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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12-24

RFA PHOTO/ 이현기

실향민들의 소망을 담은 글과 물품들이 걸려있는 자유의 다리.

MC: 미국의 수도 워싱턴 디시 일원에 사는 실향민들의 간절한 소망을 담는 연말특집
‘고향에 가고 싶어요’ 가 방송됩니다.

MUSIC(아리랑)

워싱턴 일원에는 약 15만여 명의 한인들이 살고 있습니다. 북한에 고향을 둔 실향민들은 대략
만 5천여 명에 이릅니다.

고향을 떠난 한국 사람들은 언제든 고향에 계신 부모 형제에게 안부를 묻고 소식을 들을 수
있습니다. 하지만, 실향민들은 전화나 편지, 그 어떤 방법으로도 고향의 가족, 친지들의 안부를
물을 수가 없습니다. 실향민 김수향 씨는 고향에는 통일 이후나 가지, 지금 북한에 가 봤자 감시
속에 어떻게 고향을 마음 놓고 찾겠느냐며 고향 가는 희망도 버렸다고 말합니다.

: 내가 죽기 전에 통일되면 고향에 가는 거고요. 그렇지 않아도 북한에 가 봤자 통제
때문에 고향까지는 갈 수가 없을 것 같고, 그래서 희망을 버리는 게 좋지 않겠습니까?

고향이 있어도 아무 소식도 들을 수 없는 게 바로 실향민들의 안타까운 현실입니다. 실향민들은
지금 이 순간에도 가족들의 소식을 애타게 기다리고 있습니다. 실향민들은 이제 70-80의 고령으로
상봉 가능성이 점점 줄어들고 있어 더욱 애를 태우고 있습니다. 그래서 실향민들은 가족이 보고 싶고
그리울 때는 고향 사람과 만나 서러움을 달래고 기쁨을 나눕니다. 사리원이 고향인 김두영 씨의 고향
그리는 마음 함께 들어보지요.

: 사리원에 내가 다니던 학교에 가보고 싶고, 내사 살던 동네에 가보고 싶습니다. 거기
경암산에도 가보고 싶고, 우리 학교 다닐 때는 장수산, 정방산 등에 소풍 가곤 했습니다.
그런데 가보고 싶습니다.

지난 3월, 황해도민회 회원들이 함께 모였습니다.

(현장음) 황해도 도민회 제18회 정기총회 및 신춘 대잔치를 시작하겠습니다.
오랜 세월동안 고향땅 황해도에 사랑하는 부모 형제 자매와 이웃 동료를 놔두고 이역만리 타향땅에서
아직도 통일의 염원을 기다린 채 우리는 오랫동안 기다렸습니다.
이제 우리 곁에 계신 분들이 바로 내 부모들과 똑같은 사투리를 쓰는 우리 이웃입니다. 이제 그들과
함께 즐거운 시간을 갖기를 바랍니다.

애국가가 울려 퍼질 때 몇몇 실향민들은 눈물을 흘렸습니다.

: 죽기 전에 통일이나 됐으면 원이 없지요.

워싱턴 황해도민회 회원들의 바람은 무엇인지 들어봅니다.

:만일 이산가족 상봉을 한다고 하면 한 번에 몇만 명씩 해서 끝내 버리는 것 그렇지 않으면
할 필요도 없어요. 우리같이 나이 먹은 사람들은 가고 싶어도 몇 년 있으면 세상 뜰 텐데
한 번에 100명씩 만나서 언제 다 만나볼 수 있겠어요. 그래서 기대도 안 합니다./ 빨리
통일이 되는 것만 바라는 거지요. 그래야만 한 발자국이라고 갔다 올 수 있고 볼 사람도
볼 수 있을 것이니까…
고향에는 통일되어야 가지 갈 수 있겠어요?/ 친척, 부모 형제 만나면 신앙을 심어주고
오는 것이 희망이에요. :

황해도민들은 이날 여흥 순서를 갖고 오랜만에 만난 고향친지들과 고향을 그리는 향수에 듬뿍
젖기도 했습니다.

