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탈북인 마영애 씨가 뉴욕 북한유엔대표부 앞에서 시위를 하고 있다.
탈북인 마영애 씨가 뉴욕 북한유엔대표부 앞에서 시위를 하고 있다.
사진 제공: 마영애

 

미국에서 탈북인으로 인권운동을 펼치고 있는 마영애 씨는 ‘미국 대학생으로 북한 관광 갔다 결국 사망하는 참사는 정말 말로 표현할 수 없다’면서 ‘북한에서 웜비오 씨는 전기고문을 당했기 때문에 결과적으로 사망하게 됐다’고 자유아시아방송과 회견에서 밝혔습니다. 김정은의 지시를 받는 국가안전보위부는 정신적 타격을 줄 수 있는 ‘물고문, 전기고문’을 하는데, 신체 외부에 상처가 나지 않게 철저한 교육을 실시 한다고 밝혔습니다.

목요대담 오늘은 국제탈북민 미주 대표 마영애 씨와 오토 웜비오 씨의 사망에 대한 이야기와 북한을 방문하는 외국인들에 대한 이야기로 함께 합니다.

북한에 언제 외국인들이 들어옵니까?

: 제가 탈북하기 전에도 해외에서 들어오는 여행객들이 있어요. 비록 북한이란 나라도 4월이나 6월달이 되면, 2월 16일에는 김정일이 생일이라고 해서 해외서 관광객들이 들어오고, 4월달에는 특히 김일성이 살았을 때는 4월의 봄 축전이라고 해서, 한마디로 말해서 음악회지요. 각 나라의 연예인(음악인) 들, 솔직히 자유나라에 사는 사람들은, (북한처럼. 눈을 갖고도 보지 말아야 되고, 귀를 갖고도 듣지 말고, 입은 갖고는 말을 하지 말아야 되는, 그런 억류된 독재적인 이런 틀 안에서 살지 않았기 때문에) 자유스럽게 말할 수 있잖습니까?

이렇게 행사에 초대된 사람들 자유스럽게 행동할 수 있습니까?

: 제가 평양에 있을 때 미국에서 4월의 봄 축전에 음악인들이 평양을 방문해서 여러 가지 공연도하고, 다른 나라에서 온 연예인들과 함께 음악회를 하면서 마지막에는 종합공연도 하고 이렇습니다. 그런데 이럴 때도 그들이 자유롭게 말을 할 수 없고, 자유로운 행동도 할 수 없고, 딱 억류된, 버스면 버스에 올라서 자유로운 이야기를 못하고, 또 내려서 어떤 공연장으로 가도, 거기서는 어떤 제한된 이야기 만 해야 되는, 이런 것들을 보위부가 적극적으로 그들을 감시하고 만약에 그들 중에서 북한이라는 나라나 생활환경에 대해 비난 했을 때는 그들을 잡아다가 조사하는 이런 일들이 있었어요.

외국인들 어떤 이유로 북한에 억류하고 있습니까?

: 북한을 방문하는 여행객 들이나 무역일꾼들이 의료품이나 그리고 식량이나 이런 것들을 가지고 들어와 지원하고, 합작 회사도 만들고 회사를 꾸려 놓으면 나중에는 그 사람들 꼭 남한의 안기부 올가미에 걸어서 많은 사람들이 체포 당하는 이런 것들을 저는 직접 목격 하고 온 사람이고, 그런 사건에 연류 되었던 적도 있습니다.

오토 웜비오 씨에 대한 이야기 해 주시지요.

: 작년에 오하이오 주에 있는 대학생 오토 웜비오가 북한에 관광을 가지 않았습니까 21살의 젊은 청년이 얼마나 궁금한 게 많겠어요. 웜비오 청년도 진취성이 강하고 궁금증이 많으니까 관광으로 북한을 방문했는데, 북한에서 일어났던 웜비오 사건 두고 그것은 굉장히 새로운 일도 아니고 놀랍지도 않았습니다. 저는 북한에 있을 때나, 지금이나 북한 내에서 자주 일어나는 사건이거든요.

북한에서 외국인들을 붙잡고 정치화 한다고요.

