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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일문화산책

통일문화산책(국민배우와 인민배우)

북한 최고의 가수로 유명한 '인민배우' 최삼숙의 공연 모습.
북한 최고의 가수로 유명한 '인민배우' 최삼숙의 공연 모습.
사진-연합뉴스 제공


여러분 안녕하십니까? 통일문화산책 진행에 이현기입니다.


우리 조상들이 남겨준 전통문화가 광복 이후 남과 북으로 나뉘어져 지금도 생성돼 오는 서울문화 평양문화의 단면들을 살펴봅니다.


새해인사, 설 세배 인사를 하는 한국의 남녀배우 사진이나 영상물을 많이 볼 때입니다. 다들 잘 생기고 힘찬 표정에서 국민소득 3만 달러 시대가 성큼 다가선 모습을 느끼게 됩니다. 오늘도 북한문화평론가 임채욱 선생과 함께 남북한 배우들 이야기 나눠보지요.


임채욱 선생: 네, 좋습니다. 배우는 영화배우도 있고 연극배우도 있는데 북한에서는 목소리 좋은 성우도 배우라고 부릅니다. 배우의 범위가 아주 넓습니다. 영화배우, 연극배우 외에도 남쪽에서 무용수라고 부르는 무용가도 무용배우라고 합니다. 성악가는 성악배우, 뮤지컬연기자는 가극배우라고 부르며 남쪽에서 서커스라고 하는 곡예단 소속은 교예배우라고 부릅니다. 반면에 한국에서는 연극이나 영화 연기자만을 배우라고 하고 경우에 따라 뮤지컬연기자도 뮤지컬배우라고는 하지요.


성우도 목소리배우니까 목소리 연기자를 포함해서 연기하는 사람은 모두 배우라고 해도 틀린 것은 않을 테지요?


임채욱 선생: 옳습니다. 배우의 범위를 넓히는 것이야 나쁠 것 없지요. 하지만 이름을 정확히 불러주는 것이야말로 어떤 개념을 정확히 인식하게 하는 것이니까요. 이런 문제는 앞으로 얼마든지 수렴해서 의견이 합치될 수도 있겠지요.


배우는 배우이되 남쪽에서는 국민배우가 있고 북쪽에서는 인민배우가 있다고 합니다. 계급은 아니지만 연기자에게도 칭호가 주워지고 있지요?


임채욱 선생: 네, 국민배우니 인민배우니 하는데 하나는 호칭이고 하나는 칭호이지요. 호칭은 그냥 부르는 것이고 칭호는 의미를 가지고 있어요. 국민배우는 그냥 부르는 호칭이고 인민배우는 제도적으로 주어진 이름이지요. 정확히 말하면 남쪽에서 국민배우라고 하는 부름 말은 북쪽에서 인민배우니 공훈배우니 하니까 대칭적으로 부르게 된 것인지 아니면 자생적으로 그렇게 부르게 된 것인지는 확인은 어렵습니다. 하지만 제 생각으로는 북한에서 인민배우라 하니까 국민배우라고 부른 것으로 보입니다. 이런 현상을 사회학에서는 문화변용(Acculturation)이라고 합니다. 자유로운 남쪽이니까 이런 현상도 볼 수 있는 것이지요. 북쪽에 인민배우니 공훈배우는 나라에서 주는 명예칭호지요. 남쪽처럼 전 국민적으로 사랑받는 배우라서 자연스럽게 붙여진 호칭과는 다르다고 봐야죠.


알겠습니다. 북한의 칭호를 한 번 알아볼까요?


임채욱 선생: 북한은 6.25 전쟁 중에 이미 인민배우, 공훈배우 칭호를 정해서 수여했는데 이것이 인민칭호, 공훈칭호의 첫 출발입니다. 전쟁이 끝난 뒤 본격적으로 인민칭호와 공훈칭호란 것을 주기 시작하는데 그 범위가 넓습니다. 인민칭호를 받는 범위는 배우, 예술가, 방송원, 체육인, 설계가, 기자, 과학자, 교원, 의사, 약제사, 기술자들이고 공훈칭호를 받는 범위는 인민칭호 범위보다 훨씬 넓어서 무려 70개가 넘습니다. 인민칭호에 포함된 공훈배우, 공훈예술인, 공훈과학자도 있지만 인민칭호에는 없는 공훈어부, 공훈벌목공, 공훈정미공, 공훈창고원, 공훈강사도 있습니다. 두 칭호 다 수여하는 기준이 있습니다.


그럼 인민배우는 어떤 기준입니까? 어떤 배우들이 있습니까?


