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탈북인 마영애 씨가 뉴욕 북한유엔대표부 앞에서 시위를 하고 있다.
탈북인 마영애 씨가 뉴욕 북한유엔대표부 앞에서 시위를 하고 있다.
사진 제공: 마영애

 

미국에서 탈북인으로 인권운동을 펼치고 있는 마영애 씨는 ‘미국 대학생으로 북한 관광 갔다 결국 사망하는 참사는 정말 말로 표현할 수 없다’면서 ‘북한에서 웜비오 씨는 전기고문을 당했기 때문에 결과적으로 사망하게 됐다’고 자유아시아방송과 회견에서 밝혔습니다. 김정은의 지시를 받는 국가안전보위부는 정신적 타격을 줄 수 있는 ‘물고문, 전기고문’을 하는데, 신체 외부에 상처가 나지 않게 철저한 교육을 실시 한다고 밝혔습니다.

목요대담 오늘은 국제탈북민 미주 대표 마영애 씨와 오토 웜비오 씨의 사망에 대한 이야기와 북한을 방문하는 외국인들에 대한 이야기로 함께 합니다.

북한에 언제 외국인들이 들어옵니까?

: 제가 탈북하기 전에도 해외에서 들어오는 여행객들이 있어요. 비록 북한이란 나라도 4월이나 6월달이 되면, 2월 16일에는 김정일이 생일이라고 해서 해외서 관광객들이 들어오고, 4월달에는 특히 김일성이 살았을 때는 4월의 봄 축전이라고 해서, 한마디로 말해서 음악회지요. 각 나라의 연예인(음악인) 들, 솔직히 자유나라에 사는 사람들은, (북한처럼. 눈을 갖고도 보지 말아야 되고, 귀를 갖고도 듣지 말고, 입은 갖고는 말을 하지 말아야 되는, 그런 억류된 독재적인 이런 틀 안에서 살지 않았기 때문에) 자유스럽게 말할 수 있잖습니까?

이렇게 행사에 초대된 사람들 자유스럽게 행동할 수 있습니까?

: 제가 평양에 있을 때 미국에서 4월의 봄 축전에 음악인들이 평양을 방문해서 여러 가지 공연도하고, 다른 나라에서 온 연예인들과 함께 음악회를 하면서 마지막에는 종합공연도 하고 이렇습니다. 그런데 이럴 때도 그들이 자유롭게 말을 할 수 없고, 자유로운 행동도 할 수 없고, 딱 억류된, 버스면 버스에 올라서 자유로운 이야기를 못하고, 또 내려서 어떤 공연장으로 가도, 거기서는 어떤 제한된 이야기 만 해야 되는, 이런 것들을 보위부가 적극적으로 그들을 감시하고 만약에 그들 중에서 북한이라는 나라나 생활환경에 대해 비난 했을 때는 그들을 잡아다가 조사하는 이런 일들이 있었어요.

외국인들 어떤 이유로 북한에 억류하고 있습니까?

: 북한을 방문하는 여행객 들이나 무역일꾼들이 의료품이나 그리고 식량이나 이런 것들을 가지고 들어와 지원하고, 합작 회사도 만들고 회사를 꾸려 놓으면 나중에는 그 사람들 꼭 남한의 안기부 올가미에 걸어서 많은 사람들이 체포 당하는 이런 것들을 저는 직접 목격 하고 온 사람이고, 그런 사건에 연류 되었던 적도 있습니다.

오토 웜비오 씨에 대한 이야기 해 주시지요.

: 작년에 오하이오 주에 있는 대학생 오토 웜비오가 북한에 관광을 가지 않았습니까 21살의 젊은 청년이 얼마나 궁금한 게 많겠어요. 웜비오 청년도 진취성이 강하고 궁금증이 많으니까 관광으로 북한을 방문했는데, 북한에서 일어났던 웜비오 사건 두고 그것은 굉장히 새로운 일도 아니고 놀랍지도 않았습니다. 저는 북한에 있을 때나, 지금이나 북한 내에서 자주 일어나는 사건이거든요.

북한에서 외국인들을 붙잡고 정치화 한다고요.

: 외국인들이 북한에서 체포 되는 거는 정말 어려운 문제가 아닙니다. 자유국가에서 살던 사람들이 말도 막 하고, 어려우면 어렵다고, 이 나라 대통령이 왜 이래! 이거 말 안 할 수가 있겠습니까? 그런데 이번 오토 웜비어 같은 경우에는 김정은 사진이 있는 신문에다가 신발을 쌌다. 정치적인 선전구호를 훔쳤다. 이런 이야기를 하는데 사실 이거는요. 정치적 모함이라고 생각합니다. 북한의 김정은의 지시에 따르는 국가안전보위부가 직접적으로 오토 웜비어 청년을 이용해서 국제적인 이슈화를 시키려고 그 사건을 만들었다고 저는 생각을 했어요.

북한에선 어떤 고문이 이뤄지고 있습니까?

: 국가보위부가 하는 그런 고문들이 여러 가지가 있지요. 정신적으로 타격을 줄 수 있는 물고문, 전기고문, 그건 뭐 외각적으로 나타나지 않지 않습니까? 자기 나라로 돌아 간다고 해도, 그 때문에 발각되지 않게, 몸에다가 상처를 준다던가, 흉터를 남겨서 국제적으로 인권의 국가로 다시 전략되는 것들을 생각해, 철저히 교육 시키거든요. 그러기 때문에 오토 웜비오 같은 경우에 전기 고문을 많이 했다고 저는 생각을 합니다. 일 전에도 그런 고문 많았고 또 물 고문. 지금 21세기에 과연 북한이라는 나라가 또 유엔에 가입돼 있는 조선민주주의 인민 공화국이 외국에서 들어 가는 사람들을 이렇게 정신적으로 바보로 만들고, 정치적으로 젊은 청년들을 이용해 자기들이 얻고 저 하는, 과연 자기들이 얻고 저 하는 것은 무엇일까요. 대한민국하고는 대화를 안 하려고 하는 도도한 김정은의 이런 태도를 봤을 때, 미국 하고 독대하겠다는 겁니다. 미국과 독대해서 핵무기나 그런 국가적인 이득권을 미국으로부터 인정을 받으려 하는 겁니다.

북한유엔대표부 앞에서 시위도 하셨다고요.

: 해외에서 들어간, 특히 미국에서 들어가는 선교사들이나, 기자들 이런 사람들을 정치적인 희생양으로 이용하는 그리고 그들의 생명을 정말 목 조르기를 해서 결국 이번에 웜비오가 죽임을 당하는, 저는 그래서 이번에 유엔 북한대표부 앞에 가서요. 오토 웜비오의 죽음을 놓고 몸부림을 쳤는데요. 많은 미국인들이 제 옆에 와서 같이 지지를 해 줬고, 정말 처음에 제가 누군지도 모르지요. 그냥 코리안 엄지 손가락을 켜 들면서 네가 정말 대단한 여자다. 네가 정말 대단한 인물이라고 이러는데 정말 그때 부끄럽고 제 눈에서 눈물이 흘렀어요. 너무나도 부끄럽고요. 저는요. 그들 앞에 죄인이었습니다. 왜, 저는 죄가 있더라고요. 그 죄가 뭐겠습니까 북한에서 태아 난 것이 죄더라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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탈북인 마영애 씨가 뉴욕 북한유엔대표부 앞에서 시위를 하고 있다. 사진 제공: 마영애

 

북한유엔대표부 앞에서 시위 때 무엇을 요구하십니까?

: 시도 때도 없이 북한대표부 앞에 가서 시위를 하고 북한의 인권문제, 핵을 멈춰라! 인권탄압을 그만 둬라 먹여라! 탈북자들을 공개처형 하지 마라! 요구는 그거입니다. 그리고 솔직히 북한에서 배골타 온 사람 아니잖습니까? 저는 그 죄를 씻기 위해서라도 저는 정말 북한의 동포들의 인권과 탈출해 나온 탈북자들의 인권, 중국과 동남아에 떠도는 탈북민들, 쫓겨 다니는 심각한 모습들, 저도 물론 그 속에 있었던 한 사람이었지만요. 제가 미국에 와서 북한대표부를 시도 때도 없이 찾아가서 그 문짝을 두드리고 그 앞에서 제가 고성을 지르는 이유는 북한의 2000만도 안 되는 동포들에게 자유를 주고 싶고, 그들의 인권을 지켜주고 싶고, 정말 그들이 배불리 먹을 수 있는 이런 것 때문에 저는 북한대표부 앞에 가서 시위를 할 때마다 눈물을 머금고 시위를 합니다.

목요대담 오늘은 국제탈북민 미주대표 마영애 씨와 오토 웜비오 씨의 사망에 대한 이야기와 북한을 방문하는 외국인들에 대한 이야기로 함께 했습니다. 지금까지 인터뷰에 RFA 이현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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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영애 씨(오른쪽에서 세번째)가 뉴욕에서 북한 5차 핵실험을 규탄하는 시위를 하고 있다.
마영애 씨(오른쪽에서 세번째)가 뉴욕에서 북한 5차 핵실험을 규탄하는 시위를 하고 있다.
사진 제공: 마영애 씨

 

탈북인으로 미국에서 북한인권운동을 펼치고 있는 마영애 씨는 북한이라는 나라는 너무 비참하고 서민들의 생활은 그야말로 말로 표현하기 어렵다고 말하고, 전기가 없어서 기차가 보름씩 출발하지 못 하는 이런 상황에서도 엄청난 무기를 만들어 대한민국이나 미국을 향해서 대륙간탄도 미사일을 실험하는 김정은이 용서가 안 된다고 자유아시아방송과의 회견에서 밝혔습니다.

그는 북한이 핵과 미사일로 국제사회를 위협하고 있지 않느냐면서 북한에서 태어난 사람으로서 국제사회 앞에, 그리고 오토 웜비오 사건을 보면서 북한에서 태를 묻고 출생한 것이 혐오스럽게 느껴진다고 말했습니다.

 

목요대담 오늘은 탈북인으로 미국에서 북한인권을 위해 활동하는 마영애 씨를 만나봅니다.

 

현재 뉴욕에서 북한인권 활동을 펼치고 계시는 데 세계인들은 ‘북한의 현실’을 어떻게 보고 있습니까?

 

: 미 주류 사회 사람들과 대화도 많이 나눴고, 그들의 북한에 대한 이야기는 이해를 잘 못합니다. 왜냐면 실질적으로 사람이 살아가는 그런 나라에서 사람의 인권을 짓밟고, 그 나라(북한)에 감옥이 모자라서 감옥을 더 지어야 되는 이런 어려운 상황, 그래서 도대체 이해를 할 수 없는 그리고 처형하는 문제를 볼 때 자유사회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의 머리 속에는 그것이 도대체 이해가 될 수 없다는 사실을 저는 알게 됐습니다.

 

그 동안 미국 의회나 유엔에서도 증언하신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증언하면서 느낀 점 있으면 말해 주시죠.

 

: 제가 미국에 와 살면서 미국 국회에서도 증언했었고, 그리고 뉴욕에 있는 유엔에서도 두 번이나 유엔총회에서 국제적인 차원에서 북한의 문제를 논의하는 그런 자리에도 제가 갔었습니다. 그런데 국제사회가 북한에 대해 바라보는 시각은 항상 북한이 인권을 유린하고 수많은 죄 없는 사람을 정치범 수용소에 가둬 넣고, 그들의 인권을 짓밟고요. 그들(인민)은 사람인지 짐승인지 구별 안 하는…..북한이라는 나라가 그런 일을 강행하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북한 관리들도 유엔 총회에 참가하지요.

