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르투갈, 모로코와 스페인 여행기
지난 5월 10일부터 21일까지 워싱턴 지역에 거주하는 30여명이 포르투갈, 모로코와 스페인 여행을 다녀왔다. 이번 여행에서 모두가 새로운 것을 보았고, 새로운 느낌을 가졌고, 새로운 인연을 맺는 기쁨을 맛 보았다.
이규원(워싱톤 한인사 영문판 번역 위원장)
유럽의 최서단마을 땅끝
덜레스 공항에서 KLM 비행기에 탑승하여 저녁에 떠나 약 8시간 비행하여 다음날 아침 네델란드의 암스텔담에 도착했다. 여행객 대부분은 불편한대로 잠을 좀 기내에서 잤기때문에 별 피로감 없이 행동하는 모습이였다. 암스텔담에서 비행기를 갈아타고 약 3시간 비행하여 포르투갈의 수도 리스본에 도착하니 현지시간 오후 세시가 됐다. 비행기에서 내려 짐을 찾아 한 곳에 뫃이니 현지 가이드가 나와 인사를 했다. 우리 일행을 뻐스 승차하는 곳으로 안내 하는데 외모가 별로인 가이드가 우리를 잘 인도할 것인가 의심스러웠다.
뽑은지 얼마 안되는 새 뻐스에 짐을 운전수가 차밑에 싣도록 놓아두고 승차하였다. 운전수는 키가 크고 순진하게 생긴 좋은 인상을 갖인 스페인 사람으로30대 후반의 젊은이여서 호감이 간다. 50명 이상 앉을 수있는 대형뻐쓰에 여유있게 들 앉았다. 부부 이면서도 떨어져서 두자리씩 차지한 분들도 있었다. 뻐스가 강가 공원으로 이동하는 동안 가이드양은 간단한 포르투갈 역사이야기며 리스본에 대한 이야기를 들려준다. 가이드양이 지식도 많고 말을 잘하여 외모로 판단했던 선입감을 접게 만들어 줬다. 우리가 방문하는 리스본에 마침 교황이 방문중이여서 우리가 가고있는 길이 오전에는 모두 차단되여 어디를 가든지 교통혼잡을 이루었는데 이길로 갈수 있어서 다행이라고 했다.
우리는 강가에 위치한 공원에 도착하였다. 날씨는 쾌청하였다. 마제란 비가 배와 선원들의 조각으로 되어 강가에 보기좋게 위치하고 있었다. 한때는 해양 제국이였다는 것을 과시 하는 것 같았다. 사진들을 찍으며 구경을 하였다. 공원에 있는 소나무들이 가지가 위로 많이 퍼져 마치 버섯모냥을 하고 있는 것이 신기했다. 소나무 밑은 완전한 그늘이다. 공원에서 걸어서 지하도를 통하여 수도원에 가서 1500년 초에 지어진 고색이 창연한 성당을 관람하였다. 대리석으로 조각되어 지어진 성당이 볼만했다. 대리석으로 조각된 예수상을 유심히 보았다. 바로 이성당이 이날 오전에 법왕이 미사를 드린 곳이다.
시내 드라이브를 좀 하다가 식당으로 가서 저녁을 먹었다. 문어국이 나왔는데 그것이 주식이라고 해서 모두들 더 달래서 맛있게 식사를 했다. 저녁 식사후에 리스본 전 시가지가 내려다 보이는 높고 긴 다리를 건너서 해안가에 있는 호텔에 가서 묵었다. 전날 비행기에서 잠을 설쳐서인지 모두들 깊은 잠을 잘수 있었다.
유럽의 최서단인 이베리아 반도의 땅끝 마을
아침에 일어나니 오늘도 날씨가 좋았다. 모두들 라비에서 아침 식사를 기다리는동안 나는 바닷가로 혼자 나가서 모래 사장을 좀 걸었다. 조용한 바닷가에 갈매기 떼들만 낄 낄 소리내며 나르고 있었다.
