들을 제사지내고 있지요. 앞쪽에는 교육시설을 두고 뒤쪽에는 제사를 지내는 사당을 배치한 전형적인 서원건물이지요. 건물은 임진왜란 이전에 지어진 것이어서 북한 국보로 지정돼 있습니다.

 

고려왕릉들도 말씀해주세요.

 

임채욱 선생: 세계문화유산으로 된 개성지구 내에 있는 고려시대 왕릉들은 송악산과 만수산 일대에 있는 20여기인데, 고려를 세운 왕건의 무덤, 31대 공민왕의 무덤, 그리고 왕릉으로 추측되는 무덤들이 북한당국에 의해 보존급 무덤으로 관리되고 있지요. 영통사를 설명 안 드렸는데 마지막으로 한마디 하면 개성 동북쪽 오관산 남쪽 기슭에 있는 절이지요. 고려 왕실의 사찰이지만 오랫동안 폐허로 있다가 북한당국과 남한 천태종 불교종단이 덤벼들어 2000년대 초에 전각 29개를 복원한 남북 교류의 상징과도 같은 절이지요. 이 절 복원에 불교 스님을 비롯한 불교관계자 외에도 남한 일군 307명이 개성을 드나들었고 기와 46만장, 단청재료, 조경용 묘목, 창틀 등 온갖 건축자재가 개성으로 넘어갔지요. 2005년 10월 남북한 불교도들이 낙성식을 한 의미있는 사찰이지요. 수박 겉핥기 같지만 경주와 개성의 세계문화유산을 훑어 봤는데 경주 부분은 다음기회가 되면 좀 더 하지요. 어떻든 전에도 말씀드렸듯이 알면 알수록 사랑하게 될 것이니까 남북한 어디에 있던 우리의 문화재를 애호하게 되기를 바라는 뜻에서 말씀드렸습니다.

 

통일문화산책 함께 해주신 여러분 감사합니다. 지금까지 기획과 진행에 RFA 이현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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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오를 맞아 평양 모란봉에서 민족씨름경기가 열리고 모습.
단오를 맞아 평양 모란봉에서 민족씨름경기가 열리고 모습.
사진-연합뉴스 제공

여러분 안녕하십니까? 통일문화산책 진행에 이현기입니다.

우리 조상들이 남겨준 전통문화가 광복 이후 남과 북으로 나뉘어져 지금도 생성돼 오는 서울문화 평양문화의 단면들을 살펴봅니다.

TEASER: 단오에는 여자들은 창포물에 머리를 감고 그네를 타는 게 알려진 풍속이고 남자들은 씨름을 하는 것이 가장 흔했던 풍속이지요.

한국 고유의 명절 단오를 맞았습니다. 단오는 우리민족의 아주 중요한 민속명절인데, 단오 때는 씨름을 많이 한다고 하지요. 백과사전 위키백과에 씨름은 한국 고유의 운동으로, 두 사람이 샅바나 바지 허리춤을 잡고 힘과 슬기를 겨루어 상대방을 넘어뜨리는 경기입니다. 씨름은 이미 고대시대부터 이어져 온 것으로 보고 있습니다. 통일문화산책 오늘도 북한문화평론가 임채욱 선생과 함께 씨름에 대한 이야기 나눠봅니다.

단오 때는 씨름을 했다고 하지요.

임채욱 선생: 그렇습니다. 음력 5월 초닷새 단오는 수릿날이라고도 하지요. 일 년 중 양기가 왕성한 날이고 여름이 시작되는 계절로 들어서는 날이지요. 예로부터 단오행사는 우리나라 남쪽지방보다 북쪽지방에서 더 크게 쇠는데 북한도 한때 단오 날이 휴무일 이였기도 했습니다. 단오에는 여자들은 창포물에 머리를 감고 그네를 타는 게 알려진 풍속이고 남자들은 씨름을 하는 것이 가장 흔했던 풍속이지요. 하지만 지금 남북한에는 주민들끼리 이런 놀이를 하기보다는 조직적으로 행해지고 있지요. 그네타기는 지금 북쪽에서 더 성한 편이고 씨름은 남쪽이나 북쪽이나 다 단오에 대회를 열고 있습니다.

씨름이 그네타기와 함께 단오의 대표적인 민속인데 씨름의 역사는 길지요?

