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월 17일: 평신도 주간 1,4부 예배>김웅수 장로
신앙도 자란다
--에스겔 47: 3-7
“나는 기독교의 가르침의 요점을 다음과 같이 ‘힘과 뜻을 다해 네 하나님을 사랑하고 네 이 웃을 네 몸과 같이 사랑하라’는 성경구절에 집약되어 있다 생각하고 있으며 믿음 소망 사랑 은 다 중요한 것이데 그 중 사랑이 제일이라 가르치는 사랑의 종교라 생각을 하고 있습니 다.’ 이는 윤리와 도덕을 숭상하는 유교적 일반 상식과는 거리가 있는 것으로 파악했으며 1986 년도의 평신도의 설교 시간을 이용해 나의 견해를 피력하였습니다.” 이 글을 읽고 보니 오늘의 평신도 설교가 저에게는 마지막 기회가 되는 듯 합니다. 오늘 말씀의 제목을 “신앙도 자란다”라고 하고 성경을 “에스겔 47장 3-7절”을 소개하게 되었습니다. 여러분들 이 오늘 저에게 듣고싶은 바램이 있다면 저의 개인 신앙 생활과 우리교회의 변천 과정이라 생각하였습니다. 그러한 면에서 저에 대한 개인 신앙 변천 과정에 대한 말씀을 먼저 드리겠 습니다.
오늘 읽어드린 에스겔47장 3-7절은 에스겔 선지자의 환상을 소개한 글입니다. 에스겔이 감동되어 예루살렘 문지방에서 생수가 솟구쳐 나오는데 그 생수가 점점 많이 흘러 내리더 니 그 물이 개울이 되고, 큰 강이 되고, 큰 바다물이 되어지더라는 것입니다. 또 한편 이 말 씀은 우리 각 개인이 받는 은혜의 깊이와 단계를 말해 주기도 합니다. 이 은혜의 강물은 점점 깊어갔습니다. 발목에서 무릎, 무릎에서 허리, 허리에서 헤엄칠 수 있는 풍성한 물로 불어 났습니다. 우리들 신앙도 깊어가야 하고, 교회도 은혜가 더욱 깊어 가야 한다는 이야 기입니다. 발목에 차는 은혜는 교회를 사모하는 은혜인 줄 압니다. 교회로 나오고 싶어진다 는 말씀이라 생각하면 여러분들은 이미 이 단계를 지난분들입니다.
다음에 물이 무릎까지 차는 단계의 은혜는 기도하고 싶어하는 은사를 말한다 합니다. 우리 가 하나님께 기도하는 것도 성령님께서 허락하실 때 가능한 일입니다. 기도는 참 성공의 비 결이요, 능력의 비결이요, 교회 부흥의 비결이요, 마귀를 이기시는 비결임을 믿으시기 바 랍니다. 세번째 물이 허리까지 찼다고 하는 것는 겸손의 은사를 말하는 것입니다. 교회에 서 가끔 세족식을 하는 이유이며 교회 출석 잘하고 기도를 많이 하고 교회 봉사를 많이 해도 교만할 수 있습니다. 잠언 16장18절에는 “교만은 패망의 선봉이요 거만한 마음은 넘 어짐의 앞장이니라”고 했습니다.
물이 많아져 헤엄칠 단계가 되었다 함은 세상을 초월할 수 있는 은사를 가르친 비유라 합니 다. 세상과 정욕과 물질등으로부터 억매였던 마음이 자유되어 하나님께로 향하게 되는 단계를 말합니다. 이와 같이 헤엄칠만한 은혜에 젖어 들어가면 모든 사는 것이 내가 사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은혜로 살게되고 아무리 보는것 듣는 것이 다 죄악된 세상이라 할지 라도 아무런 영향도 받지 않고 살게 된다 합니다. 저도 최근에는 매일 오전에 수영하는 습성을 길렀습니다. 옛날에는 25야드 수영장을 쉬지 아니하고10회 왕복하다 요사이에는 나이 들어 5회로 단축시켰습니다. 전쟁 때 한강을 못 넘은 한으로 미국에 도착해서부터 물에 뜨는 연습을 하다가 수영으로 바뀌었습니다. 그래서 수영도 몸을 물에 맡겨야 잘 뜨게 되 있습니다. 헤엄을 칠 줄 모르더라도 물에다 몸을 내어 맡기고 가만히 있으면 뜹니다. 그 러나 발버둥 치고 겁을 먹고 몸을 내여 맡기지 아니하면 그는 생전 깊은 물에 들어가 보지 못합니다. 우리 모두 이 은혜의 물 깊은 단계까지 들어가 사는 성도가 되기 원해 봅시다. 한국 전쟁이 나의 수영으로 이어졌다 하였는데 다시는 동족 상잔의 전쟁이 나지 않기를 바 라고 있습니다.
