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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누군데!"(I Know Who I Am)
--고린도전서 6:12-20
1.
미국 사람들이 Las Vegas 혹은 Atlantic City라는 이름을 들으면 얼른 연상되는 것이 있습니다. 이 두 도시는 도박과 유흥의 장소로 유명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Las Vegas를 Sin City라는 별명으로 부릅니다. 한국에도 이같은 부정적인 이미지로 알려진 지역들이 있습니다. 금방 생각나는 곳이 한 두 군데 있는데, 그곳을 고향으로 둔 분들이 들으면 화를 내실 것 같아서 언급하지는 않겠습니다. 이렇게, 나라마다 타락의 도시로 유명한 곳이 한 두 군데 있게 마련입니다.
성서 시대에 지중해 연안에서 타락의 도시로 가장 유명한 곳이 고린도였습니다. 보통 내륙 도시보다 해안 도시들이 도덕적으로 해이하고 그래서 성적 타락이 비교적 심한 경향이 있습니다. 그런데 고린도는 그 심각성이 도를 넘었습니다. 그곳에는 여러 종류의 밀교(Secret Religions)가 성행하고 있었고, 그 밀교들은 종교 의식의 하나로서 성적인 방종을 부추겼습니다. 그래서 당시에 "나, 고린도에 다녀 왔다."라고 말하면, 의심의 눈초리로 위아래를 보아가며 "거기 가서 뭐 했어?"라고 속으로 물었습니다. 당시에 친구들 사이에서 누군가를 지목하여 "저 친구를 고린도화시킬까?"라는 농담을 했는데, 그것은 성적으로 타락시키겠다는 뜻이었습니다. 고린도가 그런 도시였습니다.
안디옥으로부터 시작하여 유럽의 서쪽 끝에 있던 스페인까지 자신의 선교지로 두고 있던 바울에게 있어서 고린도시는 이런 점에서 특별한 관심의 대상이었습니다. 고린도시는 복음이 들어가기에 가장 어려운 도시였지만, 그렇기 때문에 복음이 가장 필요한 도시라고 여겼을 것입니다. 죄악의 세력을 무너뜨리기 위해서는 그 세력의 본거지(headquarter)를 공략할 필요가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바울은 고린도에서 일년 육개월을 지내며 복음을 전합니다. 이것은 바울에게 아주 이례적인 일이었습니다. 그는 주님께서 재림하시기 전까지 유럽의 주요 도시들을 모두 방문하여 교회를 세워 마침내 스페인에까지 이르기를 원했습니다. 그래서 그는 한 곳에 오래 머무르지 않았습니다. 몇몇 사람들이 복음을 받아들이면 책임자를 세워놓고 다른 도시로 이동했습니다. 그런데 고린도에서는 일년 육개월을 지낸 것입니다. 그만큼 복음을 전하는 것이 어려웠다는 뜻도 되고, 그만큼 고린도가 바울에게 중요했다는 뜻도 됩니다.
바울은 이렇게 정성을 다해 고린도 안에 여러 교회를 세우고 그 도시를 떠났습니다. 그런데 바울이 떠나고 얼마 지나지 않아 고린도에 있는 교회들 안에 문제가 생겼습니다. 교인들 사이에 갈등과 분열의 조짐이 생겨났고, 그들 자신으로서는 해결할 수 없는 신앙적인 문제들을 만나게 되었습니다. 고린도 교회의 지도자들은 그 사정을 편지에 자세히 적어서 바울에게 보냈습니다. 고린도전서는 그 편지에 대해 바울이 회답한 내용을 담고 있습니다. 이 편지에서 바울 사도는 분열의 문제에 대해 그리고 고린도교인들이 물어 온 질문들에 대해 하나씩 다루고 있습니다.
교회력에 따른 성서 일과에 맞추어 읽은 오늘의 본문은 성적인 문제를 다룹니다. 당시 고린도교회 교인들 가운데는 예수 그리스도를 주님으로 영접하고 나서도 여전히 과거에 몸에 밴 성적인 죄를 청산하지 못한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하나님께서 정해 놓으신 결혼의 제도 안에서 성을 거룩하게 사용해야 했는데, 그들은 과거의 습관대로 음행을 일삼았습니다. 특히, 밀교 신전에 가서 제사도 드리고 성적인 타락에 참여하기도 했습니다. 그러면서도 주일이 되면 교회로 모여 예수 그리스도를 예배한 것입니다. 그것이 잘 못 되었다고 믿는 사람들도 있었지만,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은 성적인 행동과는 아무 관계가 없다고 생각하는 사람도 있었습니다. 이 둘 사이에서 교통 정리를 해 줄 사람이 필요했습니다. 그래서 바울에게 편지를 써서 이 문제에 대한 의견을 청한 것입니다.
2.
이 문제에 대해 응답하면서 바울 사도는 우리 몸이 어떤 것인지를 생각해 보도록 권합니다. 바울 사도가 '몸'(body)이라고 말할 때는 '영'(spirit)과 '혼'(mind)과 '육'(flesh)을 모두 포함하는 의미입니다. 즉, 우리의 존재 전체를 가리킵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사람의 몸은 어떤 것입니까? 바울 사도는 최소한 세 가지 점에서 우리의 몸을 생각해야 한다고 말씀하십니다.
첫째, 우리의 몸은 하나님께서 주신 선물입니다. 하나님께로부터 받은 값진 선물입니다. 하나님께로부터 받은 선물이니 그것을 값지게 여기고 잘 관리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우리의 선조들은 <효경>(Canon for Filial Piety)의 처음에 나오는 구절을 잘 알고 있습니다.
신체 발부(身體髮膚)는 수지부모(受之父母)니,
불감훼상(不敢毁傷)이 효지시야(孝之始也)라.
"몸의 모든 것, 심지어 머리털과 피부까지도 부모에게 받은 것이니, 감히 훼손하거나 손상시키지 않는 것이 효의 첫걸음이다."는 뜻입니다. 이런 믿음 때문에 우리 선조들은 머리카락을 자르지 않았습니다. 개화기에 '단발령'이 내렸을 때, 죽을 지언정 머리카락은 자를 수 없다고 저항한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부모님에게 대한 효를 지극하게 여긴 사람들은 이렇게 자신의 몸을 잘 간수하는 것을 가장 중요한 일로 여겼습니다.