(현장 노래-----)


실향민들은 고향 사람끼리 만나 실향의 한을 달래기도 합니다. 지난 9월 워싱턴 이북도민회는 제10회
이북도민의 날 행사를 했습니다. 이날 150여 명의 실향민은 결의문을 통해 미국에 사는 이산가족들의
상봉을 위한 법안이 미국 의회를 통과할 수 있도록 앞장설 것을 다짐했습니다.

: 미국에 살고 있는 이산가족들은 미국 정부를 통해서 가족상봉이 이루어지고, 이산가족들의
인도적 고통을 해결하는 생사와 거처 확인 그리고 소식 교환이 이루어질 수 있는 법안이
미국 의회에서 통과될 수 있도록 앞장설 것을 결의한다.

특히 미국 내 이산가족들을 인터뷰해 그들의 아픔을 ‘LOST FAMILY’란 이름의 책으로 펴낸
고등학생들도 참석해 큰 박수를 받았습니다.

실향민을 인터뷰한 손성민 양은 책을 발간한 이유를 설명합니다.

: 저희가 책을 발간한 목적은 이 책을 통해서 미국 의원들에게 책을 전하고 의원들이
이야기를 읽고 이 문제가 얼마나 중요하고 시급한 문제인지 또 하루빨리 해결해야될지를
알리기 위해서 노력하고 있습니다.

오랜만에 고향 사람들과 함께해 기쁘다는 실향민들! 하루빨리 통일이 돼서 고향땅을 밟고 싶은 것이
가장 큰 소망이라고 말합니다.

: 이북도민회 모임이 10년째 맞았습니다. 앞으로 더욱더 큰 발전을 이루고 통일에
이북도민들이 큰 역할 되기를 바랍니다./오랜만에 만나니까 반갑고 빨리 통일되어야죠./
나는 오늘 처음 나왔어요. 남북이 통일됐으면 좋겠네요./실향민들 다 같이 모이니까 좋지요.
/이렇게 행사를 해줘서 고맙고요, 실향민들을 위한 행사에 더 적극적으로 참여하고 싶습니다.
/하루속히 통일을 바라지만 통일이 요원해서 생존의 통일을 못 보고 갈 것 같습니다.
/어렸을 때 고향을 떠나서 50년 만에 60년 만에 친구들을 만나니까 옛날 생각이 납니다.
하루속히 북한의 있는 형제 자매들을 만나기 위해 통일되기를 바랍니다.

고향을 떠나온 지 60여 년, 백발의 노장들이지만 어린아이들처럼 고향 사람을 만나는 것이 반갑다고
말합니다.

: 날씨도 좋고 좋습니다. 고향 사람들을 만나니까 감회가 남다릅니다. /오래간만에
참석했고요. 이국 땅에서 도민들이 뭉친다는 게 참 기쁩니다. /이런 모임을 하게 돼서
기쁘고요. 여기에 모인 분들은 다 연로하신 분들인데 고향이 얼마나 그립겠어요. 이런
기회를 통해서 회포를 풀고 이야기를 나누는 시간이 됐으면 좋겠습니다./ 고향 사람을
만나니까 감개무량하고 말을 해보면 그분도 아는 분이고 나도 아는 분이어서 말이 통해서
좋고 옛날 이야기하니까 좋고 그렇습니다.

이날 황해도민회 임광수 회원이 낭독한 이경남 씨의 ‘고향은’ 이란 시는 실향민의 마음을 그대로
대변해 줍니다.

모진 바람에 흩뿌려진 꿏잎들처럼
산산이 찢기어 달려온 몸이었다.
한 백 리쯤 내달리다 뒤돌아보니
거기 하늘에는 무지개 걷힌 자국이 선연했던가
3년을 두고 그리움에 잠 못 이루고
10년을 두고 사무침에 겨워서 울고
반세기 두고 원한으로 가슴 쥐어뜯으니
내일은 백 년 고개 앞에서 누구 이름을 불러야 하나
그 누구 말했던가
고향은 어머니의 품 같은 것이라고
또 누가 말했던가
고향은 영원으로 이어지는 목숨의 문이라고
나는 매일 한 마리 나비 되어 고향의 꽃 수레를
날아서 돌고 고향은 매일 내 핏줄 속에서 바다처럼
산맥처럼 노상 뒤채긴다.