쾌청한 날의 아침 바다는 참 보기 좋았다. 호텔에서 아침식사를 마치고 방으로 가서 집을 싸들고 나와 뻐쓰에 싫고 우리는 어제 건넜던 긴 다리를 다시 건느며 전날 본 마제란 비를 내려다 보며 모두들 즐거운 표정이다. 가이드양은 시내로 접어들때 열심히 여러가지를 설명해 주었다. 높은 다리 같은 곳을 보라하며 그것은 다리가 아니고 수도관들이라고도 했다. 뻐스는 시내를 지나 해안가길로 해서 유럽의 최서단인 이베리아 반도의 땅끝 마을로 향하였다. 빨간 기와 지붕들이 보기 좋았다. 집들이 모두 그림같이 아름다워 보인다. 해안가에 파아란 바닷물이 작은 파도를 일며 모래사장에 밀려오고 있다. 내가 혼자 운전하는 중이라면 그냥 그곳에 차를 세워두고 한참 바닷물을 보며 모래사장을 걸었을 것이다.
뻐스는 등대가 있는 땅끝마을에 도착했다. 바람이 시원하다. 대서양과 강구가 맞닿은 곳이다. 해안으로는 절벽이다. 이름 모를 야생화들이 즐비하다. 일행은 흩어져 대서양과 강구와 아름다운 해변을 구경을 하였다. 여기서 구경을 마치고 다시 뻐스를 타고 왕궁이 있는 신드라에 도착하였다. 왕궁 주위에 있는 상가지를 돌아보고 산에 별장들을 멀리서 구경하였다. 경치가 참 좋은 곳이다. 나는 혼자서 산 길로 한참 올라 갔었다. 올라 갈 수록 내려다 보이는 계곡 마을 경치가 볼만 하였다.
우리는 다시 시내로 돌아와 점심을 먹고 리스본을 떠나 스페인의 세비야로 향하였다. 세비야까지 가는데 거의 다섯시간이 걸렸다. 안내양은 열심히 좋은 이야기를 들려 주는데 달리는 뻐스에서 자는 사람이 적지 않았다. 나는 열심히 창밖을 내다 보며 소나무 숲을 지날때 어떻게 저렇게 정원수 같이 생겼을까 생각했었다. 일행중 한분이 비데오 카메라를 가지고 오셨는데 창밖에 경치가 좋으면 연실 카메라를 돌리셨다.
대성당과 컴럼브스의 묘
국경을 넘어 스페인으로 진입하였다. 밖의 경관은 포르투갈이나 스페인이나 같아 보였다. 도중에 주유소에서 좀 쉬였다. 세비야 시내에 해가 질 무렵 도착했다. 그런데 경찰차가 우리뻐스를 세워 약 30여분동안 운전수의 위반 사항을 따져묻고 있다. 호텔에 도착하여 저녁을 먹고 서둘러 플라맹고 댄스 구경을 갔다. 영화에서나 보았던 플라맹고를 직접 보니 신이 난다. 그렇지만 땐써들의 신나는 춤도 고단한 우리들에게는 크게 흥겹지는 못했다. 어서 끝이 나서 호텔에 가 자고싶은 마음이 들었었다. 쑈를 보고 호텔에 오니 밤 11시반이였다. 곧 모두들 곤한 잠에 빠져 들었다.
제4일인 다음날 아침 호텔밖에 나가 보니 오늘도 날씨가 쾌청했다. 몇부락을 혼자 산보하다가 호텔에 돌아와 아침 식사를 했다. 운전수는 경찰의 조사를 아직 받고 있어서 뻐스를 못 타고 각자 택시를 합승하여 마리아 루이스 공원에 도착했다. 안내양을 따라 큰 나무들이 서있는 공원을 구경하고 계속 걸어서 세계 3대 성당중에 하나인 대 성당을 관람했다. 성당에 들어가니 어디를 봐도 탄성이 나올 정도로 화려하고 웅장하고 으리으리 했다. 컬럼브스의 묘도 이 성당 안에 있었다. 드높은 천정의 조각들이며 금으로 장식된 제단과 파이프 오갠이 볼만 했다.