우리 몸의 모든 것이 부모님에게서 온 것은 사실이지만, 부모님이 만들어 주신 것은 아닙니다. 부모님도 조부모님에게서 받은 것이고, 조부모님은 증조부모님에게서 받은 것입니다. 내 부모의 부모로, 그 부모의 부모로, 그렇게 끝없이 거슬러 올라가야만 내 몸을 '주신 분'을 만날 수 있습니다. 그렇게 거슬러 올라가면 누구를 만납니까? 무신론적 과학자들은 그렇게 거슬러 올라가면 '태초에 있었던 큰 폭발'을 만난다고 합니다만, 또 다른 과학자들은 '태초의 큰 폭발'에서 더 거슬러 올라가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모든 것을 시작시킨 창조주 하나님에게까지 닿아야만 내가 어디에서 온 존재인지 알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효경의 이 구절은 이렇게 바꾸어야 합니다.
신체발부(身體髮膚)는 수지천주(受之天主)니,
불감훼상(不敢毁傷)이 신지시야(信之始也)라.
"몸의 모든 것, 심지어 머리털과 피부까지도 하나님께 받은 것이니, 감히 훼손하거나 손상시키지 않는 것이 믿음의 첫걸음이다."라는 뜻입니다. 우리의 육신도, 정신도, 영혼도 모두 하나님께서 지어주신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어느 것도 손상되지 않도록 잘 관리해야 합니다. 영적 건강, 정신 건강 그리고 육체적인 건강을 지키는 것은 단지 행복한 삶을 위한 투자에 그치는 것이 아닙니다. 그것은 하나님께 대한 존경과 감사와 믿음의 표시입니다. 누군가가 나에게 준 귀한 선물을 내가 함부로 한다면, 그것은 곧 그것을 준 사람을 모욕하는 것입니다.
문제는 어떻게 하는 것이 몸을 손상시키는 것이고 어떻게 하는 것이 몸을 잘 지키는 것인지를 혼동하는 데 있습니다. 인터넷에 게시된 어느 글을 보니, <효경>에 나오는 이 글을 두고 어떤 사람이 이런 질문을 올렸습니다. "조선시대 사람들은 <효경>의 가르침을 지키기 위해 머리를 깎지 않고 상투를 틀었잖아요? 그러면 손톱은 왜 깎았나요?"
장난스러운 질문 같지만, 실은 생각해 볼만한 질문입니다. <효경>에서는 몸을 잘 지키는 것이 효도라고 했고, 바울 사도는 몸을 잘 관리하는 것이 믿음이라고 했는데, 과연 몸을 잘 지키는 것이 무엇입니까? 몸이 어떤 상태로 있든, 자연상태 그대로 두는 것을 말합니까? 그런 뜻이 아닌 것을 모두 아실 것입니다. 몸이 몸의 역할을 할 수 있도록 관리하라는 뜻입니다. 손이 제 역할을 하려면 손톱을 깎아 주어야 합니다. 때로 몸 전체를 살리기 위해 신체의 일부를 제거해야 할 때도 있습니다.
중요한 것은 몸 전체가 제 역할을 잘 감당하도록 관리하는 것을 말합니다. 욕심에 이끌려 쓰레기 같은 음식을 함부로 쳐넣어 몸을 망가뜨리지 말고, 아무 거나 보고 즐김으로써 정신을 망가뜨리지 말며, 영적 생활에 게을리 하여 영혼을 망가뜨리지 말라는 것입니다. 음식을 절제하고 규모있는 생활을 하는 '육체적 훈련'과 아름답고 정결한 것을 많이 접하도록 하는 '정신 훈련'과 말씀과 기도를 통한 '영적 훈련'을 열심히 하여 몸 전체를 건강하게 관리하라는 뜻입니다. 그것이 신앙의 출발입니다.
3.
둘째, 하나님은 예수 그리스도의 생명을 몸값으로 지불하고 우리 몸을 사셨습니다.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구속된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의 몸의 지체가 되었습니다. 그래서 바울 사도가 말합니다.
여러분은 하나님께서 값을 치르고 사들인 사람입니다.(20절)
우리 모두는 하나님을 떠나 사탄의 노예로 팔렸던 사람들입니다. 그대로 있었다면, 우리는 사탄의 손아귀에 잡혀 그가 정해준 숙명의 굴레 안에서 살다가 영원한 멸망을 당할 뻔했습니다. 우리 말의 '구속'은 주로 두 가지 의미로 쓰입니다. 무엇에 갇혀 있을 때 '구속'(拘束)이라고 하고, 누군가에게 붙들려 있는 사람을 몸값을 주고 풀어내는 것을 또한 '구속'(救贖, redeem)이라고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사탄에게 구속된 우리를 예수 그리스도의 생명을 몸값으로 지불하고 구속하신 것입니다. 우리의 존재는 창조주 하나님에 의해 지어졌으며, 예수 그리스도의 생명으로 구속되었습니다. 이 두 가지의 사실을 생각하면, 우리 존재의 무게는 온 우주보다 커집니다.
그뿐이 아닙니다. 구속된 우리 존재는 예수 그리스도의 거룩한 몸 즉 교회의 거룩한 지체가 되었습니다. 그래서 바울 사도는 말합니다.
여러분의 몸이 그리스도의 지체라는 것을 알지 못합니까?(15절)
여러분은 와싱톤한인교회의 교인이라는 사실을 어떻게 느끼시는지요? 부디, 자랑스럽게 느끼시기를 바랍니다. 하지만 그것보다 더 중요한 것이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몸의 지체가 되었다는 사실입니다. 우리는 이 땅에 세워진 한 교회의 교인이 됨으로써 예수 그리스도의 보이지 않는 거룩한 몸의 지체가 되는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가 누구입니까? 그분이 누구인지를 생각하면 할수록 그분의 몸의 지체가 되었다는 것은 우리를 감격하게 만듭니다. 이 땅에서 개인 김영봉으로 살아간다면, 몇 십년 이 땅에 자취를 남기고 흔적도 없이 사라져 없어질 것입니다. 하지만 개인 김영봉이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의 지체로 살아간다면, 나의 존재는 그분과 함께 영원한 차원으로 높여질 것입니다.