실향민 2세들은 미국에 살면서 어떤 생각을 하고 있을까요? 올해 41살 실향민 2세, 김성필 씨는
30년 동안 미국 사람이라고 자부하면서 살아왔는데 최근 한국을 다녀와서 피는 속일 수 없다는
점을 느껴 고향을 중요하게 생각하게 됐다면서 통일이 되는 날에 고향을 찾아가겠다고 다짐합니다.

: 아버님이 돌아가시고 나서 작년에 도민회를 통해 어머니와 함께 한국을 방문했습니다.
너무나도 오랫동안 한국을 잊고 살았습니다. 미국에서 30년을 살면서 ‘미국 사람이다.’
라는 자부심으로 살아왔는데 한국을 방문했을 때 한국도 많은 발전한 모습을 보았고
아무리 미국 사람의 긍지를 갖고 있어도 피는 한국 사람이니까? 이런 모임에라도 자주
참여를 해서 한국이라는 걸 잊지 않기 위해서입니다. 저희 아이들도 향우회에 데리고
오는 이유는 왜 우리가 모여야 하는지 가르치고, 우리가 한국인으로서 자취를 잊지 않고
살아가는 게 중요하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통일이 되면 가고 싶어요. 그리고 가서 만약
힘이 된다면, 또 남한과 같이 평등해질 수만 있다면 도와주고 싶어요.

40대 후반의 여성 실향민 2세 박의숙 씨는 아버지 어머니의 고향에 대한 이야기를 어려서부터 듣고
자랐다며 그동안 부모님들이 북한에 두고온 형제들을 애타게 찾았다고 전합니다.

지금 아버지는 안계시지만, 통일이 되면 제일 먼저고향을 찾기 위해 자녀들에게 할머니 할아버지의
고향을 잊지 않도록 가르치고 있다고 말합니다.

: 고향에 가보고 싶지요. 당연히 부모님의 고향이고 저희는 북한에서 태어나지는 않았지만,
소망은 하루빨리 통일이 되어서 부모님의 고향에 가는 게 저희 소망입니다. 저희 부모님이
고향 이야기 많이 하셨어요. 어려서부터 부모님에게 고향이야기를 듣고 자랐습니다. 엄마가
들려주는 고향 황해도는 평야라고 했습니다. 어머니는 과일을 드실 때도 ‘우리 고향에서는
이 과일이 이렇게 컸는데’ 라며 비교 하셨습니다. 아버지는 일찍 돌아가셨지만, 북한에
두고온 형제들을 찾고자 하셨습니다. 돌아가실 때까지도 형제들을 기다렸습니다. 저희는
전쟁을 모르고 자란 세대이지만 아버지 고향이 어디이고 무슨 일을 하다가 오셨는지를
듣고 자랐습니다.
그런데 저희 남편은 경상도 사람인데 실향민들의 애틋한 고향을 그리는 데 대해 잘 이해를
못 하는 것 같아요. 저희는 어려서부터 부모님에게서 듣고 자랐어요. 당연히 자녀들에게도
고향에 대한 애틋한 사랑을 남겨 주겠습니다. 대학에 다니는 아들이 오늘 행사에 다녀갔어요.
제 아들도 마찬가지지만 황해도에서 태어나지는 않았지만, 할머니 할아버지가 태어난
곳이니까.
항상 잊지 말라고 행사에 왔다가 학교로 돌아갔습니다.


실향민 2세 김의근 씨는 부모님이 고향에 두고온 형님과 누님 때문에 가슴앓이를 하고 사신 것을
보고 성장했다고 합니다. 고향 분이 보고 싶고 고향의 냄새가 그리워 이렇게 황해도민회를 찾는다며
하루빨리 통일이 되어 고향을 찾고 싶다고 진솔하게 말합니다.

