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16 군사 쿠테타 회고: 나의 제 2 인생을 걷게한 5.16
6. 임시적 석방
11월 하순경으로 생각이난다. 헌병 사령부에 위치했던 형명 검찰부에 불려 나갔다. 석방한다는 것이었다. 나는 그 때까지도 무슨 죄목으로 기소되고 무슨 조건으로 석방된다는 것인지 설명도 못 드렀고 문의도 하지 아니하였다. 지금 되도라보면 제대로 법의 보호나 권한도 허용되지 못한 셈이다. 집이 그리웠고 겨울을 감방에서 지낼 필요 없으니 다행이라 생각하였다. 아내와 김희양 전 부관이 마중 나왔다. 아내는 나를 차에 실고 시내로 들어 갔다. 7세이며 갓 국민학교 일학년에 입학한 둘째 아들 용회가 고열로 입원했는데 급성 맹장염으로 판명 되었으나 열이 높아 수술을 망설이고 있다가 수술을 모험키로 했다고 하였다. 병원은 안국동에 있으며 원장이 나를 잘 안다고 하였다. 병원에 가보니 수술은 끝나 있었고 열도 많이 나려 근심할 필요 없다고 들었다. 병원장의 이름은 기옥 못하나 육군 병원장을 지난 군의관 출신이었다. 어린 아이에게 미안하며 나와 자식의 병으로 혼자서 고생한 아내에게 미안함을 금할 수 없었다. 지금 이 아들은 Washington D.C. 소재 National Accademy Science 의 부사장으로 활약하고 있다. 얼마후 박정희 장군의 미국방문이 발표되었다. 나의 석방이 어쩌면 그와 관련이 있었구나 하는 짐작을 해 보았다. 그때 딸 아이가 1962년도 숙명 여자중학교 입학 시험을 준비 중이었다. 그 당시는 체력시험이 중요한 과목이었다. 나는 딸 아이의 다름박질과 턱거리의 요령을 가르첬다. 조곰한 요령이 체력 검정시험에 도움이 되었다. 그리고 집에서 한문의 기초를 가르첬다. 그 당시부터 학교에서 한문를 소홀히 할 때라 집에서 배워준 한문의 덕을 보았다며 지금도 그 당시 학교 졸업치고는 한문해독을 많이 하는편이 되었다. 딸은 영양사가 되었다. 남편이 아주대학 화학과 교수로 나가있어 현재는 한국에 있으며 서울 미 8군의 영양사로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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