오늘의 성경 6절과 7절을 보면, 에스겔이 다시 강가로 올라와 보니 이미 강 양쪽 언덕에 나무들이 있었다라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이강이 드디어 옥토를 만들었습니다. 은혜의강 만 흐르게 되면 박토가 옥토로 변한다는 말입니다. 이 강물이 흘러가는 주변에는 각종 아름 다운 과실 나무와 약초들이 자라나는 것과 같이 하나님의 구원의 은혜를 입는 순간 놀라운 생명력을 가지게 되며 풍성한 믿음의 열매를 맺게 된다는 말입니다.
여기서부터는 나의 신앙심의 변천 과정 입니다. 사람은 누구나 자기의 인생목적과 영원함 에 대한 회의와 고민을 하게 마련입니다. 나도 예외는 아니었습니다. 중학생이 되어 문학 책을 읽기 시작해서부터 더욱 그런 사색에 잠긴 듯 합니다. 내가 중학 2 학년 때 병상에서 읽은 책인데 일본 무교회 주의 기독인이던 우찌무라 간조 선생의 “후세에 남겨놓을 최대 의 유물”이라는 책자는 나의 인생을 살아가는데 많은 질문과 회의와 함께 사명도 주었습니 다. 오랜 세월을 거친 수많은 사람들에 의해 내가 형성되었으며 나도 이 세상을 떠나기 전 에 후세에게 무엇인가를 남겨주어야 하겠다는 사명감을 심어 주었습니다. 그리하여 선인 들의 전기를 탐독하며 인생에 대한 회의도 가지며 “위대한 비관은 위대한 장관과 통한다” 는 말을 남겨놓고 갔던 일본 닛꼬의 게곤노 다기 (폭포 수)에 투신 자살한 일본 청년을 동경 해 보기도 하였습니다.
내가 일본 고등학교 시절 일본 교회를 찾은 것도 이런 인생의 고민을 풀어보기 위해서였습 니다. 그러나 학생 시절 나의 번민을 달래준 것은 공자님의 말씀이었습니다. 공자님은 30 에 입지하고 40에 불혹이요 50에 하늘의 명을 깨닫고 60에서야 하는 일이 하늘의 뜻에 어 긋나지 아니하는 이순이라 하였습니다. 나는 현재 80이 넘었는데 이순은 멀고도 먼 이상 입니다. 인생의 깊이는 깨닫지 못하였으나 19세의 어린 나이에 성인 군자 되려는 교만 대 신 고민과 실수와 시련을 통해 모진 인생의 광풍 안에서도 휘청거리지 않는 인생 되기를 다 짐해 보았습니다.
해방과 더불어 군인이 된 나는 어느 때든지 필요하면 생명을 바쳐야 한다는 강박감으로 생 사에 대한 고민을 하게 되었습니다. 나는 일선에서 거의 매일을 헬기를 타고 전선을 돌아 보거나 비행기를 자주 타야 했습니다. 수시로 나는 내가 지금 죽을 수 있나 하는 질문을 해 보았습니다. 나는 주어진 환경에서 최선을 다해 후회 없는 순간을 가짐으로써 생사를 초월 할 수 있는 인생관을 갖도록 노력하였는데 그렇다고 최선을 다한 인생을 살았다는 말은 결 코 아닙니다. 당시에 가졌던 최선의 기준은 내가 이때까지 사회에서 배워온 윤리 도덕과 철학을 기준 하였으며 기독교 믿음에 의한 것은 아니었습니다.