그것을 안다면, 자신의 몸을 함부로 할 수 없습니다. 고린도 교회 교인들 가운데 음행을 일삼는 사람들을 생각하면서 바울 사도는 이렇게 말합니다.
여러분의 몸이 그리스도의 지체라는 것을 알지 못합니까? 그런데, 내가 그리스도의 지체를 떼어다가 창녀의 지체를 만들 수 있겠습니까? 그럴 수 없습니다. 창녀와 합하는 사람은 그와 한 몸이 된다는 것을 알지 못합니까? (15-16)
음행을 일삼는 사람들은 육신은 육신이고 영혼은 영혼이라고 생각했습니다. 누군가와 성적인 관계를 맺는 것은 육신의 일일 뿐이라고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바울 사도는 그렇지 않다고 말합니다. 성적인 관계를 맺는다는 것은 그 사람에게 자신의 영과 혼과 육을 모두 내어주는 것이고, 전인격적으로 하나가 되는 매우 중대한 사건이라고 말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부정한 여인과 잠자리를 같이하면, 예수 그리스도의 거룩한 지체를 부정하게 만드는 것임을 알아야 합니다. 그것은 단순한 욕망의 문제가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의 거룩한 몸의 문제입니다.
4.
셋째, 바울 사도는 우리의 몸이 성령이 거하시는 거룩한 성전이라고 말씀하십니다.
여러분의 몸은 여러분 안에 계신 성령의 성전이라는 것을 알지 못합니까? 여러분은 성령을 하나님으로부터 받아서 모시고 있습니다. (19절)
예수 그리스도를 진실되게 주님으로 영접하고 그분의 주권을 인정하며 살아가는 사람에게는 성령께서 함께 하십니다. 성령께서 그 마음을 만지시지 않고는 그같은 마음의 변화가 일어날 수 없습니다. 그러므로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사람 안에는 성령께서 거하고 계시며, 믿는 사람들이 함께 모이는 교회 안에도 성령께서 활동하십니다. 내가 느끼지 못해도 성령께서는 내 안에 계십니다. 그러므로 나의 몸 즉 내 영과 혼과 육은 합하여 하나님의 성전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믿는 사람들이 모이는 교회도 성전입니다. 예배당이 성전이 아니라, 믿는 사람들이 모인 모임이 성전입니다. 작은 성전들이 모여서 하나의 큰 성전을 이루는 것입니다.
우리는 이 사실을 항상 인정하고 의식하고 살아야 합니다. 영적 여정을 걸어가는 데 있어서 느낌 혹은 감정은 매우 중요합니다. 그것을 잘 이용하면 영적 여정을 신나게 걸어갈 수 있습니다. 하지만 느낌 혹은 감정은 늘 움직이기 마련이고, 그래서 느낌이나 감정에 따라 살다 보면 속아 넘어갈 수 있습니다. 우리는 느낌이나 감정이 아니라 하나님의 약속의 말씀 위에 서야 합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주님으로 영접하고 거듭난 사람에게는 성령이 내주한다는 약속의 말씀을 기억하고, 느낌이 "아니야, 안 그런 거 같아!"라고 말할 때조차 그런 줄 믿고 살아가야 합니다.
청소년 시기에 성경을 읽는 중에 이 말씀이 저의 뇌리에 박혔습니다. 제 몸이 하나님의 성령이 거하는 거룩한 성전이라는 말씀이 제 마음에 깊이 새겨졌습니다. 그리고 이 말씀은 젊은 시절 성적 유혹이 도처에 깔려 있는 사회에서 사는 동안 성적 순결을 지키도록 저를 붙잡아 주는 줄이 되었습니다. 심각한 유혹 앞에 설 때마다 성령께서 감동을 주셔서 "내가 누군데! 거룩한 성전을 더럽힐 수는 없지!"라고 생각하곤 했습니다. "내가 누군데!"라고 생각하면 결론은 자명합니다. 바울 사도께서 이렇게 결론을 내립니다.
음행을 피하십시오. 사람이 짓는 다른 모든 죄는 자기 몸 밖에 있는 것이지만, 음행을 하는 자는 자기 몸에다가 죄를 짓는 것입니다. 여러분의 몸은 여러분 안에 계신 성령의 성전이라는 것을 알지 못합니까? (18-19절)
5.
바울 사도는 이렇게 세 가지의 이유로 우리 몸이 거룩하다는 것을 입증합니다. 우리 몸 즉 우리의 존재가 거룩한 이유는 삼위일체적인 근거(Trinitarian Foundation)를 가지고 있습니다. 우리 몸이 이토록 거룩하고 귀한 것이라면 결론은 분명합니다. 바울 사도의 말로 결론을 들어 보십시다.
여러분은 여러분 자신의 것이 아닙니다. (19절)
그러므로 여러분의 몸으로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십시오. (20절)
우리 몸은 성부 하나님께서 지으셨고, 예수 그리스도께서 당신의 생명을 주고 구속하셨으며, 성령께서 내주하십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 몸은 거룩하고 영원하며, 그 소유권은 하나님에게 있습니다. 믿어지십니까?
지금 '아멘!'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이 믿음이 늘 살아 있어야 합니다. 이렇게 믿는 사람답게 생각하고 판단하고 선택해야 합니다. '아멘!'하고 응답하는 것은 쉽지만, 매일 그렇게 믿는 사람답게 살아가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닙니다. 이 세상은 끊임없이 우리를 속이려 하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항상 노출되어 있는 광고와 선전들은 우리의 귀에 대고 속삭입니다. "네 인생은 너의 것이다. 네 것을 포기하지 말라. 네 것을 찾고, 네 것을 즐겨라. 지금 네 앞에 있는 것이 전부다." 이 선전에 속아넘어가지 않고, 내가 누구인지를 분명히 알고, 그렇게 아는 사람답게 살아가는 것은 매일 감당해야 하는 힘겨운 싸움입니다.
