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년은 한국 젊은이들이 서독 광산으로 파견된 지 50년, 반세기가 된다. 한국 젊은이들이 가난한 조국을 떠나 이역만리 낯선 타국 땅 서독 광산에 첫발을 디딘 것은 1968년이다. 20대 30대 파독 광부와 파독 간호사들은 독일에서 한국인의 근면성으로 인해 칭송을 받았으며, 이들의 피와 땀은 한국 경제발전에 초석이 되었다. 이제는 칠팔십을 바라보는 노인이 되었지만, 조국 발전에 힘을 보탰다는 자긍심으로 살아가고 있다.
자유아시아방송 지구촌의 한인들, 오늘은 파독광부 삶의 이야기 베를린 글뤽아우프 신성식 회장에게서 듣는다.
베를린 글뤽아우프 신성식 회장은 크고 작은 행사가 지난 2월부터 시작돼 12월까지 계속된다면서 지난 5월에는 한독수교 130주년과 광부 간호사 파독 50주년 기념행사 개막 축하공연을 했다면서 파독광부와 파독 간호사로서 한국경제발전에 초석이 되었음을 자랑스럽게 생각하고 있다고 들려준다.
신성식: 50주년, 말하자면 반세기 전에는 광부라는 직업 자체가 부끄러웠는데 그것으로 인해서 한국의 경제가 발전되고 수출이 세계 12번째로의 성장을 볼 때 정말 자랑스럽습니다. 조국이 잘 살기 때문이지요. 그래서 저희 파독 광부들은 그러한 긍지를 가지고 자랑스럽게 살고 있습니다. 또한, 독일 정부에서도 그동안 광부나 간호원들에게 좋은 혜택도 주고 큰 행사도 많이 하고 있습니다.
신성식 회장은 이번 한독수교 130주년 기념행사에서 한국과 독일에서 동시에 기념우표도 발행했다고 전한다.
신성식: 수교 130주년은 지난 6월 21일 유네스코에서 지정하는 유명한 관광도시 고슬라(1000년 된 광산 도시 현재는 관광도시, Goslar, Germany)에서 독일대통령 만찬회에 독일 정부요인들과 한국에서 국회의원들이 참석한 가운데 특히 독일과 한국의 뜻깊은 우정의 기념우표를 독일 대통령과 한국 대사와 서로 교환하였습니다.
신 회장에게 어떤 동기로 파독광부로 가게 됐는지 배경을 물어봤다.
신성식: 사실 68년도에 학사 광부들이 입항하는 것을 보고 학사 출신들이 해외에 광부로 가는데에 감동 받아서 나도 조국을 위해서 꼭 가야 되겠다고 생각하고 1971년에 시험을 봐서 독일에 오게 됐습니다. 그래 무엇보다도 열심히 일해서 독일인들에게 잘 보여서 또 후배들이 올 수 있게끔 저희 동기들은 함께 정말 충실히 일했습니다. 그래서 1년 후부터 계속 후배들이 오게 되였습니다.
신성식 회장은 지난 5월 파독 50주년 기념 만찬회에서 설렘과 두려움으로 비행기 트랩에 올랐던 20대의 아가씨들과 청년들은 세월의 고개를 넘어 벌써 50년이 됐다면서 돌이켜보면 1,000미터 지하 막장에서 생명의 위험도 무릅쓰고 흘렀던 땀과 눈물이 그리고 또 꽃처럼 아름다웠던 백의의 천사들인 간호요원들이 병원에서 불철주야로 한 고생이 조국 근대화의 씨앗이 되었음을 회고한다.
신성식: 한국정부에 차관을 준 것에 대한 보답으로 더 열심히 일했고요. 그래서 총 간호요원 10,032명이 왔고, 광부는 7,936명이 왔습니다.
신 회장에게 지난날을 회고해 달라고 했다.
신성식: 60년대는 한국이 참 가난했지요. 그래서 나는 조국을 위해 독일 선진국에서 일하면서 독일인들에게 성실함을 보이기 위해 열심히 일했고 생활에 별로 어려움은 없었습니다. 그런데 기뻤던 일은 1973년에 첫 동기 결혼식에는 많은 동기가 함께 모여 신원 부부를 축하하며 기쁘고 즐거웠던 시간 속에서도 고향에 대한 그리움으로 눈시울을 적시기도 했다.
신 회장에게 당시 주말을 어떻게 보냈는지 물었다.
신성식: 우리들은 총각이었기 때문에 주말에 외출을 나갈 때는 독일어도 배울 겸 간호원들을 찾아가서 탁구도 치면서 친교도 나누며 그 당시에 26살에서 30살 되는 총각들이 가능하면 결혼도 하고픈 꿈이 있었기 때문에 주말에는 간호원 기숙사로 가서 시간을 보내기도 했습니다.
신성식 회장은 75년도에 결혼했단다. 젊은 시절 데이트 하던 이야기를 들려준다.
신성식: 사실 제가 운동을 좋아했고 독일와서 3년만에 자동차를 샀기 때문에 간호원 기숙사를 가면 항상 우리들을 기다리고 있었지요. 간호원들도 사실 20대에 와서 외로웠기 때문에 탁구도 치고 볼링도 같이 할 수 있었고 그래 친교를 많이 가지면서 그때 탁구 리그 시합에도 나가곤 했습니다. 독일 리그에요. 저의 탁구 멘버중에는 이애리사 국가대표 트레이너도 있었기 때문에 수준급이었었지요. 그런 중에 친구 애인의 친구가 베를린에서 서독으로 놀러 온다고 해서 저도 동행해 그 인연으로 제가 베를린으로 여행을 가게 됐습니다. 그래서 베를린 500KM 거리인 베를린를 20번을 왔다 갔다 하면서 결혼까지 하게 됐습니다.
