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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의 한국인

미주 태권도 장학회 장세영 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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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세영 회장 가족이 태권도로 함께 하고 있다(가운데가 장세영 회장).
사진제공: 미주태권도장학회

미국 메릴랜드에서 태권도 발전에 매진하는 사람이 있다. 바로 US 태권도 아카데미 장세영 관장이다. 장 관장은 지난 2005년에 미주태권도장학회를 창립해 태권도 인재를 발굴하기 위해 장학금을 지급하고 있다. 미주태권도장학회는 2013년까지 18만 9천여 달러의 장학금을 태권도장, 사범과 선수 봉사자 등에게 장학금을 지급해 지역사회에서 칭송을 받고 있다.

자유아시아방송 지구촌의 한인들 오늘은 미주태권도장학회 장세영 회장으로부터 장학회의 이모저모를 알아본다.

장세영 회장은 미주태권도장학회가 시작하게 된 동기를 들려준다.

장세영: 저는 1993년부터 2006까지 14년 동안 메릴랜드 지역 태권도협회 회장을 했습니다. 제가 메릴랜드 지역 태권도 협회 회장직을 맡고 있을 때에 도장 사범들이나 선수, 코치들이 미국 선수권대회에 나갈 때 경비가 많이 필요한 것을 느끼고 안타까워했습니다. 그렇지만 그걸 후원해주는 기구나 단체도 없고, 개인 등도 없어서 제 생각에는 이분들을 후원해주는 단체가 있으면 좋겠다. 생각을 해서 메릴랜드 태권도협회 회장을 할 때인 2005년도에 만들었습니다.

지난 30년간 지역 주민과 태권도인들이 보내준 관심과 사랑을 잊지 않고 또 태권도 발전에 매진하기 위해 태권도장학회를 설립했다고 장세영 회장은 설명한다.

장세영: 미국은 땅이 참 넓지 않아요. 그래 전국 선수권대회에 나가게 되면 항공비 호텔비 선수참가비 등이 필요한데, 많은 돈은 아니래도 500달러나 1000달러씩 선수 일 인당 지원해주면 선수들에게 상당히 도움이 되지요. 그리고 태권도를 배우는 데 어려움이 있는 사람들에게도 도움이 되겠다 생각해 메릴랜드 주 태권도 페스티발을 해 왔는데 그 개인 시합에서 나온 경비를 갖고서 장학금 주는 일을 시작한 거에요.

장 회장은 장학금을 받은 선수 중에는 올림픽에 출전해 은메달을 받은 선수도 있다고 들려준다.

장세영: 장학금 시작은 한 9년여가 됐고, 장학금을 받은 사람 중에는 기량이 뛰어난 선수들도 나왔지요. 그래서 올림픽에 출전해서 은메달을 딴 선수도 있고, 세계 선수권대회에 나가서 동메달 딴 선수도 있어요.

장 회장은 장학금 지급한 지 9년여 됐지만, 이제 서서히 국제적인 태권도 인으로 성장한 사람도 있다고 전한다.

장세영: 아직은 연륜이 짧아 9년밖에 안됐으니까? 특별하게 지도자는 없지만, 코치나 심판들에게도 장학금을 주거든요. 그런 사람들 중에 올림픽 심판했던 스트브 드링이 있어요.

미주태권도장학회는 지난 2005년부터 장학금을 수여하기 시작해 올해까지 18만 9천여 달러를 지급한 것으로 집계됐다.

장세영: 500달러에서 많게는 2,500달러까지도 지급하는데요. 기금이 많은 때는 기금이 조금 모아졌을때는 개인 돈을 보태서 연간 2만 달러 안팎을 지급했었어요. 그런데 2012년에는 2만 8천 달러, 2013년에는 딸이 결혼했는데 축의금을 딸이 장학금으로 내기를 원해서 딸이 1만 달러, 제가 1만 3천 달러, 태권도 페스티발 수입금 등 한 3만 7천 달러 정도 장학금을 지급했지요.

장세영 회장은 태권도인으로서 지난날을 회고해준다.

장세영: 태권도 장학회를 하면서도 보람도 느끼지만요. 제가 1993년도에 메릴랜드 태권도협회 회장을 하면서 잘 알려지지는 않았는데요. 지역신문에는 보도됐었어요. 93년도에 파리 IOC 총회에서 태권도가 올림픽 종목에 정식 채택되었잖아요. 그 시기 제가 볼티모어 시장에게 건의해 볼티모어 시장이 전 세계 최초의 태권도의 날을 만들어 줬어요. 그러니까 10년 후에 세계연맹에서 태권도의 날을 만들었는데 사실은 그게 처음이 아니고 태권도의 날(1994년에는 커트 슈모크 당시 시장이 9월 4일을 볼티모어시 태권도의 날)을 만든 게 1994년도 볼티모어에서 처음 시작된 거에요. 그리고 96년도에는 메릴랜드 주 패리스 글랜데닝이라는 주지사가 제 요청을 받아들여 주로는 미국에서 처음으로 메릴랜드 주 태권도의 날(메릴랜드주는 1996년 패리스 글렌데닝 주지사 시절 전국에서 처음이자 무도 스포츠 사상 최초로 4월 28일을 태권도의 날로 선포.)을 또 만들었지요. 지난 2000년부터 올림픽에서 태권도 경기가 이어져 왔잖아요. 태권도 장학회라는 이름으로 태권도인을 위해서 장학금을 지급하는 단체도 전 세계에서 저희밖에 없는 걸로 알고 있습니다.