나의 기독교에 대한 첫 관문은 나의 결혼이었습니다. 나의 아내는 북한에 기독교가 들어왔 을 때 세례 받은 몇 안되는 가정의 자손으로 장인은 교회 장로이며 백부는 목사님이고 아내 는 모태 신앙을 갖고 있었습니다. 반면에 나의 집안은 대대로 전해 내려오는 유교 가정이었 습니다. 종파나 믿음에 관계없이 하나님의 존재를 부인하는 사람들은 그리 많지 아니한 듯 합니다. 나는 학생때부터 하나님은 내 가슴 속에 계시며 필요하면 나는 하나님의 음성을 들 을 수 있다고 생각하였습니다. 교회에 나가는 사람은 자기에 대한 자신을 갖지 못한 탓이 며 자기 수양을 위해 교회에 나가는 것을 구태여 탓할 필요는 없다고 생각하였습니다. 다만 나에게 교회를 나가기를 강요만 하지 말아 달라는 것이었으며 아내와 사귈 때 내가 장인과 대화를 나눈 내용입니다. 장인은 내가 장래 기독교에 입교하게 될런지 장담할 수 있느냐 하 시며 이해하셨으며 그 예언에 맞게 지금은 교회의 장로가 되어 있습니다.
두번째 나에게 하나님께서 찾아오신 것은 성경을 통해서입니다. 내가 성경을 접한 것은 5.16 군사 쿠데타에 반대한 탓으로 영어의 몸으로 수감된 절망의 장소이었습니다. 나는 반 혁명 죄로 재판을 받고 10 년형의 집행정지 처분이 될 때까지 약 1년 동안 수감 생활을 하 였습니다. 독방에서 읽을 수 있던 책이 성경책이었습니다. 평소 한번은 읽어보고 싶었던 성경이었습니다. 구약은 유대민족의 역사이자 추잡한 인간사라는 인상을 받았습니다. 영 어 생활의 초기라 마음의 여유를 갖지 못한 탓도 있었을 것입니다. 신약은 출옥할 때까지 일곱번 읽었는데 뜻을 새겨가며 읽어도 해석하기 어려웠습니다. 성경도 지도를 받아야 제 대로 이해 된다는 것이 그 때의 나의 경험입니다. 나는 하나님의 심방을 받고도 깊은 교제 의 기회로 발전시키지 못하였습니다.
세번째 하나님과의 만남은 Seattle에서의 유학 중 만났던 미국 노 기독인 부부를 통해서입 니다. 남편 Mr. Doughrety는 60세가 된 분인데 중기계 공장의 직공이었고 부인은 가정 주부이며 생활 수준은 중 하급이었다 생각합니다. 한국 학생들에게 부모이자 보호자이자 친 구였습니다. 우리 부부는 이 노부부와 같이 여행도 하며 Seattle Capitol Hill 미국 감리 교회에도 나가게 되고 끝내는 그곳에서 1964년 5월 26일 Hunt 목사로부터 세례를 받음으로써 감리 교인으로서 하나님의 부르심에 응답하게 되었습니다. 1966년 워싱턴으로 이동하면서 그 당시 D.C. 16가에 소재하였던 미국Foundry Church를 빌려 쓰고 있던 유일하게 한국 감리교였던 우리 교회를 방문하게 되었습니다. 내가 하나님의 부름을 받게 됨은 기독교의 교리를 잘 이해한 탓은 아니었습니다. 진실되고 몸소 사랑을 실천하고 예수님을 닮아가는 인격체가 백의 이론보다는 복음전파와 선교의 힘이라는 것을 깨닫게 해 주었습니다.
나는 교인으로서 요한 복음 14장 6절 “예수님은 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 나로 말 미암지 않고는 아버지께로 올 자가 없느니라”라는 성경 구절에 감동을 받게 되었고 나는 나의 죄를 대속 시키기 위해 독생자를 보내주심으로 나에게 새로운 용기와 희망으로 내일 을 살게 해주신 하나님의 사랑에 깊이 감사하고 있습니다. 내가 왜 오래 동안 이 길을 찾는 데 시간이 걸렸는지 모르겠습니다. 마태복음 5장 3-4절 “심령이 가난한 자는 복이 있나니 천국이 저의 것이요 애통하는 자는 복이 있나니 저희가 위로를 받을 것이요” 가 바로 내가 하나님 의 방문에 응답을 드린 기회로 이해하고 있습니다.