임채욱 선생: 고구려를 세운 주몽이 부족의 족장으로 있을 때 씨름경기를 했다는 기록이 있을 정도로 오래됐지요. 고구려고분벽화에도 씨름장면이 나오고 신라 화랑도 무예로써 씨름을 연마했다고 합니다. 고려 때도 어떤 왕은 씨름경기에 직접 친히 구경했다고 하고 조선조에서는 씨름이 대중화돼서 누구나, 어디서나 하는 놀이가 됐지요. 조선시대 씨름경기는 김홍도의 유명한 그림으로도 나타나듯이 수 십 명에서 수 백 명이 모이는 씨름경기도 있었습니다. 일본강점기 시대에도 씨름은 왕성했습니다. 1927년 9월에 서울 휘문 고등 보통학교 운동장에서 제1회 전조선씨름대회를 연 것을 비롯해서 일제탄압으로 중지된 1941년까지 여러 종류의 전국적 규모의 씨름대회가 있었습니다.

남북한의 단오 씨름경기를 소개해 주시지요.

임채욱 선생: 한국에서 올해 단오장사 씨름대회는 단오 전날부터 내일 6월 3일까지 충청북도 보은에서 열리고 있는데, 이런 경기대회가 설날, 추석에도 열립니다. 북한에서는 전 지역 단위 씨름대회가 단오 때가 아니고 9월에 열립니다. 단오에는 지역마다 나름대로 씨름경기를 하고 있습니다.

그럼 전국단위 씨름경기를 소개해 주시죠.

임채욱 선생: 한국에서 전국적인 규모로 벌어지는 씨름경기는 전국장사씨름대회, 천하장사 씨름대회, 전국씨름선수권대회 같은 것이 있는데 가장 유명한 것이 천하장사씨름대회죠. 천하장사 씨름대회는 아마추어 경기가 아니라 직업 씨름선수들이 겨루는 대회이기도 한데 체급별로 태백장사, 금강장사, 한라장사, 백두장사를 뽑지요. 백두장사가 천하장사가 되지요. 그밖에도 곳곳에서 자기고장 특산물을 알리려는 씨름대회도 열리는데 가령 상주 곶감 배 씨름대회, 나주 배 대항 씨름대회 같은 것이 있습니다.

북한에서 열리는 대회도 소개해 주시지요.

임채욱 선생: 북한에서는 대황소상 전국민족씨름경기라는 대회가 있습니다. 대체로 추석을 앞둔 9월에 열리는데, 올해 9월에 열린다면 14차대회가 됩니다. 경기장소는 평양 능라도에 있는 민족씨름경기장입니다. 평양을 비롯해서 직할시와 각도에서 나온 100여 명 선수들은 각 단체 5명이 체급별로 겨뤄 우승팀을 결정하는 단체전과 개인별로 우승자를 뽑는 개인전이 있습니다. 개인전을 북한에선 비교씨름경기라고 합니다. 비교씨름경기 우승자는 1톤이 넘는 황소 한 마리와 금으로 만든 소방울을 상품으로 받습니다. 비교씨름경기에는 참가한 단체에서 한 사람씩 참가해서 승자전의 방식으로 우승자를 결정합니다.

남북한 씨름 경기규칙은 같지 않겠지요?

임채욱 선생: 샅바를 매는 방식부터 다릅니다. 경기장이 한국은 모래판인데 북한에선 매트입니다. 또 선수복장도 한국에선 상체를 드러내는데 북한에선 상의를 입습니다.

그럼 남북한 씨름경기 교류를 한다고 가정할 때도 규칙문제가 제기되겠네요?

임채욱 선생: 그건 큰 문제가 아니지 않습니까? 모래판에서 시합하던 선수와 매트에서 시합하던 선수가 적응 하는 게 서로 다르겠지요. 하지만 남북한 씨름단체 관계자들이 협상하기에 따라 샅바 잡는 방식이나 시합장, 그리고 복장이나 체급 결정 같은 문제는 어느 한 쪽 방식만 고집할 게 아니라 양보하면서 합의하면 되겠지요. 합의사항에 따라 훈련을 하면 될 수도 있는 문제지요.

북한에도 씨름관계 단체가 있을 것이니 남북한 씨름경기 한 판 열면 좋겠다는 생각도 드는데요?

