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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일문화산책

통일문화산책(남북한 승마문화)

평양 미림승마구락부에서 봄철승마애호가경기를 하고 있다.
평양 미림승마구락부에서 봄철승마애호가경기를 하고 있다.
연합뉴스 제공

 

여러분 안녕하십니까? 통일문화산책 진행에 이현기입니다.

 

우리 조상들이 남겨준 전통문화가 광복 이후 남과 북으로 나뉘어져 지금도 생성돼 오는 서울문화 평양문화의 단면들을 살펴봅니다.

 

이제 꽃은 지고 잎이 돋아나는 계절로 들어섰지요? 이 좋은 계절에 초원의 말도 기지개를 켜고 달리고 도회지 경마장 말도 달리고 있겠지요? 최근에 와서 북한에도 말 타는 부류가 생겨났다는데 오늘 이 시간에는 남북한 말타기, 즉 승마문화에 대해 북한문화평론가 임채욱 선생과 함께 이야기 나눕니다.

 

우리 선조들의 말타기는 언제부터 시작됐습니까?

 

임채욱 선생: 말 타기는 우리 선조들도 오래전부터 해오던 일이고 놀이였습니다. 말은 기원전 3000년 경 즉 청동기 시대에 가축화됐는데 중앙아시아 말이 세계로 퍼졌다는 설이 유력합니다. 우리나라에서는 고조선 시기에 말을 탔다는 중국 기록이 있습니다. 삼국시대가 되면 말을 전쟁에 사용하게 되는데 경주 신라의 천마총에서 나온 천마도나 진남포지방 덕흥리에서 발굴된 고구려 시대 무용총수렵도를 보면 말을 능숙하게 타는 모습을 봅니다. 또 백제에서는 일본에 말을 보냈다는 기록도 있습니다.

 

말을 타려면 말을 잘 키워야 할 텐데 우리나라 말 키우기는 어떠했습니까?

 

임채욱 선생: 말은 사람이 타기도 하고 짐수레를 끌기도 하지만 사람이 타고 다니면서 짐승도 잡고 소식도 전하고 하다가 전쟁 때 요긴하게 사용하다보니 말은 교통, 통신, 산업, 군사적으로 없어서는 안 되는 존재가 되지요. 사람이 동물을 가축화해서 유용하게 생활했지만 특히 말과 개를 가까이 하고 가축화했기에 수준 높은 문화를 일궈나갔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러했기에 우리 선조들도 일찍부터 말을 길렀고 말을 온갖 용도로 사용해 왔지요. 고구려에서는 나라를 세우면서 말목장을 설치해서 좋은 말 생산을 했다는 기록도 있고 백제도 국초부터 말을 관리하는 관청을 둘 정도로 중시했다고 합니다. 신라에서도 마찬가지로 말 목장을 많이 만들었다는데 당시 174개가 있었다고 합니다. 고려시대에는 여진으로부터 말을 130차례나 수입했다는 기록도 있습니다. 그만큼 말을 중시했다는 것이지요. 조선조에 들어와서도 말을 관리하는 관청을 따로 두고 말목장을 200여 군데 설치하고 종사자는 9000여명이 됐다고 합니다. 조선조에선 말을 수출했다는 기록도 있습니다. 승마는 오늘날에는 스포츠이기도 하지만 과거에는 군사술이기도 하지요. 말을 그냥 타는 게 아니라 창을 쓴다든가 칼을 쓴다든가 활을 쏘는 것이지요. 이를 기창(騎槍), 기검(騎劍), 기사(騎射)라고 말합니다. 그리고 말위에서 하는 재주 즉 마상재(馬上才)등, 이런 것들은 조선조 무과시험 필수과목이였습니다.

 

전통사회에서는 말이 주로 교통, 통신, 군사용으로 쓰였다면 현대에 들어오면 말타기를 스포츠나 오락으로 즐기는 쪽으로 바뀌기 시작할 텐데 한국에서 현대적 의미의 승마는 언제부터였습니까?

 

임채욱 선생: 알려지기로는 왕실을 지키는 근위기병대가 있었는데 1906년 6월에 이들이 말달리기 시합을 했다고 합니다. 이런 것이 현대적 의미의 승마라고 하겠지요.

 

이제 화제를 바꿔서 한국에서는 현재 승마인구가 얼마나 됩니까?

 

임채욱 선생: 한국에서는 승마인구가 5만 명 가까이 된다고 합니다. 그러나 한 해 말을 타보는 체험인구는 100만명에 가깝다고 하니 스포츠 또는 놀이로서도 각광을 받고 있지요.

 

북한에서는 승마인구가 얼마나 될까요?

 

임채욱 선생: 북한에서야 몇 천명단위로 되겠지요. 북한에서 승마가 본격적으로 된 것은 김정은 통치시대에 와서입니다. 2013년 10월 평양 미림리에 미림승마구락부가 만들어 집니다. 이 미림리 승마구락부에서 요즘 북한에서 잘 나가는 계층 사람들은 말도 타고 말타는 구경도 하고 하는데 관람객이 1000여명이라고 합니다. 한국처럼 아직 경마시합을 시행하지는 않지만 경마순위를 알아맞히는 사람을 추첨해서 상품을 주는 행사는 하고 있습니다. 이런 행사는 자본주의 나라에서 하는 경마도박과는 다르다고 강조하고 있습니다.

