워싱턴-이현기 leeh@rfa.or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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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07-16
이제는 세계 어디를 가나 한국인의 웅지를 찾을 수가 있다. 한인들은 국제사회
곳곳에서 한인들만이 갖는 근면함으로 크게 성장해 가고 있음은 우리 모두의
자랑이라 할 것이다. 더욱이 사업에서 성공한 사람들을 만나면 한국인의 희망도
찾게 된다. 그래서인지 요즈음 세계인들이 아시아인을 만나면 코리안이냐고
물어본단다. 정말 자랑스러운 한국인의 위상이 아닐 수 없다.
해외에 사는 한인 1세와 2세는 이제 함께 어우러져 세계 속의 한인 상을 심어가고
있음도 자랑스러운 일이다.
세계의 한국인 오늘은 오스트리아에서 빈손으로, 사업의 성공을 일군, 한인
사업가 ‘영산그룹 박종범 회장의 인생 역정의 삶’의 현장을 찾아간다.
박종범 씨는 어떻게 오스트리아에서 삶의 뿌리를 내렸을까? 박종범 씨가
오스트리아에 첫발을 딛은 것은 1996년 한국의 기아자동차 법인장으로 나오면서
부터다. 그러나 오스트리아에서 얼마 되지 않아 IMF 때 기아자동차가 어려움에
빠지면서 박종범 씨도 고난의 역경을 겪는다. 박씨의 당시 상황은 말로 표현하기
어려운 고난의 시작이었다고 한다.
박종범: 1999년도 IMF 때 기아자동차가 어려움에 빠지고 현대자동차에 흡수
통합될 때 무역업을 하기 위해 비엔나에 남았습니다. 제 나이 마흔이 되는 해에
소위 제 사업을 하기 위해 독립을 하게 된 것이지요. 저 스스로 바라는 독립
이었기보다는 회사가 어려워짐에 따라 선택된 길이었기에 처음에는 사실 참으로
많은 어려움에 직면했었지요. 물가가 높아 생활비가 많이 드는 유럽, 잘 짜인
유럽의 비즈니스 세계에서, 특히 오스트리아에서 독일어를 못하면서 영어만으로
무역업을 한다고 하는 것은 거의 불가능에 가까웠습니다.
박종범 씨가 일궈낸 오늘의 영산그룹 시작은 바로 여자 직원 1명과 함께 동유럽에서
무역의 길을 뚫는 것이다. 뚝심의 한국인이라고나 할까? 그는 1년 365일 가운데
220일 동안 바이어(구매자) 개발에 나섰다고 한다.
박종범: 여직원 1명을 비엔나 사무실에 두고, 저는 주로 러시아와 우크라이나에
거의 상주하다시피 하며, 바이어(구매자) 개발을 위해 출장을 다녔습니다. 연간
약 220일 이상 출장을 다녔더군요. 자동차 사업은 규모가 있는 큰 회사들만이
할 수 있는 사업이었기에, 저는 처음 사업을 시작하면서 철저히 자동차 관련
사업은 배제하고 새로운 품목을 개척하고자 했고, 한국산 제품을 동유럽에
공급하고자 주력했습니다.
박종범 씨가 오스트리아에서 흘린 땀방울의 대가는 참으로 귀한 것이었다. 지금의
오스트리아를 비롯한 몇 개 나라에 지사를 두고 자동차 부품 조립과 차량 개조
공장을 운영하는 것은 행운이 아닌 땀방울의 결실일 것이다. 박 씨가 설명해주는
영산그룹의 발자취이다.
박종범: 처음으로 접한 품목이 사탕 포장지였습니다. 유화제품에 대한 지식이
거의 없었던 저였는데, 참으로 다행으로 우크라이나에서 규모가 제일 큰 사탕 및
초콜릿 제조 공장과 인연이 되어, 한국산 Film을 우크라이나에 공급하면서 첫
매출을 올리기 시작하였습니다. 그러다가, 어느 정도 사업이 기반을 다져 가면서
다시 자동차 관련 사업을 하게 되었고, 이제는 자동차 관련 사업이 주종을
이루고 있습니다. 지금은 비엔나에 본사를 둔 영산 그룹을 이끌고 있습니다.