 

: 유엔에서는 해마다 9월부터 12월 사이에는 각 나라가 자기들 나라에서 일어나는 문제들을 유엔에 들고 와서 상의 하고 방안 책을 찾고 하는데, 북한의 관리들은 유엔총회에 참가해서 도대체 납득이 안 되는 이야기 만 하는 겁니다.

 

미국에서도 탈북인들이 증언자로 활동하고 있지요.

 

: 미국에도 많은 탈북인들이 정착해 있고. 그들이 다 북한이라는 나라에서 살다가 그 땅을 되돌아 보지 않겠다고 해 탈북한 난민들이거든요. 이런 사실들을 국제사회가 지켜보고, 이들의 증언을 들어보고, 과연 이런 나라가 있을 까? 그렇게 못 먹고, 못 살고, 어렵고, 고통을 당하는 그런 땅에서 독재자는 엄청난 미사일을 발사하고 있지 않습니까

 

북한을 탈출한 이후 북한이 긍정적인 면에서 변한 것이 있습니까?

 

: 솔직히 말씀 드린다면은요. 북한 동포들, 제가 있을 때 2300만에서 많이 굶어 죽고 2000만도 안 되는 이런 상황일 때 수많은 사람들이 그 땅을 버리고, 나서 살던 땅을 뒤로 하고 다른 나라로 탈출하는 그런 당시였거든요. 그런데 그때나 지금이나 달라진 게 별반 없습니다.

 

북한에 계실 때 굶어 죽는 사람들을 직접 보셨는지요.

 

: 그때 당시에는 배급이 중단이 되고 시장경제를 돌지 못하게 하니까? 자본주의 사회생활 양식 이라고 했어요. 시장 운영을 잘 못하게 하니까 그때 수많은 사람들이 굶어 죽었고, 정말 아사 되었던 그 모습들, 저는 지금 생각하면은요. 심장이 떨린다고 해야 맞을 것 같은데 저는 평양이었지만, 평양에 살면서도 수많은 사람들, 특히 어린 아이들, 고령의 노인들이 굶어 돌아가시는 모습을 직접 보고 온 사람입니다.

 

북한에서 김일성이 사망한 후 김정일 시기에는 외교활동을 많이 하지 않아 어려웠다고요.

 

: 2000년도 초까지는요. 즉 1994년 김일성 사망한 이후에 북한에 엄청난 기아가 발생했죠. 일단 자연재해로 인해서 북한의 식량난으로, 공급이 잘 안되고 그리고 김일성이 살았을 때는 외교활동으로 해서 다른 나라들에서 식량도 들어오고, 베트남에서는 알랑미 쌀이 들어오고, 중국과 동남아 일원에서는 흰쌀 내지는 옥수수가 들어와서 평양사람들도 근근이 먹고 살았는데, 김일성이 죽고 김정일이 통치하며 외교활동을 많이 안 하는 사람이기 때문에 다른 국가와의 거래를 잘못 하는 거예요. 그리고 김정일이 무기 생산에 힘을 들였지요.

 

북한에 살 때 식량 사정, 전기 공급 등 불편했던 이야기도 해 주세요.

 

: 사실 이 방송을 통해서 한 가지 공개를 하고 싶은 것은, 저의 남편(북한) 쪽에 삼촌들이 다 군수품 공장의 연구사 들이고, 그런 기관에서 근무를 했어요. 그런데 그들의 얘기를 들어보면요. 자강도 강계 이런 곳은 갱도고, 군수물자를 생산 하는 지하 갱도들로 되어 있거든요. 그런데 그분들이 오셔서 말씀 하시는 것 보면은요. 눈이 딱 깜 깁니다.  무기를 생산하는 곳으로 설탕이 얼마나 들어가며, 쌀이 얼마나 들어가고 기름이 얼마나 들어 가는지, 이런 것들이 얼마나 군수품에 돌려지는지, 그때 당시에는 평양 시민들도 공급이 안 돼가지고 제일 처음 북한에서 식량난이 고통을 당했던 것이 평양시 사람들 이거든요. 어디가 훔쳐 먹을 데도 없고 콘크리트 바닥에 심어 먹을 자리도 없고, 그러니까 국가에서 뭘 안주면, 그대로 앉아 꼼짝없이 굶어 죽는 거에요. 평양도 이런 상황인데 지방 같은 경우에 더 한심하겠지요. 그렇지만, 지방 같은 경우에는 어디 가서 콩을 훔쳐 먹을 데도 있고, 익지 않은 벼를 훔쳐다가 절구에도 찧어서 먹고 이렇게 할 수도 있다고, 제일 어려움을 겪은 것이 사실은 평양입니다. 그리고 지방의 경우에는 국가적으로 공급이 돼야 될 식량이 공급 안 되니까 정말 온 국가가 도둑질을 해야 되고, 정말 그거 안 하면 죽으니까요. 그때로부터 탈북의 대열이 늘어 났다고 봅니다. 그리고 평양은 그래도 사람들이 뭐 천국이라고 이렇게 얘기한 사람들도 많지만, 사실 평양에 전기가 모든 일을 하지 않습니까? 전기가 안 들어와 냉장고를 쓸 수도 없고요. 평양도 똑 같았습니다. 겨울 같을 때는 20층 30층 40층 그런 아파트들이 난방이 보장 안되니까 변기들이 다 얼어 붙어서요. 정말 비참한 평양시민들의 모습이 잊혀지지 않고 저도 거기에 한 사람이었지만, 정말 지금 이렇게 뒤돌아 보면은요. 지금도 가슴이 저려 지도록 가슴이 아파요.

 

북한 동포들을 위해 인권활동가로 활동하고 계시는 데

 

: 북한에서 저를 살 생부 명단에도 올려 놓는 상황까지 왔는데요, 제가 바라고 있는 것은 어느 한 사람의 희생이 없이는 무엇을 이뤄낼 수 없는 그런 것들이 많지 않습니까?

 

목요대담, 오늘은 탈북인으로 미국에서 북한인권을 위해 활동하는 마영애 씨를 만나봤습니다. 지금까지 인터뷰에 RFA 이현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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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양 신흥단고기집에서 판매하고 있는 단고기장(보신탕)과 개고기로 만든 수육을 평양주민들이 먹고 있는 모습.
평양 신흥단고기집에서 판매하고 있는 단고기장(보신탕)과 개고기로 만든 수육을 평양주민들이 먹고 있는 모습.
사진-연합뉴스 제공

 

여러분 안녕하십니까? 통일문화산책 진행에 이현기입니다.

우리 조상들이 남겨준 전통문화가 광복 이후 남과 북으로 나뉘어져 지금도 생성돼 오는 서울문화 평양문화의 단면들을 살펴봅니다.

 

오늘은 말복이지요? 초복, 중복 지나고 말복이니까 여름더위 다 지난듯하지만 아직은 아닙니다. 통일문화산책 오늘도 북한문화평론가 임채욱 선생과 함께 복날의 특별한 풍경이 있는지 알아봅니다.

 

먼저 복날의 의미를 좀 말씀해주시죠.

 

임채욱 선생: 복은 초복, 중복, 말복 해서 삼복이라 하는데 여름철 가장 더울 때를 나타냅니다. 그래서 삼복더위라고 합니다만 이때 복은 한자로는 엎드릴 복(伏)자를 씁니다. 쇠도 더운 불기운에 눌려서 꼼짝 못하고 엎드린다는 것을 표현하기 위해 엎드릴 복자를 쓴 것입니다. 여기서 쇠가 왜 나오느냐 하면 초복이 하지가 지나고 세 번 째 맞는 경일(庚日)이고, 중복은 그로부터 또 열흘 지난 경일이고 말복은 입추가 지난 후 첫 번째 경일이기 때문에 경자와 관계되기 때문입니다. 이 경(庚)자는 우리가 갑, 을, 병, 정, 무, 기, 경, 신, 임, 계라고 하는 10간(干)에서 따온 것이고요, 이때 경은 쇠를 뜻하는 글자지요. 쇠는 모든 물질에 이기는 것이지만 불에는 지지요. 그래서 쇠 경자가 든 날이지만 불더위한테는 꼼짝 못한다고 엎드릴 복자를 쓰게 된 것입니다. 또 이런 설도 있습니다. 삼복더위에는 개구리도 견디기 어려워 습한 땅에 배를 붙이고 엎드려 있다고 엎드릴 복자를 쓴다는 것이지요.

 

그럼 복날의 풍경이랄까, 세시풍속이 있는지 알아보지요.

 

임채욱 선생: 복은 24절기와 관계되는 날자가 아닙니다. 24절기는 양력기준으로 입춘이다, 입하다, 입추다 하는 것인데 복은 음력 기준으로 더울 때를 나타내려고 만들어 낸 것이라서 태양 기준인 24절기와는 관계가 없습니다. 다만 기준 점을 하지 지나서 열흘, 입추 지나서 첫 번 째 경일로 정하였으니 가장 무더울 때를 비교적 정확하게 맞추고 있지요. 복날은 절기를 맞듯이 특별한 놀이풍속이나 행사는 없지만 모래찜질을 한다든가, 산간계곡에 들어가서 발을 씻는 탁족을 많이 했다는 기록은 있지요. 다만 더위 때문에 생겨난 것이므로 이 날 따라 먹는 음식이 있지요. 주로 몸을 북돋우는 보신음식인데, 예로부터 개를 잡아서 끓이는 개장국, 닭에 인삼을 넣어서 백숙으로 만든 계삼탕을 많이 해먹었지요. 드물게는 팥죽을 쒀먹기도 했습니다. 팥죽을 먹으면 더위를 피하고 병에 걸리지 않는다는 속설도 있습니다. 옛 시에 “무더위에 먹는 죽이 부자 집 제호탕 보다야 못하겠지만 그래도 더위 씻는 방책이라 하겠네” 라고도 읊었습니다. 제호탕은 매실, 사인, 백단향 등을 넣은 청량음료를 말하지요. 오늘날에도 이런 음식은 남북한에서 다 먹고 있다고 봐야겠지요. 물론 이때 많이 나는 제철 과일인 수박, 참외도 복날 빠지지 않고 찾아 먹었지요.

 

실제로 남북한에서 이런 모습을 볼 수 있습니까?

 

임채욱 선생: 북한달력에는 복날이 표시 안 된 것이 많습니다. 표시된 것도 달력 하단에 복날 표시를 하고 있습니다. 예로부터 전통적으로 북한지방에서 먹었던 삼복음식은 가장 보편적인 것이 개고기나 소고기를 푹무르게 끓인 고기국입니다. 이런 보신탕 외에도 미역국에 호박과 고추장을 넣고 끓이거나 미역국에 밀가루를 넣어 수제비국을 만들어 먹었다고 합니다. 이열치열하는 지혜를 엿볼 수 있지요. 평양지방에는 냉국이나 시원하게 콩국을 만들어 먹기도 했습니다. 오늘날 북한에서 먹는 삼복음식은 이보다 아주 종류가 많습니다. ‘민족명절료리’라는 자료를 보면 이런 것들입니다. 토끼고기탕, 단고기국, 소고기 매운탕, 소고기불고기, 삼계탕, 햇닭찜, 햇닭고기죽, 뱀장어탕, 뱀장어구이, 오복탕, 상추쌈, 갓잎쌈, 콩잎쌈, 피마주잎쌈, 파국, 풋고추산적, 세치네장, 섭조개탕, 어죽, 팥죽, 오이깍두기, 벼락김치, 녹두묵물. 단고기국은 남쪽에서 말하는 개장국이지요. 개고기를 단고기라고 하는 것은 씹으면 씹을수록 단맛이 난다고 단고기라고 하지요. 벼락김치는 겉절이를 말하는 것 같습니다. 그러니까 전통적으로 먹어왔던 것에서 오늘날 먹는 음식을 추가한 것이겠지요. 탈북자 말에 의하면 북한에서도 복날 음식을 찾아 먹는 집은 있지만 극소수이고 가족단위로 복날외식을 하는 경우도 도시에선 더러 볼 수 있지만 지방에는 거의 없다고 합니다. 다만 직장단위로 복달임을 하는 풍경은 많이 볼 수 있다는 것입니다.