 

미림승마구락부 규모는 어떻습니까?

 

임채욱 선생: 전체넓이 60여만평방미터라고 하는데 이 안에 야외훈련장, 실내훈련장, 승마지식보급실, 말 탄 뒤 휴식을 취하는 피로회복원이 있습니다. 그밖에 말병원이나 말 연구소도 있습니다. 야외훈련장에는 2000m에 이르는 잔디주로, 토사주로, 그리고 어린이 용 모래주로가 있고 말은 수십 필이 있다고 말합니다.

 

북한에서 승마를 자본주의 부자나라에서나 하는 놀이정도로 보는 것은 아니군요?

 

임채욱 선생: 아니지요. 북한에선 우리 선조들이 말을 잘 탔고 활도 잘 쏘았다면서 특히 고구려의 상무정신을 강조합니다. 고구려에서는 음력 3월 3일 낙랑언덕에서 말을 타고 하는 사냥경기도 치러졌다고 말합니다. 그래서 승마가 우리나라의 전통적인 풍습이라고까지 말합니다. 특히 마상재라고 해서 말위에서 하는 재주인데 고구려에서 나온 말 타고 하는 재주는 고려를 거쳐 조선시대에도 이어졌습니다. 임진왜란 뒤 일본에 조선통신사가 갈 때 마상재 기수도 함께 갔다고 하지요. 일본에서는 이런 기마수 수십 명을 보내달라고 요청해 온 기록이 있습니다.

 

앞으로 북한의 승마문화 발전가능성은 어떻습니까?

 

임채욱 선생: 북한통치자들은 말을 좋은 상징으로 나타냅니다. 김일성은 항일투쟁을 할 때 백마를 탔다고 말하고 있지요. 김정일도 매봉이란 이름을 가진 말을 탔다고 하지요. 그러고 보니 미림리는 말과 인연이 없지 않습니다. 1959년 미림리에서 청동기시대 집터와 무덤유적이 발견됐는데 여기에서 말 치아가 발견됐습니다. 이 치아가 석기시대 것으로 알려졌으니 우리나라에도 석기시대부터 말이 있었다는 것이 되지요. 다만 이것이 가축화 된 말의 것은 아닐 것으로 보입니다. 왜냐하면 말이 사람 손에 가축화된 것은 대체로 청동기시대로 보니까 우리나라도 고조선 시기라고 보면 되겠습니다.

 

미림 승마장은 김정은이 어릴 때 말을 타던 곳이라고 알려지기도 한 곳 아닙니까?

 

임채욱 선생: 미림리는 본래 비행장이 있던 곳이었습니다. 김정은이 어릴 때 말을 탔다고 하는데 어떤 승마장인지는 알려지지 않습니다. 어떻든 어릴 때 말 타던 추억을 살려 북한 주민에게 사회주의 부귀영화를 안겨주려고 승마구락부를 만들었다 하더라도 인민을 위한 일이라니까 나쁜 일은 아니지요.

 

남북한에서 스포츠로서의 승마는 어떻습니까?

 

임채욱 선생: 대한체육회 산하에 대한 승마협회가 스포츠로서 하는 승마문화를 관장합니다. 승마협회는 광복되던 다음 해 1946년 5월에 발족됐는데 1952년 7월에는 국제마술연맹(FEI)에 가입합니다. 그리고는 곧 이어 그해 8월에 열린 국제마술대회 장애물 경기에 출전하고 또 10월에 열리는 헬싱키 올림픽대회에도 출전 합니다. 이후 각종 국제대회에 출전해서 입상도 해왔는데, 아시아권에서는 앞선 편이라도 아직 세계수준에는 좀 모자란다고 봐야지요. 북한에서는 조선승마협회에서 관장하는데 ‘승마애호가 경기대회’도 열고 선수양성사업도 책임지고 있습니다.

 

한국에서는 승마가 스포츠로 즐기는 문화로 정착된 부분도 있지만 경마장에서 사행심을 조장하는 오락으로 되고도 있지요?

 

임채욱 선생: 말 타는 데는 빨리 달리는 시합을 하는 경주도 있고 기술을 부리는 마장마술도 있고 말타고 시합을 하는 경기도 있지만 가장 보편적인 것은 역시 달리기 시합이라 하겠지요. 한국에는 한국마사회가 주관해서 경마를 합니다. 달리는 말에 돈을 거는 사행산업을 하는 것이죠. 사행산업에는 경마 외에도 자전거 시합에서 돈을 거는 경륜, 보트시합을 하는 경정, 그리고 카지노, 복권 같은 것이 있지요. 이 가운데서 복권에 덤벼드는 인구가 제일 많고 다음이 경마로 돼 있습니다. 경마장에 가는 일이 오락을 즐기는 게 아니라 돈을 벌려고 가는 일도 되지요. 건전한 놀이문화로 이끌려고 하지만 잘 안 되는 부분도 있을 겁니다. 한국마사회는 경마공원 안에 경마장을 두고 경마문화축제도 열면서 경마를 문화로서 정착시키려고 노력을 하고 있지요. 이런 것이 넓게는 승마문화를 이룬다고 보겠습니다. 북한에는 아직 이런 사행심을 조장하는 경마문화는 형성되지 않고 있습니다.

 

통일문화산책 함께 해주신 여러분 감사합니다. 지금까지 기획과 진행에 RFA 이현기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