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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의 한국인

지구촌의 한인들(평생 군인으로 살아가는 김봉건 선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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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A 한국문화원과 한인역사박물관이 공동 주관한 ‘각계인사의 6 25전쟁회상 세미나’에서 6.25당시 김봉건 대위가 1950년 10월 19일 평양비행장을 점령하고 태극기를 꽂은 증언을 하고 있다.
RFA PHOTO/이현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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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반도 역사에서 한국전쟁은 가장 비참한 전쟁으로 기록될 것이다. 한국전쟁 당시 육군 대위로 기마부대 특공대를 이끌고 평양 비행장에 태극기를 꽂고, 평양비행장을 점령했던 당시의 김봉건 대위는 지금도 한국전쟁 중 평양 점령을 생생히 기억하고 있다. 올해 87살로 미국 캘리포니아에 거주하며, 현재는 미 국토방위군 지원사령부 31사단장이기도 하다.

자유아시아방송 지구촌의 한인들, 오늘은 평생을 군인으로 살아가는 김봉건 선생 삶의 이야기로 함께한다.

 

김봉건 선생은 공산주의가 싫었단다. 북쪽이 공산화가 되고 지주의 후손으로 가족이 숙청당하는 과정에서 남쪽으로 단신 탈북하게 된다.

 

김봉건: 저는 평안북도 큰 지주의 아들로서 태어나서 1945년 8월 15일 해방이 되자 소련군이 북한을 지배하고 또 거기에 묻어서 들어온 사람이 김일성이라는 이름으로 사실은 김일성이 아닌 김성주 이 사람이 소련군 대위로서 들어와서 북한을 통치하게 됐습니다. 그러자 우리 지주는 모두 숙청을 당하는 과정에서 저는 부득이 고향을 떠나서 이념적으로 공산치하에서는 살 수 없다고 생각해 19살 때 단신으로 고향을 떠나서 남한에 왔습니다.

 

김봉건 선생은 남한에 내려가서 제일 먼저 한 일은 공산주의자들과 싸우는 일을 시작하게 된다.

 

김봉건: 남한에서 서북청년회에 들어가서 가장 앞장서는 즉 투쟁하는 청년단원으로 활약하다가 이것은 내 길이 아니다. 나는 군인이 돼야겠다 해서 육사 7기생으로 들어간 동기가 됐습니다.

 

김봉건 선생이 군에 입대해 소대장으로 있을 때 회고다.

 

김봉건: 백천 온천에 불이 났어요. 인민군이 기습해서 백천 온천에 기름을 부어 불을 났어요. 그러다 청단에 있는 우리 병력을 백천에 옮기라 해서 백천 온천에 와 있으니 한 일주일 후에 인민군이 백천에 침입해 들어 왔습니다. 한 일개 분대 정도 침투했어요. 그래 인민군과 전쟁을 했습니다. 그랬더니 북한군이 증강해서 들어와요. 그래 할 수 없이 병력 요청을 했더니 개성 대대본부에서 1개 소대 병력이 우리한테 증원해 왔어요. 그래 전쟁이 좀 커졌습니다. 그러다 백천 온천에서 증강된 인민군 2개 소대 병력을 다 물리쳤지요. 그 덕분에 625전에 훈장을 하나 받았고 625전에 육군 중위로 특진했습니다.

 

김봉건 선생이 한국전쟁 중 인민군의 기마부대를 습격해 말을 탈취한 이야기 들어본다.

 

김봉건: 인천상륙작전으로 인해서 인민군의 허리가 끊겼지요. 모든 보급선이 끊이고 인민군이 다시 열세에 몰리는 그때에 우리는 다부동에서 우리 1사단은( 저는 그때 중대장으로서) 전쟁에 임했는데 다부동 전투 때 인민군의 기마부대가 다부동에 말이 한 30필 들어와 있었을 때에 (저는 어렸을 때부터 말을 좋아했습니다. 저희 집에 말이 있었기 때문에 말을 좋아해서) 저 말을 탈취해서 우리가 북진할 때에 써먹어야 하겠다고 생각해서 그래 야간에 기마부대를 기습해 말을 탈취했습니다. 수류탄 파편에 부상당하고 해서 쓸만한 말은 11마리의 말로 다부동 전투로부터 그 말을 가지고 북진을 할 때에 백선엽 대장께서 저희를 봤지요. 백선엽 사단장이 이 말을 가지고 우리가 빨리 미 제1 기갑사단 아주 장비가 좋지요. 이런 사단과 경쟁을 도보로서는 힘이 모자라니까? 말을 이용하자는 생각을 해서 저보다 평양에 특공대로 한 번 진격해 볼 방법을 연구하자! 해서 평양 진격을 말 11필을 가지고 진격을 하는데 평양을 목표로 해서 북진하는데.

김봉건 선생은 평양 점령은 1950년 10월 19일이었다고 지금도 생생히 기억한단다.

김봉건: 인천상륙작전이 9월 15일 아닙니까? 9월 15일부터 우리는 다부동에서부터 떠나서 평양 점령이 10월 19일이에요.

 

한국전 당시 김봉건 대위는 평양을 점령하고 백선엽 장군에게 보고한 이야기도 들려준다.

 

김봉건: 저는 말을 가지고 평양을 제일 먼저 점령한 것이 평양 비행장입니다. 평양 비행장에 새벽 4시 45분에 우리 1사단이 제일 먼저 (저는 1사단 11연대 11중대장이었었는데) 말 11필을 이끌고 평양 비행장을 점령한 것이 1950년 10월 19일 4시 45분 평양비행장을 점령하고 거기에 잔적을 소탕하는데 시간이 걸렸어요. 그래서 5시 30분에 평양 점령한 것을 사단장 백선엽 장군에게 보고한 것이 평양점령의 기록입니다.