: 북한에 저희 형님과 누님이 계십니다. 그래서 저희 부모님이 형님과 누님을 늘 못 잊어서
울면서 지내는 모습을 봤습니다. 부모님은 돌아가셨지만, 부모님을 생각하며 황해도 말씨를
쓰시는 분들의 냄새가 그리워서 도민회에 나오기 시작했습니다. 소원은 사랑하는 형님을
만나보고 싶고 어머니가 얼마나 형님과 누나를 사랑해서 평생 우시다 돌아가셨다는 것을
말하고 싶습니다. 가능하면 미국에 와서 같이 살고 싶은 마음 간절합니다. 하루빨리 통일이
되어야지요. 정말 한을 안고 사는 사람들의 소원을 하나님께서 들어주실 것입니다.
그때가 그리워지고 기다려집니다.

실향민들의 가장 큰 바람은 통일이 돼서 고향땅을 마음대로 밟는 것이라고 말합니다. 그들의 소원이
 하루속히 이뤄지기 바라는 마음 간절합니다

(실향민들의 노래)


자유아시아방송의 연말특집, 워싱턴 인근에 사는 실향민들의 간절한 소망을 담은 ‘고향에 가고 싶어요’

함께 했습니다. 기획, 진행에 RFA이현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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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05-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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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향민이 모이는 행사에 매년 1세 실향민의 수가 줄고 있어 실향민의 마음을 더욱 아프게 합니다. 그러나 최근에는 1세 실향민의 자리에 젊은 2세 들이 참가해 부모님 고향에 대한 그리움을 이어받고 있어 흐뭇한 가족애를 느끼게 합니다.

RFA PHOTO/ 이현기

실향민 시인 이경주 씨가 지난 2일 메릴랜드 주 카더록 파크에서 열린 함경도민회의 날 행사에 참석해 자작시 ’망향’을 낭송하고 있다.

워싱턴 인근에 사는 실향민 2세는 “통일되면 고향을 찾아 부모님의 발자취를 찾고 싶고 부모님이 그리던 고향을 마음껏 느끼고 싶다”고 이야기합니다.

이산 가족의 애절한 사연과 가족을 그리워하는 간절한 소망을 소개하는 ‘보고 싶은 얼굴’ 오늘은 워싱턴 함경도민회에서 만난 실향민 2세의 고향 그리는 마음을 소개해 드립니다.

함경북도 회령이 아버지의 고향이라고 말하는 여성 2세 함 모 씨는 나이가 들수록 부모님의 고향을 알고 싶다고 이야기합니다.

함 모 씨 : 부모님이 고향 이야기 많이 하셨어요. 고향에서 나는 과일들 복숭아와 배가 어릴 때 저희 머리만 하다고 자랑하셨어요. 고향의 자취를 보고 싶다는 희망을 항상 품고 계셨어요. 그래서 그런지 저희 부모님과 선조가 고향에서 어떻게 사셨는지를 알고 싶어하는 마음은 날이 가고 나이가 들수록 더해 가는 것 같습니다. 저희 아버님이 돌아가셨는데요. 돌아가시니까 애틋한 마음이 더 하네요.

지난 1972년에 미국에 정착하신 아버지가 고향에 한번 가보지 못하고 돌아가셔서 아쉽다고 말하는 2세 최 모 씨는 아버지 생각 때문에 도민회 날 행사에 참여한다고 말합니다.