믿음도 성장합니다. 믿음의 길에 완성은 없으며 나의 경우도 같습니다. 떄때로 젊은 분들 의 신앙간증을 들으면서 교회에 나오는 해수로 신앙심의 심도를 따질려는 유혹이 얼마나 잘못된 일인지 깨닫게 되며 부끄러운 마음을 가질 때가 있습니다. 오랜 교회의 출석이 자연 적으로 신앙심이 깊어지는 대신 많은 회의심을 자아내는 경우가 있는 것도 사실입니다. 이 웃 사랑 실천의 생활이 강조 되며 설교를 들을 때마다 자극을 받게 되는 이유 같습니다. 교 회 나가기를 꺼렸고 하나님이 내가슴 속에 있다 했던 나지만 내가 우리 교회에 나온지도 벌 써 45년이 되며 열심히 교회 출석을 하고 있습니다.
다음은 우리 교회에 관한 말씀입니다. 나는 우리 교회에서 총무를 위시하여 지금은 채택되지 않고 있는 운영 위원장도 맡았고 교육 부장과 평신도 대표도 맡아 보았습니다. 은퇴 후에는 배드로 회장과 속장을 지냈으나 그렇게 교회 방향 설정에는 관심을 아니 두어 교회 변천에 대한 이야기를 나눌 자격은 많 지 아니합니다. 다만 인선 위원회가 공정하게 조직되면 그에 의한 인선을 통 한 교회 역원들의 결정 사항을 일반 교우들은 잘 따라가면 된다는 생각을 가 지고 있습니다.
우리 교회는1951년 10월에 한국 전쟁으로 말미암은 고국의 안녕을 기원하 며 이곳 워싱턴 지역에서 하나님을 섬기는 교회의 시발점이 됬다는 사실을 나 는 자랑으로 생각하고 있으며 여러분들도 이 교회를 창립하신 분들께 감사를 드려야 한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내가 우리 교회를 내 교회로 삼은것이 1967년이며 1녀 3남의 자식들과 같이 참석하여 장녀는 D.C. 내 16가 교회에서 그리고 끝으로 두 아들들도 우리 교회 에서 혼례식을 올렸으며 막내는 우리 교회 청소년 지도에 심혈을 기울렸으며 지금은 뉴욕에서 살고 있습니다. 우리 교회가 D.C. 내 16가의 미국 교회인 Foundry Church를 빌려 쓸 때는 출석 교인이 약 300명이 넘는 큰 고회일 때 였습니다. 불행이 우리 교회도 수 차례 교인들의 이합 집산이 있었고 제일 컷 던 교회의 아픔은 1987년 원로 목사님이 부 목사 님과 일부 교인들과 같이 타 교회로 가신 사건이었습니다. 나는 우리 교회의 발전이 교회를 떠나시는 분들 의 역할도 많은 것으로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나는 카톨릭 성당을 비롯해 많 은 이곳의 한인 교회들이 우리 교회의 분신 아닌가 생각하고 있습니다.
나는 우리 교회가 감리교 장정을 채택하기 시작한것이 감리교단에서 1977년 파송된 선 윤경 목사님으로 생각했으며 그가 Georgetown에 위치했던 St Luke Church에서 당시 한미 양 교회를 담임하시면서 그 교회를 한인 교회화 시킬 려는 노력이 결국에 가서는 출석 교인 100명 정도의 MD주 Silver Spring 의 Wood Side Church를 빌려 쓰는 신세가 되었고 이에 반발한 교인 43명의 현금으로 $450,000.00를 주고 당시는 William Waters United Methodist Church 이었던 현 우리 교회 성가대 연습실 건물을 구입하는 동기가 되었습니다. 그 리고 현 친교실이 1차 예배당으로 건축될 때까지 VA 주Mclean 소재 Trinity United Methodist Church를 빌려 쓰게 되었으며 오랜 MD 지역에서 VA주로 이사오게 되었습니다. 교회 역사를 보면 1984년 입당한 것으로 되 있으며 명칭도 Korean United Methodist Church of Greater Washington 으로 개칭된 줄 압니다.