 

한국에서 복날은 어떤지 한 번 보지요.

 

임채욱 선생: 1960년대까지는 복날 기사가 신문에 나기도 했지만 이젠 복날 기사는 없지요. 특별한 풍경을 볼 수 없다는 것이겠지요. 요즘 보면 집에서 삼복음식을 절식으로 해먹기보다 외식으로 때우지요. 아마 빠지는 집이 없이 외식을 즐기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음식점에서 개고기, 즉 구탕이나 삶은 개고기 요리, 닭고기 삼계탕을 보신탕으로 먹습니다. 복날을 전후해서는 닭이 동나고 개가 많이 잡힌다는 통계가 있지요. 비록 10 여 년 전보다는 개고기 수요가 좀 줄어들고 있다는 현상은 있습니다만 여전히 삼복더위 절식을 찾아먹고 있다고 해도 될 것 같습니다. 결국 삼복음식으로 북한에선 개고기, 남한에선 닭고기를 선호한다고 보면 되겠습니다. 북한에선 개고기를 얼마나 높이 치는지 “오뉴월 단고기 국물은 발등에 떨어져도 약이 된다”라고 합니다.

 

복날은 절식을 찾아 먹는 것 외에는 특별한 풍속이 없다고 알면 되겠네요.

 

임채욱 선생: 지방에 따라 복날 이야기가 전해지는 곳도 있습니다. 가령 “복날 비가 오면 보은 큰 애기가 운다”는 말이 있습니다. 충청북도 보은은 대추가 많이 나는 고장인데, 대추나무는 복날마다 꽃이 핀다고 합니다. 그러니 복날에는 비가 오지 않아야 하는데 비가 오면 보은 처녀는 시집 갈 혼수준비가 어려워진다는 것이지요. 앞에서 복날 발을 씻는 탁족을 한다고 했는데 복날에는 목욕을 하지 않는다고 합니다. 복날 목욕을 하면 몸이 여윈다고 하지요. 그래서 더워도 발 씻는 것으로 끝낸다고도 합니다. 혹시 모르고 초복 날 목욕을 했으면 중복, 말복날도 목욕을 해야 하는 것으로 돼 있습니다.

 

통일문화산책 함께 해주신 여러분 감사합니다. 지금까지 기획과 진행에 RFA 이현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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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 중구가 제72주년 광복절을 기념해 광복로를 태극기 거리로 꾸몄다. 중구는 다음 달 1일까지 태극기 1천여기를 광복로 일대에 전시할 예정이다.
부산 중구가 제72주년 광복절을 기념해 광복로를 태극기 거리로 꾸몄다. 중구는 다음 달 1일까지 태극기 1천여기를 광복로 일대에 전시할 예정이다.
사진-연합뉴스 제공

 

여러분 안녕하십니까? 통일문화산책 진행에 이현기입니다.

 

우리 조상들이 남겨준 전통문화가 광복 이후 남과 북으로 나뉘어져 지금도 생성돼 오는 서울문화 평양문화의 단면들을 살펴봅니다.

 

8월입니다. 8월은 우리 민족이 잊을 수 없는 광복의 달이고 해방의 달입니다. 광복도 있고 해방도 있는 것이 아니라 1945년 8월 15일 이 날을 광복의 날이라고도 하고 해방의 날이라고도 하지요. 통일문화산책 오늘도 북한문화평론가 임채욱 선생과 함께 남북한에서의 ‘광복, 해방의 달’의 의미 그리고 남한과 북한의 시대적 변천사에 대해 알아보겠습니다.

 

먼저 광복과 해방 사이에 차이가 있을까요?

 

임채욱 선생: 의미상 차이가 있지요. 광복은 빼앗긴 주권을 도로 찾았다는 의미가 있다면 해방은 외세의 구속으로부터 벗어났다고 하는 의미가 강하지요. 그래서 광복(Independence)에는 우리민족이 항거를 하고 투쟁을 했다는 것이 숨어있는데, 해방(Liberation)에는 외세의 힘으로 풀려나고 벗어났다는 의미가 느껴지는 편이지요.

 

그럼 어느 것을 쓰는 것이 맞는 것인지요?

 

임채욱 선생: 주권의 회복이란 뜻에서 보면 38선을 경계로 미국과 소련이 3년간 군정을 편 다음 새 정권을 세운 날이 진정한 광복의 날이겠지요. 하지만 우리 민족은 상해 임시정부를 중심으로 줄기차게 독립항쟁을 해왔기에 그것이 1945년 8월 광복을 가져왔다고 볼 수 있습니다. 따라서 해방의 의미보다는 광복의 의미가 더 크지요. 따라서 광복의 날이라고 부르는 것이 더 적절하다고 하겠습니다.

 

그런데 8월 15일을 남쪽에서는 광복절이라 하고 북쪽에서는 해방기념일이라고 하잖습니까?

 

임채욱 선생: 상해임정, 다시 말해서 대한민국 임시정부 요인들 대부분은 수도가 있던 남쪽으로 옵니다. 임정요인들이 풍찬노숙 하면서 자나 깨나 바란 것이 광복이었지요. 광복을 외치면서 광복군을 조직해서 훈련하고 광복이란 이름의 단체들을 지원합니다. 그래서 남쪽에서는 광복이란 개념이 풍미합니다. 그런데 이때도 좌익계열 사람들은 해방이란 이름을 선호해서 해방신문, 해방일보 등 해방이란 이름의 단체를 많이 만듭니다. 마찬가지로 북쪽에서도 해방이란 이름의 기념일, 단체를 선호합니다. 그런데 북한에서도 2000년대에 들어서면서 해방기념일이라고도 하고 조국광복의 날이라고도 합니다.

 

기념일 명칭문제는 이쯤 해두고 이번에는 그날 광복으로부터 올해가 72년 되는 해니까 많은 날들이 흘렀습니다. 삶의 외형도 많이 변하고 의식도 많이 바뀌었습니다. 그런 모습을 한 번 일별해보면 어떨까요?

 

임채욱 선생: 그러지요. 하나의 사람집단은 민족을 이뤄서 강역을 차지하고 역사를 만들어갑니다. 그런 바탕 안에서 자연을 이용해서 산업을 일으키고 의식주생활을 영위합니다. 또한 그 민족구성원들은 나라를 만들고 사회를 형성하면서 민족문화를 창조합니다. 남북한의 우리민족도 광복되던 날로부터 70년이 넘게 이렇게 살아오고 있습니다. 물론 그 중간에 동족상잔의 전쟁도 했습니다.

 

네. 민족, 강역, 역사 순으로 그 변화해온 모습을 한 번 훑어보도록 하지요.

 

임채욱 선생: 광복이후 38선 남쪽에서는 민족을 찾는 사람들이 민주주의 나라를 세운다고 했고 물론 이를 방해하는 좌익활동가들이 있었지만 결국 실패하고 말지요. 북쪽에서는 계급이 민족보다 더 우선해야 한다는 사람들이 사회주의, 공산주의 나라를 만들려고 했지요. 그래서 이 땅에는 민족론자와 계급론자가 대립하는 양상을 띄었지요. 계급론자들은 프로레타리아 계급이 지배하는 사회, 나중에는 나라도 없어지는 그런 사회를 꿈꾸는 사람들이었지요. 그걸 북쪽과 남쪽에서 다 실현하려고 날뛰었지요. 그런데 지금은 놀랍게도 남쪽보다 북쪽에서 민족을 더 찾는 것처럼 보입니다. 김일성 때문입니다.

 

무슨 일이 있었습니까?

 

임채욱 선생: 김일성은 1991년 8월 어느 날 느닷없이 자기는 공산주의자인 동시에 민족주의자이고 국제주의자라고 할 수 있다고 말합니다. 왜 그런 말을 해야 했을까요? 아시다시피 1990년 대 초부터 동부유럽이 해체되면서 소련이 무너지고 사회주의 권 전체의 좌절이 시작됩니다. 이때부터 북한은 재빨리 ‘우리식 사회주의’를 내세우면서 ‘조선민족제일주의’를 강조합니다. 그렇지만 아들 김정일 선대통치자는 공산주의자들은 민족주의자가 될 수 없다고 말합니다. 약간 상치되는데 김정일 말이 진심일 것으로 보입니다.

 

그럼 북한이 보는 민족은 어떤 것입니까?

 

임채욱 선생: 남쪽에 사는 동포는 피는 같지만 자본주의 사회에 사는 부르죠아 민족이고 북쪽 사람은 공산주의를 지향하는 프로레타리아 민족이라고 보지요. 이렇게 다른 성격의 민족을 하나로 만들려고, 즉 부르죠아 민족을 프로레타리아 민족으로 만드는 것이 ‘남조선혁명’이지요.

 

남쪽에서는 민족에 대한 관점이 어떻습니까?

 

임채욱 선생: 남쪽에선 좌파활동가들이 북한의 민족강조 주장에 호응해서 외세배격을 외치는데, 오히려 우파진영에서는 탈 민족주의 경향도 나타내고 있습니다. 개인의 행복이 민족문제보다 더 중요하다고 보는 사람도 있지요. 하지만 다른 나라와 달리 단일민족 전통이 강한 우리나라에서는 결코 민족을 떠나서는 어떤 정책도 의미가 없을 것입니다.

 

결국 민족을 찾을 수밖에 없다는 것이군요

 

임채욱 선생: 여기에서 이런 생각도 해봅니다. 북한동포들은 분명 혈통을 같이하는 민족인데도 ‘주체적 민족’을 강조하니까 같은 민족이 아닌 것처럼 되지요. 그래서 남북한 동포들은 서로를 같은 민족이라고 하지 말고 통일될 때까지는 정치적 개념인 민족보다 인류학적 개념인 동족이라고만 하면 어떨까 싶군요.

 

이번에는 우리 민족의 삶의 터전인 강역(疆域)에 대한 인식을 말씀해주시죠.

 

임채욱 선생: 영토의식이라고 할 수 있겠는데요, 남쪽 대한민국 헌법에는 한반도 전체와 그 부속 섬들을 영토로 규정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북한지역은 백두산민족 또는 김일성민족의 김씨 집안이 다스리고 있어서 대한민국의 주권이 미치지 못하지요. 그 바람에 백두산 천지가 반으로 쪼개지고 백두산 봉우리들이 나눠지는데도 남쪽에서는 모르는 일이 될 수밖에 없었지요. 그뿐이 아니지요. 역사적으로 우리 선조들의 강역이였던 백두산 너머 만주 땅을 향한 아쉬움과 상실감도 있지요. 그래서 이런 시를 읊게 합니다.