최 모 씨 : 아버님을 뵈면 항상 고향 이야기를 하셨지요. 어머니는 수원이시니까. 덜 한데, 아버지는 항상 고향 생각을 하셨어요. 72년에 미국에 오셔서 2002년에 돌아가실 때까지 한국도 한 번 못 가시고 그렇다고 고향에도 한 번 못 가보고 고향에 대한 그리움 속에 사셨습니다. 몇 년 전에 제가 태어난 곳에 가 봤더니 저도 고향에 대한 애착이 있는데 아버님이야말로 얼마나 애착을 뒀겠어요. 그러다가 돌아가셨는데 지금이야 고향에 가셨겠지요. 그런 생각을 하면 고향은 평생 잊을 수 없는 곳이라고 생각을 하고 아버지를 생각하며 이 자리에 옵니다. 아버지의 고향 친지들이야 이미 작고하셔서 지금은 안 계시지만 2세로서 참석을 하고 그래야 하루 동안이라도 아버지에 대한 생각을 더 하게 되지요.

실향민의 2세가 부모님 고향을 그리는 마음 함께 들었습니다.

지난 5월 2일 함경 도민회 날 행사 때 실향민 시인 이경주 님이 직접 낭송한 ‘망향’ 시 함께 듣습니다.

하늘도 꽁꽁 얼어붙었고
이별의 아픔은 눈이 되어
원한의 파도가 산을 삼킬 듯
생사의 아비규환 속에
사랑하는 부모,형제, 처자식
천형의 생이별
눈물로 담근 흥남부두

내일이면 돌아오리라 생각했던 그날
동산의 진달래 피고지고 어언 60성상
품 속에 안고 나온 젖먹이 환갑 지났어도
아직도 이역만리 타국에서 망향의 눈물을 흘립니다.

지금은 부모님의 유택도 모르고
절기 따라 성묘조차 할 수 없는 불효의 몸
헤어진 처자식의 안부조차 막막한…
고향을 그리워할수록 더 멀리 사라지는 안타까움
뿌리를 잃은 자손들
안타까워 부르짖는 향가(鄕歌) 메아리로 되돌아오고
바람 따라 휴전선을 넘나드는 뜬 구름에 한을 싣고
훨훨 자유로 나는 새들의 나래를 앙모하며
오늘
여기 미국 땅 메릴랜드, 카더록 내셔널 파크에서 우리 모여 실향의 애환을 달래며
서로 위로하고 격려하며,
다시 조상의 은덕을 그리며 신의 은총으로
고향에 돌아갈 날을 기원합니다.
고향을 그리는 한 서린 별들
하나 둘 떨어져 가는데…


실향민 시인 이경주님의 ‘망향’ 시였습니다.

보고 싶은 얼굴 시간에는 실향민의 고향에 띄우는 편지나 아름다운 고향이야기를 전하고 있습니다. 이 시간에 고향에 보내는 편지나 방송에 참여를 원하는 분은 서울 중앙우체국 사서함 4100호 자유아시아방송이나 이메일 nk@rfa.org 로 연락 주시면 됩니다

자유아시아방송의 ‘보고 싶은 얼굴’ 제작 구성에 이현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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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05-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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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향민들의 간절한 소망은 통일돼서 고향을 찾는 일입니다. 그러나 실향민들이 고령화되고 상봉 가능성도 적어 더욱 가슴앓이를 하고 있습니다. 이산가족들의 애절한 사연과 가족을 그리워하는 간절한 소망을 소개하는 ‘보고 싶을 얼굴’ 오늘은 미국의 워싱턴 일원에 사는 실향민 할머니 두 분을 함경도민회 모임에서 만나봤습니다.

RFA PHOTO/이현기

실향민들이 5월 2일 워싱턴 근교에서 열린 함경도민회 날 행사에 참석해 애국가를 제창하고 있다.

함경남도 정평군이 고향인 올해 나이 80살 이 모 할머니는 고향 근처라도 가보고 싶지만 이젠 가긴 어렵지 않겠느냐며 고향에 대한 씁쓸함을 전합니다.

이 할머니: 고향에서 18살에 나와서 이제 80살입니다. 고향 근처에라도 가보고 죽어야 하는데 이젠 가긴 틀렸잖아요. 여기가 바로 제2 고향이에요. 고향 사람들만 부지런히 만나다가 가는 거지요. 자식들이라도 (고향 사람들 모임에) 대신 잘 나왔으면 좋겠는데 학생이고 직장인이어서 참석하지 못해 안타까워요.