임채욱 선생: 북한 씨름단체는 조선씨름협회인데, 현재 내각 부총리 겸 농업상인 사람이 위원장이지요. 지금 말씀하신 것처럼 남북한 씨름관계자들이 만나서 의논하면 안 될 것도 없지요. 씨름은 체력, 기술, 투지 세 가지 조건으로 다투는 경기이지만 무엇보다 씨름이 전통경기이고 시합은 하되 다른 격투기처럼 때리는 게 아니고 넘기기만 하는 것이라서 무난하지 않을까 싶군요. 무엇보다 상체를 벗고 겨룬다면 서로 땀 냄새를 맡을 수 있고 이를 통해 같은 동포라고 느끼면 좋은 일 아니겠어요?

씨름은 다른 나라에도 있지요? 한국은 다른 나라와 씨름교류도 많았겠지요?

임채욱 선생: 터키와 씨름을 교류한 일이 있고 몽골과도 씨름선수들이 내왕했지요. 북한과 한국이 씨름 규칙이 다른 것은 그래도 다른 나라 규칙보다는 가까운 편이지요. 러시아 삼바, 중국의 우슈가 올림픽 종목으로 채택되도록 노력하듯이 앞으로 씨름도 남북한이 힘을 합한다면 갈 길은 멉니다만 세계적인 운동 종목으로 등장할 수도 있는 것이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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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러분 안녕하십니까? 통일문화산책 진행에 이현기입니다.

 

우리 조상들이 남겨준 전통문화가 광복 이후 남과 북으로 나뉘어져 지금도 생성돼 오는 서울문화 평양문화의 단면들을 살펴봅니다.

 

TEASER: 북한에도 혁명을 이룬 세대와 이를 받아서 이어가는 세대는 연령적으로도 다르고 의식 면에서도 다른 것은 틀림없지요.

한국에서 새 대통령이 선출 됐습니다. 이번 선거에는 지역별 차이보다 세대별 차이가 더 크게 투표로 나타났다고 합니다. 그래서 통일문화산책 오늘은 북한문화평론가 임채욱 선생과 함께 선거에서 남북한의 세대문제에 대해 함께 이야기 나눕니다.

 

이번 남한 대통령 선거에서 세대별 지지율이 어떠했는지 설명해 주시지요.

 

임채욱 선생: 네. 그렇습니다. 새 대통령은 지역적으로는 영남지방을 제외하고는 골고루 전체 1위를 했지만 세대별로는 차이가 있었습니다. 새 대통령에 대해서 20대, 30대, 40대는 압도적으로 지지를 했지만 60대 이상에서는 거의 지지를 받지 못했지요.

이런 현상은 다른 민주국가 선거에서 나타나는 현상과는 좀 다른 것 아닙니까?

임채욱 선생: 미국경우는 인종 별로 정치성향 차이는 보이지만 세대 간 차이는 그렇게 크지 않습니다. 일본도 연령대별로 투표율에선 차이가 나지만 정치성향으로 세대 간 차이가 나는 현상은 없습니다.

 

세대별 이런 차이가 완화될 가능성은 있습니까?

 

임채욱 선생: 한국에서 세대별로 정치성향이 이렇게 달라진 것은 전쟁을 겪고 어려운 시기를 거친 세대와 그런 것을 모르고 자라난 세대 간의 세상을 보는 시각 차이가 그대로 나타난 것인데, 정책적으로 잘 조화시키면 완화될 수 있는 문젭니다. 정책적으로 조화시킨다는 것은 다른 게 아니라 보수와 진보정책이 수렴이 되도록 접근시킨다는 것이지요. 경제정책, 사회보장정책, 국방외교정책 등등의 모든 문제에서 어느 한쪽만의 선호대로 하지 않고 양쪽이 어느 정도 만족하는 선까지 접근시킨다는 것이지요. 쉽지는 않지요.

 

세대란 본래 어떤 의미를 가집니까?

 

임채욱 선생: 세대란 말은 본래 세(世)와 대(代)가 합해진 말인데 세는 사람의 한평생을 말하고 대는 잇는다는 뜻을 가졌지요. 그래서 세대는 앞서간 선대와 뒤를 따르는 후대가 이어져 있다는 연속성이 중요하지요. 과거 전통사회에서는 이런 연속성이 잘 지켜져 왔지만 오늘날과 같은 산업시대에는 하루가 다르게 변화하는 모습이어서 세대 간 연속성이 한결같지는 않게 되지요. 그러다 보니 청년세대는 청년세대만이 갖는 특징이 있어서 청년문화를 이루고 노년세대는 노년의 특성을 따라 다른 모습의 문화를 갖게 되는 것이지요. 물론 사고방식에서도 달라지지 않을 수 없지요.