: 외국인들이 북한에서 체포 되는 거는 정말 어려운 문제가 아닙니다. 자유국가에서 살던 사람들이 말도 막 하고, 어려우면 어렵다고, 이 나라 대통령이 왜 이래! 이거 말 안 할 수가 있겠습니까? 그런데 이번 오토 웜비어 같은 경우에는 김정은 사진이 있는 신문에다가 신발을 쌌다. 정치적인 선전구호를 훔쳤다. 이런 이야기를 하는데 사실 이거는요. 정치적 모함이라고 생각합니다. 북한의 김정은의 지시에 따르는 국가안전보위부가 직접적으로 오토 웜비어 청년을 이용해서 국제적인 이슈화를 시키려고 그 사건을 만들었다고 저는 생각을 했어요.

북한에선 어떤 고문이 이뤄지고 있습니까?

: 국가보위부가 하는 그런 고문들이 여러 가지가 있지요. 정신적으로 타격을 줄 수 있는 물고문, 전기고문, 그건 뭐 외각적으로 나타나지 않지 않습니까? 자기 나라로 돌아 간다고 해도, 그 때문에 발각되지 않게, 몸에다가 상처를 준다던가, 흉터를 남겨서 국제적으로 인권의 국가로 다시 전략되는 것들을 생각해, 철저히 교육 시키거든요. 그러기 때문에 오토 웜비오 같은 경우에 전기 고문을 많이 했다고 저는 생각을 합니다. 일 전에도 그런 고문 많았고 또 물 고문. 지금 21세기에 과연 북한이라는 나라가 또 유엔에 가입돼 있는 조선민주주의 인민 공화국이 외국에서 들어 가는 사람들을 이렇게 정신적으로 바보로 만들고, 정치적으로 젊은 청년들을 이용해 자기들이 얻고 저 하는, 과연 자기들이 얻고 저 하는 것은 무엇일까요. 대한민국하고는 대화를 안 하려고 하는 도도한 김정은의 이런 태도를 봤을 때, 미국 하고 독대하겠다는 겁니다. 미국과 독대해서 핵무기나 그런 국가적인 이득권을 미국으로부터 인정을 받으려 하는 겁니다.

북한유엔대표부 앞에서 시위도 하셨다고요.

: 해외에서 들어간, 특히 미국에서 들어가는 선교사들이나, 기자들 이런 사람들을 정치적인 희생양으로 이용하는 그리고 그들의 생명을 정말 목 조르기를 해서 결국 이번에 웜비오가 죽임을 당하는, 저는 그래서 이번에 유엔 북한대표부 앞에 가서요. 오토 웜비오의 죽음을 놓고 몸부림을 쳤는데요. 많은 미국인들이 제 옆에 와서 같이 지지를 해 줬고, 정말 처음에 제가 누군지도 모르지요. 그냥 코리안 엄지 손가락을 켜 들면서 네가 정말 대단한 여자다. 네가 정말 대단한 인물이라고 이러는데 정말 그때 부끄럽고 제 눈에서 눈물이 흘렀어요. 너무나도 부끄럽고요. 저는요. 그들 앞에 죄인이었습니다. 왜, 저는 죄가 있더라고요. 그 죄가 뭐겠습니까 북한에서 태아 난 것이 죄더라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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탈북인 마영애 씨가 뉴욕 북한유엔대표부 앞에서 시위를 하고 있다. 사진 제공: 마영애

 

북한유엔대표부 앞에서 시위 때 무엇을 요구하십니까?

: 시도 때도 없이 북한대표부 앞에 가서 시위를 하고 북한의 인권문제, 핵을 멈춰라! 인권탄압을 그만 둬라 먹여라! 탈북자들을 공개처형 하지 마라! 요구는 그거입니다. 그리고 솔직히 북한에서 배골타 온 사람 아니잖습니까? 저는 그 죄를 씻기 위해서라도 저는 정말 북한의 동포들의 인권과 탈출해 나온 탈북자들의 인권, 중국과 동남아에 떠도는 탈북민들, 쫓겨 다니는 심각한 모습들, 저도 물론 그 속에 있었던 한 사람이었지만요. 제가 미국에 와서 북한대표부를 시도 때도 없이 찾아가서 그 문짝을 두드리고 그 앞에서 제가 고성을 지르는 이유는 북한의 2000만도 안 되는 동포들에게 자유를 주고 싶고, 그들의 인권을 지켜주고 싶고, 정말 그들이 배불리 먹을 수 있는 이런 것 때문에 저는 북한대표부 앞에 가서 시위를 할 때마다 눈물을 머금고 시위를 합니다.

