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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일문화산책

남북한의 문중의식과 조상제사

 

 

여러분 안녕하십니까? 통일문화산책 진행에 이현기입니다.

우리 조상들이 남겨준 전통문화가 광복 이후 남과 북으로 나뉘어져 지금도 생성돼 오는 서울문화 평양문화의 단면들을 살펴봅니다.

TEASER: 북한가족법에서는 8촌까지의 혈족, 4촌까지의 인척 사이에는 결혼할 수 없다고 돼있습니다

지난 번 북한에서 나온 스마트 폰 이야기를 했지요. 성씨와 본을 밝히는 프로그램이 나와서 북한주민들이 아주 좋아한다는 것인데 이런 생각도 듭니다. 성씨와 본을 밝힌다는 것은 한 성씨의 문중도 밝힌다는 것이 되겠지요. 그럼 앞으로 북한에서도 각 문중이 아주 높은 윗대 조상제사도 지낼 수 있는 날이 오겠는가 하는 것이지요. 그래서 통일문화산책 오늘은 남북한의 문중의식과 조상제사에 관해 북한문화평론가 임채욱 선생과 함께 이야기 나눕니다.

임채욱 선생: 글쎄요? 북한에서 문중의식이 있을까요? 문중이란 같은 성을 가진 집안을 말하는데 북한에서 8촌 이상이 되는 사람을 만날 일이 잘 없지요. 무엇보다 조상제사를 함께 올리려면 문중의식을 가져야 하겠는데 북한에서 그게 쉬운 일일까요?

문중에 대해서 설명을 좀 해 주신다면?

임채욱 선생: 문중(門中)은 가문이라고도 하는데 ‘가문의 영광’ 할 때 가문이 바로 문중을 말하는 것입니다. 쉽게 말해서 같은 성씨를 가진 한집안을 말합니다. 옛날에는 한 집안에서 효자가 나오고 효부가 나오고 열녀가 나오면 가문의 자랑인데 규범을 어기는 사람이 나오면 가문에 먹칠을 한다고 했지요.

지금 음력 10월로 들어섰는데 예로부터 음력 10월 상달에는 문중의 조상묘에 가서 제사를 올린다고 했지 않습니까? 이 제사를 시제라고 합니까?

임채욱 선생: 네, 말씀대로 음력 10월 상달이면 문중단위로 조상 산소에 가서 제사를 올리지요. 묘에서 지낸다고 묘제라고도 하는데 직계조상이 아니더라도 아주 윗대 조상의 묘소를 찾아서 제사를 올립니다. 숭조여천(崇祖如天)이란 말이 있습니다. 조상숭배하기를 하늘처럼 하라는 말이지요. 옛말이지만 오늘에도 이런 정신을 강조하면서 조상묘에 제사를 올리는 문중이 많지요. 이 제사를 시제라고 하는데 시사(時祀) 또는 시향제(時享祭)라고도 합니다.

그러니까 시제는 자기 직계부모나 조상이 아니더라도 문중의 조상을 제사지내는 것이군요. 문중의 범위는 어떻게 됩니까?

임채욱 선생: 문중은 성이 같고 본관이 같은 피붙이가 모인 것을 말합니다. 즉 혈족이 되는 것입니다. 문중은 종중(宗中)이라고도 하는데 한 성씨 본관에도 지역별로, 파별로 여러 갈레가 나눠지지요. 그래서 대문중이 있고 파문중이 있고 소문중도 있지요. 대문중은 같은 성씨 전부가 포함되지만 파문중은 중시조 중심으로 다시 나눠지며 소문중은 한 지역의 입향조를 중심으로 이뤄지고 있습니다. 시제는 대문중 시제도 있고 파문중 시제도 있고 소문중 시제도 있습니다. 그러니까 음력 10월 상달에는 전국에서 문중단위로 시제가 열리는데 다 열린다면 우리나라 성씨 본관숫자 보다 많이 열린다고 봐야지요.

북한에서는 가족을 넘어 서는 친족이나 문중의식이 있습니까?

임채욱 선생: 우선 가족 외에 가까운 친족이나 친척은 알겠지요. 그러나 8촌이 넘어가는 친족이나 문중은 있기 어렵지요. 사회주의 제도 하에서 동족부락이 없어지고 6. 25전쟁 이후에는 주민 분류정책에 따라 거주지 이동이 많았지요. 하지만 족보를 알게 되면 친족이나 문중개념은 막연하나마 가지게 되겠지요. 북한에서는 문중이란 말보다 가문이란 말을 더 내세웁니다. 그러니까 북한에도 문중이란 개념은 있다는 것이지요. 북한에서 말하는 가문은 아버지 갈래 핏줄을 따라 그 성씨 시조에 까지 연결된다고 보지요.

