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통일문화산책

통일문화산책(남북한의 구호와 표어 2)

여러분 안녕하십니까? 통일문화산책 진행에 이현기입니다. 우리 조상들이 남겨준 전통문화가 광복 이후 남과 북으로 나누어져 지금도 생성돼 오는 서울문화 평양문화의 단면들을 살펴봅니다.

TEASER: 그 구호 나무가 불에 타면 다 죽어야 해요. 그렇게 죽을 수밖에 없는 거죠 / “수령의 명령을 관철하기 전에는 줄을 권리도 없다” 같은 섬뜩한 대남관계 구호는 통일 이전에는 없어질까 의문

서울문화 평양문화 통일문화 책 구호와 표어 중 구호문헌나무 내용이 있습니다.

북한은 그들 구호의 연원을 구호문헌에서 찾고 있다. 구호문헌은 1930년대 항일혁명 당시 빨치산 대원들이 나무껍질에 새겼다는 글발들을 말하는 것이다. 1960년대 초 청봉 지역에서 구호문헌을 새긴 19그루의 나무가 발견된 이래 구호문헌나무 900여 그루, 구호문헌 1만 2,000여 점이 발견되었다고 한다.

구호문헌의 글발은 ‘조선 동포들이여, 강도 일제 쳐부수고 삼천리금수강산에 자주 강국 세우자!’같이 독립 투쟁을 고취하는 것도 있고, 토지개혁, 남존여비 타파, 자주 경제 건설, 민족문화 건설과 관련된 것들도 있다. ‘아 조선아 백두산에 백두 광명성 탄생’ 같은 김일성 김정일 칭송의 글발도 있으며, 3대 태양, 3대 장군, 3대 위인, 3대 영걸, 3대 명인 등 김일성 김정일 김정숙을 한데 묶어서 칭송하는 내용들도 있다.

그리고 구호문헌나무가 발견된 곳을 밝힌 ‘구호문헌지도첩’을 펴냈고, 평성시에 구호문헌보존실을 마련하기도 하였다. 구호문헌나무는 김일성 부자 칭송 글귀 때문에 우상화를 위해 조작되었다는 평가도 받으나 민족항일기에 실제로 독립염원의 구호를 나무에 새긴 일들이 있었다. 청산리 전투가 끝난 뒤 지나가던 독립군이 애국충정을 새겨 놓은 사례가 있었다고 한다.

지난 2011년 6월 장진성∙탈북 작가는 ‘김씨 일가의 실체’ 프로그램 구호나무에 관한 내용을 방송한 바 있습니다.

장진성: 북조선 반탐영화들을 보면 간첩들이 백지에 액체를 바른 다음 서서히 드러나는 암호 숫자들을 읽는 장면들이 많지 않습니까? 구호나무란 그처럼 오래 묵은 나무를 선택하여 특수도료를 입인 다음 그 위에 투명 글자가 새겨진 투명 종이를 건조 부착시키는 방법으로 만든 것입니다. 김 씨 신격화를 위해 이렇듯 나무까지 신성시하는 북조선, 그래서 세상에 없는 웃음거리도 많은가 봅니다. 일부 눈치 없는 충신들이 자기 구역에서도 구호나무가 나왔다며 엉성하게 조작했다가 정치범수용소로 끌려간 사건도 있었고, 일본의 유명한 식물학자 앞에서 50년 된 구호나무 라고 자랑했다가 그 나무가 40년생이라고 과학적으로 반박하는 바람에 망신당한 사례도 있습니다.

장진성 작가는 구호나무는 조작만이 끝이 아니며 그 조작을 보호하는데 드는 비용도 만만치 않다고 들려줍니다.