 

김봉건 대위는 말 11필로 평양점령을 했다고 회고한다.

 

김봉건: 평양에 들어갈 적에 말에게 부담을 주면 말이 피곤하거든요. 그래서 말에 식량 보리, 콩, 겉보리 말의 식량을 말 잔등에다 포대에다 뉘어서 달아매고 그다음에 수류탄을 각자 15발씩 몸에 지니고 올라가면서 조금 위험하다는 곳에는 수류탄을 몇 발씩 던져요. 꽝꽝꽝 던지면 인민군들이 혼비백산 도망가는 거예요. 그래서 평양을 들어가는 데까지 저항을 안 받았습니다. 그래서 평양 점령 하는 데까지 아무런 저항 없이 말 11필이 그대로 들어가서 평양을 점령했습니다.

 

평양을 점령한 김봉건 대위는 마지막 잔군들 소탕했던 이야기다.

 

김봉건: 점령하고 나와보니까? 경락고 부근에서 인민군들의 사격이 들어와요. 그래 가만 보니까? 적이 어디인지가 파악이 돼요. 그래서 김 상사 너는 저쪽 호다. 이 중사 너는 우측에 호이다. 인민군들은 호에 있으니까 우리가 포복해 가는 걸 못 봐요. 그래 우리가 포복해 가서는 수류탄 한 발씩을 호 안에다 집어넣었어요. 호 안에 있던 인민군들이 백기를 드는 거예요. 소리치면서 다 나와라. 너희들 해치지 않는다. 죽이지 않겠다. 이미 우리는 평양을 점령했다. 너희들 전부 백기 들고 나와라! 그래 백기 들고 나왔어요. 그래서 거기 있는 잔군들을 소탕했지요.

 

김봉건 대위는 625전쟁 중에 북한의 잔악상에 대해 들려준다.

 

김봉건: 손들고 나오라 하니까? 백기만 흔들고 나오지 않는 거예요. 그래서 거기서 안 나오면 쏜다. 나오라 하니까? 저는 못 나갑니다 해요. 왜 그러냐? 하니까 인민군이 기관총에다 다리를 철사로 묶어 놨어요. 그래서 못 나오는 거예요. 그래 보니까? 철사로 묶여 있어요. 그래 내가 직접 권총으로 기관총 몸통에 쏴서 그 철사를 끊었어요. 그래서 인민군이 나왔어요. 그만큼 북한은 사람의 목숨이 중하지 않고 그런 참 무자비한 짓을 했지요.

 

김봉건 대위는 평양비행장에 태극기를 꼽던 기억은 지금도 생생하다.

 

김봉건: 인민군들 자기들이 쓰는 국기 게양대가 있더라고요. 그런데 이 국기 게양대의 선을 자랐어 자랐지만 그걸 이어서 태극기를 올리는 데 다 올라가지 않고 반 정도 태극기가 올라갔어요.

 

김봉건 선생은 평생을 군인으로 살고 있다.

 

김봉건: 제가 미국의 그 국토방위군 지원사령부 31사단장으로 임명을 받았습니다. 국토방위군 준장에서 소장으로 진급되어서 현재 있습니다만, 국토방위군 지원사령부는 현역이 아니고 예비역으로서 임무를 하고 있습니다.

 

김봉건 선생은 한국군에게서의 공적을 미국에서 인정받아 미국 군대의 별을 달게 됐다고 자랑한다.

 

김봉건: 저는 제 이념이 공산당이 싫었고 군대 전에도 많이 싸웠고 군 입대 후에도 국가를 위해서 제 목숨을 아끼지 않고 전쟁에 임함으로써 전공이 많습니다. 이 저의 전공을 알린 것은 미 제 5연대에 있던 이재원이라는 친구입니다. 제 친구가 한국군에서 있었던 공적을 미국 재향군인회에 보고했고, 국토방위군 사령관이 인정해서 저를 준장으로 진급시켜서 미국에서 별을 달게 됐지요. 미국 군대의 별을 달았어요. 그래서 지금은 한 계급 진급이 돼서 소장으로 있습니다.

 

김봉건 선생은 전 세계 한인들에게 북한이 더이상 위협을 못 하도록 마음을 합하자고 강조한다.

 

김봉건: 지금 북한은 김정은이 3대 세습을 이어받으면서 김일성 김정일의 유훈을 받아서 그 유훈 정치로서 그래서 남한을 소위 핵무기를 앞세워 접수하겠다는 야욕을 가지고 있습니다. 이것은 한민족을 말살시킨다는 것 아닙니까? 한민족을 말살시킨다는 김정은을 우리가 그대로 둘 수 없지요. 때문에 우리는 마음과 몸을 던져서 김정은이의 핵전쟁위협을 막아 내야 합니다.

 

김봉건 선생은 자유대한 지키기 국민운동본부 미 서부지부를 회장을 맡고 있다. 회원 350여 명은 일치단결하여 통일에 이바지하는 것이란다.

 

김봉건: 저희 목표는 북한을 지원하는 친북세력을 없애고 그래서 우리의 일치단결된 힘으로 통일에 이바지하는 힘을 모으는 것이 우리 자유대한지키기 국민운동본부의 사명이 여기에 있는 겁니다.

 

자유아시아방송 지구촌의 한인들 오늘은 평생을 군인으로 살아가는 김봉건 선생 삶의 이야기로 함께했다. 지금까지 기획과 진행에 RFA 이현기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