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역사문화의 요람(搖籃) (14)
<참역사문화 운동>
이 문 형(워싱턴 문인회)
전약(前略)
[…이 때 치우천황은 공상(空桑)에서 제위에 올랐다. 이어 군사를 탁록의 들로 돌려 유망을 포위하니 또 크게 승리하였다. 관자(管子)가 “천하의 임금이 칼을 들고 노하면 쓰러진 시체가 들에 가득하다” 고 한 것은 바로 이것을 두고 한 말이다.
이 때 헌원(軒轅)이라는 사람이 유망이 패하여 달아나고 치우씨가 제위에 올랐다는 소식을 듣고 대신 임금이 되고자 헌원이 군사를 일으켜 치우씨에게 도전했다.
치우씨는 탁록의 들에서 헌원을 맞아 크게 싸웠다. 이 때 군사를 풀어 사방을 치니 죽은 자가 헤일 수 없었다. 또 큰 안개를 일으켜 적군의 마음이 흐려지고 손이 떨려 급히 달아나 겨우 목숨을 건졌다.
이리하여 회대(淮岱)와 기연(冀연)을 모두 차지하게 되자 탁록에 성을 쌓고 희대에 자리 잡게 되었다 … 하략(下略)]
규원사화 태시기(太始記) 내용의 일편이다. 신시(神市) 제14세 환웅 자오지(慈烏支: 치우천황)가 재위 109년 만에 세상을 떠나니 수는 151세이며 기원 앞 2598년이었다.
제 15세 환웅 치액특(蚩額特)은 재위 89년 118세의 수를 누렸으며, 제16세 환웅 축다리(祝多利)는 재위 56년 수는 99세였으며, 제17세 환웅 혁다세(赫多世)는 재위 72년 수는 97세였다.
신시, 또는 배달나라의 마지막 왕은 제 18세 환웅 거불단(居弗檀)이다. 그의 재위 기간은 48년이고 수는 82세(기원앞 2,333년)를 누려 당시로서는 단명하신 분이다.
이로써 단군조선 앞 신시시대는 제 18대 1,565년을 이어오다 끝나고 거불단의 아들 왕검(王儉)이 어지러운 천하를 수습하여 구환(九桓)을 하나로 묶어 단군조선을 건국하였으며 .
이렇게 하여 잠깐, 들여다 보려 했던 단군앞 신시의 18 역대 중에서 건너뛸 수 없는 내용만을 들여다 보았는데도 상당기간을 소요하였다.
마지막 정리로서 몇 몇 중요한 해설을 좀더 곁들인다.
***구환(九桓): 환인의 형제 아홉이 나라를 나누어 다스렸기 때문에 붙여진 이름이며 구황(九皇) 이라고도 한다.
***소도(蘇塗): 하느님께 제사드리던 제천단이 있는 성역(聖域), 절기 및 나라의 경조사나 중대한 일이 있을때 마다 이곳에서 제사드렸다. 주위에는 많은 나무를 심었으며 아무나 드나들 수 없다. 대문에는 방울과 북을 단 큰 나무를 세웠으며 제사 드릴 때에는 노래와 춤을 곁들였다. 옆에는 경 당을 세워, 미혼 젊은이들에게 충(忠), 효(孝), 신(信), 용(勇), 인(仁)의 다섯가지 계율과 글짓 기, 활쏘기, 말타기, 노래와 음악, 주먹으로 치기, 칼쓰기 등 여섯가지를 가르쳤다. 죄인이 혹 이 곳에 들어오면 그 를 나포할 수 없었고 벌할 수도 없었다. 소도는 우리 상고시대의 종교의식에서 비롯되어 아시아 일대에 널리 퍼졌으며 지금 시골에 남아있는‘솟대’는 여기에서 전해져 내려온 풍속 중의 하나이다. 소도의 유속은 아시아대륙의 구석구석에 아직도 남아있다.
***환화(桓花): 무궁화, 곧 근화(槿花)를 말한다. 환국(桓國: 신시앞 국가)의 나라꽃이기 때문에 桓花 (환화)라고 한다. 단군조선 제5세 구을(丘乙)왕검 16년(기원앞 2084년)에 환화(桓花:槿花:무궁화) 를 많이 심었다고 하는 기록이 있다.
***돌면서 춤을추며: 1세 환웅 거발환(居發桓) 때에도 무리가 열을지어 돌면서 소리내어 노래 부르며 하느님을 찬양하고 나라의 번영을 노래했다는 기록이 나온다. 우리의 옛 기록에는 이처럼 둥글게 줄지 어 돌면서 땅을 밟으며 춤을 춘다는 기록이 많다. 이것이 오랜동안 이어져서 오늘의 ‘강강술래’가 되 었다. <강강수월래>라는 한자음을 쓰고 있으나 “돌면서 춤을 추며”로 바꿔 써야할 것이다.
***환역(桓易): 환국의 역이라는 뜻으로서 복희(伏羲)씨가 지어 여왜(女와)와 주양(朱襄)을 거쳐 주 (周) 나라 때에 주역(周易)이 되었다. 오늘날의 윷놀이도 환역에서 유래한 것이다.
***천부경(天符經): 여든 한자밖에 안되는 이 간결하고 심오한 글은 학자마다 그 해석이 달라 종잡을 수 없다. 그것이 이글이 지니는 신령한 깊이를 뜻하는 것일수도 있겠으나 적어도 이글로 환역(桓易)이 이루어지고 주역(周易)으로 이어졌다면 이에 대한 해석을 함부로 할 일은 아니다. 어쩌면 천부경은 우 리가 해석할 수 있는 글이 아니라 주문을 외듯이 반복해서 읊어야하는 경문일지도 모른다. 감응이 예민 한 분들은 천부경을 외기만하면 강한 기가 연결된다고들 한다. 제16세 단군 고불(古弗)왕검 (기원 앞 1583) 때 임금이 제후들을 모아 하느님께 제사지내고 무리들과 밝은 등불을 켜서 밤을 밝히며 천부경 을 외면서 뜰을 밟았다고 하는 기록도 있다
'연재:우리역사문화의 요람-이문형' 카테고리의 다른 글
우리 역사문화의 요람(搖籃) (16)-이문형시인 (0) | 2009.03.12 |
---|---|
우리 역사문화의 요람(搖籃) (15)-이문형시인 (0) | 2009.02.27 |
우리 역사문화의 요람(搖籃) (13)-이문형시인 (0) | 2009.02.03 |
우리 역사문화의 요람(搖籃) (12)-이문형시인 (0) | 2009.01.24 |
우리 역사문화의 요람(搖籃) (11)-이문형시인 (0) | 2009.01.16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