한국을 비롯하여 몇 개 나라에 법인과 지사를 두고 무역과 아울러 자동차 부품
조립 및 차량 개조 공장을 운영하고 있습니다.
박 씨에게 영산그룹의 사업 규모를 물어봤다. 그는 올해 말이면 공장근무 인원만도
900명으로 늘어나게 된다고 자랑해준다.
박종범: 저희 영산은 오스트리아에 본사를 두고 한국, 슬로바키아, 우크라이나,
러시아, 카자흐스탄, 남아공 등에 현지 법인을 운영하고 있고, 호주 Sydney,
미국 LA, 중국 Shanghai 등에 지사를 두고 있습니다. 특히, 한국 전주 공단과
슬로바키아, 러시아 St. Petersburg 등에 자동차 부품 조립 및 차량 개조 공장을
운영하고 있으며, 슬로바키아에는 완성차량을 운송하는 운송회사도 운영하고
있습니다. 종업원 수는 무역업 분야에서 한국 내에 30명을 비롯하여 전체 60여
명이 근무를 하고 있고, 제조 분야 공장 근로자들은 400여 명에 달합니다. 현재
슬로바키아에서 신규 사업으로 추진하고 있는 차량 부품 조립 라인이 가동되게
되는 올해 말이 되면, 공장 근무 인력은 약 900여 명으로 드러나게 됩니다.
박종범 씨는 2008년도 매출규모가 7억 유로, 한화로 약 1조 원의 매출을
달성했단다. 정말 자랑스러운 일이 아닐 수 없다. 현재 어떤 사업 규모를
가졌을까? 박 씨의 이야기를 들어보자!
박종범: 현재 무역부분의 사업영역은 자동차 금융제공을 비롯하여 Golf Cart,
Fork Lift, 타이어, 휠을 비롯한 차량 부품 사업, 산업용 장갑, 석유화학 수지 및
Film 등을 판매하고 있으며, 보일러의 경우, 한국의 귀뚜라미 제품을
우크라이나와 카자흐스탄에 독점적으로 공급하고 있고, 올해 하반기에 Russia
현지에 반제품 조립 공장을 설립하여 본격적으로 러시아 시장을 공략할 체계를
갖추고 있습니다. 매출 규모는 2008년도에 7억 유로, 한화로 약 1조 원의 매출을
달성하였으나, 2009년도에는 세계적인 경기 침체로 말미암아, 무역분야 주종
사업인 자동차 무역이 급감하여 그 1/3 수준에 머물렀습니다. 2008년도에는
오스트리아의 제일 큰 은행인 Bank Austria로부터 Customer of the year 상을
받은 바 있습니다.
영산 그룹의 총수로서의 경영 철학이 뭐냐고 물어봤다. 상대방에게 신뢰를 줄 수
있어야 한다고 강조한다.
박종범: 그룹 이름인 영산에 우리 회사의 기본 철학이 녹아 있습니다. 즉, 신앙인의
자세, 인간적인 마음, 그리고, 미를 추구하는 가치 있는 삶입니다. 사랑과 봉사,
헌신하고 더불어 사는 삶, 투철한 목적의식과 사명감으로 항상 노력하는 삶,
그러면서, 언제나 예술과 문화를 사랑하는 여유를 가지는 삶이 참 아름다운 삶이
아닌가 생각합니다. 이를 실천적으로 추구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저는 신뢰가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약속하면 그 약속은 반드시 지켜져야 합니다.
그 약속 상대가 자기 자신이든, 가족이든, 친구든, 회사든, 고객이든, 거래
회사이든지 간에, 나 스스로 상대방에게 신뢰를 줄 수 있어야 상대방으로부터
오더를 받을 수 있고, 제품과 서비스를 좋은 가격에 공급받을 수 있습니다. 또한,
더불어 사는 삶의 자세입니다. 자기에게 여유가 있는 상태에서 남에게 베푸는
것은 진정한 나눔이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부족한 가운데에서도 항상 남을
배려하고 함께하려는 노력을 하게 되면 그 자체가 큰 기쁨이요 축복이라
생각합니다. 그러면, 모든 것이 자연스럽게 자신에게 기쁨 속에 더 다가오게
되는 것 같습니다.
