괌에서는 해방의 날로 알려져 있는 1944년 7월 21일 미군이 괌에 상륙했습니다. 3주간의 전쟁으로 수천의 차모로인, 미군, 일본군의 생명을 앗아간 다음 괌은 다시 미국의 통치에 들어갔습니다.
미군은 괌의 전략적 중요성을 인식하고 1945년 9월 2일 태평양에서 2차대전이 끝날 때까지 서태평양 작전지역으로 사용했습니다.
1946년 5월 30일 해군 정부가 다시 세워졌습니다. 3년 후인 1949년, 미국 대통령 트루먼은 괌의 제한적 자치를 허용하고 괌이 미국에 합병되지 않은 영토임을 확인하는 조례를 발표했습니다. 조례에서는 미국이 새로 얻는 영토가 괌이라고 불리울 것임을 선언했습니다.
행정, 입법, 사법부의 3개의 부로 된 민간 정부가 세워졌고 괌 주민에겐 미국 시민권이 주어졌습니다. 1962년 해군은 괌 여행 제한을 해제했으며 이로써 괌 경제는 살아났습니다.
1967년 팬 아메리칸 에어라인이 일본으로부터 괌까지 서비스를 시작하면서 괌 여행산업이 본격화되었고 괌의 경제는 다양해지고 발전하기 시작했습니다. 군비의 증가 이외에도 관광과 관련된 건설, 소매, 금융산업은 지역 주민에게 일자리를 제공하는데 커다란 역할을 했으며 다양한 분야에서 경제활동을 할 수 있도록 선택권을 부여해 주었습니다.
괌의 풍부한 문화유산은 미래의 발전의 기초입니다. 격조 있는 고급 호텔들과 레스토랑, 면세점은 괌을 서태평양의 환상의 휴양지로 만들었습니다.
안토니오 비 원 팻 괌 인터내셔널 공항은 수 많은 비행기들로 넘쳐 납니다. 현재 정기 여객기가 이웃 마이크로네시아 섬인 나우루와 미국 뿐 아니라 일본, 한국, 대만, 홍콩, 인도네시아, 호주, 필리핀 같은 많은 아시아 태평양 국가들과 괌을 연결해 줍니다.
매년 괌은 여행자 숫자기록을 갱신합니다. 휴가를 즐기려는 방문객 인파가 괌의 아름다운 해변과 열대의 생활, 1년 내내 계속되는 따뜻한 날씨를 즐기러 몰려듭니다. 아시아와 태평양을 여행할 때 괌을 거치는 해외 여행자 또한 많습니다.
괌은 세계속에서 진보적이고 향상된 지역사회로 발전해 온 것을 자랑스럽게 여기고 있습니다.
지난 10년 이상 관광사업은 번성해 왔으며, 괌의 민간 사업을 주도 하게 되었습니다. 1990년 10월 1일, 괌은 한국과 한국인 국적의 여행객들이 15일간 비자 없이 괌을 여행할 수 있도록 양국 사이에 "비자 면제 협정" 을 체결한 이후 괌에는 한국인 관광객들이 연간 약 10 만명 정도 입국하고 있으며 이것은 괌 전체 방문객의 약10%를 차지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