목요대담 오늘은 국제탈북민 미주대표 마영애 씨와 오토 웜비오 씨의 사망에 대한 이야기와 북한을 방문하는 외국인들에 대한 이야기로 함께 했습니다. 지금까지 인터뷰에 RFA 이현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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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영애 씨(오른쪽에서 세번째)가 뉴욕에서 북한 5차 핵실험을 규탄하는 시위를 하고 있다.
마영애 씨(오른쪽에서 세번째)가 뉴욕에서 북한 5차 핵실험을 규탄하는 시위를 하고 있다.
사진 제공: 마영애 씨

 

탈북인으로 미국에서 북한인권운동을 펼치고 있는 마영애 씨는 북한이라는 나라는 너무 비참하고 서민들의 생활은 그야말로 말로 표현하기 어렵다고 말하고, 전기가 없어서 기차가 보름씩 출발하지 못 하는 이런 상황에서도 엄청난 무기를 만들어 대한민국이나 미국을 향해서 대륙간탄도 미사일을 실험하는 김정은이 용서가 안 된다고 자유아시아방송과의 회견에서 밝혔습니다.

그는 북한이 핵과 미사일로 국제사회를 위협하고 있지 않느냐면서 북한에서 태어난 사람으로서 국제사회 앞에, 그리고 오토 웜비오 사건을 보면서 북한에서 태를 묻고 출생한 것이 혐오스럽게 느껴진다고 말했습니다.

 

목요대담 오늘은 탈북인으로 미국에서 북한인권을 위해 활동하는 마영애 씨를 만나봅니다.

 

현재 뉴욕에서 북한인권 활동을 펼치고 계시는 데 세계인들은 ‘북한의 현실’을 어떻게 보고 있습니까?

 

: 미 주류 사회 사람들과 대화도 많이 나눴고, 그들의 북한에 대한 이야기는 이해를 잘 못합니다. 왜냐면 실질적으로 사람이 살아가는 그런 나라에서 사람의 인권을 짓밟고, 그 나라(북한)에 감옥이 모자라서 감옥을 더 지어야 되는 이런 어려운 상황, 그래서 도대체 이해를 할 수 없는 그리고 처형하는 문제를 볼 때 자유사회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의 머리 속에는 그것이 도대체 이해가 될 수 없다는 사실을 저는 알게 됐습니다.

 

그 동안 미국 의회나 유엔에서도 증언하신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증언하면서 느낀 점 있으면 말해 주시죠.

 

: 제가 미국에 와 살면서 미국 국회에서도 증언했었고, 그리고 뉴욕에 있는 유엔에서도 두 번이나 유엔총회에서 국제적인 차원에서 북한의 문제를 논의하는 그런 자리에도 제가 갔었습니다. 그런데 국제사회가 북한에 대해 바라보는 시각은 항상 북한이 인권을 유린하고 수많은 죄 없는 사람을 정치범 수용소에 가둬 넣고, 그들의 인권을 짓밟고요. 그들(인민)은 사람인지 짐승인지 구별 안 하는…..북한이라는 나라가 그런 일을 강행하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북한 관리들도 유엔 총회에 참가하지요.

 

: 유엔에서는 해마다 9월부터 12월 사이에는 각 나라가 자기들 나라에서 일어나는 문제들을 유엔에 들고 와서 상의 하고 방안 책을 찾고 하는데, 북한의 관리들은 유엔총회에 참가해서 도대체 납득이 안 되는 이야기 만 하는 겁니다.

 

미국에서도 탈북인들이 증언자로 활동하고 있지요.

 

: 미국에도 많은 탈북인들이 정착해 있고. 그들이 다 북한이라는 나라에서 살다가 그 땅을 되돌아 보지 않겠다고 해 탈북한 난민들이거든요. 이런 사실들을 국제사회가 지켜보고, 이들의 증언을 들어보고, 과연 이런 나라가 있을 까? 그렇게 못 먹고, 못 살고, 어렵고, 고통을 당하는 그런 땅에서 독재자는 엄청난 미사일을 발사하고 있지 않습니까

 

북한을 탈출한 이후 북한이 긍정적인 면에서 변한 것이 있습니까?

 

: 솔직히 말씀 드린다면은요. 북한 동포들, 제가 있을 때 2300만에서 많이 굶어 죽고 2000만도 안 되는 이런 상황일 때 수많은 사람들이 그 땅을 버리고, 나서 살던 땅을 뒤로 하고 다른 나라로 탈출하는 그런 당시였거든요. 그런데 그때나 지금이나 달라진 게 별반 없습니다.