영산 그룹은 체육과 문화 그리고 양로원 고아원 장애인 재활원 등에 후원에도
열정을 보이고 있다. 박종범 회장은 아직은 부끄러운 이야기라고 말문을 연다.
박종범: 여기 비엔나에는 매년 저희 영산 컵 체육행사가 몇 가지 열립니다.
올해에는 제6회 테니스대회, 제5회 축구대회, 제4회 골프대회, 제3회 농구대회,
제2회 탁구대회가 열립니다. 그 중, 특히, 축구와 농구팀들은 저희 영산의 공식
후원사입니다. 또한, 영산이 공식 후원하는 슬로바키아 질리나 배구팀이 언제나
슬로바키아 리그에서 1-2위를 달리고 있습니다. 슬로바키아 내의 양로원들과
고아원들, 한국의 장애인 재활원과 종교 단체들에 꾸준히 지원하고 있습니다.
문화 예술 분야에서는 오스트리아에서의 각종 음악회에 후원하고 있고, 매년
11월에는 슬로바키아에서 한국대사관 주최, 영산 후원 음악회를 개최하고 있으며,
올해 5월에는 우크라이나 키에프에서도 한국대사관 주최, 영산 후원 ‘한.우
친선음악회’를 개최하였고, 앞으로 매년 정례화하기로 하였습니다. 앞으로도
지속적으로 대 사회봉사 활동과 지원 사업을 활성화하기 위해, 최근 저희
그룹 내에 대외협력팀을 보강하였습니다.
박종범 씨의 인생에서 가장 힘들었던 때는 바로 오스트리아에서의 개인 사업을
시작하고 나서부터다. 2007년의 영산 차량 개조 공장을 설립할 당시는 참
힘들었다고 말한다. 그러나 박 씨는 이제는 가족과 여행도 다니면서 행복하다고
말해준다.
박종범: 아직 제가 제 지나온 삶을 회고할 정도는 아니고요. 아무튼, 지금으로부터
14년 전, 몸담았던 회사가 어려워짐에 따라, 어쩔 수 없이, 맨손으로 독립하겠다고
무턱대고 여기 비엔나에 남아서 무역업을 시작할 때가 가장 힘들었던 순간이
었습니다. 누구에게도 의지할 수 없이 나 스스로만을 믿고서, 당장 집 임대료,
얘들 학비 및 생활비 걱정을 하면서, 사업을 개발해야 했던 그 순간… 매일
잠자리에 들면 어김없이 2시간 정도 후엔 온몸이 땀으로 흠뻑 젖은 채 잠에서
깨어나 밤잠을 설치던 그때가 참 힘들었던 것 같습니다. 또한, 2007년 4월,
기아자동차 슬로바키아 공장 옆에 우리 영산의 차량 개조 공장을 설립할 당시,
또한 참으로 어려웠던 순간이었습니다. 아무런 연고도 없던 그곳에 납기에 쫓겨
거의 밤잠을 설치며 공장을 설립하던 때, 그때 고혈압도 제게 다가오더군요.
그래도, 지금은 짬을 내어 헬스장에도 가고 주말이면 골프로 치곤 합니다.
연말이면 가족들과 다른 나라로 여행도 가기도 하고요.
박종범 씨의 가족 이야기를 들어봤다. 박 씨의 두 아들은 한국군에 자원해서
복무하고 있단다. 참 대단한 한국사랑의 본보기가 아닐까 생각해 본다.
박종범: 부인과 아들 둘이 있는데요. 큰 애는 비엔나대학 건축 공학과 5학년을,
둘째 얘는 런던 정경대 법대 2학년을 각각 마친 후, 작년 10월 같은 날짜에
한국군에 입대하여 현재 한국에서 군 복무를 하고 있습니다. 영주권자들이기에
구태여 한국군에 입대하지 않아도 되는 데, 얘들 스스로 한국군 복무를
희망하더군요. 대견스럽고 자랑스럽지요.