이 성당 안에서 한분이 돈을 털린 사건이 발생했다. 다행히 현지 가이드가 용의자를 잡아 경찰에 넘겨서 잃은 돈 일부는 되 찾을 수가 있었다. 같은 주머니에 넣어둔 여권이 그대로 있어서 다행이였다.
성당에서 나와 좁은 길로 접어들어 식당쪽으로 가면서 개인 가정집 대문안으로 보이는 작은 정원들을 구경했다. 가정의 정원 문화를 오랜동안 유지하고 있다. 3층집들이 들어선 좁은 길은 햇볓이 들지 않았다. 여름에 자연히 강한 햇볓을 막아주고 옛날에는 차 없이 살았으니까 이웃 드나들기 가깝게 이런식으로 집들이 지어졌다고 한다. 점심은 큰 중국식당에서 먹었다. 김치도 나왔지만 김치는 맛이 별로 였다. 다행이 모든 취조를 마치고 뻐스가 돌아왔다. 엄청 많은 벌금을 문 운전수는 시무룩한 얼굴표정을 하고 있었다.
뻐스로 시내에 있는 스페인 광장에 들렸다. 빨간 벽돌로 된 엄청큰 건물이 반원형으로 서있는 이광장을 구경하고 나서 우리는 타리파 항구를 향하여서 출발했다. 시내를 빠져나오니 산들이 보이고 넓은 들이 나온다. 얼마전에 큰 비가 내려 아직도 낮은 곳에는 물이 많이 고여 있었다. 해안가로 가면서 더 높은 산들이 나온다. 경치가 좋고 산 등성이에 발전용 바람개비들도 많이 보였다. 항구에 가까워지며 지중해와 지브롤터 해협을 건너 아프리카 대륙의 큰 산이 보인다. 주위의 집들이 좀 달라 보였다. 아프리카와 가까운 이 지역에는 아랍식 건물들을 지어서 다르다고 했다.
우리는 타리파 항구에 도착하여 뻐스에서 내려 페리에 승선했다. 뻐스도 페리에 들어갔다. 페리 안에서 각자 모로코에 입국하는 비자를 받았다. 의자가 넉넉하여 좋은 자리로 이동하며 해협을 항해 했다. 약 40분 걸리는 항해중 나는 밖에 나가 배 뒤에서 스크류가 하얗게 뿜어내는 물길을 들여다 보기도 하고 멀어지는 스페인과 가까워지는 모로코를 눈여겨 보았다.
모로코의 탕헤르항에 도착했다. 큰 여객선들도 정박하고 있었다. 붉은 지붕들이 많은 포르투갈이나 스페인과는 달리 여기서 보이는 건물들은 지붕이 거의 없었다.
통관하는데 시간이 많이 걸렸다. 헌차에 온갖 잡동산이를 실은 차들이 즐비하게 통관을 기다리고 있다. 결국 무슨 수를 써서 좀 빨리 통관을 마치고 도시 중턱에 있는 호텔에 도착했다. 호텔 식당에서 저녁식사를 했는데 음식도 써비쓰도 좋았다.
제5일, 아침에 일어나 밖을 내어다 보니 뻐스를 지키는 사람이 뻐스 주위를 돌고 있었다. 호텔근처에는 큰 저택들이 들어섰고 고급스런 사무실용 건물들이 많이 보였다. 우리는 여기서 8세기의 고대 도시인 페스로 출발하였다. 시가지를 빠져 나와 변두리로 가니 짓다가 만 건물들이 즐비하였다. 보기 흉하였다. 이렇게 건물을 짓다가 망한 건설업체들과 해고당한 일꾼들을 생각하며 얼마나 어려울까 생각해 봤다. 시내를 빠져나오니 평평한 들판들이 나온다. 당나귀를 타고 가는 부녀자들이 보이고 양 몇마리를 돌보는 목동들도 보인다. 양의 수자가 적어도 지켜봐야지 그렇지 않으면 훔쳐간다고 했다.