백두산 너머 일만의 터전을 잃고/ 오늘도 지도 조각만 들여다보면/

통분한 생각, 가슴속에 불이 붙는데/ 줄어든 북한 땅마저 어둠 속에 던져두고/

겯고 틀고 헐떡이며 살아야 하나! (이은상)

 

백두산과 독도 지키기가 우리 강역에 대한 영토의식을 상징적으로 말해주고 있습니다. 그럼 이번에는 분단의 역사를 둔 관점을 말씀해주시죠.

 

임채욱 선생: 남쪽의 대통령이 북한이 핵을 폐기하면 대동강의 기적을 이루도록 돕겠다고 했습니다. 거짓말은 아닙니다. 그렇게만 된다면 정말 대동강을 끼고 있는 평양은 대동강의 기적을 이루고 나아가서 허균이가 지은 소설 <홍길동 전>에서 꿈꾸는 대동사회(大同社會)의 이상을 실현할 수 있을 것 아닌가 생각합니다.

 

대동사회는 어떤 것입니까? 그리고 북한은 대동강의 기적을 이룰 수 있습니까?

 

임채욱 선생: 대동사회는 공자가 말했다고 하죠. 능력 있는 사람은 언제나 쓰임이 있고 젊은이들이 일을 할 수 있고 노인은 자기 생을 편안하게 끝낼 수 있으며, 병자나 불쌍한 사람은 부양되는 세상이 바로 대동사회라는 거죠. 허균은 그의 소설에서 대동사회가 실현되는 율도국을 그리고 있지요. 허균의 소설뿐이 아니고 동양사회에선 이런 유토피아를 그린 글들이 많이 나타났지요. 그런데 북한이 대동사회를 만든다면 아주 좋은 일이지요. 그러자면 조건이 있습니다. 김씨 왕조에서 벗어나서 민주주의 국가가 돼야 하는 것입니다. 지금 북한은 말은 사회주의 국가라면서도 김일성과 김정일의 사상과 영도를 구현한 나라가 됐다고 하지요. 헌법도 명칭만 사회주의 헌법이지 실제 김일성-김정일 헌법이라 봐야 하지요. 혁명과 건설을 한다면서 혁명전적지와 사적지만 110개를 조성하고 혁명박물관, 혁명사적관 88개가 만들어 졌고 혁명사적 기념비는 수 천 개도 더 되게 만들어 진 역사를 쓰고 있습니다.

 

통일문화산책 함께 해주신 여러분 감사합니다. 지금까지 기획과 진행에 RFA 이현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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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아시아방송을 방문한 강철호 목사, 강철환 대표, 임창호 목사(왼쪽부터).
자유아시아방송을 방문한 강철호 목사, 강철환 대표, 임창호 목사(왼쪽부터).
RFA PHOTO/이현기

 

최근 자유아시아방송을 방문한 탈북인 강철환 씨와 강철호 목사는 북한 동포들에게 정보 전달 매체로 라디오 방송은 매일 새로운 정보, 새로운 뉴스를 들을 수 있기 때문에 라디오를 통한 정보 전달이 가장 좋다고 자유아시아방송과 회견에서 밝혔습니다.

 

목요대담, 오늘은 탈북인 교회를 섬기는 임창호 목사, 북한전략연구센터 강철환 대표와 새터교회 강철호 목사를 만나 봅니다.

 

강철환 대표께서 북한에 정보를 보내는 좋은 방법이 있다면 들려주시지요.

 

강철환: 사실 제일 좋은 게 라디오를 통한 정보 전달이 제일 확실합니다. 왜냐면은 라디오는 메일 들을 수 있기 때문에, 매일 새로운 정보 새로운 뉴스들을 듣기 때문에 사람들이 빠르게 변화가 됩니다. 그래서 이제 북한정권이 2013년부터 모든 라디오를 불법화 시켰어요. 못 듣게 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많은 사람이 듣고 저하거든요. 왜냐면 이게 뭐 북한에서 하는 방송은 전혀 들을 것도 없고, 새로운 것도 없기 때문에 특히 새로운 것을 추구하고 또 새로운 뉴스를 듣고 저 하는 젊은 층들은 라디오를 듣고 저 합니다.

 

북한 주민들이 선호하는 라디오가 있습니까?

 

강철환: 라디오에 대한 수요는 많은데 북한 정권이 라디오를 불법화 시켜 다 없앴기 때문에 라디오가 없어요. 그리고 이제 저희가 보낸 라디오는 부피가 좀 커서요. 라디오 자체를 보내기가 쉽지가 않고 가지고 있다고 해도 감추기가 쉽지 않습니다. 그래서 약간 소형화 된 USB보다 조금 큰 소형화 된 라디오를 개발해서, 출력이 또 높아지게 되면 많은 주민들이 라디오를 들을 수 있다고 보고 있습니다. 그래서 이 소형화 된 라디오를 빨리 대량으로 개발해서 북한에 정보를 보내는 모든 단체에 나눠 줌으로 해서 대량으로 라디오를 보내는 사업이 제일 중요한 것 같고요.

 

북한에 보내는 다른 미디어 기기도 있는지요.

 

강철환: 이제 USB나 SD 카드에다 요즘에는 손톱만한 SD카드에다 영화 100편을 담을 수 있습니다. 128기가 200기가까지 나오기 시작하니까 손톱만한 SD카드 하나가 북한주민 수만 명에게 영화를 뿌릴 수가 있는 거에요. 그래서 이런 SD 카드 USB 그리고 작동 시킬 수 있는 기기들, 이런 것들을 대량으로 북한에 다양한 방법으로 보내면, 북한주민들이 아주 정말 다단계 망처럼 쫙 퍼지게 되는 것입니다.

 

강철호 목사는 탈북자를 잘 성장시켜 북한 개혁에 나서야 한다고 강조합니다.

 

강철호 목사: 독일이 어떻게 빨리 통일이 됐습니까? 서독은 동독에 철저하게 영향력을 끼쳤습니다. 그 영항력을 통해서 동독 사람들이 서독을 알게 되고 정치분단은 됐지만 사람 분단은 되지 않았던 그런 현실을 봤지 않습니까 그런데 우리 한반도는 철저하게 사람 분단입니다. 사람 분단 속에서 북한에 영향력을 끼칠 수 없는 한국 사회, 한국 기독교계를 보면서 우리 탈북자들은 안타까운 거지요. 탈북자들이 돈을 보내고 탈북자들이 북한 가족과 전화통화한다는 실제 다 알고 있잖습니까? 그런데 왜 비행기 타고 북한에 들어가 김정은 만나서 김정은에게 전해 주고 와서 북한동포들에게 전했다고 합니까? 그래서 저는 탈북민 들만 잘 키워서 탈북민들을 통해서 북한 루트를 뚫는 그런 한국의 민간 단체가 된다면 정말 북한은 우리가 정말 총포를 쏘지 않고도 전쟁을 하지 않고도 김정은 정권을 무너뜨릴 수 있는 그런 요소들이 지금 탈북민들을 통해서 만들어 갈 수 있다는 것이지요.

 

임창호 목사는 탈북자 교회를 섬기고 계시는 데 정보 전달에 대한 이야기 해 주시죠.

 

임창호: 강철환 대표와 강철호 목사가 하신 말씀이 핵심이에요. 뭐냐 면 북한 안에 북한 주민들에게 자유 세계의 정보가 잘 전달되도록 하고 또 복음이 전달되도록 하는 것이 중요한 문제고, 또 하나는 이런 일을 하는데 있어서 탈북민들의 역활이 참 필요하다. 중요하다는 것이 두 분의 말씀인데 전적으로 동의하고요. 저는 이제 이런 탈북민들과 교제를 나누면서 느낀 것이 결국은 북한을 잘 알아야 되고 북한을 앞으로 우리가 이해를 하고 통일시대의 북한을 제건 하는데 한국이나 이민자인 전 세계의 디아스포라 한인들이 역할을 해야 되는데 알 수 있는 길이 사실 없잖아요. 두 번째는 탈북민들이 한국에 오고 미국에도 오고 있습니다만, 이분들이 잘 배우고 잘 자라서 시야를 넓히고 통일 시대가 됐을 때, 이분들이 북한을 재건하고 남북의 가교 역할을 해줄 수 있는 그런 교육도 되고 훈련도 되야 되는데 이것을 누가할 것인가가 문제죠.

 

탈북인들 교회 섬기면서 느낀 점은

 

임창호: 저는 10년동안 장대현 교회를 하면서 그 과정 가운데 느낀 것인데 나이가 어릴수록 배우는 게 빠르다는 걸 느꼈어요.  그리고 스폰지처럼 많이 배우고 싶어 하는 거예요. 그래서 한국에 들어온 3만 1000명을 한국의 시민들과 교회가 또 이민자들이 정말 잘 양육 하고 이들에게 자유 민주 교육을 시키고 또 한국 동족의 뜨거움이 전달될 수 있도록 해야 그래 이분들이 나중에 맞다. 우리 남한에 왔더니 동족들이 이렇게 우리를 환대하고 통일을 준비하더라! 남한에 있는 한국 동족들이 북한에 있는 동포들을 아끼고 사랑하는 마음이 있다는 걸 좀 더 많이 전달할 필요가 있고, 실천할 필요가 있지 않나! 특별히 교회들이 사명을 가지고 해야 되지 않느냐는 생각이 들어요. 그래서 제가 탈북 정소년들 지도에 역점을 두고 있는데 이게 핵심이라고 생각돼요. 북한 안에 얼마나 좋은 정보를 널 것인가! 그 다음에 탈북민 들에게 정말 그 일의 역할을 할 수 있도록 돕고, 그들이 잘 정착할 수 있도록 또 힘을 낼 수 있도록 우리가 도울 것인가! 그리고 이 3만여명을 다 리더가 되는 것은 아니지만, 이런 따뜻한 사랑을 담아줘서 통일 시대에 이분들이 큰 역할을 할 수 있도록 격려해줘야 된다고 생각하고 또 이런 것들이 사실 우리가 전하는 핵심이다. 깨달아야 될 핵심이다라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세분께서 국제사회에 당부하는 이야기가 있다면 해 주시죠.

 

임창호: 제가 우리 교회에 교인들과 식사하면서 최근의 김정은과 북한정부의 형태를 보면서 탈북자들이 이런 말을 하더라고요. 좀 더 세게 김정은이가 못된 짓을 했으면 좋겠다고 하더라고요. 그래야 빨리 망할 것 같다고요. 오히려 이렇게 최악의 마치 발악한 것 같은 그런 모습을 보면서 오히려 이것이 자충수가 되어서 빨리 붕괴될 수 있는 길이 되지 않을까

 

강철환: 김정은 정권이 거의 끝나가고 있다 저는 그렇게 보고 있는데요. 근거는 사람으로서 하지 말아야 될 그런 일들이 있습니다. 그런데 김정은은 인간의 탈을 쓰고 짐승 같은 일을 하고 있지요. 예를 들면 고모부를 죽인다든지, 고모를 아예 못 나오게 해 죽은 지 살았는지도 모르고 그리고 심지어는 자기 형까지 죽입니다. 이거는 이제 봉건 시대에 그런 일이 있었지만, 그러나 지금 21세기 문명시대에 권력을 위해서 형제를 죽이고 고모부를 죽인다는 것은 정말 이것은 사람이 할 짓이 아닌 것이지요. 그리고 아버지 때 정권을 세웠던 사람들, 측근들을 처형해 죽이고 있는데, 이런 것들을 보면서 아 이제는 북한 정권을 만든 사람들, 그런 사람들 조차도 이제는 김정은에게 환멸을 느낄 수 밖에 없고 이재는 이 정권을 끝내야겠다는 마음을 품게 하는 것 같습니다. 그래서 이런 절대 절명의 시기가 오기 때문에 이제는 국제사회가 이런 김정은 정권에 모략이나 전술에 휘말리지 않고 아주 강력하게 북한을 몰아 부쳐서 이재는 끝내야 된다. 그게 북한주민들이 원하는 것이고 북한 전체 엘리트들이 원하는 것이기 때문에 그들이 원하는 것을 들어주면서 하루 빨리 북한을 끝내는 것이 평화로운 길을 찾는 것이고, 또 남북한이 통일로 가는 길이라고 믿고 있습니다.