박종범 씨는 재오스트리아 한인연합회 회장으로서 포부도 들려준다.
박종범: 한인연합회에서 진행하는 행사에 많은 교민이 참여하고, 행사가
성공적으로 끝났을 때 제일 보람이 크지요. 또한, 최근 한인문화회관 설립
기금이 지속적으로 늘어나고 있는 것을 보면서 큰 보람과 희망을 가지게
됩니다. 제 임기 내에 한인 문화회관을 꼭 설립하고 재오스트리아 한인
50년 교민 사를 필히 편찬하여 나중에 정말 더 큰 보람을 느끼고 싶습니다.
박종범 씨가 세계한인들에 주는 메시지다. 박 씨는 한국인의 정체성을
확고히
하면서 국제사회에 조화를 이뤄나가자고 강조한다.
박종범: 근래 우리 대한민국의 위상은 국제적으로 참으로 많이 신장
하였습니다. 지난해 어려운 경제 위기를 제일 빨리 극복했고, 지난 60년 동안
해외 원조를 받던 나라에서 이제는 원조하는 세계 유일한 나라가 되었습니다.
올해 11월에는 서울에서 G20 정상회담이 열립니다. 남아공 월드컵에도 16강에
진입하였습니다.
이렇게 고양되고 있는 고국 한국의 발전에 맞추어 우리 750만 해외 한인들 또한
각기 자신을 스스로 높이고 발전시키는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항상 한국인으로서의 정체성을 확고히 하고, 그러면서 동시에 그 국가와 사회에
조화롭게 융합하여 주류 사회에 진출하는 지혜로운 삶이 필요하다고 봅니다.
모두의 성공과 발전, 그리고 행복을 기원합니다. 감사합니다.
세계의 한국인 오늘은 오스트리아에서 빈손으로 사업의 성공을 일군 한인
사업가 ‘영산그룹 박종범 회장의 인생 역정의 삶’의 현장을 찾아가 봤다.
지금까지 세계의 한국인 기획과 진행에 RFA 이현기입니다.
곳곳에서 한인들만이 갖는 근면함으로 크게 성장해 가고 있음은 우리 모두의
자랑이라 할 것이다. 더욱이 사업에서 성공한 사람들을 만나면 한국인의 희망도
찾게 된다. 그래서인지 요즈음 세계인들이 아시아인을 만나면 코리안이냐고
물어본단다. 정말 자랑스러운 한국인의 위상이 아닐 수 없다.
해외에 사는 한인 1세와 2세는 이제 함께 어우러져 세계 속의 한인 상을 심어가고
있음도 자랑스러운 일이다.
세계의 한국인 오늘은 오스트리아에서 빈손으로, 사업의 성공을 일군, 한인
사업가 ‘영산그룹 박종범 회장의 인생 역정의 삶’의 현장을 찾아간다.
박종범 씨는 어떻게 오스트리아에서 삶의 뿌리를 내렸을까? 박종범 씨가
오스트리아에 첫발을 딛은 것은 1996년 한국의 기아자동차 법인장으로 나오면서
부터다. 그러나 오스트리아에서 얼마 되지 않아 IMF 때 기아자동차가 어려움에
빠지면서 박종범 씨도 고난의 역경을 겪는다. 박씨의 당시 상황은 말로 표현하기
어려운 고난의 시작이었다고 한다.
박종범: 1999년도 IMF 때 기아자동차가 어려움에 빠지고 현대자동차에 흡수
통합될 때 무역업을 하기 위해 비엔나에 남았습니다. 제 나이 마흔이 되는 해에
소위 제 사업을 하기 위해 독립을 하게 된 것이지요. 저 스스로 바라는 독립
이었기보다는 회사가 어려워짐에 따라 선택된 길이었기에 처음에는 사실 참으로
많은 어려움에 직면했었지요. 물가가 높아 생활비가 많이 드는 유럽, 잘 짜인
유럽의 비즈니스 세계에서, 특히 오스트리아에서 독일어를 못하면서 영어만으로
무역업을 한다고 하는 것은 거의 불가능에 가까웠습니다.