여러 시간동안의 뻐스여행을 지루하게 느끼며 잠을 자는분들이 있었다. 그러나 나는 똑같은 들과 해안을 가는데도 계속 밖을 내다보며 이국의 느낌을 가져봤다. 주유소에서 잠시 쉬는데 보통뻐스에 모로코 사람들이 꽉차 있는 것을 봤다. 눈길을 주니 모두들 웃으며 손짓을 해 준다. 순진해 보이는 사람들이 친근감이 들었다. 관광뻐스에서 내린 우리들을 부러워하는 눈치였다. 마음 좋은 일행중 한명은 딸기를 사서 모두에게 나눠 준다. 딸기가 맛이 좋았다. 주유소에 있는 화장실마다 옆에는 모스크라는 간이 성소인 기도실이 따로 있었다. 여행중에도 이스람교인인 이곳사람들은 메카를 향하여 매일 여러번씩 업드려 절하며 기도 한다고 했다. 이곳 사람들은 죽으면 화장을 하지 않고 관을 쓰지 않으며 죽은지 2-6시간내에 땅에 묻는다고 했다.
드디어 페스에 도착하여 왕궁앞에서 내려 왕궁의 성과 대문을 구경하였다. 왕궁의 외관만 보아도 궁이 어떻한지 짐작이 된다. 왕궁앞을 떠나 시내에 있는 식당으로 가서 그곳 특유의 음식으로 점심을 먹었다. 고급스런 내부는 섬세한 자기로 된 시설이였다. 웨이터 들도 키가 크고 정중히 시중을 들었다. 오래도록 기억에 남을 좋은 분위기에서 그곳의 구스구스라는 음식을 즐겼다.
점심후에 시내 구경을 했다. 장식품 만드는 곳도 들려서 왕궁문의 장식을 직접했다는 분의 금 접시 장식하는 것을 보기도 했다. 800년 된 3층 건물이 있는 지역을 들어 갔다. 벽이 넘어지려고 해서 나무기둥으로 바침대를 해 놓은 건물들이 즐비한 좁은 골목길을 걸어서 아프리카에서 최초로 생겼다는 대학을 지나 가죽 염색 공장에 들려 봤다. 염색 공장에서 건너다 보이는 시가지는 마치 빈민촌과 흡사했다. “반갑습니다.” “천천히” 라고 말 하는 지역인들이 많았다. 누군가 좋은 말을 가르쳐 줬다고 생각했다. 다른 곳에서는 한국 사람들을 보면 “빨리, 빨리”라고 하는 외국인이 많았는데 “천천히” 는 듣기에 좋았다.
페스를 떠나 우리는 카사블랑카로 향하였다. 카사블랑카는 대서양 연안에 있는 모로코에서 제일 큰 도시이다. 이날은 뻐스를 타는 시간이 길었다. 그래도 창밖에 펼처지는 경치는 볼만하였다. 이름 모를 야생화도 보기 좋았고 나귀타고 가는 사람들 보는 것도 좋았고 양이나 소가 있으면 꼭 돌보는 사람들이 있는 것도 특이했다. 포르투갈과 스페인에서 봤던 버섯 모냥의 솔 밭들도 보였다. 가이드는 우리들이 예상한 사막지대를 보지 못한 것을 말하며 모로코의 남부 지방은 사하라 사막에 접한 사막지대가 있다고 했다. 낙타 이야기도 해 준다. 낙타는 40 Kg의 짐을 싫고 40 Km를 먹지도 마시지도 않고 갈 수있다고 했다.