당시 고린도인들 사이에 농담처럼 하는 말이 있었습니다. "음식은 배를 위한 것이고, 배는 음식을 위한 것이다."(13절)라는 말입니다. 우리 식으로 하면 "먹는 게 남는 거다." 혹은 "먹다 죽은 귀신은 때깔도 곱다."라는 말과 비슷합니다. 그들은 이렇게 말하면서 마음껏 먹고 마셨습니다. 몸은 즐기라고 있는 것이라고 생각하고 음식으로, 술로, 성적 방종으로 쾌락을 즐겼습니다.
이 태도에 대해 바울 사도는 "하나님께서는 이것도 저것도 다 없애버리실 것입니다."(13절)라고 말씀하십니다. 먹고 마시는 것을 위해 살면, 먹고 마시는 그것과 함께 우리의 존재도 사라져버릴 것이라는 뜻입니다. 우리의 거룩한 몸을 썩어질 것에 사용하겠는지, 아니면 영원하고 참된 것을 위해 사용하겠는지를 생각하라는 뜻입니다. 그리고는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몸은 음행을 위하여 있는 것이 아니라, 주님을 위하여 있는 것이며, 주님은 몸을 위하여 계십니다.(13절)
우리의 몸 즉 우리의 영과 혼과 육은 음행이나 탐식과 같은 육체적인 만족을 추구하기 위해서 지어진 것이 아니라, 주님의 뜻을 이루기 위해 지어진 것이라는 뜻입니다. "주님은 몸을 위하여 계십니다."라는 말씀은 주님의 거룩한 뜻을 위해 사용되기를 원하는 우리의 거룩한 열망을 주님께서 채워주신다는 뜻입니다. 이것이 원래의 창조 계획입니다. 인간 존재는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지어졌고, 하나님은 인간이 그렇게 살도록 도우십니다. 그렇게 지어진 인간이 하나님을 떠나 썩어버릴 것에 목숨 걸고 살아갑니다. 다른 누구의 이야기가 아닙니다. 저와 여러분의 이야기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내가 누군데!"라는 생각으로 정신을 차리고, 우리의 존재로써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기 위해 노력해야 합니다. 우리의 몸으로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는 길은 두 가지가 있습니다.
첫째는 우리의 영과 혼과 육을 건강하고 온전하며 거룩하게 유지하는 길입니다. 당신께서 지으시고, 당신의 아들의 생명으로 구속하셨으며, 당신의 성령을 부어 주신 이 몸을 관리하는 일에 게을리 한다면, 하나님께서는 참으로 마음 아파 하실 것입니다. 영적 훈련을 통하여 우리의 영혼이 강건하고, 보고 듣고 생각하는 것을 잘 관리하여 우리의 정신이 건강하며, 먹고 마시고 사는 것을 잘 관리하여 우리의 육신이 온전하면, 누구보다 먼저 하나님께서 가장 기뻐하실 것입니다. 당신께서 주신 선물을 귀하게 간직하니 얼마나 좋으시겠습니까?
둘째, 우리의 몸을 거룩한 목적을 위해 사용할 때 하나님께서는 영광 받으실 것입니다. 어떤 선물을 받았는데, 그 선물이 귀하다고 그대로 간직하고만 있으면, 그것도 잘 하는 일이 아닙니다. 그 용도에 맞게 잘 사용해야 합니다. 마찬가지로, 몸을 건강하고 온전하게 관리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그 몸을 사용하여 하나님의 거룩한 뜻을 이루는 것도 똑같이 중요합니다. 바울 사도의 말씀대로, 우리 몸은 우리 것이 아닙니다. 주님의 것입니다. 우리의 시간과 물질, 우리의 모든 것이 다 주님의 것입니다. 그래서 성경에서는 우리를 '청지기'(steward)라고 부릅니다. 오늘날의 용어로 바꾸자면 '매니저'(manager)입니다. 매니저는 주인의 뜻을 살펴 자신에게 맡겨진 것을 사용해야 합니다.
6.
오늘 우리는 청지기 주일로 지키고 있습니다. 우리 자신이 어떤 존재인지를 다시 한 번 자각하고 우리의 존재에 맞도록 살아가기를 다짐하기 위함입니다. 지난 주간에 임원들에게는 이미 편지로 '헌신약정서'를 보내 드렸습니다. 임원들은 교회의 주인으로서 그리고 예수 그리스도의 몸된 교회의 종으로서 매 년 새로운 헌신을 다짐해야 마땅하기 때문입니다. 동일한 '헌신약정서'를 오늘 삽지로 넣어 드렸습니다. 임원이 아닌 분들 가운데서도 청지기로서의 헌신을 다짐하기를 원하시는 분들은 작성하셔서 봉헌할 때 헌금 접시에 올려 주시기 바랍니다.
기억하십시다. 우리의 몸은 하나님께서 고안하셔서 창조하신 걸작입니다. 기억하십시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서 당신의 고귀한 생명을 값으로 주시고 우리를 사탄의 손아귀에서 건져내셨습니다. 기억하십시다. 하나님의 성령께서 우리 안에 거하십니다. 이렇게 하여 우리의 몸값은 헤아릴 수 없이 값비싸졌습니다. 우리의 몸은, 우리의 존재 전체는, 우리의 소유물 전체는 우리를 지으시고 구속하시고 다스리시는 삼위일체 하나님의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니 우리의 소유권을 주님께 내어 놓으십시다. 우리의 거룩한 몸을 함부로 굴리지 마십시다. 더럽고 추하고 부정한 것으로 우리의 몸을 더럽히지 마십시다. 유혹을 대면할 때마다 "내가 누군데!"라고 생각하면서, 정결하고 거룩하게 살기를 힘쓰십시다. 우리의 생명이 썩어 없어질 것을 위해 허비되지 않게 하십시다. 영원하고 참된 것을 위해 값지게 사용되도록 하십시다. 하나님께서 기뻐하실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영광 받으실 것입니다. 우리는 그로 인해 신령한 기쁨과 감사로 넘치는 삶을 살 것입니다.
저희를 지으신 주님,
저희를 구속하신 주님,
저희 안에서 다스리시는 주님,
주님께 모든 것을 내어 놓습니다.
저희의 몸도,
저희의 시간도,
저희의 물질도
모두 주님께 내어 놓습니다.
영원하고 참된 것을 위해
주님께서 사용하여 주소서.