 

북한에 계실 때 굶어 죽는 사람들을 직접 보셨는지요.

 

: 그때 당시에는 배급이 중단이 되고 시장경제를 돌지 못하게 하니까? 자본주의 사회생활 양식 이라고 했어요. 시장 운영을 잘 못하게 하니까 그때 수많은 사람들이 굶어 죽었고, 정말 아사 되었던 그 모습들, 저는 지금 생각하면은요. 심장이 떨린다고 해야 맞을 것 같은데 저는 평양이었지만, 평양에 살면서도 수많은 사람들, 특히 어린 아이들, 고령의 노인들이 굶어 돌아가시는 모습을 직접 보고 온 사람입니다.

 

북한에서 김일성이 사망한 후 김정일 시기에는 외교활동을 많이 하지 않아 어려웠다고요.

 

: 2000년도 초까지는요. 즉 1994년 김일성 사망한 이후에 북한에 엄청난 기아가 발생했죠. 일단 자연재해로 인해서 북한의 식량난으로, 공급이 잘 안되고 그리고 김일성이 살았을 때는 외교활동으로 해서 다른 나라들에서 식량도 들어오고, 베트남에서는 알랑미 쌀이 들어오고, 중국과 동남아 일원에서는 흰쌀 내지는 옥수수가 들어와서 평양사람들도 근근이 먹고 살았는데, 김일성이 죽고 김정일이 통치하며 외교활동을 많이 안 하는 사람이기 때문에 다른 국가와의 거래를 잘못 하는 거예요. 그리고 김정일이 무기 생산에 힘을 들였지요.

 

북한에 살 때 식량 사정, 전기 공급 등 불편했던 이야기도 해 주세요.

 

: 사실 이 방송을 통해서 한 가지 공개를 하고 싶은 것은, 저의 남편(북한) 쪽에 삼촌들이 다 군수품 공장의 연구사 들이고, 그런 기관에서 근무를 했어요. 그런데 그들의 얘기를 들어보면요. 자강도 강계 이런 곳은 갱도고, 군수물자를 생산 하는 지하 갱도들로 되어 있거든요. 그런데 그분들이 오셔서 말씀 하시는 것 보면은요. 눈이 딱 깜 깁니다.  무기를 생산하는 곳으로 설탕이 얼마나 들어가며, 쌀이 얼마나 들어가고 기름이 얼마나 들어 가는지, 이런 것들이 얼마나 군수품에 돌려지는지, 그때 당시에는 평양 시민들도 공급이 안 돼가지고 제일 처음 북한에서 식량난이 고통을 당했던 것이 평양시 사람들 이거든요. 어디가 훔쳐 먹을 데도 없고 콘크리트 바닥에 심어 먹을 자리도 없고, 그러니까 국가에서 뭘 안주면, 그대로 앉아 꼼짝없이 굶어 죽는 거에요. 평양도 이런 상황인데 지방 같은 경우에 더 한심하겠지요. 그렇지만, 지방 같은 경우에는 어디 가서 콩을 훔쳐 먹을 데도 있고, 익지 않은 벼를 훔쳐다가 절구에도 찧어서 먹고 이렇게 할 수도 있다고, 제일 어려움을 겪은 것이 사실은 평양입니다. 그리고 지방의 경우에는 국가적으로 공급이 돼야 될 식량이 공급 안 되니까 정말 온 국가가 도둑질을 해야 되고, 정말 그거 안 하면 죽으니까요. 그때로부터 탈북의 대열이 늘어 났다고 봅니다. 그리고 평양은 그래도 사람들이 뭐 천국이라고 이렇게 얘기한 사람들도 많지만, 사실 평양에 전기가 모든 일을 하지 않습니까? 전기가 안 들어와 냉장고를 쓸 수도 없고요. 평양도 똑 같았습니다. 겨울 같을 때는 20층 30층 40층 그런 아파트들이 난방이 보장 안되니까 변기들이 다 얼어 붙어서요. 정말 비참한 평양시민들의 모습이 잊혀지지 않고 저도 거기에 한 사람이었지만, 정말 지금 이렇게 뒤돌아 보면은요. 지금도 가슴이 저려 지도록 가슴이 아파요.

 

북한 동포들을 위해 인권활동가로 활동하고 계시는 데

 

: 북한에서 저를 살 생부 명단에도 올려 놓는 상황까지 왔는데요, 제가 바라고 있는 것은 어느 한 사람의 희생이 없이는 무엇을 이뤄낼 수 없는 그런 것들이 많지 않습니까?