박종범 씨가 일궈낸 오늘의 영산그룹 시작은 바로 여자 직원 1명과 함께 동유럽에서
무역의 길을 뚫는 것이다. 뚝심의 한국인이라고나 할까? 그는 1년 365일 가운데
220일 동안 바이어(구매자) 개발에 나섰다고 한다.
박종범: 여직원 1명을 비엔나 사무실에 두고, 저는 주로 러시아와 우크라이나에
거의 상주하다시피 하며, 바이어(구매자) 개발을 위해 출장을 다녔습니다. 연간
약 220일 이상 출장을 다녔더군요. 자동차 사업은 규모가 있는 큰 회사들만이
할 수 있는 사업이었기에, 저는 처음 사업을 시작하면서 철저히 자동차 관련
사업은 배제하고 새로운 품목을 개척하고자 했고, 한국산 제품을 동유럽에
공급하고자 주력했습니다.
박종범 씨가 오스트리아에서 흘린 땀방울의 대가는 참으로 귀한 것이었다. 지금의
오스트리아를 비롯한 몇 개 나라에 지사를 두고 자동차 부품 조립과 차량 개조
공장을 운영하는 것은 행운이 아닌 땀방울의 결실일 것이다. 박 씨가 설명해주는
영산그룹의 발자취이다.
박종범: 처음으로 접한 품목이 사탕 포장지였습니다. 유화제품에 대한 지식이
거의 없었던 저였는데, 참으로 다행으로 우크라이나에서 규모가 제일 큰 사탕 및
초콜릿 제조 공장과 인연이 되어, 한국산 Film을 우크라이나에 공급하면서 첫
매출을 올리기 시작하였습니다. 그러다가, 어느 정도 사업이 기반을 다져 가면서
다시 자동차 관련 사업을 하게 되었고, 이제는 자동차 관련 사업이 주종을
이루고 있습니다. 지금은 비엔나에 본사를 둔 영산 그룹을 이끌고 있습니다.
한국을 비롯하여 몇 개 나라에 법인과 지사를 두고 무역과 아울러 자동차 부품
조립 및 차량 개조 공장을 운영하고 있습니다.
박 씨에게 영산그룹의 사업 규모를 물어봤다. 그는 올해 말이면 공장근무 인원만도
900명으로 늘어나게 된다고 자랑해준다.
박종범: 저희 영산은 오스트리아에 본사를 두고 한국, 슬로바키아, 우크라이나,
러시아, 카자흐스탄, 남아공 등에 현지 법인을 운영하고 있고, 호주 Sydney,
미국 LA, 중국 Shanghai 등에 지사를 두고 있습니다. 특히, 한국 전주 공단과
슬로바키아, 러시아 St. Petersburg 등에 자동차 부품 조립 및 차량 개조 공장을
운영하고 있으며, 슬로바키아에는 완성차량을 운송하는 운송회사도 운영하고
있습니다. 종업원 수는 무역업 분야에서 한국 내에 30명을 비롯하여 전체 60여
명이 근무를 하고 있고, 제조 분야 공장 근로자들은 400여 명에 달합니다. 현재
슬로바키아에서 신규 사업으로 추진하고 있는 차량 부품 조립 라인이 가동되게
되는 올해 말이 되면, 공장 근무 인력은 약 900여 명으로 드러나게 됩니다.
박종범 씨는 2008년도 매출규모가 7억 유로, 한화로 약 1조 원의 매출을
달성했단다. 정말 자랑스러운 일이 아닐 수 없다. 현재 어떤 사업 규모를
가졌을까? 박 씨의 이야기를 들어보자!
