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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웅수장군회고록

2) 남한군실망시킨 마이아장군-김웅수장군회고록 제1부 한국전쟁회고 2)남한군을 실망시킨 미 육군 작전국장 웨데마이아 장군 한국전쟁이 발발 하기전에도 옹진 반도나 개성 송악산을 중심으로 남북 간의 작은 충돌 사건은 왕왕 있어 왔다. 북한 정권은 정권 수립 직후부터 의도적으로 전쟁준비 를 하고 있었던 것 같다. 나는 1949년초 초대 국방 장관의 부관으로 중국을 방문하고 한국을 들린 미 육군성 작전 국장이었던 웨데마이야 장군을 환영하며 그에게 북한군 의 중무장과 대 부대 훈련에 대비한 남한군의 무장 요청을 위한 회의에 참석한 일이 있었다. 당시 이범석 초대 국방 장관은 2차 세계대전 중 중국 운남성에서의 미중 합동작전을 통한 그와 의 교류를 믿고 그에게 일본군이 남겨놓은 무기로 경 무장한 남한군을 북한군의 중 포화와 전차 및 전투기에 대항할 수 있도록 .. 더보기
1) 1950년 6월 25일의 한국전쟁회고-김웅수장군회고록 제1부 한국전쟁회고 1) 1950년 6월25일의 한국 전쟁 회고 머리말 내 나이 이제 80이 넘었다. 기억력이 남아 있을 때 내가 겪었던 한국전쟁의 기억을 더듬어 본다. 나는 창군 때부터 군문에 종사한 덕분으로 전쟁 중 비교적 고급장교의 한 사람으로서 전쟁을 경험하게 되었다. 남북의 많은 피난민들의 고생과 굶주림, 전쟁미망인과 고아들을 보며 가정들이 파괴됨을 보았다. 전쟁은 군인 못지 아니한 많은 민간인의 희생을 동반 하였고 학살 납치 실종등으로 수복은 또 하나의 국민 비애가 되었다. 전쟁터에서의 가옥을 필두로한 재산의 피해도 서울과 대전이 초토화 됨도 보았고 전쟁 중 평양을 방문하여 미군에 의해 가설된 주교를 통해 대동강을 건너보았고 피난간 마을의 잠겨있는 빈집에서 이부자리를 운반하는 군인들께 분노해 .. 더보기
김웅수장군님 "회고록" 게재를 시작하며 깊은 감사를 드립니다. 김웅수장군님을 기억하십니까? 6.25전쟁 개전시에 육군대령으로 수도사단 참오장으로 전투에 임하셨고, 전쟁말기에는 육군준장으로 철원백마고지를 지키실때는 2군단 참모장과 2사단장으로 전쟁을 치르셨고, 1961년 육군소장으로 예편하셨으며 현재는 미국에 살고 계시는 김웅수장군님의 회고록 게재를 시작하며 너무나 감격스럽고 영광스럽기만 합니다. 김웅수장군님 2008년 7월 13일 워싱톤 한인교회에서 한국의 젊은이들이여! 한국전쟁은 김일성의 의지로 발발했으며, 스탈린과 마오쩌둥의 지원을 약속 받고 일으킨 남침이며, 이 설명은 대한민국과 미국의 기록, 공개된 구 소련의 비밀문서에 의해 그 타당성과 객관성이 증명되었습니다. 소련 공산당의 서기장 니키타 후루쇼프는 그의 회고록에서 한국전쟁은 김일성의 계획과 스탈린의 승인으..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