장진성: 햇볕과 눈비로부터 영구보존 하면서도 자연전시를 한다고 그 숱한 나무들마다에 외국에서 수입한 통유리를 씌우고, 그 안으론 아르곤가스를 투입합니다. 또한 전기장치로 통유리를 감싼 보호천이 오르고 내릴 수 있도록 설계 돼 있는데 이 비용이 나무 한 그루 당 한 해 2만 달러가 들어간다고 합니다. 결국 북조선 전 지역에 분포 돼 있다는 그 모든 구호나무를 관리하는 데만 일 년에 수천만 달러가 들어가는 셈입니다. 만약 그 돈으로 쌀을 샀다면 얼마나 많은 사람들의 기아를 해결할 수 있겠습니까. 사람들뿐만 아니라 자연 속의 나무들까지도 속절없이 김 씨 부자를 찬양하는데 동원돼야만 하는 북조선, 하지만 2004년경엔 양강도 지역에서 당선전선동부가 아니라 국가보위부가 발굴한 구호나무가 발견되었다고 합니다. 누군가가 김 씨 독재를 원색적으로 비판하는 내용이었습니다. 어쩌면 그 나무가 수령 복을 고발하는 진실의 구호나무가 아닌가싶습니다.

2013년 4월 자유아시아방송 ‘탈북자 박소연의 세상 밖으로’ 방송에서 구호나무에 관한 내용이 나옵니다.

문성휘: 사실은 당시에 친구들과 참 얘기가 많았죠. 이건 강요된 죽음이다. 걔네가 구호 나무를 지키지 않으면 초소에 있던 군인들이기 때문에 자기들 책임이죠. 그 구호 나무가 불에 타면 다 죽어야 해요. 그렇게 죽을 수밖에 없는 거죠. 근데 그런 죽음을 이용해 먹은 겁니다. 우리 장군님을 위해 목숨을 바쳤다.

진행자 : 그 사람들의 죽음이 놀랍기도 하지만 구호 나무 자체가 놀랍기도 해요. 그런 게 존재한다는 것 자체가요.

문성휘: 실제 구호나무는 청봉에 있는 것만 진짜입니다. 그 외의 것은 다 만든 겁니다. 사실 청봉에 있는 구호 나무와 다른 구호 나무를 비교한 사진이 없습니다. 북한이 비교를 안 해요. 왜냐면 청봉 구호 나무는 ‘조선 청년들 속히 달려나와 항일전에 참가하자’ 이렇게 새겨져 있습니다. 김일성, 백두 광명성, 김정숙... 이런 말이 하나도 없어요. 나무들도 엄청나게 컸죠. 지금 나오는 구호 나무들은 백두 밀영에 가보면 어른 다리통만 한 나무들이 있습니다. 그게 50년, 60년, 100년산 나무일까요? 그래서 그걸 대조하는 사진을 못 찍어요.

진행자: 소연 씨는 구호나무 본 적 있습니까?

박소연: 네, 청봉에 있는 나무를 봤어요. 글자가 나무 숯검정이로 쓴 것 같아요. 이건 장군님께서 나라의 재보(국가의 보물)다 말씀하셨다고 해서 그걸 사람보다 더 귀중하게 보관하는 걸 응당하다고 생각했어요.

문성휘 : 사실 처음엔 북한 사람들도 청봉의 구호나무밖에 몰랐어요. 그러다가 80년대 후반에 구호 나무가 엄청나게 많이 발견됐습니다. 무려 2만 몇 대가 발견됐어요. 자강도에서 그게 많이 나왔는데 거기 진짜 따라갔던 친구가 있었는데 구호 나무를 찾는다고 4명 와서 함께 갔는데 이 사람들이 곳곳에 구호 나무를 찾아가더래요. 지도에서 좌표를 찍은 것처럼... 그래서 이건 완전한 협잡이라고 느꼈다고요. 구호 나무를 찾으면 고증자가 있어야 한다고 제 친구에게도 수표(사인)를 시키고 나무 주변을 다 치우고 사람들을 모은 다음, 이제 글을 찾는다 하고 시약을 뿌리니까 글자가 나무에서 나타나더라고... 진짜 황당한 얘기 아닙니까? 통일되면 이런 거 증언하는 사람이 많을 겁니다.

북한문화평론가 임채욱 선생으로부터 북한에서 대표적인 구호들은 어떤 것이 있는지 알아봅니다.