 

강철호: 북한정권은 지금까지 사람 생명을 가지고 자기의 정권을 유지하려고 발악하는 것이 지금까지의 현실이지요. 이번에 웜비어라는 미국 청년이 북한을 방문했다가 거의 죽음이 다 돼서 결국 돌아가셨지 않습니까? 그러면 우리 세계가 분노해야 됩니다. 북한은 사람 생명을 가지고 파리 목숨으로 생각하는 북한 김정은 정권은 국제사회에서 타격을 받고 김정은이 발 붙일 곳이 없다는 것을 스스로 알게 해야 합니다. 이런 강력한 운동을 세계적으로 했으면 좋겠습니다.

지금까지 인터뷰에 RFA 이현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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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아시아방송을 방문한 왼쪽부터 강철호 목사, 강철환 대표, 임창호 목사.
자유아시아방송을 방문한 왼쪽부터 강철호 목사, 강철환 대표, 임창호 목사.
RFA PHOTO/이현기

북한의 자유를 위한 미주한인교회연합 즉 KCC가 주최하는 제 9차 연례 북한인권집회 행사 중 통일포럼 토크쇼가 지난 12일 워싱턴 인근 버지니아 필그림 교회에서 많은 교인들과 한인 동포들이 참가한 가운데 진행됐습니다. 이 통일포럼 토크쇼에서는 통일을 위한 효과적인 북한선교 전략은 탈북자들을 통해서 진행돼야 한다는 주장이 나왔습니다.

목요대담 오늘은 통일포럼 토크쇼에 참가한 탈북인 교회를 섬기는 임창호 목사 탈북인 패널 토론자로 참가한 북한전략연구센터 강철환 대표와 새터교회 강철호 목사를 만나 봅니다.

탈북인들 교회인 장대현교회 임창호 목사께서 어떤 행사인지 설명해 주시지요.

임창호 목사: 북한 자유를 위한 미주한인교회연합이라고 하는 것은 2004년 9월에 미국에서 결성됐기 때문에 오래 됐죠. 지금 10년이 넘고 있습니다만, 워싱턴에서 하는 집회가 9번 째가 됩니다. 특별히 여기서 하는 집회는 미국에 있는 1.5세나 2세 3세 중등부 대학생들을 중심으로 해서, 미국 국회의사당 광장에 모여서 상원의원들, 하원의원들 중북한 인권에 관심이 있는 분들을 연사로 모셨는데, 이번에도 에드로이스 의원이나 다른 의원들이 나오셔서 기조 발언을 해 주셨는데, 그리고 학생들이 직접 의원들의 방을 방문해 북한인권에 관심을 가져 주십요. 그러니까 앞으로 통일 시대, 통일 세대가 될 아이들이 모여서 활동하는 것이 중심이 되었었고요.

워싱턴에서 처음으로 지난 12일 통일포럼 토크쇼 진행하신 이야기도 들려주세요.

임창호 목사: 통곡기도회라고 해서 어른들 중심으로 해서 북한의 진상을 알리고, 우리 탈북민들 몇 분 모셔서 여러 가지 북한에 관한 정보를 듣고 기도하는 그런 모임입니다. 이번에 토크 쇼라고 한 것은 기존의 한 명, 한 명, 간증하는 것과는 달리 패널리스트가 있어 자유로운 대화를 연단 위에서 나누면서 북한 정보라든지, 동포들이 알아야 할 여러 가지 북한인권문제, 선교문제 등을 이야기 나누면서 관중석에서 질문도 받는 옛날 진행 방법보다도 즐겁고 다양하게 지루하지 않게 진행해 결과적인 것을 모아 기도 제목을 만들어 함께 기도하는 이런 모임이었습니다. 토크쇼는 미국에서 처음 시도해 봤는데 필그름 교회에서 성황리에 마쳤습니다.

북한전략연구센터 강철환 대표와 새터교회 강철호 목사께서 통일포럼 토크쇼를 한국에서는 이미 시작하셨고, 미국에서 이런 행사를 처음으로 하게 됐는데 특징이 있었을 것 같습니다. 동포들의 반응은 어떻습니까? 강철환 대표께서 답해주시죠.

강철환 대표: 한국에서는 여러 차례 이런 행사를 했었는데, 특히 미주 지역에서 행사는 좀 더 뜻 깊은 감이 있고요. 그리고 한국에 있는 교인들보다 미주에 사는 동포들이 훨씬 더 북한에 대한 관심이 많기 때문에 지금까지 많은 교회들이 북한을 지원해 왔는데, 사실 지원하는 방식이 저희가 보건 데는 좀 제대로 된 지원이 되지 않고, 약간 좀 뒤로 새는 것 같은 느낌을 많이 받았기 때문에 저희 같이 북한에서 산 탈북자들이 와서 어떤 방법으로 북한을 돕는 것이 가장 좋고 또 진실된 것인지를 경험을 통해서 말씀을 드리고 저 했습니다.

강 대표께서 그 동안 북한지원에 대한 평가를 하신다면요.

강철환 대표: 많은 교인들이 북한 동포들의 실상에 가슴이 아파서 돈도 주고 쌀도 주고 여러 가지 많은 것을 지원했는데 결과적으로 그런 것들이 실제로 북한 동포들에게 쓰여지지 않고 북한 정권에 악용돼 왔고,

이번 포럼에서 동포들에게 특별히 전한 메시지도 있습니까?

강철환 대표: 임현수 목사님이 북한에 구금돼 있으신데 저희는 그 목사님 석방을 위해서 지금까지 북한을 지원하는 모든 단체들 지원을 중단 시키고 목사님이 석방될 때까지 우리가 압력을 가하자 그런 제안을 한 바 있습니다. 임 목사님의 북한에서의 행적을 보면 거의 100여 차례 북한에 가서 엄청난 양의 현금과 물품을 지원했는데 결과적으로 죄 같지 않는 죄를 물어서 지금 감옥에서 고통을 받고 계시는데 이런 결과들을 보면 북한을 어떻게 도와야 되는지 답이 나와 있거든요.

북한 동포들에게 어떤 것이 필요하겠습니까?

강철환 대표: 그들에게 새로운 양식을 주자! 우리 기독교인들이기 때문에 복음을 전하기도 하고 또 북한주민들에게 새로운 외부의 정보들을 끊임없이 보내서 이 사람들이 스스로 변화되게 해서 북한주민들의 힘으로 북한 정권을 무너 뜨려야 한다. 이게 진정한 평화통일이고, 복음 통일이기 때문에 이런 방식으로 북한을 도와 우리가 새롭게 거듭나자! 이런 주장을 했습니다. 그래서 많은 우리 동포들이 동감을 했고요. 그래서 앞으로 우리 탈북자들이 하고 있는 북한정보 확산 사업에 많은 미주 교포들이 동참할 것으로 보입니다.

탈북인이면서 탈북자 교회를 섬기시는 강철호 목사께서는 북한 내부 소식을 근거로 북한 주민을 도와야 한다고 강조하고 계시는 데 이번 행사에서 어떤 것을 느끼셨는지?

강철호 목사: 미국에도 여러 번 오고 KCC 통곡기도회를 계속적으로 해 왔습니다만, 특별이 미국 행사에 오게 되면 가슴이 뜨거운 게 우리 한인 교포들이 북한에 대해서 더 관심이 많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관심은 많지만, 지금까지 우리가 북한을 지원하는 방법을 보면, 김정은 정권을 도왔다는 이런 불행한 현실을 너무 모른다는 것이지요. 그래서 우리가 이번에 토크 쇼를 통해서 많은 사람들에게 북한의 현실을 좀 알리자! 그것도 우리 한인 2세들, 젊은 청년들이 북한의 현실을 알고, 또 기독교인부터 북한을 지원하는데 어떻게 해야 되는지 깨우쳐 주기 위해 여러 가지로 북한 실상에 대한 이야기도 하고 그들에게 또한 우리가 경험했던 것들을 들려주기도 했고요.

북한 정권과 북한 인민들을 분리해 봐야 한다고 강조하시는데요.

강철호 목사: 북한을 지원하는 사람들은 하는 말에 의하면 ‘강도 만난자를 도왔다. ‘ 이렇게 이야기 하는데 북한이라는 사회를 들여다 보게 되면 강도와 강도 만난자 딱 홀연히 들어나 있습니다. 김정은과 김정은 정권은 강도입니다. 그 밑에서 탄압 받는 북한동포들이 강도 만난자들이지요. 그러나 거의 대부분 사람들이 북한에 들어가서 보면 그 정권을 지원해 주고 와서 우리가 강도 만난자를 도왔다는 현실을 우리 탈북민들로서는 너무 안타까운 것이지요. 그래서 이번 통일토크쇼를 통해서 이런 현실을 까발리고 이제는 제대로 된 북한선교를 할 수 있도록 방향을 제시하자 이런 점에 초점을 맞췄던 게 이번 토크쇼의 의미가 깊은 것 같습니다.

구체적으로 북한의 선교를 지원하고 북한 일반 주민들, 강도를 당한 사람들을 지원하기 위해서 구체적인 제안을 해 주시지요.

강철호 목사: 제가 한국에 와서 안타까웠던 부분이 정부 차원에서는 김정은 정권을 만나고 그들과 교섭을 하는 것에는 이의를 달고 싶지 않습니다. 그런데 순수한 민간 단체들도 똑같이 하는 것에 분노를 금할 수 없었고, 그런 현실이 지금도 계속된다는 것인데, 민간단체는 북한 백성들을 도울 수 있는 그런 루트를 찾고 연구하고 그런 루트를 만들어 가야 합니다. 그런데 비행기 타고 편안히 북한에 들어가서 도와주는 게 지금의 현실이잖아요. 그들이 그러면 북한동포들을 어떻게 돕겠는가! 이야기 하는데 탈북자들이 3만 천명이나 한국에 들어와 있습니다. 아직 들어오지 못한 탈북자가 중국에 15만 명 이상이 있습니다. 이들이 돈도 보내고 전화통화도 하고 있는데 이 탈북민들만 잘 관심 있게 봐도 우리가 북한주민들을 접촉할 수 있는, 탈북민을 통해 접촉할 수 있는 그 방법을 우리가 얼마든지 만들어 낼 수 있는 겁니다.

목요대담, 오늘은 통일포럼 토크쇼에 참가한 탈북인 교회를 섬기는 임창호 목사, 탈북인 패널 토론자로 참가한 북한전략연구센터 강철환 대표와 새터교회 강철호 목사를 만나 봤습니다. 다음 시간에 계속됩니다. 지금까지 진행에 RFA 이현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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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양시에 있는 고산동 고분.
평양시에 있는 고산동 고분.
사진-연합뉴스 제공

여러분 안녕하십니까? 통일문화산책 진행에 이현기입니다.

우리 조상들이 남겨준 전통문화가 광복 이후 남과 북으로 나뉘어져 지금도 생성돼 오는 서울문화 평양문화의 단면들을 살펴봅니다.