계속해서 평원을 달린다. 깨끗히 보이는 3층 아파트가 즐비한 신 도시를 지나고 석양 무렵 카사블랑카에 도착했다. 하꼬방 촌 같은 빈민촌이 나오고 다음에는 좋은 집들이 즐비하게 늘어선 지역이 나오고 또 빈민촌이 보이고 한다. 빈부의 차이가 너무 심해 보인다. 시내 중심부에 들어서니 보기좋게 지어진 관공서 건물들과 사무실 건물들이 즐비하다. 시내 복판에 위치한 호텔에 도착하여 호텔식당에서 저녁 식사를 했다. 음식이 허술했다. 오랜 시간의 뻐스 여행에 좀 지친 우리 일행은 곧 호텔방으로 갔다. 한때는 최고의 시설의 호텔이였던 같다. 문들이 육중하고 방이 넓고 가구들이 큼직하였다.
제6일, 호텔에서 나 혼자서 밖에 구경을 나갔다. 은행, 호텔, 사무실 건물들이 넓은 거리에 줄을 서 있고 보기에는 좋았지만 길 거리는 깨끗하지 못 하였다. 호텔로 돌아와 아침식사를 하고 우리는 뻐스로 시내 구경을 하였다. 해안가에 있는 이스람 회당을 관람했다. 무하므드 5세 왕 아버지가 지었다는 이 사원은 500명씩 교대로 8년을 걸쳐 1902년 완공했다고 한다. 10만명을 수용한다는 이 회당은 외부에서만 봤지만 규모가 웅장하고 드높은 첩탑이 볼만했다. 주위도 깨끗히 유지하고 있었다.
카사블랑카를 떠나 우리는 탕헤르로 돌아가서 페리를 타고 지브롤터 해협을 건너 타리파에 도착하여 뻐스로 또레모리노스로 향하였다. 해변가에 위치한 호텔에 도착하여 호텔 식당에서 부페로 저녁식사를 하였다. 식당이 깨끗하고 음식들이 좋으며 다양하였다. 저녁식사를 마친 일행은 해변가로 나가서 산책을 하였다. 해변에서 떨어진 언덕에 주택들은 하나같이 붉은 기와로 덮혀있고 흰벽이며 모두가 깨끗하고 아담해 보였다.
제7일, 아침에 나는 혼자서 해안가로 나가 맨발로 모래사장을 약 한시간 걸었다.이날도 구름한점 없는 쾌청한 날씨였고 파아란 하늘보다 더 진한색의 파란 지중해 물결을 즐겨보았다. 호텔 근처에서 발에 모래를 털고나서 양말과 신을 신고 호텔로 돌아와 쌰워를 하고 기분좋게 아침식사를 하였다.
우리는 다시 뻐스에 타고 해안길을 따라 북상했다. 집들이 모두 새로 지은 집같이 깨끗해 보였고 따스한 햇살이 쪼이는 지중해 해안은 한산했다. 우리는 지중해의 하얀 마을로 알려진 미하스에 들렸다. 높은산 중턱에 있는 이 마을은 상가지와 주택지로 지붕을 빼면 모두가 하얗다. 우리들은 흐터져 상가를 구경하고 내려다 보이는 해안가 마을을 보기도 하고 정원을 둘러 보기도 하며 여가 시간을 즐겼다. 이곳에 있는 식당에서 점심을 먹고 그라나다로 향하였다.
그라나다에 접근하니 우선 눈이 하얗게 덮힌 네바다 산맥이 위용을 나타냈다. 한 눈에 왕도가 있을만한 곳이다 싶었다. 이슬람이 지배할 당시 궁전이였던 아랍 양식으로 건축된 알함브라 궁전을 관람하였다. 800여년동안 이슬람이 이곳을 지배하였다. 1492년 스페인 마지막 이스람 왕국이 이성을 카도릭 왕에게 건네주고 아프리카로 떠난 후 기독교를 국교로 하는 근대 스페인이 시작 된 것이다. 이 성은 정원을 중심으로 왕궁, 카를로스 5세의 궁전, 헤네라리페 정원, 알카사바 성채로 구성돼 있다. 궁전의 섬세하게 조각이 된 천정, 문들, 볼수록 아름답고 섬세하다. 잘 가꾸어진 정원도 볼만했다. 성에서 건너다 보이는 산마루의 이쁜 주택들 멀리 보이는 파란 산들은 절경이다.