아멘.
http://live.kumcgw.org/2010new/sermons/2012/audio011512kim_b.wma
"내가 누군데!"(I Know Who I Am)
--고린도전서 6:12-20
1.
미국 사람들이 Las Vegas 혹은 Atlantic City라는 이름을 들으면 얼른 연상되는 것이 있습니다. 이 두 도시는 도박과 유흥의 장소로 유명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Las Vegas를 Sin City라는 별명으로 부릅니다. 한국에도 이같은 부정적인 이미지로 알려진 지역들이 있습니다. 금방 생각나는 곳이 한 두 군데 있는데, 그곳을 고향으로 둔 분들이 들으면 화를 내실 것 같아서 언급하지는 않겠습니다. 이렇게, 나라마다 타락의 도시로 유명한 곳이 한 두 군데 있게 마련입니다.
성서 시대에 지중해 연안에서 타락의 도시로 가장 유명한 곳이 고린도였습니다. 보통 내륙 도시보다 해안 도시들이 도덕적으로 해이하고 그래서 성적 타락이 비교적 심한 경향이 있습니다. 그런데 고린도는 그 심각성이 도를 넘었습니다. 그곳에는 여러 종류의 밀교(Secret Religions)가 성행하고 있었고, 그 밀교들은 종교 의식의 하나로서 성적인 방종을 부추겼습니다. 그래서 당시에 "나, 고린도에 다녀 왔다."라고 말하면, 의심의 눈초리로 위아래를 보아가며 "거기 가서 뭐 했어?"라고 속으로 물었습니다. 당시에 친구들 사이에서 누군가를 지목하여 "저 친구를 고린도화시킬까?"라는 농담을 했는데, 그것은 성적으로 타락시키겠다는 뜻이었습니다. 고린도가 그런 도시였습니다.
안디옥으로부터 시작하여 유럽의 서쪽 끝에 있던 스페인까지 자신의 선교지로 두고 있던 바울에게 있어서 고린도시는 이런 점에서 특별한 관심의 대상이었습니다. 고린도시는 복음이 들어가기에 가장 어려운 도시였지만, 그렇기 때문에 복음이 가장 필요한 도시라고 여겼을 것입니다. 죄악의 세력을 무너뜨리기 위해서는 그 세력의 본거지(headquarter)를 공략할 필요가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바울은 고린도에서 일년 육개월을 지내며 복음을 전합니다. 이것은 바울에게 아주 이례적인 일이었습니다. 그는 주님께서 재림하시기 전까지 유럽의 주요 도시들을 모두 방문하여 교회를 세워 마침내 스페인에까지 이르기를 원했습니다. 그래서 그는 한 곳에 오래 머무르지 않았습니다. 몇몇 사람들이 복음을 받아들이면 책임자를 세워놓고 다른 도시로 이동했습니다. 그런데 고린도에서는 일년 육개월을 지낸 것입니다. 그만큼 복음을 전하는 것이 어려웠다는 뜻도 되고, 그만큼 고린도가 바울에게 중요했다는 뜻도 됩니다.
바울은 이렇게 정성을 다해 고린도 안에 여러 교회를 세우고 그 도시를 떠났습니다. 그런데 바울이 떠나고 얼마 지나지 않아 고린도에 있는 교회들 안에 문제가 생겼습니다. 교인들 사이에 갈등과 분열의 조짐이 생겨났고, 그들 자신으로서는 해결할 수 없는 신앙적인 문제들을 만나게 되었습니다. 고린도 교회의 지도자들은 그 사정을 편지에 자세히 적어서 바울에게 보냈습니다. 고린도전서는 그 편지에 대해 바울이 회답한 내용을 담고 있습니다. 이 편지에서 바울 사도는 분열의 문제에 대해 그리고 고린도교인들이 물어 온 질문들에 대해 하나씩 다루고 있습니다.
교회력에 따른 성서 일과에 맞추어 읽은 오늘의 본문은 성적인 문제를 다룹니다. 당시 고린도교회 교인들 가운데는 예수 그리스도를 주님으로 영접하고 나서도 여전히 과거에 몸에 밴 성적인 죄를 청산하지 못한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하나님께서 정해 놓으신 결혼의 제도 안에서 성을 거룩하게 사용해야 했는데, 그들은 과거의 습관대로 음행을 일삼았습니다. 특히, 밀교 신전에 가서 제사도 드리고 성적인 타락에 참여하기도 했습니다. 그러면서도 주일이 되면 교회로 모여 예수 그리스도를 예배한 것입니다. 그것이 잘 못 되었다고 믿는 사람들도 있었지만,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은 성적인 행동과는 아무 관계가 없다고 생각하는 사람도 있었습니다. 이 둘 사이에서 교통 정리를 해 줄 사람이 필요했습니다. 그래서 바울에게 편지를 써서 이 문제에 대한 의견을 청한 것입니다.
2.
이 문제에 대해 응답하면서 바울 사도는 우리 몸이 어떤 것인지를 생각해 보도록 권합니다. 바울 사도가 '몸'(body)이라고 말할 때는 '영'(spirit)과 '혼'(mind)과 '육'(flesh)을 모두 포함하는 의미입니다. 즉, 우리의 존재 전체를 가리킵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사람의 몸은 어떤 것입니까? 바울 사도는 최소한 세 가지 점에서 우리의 몸을 생각해야 한다고 말씀하십니다.
첫째, 우리의 몸은 하나님께서 주신 선물입니다. 하나님께로부터 받은 값진 선물입니다. 하나님께로부터 받은 선물이니 그것을 값지게 여기고 잘 관리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우리의 선조들은 <효경>(Canon for Filial Piety)의 처음에 나오는 구절을 잘 알고 있습니다.
신체 발부(身體髮膚)는 수지부모(受之父母)니,
불감훼상(不敢毁傷)이 효지시야(孝之始也)라.
"몸의 모든 것, 심지어 머리털과 피부까지도 부모에게 받은 것이니, 감히 훼손하거나 손상시키지 않는 것이 효의 첫걸음이다."는 뜻입니다. 이런 믿음 때문에 우리 선조들은 머리카락을 자르지 않았습니다. 개화기에 '단발령'이 내렸을 때, 죽을 지언정 머리카락은 자를 수 없다고 저항한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부모님에게 대한 효를 지극하게 여긴 사람들은 이렇게 자신의 몸을 잘 간수하는 것을 가장 중요한 일로 여겼습니다.
