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탈북자관련소식

‘금희의 여행’ 펴낸 최금희 씨② 남한생활

특집-저자와의 대화] ‘금희의 여행’ 펴낸 최금희 씨② 남한생활
2010-05-11

남한에 정착한 탈북인 가운데 상당수 탈북인들이 자신의 힘들었던 탈북과정 등을
책으로 펴내 남한 사람들에게 진솔한 북한의 이야기를 전해주고 있어 화제가 되고
있습니다. 자유아시아방송이 지난 6개월여간 낭독한 책 ‘금희의 여행’도 최금희
씨가 북한에서의 어린 시절과 탈북과정에서 겪은 갖가지 고통의 이야기를 전하고
있습니다.

저자 최금희 씨는 지난 1983년 함경북도 아오지에서 태어나 인민학교를 마치고
고등중학교 2학년이던 15살 때 가족과 함께 두만강을 건너 중국으로 갔으며, 2001년
4월에 한국으로 가 현재는 성공적인 대학생활을 하는 장본인 이기도 합니다.

특집 ‘저자와의 대화’, 오늘은 금희의 여행 저자 최금희 씨의 이야기 두 번째로
‘남한에서 변화된 생활의 이야기’를 함께 합니다.

kumhee_journey2.jpg
금희의 여행 표지
-북한을 무사히 탈출하고 처음 중국에 도착해 한 달여 동안 많은 고생을 했는데요.
어떠셨어요.

: 저는 뭐지 그때는 과연 이런 나라가 있을까이랬어요. 왜냐면 14년 동안 바깥세상에
대해 모르는 상태였는데 차도 많고 고층 빌딩에 가게에서 엄청난 물건들을 파는 것을
보고 그게 너무 신기할 정도였어요. 이런 나라가 있나 생각이 들어서요. 그때는
마냥 신기했어요. 제가 9살 때 엄마가 그리워서 할머니 댁에 갔다가 혼자 올 정도로
어머니에 대해 애착이 강한 아이였는데 북한을 나와서 중국에 도착해 그 유혹하는
신기한 것들 때문에 엄마에 대한 애착도 잊어버릴 정도였어요. 정말로 북한에서는
엄마 곁에만 있던 아이가 중국에 오니까 엄마가 그립지 않은 거예요. 그럴
정도였어요. 제가 중국에서 엄마랑 떨어져 있던 적이 있었는데 제가 울지 않는
거예요. 9살 때도 엄마 그리워서 울던 내가 엄마가 나를 보러 왔다 갈 때도 잘 가라고
이러고---, 새로운 세상이 저에게는 너무 신기했거든요. 그래서 엄마 갈 때도 잘
가라고 했던 게 엄마에게 가장 미안한 거예요.

-중국에 있을 때 어떤 일이 가장 고통스러웠습니까?

: 고생은 저희 부모님이 많이 하셨어요. 제가 고생한 게 있다면 늘 언제나 마음
졸이면 살았던 것 같아요. 지금도 가끔 어떤 상황에서는 예민해지고 불안해지고
그러거든요. 중국에서 4년 동안 있으면서 혹 붙잡힐까 봐 중국 경찰들을 보면 떨고
그랬던 것이 가장 어려웠고요. 그리고 무엇보다 아무것도 할 수 없고 나이 또래
아이들은 책가방 들고 학교에 가는데 (저는 그때 함부로 밖에 못 나갔거든요)
창문에서 학교에 가고 오는 또래들의 모습을 시간을 재가면서 보면서 부러워하고
울었어요. 그런 게 가장 어려웠고, 그리고 한 가족이 같이 못 사니까 엄마 아빠랑
서로 떨어진 거잖아요. 그래서 남의 집에서 눈칫밥을 먹는 것, 남이야 아무리 잘
해준다고 해도 저에게는 눈칫밥이잖아요. 그런 것을 어린 나이에 겪었던 게 굉장히
어려웠고 돈을 벌기 위해서 식당에 가서 일 하는데 제가 중국어를 잘 못하고,
친구들도 없고 저는 늘 나의 신분을 속여야 하니까 함부로 마음을 나눌 친구도
없고 일도 힘들었지만 일 끝나고 들어와서 마음이 너무 힘들어서 울고 엄마도
자주 못 봤던 것 같아요. 또 엄마가 자동차 사고가 나서 침대에 누워 있는 모습을
보고 하늘이 무너지는 느낌이었지요. 제가 지금은 이야기를 하는데 책을 쓸 때만
해도 중국에 관련된 이야기를 많이 못 쓰겠더라고요. 너무 힘들어서요. 중국에서
상처가 너무 깊다 보니까 쓰다가 멈추게 되더라고요. 지금은 이야기할 수 있으니까
많은 상처가 회복되었다고 봅니다.

-중국에서 태국으로 오기까지 많은 어려움을 겪었다고 책에서 읽었습니다.