우리가 묵을 그라나다 팔라스 호텔에 도착하였다. 고급호텔이다. 방을 배정받았는데 침대가 하나였다. 라비로 내려가 침대 둘 있는 방으로 바꿔 달라고 했더니 훨신 더 넓은 방을 준다. 자쿠지도 있고 카우치와 의자와 큰 책상이 있는 거실이 따로 있었다. 킹 싸이즈 침대가 둘이 큰 방에 놓여 있었다. 저녁식사를 마친 일행들이 층계옆 한 장소에 하나 둘 뫃이더니 여러명이 되였고 화기 애애한 교제시간이 시작됐다. 11시까지 하고싶은 말들을 하며 마시고 즐겼다.
제8일, 깨끗한 호텔식당에서 아침식사를 마치고 흰눈이 덮인 네바다 산맥을 뒤로하고 꼬르도바로 떠났다. 내륙지방으로 접어드니 올리브 나무들이 사방이 가득히 보인다. 스페인에서는 올리브를 세계의 생산 50%를 생산하고 있다고 한다. 올리브 나무는 한번 심으면 200여년동안 올리브를 딴다고 한다. 꼬르도바 시가지가 보이는 강 건너편에서 뻐스를 내렸다. 그림 같은 옛날식 돌 다리위를 걸어서 건너갔다. 꼬르도바 성당을 관람하였다. 회교사원을 수백년에 걸처 개조하여 지은 이 성당은 입이 저절로 벌어질 만큼 고색이 창연하고 웅장한 내부 규모나 장식들이 장관이였다. 벽에 성화들이 많이 걸려 있는데 옛날에는 문맹인들이 많아서 성화를 보여주며 성경말씀을 들려주기 위함이였다고 한다. 성당 구경을 마친 우리들은 걸으며 시내 거리를 구경도 하고 식당에서 점심을 먹은후 마드리드로 향하였다.
꼬르도바에서 마드리드로 가는 길 주변은 온통 올리브 나무였다. 가끔 포도 밭도 나왔는데 이곳에서는 포도나무를 매년 쌍둥 잘라서 새로 나는 줄기에서 포도를 생산한다고 한다. 고속도로 주변에는 새빨간 아마폴라 꽃이 피여있어 보기 좋았다.
도중에 동키오테가 들렸다는 마을을 들렸다. 고옥에 동키오테 상이 있었다. 어느 큰 도시에서나 볼수 있는 고층건물, 넓은 도로에 수많은 차들이 질주하는 마드리드 시내로 들었다. 마드리드는 스페인 수도로 400여년간 정치, 경제, 문화의 중심지로 해발 646 미터의 고원도시이다. 저녁 식사를 오랫만에 한국식당에서 하게 되어 식당근처로 가는 골목길로 접어 들었다. 길이 좁고 큰 뻐스가 돌기가 어려웠다. 여기서 뻐스가 조금 후진 하다가 옆에 안전철주에 부딫쳐 뻐스 밑이 조금 찌그러졌다. 운전수는 또 사색이 되였다. 한식으로 저녁을 마친 우리들은 다시 뻐스를 타고 호텔에 갔다. 마드리드에서 제일 큰 호텔인 아우디토리움 호텔에 여장을 풀고 각자 방으로 갔다.
제9일, 같은 호텔에서 하루 더 묵게 되어 짐을 꾸릴 필요가 없는 아침이었다. 호텔식당에서 조식을 마친후 중세 도시인 똘레도로 향하였다. 시내를 빠져나오니 전날 오후에 지났던 올리브 밭들이 즐비하고 도로변에는 역시 빨간 아마폴로가 아름다운 자태를 한것 자랑하고 있었다. 똘레도에 도착 강변 길을 돌아 시가지를 원경으로 보며 구경을 즐겼다. 시내로 들어가 똘레도 대성당을 관람하고 산토토메 성당에 있는 ‘오르가즈 백작의 장례식’ 그림을 봤다. 오르가즈 백작이 생전에 좋은 일을 많이 했고 죽을때 있는 재산을 모두 희사해서 이분의 그림을 여러 화가에게 부탁했는데 그가 죽은지 200여년 후에야 화가 엘 그레꼬가 이 그림을 그리게 됐다고 한다. 백작 뒤에 성인들이 서 있는데 그중에 하나가 화가 자신이고 백작 옆에 어린이가 하나 앉아 있는데 화가의 아들이란다. 자기 얼굴과 아들 얼굴을 유명한 그림에 남겨 후대에 전 하였구나 싶었다.