TEASER: 경주는 고분을 포함해서 경주지역 역사지구 전체가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된 게 2000년입니다. 물론 경주 불국사와 석굴암은 1995년에 이미 유네스코 문화유산으로 됐지요.

통일문화산책 오늘 이 시간에는 북한문화평론가 임채욱 선생과 함께 남북한에 있는 유네스코 문화유산 중 경주와 평양의 고분을 찾아보고 그 의의를 음미해 보겠습니다.

먼저 유네스코에 등재된 남북한 문화유산은 지난번 이 시간에 한 번 훑어봤습니다만 다시 한번 간단하게 숫자만 말씀해 주시죠.

임채욱 선생: 네. 유네스코 문화유산은 유형별로 등재됩니다. 크게 세계문화유산이 있고 무형문화유산이 있고 기록유산이 있습니다. 이 3개 유형별로 우리나라는 한국이 문화유산 11건, 무형문화유산 19건, 기록유산 13건이며, 북한은 문화유산 2건, 무형문화유산 2건입니다. 이 셋 외에 자연유산이 있는데 한국은 제주도 화산섬과 용암동굴이 등재됐고, 또 경북 청송 지역은 세계 지질 공원으로 등재됐습니다. 한국은 기록유산만큼은 다른 나라에 안 지지요. 우리 선조들이 남긴 기록물이 워낙 대단했으니까요.

경주고분, 평양고분은 언제 지정됐습니까?

임채욱 선생: 경주는 고분을 포함해서 경주지역 역사지구 전체가 유네스코 문화유산으로 지정된 게 2000년입니다. 물론 경주 불국사와 석굴암은 1995년에 이미 유네스코 문화유산으로 됐지요. 경주 역사지구는 또 크게 5개 지구로 나눠지는데 오늘 이야기하는 경주고분은 그 가운데 대능원지구로 이름 붙여진 신라고분 150여기를 말합니다. 평양고분은 2004년에 등재되는데 평양을 비롯해 주변에 널린 고구려시대 무덤 63기를 말합니다.

그럼 경주 대능원지구 고분을 한 번 볼까요?

임채욱 선생: 대능원지구에는 신라의 왕들과 왕비, 귀족들 무덤이 황남리, 노동리, 노서리에 걸쳐 있는데 모두 150여기가 된다는 것입니다. 이 무덤들에서 무덤 주인이 알려진 것도 있고 무덤주인공이 알려지지 않은 무슨 총(塚)이 있지요. 아시다시피 이름이 알려지지 않는 무덤은 무슨 총이라고 하지요. 총들 중 황남대총, 천마총 들은 너무나 유명한 무덤들이지요. 황남대총은 두 개 큰 무덤이 남북으로 맞붙은 쌍무덤인데, 크기가 어마어마해서 남북길이 120m, 동서길이 80m가 되지요. 이 무덤 안에서 금관과 금목걸이 등 귀중한 유물이 많이 발굴됐지요. 황남대총에 많이 떨어지지 않은 곳에 있는 천마총은 천마도란 그림이 나와서 천마총이란 이름이 붙여진 무덤이지요. 이 무덤에서도 금관이 나왔지만 천마를 그린 말다래가 나와서 그게 눈을 끌었지요. 말다래는 말을 탄 사람 옷에 흙이 튀지 않도록 늘어뜨린 물건이지요. 대개 헝겊이나 가죽으로 만드는데 이 천마도가 그려진 말다래는 자작나무 껍질로 만들어진 것으로 판명됐습니다.

경주 고분 설명만 해도 시간이 모자라겠군요. 그럼 평양 고분도 말씀해 주세요.

임채욱 선생: 유네스코에 등재된 평양지역과 그 인근에 위치한 고분은 63기입니다. 4세기에서 7세기 사이에 만들어진 무덤들인데 이 가운데 우리가 잘 자랑하는 벽화무덤들 16기도 있습니다. 이 63기는 평양에 49기가 집중돼 있고 대동군, 남포시, 황해남도 안악군에도 분포돼 있습니다. 평양에 많이 있다고 해서 평양고분이라 했지만 사실은 고구려 고분들이지요. 무덤이란 무덤 모두를 다하면 수 만기가 있겠지만 유네스코 문화유산이 된다는 것은 보존할 가치가 있다는 것이지요. 이 고분들 가운데 벽화가 그려진 무덤이 더욱 중요하지요. 고구려 사람들도 처음에는 무덤을 돌로 덮어 묻어버렸는데 점차 땅 밑에 돌로 만든 방을 만들고 흙무더기를 쌓아 올린 형태로 만들었지요. 이걸 석실 봉토분이라고 하는데 벽화는 이 돌방 안 천장이나 벽에서 발견됩니다. 벽화그림 내용은 생활상을 담은 것이 있고 생활상에 보태서 장식무늬나 사신도 그림, 즉 청룡, 백호, 주작, 현무를 그린 벽화가 있고 또 연꽃을 비롯해서 하늘의 별들과 불교적 색채를 나타내는 벽화들이 있습니다. 고구려 사람들은 무덤을 영혼의 안식처라고 믿고 이처럼 무덤 안을 지상의 집처럼 잘 꾸몄습니다.

많은 고분벽화 중 가장 유명한 것은 어떤 것입니까?

임채욱 선생: 평양에서 조금 떨어진 남포시 강서구역이란 곳 덕흥리에 있는 덕흥리 고분에는 무덤 주인공이 그려져 있고 관직이름과 아랫사람이 보고를 하는 장면이 나옵니다. 당시 고구려 사회상을 볼 수 있는 아주 중요한 벽화이지요. 또 안악에 있는 안악3호분은 여자들이 음식을 만들고 사냥에서 잡은 고기가 걸려있는 벽화로 유명하지요. 씨름하는 장면이 그려진 씨름무덤(각저총), 춤추는 장면이 그러진 춤무덤(무용총), 거북이 그림이 있는 거북무덤(귀갑총)이 있고 용강대총, 쌍영총, 감신총 등이 알려진 무덤이지요. 이 가운데 쌍영총은 무덤 안에 2개의 팔각기둥이 서 있어 무덤이름을 쌍영총이라 했는데, 이 무덤벽화는 인물도, 풍속도, 사신도가 그려져 있습니다. 그래서 수레도 보이고 갑옷 입은 무사, 즉 개마무사라고 하는 개마무사도 보이고 말 탄 무사도 보이고 북치는 사람, 창을 쥐고 춤추는 사람도 있고, 청룡과 백호도 보입니다. 천장에는 당초무늬, 봉황새, 구름으로 장식돼 있고 8각기둥에는 용무늬를 그려 넣었습니다.

경주고분이나 평양고분, 다시 말해서 신라고분과 고구려고분은 우리 조상들의 역사를 말해주는 실증적인 자료들입니다. 남북한은 이를 통해 역사를 알고 후세에도 이를 잘 전해 줄 의무가 있겠지요?

임채욱 선생: 당연하지요. 신라의 능들이나 고구려 고분들이 유네스코 문화유산으로 된 있는 이상 세계 사람들이 눈여겨보게 됩니다. 우리 후세뿐 아니라 세계 사람들을 위해서도 잘 보존하고 관리해야 합니다. 남북한이 힘을 합쳐서라도 이 의무를 다해야 합니다.

통일문화산책 함께 해주신 여러분 감사합니다. 지금까지 기획과 진행에 RFA 이현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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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동물원의 하마를 보며 좋아하는 북한 청소년들.
중앙동물원의 하마를 보며 좋아하는 북한 청소년들.
사진-연합뉴스 제공

여러분 안녕하십니까? 통일문화산책 진행에 이현기입니다.

우리 조상들이 남겨준 전통문화가 광복 이후 남과 북으로 나뉘어져 지금도 생성돼 오는 서울문화 평양문화의 단면들을 살펴봅니다.

북한의 자연박물관과 중앙동물원이 작년 7월 개관 이후 근로자와 청소년학생들, 해외동포들, 외국인들이 찾았으며, 파충관, 원숭이관, 맹수사, 코끼리사, 기린사 등이 인기를 모았다고 북한 매체들이 전한 바 있습니다.

통일문화산책 오늘은 작년 7월 평양에 자연박물관이 문을 연지 1년을 맞아 북한문화평론가 임채욱 선생과 함께 남북한의 자연사박물관을 찾아가 보겠습니다.

먼저 작년 북한 자연박물관 개관에 대해 알아보지요.

임채욱 선생: 네. 평양 대성산 기슭에 작년 7월 24일 개관한 자연박물관은 그 이웃에 함께 문을 연 중앙동물원과 함께 관람객이 첫 10일간만 해도 근 20여 만명에 가까웠다고 합니다. 아주 좋은 볼거리인 것 같습니다. 북한매체들은 과학교육 기지이고 대중교양의 보급기지라고 말합니다. 이 박물관 건설에는 통치자 김정은이 직접 발기하고 건설에 나서는 문제들을 풀어줬다고 합니다. 그게 무려 150차례나 된다는 것입니다. 이건 북한정권에서 세웠다는 것을 말하지요. 그런데 한국에선 국가가 세운 자연사박물관은 현재 없습니다. 국립 자연사박물관 건립 필요성은 오래전부터 제기돼 오지만 아직 실현을 못보고 있습니다. 하지만 공공성을 띈 자연사박물관이나 대학부설 박물관, 그리고 사설 박물관은 여기저기에 아주 많습니다.

남쪽에선 대체로 자연사박물관이라 부르고 북쪽에서는 자연박물관이라고 하는군요. 개념상 차이가 없을 테지요.

임채욱 선생: 그렇습니다. 대체로 자연사박물관이라고 하지만 세계 각국 자연사박물관 명칭 중에는 자연박물관이라 하는데도 있습니다.

그럼 자연사박물관은 어떤 것이고 어떤 기능과 역할을 하는지 먼저 말씀해주시죠.

임채욱 선생: 자연사란 용어는 로마시대에 이미 쓰였다고 합니다. 로마시대 자연사학자 폴리니우스라는 사람이 광물, 보석, 동물, 식물, 약리, 지형, 인류 등등을 다룬 <자연사>란 책을 내면서 자연사란 말을 이미 썼습니다. 그 뒤 자연사는 우주와 지구상의 자연을 종합적으로 다루는 학문이 됐지요. 따라서 자연사에는 지구과학, 환경학, 생물학, 고고인류학의 자료들이 포함되게 되지요. 그러니까 수학이나 물리학, 화학, 공학 같은 과학기술을 뺀 나머지 모두가 자연사 개념에 들어간다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포괄범위가 넓지요. 천문, 해양, 지질, 동물, 식물에 해당하는 것은 모두 자연사에 포함되지요. 한마디로 우주와 지구상의 자연을 종합적으로 다루는 것이 자연사라고 하겠습니다. 자연사박물관은 자연을 연구하고 자연자료를 수집해서 전시하고 이를 통해 일반국민에게 교육을 시키는 기능을 주로 하지만 한마디로 학교 교육에서 하기 어려운 역할을 맡고 있는 부분이 있지요. 수집된 자연자원을 보존하고 보전해서 후세에 전달하는 역할이 아주 큰 것이지요.

평양 자연박물관을 소개해 주시지요.