우리 몸의 모든 것이 부모님에게서 온 것은 사실이지만, 부모님이 만들어 주신 것은 아닙니다. 부모님도 조부모님에게서 받은 것이고, 조부모님은 증조부모님에게서 받은 것입니다. 내 부모의 부모로, 그 부모의 부모로, 그렇게 끝없이 거슬러 올라가야만 내 몸을 '주신 분'을 만날 수 있습니다. 그렇게 거슬러 올라가면 누구를 만납니까? 무신론적 과학자들은 그렇게 거슬러 올라가면 '태초에 있었던 큰 폭발'을 만난다고 합니다만, 또 다른 과학자들은 '태초의 큰 폭발'에서 더 거슬러 올라가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모든 것을 시작시킨 창조주 하나님에게까지 닿아야만 내가 어디에서 온 존재인지 알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효경의 이 구절은 이렇게 바꾸어야 합니다.
신체발부(身體髮膚)는 수지천주(受之天主)니,
불감훼상(不敢毁傷)이 신지시야(信之始也)라.
"몸의 모든 것, 심지어 머리털과 피부까지도 하나님께 받은 것이니, 감히 훼손하거나 손상시키지 않는 것이 믿음의 첫걸음이다."라는 뜻입니다. 우리의 육신도, 정신도, 영혼도 모두 하나님께서 지어주신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어느 것도 손상되지 않도록 잘 관리해야 합니다. 영적 건강, 정신 건강 그리고 육체적인 건강을 지키는 것은 단지 행복한 삶을 위한 투자에 그치는 것이 아닙니다. 그것은 하나님께 대한 존경과 감사와 믿음의 표시입니다. 누군가가 나에게 준 귀한 선물을 내가 함부로 한다면, 그것은 곧 그것을 준 사람을 모욕하는 것입니다.
문제는 어떻게 하는 것이 몸을 손상시키는 것이고 어떻게 하는 것이 몸을 잘 지키는 것인지를 혼동하는 데 있습니다. 인터넷에 게시된 어느 글을 보니, <효경>에 나오는 이 글을 두고 어떤 사람이 이런 질문을 올렸습니다. "조선시대 사람들은 <효경>의 가르침을 지키기 위해 머리를 깎지 않고 상투를 틀었잖아요? 그러면 손톱은 왜 깎았나요?"
장난스러운 질문 같지만, 실은 생각해 볼만한 질문입니다. <효경>에서는 몸을 잘 지키는 것이 효도라고 했고, 바울 사도는 몸을 잘 관리하는 것이 믿음이라고 했는데, 과연 몸을 잘 지키는 것이 무엇입니까? 몸이 어떤 상태로 있든, 자연상태 그대로 두는 것을 말합니까? 그런 뜻이 아닌 것을 모두 아실 것입니다. 몸이 몸의 역할을 할 수 있도록 관리하라는 뜻입니다. 손이 제 역할을 하려면 손톱을 깎아 주어야 합니다. 때로 몸 전체를 살리기 위해 신체의 일부를 제거해야 할 때도 있습니다.
중요한 것은 몸 전체가 제 역할을 잘 감당하도록 관리하는 것을 말합니다. 욕심에 이끌려 쓰레기 같은 음식을 함부로 쳐넣어 몸을 망가뜨리지 말고, 아무 거나 보고 즐김으로써 정신을 망가뜨리지 말며, 영적 생활에 게을리 하여 영혼을 망가뜨리지 말라는 것입니다. 음식을 절제하고 규모있는 생활을 하는 '육체적 훈련'과 아름답고 정결한 것을 많이 접하도록 하는 '정신 훈련'과 말씀과 기도를 통한 '영적 훈련'을 열심히 하여 몸 전체를 건강하게 관리하라는 뜻입니다. 그것이 신앙의 출발입니다.
3.
둘째, 하나님은 예수 그리스도의 생명을 몸값으로 지불하고 우리 몸을 사셨습니다.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구속된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의 몸의 지체가 되었습니다. 그래서 바울 사도가 말합니다.
여러분은 하나님께서 값을 치르고 사들인 사람입니다.(20절)
우리 모두는 하나님을 떠나 사탄의 노예로 팔렸던 사람들입니다. 그대로 있었다면, 우리는 사탄의 손아귀에 잡혀 그가 정해준 숙명의 굴레 안에서 살다가 영원한 멸망을 당할 뻔했습니다. 우리 말의 '구속'은 주로 두 가지 의미로 쓰입니다. 무엇에 갇혀 있을 때 '구속'(拘束)이라고 하고, 누군가에게 붙들려 있는 사람을 몸값을 주고 풀어내는 것을 또한 '구속'(救贖, redeem)이라고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사탄에게 구속된 우리를 예수 그리스도의 생명을 몸값으로 지불하고 구속하신 것입니다. 우리의 존재는 창조주 하나님에 의해 지어졌으며, 예수 그리스도의 생명으로 구속되었습니다. 이 두 가지의 사실을 생각하면, 우리 존재의 무게는 온 우주보다 커집니다.
그뿐이 아닙니다. 구속된 우리 존재는 예수 그리스도의 거룩한 몸 즉 교회의 거룩한 지체가 되었습니다. 그래서 바울 사도는 말합니다.
여러분의 몸이 그리스도의 지체라는 것을 알지 못합니까?(15절)
여러분은 와싱톤한인교회의 교인이라는 사실을 어떻게 느끼시는지요? 부디, 자랑스럽게 느끼시기를 바랍니다. 하지만 그것보다 더 중요한 것이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몸의 지체가 되었다는 사실입니다. 우리는 이 땅에 세워진 한 교회의 교인이 됨으로써 예수 그리스도의 보이지 않는 거룩한 몸의 지체가 되는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가 누구입니까? 그분이 누구인지를 생각하면 할수록 그분의 몸의 지체가 되었다는 것은 우리를 감격하게 만듭니다. 이 땅에서 개인 김영봉으로 살아간다면, 몇 십년 이 땅에 자취를 남기고 흔적도 없이 사라져 없어질 것입니다. 하지만 개인 김영봉이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의 지체로 살아간다면, 나의 존재는 그분과 함께 영원한 차원으로 높여질 것입니다.