내가 알기로는 그간 많은 발전을 통해 현 교회당으로 오게 됬습니다. 우리 교회도 많은 문제들을 안고 있으리라 생각됩니다. 주차 문제, 아동 교육 문제, 영어 예배 문제들을 들수 있습니다. 저는 본 교회당이 계획되는 제 2차 5개년 계획 때 회의에 참석해 보았습니다. 나는 군인 출신이기에 모든 기획이 목표 교인 수에서 시작되어야 한다고 생각하였습니다. 참석하신 분들은 믿음은 기계적으로 계획될 수 없다는 의견이었습니다. 나중에 들으니 2차 예배당 공사가 끝나고 주차장을 확장할려고 교회 남 쪽에 위치한 언덕을 매입하는데 $700,000.00이 필요한데 교인들게 재정적 피해를 피하기 위해 포기했다는데 지금은 새 건물이 들어서서 매입도 불 가능하게 됬었다 들었습니다.
나는 영어 목회에 관심을 갖었었습니다. 우리가 한때 미국 교회들이 쇠퇴할 때 교회를 $1.00이면 살 수 있다 하였습니다. 우리 한인 교회라고 그리 되지 말라는 법이 없습니다. 그래서 우리 교회가 지행할 길이 한국 혼이 깄든 교회 로서 한인 2 세들과 교회 근처 미국인이 주된 교회가 되어야 한다고 생각을 해 보았습니다. 그러나 현재 영어 예배는 증가하지 아니하고 한국계 젊은분들이 느는 교회가 되어 가고 있는 듯 합니다. 최근 들어 우리 교회에서 박명효 장로 님 지도하에 노인 사역이 활발해 젔습니다. 이러한 program은 오래된 교회로 서 벌써부터 정착되어 있어야 할 문제로 생각됩니다. 해외 선교도 최근에는 중국, 한국, 방그라데시, 멕시코, 탄자니아 등 활발해 지는 경향을 보이니 다행 한 일 입니다.
나는 조 영진 목사님께서 젊은 목사로서 대형 교회를 지향하는 대신 모범된 교회로서 미주 내 한국 감리교회 모임을 주도하시면서 다년간 교회를 지도하 신 현재의 이 지역 감리사가 되신 조 영진 목사님에게 한편 미안함과 동시에 교회를 성실하게 인도하신 감사를 드리면서 그 전통을 인계받고 게신 현 우리 교회 담임이신 김 영봉 목사님께 감사를 드리고 싶습니다.
경청해 주심을 감사 드리오며 여러분들의 신앙의 큰 발전을 기원드립니다.
잠간 기도드리겠습니다.
하나님 저의 교회의 발전과 역사를 짂혀 주시고 이시간에도 저의 입술을 다스 려 주시니 감사 드립니다.
우리 교회가 주님이 머무시는 곳이요 우리가 주님을 만나는 곳이 되게 하시 고 또한 믿음으로 형제된 모든 성도들이 더 많은 사랑을 나누는 곳이 되게 하 여 주시옵소서.
주님을 사모하는 성도들과 그 가족들을 보호해 주셔서 그들이 어데서 무슨 활동을 하든지 건강하고 번창하도록 인도하여 주시옵소서.
에 스겔 선지자의 환상처럼 우리 교회가 생수가 흐르는 강되게 하시고 우리의 믿음이 어제의 발목 수준에서 오늘은 무릅까지, 내일은 허리까지 자라며, 그 리고 더 나아가 물길을 가로지르며 마음것 헤엄하는 성숙한 단계에 이르도록 도와주시옵소서.
우리 교회가 이 지역 사회에 보탬이 되며 앞날의 희망이 될 수 있도록 인도하 여 주시옵소서.
우리를 위해 죄 없이 십자가에 매달리시고 부활하신 구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 을 받들어 비옵나이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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