 

그럼 이번에는 북한입니다. 북한에선 세대별로 충돌할 문제가 없습니까?

 

임채욱 선생: 북한에도 혁명을 이룬 세대와 이를 받아서 이어가는 세대는 연령적으로도 다르고 의식 면에서도 다른 것은 틀림없지요. 다만 혁명을 한 세대가 이룬 성과와 전통들을 새 세대들은 무조건 이어받아야 하는 것으로 가르쳐 왔으니 세대문제는 기본적으로는 없다고 보지요. 하지만 아시다시피 북한에도 당국이 금지하고 단속하는 남한음악을 듣고 영화를 본다거나 하는 일이 나타나고 혁명의식이 약화되는 현상도 보여서 당국은 사상교양사업을 끊임없이 심화시키려고 하지요. 북한에선 세대를 단순히 연령집단으로만 보지 않고 이른바 ‘혁명과 건설’을 위해서 투쟁하는 하나의 사회적 집단으로 보고 있다고 하겠습니다.

 

북한에서 보는 세대문제는 구체적으로 어떤 것입니까?

 

임채욱 선생: 북한에서 세대문제를 날카롭게 본 것은 1990년대에 들어서면서부터인데, 소련을 위시해서 동유럽 사회주의 국가들이 자본주의 국가로 바뀌면서 나타난 현상들이 북한에도 침투될까 봐! 몹시 우려했지요. 이런 나라들을 사회주의가 좌절된 나라들이라 하면서 이렇게 표현합니다. “자본주의가 복귀된 나라들에서는 적지 않은 새 세대들, 청년들이 사상 정신적으로 병들고 부르죠아 반동사상에 물 젖어 사회주의를 반대하는데 앞장섰다. 이것은 혁명의 전 세대가 후대들에게 사상 정신적 재부를 똑똑히 물려주도록 하지 못한 것과 관련 되여 있다.” 그래서 북한에선 세대 사이 계승에서 생산수단이나 생산경험, 노동조직, 생산물과 같은 물질생활영역보다 ‘혁명전통’이라는 사상적 푯대를 잘 물려주는 정신사상영역에서의 옳은 계승을 더 중요하다고 역설하고 있지요.

 

그런데도 나타나는 북한의 세대문제는 전망이 어떻습니까?

 

임채욱 선생: 북한에서 혁명은 한 세대에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세대와 세대를 이어 완성되어 나가는 장기적인 투쟁으로 보기 때문에 세대문제는 혁명의 운명과도 관련되는 중요한 문제로 보지요. 이 문제에 대해 선대통치자 김정일이 한 말이 있습니다. “우리 혁명의 1세대, 2세대 청년들이 조국을 광복하고 해방된 조국 땅 우에 인민대중 중심의 가장 우월한 우리 식 사회주의를 건설하는 데서 위훈을 떨친 세대라면 혁명의 3세대, 4세대 청년들은 그것을 튼튼히 고수하고 빛내어 나가는 세대입니다.”(김정일 선집 12권 p5) 이렇게 혁명을 잇는 세대를 의미 있게 규정하면서 청년세대들에게 “오늘을 위한 오늘에 살지 말고 내일을 위한 오늘에 살도록 하자”라고 강조하지만 혁명선배를 존중하는 정신도 약해지고 우리 식 사회주의 제도에도 회의를 갖게 되는 경향이 나타나는 모양입니다. 이렇게 되면 북한에도 세대 간 충돌이 나타날 수 있지요.

통일문화적 관점에서 남북한 후계세대가 가져야 할 자세는 어떤 것일까요?

임채욱 선생: 통일 문화적인 관점에서 남북한 세대문제를 본다면 우선 이념에 앞서 민족을 찾아야 하겠지요. 그리고 앞선 세대가 서로 다른 이념으로 이룩한 문화 중에서도 서로 배워서 이익이 되는 것은 배워서 자기 문화를 풍부하게 하려는 자세가 중요하겠지요. 또한 전통사회의 우리민족문화 속에서도 세대갈등을 해결할 가능성은 없을까 하고 찾아보려는 노력도 중요할 것입니다.

 

통일문화산책 함께 해주신 여러분 감사합니다. 지금까지 기획과 진행에 RFA 이현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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