그것을 안다면, 자신의 몸을 함부로 할 수 없습니다. 고린도 교회 교인들 가운데 음행을 일삼는 사람들을 생각하면서 바울 사도는 이렇게 말합니다.
여러분의 몸이 그리스도의 지체라는 것을 알지 못합니까? 그런데, 내가 그리스도의 지체를 떼어다가 창녀의 지체를 만들 수 있겠습니까? 그럴 수 없습니다. 창녀와 합하는 사람은 그와 한 몸이 된다는 것을 알지 못합니까? (15-16)
음행을 일삼는 사람들은 육신은 육신이고 영혼은 영혼이라고 생각했습니다. 누군가와 성적인 관계를 맺는 것은 육신의 일일 뿐이라고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바울 사도는 그렇지 않다고 말합니다. 성적인 관계를 맺는다는 것은 그 사람에게 자신의 영과 혼과 육을 모두 내어주는 것이고, 전인격적으로 하나가 되는 매우 중대한 사건이라고 말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부정한 여인과 잠자리를 같이하면, 예수 그리스도의 거룩한 지체를 부정하게 만드는 것임을 알아야 합니다. 그것은 단순한 욕망의 문제가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의 거룩한 몸의 문제입니다.
4.
셋째, 바울 사도는 우리의 몸이 성령이 거하시는 거룩한 성전이라고 말씀하십니다.
여러분의 몸은 여러분 안에 계신 성령의 성전이라는 것을 알지 못합니까? 여러분은 성령을 하나님으로부터 받아서 모시고 있습니다. (19절)
예수 그리스도를 진실되게 주님으로 영접하고 그분의 주권을 인정하며 살아가는 사람에게는 성령께서 함께 하십니다. 성령께서 그 마음을 만지시지 않고는 그같은 마음의 변화가 일어날 수 없습니다. 그러므로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사람 안에는 성령께서 거하고 계시며, 믿는 사람들이 함께 모이는 교회 안에도 성령께서 활동하십니다. 내가 느끼지 못해도 성령께서는 내 안에 계십니다. 그러므로 나의 몸 즉 내 영과 혼과 육은 합하여 하나님의 성전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믿는 사람들이 모이는 교회도 성전입니다. 예배당이 성전이 아니라, 믿는 사람들이 모인 모임이 성전입니다. 작은 성전들이 모여서 하나의 큰 성전을 이루는 것입니다.
우리는 이 사실을 항상 인정하고 의식하고 살아야 합니다. 영적 여정을 걸어가는 데 있어서 느낌 혹은 감정은 매우 중요합니다. 그것을 잘 이용하면 영적 여정을 신나게 걸어갈 수 있습니다. 하지만 느낌 혹은 감정은 늘 움직이기 마련이고, 그래서 느낌이나 감정에 따라 살다 보면 속아 넘어갈 수 있습니다. 우리는 느낌이나 감정이 아니라 하나님의 약속의 말씀 위에 서야 합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주님으로 영접하고 거듭난 사람에게는 성령이 내주한다는 약속의 말씀을 기억하고, 느낌이 "아니야, 안 그런 거 같아!"라고 말할 때조차 그런 줄 믿고 살아가야 합니다.
청소년 시기에 성경을 읽는 중에 이 말씀이 저의 뇌리에 박혔습니다. 제 몸이 하나님의 성령이 거하는 거룩한 성전이라는 말씀이 제 마음에 깊이 새겨졌습니다. 그리고 이 말씀은 젊은 시절 성적 유혹이 도처에 깔려 있는 사회에서 사는 동안 성적 순결을 지키도록 저를 붙잡아 주는 줄이 되었습니다. 심각한 유혹 앞에 설 때마다 성령께서 감동을 주셔서 "내가 누군데! 거룩한 성전을 더럽힐 수는 없지!"라고 생각하곤 했습니다. "내가 누군데!"라고 생각하면 결론은 자명합니다. 바울 사도께서 이렇게 결론을 내립니다.
음행을 피하십시오. 사람이 짓는 다른 모든 죄는 자기 몸 밖에 있는 것이지만, 음행을 하는 자는 자기 몸에다가 죄를 짓는 것입니다. 여러분의 몸은 여러분 안에 계신 성령의 성전이라는 것을 알지 못합니까? (18-19절)
5.
바울 사도는 이렇게 세 가지의 이유로 우리 몸이 거룩하다는 것을 입증합니다. 우리 몸 즉 우리의 존재가 거룩한 이유는 삼위일체적인 근거(Trinitarian Foundation)를 가지고 있습니다. 우리 몸이 이토록 거룩하고 귀한 것이라면 결론은 분명합니다. 바울 사도의 말로 결론을 들어 보십시다.
여러분은 여러분 자신의 것이 아닙니다. (19절)
그러므로 여러분의 몸으로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십시오. (20절)
우리 몸은 성부 하나님께서 지으셨고, 예수 그리스도께서 당신의 생명을 주고 구속하셨으며, 성령께서 내주하십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 몸은 거룩하고 영원하며, 그 소유권은 하나님에게 있습니다. 믿어지십니까?
지금 '아멘!'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이 믿음이 늘 살아 있어야 합니다. 이렇게 믿는 사람답게 생각하고 판단하고 선택해야 합니다. '아멘!'하고 응답하는 것은 쉽지만, 매일 그렇게 믿는 사람답게 살아가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닙니다. 이 세상은 끊임없이 우리를 속이려 하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항상 노출되어 있는 광고와 선전들은 우리의 귀에 대고 속삭입니다. "네 인생은 너의 것이다. 네 것을 포기하지 말라. 네 것을 찾고, 네 것을 즐겨라. 지금 네 앞에 있는 것이 전부다." 이 선전에 속아넘어가지 않고, 내가 누구인지를 분명히 알고, 그렇게 아는 사람답게 살아가는 것은 매일 감당해야 하는 힘겨운 싸움입니다.