임채욱 선생: 인민칭호는 대체로 해당분야에서 15년이나 20년 이상 일한 사람으로 특출한 공훈을 세우고 인민의 사랑과 존경을 받는 사람이 받는 것으로 돼 있습니다. 처음에는 이런 기준과 관계없이 수여됐겠지만 지금은 공훈칭호를 받은 다음에 인민칭호를 받는 경우가 많지요. 이 시간에는 인민배우 중에서 영화배우만 보기로 하지요. 영화분야 인민배우는 <꽃파는 처녀> 주인공 홍영희를 비롯해서 수십 명입니다. 홍영희는 북한 돈 1원짜리에 얼굴도 나왔지요. 그밖에 인민배우를 언급해 보면 엄길선(1934~2005), 유경애(1920~?), 김용린(1936~?), 전두영, 김정화, 태을민, 김선영, 김세영 등이 인민배우지요. 또 무슨 사건으로 총살됐다는 우인희도 인민배우였고 월북한 배우 문예봉과 유원준, 추석봉, 오향문도 인민배우 칭호를 받았습니다. 여기 오향문은 6.25전쟁 때 남쪽에서 월북했는데 그 딸이 인민배우 오미란입니다. 오미란(1954~2006)은 남자인민배우 최창수와 더불어 북한에서 가장 유명하고 인기 있는 배우지요. 오미란은 북한에서 이렇게 평하고 있지요. 부드럽고도 강인한 모습의 조선여인을 잘 나타내는 배우로, 민족 정서가 베이고 향토애가 반영된 작품의 주인공에 적격이라고 말합니다. 최창수는 <월미도>나 <림꺽정>에서 영웅적 면모를 보인 이미지로

북한 주민들에게 가장 친숙한 얼굴이라고 합니다.


한국 국민배우는 누구인가요? 국민배우가 칭호가 아니고 호칭이라 하면 국민적 인기배우겠네요?


임채욱 선생: 한국에서 배우, 가수, 코미디언 등 뛰어난 예능인은 국민을 붙여서 국민배우, 국민가수, 국민코미디언 등으로 부르는데 연예인뿐 아니라 국민엄마, 국민여동생, 국민 딸 등도 있습니다. 여러 사람이 있지만 가장 유명한 사람은 안성기입니다. 그는 작년에 배우가 된지 61년이 됐고 130여 편의 영화에 출연했는데 연기력도 뛰어나서 국민배우에 가장 어울린다는 평입니다. 그러다 보니 배우 외에도 여기 저기 명예직도 가지고 있는데 가장 대표적인 게 세종학당 홍보대사입니다. 세종학당은 외국에 한국어와 한국문화를 보급하는 역할을 맡고 있는데 현재 54개국에 171군데 학당을 가지고 있습니다. 사실 국민배우라면 여러 사람이 아니고 몇몇 사람으로 희소성을 가져야 할 것 같은데 안성기 외에도 최민식, 송강호, 황정민, 이병헌, 힌석규, 김윤석, 유승룡, 하정우, 설경구 등 이름있는 배우는 모두 국민배우라고 부르기도 합니다. 어떤 기준에 따라 부르는 게 아니지요. 여자 국민배우는 나이로 봐서는 최은희 같은 원로가 있지만 현재 활동 중인 배우로는 김혜자, 윤여정, 이보영 등등이 있고 김영애, 김자옥 등 국민여배우로 불리던 사람은 저 세상으로 떠났습니다.


한국이나 북한에서 국민배우, 인민배우는 생각보다 숫자가 많은 것 같군요.


임채욱 선생: 국민배우는 몇 안 되는 희소성이 있을 것 같지만 한국에서 국민배우는 인기 있는 스타개념의 배우라면 아무한테도 국민배우라고 하니까 수가 엄청 많지요. 북한에선 필요에 의해 인민배우가 양산될 수도 있지요.


배우는 영화화면이나 무대의 얼굴이지요. 자신의 연기를 통해 의도된 성격을 그리는데 이것은 새로운 창조나 마찬가지라고 보겠습니다.


임채욱 선생: 그렇습니다. 남북한 어디라 할 것 없이 배우는 연기로써 말합니다. 북한에서는 연기를 통해 혁명과업을 수행하는 사명을 다해야 하고 한국에서는 작품이 의도하는 스토리를 그려냅니다. 한쪽은 영화를 오락적 수단으로 보는데 반해 다른 한 쪽은 정치적 수단이기도 하다는 차이가 있지요. 연기의 목적은 다를 수 있는 것입니다. 북한 배우는 무엇보다 작품의 사상성을 살려야 하는 것이 가장 중요하기에 연기력도 여기에 집중합니다. (김정일~연기를 잘 하지 못하면 사상을 살릴 수 없고 대중교양수단이란 사명을 못한다)


국민배우와 인민배우를 대하는 사회현상도 다르겠지요?


임채욱 선생: 배우는 기본적으로 관객의 욕망을 충족시키는 것이 주된 일이라고 보겠지요. 한국이나 북한이나 이점은 같을 텐데 북한에선 어떤 이데올로기와 가치를 전달하려 하는 수단이 된다면 한국 배우는 관객의 욕망을 대리충족 시키는 역할에 더 중점을 두고 있다고 하겠습니다. 그렇다보니 한국 국민배우는 대중적 이미지를 끊임없이 만들면서 친숙함을 이끌어야 합니다. 이에 반해 북한 인민배우는 스타라는 개념보다 주민들의 사상적 모범이고 목적의식적인 창조자란 성격 때문에 인민배우라도 그 이름을 강조하진 않는 편입니다. 한 예로 오미란 같은 경우도 작품 <도라지 꽃>으로 그렇게 유명해도 주민들은 그 이름을 들먹이지만 영화평론에선 오미란 이름을 직접적으로 부각시키지는 않습니다. 스타성을 추구하는 한국배우상과는 다른 점이죠. 이런 점을 두고 북한에선 한국 배우가 흥행업자와 연출자에게 2중으로 매여 있는 고용자라고까지 폄하합니다. 꼭 그렇지는 않지요.


통일문화산책 함께 해주신 여러분 감사합니다. 지금까지 기획과 진행에 RFA 이현기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