그럼 문중을 의식하기 전에 친족의식은 어떨까요?

임채욱 선생: 북한가족법에서는 8촌까지의 혈족, 4촌까지의 인척 사이에는 결혼할 수 없다고 돼있습니다. 그러니까 8촌 이내를 친족으로 보고 혼인으로 맺어진 4촌 이내를 인척으로 본다는 것이지요. 친족과 인척을 구분하고 있는 것입니다.

친족과 인척을 어떻게 구분하고 있습니까?

임채욱 선생: 대체로 가족법 범위보다는 넓게 잡고 있습니다. 같은 핏줄기 8촌보다 넓게 10촌까지를 친족으로 보기도 합니다. 인척은 가족법에서의 4촌보다 넓게 6촌까지도 인척으로 봅니다. 이 둘을 합쳐서 친척이라 합니다. 친척을 아버지 갈래가 있고 어머니갈래가 있고 아내갈래가 있고 남편갈래가 있지요. 이걸 다 포괄하는 것이 친척입니다. 친척은 친족과 인척으로 나눠지지요. 친족은 앞에서 말했듯이 피가 같은 8촌까지로 보고 인척은 어머니 쪽 갈래가 있고 아내 쪽 갈래가 있습니다. 그러니까 외가 쪽 사람들과 처가 쪽 사람들을 합쳐서 인척이라 하는데 외켠, 처켠이라고 부르기도 합니다.

북한의 친족개념이 한국과 다른 것 같군요.

임채욱 선생: 한국에서는 민법상 친척집안 모두를 통칭해서 친족이라 하는데 북한에서는 같은 혈족만 친족이라 하는 점이 다릅니다.

친족범위가 다르다 보면 조상제사를 지내는 범위나 대상도 달라지겠군요.

임채욱 선생: 북한에서는 제사를 지내도 부모제사에 국한하고 4촌 이내의 친족도 제사 때문에 모일 일이 없는 삶을 살아오고 있지요. 그러니 문중단위 제사가 있을 수 없지요. 무엇보다 문중단위의 공유재산이 없으니 조상제사를 문중단위로 지낼 수가 없을 것입니다. 같은 성씨의 먼 윗대조상을 문중에서 찾는 일은 꿈도 꿀 수 없지요.

자, 그럼 한국에서 문중은 대체로 어떤 기능을 합니까?

임채욱 선생: 문중은 앞에서 말했듯이 동성동본이면 모두가 포함되는 대문중이 있고 중간에 유명한 사람으로부터 시작되는 파문중이 있고 지역별로 살다보니 갈라진 소문중이 있습니다. 이처럼 문중의 크기가 다르지만 문중이란 이름으로 조직되는 아버지 쪽 혈연집단이지요. 그러니 크고 작은 문중 어디에나 반드시 시조가 있지요. 그 시조를 비롯한 조상들을 위한 행사 중 하나가 구성원 모두가 모여 지내는 시제이고 묘제이지요. 문중 기능 중 가장 중요한 것이 조상 제사를 모시는 것이고 다음이 문중 구성원 간 친목을 도모하는 일이지요.

오늘날 문중의 기능이 한국에서는 잘 유지되고 있다고 봅니까?

임채욱 선생: 과거 전통시대처럼 같은 성씨들이 모여 사는 동족부락이 거의 없어진 지금은 문중의식이나 문중의 기능이 약화된 면은 크지요. 오늘날 자기 문중만 내세워 자랑하고 결속했다고 해서 좋은 것만은 아니지요. 또 실제 문중에서 하는 행사, 가령 조상제사 같은 것에 빠진다 해서 과거시대처럼 지탄받고 불이익이 돌아올 것은 드물겠지요. 그렇지만 문중이 가진 좋은 기능이 오롯이 없어 질수는 없는 것이지요. 사람이면 갖는 자기 존재의 정체성을 문중 소속원으로서 확인하는 일은 아주 좋은 일이라서 문중행사인 조상제사는 여전히 열리고 있지요. 북한에서도 지금은 당대 부모들 제사만 지낸다지만 먼 조상, 그러니까 4대조 이상 되는 조상에 대한 조상숭배 제사를 먼 훗날에도 기대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사회주의제도 밑에서 문중이나 친척관계란 것이 “집단주의에 기초하여 서로 돕고 이끄는 공산주의적 의리관계로 바꿨다고”말하지만 조상을 숭배하고 기리고 싶은 마음이 북한주민이라 해서 아주 멀리 있을 것 같지는 않습니다.

통일문화산책 함께 해주신 여러분 감사합니다. 지금까지 기획과 진행에 RFA 이현기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