점심은 강변 다리옆에 있는 식당에서 스테이크로 맛있게 먹었다. 샤프 여행사 사장님이 내는 포도주가 또 나왔다. 주로 저녁에 포도주를 사 주셨는데 오늘은 점심에도 포도주가 나왔다. 사장님과 같이 하는 여행에는 포도주가 자주 나온다. 여러해 전에 북 유럽을 사장님과 여행할때는 식수를 모두 사 주셨던 것을 상기했다. 점심식사 후에 모두들 나와서 오래된 다리 밑으로 흐르는 강물을 보거나 강 건너 성벽 넘어로 보이는 고도를 관망하며 잠시 즐거운 시간을 보냈다.
뻐스에 올라 마드리드로 향하였다. 시내에 들어와서 시내 관광을 하였다. 프라도 미술관을 관람하였다. 36호실에 있는 고야의 그림 마하를 노치지 않고 모두 보았다. 아름다웠다. 그림들이 너무 많아서 대충만 보는데도 시간이 많이 걸렸다. 왕궁과 광장 등을 둘러 본 후에 백화점에 들려 선물을 사도록 시간을 내 주었다. 선물을 살 필요가 없는 나는 밖의 근쳐를 빙빙 돌다가 벤치에 앉아 휴식을 취하였다. 저녁에 같은 호텔로 돌아왔다. 그동안 해박한 지식으로 업무를 훌륭히 해낸 가이드와 운전수에게 일행은 특별히 사례를 하며 우리의 고마움을 전했다. 처음 인상으로 얏 보았던 가이드는 놀라울 수준급이였음을 모두가 알게 됐다. 누가 말했듯이 디럭스 가이드였다.
제 10일 호텔식당에서 아침을 들고 공항으로 나가서 항공편으로 바르셀로나에 갔다. 공항에는 기아 로고를 단 티셔스를 입은 축구응원단들이 많았고 비행기에도 우리와 같이 바르셀로나에 가는 응원단들이 많았다. 이날 저녁에 마드리드 팀과 바르셀로나 팀이 축구 결승전을 한다고 했다. 제 시간에 바르셀로나에 도착하여 언덕위에 있는1992년 올림픽 경기장을 관람했다. 여기에서 마라톤에는 한국의 황영조 선수가 우승을 하였고 경기도와 자매결연을 한 르셀로나시는 황영조 선수가 뛰는 모습을 담은 큰 돌을 경기장이 보이는 길가에 비치해 놓고 있었다.
일행은 경기장에서 내려와 해변가에 있는 식당으로 가서 그곳 해물 음식을 잘 대접받았다. 비취에는 해수욕 하는 사람들로 붐볐다. 여기서 시내로 들어가 피카소 미술관을 관람하였다. 어렸을때부터 미술에 천재였던 피카소는 8살때 미술 선생이였던 아버지가 아들에게는 더 가르칠 수가 없다고 했을 정도였다고 한다. 13세 이전에 그린 인물화 중에는 자기 어머니의 초상화도 있었고 섬세한 그림솜씨가 그대로 담겨져 있었다. 피카소는 당대에 그림 인정을 받아 부유한 삶을 살았던 예술가 이다. 90대에 그린 그림은 손가락을 세개만 그리기도 하는 어린이 다운 그림을 그리기도 했다. 어렸을때 어른 같이 그림을 그렸던 피카소는 늙어서 어린이 노릇을 한 모냥이다.