박종범: 현재 무역부분의 사업영역은 자동차 금융제공을 비롯하여 Golf Cart,
Fork Lift, 타이어, 휠을 비롯한 차량 부품 사업, 산업용 장갑, 석유화학 수지 및
Film 등을 판매하고 있으며, 보일러의 경우, 한국의 귀뚜라미 제품을
우크라이나와 카자흐스탄에 독점적으로 공급하고 있고, 올해 하반기에 Russia
현지에 반제품 조립 공장을 설립하여 본격적으로 러시아 시장을 공략할 체계를
갖추고 있습니다. 매출 규모는 2008년도에 7억 유로, 한화로 약 1조 원의 매출을
달성하였으나, 2009년도에는 세계적인 경기 침체로 말미암아, 무역분야 주종
사업인 자동차 무역이 급감하여 그 1/3 수준에 머물렀습니다. 2008년도에는
오스트리아의 제일 큰 은행인 Bank Austria로부터 Customer of the year 상을
받은 바 있습니다.
영산 그룹의 총수로서의 경영 철학이 뭐냐고 물어봤다. 상대방에게 신뢰를 줄 수
있어야 한다고 강조한다.
박종범: 그룹 이름인 영산에 우리 회사의 기본 철학이 녹아 있습니다. 즉, 신앙인의
자세, 인간적인 마음, 그리고, 미를 추구하는 가치 있는 삶입니다. 사랑과 봉사,
헌신하고 더불어 사는 삶, 투철한 목적의식과 사명감으로 항상 노력하는 삶,
그러면서, 언제나 예술과 문화를 사랑하는 여유를 가지는 삶이 참 아름다운 삶이
아닌가 생각합니다. 이를 실천적으로 추구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저는 신뢰가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약속하면 그 약속은 반드시 지켜져야 합니다.
그 약속 상대가 자기 자신이든, 가족이든, 친구든, 회사든, 고객이든, 거래
회사이든지 간에, 나 스스로 상대방에게 신뢰를 줄 수 있어야 상대방으로부터
오더를 받을 수 있고, 제품과 서비스를 좋은 가격에 공급받을 수 있습니다. 또한,
더불어 사는 삶의 자세입니다. 자기에게 여유가 있는 상태에서 남에게 베푸는
것은 진정한 나눔이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부족한 가운데에서도 항상 남을
배려하고 함께하려는 노력을 하게 되면 그 자체가 큰 기쁨이요 축복이라
생각합니다. 그러면, 모든 것이 자연스럽게 자신에게 기쁨 속에 더 다가오게
되는 것 같습니다.
영산 그룹은 체육과 문화 그리고 양로원 고아원 장애인 재활원 등에 후원에도
열정을 보이고 있다. 박종범 회장은 아직은 부끄러운 이야기라고 말문을 연다.
박종범: 여기 비엔나에는 매년 저희 영산 컵 체육행사가 몇 가지 열립니다.
올해에는 제6회 테니스대회, 제5회 축구대회, 제4회 골프대회, 제3회 농구대회,
제2회 탁구대회가 열립니다. 그 중, 특히, 축구와 농구팀들은 저희 영산의 공식
후원사입니다. 또한, 영산이 공식 후원하는 슬로바키아 질리나 배구팀이 언제나
슬로바키아 리그에서 1-2위를 달리고 있습니다. 슬로바키아 내의 양로원들과
고아원들, 한국의 장애인 재활원과 종교 단체들에 꾸준히 지원하고 있습니다.
문화 예술 분야에서는 오스트리아에서의 각종 음악회에 후원하고 있고, 매년
11월에는 슬로바키아에서 한국대사관 주최, 영산 후원 음악회를 개최하고 있으며,
올해 5월에는 우크라이나 키에프에서도 한국대사관 주최, 영산 후원 ‘한.우
친선음악회’를 개최하였고, 앞으로 매년 정례화하기로 하였습니다. 앞으로도
지속적으로 대 사회봉사 활동과 지원 사업을 활성화하기 위해, 최근 저희
그룹 내에 대외협력팀을 보강하였습니다.
박종범 씨의 인생에서 가장 힘들었던 때는 바로 오스트리아에서의 개인 사업을
시작하고 나서부터다. 2007년의 영산 차량 개조 공장을 설립할 당시는 참
힘들었다고 말한다. 그러나 박 씨는 이제는 가족과 여행도 다니면서 행복하다고
말해준다.