장세영 회장은 태권도를 학생 시절 배운 제자가 자녀를 데리고 와 태권도를 배우게 할 때 참 보람을 느낀다고 들려준다.

장세영: 지금 현재 메릴랜드 주에 태권도 도장이 700개 정도가 있어요. 그런데 한국인이 운영하는 도장은 30여 개 밖에 안돼요. 나머지 650개 이상이 미국인이나 외국계가 경영하는 도장인데 많은 도장이 지금은 옛날과 달라서 태권도라는 간판을 걸고서는 다른 운동을 가르치는 도장이 많아요. 저는 35년 전 미국에서 태권도를 시작할 때 태권도라는 말을 써왔는데 그 당시는 가라테라는 말이 더 많았었지요. 그런데 지금은 태권도로 바꿨다는 게 참 보람있는 일이고요. 태권도를 오래 하다 보니까? 옛날에 태권도를 배웠던 학생들이 10년 20년 후에 자기 자녀를 데리고 와서 태권도를 가르쳐요. 그럴 때 참 보람을 느끼지요. 그리고 전 세계에서 태권도 수련생들은 전부 한국을 좋아하잖아요. 그런 게 보람이죠.

장 회장은 우리 국기인 태권도를 가르칠 때 상대방을 배려할 줄 아는 사람으로 성장토록 지도한다고 전한다.

장세영: 역지사지(易地思之)(다른 사람의 입장에서 헤아려보라는 말)상대방 입장이 되어서 생각해주면 이 세상의 모든 불화가 없어질 것 같아요 그래 저는 태권도를 가르칠 때 학생들에게 상대방을 생각하는 마음으로 태권도를 배우도록 해요. 예를 들어 나이 많은 사람이 어린 사람이나 노약자를 상대로 태권도를 쓰면 안 되잖아요. 상대방이 아무리 잘못을 한다 하드래도 상대방 입장이 되어서 생각하면 태권도의 좋은 정신으로 정립이 되는 것 같아요.

장 회장은 자신의 가족은 ‘태권도 가족’이라고 들려준다.

장세영: 제가 태권도 사범을 하면서 사회 일도 많이 했어요. 한인회 일도 하고 평통 일도 했지만, 그 어느 것 보다도 저는 태권도를 위해서 다른 일을 하면 안 되겠다 해서 다른 일에 오퍼가 들어와도 받지 않고 태권도만 해 왔는데 지금 63살인데 제 생각에는 한 20년만 더 했으면 좋겠지만, 20년 못하면 앞으로 10년 만이라도 더 하다가 제 아들에게 태권도 장학회를 유지하려고 해요. 지금 저는 제 아들딸 며느리 다 태권도 사범이에요. 사위는 회계사인데 회계사 하면서 태권도를 배워요. 그리고 저의 집사람도 블랙 밸트 유단자이고요. 저희는 태권도 가족이에요. 저도 2002년도 그리스 세계대회에 총감독으로 참석했었지만, 제 딸도 세계대회 준우승을 했고, 아들은 2003년도 대구 유니버시아드 게임 미국 국가대표팀 총 감독으로 가기도 했었어요.

장 회장은 태권도가 세계 곳곳에서 대접을 받고 있다고 말한다.

장세영: 어떤 사람은 태권도를 우습게 보는 사람이 많이 있어요. 태권도가 한국에서 대접을 못 받지만, 세계에서는 진짜 대접을 받아요. 태권도 사범들이 좀 더 자부심을 가졌으면 좋겠어요. 어떤 사람은 우리 아들에게 좋은 대학을 나와서 태권도를 하느냐고 하는데 저는 태권도가 좋아요. 태권도를 배우는 모든 사람들이 친한파가 된다는 것을 아시고 태권도를 후원해 줬으면 해요.

장 회장은 존스합킨스 대학에서도 태권도를 가르쳤단다.

장세영: 저희 도장은 메릴랜드에 5개가 있어요. 아들딸 며느리 태권도 사범을 하고 우리 도장의 4단 이상의 사범이 20명 정도 있어요. 제가 존스합킨스 대학에서 13년을 가르쳤고, 제너럴 일렉트릭에서도 한 5년 가르쳤고 지금 현재 관원이 900명 정도 되어요. 저에게 배워서 도장을 운영하는 사범들이 메릴랜드 안에만 19명이 있어요. 그래 우리는 서로 하나의 유니언, 연합체 처럼 되어 태권도 발전을 위한 행사나 시범 등도 함께 다니기도 합니다.

자유아시아방송 지구촌의 한인들 오늘은 미주태권도장학회 장세영 회장으로부터 장학회의 이모저모를 알아봤다. 지금까지 기획과 진행에 RFA 이현기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