이 모 할머니의 피난길은 어떠했을까 이 할머니가 들려주는 생생한 그 당시의 얘기입니다.

이 할머니: 저희 고향은 함경남도 정평군 인데요. 지금도 주소를 잘 외우지 않아요. 보따리를 지고 이고 떠나던 피란 시절이 생각납니다. 고향을 떠나 남한으로 내려올 때는 안내원 인도로 몇 친척들과 남쪽으로 가던 중 황해도 해주에 와서 붙잡혀 다시 끌려갔어요. 끌려가 하숙집에서 자던 중 밤중에 다시 안내원 내세워 배를 타고 강을 건너왔습니다. 그리고 산을 통해 남쪽으로 가는데 삼팔선에 환하게 불을 켜 놨어요 여기서 잡히면 또 붙잡혀 가게 되다 생각하고 수풀 속에 숨어 있는데 친척의 아기가 물을 달라고 해서 힘들었어요. 그 당시 저는 처녀였지 않아요. 고무 신발을 벗었어요. 고무신에 물을 담아서 아기에게 먹였어요. 그렇게 해서 조금씩 이동하는데 인민군들이 없을 때 넘어가려고 조용히 숨어서 기다리고 있었어요. 인민군들이 불빛에 보이지 않고 잠시 자리를 뜨는 것을 기다렸다가 극적으로 넘어와 개성 임시 수용소에서 몇 달 있었습니다. 그 당시는 이가 많았는데 머리에 이가 가득하게 쌓여서 하얘졌고 옷에도 기어다니던 것을 지금도 기억합니다. 그러다가 서울에 살던 친척 도움으로 남한 생활을 시작했고 지금은 미국에서 사는 거예요.

이 모 할머니의 가장 큰 소망은 죽기 전에 부모님 산소에 가보는 일입니다.

이 할머니: 다 보고 싶지마는 내 고향을 찾아 부모님들 산소에 가고 또 자랐던 곳이 어떻게 됐나 보고 싶어요.

이 할머니는 나이가 들수록 “더욱 고향 생각이 난다”고 말합니다.

이 할머니: 뭐 어릴 때 남한에 와서 결혼하고 자녀 낳아서 키우고 가족들이 많이 늘었지 않아요. 손자가 전부 14명이고 손자들이 다 공부도 잘해서 기쁘고 이제는 미국에 살면서 고향 가기를 포기하고 이런 모임에서 고향 분을 만나는 게 큰 낙으로 알고 살고 있습니다. 작년에 오셨던 분들이 올해 와보면 돌아가셨어요. 지금도 많이 안 보이잖아요. 계속 돌아가시잖아요. 고향 가는 걸 포기를 하고 살지만 고향 생각은 매일 나요. 그래서 북한 사람 소식이 있으면 기를 쓰고 듣곤 해요.

이 실향민 모임에 나온 다른 고향 출신의 신 모 할머니는 긴 타향살이 때문인지 옛 친구들 기억이 없다고 설명합니다.

신 할머니: 어렸을 때 만세교에서 뛰어놀던 생각이 나지요. 어려서 나와서 잘 고향 생각이 안 나요. 어렸을 때 강가에서 수영도 하고 놀던 생각밖에 안 나요. 초등학교 3학년 때 나왔으니까. 친구들 생각 잘 나지 않아요. 하도 오래돼서 얼굴 봐도 잘 모르겠어요.

신 할머니는 통일 이후에나 고향에 가지 지금은 가고 싶지 않다고 이야기합니다.

신 할머니: 북한에서 하는 짓을 보면 가고 싶은 마음도 없고, 통일이나 되면 가볼까 일부러 관광으로는 가고 싶지 않습니다. 관광도 정해진 곳만 가기 때문에 갈 의미도 없고 그러 잖아요.