: 중국을 거쳐 버마, 태국으로 가려다가 버마에서 잡힌 거예요. 그때는 정말 죽고
싶은 마음이었어요. 그때 제가 18살이었는데 저에게 총을 들이댔는데 아! 그냥
여기서 죽으면 참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래서 저도 모르게 죽여 달라고
(그 사람은 제 말을 못 알아들었겠지만 )했는데 아마 제 눈치를 보고 흠칫
놀라더라고요. 그리고 아버지도 그러지 말라고 했고, 그때는 내가 이렇게 살
바에는 죽는 게 났다는 생각에 그게 가장 고통스러웠어요.

-남한생활을 시작하면서 어려움도 있었지만, 마음을 바꾸면서 남한 정착에서
새로운 도전을 하게 되는 이야기를 들려 주세요?

: 내가 당당해야겠다. 내가 북한에서 온 것을 밝혀야겠다. 누가 무시하면 상처받지
말자, 또 아버지가 저에게 북한에서 온 2000만분의 1이라고 이야기를 해 주셨어요.
그래서 너는 특별한 사람이다. 그리고 제가 만난 선생님들은 저에게 기운을 돋구어
주셨어요. 너는 할 수 있다. 너는 죽음의 고통 속에 넘어왔는데 여기서 무얼
못하겠느냐 하시면서 그때 제가 자극되어서 그래 나는 훌륭한 사람이다. 그때
저를 사랑했던 것 같아요. 저를 사랑하기를 시작하고 나니까 아- 아- 한국사람들이
우리를 무시하는 게 아니라 몰라서 그러는구나 그러면 내가 알려야겠다. 이런
생각이 들더라고요. 그렇게 바뀌니까 아무리 누가 뭐라고 해도 제가 오히려 설명해
주는 거예요. 그렇게 하나하나 한국사람들하고 소통하기 시작했어요. 그러면서
지금까지 오게 됐는데요. 제가 저를 사랑하고 나니까 남한을 알게 되고 남한을
사랑하게 되더라고요. 그렇게 나를 사랑한 결과로 책까지 쓰지 않았나 생각해요.

-최근에 또 다른 책 ‘꽃이 펴야 봄이 온다.’가 나왔다고 들었습니다.

: 이번 책은 저랑 같은 셋 넷 학교를 나온 친구 8명이 여기 와서 겪었던 이야기
북한에서 있었던 이야기를 편안하게 썼어요. 저도 한 부분에 참가 했고요. 책
제목은 ‘꽃이 펴야 봄이온다.’인데 제가 참여한 글에서 사실 누구나 봄을 가지고
있는데 봄이 와야 꽃이 피는 것 아녀요. 그런데 자기 안에 있는 봄에 스스로 꽃을
피웠을 때 봄이 온다는 거예요. 금희의 여행 이후의 이야기를 썼고요. 금희의
여행 이야기는 제가 편안하게 썼다면 새로운 책에서는 제가 학교에 다니면서
여러 나라를 돌면서 있었던 이야기를 썼어요.

-호주에 유학도 갔다 오신 걸로 알고 있습니다.

: 제가 한국에서 심리적으로 많이 힘들었을 때 좀 쉬고 싶어서 간 곳이 호주였는데,
그곳에 가서 많은 위로를 받았어요. 그곳에 있으면서 다양한 사람들을 만나면서
제 안에 있는 편견을 보게 된 거예요. 누군가 나에게 편견으로 다가오면 싫어했는데
저도 한국사람에게 편견을 가진 것을 느꼈어요. 남한의 경쟁사회가 싫었는데 호주에
 가서 너무 한국이 그리운 거예요. 아 한국 사람이 다 되었구나 이런 생각을 했고
호주에서 무엇보다도 전혀 다른 생각이 다른 사람들과 소통을 하며 살았던 게 큰
도움이 됐고, 돌아와서도 공부하는 데 큰 도움이 되었습니다.

-앞으로 어떤 꿈을 이루고 싶은지 이야기해 주세요?

: 저는 소망이 있다면 제가 조금이나마 남과 북 친구들이 만날 때 중간에서 가교
역할을 하는 사람이 되는 걸 소망하고 있고요. 그리고 저의 꿈은 남과 북에서
그치는 것이 아니라 세상과 소통하는 사람이 되고 싶고 가장 큰 꿈은 고향의
사람들을 만나면 제가 돌아다녔던 세계에 대해서 이야기해주고 싶습니다.

-금희의 여행 책이 영어로 번역된다는 소식을 들었는데요?

독일 사람인데 어머니가 러시아 사람인 학생이 우연히 한국에 와서 북한관련의
일을 하다 제 책을 보고서 감명 깊었다면서 자신의 논문에 실었고 발표를 했데요.
그리고 지금 번역을 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확정된 것은 아니지만 아는 분이 하버드
대학원에 다니는데 제 책을 학교에서 소개했나 봐요. 그 이후 미국에 있는 친구들이
아주 좋은 책이라고 번역하고 싶다고 한데요. 그 소식을 듣고 연락을 한 상태인데요.
그래서 잘 되면 영어로도 번역될 것 같습니다.

특집 ‘저자와의 대화’, 오늘은 금희의 여행 저자 최금희 씨의 이야기 두 번째로
‘남한에서 변화된 생활의 이야기’를 함께 했습니다. 지금까지 진행에
RFA 이현기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