당시 고린도인들 사이에 농담처럼 하는 말이 있었습니다. "음식은 배를 위한 것이고, 배는 음식을 위한 것이다."(13절)라는 말입니다. 우리 식으로 하면 "먹는 게 남는 거다." 혹은 "먹다 죽은 귀신은 때깔도 곱다."라는 말과 비슷합니다. 그들은 이렇게 말하면서 마음껏 먹고 마셨습니다. 몸은 즐기라고 있는 것이라고 생각하고 음식으로, 술로, 성적 방종으로 쾌락을 즐겼습니다.
이 태도에 대해 바울 사도는 "하나님께서는 이것도 저것도 다 없애버리실 것입니다."(13절)라고 말씀하십니다. 먹고 마시는 것을 위해 살면, 먹고 마시는 그것과 함께 우리의 존재도 사라져버릴 것이라는 뜻입니다. 우리의 거룩한 몸을 썩어질 것에 사용하겠는지, 아니면 영원하고 참된 것을 위해 사용하겠는지를 생각하라는 뜻입니다. 그리고는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몸은 음행을 위하여 있는 것이 아니라, 주님을 위하여 있는 것이며, 주님은 몸을 위하여 계십니다.(13절)
우리의 몸 즉 우리의 영과 혼과 육은 음행이나 탐식과 같은 육체적인 만족을 추구하기 위해서 지어진 것이 아니라, 주님의 뜻을 이루기 위해 지어진 것이라는 뜻입니다. "주님은 몸을 위하여 계십니다."라는 말씀은 주님의 거룩한 뜻을 위해 사용되기를 원하는 우리의 거룩한 열망을 주님께서 채워주신다는 뜻입니다. 이것이 원래의 창조 계획입니다. 인간 존재는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지어졌고, 하나님은 인간이 그렇게 살도록 도우십니다. 그렇게 지어진 인간이 하나님을 떠나 썩어버릴 것에 목숨 걸고 살아갑니다. 다른 누구의 이야기가 아닙니다. 저와 여러분의 이야기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내가 누군데!"라는 생각으로 정신을 차리고, 우리의 존재로써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기 위해 노력해야 합니다. 우리의 몸으로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는 길은 두 가지가 있습니다.
첫째는 우리의 영과 혼과 육을 건강하고 온전하며 거룩하게 유지하는 길입니다. 당신께서 지으시고, 당신의 아들의 생명으로 구속하셨으며, 당신의 성령을 부어 주신 이 몸을 관리하는 일에 게을리 한다면, 하나님께서는 참으로 마음 아파 하실 것입니다. 영적 훈련을 통하여 우리의 영혼이 강건하고, 보고 듣고 생각하는 것을 잘 관리하여 우리의 정신이 건강하며, 먹고 마시고 사는 것을 잘 관리하여 우리의 육신이 온전하면, 누구보다 먼저 하나님께서 가장 기뻐하실 것입니다. 당신께서 주신 선물을 귀하게 간직하니 얼마나 좋으시겠습니까?
둘째, 우리의 몸을 거룩한 목적을 위해 사용할 때 하나님께서는 영광 받으실 것입니다. 어떤 선물을 받았는데, 그 선물이 귀하다고 그대로 간직하고만 있으면, 그것도 잘 하는 일이 아닙니다. 그 용도에 맞게 잘 사용해야 합니다. 마찬가지로, 몸을 건강하고 온전하게 관리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그 몸을 사용하여 하나님의 거룩한 뜻을 이루는 것도 똑같이 중요합니다. 바울 사도의 말씀대로, 우리 몸은 우리 것이 아닙니다. 주님의 것입니다. 우리의 시간과 물질, 우리의 모든 것이 다 주님의 것입니다. 그래서 성경에서는 우리를 '청지기'(steward)라고 부릅니다. 오늘날의 용어로 바꾸자면 '매니저'(manager)입니다. 매니저는 주인의 뜻을 살펴 자신에게 맡겨진 것을 사용해야 합니다.
6.
오늘 우리는 청지기 주일로 지키고 있습니다. 우리 자신이 어떤 존재인지를 다시 한 번 자각하고 우리의 존재에 맞도록 살아가기를 다짐하기 위함입니다. 지난 주간에 임원들에게는 이미 편지로 '헌신약정서'를 보내 드렸습니다. 임원들은 교회의 주인으로서 그리고 예수 그리스도의 몸된 교회의 종으로서 매 년 새로운 헌신을 다짐해야 마땅하기 때문입니다. 동일한 '헌신약정서'를 오늘 삽지로 넣어 드렸습니다. 임원이 아닌 분들 가운데서도 청지기로서의 헌신을 다짐하기를 원하시는 분들은 작성하셔서 봉헌할 때 헌금 접시에 올려 주시기 바랍니다.
기억하십시다. 우리의 몸은 하나님께서 고안하셔서 창조하신 걸작입니다. 기억하십시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서 당신의 고귀한 생명을 값으로 주시고 우리를 사탄의 손아귀에서 건져내셨습니다. 기억하십시다. 하나님의 성령께서 우리 안에 거하십니다. 이렇게 하여 우리의 몸값은 헤아릴 수 없이 값비싸졌습니다. 우리의 몸은, 우리의 존재 전체는, 우리의 소유물 전체는 우리를 지으시고 구속하시고 다스리시는 삼위일체 하나님의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니 우리의 소유권을 주님께 내어 놓으십시다. 우리의 거룩한 몸을 함부로 굴리지 마십시다. 더럽고 추하고 부정한 것으로 우리의 몸을 더럽히지 마십시다. 유혹을 대면할 때마다 "내가 누군데!"라고 생각하면서, 정결하고 거룩하게 살기를 힘쓰십시다. 우리의 생명이 썩어 없어질 것을 위해 허비되지 않게 하십시다. 영원하고 참된 것을 위해 값지게 사용되도록 하십시다. 하나님께서 기뻐하실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영광 받으실 것입니다. 우리는 그로 인해 신령한 기쁨과 감사로 넘치는 삶을 살 것입니다.
저희를 지으신 주님,
저희를 구속하신 주님,
저희 안에서 다스리시는 주님,
주님께 모든 것을 내어 놓습니다.
저희의 몸도,
저희의 시간도,
저희의 물질도
모두 주님께 내어 놓습니다.
영원하고 참된 것을 위해
주님께서 사용하여 주소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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