신 회장은 파독광부 친목회 명칭은 글뤽아우프라고 한다며 그 이유를 설명한다.
신성식: 이곳 광부들 모임을 "글뤽아우프회"라고 부르는데 "글뤽아우프"라는 독일 말은 광부들이 광산에 들어 갈 때나 나올 때 서로 주고 받는말로서 ‘당신의 행운을 빈다"라는 뜻입니다. 그래서 그 인사말을 따서 "글뤽아우프"라는 친목회의 이름으로 삼았으며, 한 30여 년 동안의 일들을 사진으로 보관한 사진첩도 있습니다.
신 회장에게 한해 주요행사를 소개해 달라고 했다. 가장 큰 행사는 노동절 행사라고 들려준다.
신성식: 우리들은 노동자로 왔기 때문에 무엇보다 노동절 행사는 우리들에게 큰 의미가 있습니다. 5월 1일은 한국뿐만 아니라 독일의 국경일이어서 다 쉬게 되며 그날은 대체적으로 독일 날씨가 참 좋습니다. 이곳 가톨릭 성당의 큰 정원에서 갖는 노동절 행사에는 대사님을 비롯한 교민들이 약 300명에서 400명 정도 참여하는 큰 행사입니다. 이날은 교민들이 참 많이 와서 즐겁게 윷놀이도 하고 여러 가지 행사를 하면서 일 년 동안에 만나지 못한 분들은 이날을 통해서 그동안 쌓인 회포도 풀고 음식도 먹으면서 서로 친교를 하며 좋은 날을 보내는 우리들의 노동절행사입니다. 그리고 두 번째는 송년회도 역시 한 300명 정도로 문화행사도 함께 겸하고 있습니다.
신 회장에게 파독광부로서 고생하지 않았느냐고 물었다. 그리고 자녀들은 독일사회에 잘 성장했는지도 여쭤봤다.
신성식: 내가 근무하던 광산은 최신현대식이어서 지하 1,000미터 막장에서도 특별한 사고 없이 안전하게 일할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독일 쿤펠이( 동료)라고 하지요. 동료들이 그분들과 똑같이 인권을 존중해주고 똑같은 보수와 인종차별을 하지 않는 데 대해서 독일민족은 훌륭한 민족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실수를 했을 때나 힘이 약할 때는 동료들이 와서 도와주고 그래서 인간관계가 참 좋은 것을 처음에 느꼈고요. 현대식 장비가 되지 않은 광산에서는 고생한 동료들이 많았습니다. 그때 많은 어려움이 있었지만 50년이 되는 지금에는 대부분의 자녀들이 변호사 의사 등 전문직 교육을 받고 많은 2세들이 독일 사회의 다방면으로 진출하고 있습니다.
신 회장은 한국인들은 자녀들 교육에 참 욕심이 많다고 말한다.
신성식: 우리 한국분들은 자녀교육에 욕심이 많다고 생각합니다. 유대인도 욕심이 많다고 하지만, 우리 한국분들은 특히 자녀 교육열이 참 높은 것 같습니다. 첫째 음악을 시키지 않는 한국가정이 없을 것으로 생각하며. 10명 중에 8명은 대학을 진학해서 엔지니어가 되고 의사, 변호사 등 우리 한인들 우수하다고 생각됩니다.
신 회장은 초창기 독일 생활에서 한국인 밥상에서 빼놓을 수 없는 김치를 배추가 없어 양배추로 담아 먹었던 어려운 시절을 돌이켜본다.
신성식: 처음에 왔을 때는 배추가 없었지요. 배추가 없어서 양배추로 김치를 담았지요. 저는 한국에서 자취할 때 김치를 담아보아서 쉽게 담을 수 있었지만, 담지 못하는 동료들은 김치를 먹지 못해서 많은 어려움을 겪기도 했습니다. 나중에는 한 동료가 농장을 만들어 채소를 심어서 전 간호원 기숙사나 광부 숙소에 배달해서 마음대로 김치를 담아 먹었습니다.
신 회장은 독일이나 전 세계에 흩어져 사는 파독 광부들에게 지난날을 회고하며 보람된 나날이 되기를 바럈다. 그리고 몇몇 분들에게 연락도 부탁한다.
신성식: 존경하는 칠일 동기님들! 38년 전 헤어진 동기님들 많은 세월이 흘렀습니다. 그간 다 안녕들 하신지요? 멀리 서독 베를린에서 인사 올립니다. 1971년 10월 30일 "캄프린트 포르트"로 오신 동기분들 중, 뉴욕에 배충기 형님. 캐나다 토론토에 김정훈 정병숙 부부님,, 남미 브라질에 조영일, 한국에 김만기, 신병윤, 안준영, 이현규, 이응국, 신봉식 동기님들이 방송을 들으시면 독일에 연락해주시기 바랍니다. 독일 뒤쉘돌프에 박영기 동기님 그리고 심동선박사 동기님이 요즘 건강이 좋지 않습니다. 내년 4월에 동기 모임을 가질 예정입니다. 연락해주시면 감사드리겠습니다.
자유아시아방송 지구촌의 한인들 오늘은 파독광부 삶의 이야기 베를린 글뤽아우프 신성식 회장에게서 들어봤다. 기획과 진행에 이현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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