임채욱 선생: 구호들은 각 시기 성격이나 새로 만들어지는 무슨 무슨 운동에 따라 수없이 만들어지는데 1950년대에는 ‘천리마운동’이 등장하던 시기라서 “천리마를 탄 기세로 달리자”같은 것이 대표적이고 1960년대에는 천리마운동 연장선에서 전개된 ‘천리마작업반운동’을 뒷받침하려는 구호들 이를테면 “천리마대진군을 계속 다그쳐 다시 한번 혁명적 대고조를 일으키자”라는 구호를 대표적으로 내세웠지요 1970년대에는 ‘3대 혁명 붉은기 쟁취운동’을 전개하면서 이를 독려하는 구호들이 등장했지요. 1980년대는 ‘숨은 영웅 따라 배우기 운동’이 전개되던 때라서 “모두 다 영웅적으로 살며 투쟁하자”가 대표적이고 1990년대와 2000년대에는 고난스러운 것을 극복하자는 구호들이 수두룩하지요. 그런데 뭐니 뭐니 해도 “수령의 명령을 관철하기 전에는 죽을 권리도 없다”는 것일 겁니다. 이 구호를 보면 북한 주민의 생명은 자기 것이 아니라 수령의 것이라는 시련이 읽히지요. 이런 전투적 구호가 언제 인간적인 구호로 바뀌게 될는지요.

북한에서 정치적 구호는 언제 없어지게 될까? 그리고 인간적인 구호는 언제 나타날까?

임채욱 선생: 구호라는 게 정책이나 시책을 알리고 귀띔하는 기능을 하는 한 어느 나라에서나 없어질 수야 없겠지요. 더욱이 북한처럼 구호가 혁명전술을 뒷받침하는 기능을 가진 한 절대적으로 필요한 것이지요. 북한에서 구호는 혁명전술의 하나인 선전, 선동을 뒷받침하는 것이지요. 이것은 본래 공산주의 전략전술에서 옵니다만, 공산주의에서 혁명의 3대 전술은 조직, 투쟁, 선전•선동 세 가지인데 이 중 선전•선동을 뒷받침하는 것이 구호라고 말합니다. 구호가 선전단계에도 있고 선동단계에서도 있는데 내용이 다르지요. 선전단계 구호는 당의 의도를 알려주고 투쟁목표와 방향을 일러 주는데 선동단계 구호가 되면 바로 행동방법을 지시하는 것입니다. 이렇게 중요한 구호의 기능을 생각하면 “수령의 명령을 관철하기 전에는 줄을 권리도 없다”라든가, “누가 최후에 웃는가를 보자” 같은 섬뜩한 대남관계 구호는 통일 이전에는 없어질까 의문입니다.

한국에서의 구호와 표어는?

임채욱 선생: 구호나 표어가 많기로는 한국도 마찬가지이긴 합니다. 가히 ‘슬로건의 나라’라고 해도 무방할 정도로 한국에서도 구호나 표어는 온 사회에 편만 합니다. 하지만 한국에서는 북한처럼 일상대화를 하면서도 “동무, 우리 천리마시대의 기수답게 행동합시다”같이 구호체로 말하는 일은 없지요. 한국에서 구호는 반공 구호로부터 시작되었다고 보겠습니다. 광복되던 해 12월 신탁통치가 이뤄지게 된다는 말이 나오면서 우리 민족 모두가 이를 맹렬히 반대하기 시작했는데 이듬해 초부터 국내 좌익들이 신탁통치를 찬성하면서부터 신탁통치 반대와 더불어 좌익반대, 공산당반대가 구호로 나타나게 되지요. 더욱이 6.25남침을 겪은 후에는 “우리는 대한민국의 아들 딸 강철같이 단결하여 공산침략자를 쳐부수자”로 구체화됩니다. 시대별로 대표적인 것 몇가지만 보지요. 1960년대 “일하면서 싸우고 싸우면서 일하자”, 1970년대 “사람은 자연보호 자연은 사람보호” 1980년대 “세계는 서울로 서울은 세계로”, 1990년대 “산업화는 늦었지만 정보화는 앞서가자” 등이 있군요. 하지만 한국에서는 구호보다 표어의 성격을 가진 글들이 더 많이 생산되는 것 같습니다. “잔디를 밟지 마라, 이것은 당신의 것이다”, “마음마다 자연사랑 손길마다 자연보호”, “좋은 책 찾는 손이 복을 찾는다”, “피난 길에 울던 마음 통일하고 웃어보자”, “스승공경 하늘같이 제자사랑 바다같이” 공감을 주는 것도 많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