 

목요대담, 오늘은 탈북인으로 미국에서 북한인권을 위해 활동하는 마영애 씨를 만나봤습니다. 지금까지 인터뷰에 RFA 이현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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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양 신흥단고기집에서 판매하고 있는 단고기장(보신탕)과 개고기로 만든 수육을 평양주민들이 먹고 있는 모습.
평양 신흥단고기집에서 판매하고 있는 단고기장(보신탕)과 개고기로 만든 수육을 평양주민들이 먹고 있는 모습.
사진-연합뉴스 제공

 

여러분 안녕하십니까? 통일문화산책 진행에 이현기입니다.

우리 조상들이 남겨준 전통문화가 광복 이후 남과 북으로 나뉘어져 지금도 생성돼 오는 서울문화 평양문화의 단면들을 살펴봅니다.

 

오늘은 말복이지요? 초복, 중복 지나고 말복이니까 여름더위 다 지난듯하지만 아직은 아닙니다. 통일문화산책 오늘도 북한문화평론가 임채욱 선생과 함께 복날의 특별한 풍경이 있는지 알아봅니다.

 

먼저 복날의 의미를 좀 말씀해주시죠.

 

임채욱 선생: 복은 초복, 중복, 말복 해서 삼복이라 하는데 여름철 가장 더울 때를 나타냅니다. 그래서 삼복더위라고 합니다만 이때 복은 한자로는 엎드릴 복(伏)자를 씁니다. 쇠도 더운 불기운에 눌려서 꼼짝 못하고 엎드린다는 것을 표현하기 위해 엎드릴 복자를 쓴 것입니다. 여기서 쇠가 왜 나오느냐 하면 초복이 하지가 지나고 세 번 째 맞는 경일(庚日)이고, 중복은 그로부터 또 열흘 지난 경일이고 말복은 입추가 지난 후 첫 번째 경일이기 때문에 경자와 관계되기 때문입니다. 이 경(庚)자는 우리가 갑, 을, 병, 정, 무, 기, 경, 신, 임, 계라고 하는 10간(干)에서 따온 것이고요, 이때 경은 쇠를 뜻하는 글자지요. 쇠는 모든 물질에 이기는 것이지만 불에는 지지요. 그래서 쇠 경자가 든 날이지만 불더위한테는 꼼짝 못한다고 엎드릴 복자를 쓰게 된 것입니다. 또 이런 설도 있습니다. 삼복더위에는 개구리도 견디기 어려워 습한 땅에 배를 붙이고 엎드려 있다고 엎드릴 복자를 쓴다는 것이지요.

 

그럼 복날의 풍경이랄까, 세시풍속이 있는지 알아보지요.

 

임채욱 선생: 복은 24절기와 관계되는 날자가 아닙니다. 24절기는 양력기준으로 입춘이다, 입하다, 입추다 하는 것인데 복은 음력 기준으로 더울 때를 나타내려고 만들어 낸 것이라서 태양 기준인 24절기와는 관계가 없습니다. 다만 기준 점을 하지 지나서 열흘, 입추 지나서 첫 번 째 경일로 정하였으니 가장 무더울 때를 비교적 정확하게 맞추고 있지요. 복날은 절기를 맞듯이 특별한 놀이풍속이나 행사는 없지만 모래찜질을 한다든가, 산간계곡에 들어가서 발을 씻는 탁족을 많이 했다는 기록은 있지요. 다만 더위 때문에 생겨난 것이므로 이 날 따라 먹는 음식이 있지요. 주로 몸을 북돋우는 보신음식인데, 예로부터 개를 잡아서 끓이는 개장국, 닭에 인삼을 넣어서 백숙으로 만든 계삼탕을 많이 해먹었지요. 드물게는 팥죽을 쒀먹기도 했습니다. 팥죽을 먹으면 더위를 피하고 병에 걸리지 않는다는 속설도 있습니다. 옛 시에 “무더위에 먹는 죽이 부자 집 제호탕 보다야 못하겠지만 그래도 더위 씻는 방책이라 하겠네” 라고도 읊었습니다. 제호탕은 매실, 사인, 백단향 등을 넣은 청량음료를 말하지요. 오늘날에도 이런 음식은 남북한에서 다 먹고 있다고 봐야겠지요. 물론 이때 많이 나는 제철 과일인 수박, 참외도 복날 빠지지 않고 찾아 먹었지요.