임채욱 선생: 연건축면적이 3만 5.000평방미터에 달하는 크기라니까 아주 크지요. 우주관, 고생대관, 중생대관, 신생대관, 동물관, 식물관 등으로 구성돼 있는데, 각 전시관에는 각종 표본들과 자료들이 전시돼 있고 대형전광판을 비롯해서 검색 컴퓨터가 설치돼 있습니다. 중앙홀은 4층까지 관통돼 있는데 화산폭발로 용암들이 흐르는 것을 배경으로 공룡과 익룡 모형이 결려 있습니다. 우주관에는 우주 형성과 관련된 천문자료들과 생명기원을 가르쳐주는 자료들로 꾸며져 있습니다. 고생대관, 중생대관, 신생대관 등 고생물관에는 생물들이 나타나고 진화해온 과정을 모형과 도판을 통해 설명하고 있습니다. 그밖에 공룡공원, 화석체험실, 신생대 원시림, 빙하를 체험할 수 있습니다. 또 동물관은 동물별로 구분해서 진화와 인간생활과의 관계를 설명하는 전시물로 채워져 있고 식물관에는 식물과 우리생활 관계를 보여주는 전시물이 가득합니다.

그럼 다음으로 남쪽에 있는 자연사박물관을 한 번 볼까요?

임채욱 선생: 앞에서도 잠깐 말했지만 한국은 OECD 국가 중 자연사박물관이 없는 유일한 국가라고 합니다. 1990년대 초부터 국립자연사박물관 건립추진위원회가 설립돼서 심포지엄도 열고 자료도 수집하면서 활동했지만 어떤 이유에서인지 빨리 추진이 되지 않고 지지부진한 상태입니다. 올해 국립중앙과학관에 그나마 자연사관이 개관돼서 역할을 하고 있습니다. 그렇더라도 민간에서 하는 자연사박물관은 여러 군데가 있습니다. 공공기관에서 설립한 것도 있고 개인이 설립한 사립박물관도 많습니다. 또 대학에서 부설로 설립한 곳도 7군데가 넘습니다. 모두 다하면 20곳이 넘지요.

구체적인 내용을 설명해 주시면 좋겠습니다.

임채욱 선생: 수도권에 가장 많은데 7곳이 됩니다. 이 가운데 서대문자연사박물관은 지방자치단에서 설립한 것으로 지구환경관, 생명진화관, 공룡공원 등으로 구성돼 있습니다. 2003년 7월 문을 연 이래 수도권의 많은 학생, 직장인들이 찾는 곳이 되었습니다. 수도권에 있는 자연사박물관 중에는 이화여대 자연사박물관도 눈 여겨 볼 곳입니다. 1969년 한국에서 제일 먼저 생긴 자연사박물관이니까요. 전시물은 광물, 암석, 동물, 식물 표본이 있고 생태교육을 위한 자료들이 있습니다. 영남지역에는 고성에 공룡 위주의 자연사박물관과 부산에 있는 해양자연사박물관이 눈에 띄는 곳입니다. 호남지역에는 목포에 해양자원 위주로 전시된 자연사박물관이 유명하지요. 2004년 9월 공립으로는 두 번 째 개관했지요. 호서지역, 충청지역에는 대전에 지질박물관이 그럴 듯 합니다. 관동지방에는 금강산자연사박물관이 특이하고 태백고생대자연사박물관은 석탄 생성과 관련된 박물관입니다. 제주도에는 제주도 민속을 위주로 한 생활과 관련된 민속자연사박물관이 찾는 곳이 되고 있지요.

남북한에서 자연사박물관은 외국에 비해 역사가 짧지요? 하지만 특색 있는 전시로 남북한은 서로 협조하고 교류할 가능성은 없을까요?

임채욱 선생: 네. 남북한 자연사박물관은 세계 기준으로 보면 역사가 짧지요. 프랑스에서 1793년에 이미 국립자연사박물관이 생기고 미국에도 1846년에 생기고 일본만 해도 1871년에 자연사 박물관 문을 엽니다. 이런 앞선 나라들이 가진 운영경험을 배울 필요도 있고 또 남북한 간에도 서로 가르쳐주고 배우는 것이 필요하겠지요. 앞으로 남쪽에서 국립자연사박물관을 세울 때 북쪽의 경험을 배우는 것이 나쁘지 않을 것입니다. 그러자면 남북한 박물관 간에 사람 교류가 먼저 이뤄져야 하겠지요.

통일문화산책 함께 해주신 여러분 감사합니다. 지금까지 기획과 진행에 RFA 이현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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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아시아방송을 방문한 왼쪽부터 강철호 목사, 강철환 대표, 임창호 목사.
자유아시아방송을 방문한 왼쪽부터 강철호 목사, 강철환 대표, 임창호 목사.
RFA PHOTO/이현기

북한의 자유를 위한 미주한인교회연합 즉 KCC가 주최하는 제 9차 연례 북한인권집회 행사 중 통일포럼 토크쇼가 지난 12일 워싱턴 인근 버지니아 필그림 교회에서 많은 교인들과 한인 동포들이 참가한 가운데 진행됐습니다. 이 통일포럼 토크쇼에서는 통일을 위한 효과적인 북한선교 전략은 탈북자들을 통해서 진행돼야 한다는 주장이 나왔습니다.

목요대담 오늘은 통일포럼 토크쇼에 참가한 탈북인 교회를 섬기는 임창호 목사 탈북인 패널 토론자로 참가한 북한전략연구센터 강철환 대표와 새터교회 강철호 목사를 만나 봅니다.

탈북인들 교회인 장대현교회 임창호 목사께서 어떤 행사인지 설명해 주시지요.

임창호 목사: 북한 자유를 위한 미주한인교회연합이라고 하는 것은 2004년 9월에 미국에서 결성됐기 때문에 오래 됐죠. 지금 10년이 넘고 있습니다만, 워싱턴에서 하는 집회가 9번 째가 됩니다. 특별히 여기서 하는 집회는 미국에 있는 1.5세나 2세 3세 중등부 대학생들을 중심으로 해서, 미국 국회의사당 광장에 모여서 상원의원들, 하원의원들 중북한 인권에 관심이 있는 분들을 연사로 모셨는데, 이번에도 에드로이스 의원이나 다른 의원들이 나오셔서 기조 발언을 해 주셨는데, 그리고 학생들이 직접 의원들의 방을 방문해 북한인권에 관심을 가져 주십요. 그러니까 앞으로 통일 시대, 통일 세대가 될 아이들이 모여서 활동하는 것이 중심이 되었었고요.

워싱턴에서 처음으로 지난 12일 통일포럼 토크쇼 진행하신 이야기도 들려주세요.

임창호 목사: 통곡기도회라고 해서 어른들 중심으로 해서 북한의 진상을 알리고, 우리 탈북민들 몇 분 모셔서 여러 가지 북한에 관한 정보를 듣고 기도하는 그런 모임입니다. 이번에 토크 쇼라고 한 것은 기존의 한 명, 한 명, 간증하는 것과는 달리 패널리스트가 있어 자유로운 대화를 연단 위에서 나누면서 북한 정보라든지, 동포들이 알아야 할 여러 가지 북한인권문제, 선교문제 등을 이야기 나누면서 관중석에서 질문도 받는 옛날 진행 방법보다도 즐겁고 다양하게 지루하지 않게 진행해 결과적인 것을 모아 기도 제목을 만들어 함께 기도하는 이런 모임이었습니다. 토크쇼는 미국에서 처음 시도해 봤는데 필그름 교회에서 성황리에 마쳤습니다.

북한전략연구센터 강철환 대표와 새터교회 강철호 목사께서 통일포럼 토크쇼를 한국에서는 이미 시작하셨고, 미국에서 이런 행사를 처음으로 하게 됐는데 특징이 있었을 것 같습니다. 동포들의 반응은 어떻습니까? 강철환 대표께서 답해주시죠.

강철환 대표: 한국에서는 여러 차례 이런 행사를 했었는데, 특히 미주 지역에서 행사는 좀 더 뜻 깊은 감이 있고요. 그리고 한국에 있는 교인들보다 미주에 사는 동포들이 훨씬 더 북한에 대한 관심이 많기 때문에 지금까지 많은 교회들이 북한을 지원해 왔는데, 사실 지원하는 방식이 저희가 보건 데는 좀 제대로 된 지원이 되지 않고, 약간 좀 뒤로 새는 것 같은 느낌을 많이 받았기 때문에 저희 같이 북한에서 산 탈북자들이 와서 어떤 방법으로 북한을 돕는 것이 가장 좋고 또 진실된 것인지를 경험을 통해서 말씀을 드리고 저 했습니다.

강 대표께서 그 동안 북한지원에 대한 평가를 하신다면요.

강철환 대표: 많은 교인들이 북한 동포들의 실상에 가슴이 아파서 돈도 주고 쌀도 주고 여러 가지 많은 것을 지원했는데 결과적으로 그런 것들이 실제로 북한 동포들에게 쓰여지지 않고 북한 정권에 악용돼 왔고,

이번 포럼에서 동포들에게 특별히 전한 메시지도 있습니까?

강철환 대표: 임현수 목사님이 북한에 구금돼 있으신데 저희는 그 목사님 석방을 위해서 지금까지 북한을 지원하는 모든 단체들 지원을 중단 시키고 목사님이 석방될 때까지 우리가 압력을 가하자 그런 제안을 한 바 있습니다. 임 목사님의 북한에서의 행적을 보면 거의 100여 차례 북한에 가서 엄청난 양의 현금과 물품을 지원했는데 결과적으로 죄 같지 않는 죄를 물어서 지금 감옥에서 고통을 받고 계시는데 이런 결과들을 보면 북한을 어떻게 도와야 되는지 답이 나와 있거든요.

북한 동포들에게 어떤 것이 필요하겠습니까?

강철환 대표: 그들에게 새로운 양식을 주자! 우리 기독교인들이기 때문에 복음을 전하기도 하고 또 북한주민들에게 새로운 외부의 정보들을 끊임없이 보내서 이 사람들이 스스로 변화되게 해서 북한주민들의 힘으로 북한 정권을 무너 뜨려야 한다. 이게 진정한 평화통일이고, 복음 통일이기 때문에 이런 방식으로 북한을 도와 우리가 새롭게 거듭나자! 이런 주장을 했습니다. 그래서 많은 우리 동포들이 동감을 했고요. 그래서 앞으로 우리 탈북자들이 하고 있는 북한정보 확산 사업에 많은 미주 교포들이 동참할 것으로 보입니다.

탈북인이면서 탈북자 교회를 섬기시는 강철호 목사께서는 북한 내부 소식을 근거로 북한 주민을 도와야 한다고 강조하고 계시는 데 이번 행사에서 어떤 것을 느끼셨는지?

강철호 목사: 미국에도 여러 번 오고 KCC 통곡기도회를 계속적으로 해 왔습니다만, 특별이 미국 행사에 오게 되면 가슴이 뜨거운 게 우리 한인 교포들이 북한에 대해서 더 관심이 많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관심은 많지만, 지금까지 우리가 북한을 지원하는 방법을 보면, 김정은 정권을 도왔다는 이런 불행한 현실을 너무 모른다는 것이지요. 그래서 우리가 이번에 토크 쇼를 통해서 많은 사람들에게 북한의 현실을 좀 알리자! 그것도 우리 한인 2세들, 젊은 청년들이 북한의 현실을 알고, 또 기독교인부터 북한을 지원하는데 어떻게 해야 되는지 깨우쳐 주기 위해 여러 가지로 북한 실상에 대한 이야기도 하고 그들에게 또한 우리가 경험했던 것들을 들려주기도 했고요.

북한 정권과 북한 인민들을 분리해 봐야 한다고 강조하시는데요.