구엘공원과예술품들
우리는 미술관에서 나와 구엘 공원에 갔다. 시가지와 바다가 내려다 보이는 이 공원에는 관광객으로 들끓었다. 공원의 의자들이 예술품이다. 가우디가 설계 했다는 작은 교회도 있고 파도를 연상하게 하는 특유의 설계로 된 삐뚤어진 다리 기둥이며 모두가 처음 보는 모냥새였다. 구엘 공원에서 시내를 통과하여 가우디 성당으로 향하였다. 가는 도중 가우디가 설계하여 지은 유일한 개인 저택을 보았다. 이집을 지은 사람은 문도 모두 다르고 기둥 굵기도 다르며 보기에 반듯하지 못해서 가우디가 설계하여 지은 이집을 아주 싫어 했고 결국 싸게 어느 은행에 팔았다고 한다. 나중에 이 집의 진가가 알려지며 은행은 큰 돈을 벌었다고 한다.
천재 건축가 가우디의 ‘성 가족 교회 (Sagrada Familia)’ 에 도착하여 내부를 관람하였다. 이 교회는 1882년에 건설되기 시작하여 아직도 건설중이다. 가우디가 생전 심혈을 기우려 건축에 참여 했으며 아름다운 곡선의 탑이 4개이다. 앞으로 100-200년 더 결려 이교회가 완공 될 것이라고 한다. 입구와 출구에 돌로 조각된 예수와 제자들 그리고 성경에 나오는 주요 인물들이 눈을 끈다.
성가족 교회
성 가족 교회를 관람한 후에 스페인 재래시장을 구경했다. 큰 길가에는 축구 응원단들이 몰려 다니며 자기 팀을 응원해달라고 한다. 시장 안으로 들어가니 과일이며 먹을 것들을 팔기 보다는 장식하기 위하여 진열해 놓은 듯 하였다. 호텔로 다시 돌아와 다음날 떠날 준비들을 하였다.
제 11일 호텔에서 아침식사를 마치고 공항으로 향하였다. 근대식 공항에는 여행객으로 붐볐다. 차례를 기다려 좌석을 지정받아 표를 받아 게이트로 나갔다. 우리가 타고 갈 비행기가 도착했는데 조종사가 비행기 엔진이 좀 이상하다 하여 비행기가 취소 됐다. 아일런드의 화산 연기로 엔진에 이상이 생겼는지 의심이 갔다. 지하실로 내려가 가방들을 다시 찾아서 다른 비행기로 가기 위하여 긴 대열에서 몇시간 기다려야 했다. 결국 다음날 비행기로 떠나게 되여 모두 근처에 모텔로 가서 늦게 점심을 먹고 편히 쉬었다.
제12일 우리일행은 모텔에서 나와 바르셀로나 공항에서 Air France 항공기편으로 아트란타에 도착하였다. 아트란타에서 비행기를 갈아타고 저녁에 레이건 공항에 안착하였다. 이번 여행중 우리들은 포르투갈의 대서양이 보이는 땅끝지역의 경치, 모로코의 평원과 노새타고 다니는 사람들, 스페인 지중해 연안의 파아란 하늘, 푸른바다 와 밝은 햇살을 오랫동안 기억 할 것이다. 알 함브라 궁전 과 성 가족 교회는 다시 가 보고픈 곳이기도 하다. 쌰프여행사 사장님과 한방을 썻던분은 남들을 어찌나 잘 보살펴 주는지 여행사에서 온 분으로 오해 받기도 한분, 행실 바른 장로님 부부, 목 수술을 받은지 얼마 안되는데 칼라를 쓰고 오셔서 끝까지 여행을 잘 하신분, 딸기를 사 주시던분, 사진 잘 찍어준 막내부부, 공항에서 쎌폰이 터졌다며 미국에 전화하라고 배려해 주시던분, 특히 여행중 같은방을 쓰며 마음 써주신 노신사분을 나는 오래 기억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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