 

실제로 남북한에서 이런 모습을 볼 수 있습니까?

 

임채욱 선생: 북한달력에는 복날이 표시 안 된 것이 많습니다. 표시된 것도 달력 하단에 복날 표시를 하고 있습니다. 예로부터 전통적으로 북한지방에서 먹었던 삼복음식은 가장 보편적인 것이 개고기나 소고기를 푹무르게 끓인 고기국입니다. 이런 보신탕 외에도 미역국에 호박과 고추장을 넣고 끓이거나 미역국에 밀가루를 넣어 수제비국을 만들어 먹었다고 합니다. 이열치열하는 지혜를 엿볼 수 있지요. 평양지방에는 냉국이나 시원하게 콩국을 만들어 먹기도 했습니다. 오늘날 북한에서 먹는 삼복음식은 이보다 아주 종류가 많습니다. ‘민족명절료리’라는 자료를 보면 이런 것들입니다. 토끼고기탕, 단고기국, 소고기 매운탕, 소고기불고기, 삼계탕, 햇닭찜, 햇닭고기죽, 뱀장어탕, 뱀장어구이, 오복탕, 상추쌈, 갓잎쌈, 콩잎쌈, 피마주잎쌈, 파국, 풋고추산적, 세치네장, 섭조개탕, 어죽, 팥죽, 오이깍두기, 벼락김치, 녹두묵물. 단고기국은 남쪽에서 말하는 개장국이지요. 개고기를 단고기라고 하는 것은 씹으면 씹을수록 단맛이 난다고 단고기라고 하지요. 벼락김치는 겉절이를 말하는 것 같습니다. 그러니까 전통적으로 먹어왔던 것에서 오늘날 먹는 음식을 추가한 것이겠지요. 탈북자 말에 의하면 북한에서도 복날 음식을 찾아 먹는 집은 있지만 극소수이고 가족단위로 복날외식을 하는 경우도 도시에선 더러 볼 수 있지만 지방에는 거의 없다고 합니다. 다만 직장단위로 복달임을 하는 풍경은 많이 볼 수 있다는 것입니다.

 

한국에서 복날은 어떤지 한 번 보지요.

 

임채욱 선생: 1960년대까지는 복날 기사가 신문에 나기도 했지만 이젠 복날 기사는 없지요. 특별한 풍경을 볼 수 없다는 것이겠지요. 요즘 보면 집에서 삼복음식을 절식으로 해먹기보다 외식으로 때우지요. 아마 빠지는 집이 없이 외식을 즐기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음식점에서 개고기, 즉 구탕이나 삶은 개고기 요리, 닭고기 삼계탕을 보신탕으로 먹습니다. 복날을 전후해서는 닭이 동나고 개가 많이 잡힌다는 통계가 있지요. 비록 10 여 년 전보다는 개고기 수요가 좀 줄어들고 있다는 현상은 있습니다만 여전히 삼복더위 절식을 찾아먹고 있다고 해도 될 것 같습니다. 결국 삼복음식으로 북한에선 개고기, 남한에선 닭고기를 선호한다고 보면 되겠습니다. 북한에선 개고기를 얼마나 높이 치는지 “오뉴월 단고기 국물은 발등에 떨어져도 약이 된다”라고 합니다.

 

복날은 절식을 찾아 먹는 것 외에는 특별한 풍속이 없다고 알면 되겠네요.

 

임채욱 선생: 지방에 따라 복날 이야기가 전해지는 곳도 있습니다. 가령 “복날 비가 오면 보은 큰 애기가 운다”는 말이 있습니다. 충청북도 보은은 대추가 많이 나는 고장인데, 대추나무는 복날마다 꽃이 핀다고 합니다. 그러니 복날에는 비가 오지 않아야 하는데 비가 오면 보은 처녀는 시집 갈 혼수준비가 어려워진다는 것이지요. 앞에서 복날 발을 씻는 탁족을 한다고 했는데 복날에는 목욕을 하지 않는다고 합니다. 복날 목욕을 하면 몸이 여윈다고 하지요. 그래서 더워도 발 씻는 것으로 끝낸다고도 합니다. 혹시 모르고 초복 날 목욕을 했으면 중복, 말복날도 목욕을 해야 하는 것으로 돼 있습니다.

 

통일문화산책 함께 해주신 여러분 감사합니다. 지금까지 기획과 진행에 RFA 이현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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