강철호 목사: 북한을 지원하는 사람들은 하는 말에 의하면 ‘강도 만난자를 도왔다. ‘ 이렇게 이야기 하는데 북한이라는 사회를 들여다 보게 되면 강도와 강도 만난자 딱 홀연히 들어나 있습니다. 김정은과 김정은 정권은 강도입니다. 그 밑에서 탄압 받는 북한동포들이 강도 만난자들이지요. 그러나 거의 대부분 사람들이 북한에 들어가서 보면 그 정권을 지원해 주고 와서 우리가 강도 만난자를 도왔다는 현실을 우리 탈북민들로서는 너무 안타까운 것이지요. 그래서 이번 통일토크쇼를 통해서 이런 현실을 까발리고 이제는 제대로 된 북한선교를 할 수 있도록 방향을 제시하자 이런 점에 초점을 맞췄던 게 이번 토크쇼의 의미가 깊은 것 같습니다.

구체적으로 북한의 선교를 지원하고 북한 일반 주민들, 강도를 당한 사람들을 지원하기 위해서 구체적인 제안을 해 주시지요.

강철호 목사: 제가 한국에 와서 안타까웠던 부분이 정부 차원에서는 김정은 정권을 만나고 그들과 교섭을 하는 것에는 이의를 달고 싶지 않습니다. 그런데 순수한 민간 단체들도 똑같이 하는 것에 분노를 금할 수 없었고, 그런 현실이 지금도 계속된다는 것인데, 민간단체는 북한 백성들을 도울 수 있는 그런 루트를 찾고 연구하고 그런 루트를 만들어 가야 합니다. 그런데 비행기 타고 편안히 북한에 들어가서 도와주는 게 지금의 현실이잖아요. 그들이 그러면 북한동포들을 어떻게 돕겠는가! 이야기 하는데 탈북자들이 3만 천명이나 한국에 들어와 있습니다. 아직 들어오지 못한 탈북자가 중국에 15만 명 이상이 있습니다. 이들이 돈도 보내고 전화통화도 하고 있는데 이 탈북민들만 잘 관심 있게 봐도 우리가 북한주민들을 접촉할 수 있는, 탈북민을 통해 접촉할 수 있는 그 방법을 우리가 얼마든지 만들어 낼 수 있는 겁니다.

목요대담, 오늘은 통일포럼 토크쇼에 참가한 탈북인 교회를 섬기는 임창호 목사, 탈북인 패널 토론자로 참가한 북한전략연구센터 강철환 대표와 새터교회 강철호 목사를 만나 봤습니다. 다음 시간에 계속됩니다. 지금까지 진행에 RFA 이현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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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 특각 병사 1명 탈북, 동남아서 한국행 기다려

 
중국 랴오닝성 단둥 외곽에서 바라본 북한국경지역에서 북한군 병사들이 막사에서 나오고 있다.
중국 랴오닝성 단둥 외곽에서 바라본 북한국경지역에서 북한군 병사들이 막사에서 나오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제공

 

김정은 북한 노동당 위원장의 별장 경비부대에서 훈련받던 북한군 병사 송명학(가명 17세) 군이 탈북한 것으로 알려진 이후, 지난 주말(8일) 동남아의 한 안전지역으로 이동해 한국행을 기다리고 있다고 정 베드로 북한정의연대 대표가 한국시간 10일 자유아시아방송과 회견에서 밝혔습니다.

정 대표는 이 탈북 병사는 특각(김정은 별장) 경비 부대로 입대한 뒤 25일 만에 탈북했으며, 그가 입대 전에 자유아시아방송 등 해외 대북방송을 듣고 탈북을 결심했다고 밝혔습니다.

 

이 병사는 북한 평안북도 신의주 모처의 특각(김정은 별장)에서 훈련 받다 지난달 10일쯤 압록강을 도강한 이후, 북한정의연대가 돌보고 있습니다.

 

목요대담 오늘은 정 베드로 북한정의연대 대표로부터 특각 탈북병사의 이야기 함께 듣습니다.

김정은 북한 노동당 위원장의 별장 경비부대에서 훈련을 받던 북한군 병사 송명학(가명 17세) 군이 최근 탈북했다면서요.

 

: 6월 초순에 신의주 특각에 근무 예정이었던, 그러니까 북한군 신병입니다. 신병군인은 25일, 입대한 뒤 한 달이 채 안 됐는데 명학 병사가 여러 가지 가정에 문제도 있겠지만, 아버지는 안 계시고 어머니 건강은 열악하고, 그런 데다 가정에 전화 한 번 못하고, 10년 동안 근무한 이후에 가정으로 돌아와도 아무런 희망이 없고, 그런 상황에서 이번에 탈북을 결심했거든요. 물론 입대 전에 한국에 대한 또 여러 가지 정보, 외부 소식을 접했던 그러한 소년이었고요. 미래가 암담했다라고 하는 것을 직감했던 것은, 북한에서 10년 복무 이후 제대하면, 당원 가입도 쉬었고 당증도 쉽게 나왔는데 요즘에는 당증이나 당원 가입이 쉽지가 않습니다. 자기는 청춘을 다 바치고 집에 돌아가봐야 아무런 차려질 것이 없는 그런 현실에서 탈북한 거고요. 요즘 10대 북한의 이런 소년 소녀들이 (옛날과는 다른 )적극적 자기주장을 펼치는 그런 유형이라고 볼 수 있겠습니다.

 

외부 소식을 들었다고 하셨는데 혹 자유아시아방송을 들었습니까?

 

: 제가 깊이 있게는 모르겠습니다만, 자유아시아방송을 비롯한 매체로부터 외부의 문화와 정보를 접촉했다라고 제가 확인을 했고요. 방송 듣는 구체적인 방법은 제가 말씀을 못 드리겠습니다.

 

이렇게 탈북하기까지 상당이 힘들었을 텐데 혹 탈북과정에서 어려움은 없었습니까

 

: 저도 탈북한 분들 많이 만나보고 탈북한 군인을 가끔 접촉해 봤습니다만, 이번은 상당이 특이한 경우였는데 압록강을 수영해서 넘어 왔었고요. 넘어오자 마자 중국 단둥 지역에서 정말 운 좋게도 좋은 분들을 만났습니다. 중국 쪽 사람들을 만나서 그분들이 보호해 줬고, 그리고 이 소년이 착하고, 어리고, 불쌍했기 때문에, 또한 이 소년이 원하는 곳이 어디인가 했을 때 그 소년 자신은 중국에 오래 머물 수 없으면, 한국으로 가겠다라는 입장을 분명히 했었고, 그 결과 저희 단체로 소식이 오게 된 것입니다.

 

지금 현재 가장 안전해야 할 텐데 현재 상황은 어떻습니까?

 

: 이 병사의 탈북과 중국 체류에 대해서 보도를 하고 또 이 병사의 안전을 염두에 뒀는데 실은 보도가 나갈 때 즘에는 이미 상당히 안전한 곳으로 이동한 상태였고요. 오늘 처음 RFA에 말하는데, 제가 따로 언론 보도를 안 하고 RFA에 말하는데 이 병사는 보도가 난 이후에 며칠 뒤인 지난주 토요일 (8일) 제3국에 무사히 도착했다는 것을 말씀 드립니다.

 

탈북병사는 언제쯤 한국으로 들어 올 것으로 예상하십니까?

 

: 아마 지난 주 말에 제3국 동남아 나갔다는 것을 이미 확인했고요. 그러게 되면 그쪽에서 약 22일 정도 있다가 한국으로 오게 되니까 넉넉히 3주 있다가 한국으로 들어 올 것 같습니다.

 

현재 북-중 지역에 탈북인들 단속이 심한지 등 상황은 어떻습니까?

 

: 지금 김정은 정권 들어와서 국경 수비가 강화되고 있고, 보위부에 탈북자 단속에 대해 지시를 했고, 초소 경비 강화하고, 초소 경비병들에게도 탈북자들을 색출하고, 뇌물을 받고 넘겨주는 사람들을 신고하면 포상을 주겠다라고 해서 탈북하기에 쉽지 않습니다. 그런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탈북의 행렬은 중단되지 않고 계속적으로 이어지고 있습니다.

 

북한군의 최근 동향도 궁금합니다. 입수된 내용 있으면 전해 주시지요.

 

: 지금 현재 ICBM 화성-14호 발사 이후로 북한은 지금 외부적으로는 굉장히 치적을 떠 받들고, 흥분된 것처럼 보이지만, 북한의 당 간부를 비롯한 군인들은 조금 전 탈북한 북한 병사의 심정같이, 아마 많은 북한 내부의 의식 변화가 일어나고 있다고 보고 있습니다. 한국에도 지난 한 달 동안에 군사 분계선을 넘어온 군인들도 있었고, 또 평양에서 동해안 원산 쪽으로 이동해서 배를 타고 넘어온 가족들도 있었습니다. 북한군인들도 마찬가지고 고급 군인들도 자기 세대와 자녀들의 세대들의 안정과 발전을 위해서는 어떻게든지 외부세계의 정보를 듣고 나가려고 하거나 어떤 그런 열망이 상당히 많아졌다는 걸 봐서 저는 북한군 의식변화가 상당히 안묵적으로 변화가 많이 일어나고 있다. 언젠가 이것이 때가 되면 상당히 예측 못할 그런 사태까지 올 수 있다. 그렇게 예측하고 있습니다.

 

그와 맞물려서 남한 새 정부 들어서 북한의 계속적인 도발 어떻게 보고 계십니까?

 

: 김정은은 뭐랄까요. 아버지 할아버지와 똑 같은 독재체제 세습체제를 강화 시키기 위해서 상당히 공포정치를 하고 있으면서 계속적으로 한국과의 협상이 아닌 미국과의 협상을 통하여서 북한의 우월 민족, 우월 사상, 유일한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의 우월성을 드러내려고 하고 있습니다. 북미협상을 이끌어 내고 평화체제로 가기 위한 그러한 마지막 교두보를 확보하려고 안간힘을 쓰고 있다고 보고 있습니다.

 

북한이 국경선을 강하게 통제하면서도 탈북민들은 여전히 계속되고 있다면서요. 요즈음 탈북자들은 어떤 유형이 많습니까?

 

: 계속적으로 탈북민들이 이어지고 있는데 옛날 90년대 후반이나 2000년대 초반과는 다른 가족형의 탈북이 많아졌고요. 한국에 와 있거나 이미 해외로 나와 있는 가족들이 자기 가족이나 친인척을 데려오고 있는, 그 가운데서도 10대 20대 젊은 층에 그러한 가족들, 젊은 층이 많이 들어오고 있는 상황입니다. 그래서 상당히 이런 부분은 시민단체와 정부와 종교계가 정말 힘을 써서 지원하고 또 국제사회가 함께 이런 부분에 관심을 가져야 할 것으로 보고 있습니다.

 

정 대표님 탈북병사 들어오게 되면 잘 맞으실 텐데 만반의 준비를 하시겠지요.

 

: 그럼요. 이 친구가 정말 원했던 자유, 대한민국으로 오면 정말 우리 가족처럼 환영하고 제3국에 있는 탈북청년과 통화를 했습니다만, 자기는 꿈이 있다. 그의 꿈은 ‘열심히 공부해서 자기가 하고 싶은 일을 해 보겠다.’라고 말했습니다. 그래서 저희가 도움이 된다면, 또 한국에 정착하고 아직 젊으니까 공부를 잘 할 수 있도록 가이드 역할을 잘 해 보려고 생각 중에 있습니다.

 

목요대담 오늘은 정 베드로 북한정의연대 대표로부터 특각 탈북병사의 이야기 함께 들었습니다. 지금까지 인터뷰에 RFA 이현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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