자유아시아방송의 ‘보고 싶은 얼굴’ 이 시간에 고향에 보내는 편지나 방송에 참가를 원하는 분은

서울 중앙우체국 사서함 4100호
자유아시아방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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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FA, 보고 싶은 얼굴] “고향이 그리워요” 실향민의 호소

2009-05-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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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향민들의 간절한 소망은 통일돼서 고향을 찾는 것이라고 말합니다. 그러나 실향민들은 고령화하는 데다 상봉 가능성도 적어 더욱 가슴앓이를 하고 있습니다. 이산가족들의 애절한 사연과 가족을 그리워하는 간절한 소망을 소개하는 ‘보고 싶은 얼굴’ 오늘은 워싱턴 일원에 사는 실향민들의 고향 그리는 마음을 소개해 드립니다.

워싱턴 일원의 실향민들은 고향이 그리울 때 워싱턴 DC의 중심을 흐르는 포토맥 강의 주변에 있는 공원을 찾아 고향에 대한 향수를 달래기도 합니다. 가고 싶어도 갈 수 없는 고향을 그리며 공원의 아름다운 나무들과 신선한 공기를 벗 삼아 쓰라린 실향의 마음을 위로하고 언젠가 통일이 되면 고향을 찾겠다는 소망을 토로하기도 합니다.

어느 모임에서 만난 실향민 부부의 이야기를 들어봅니다. 이 부부는 항상 고향에 있는 가족들이 보고 싶다고 호소합니다.

고향이 그리워요. 거기 주민들이 너무 못산다는 소문이 있어서 마음이 아파서 어떻게 사는지 보고 싶습니다. 어릴 적 고향 생각하면 눈물이 나려고 해요. 내 고향에 살았으면 여기보다 마음이 편안했을 텐데 하고 생각을 합니다. 저는 초등학교 1학년 때 나와서 전 친구가 없어요. 다 잊어버렸어요. 좀 나이가 먹어서 왔으면 누가 보고 싶고 할 텐데 지금은 아무것도 생각이 안 나요. 너무 오래되어서요. 저는 1950년도 1.4 후퇴 때 12월5일 잠깐 남한으로 갔다 다시 돌아온다는 것이었는데 지금까지 못 가고 있습니다. 고향에는 어머니와 누이동생 하나 남동생 4명이 있습니다. 지금까지 소식을 모릅니다. 저는 가족들이 어떻게 사는지 죽었는지 살아 있는지 알 수도 없고 기억도 희미해졌어요. 소망은 고향이니까. 한번 가서 동생이 다섯이니까. 1명이라고 만날 수 있지 않을까. 그거지요.

올해에 85살이 되시는 어느 실향민은 북한에 있는 부모 형제-자매가 그립다고 말합니다.

고향에 가고 싶은 생각 많지요. 제일 걱정되는 게 어떻게 만나는 것에 답이 나오질 않아요. 부모님은 다 돌아가시고 안 계실 것 같은데 내가 북한을 나올 때는 부모님 형들 둘, 누이동생 둘을 두고 나왔는데 어휴 지금 들어가서 다 만나는 것은 바라지 않아요. 못해요. 이제 100세가 다 넘었을 거고 한데 살아 있는 것은 기대하기가 어렵겠지요. 고향에 가고 싶고 말고요. 이렇게 다녀봐도 원산만 한곳은 없어요. 원산 참 좋아요. 바다가 가깝고 산이 가깝고 농토가 가까워서 쌀도 좋고 반찬도 좋고 나무도 좋고 그렇습니다. 세 가지가 잘 맞아 있어요. 고향은 지금도 생생하게 기억이 나지요. 지금도 그대로 있기를 바라지만 다 없어졌겠지요. 사람도 없어지고 물건도 없어지고 다 변했겠지요. 고향에 가면 찾고 싶은 것은 친인척밖에 없어요. 동기간하고 가족만 찾으면 다 찾는 거지요.

이 할아버지는 저 멀리 고향 가족들에게 짧은 인사를 합니다.

아 친척 형제들 참 보고 싶어 이루 말할 수 없습니다.