박종범: 아직 제가 제 지나온 삶을 회고할 정도는 아니고요. 아무튼, 지금으로부터
14년 전, 몸담았던 회사가 어려워짐에 따라, 어쩔 수 없이, 맨손으로 독립하겠다고
무턱대고 여기 비엔나에 남아서 무역업을 시작할 때가 가장 힘들었던 순간이
었습니다. 누구에게도 의지할 수 없이 나 스스로만을 믿고서, 당장 집 임대료,
얘들 학비 및 생활비 걱정을 하면서, 사업을 개발해야 했던 그 순간… 매일
잠자리에 들면 어김없이 2시간 정도 후엔 온몸이 땀으로 흠뻑 젖은 채 잠에서
깨어나 밤잠을 설치던 그때가 참 힘들었던 것 같습니다. 또한, 2007년 4월,
기아자동차 슬로바키아 공장 옆에 우리 영산의 차량 개조 공장을 설립할 당시,
또한 참으로 어려웠던 순간이었습니다. 아무런 연고도 없던 그곳에 납기에 쫓겨
거의 밤잠을 설치며 공장을 설립하던 때, 그때 고혈압도 제게 다가오더군요.
그래도, 지금은 짬을 내어 헬스장에도 가고 주말이면 골프로 치곤 합니다.
연말이면 가족들과 다른 나라로 여행도 가기도 하고요.
박종범 씨의 가족 이야기를 들어봤다. 박 씨의 두 아들은 한국군에 자원해서
복무하고 있단다. 참 대단한 한국사랑의 본보기가 아닐까 생각해 본다.
박종범: 부인과 아들 둘이 있는데요. 큰 애는 비엔나대학 건축 공학과 5학년을,
둘째 얘는 런던 정경대 법대 2학년을 각각 마친 후, 작년 10월 같은 날짜에
한국군에 입대하여 현재 한국에서 군 복무를 하고 있습니다. 영주권자들이기에
구태여 한국군에 입대하지 않아도 되는 데, 얘들 스스로 한국군 복무를
희망하더군요. 대견스럽고 자랑스럽지요.
박종범 씨는 재오스트리아 한인연합회 회장으로서 포부도 들려준다.
박종범: 한인연합회에서 진행하는 행사에 많은 교민이 참여하고, 행사가
성공적으로 끝났을 때 제일 보람이 크지요. 또한, 최근 한인문화회관 설립
기금이 지속적으로 늘어나고 있는 것을 보면서 큰 보람과 희망을 가지게
됩니다. 제 임기 내에 한인 문화회관을 꼭 설립하고 재오스트리아 한인
50년 교민 사를 필히 편찬하여 나중에 정말 더 큰 보람을 느끼고 싶습니다.
박종범 씨가 세계한인들에 주는 메시지다. 박 씨는 한국인의 정체성을
확고히
하면서 국제사회에 조화를 이뤄나가자고 강조한다.
박종범: 근래 우리 대한민국의 위상은 국제적으로 참으로 많이 신장
하였습니다. 지난해 어려운 경제 위기를 제일 빨리 극복했고, 지난 60년 동안
해외 원조를 받던 나라에서 이제는 원조하는 세계 유일한 나라가 되었습니다.
올해 11월에는 서울에서 G20 정상회담이 열립니다. 남아공 월드컵에도 16강에
진입하였습니다.
이렇게 고양되고 있는 고국 한국의 발전에 맞추어 우리 750만 해외 한인들 또한
각기 자신을 스스로 높이고 발전시키는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항상 한국인으로서의 정체성을 확고히 하고, 그러면서 동시에 그 국가와 사회에
조화롭게 융합하여 주류 사회에 진출하는 지혜로운 삶이 필요하다고 봅니다.
모두의 성공과 발전, 그리고 행복을 기원합니다. 감사합니다.
세계의 한국인 오늘은 오스트리아에서 빈손으로 사업의 성공을 일군 한인
사업가 ‘영산그룹 박종범 회장의 인생 역정의 삶’의 현장을 찾아가 봤다.
지금까지 세계의 한국인 기획과 진행에 RFA 이현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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