실향민들이 가장 바라는 바는 고향을 찾고 산소에 가서 성묘하고 고향 언저리를 한번 밟아 보겠다는 소박한 소망을 말합니다. 실향민들의 바람이 이뤄지기를 기원해 봅니다. 오늘도 워싱턴 일원 실향민들의 고향 그리는 마음을 소개해 드렸습니다.

자유아시아방송의 ‘보고 싶은 얼굴’ 이 시간에 고향에 보내는 편지나 방송에 참가를 원하는 분은 서울 중앙우체국 사서함 4100호 자유아시아방송이나 이 메일 nk@rfa.org 로 연락 주시면 됩니다.

자유아시아방송의 ‘보고 싶은 얼굴’ 제작 구성에 이현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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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04-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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워싱턴 일원에 북한에 고향을 둔 실향민들은 머나먼 이국땅에서 살면서 최고의 바람은 고향 방문이지만, 자유롭지 못한 고향 방문이라면 가고 싶지 않다고 말합니다.

RFA PHOTO/이현기

워싱턴 일원의 실향민들은 그리운 고향 땅이지만, 자유롭지 못한 고향 방문이라면 가고 싶지 않다고 말한다. 사진은 오두산 통일전망대에서 본 2006년 여름의 북한 땅. 육안으로도 강 건너 집들을 볼 수 있다.

어느 실향민은 고향에는 통일 이후나 가지, 지금 북한에 가 봤자 감시 속에 어떻게 고향을 마음 놓고 찾겠느냐며 고향 가는 희망을 버렸다고 말합니다.

실향민 1: 내가 죽기 전에 통일되면 고향에 가는 거고요. 그렇지 않다면 북한에 가 봤자 통제 때문에 고향까지는 갈 수가 없을 것 같고, 그래서 희망을 버리는 게 좋지 않겠습니까?

북녘땅 고향을 떠나오면서 대학에 가고픈 소망을 이루지 못하고 미국에 이민와 사는 실향민은 당시 대학을 다니지 못한 아쉬움을 이야기합니다.

실향민 2: 어렸을 때에 이남으로 넘어와서 이북에서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남한에 넘어와 대학도 가고 싶은 꿈이 있었는데 여의치가 않더라고요. 군에서 제대한 후 미국에 와서 살고 있습니다.

‘고향 땅은 직접 가봐야 알지 뭐 아느냐?’라고 말하는 실향민은 하루 빨리 통일만을 바랬습니다.

실향민 3: 보고 싶은 거야 많지요. 친구도 있고 부모도 있고 그렇지만 다들 있겠어요. 없지요. 하고픈 것도 고향에 가봐야 알지 여기서 어떻게 알겠어요. 그렇지 않아요. 실향민들은 빨리 통일되는 것만 바라는 거지요.

‘통일이 된 후에나 고향에 가겠다’는 실향민 이야기에서 고향을 찾지 못하는 슬픔을 찾게 됩니다.

실향민 4: 고향은 통일이 돼야 가지 뭐 가겠어요.

여성 실향민은 어린 시절 소풍을 가던 때가 그립다면서 고향 사리원의 곳곳을 찾아가보고 싶다고 말합니다.

실향민 5: 사리원에 내가 다니던 학교에 가보고 싶고, 내가 살던 동네에 가보고 싶습니다. 거기 경암산에도 가보고 싶고, 우리 학교 다닐 때는 장수산, 정방산 등에 소풍 가곤 했습니다. 그런데 가보고 싶습니다.

워싱턴 인근에 사는 실향민들이 고향을 그리는 마음 함께 들었습니다.

이어서 고향에 가는 편지 시간입니다.

오늘은 황해도가 고향이신 재미교포 최추봉 씨가 형제 자매를 그리는 시를 소개해 드립니다.

누이야 아우야 우리 다시 만나자

지나간 세월이 너무 길었지

하늘 가 뜬구름 보면서

기다린 세월이 너무도 길었지

우리들의 만남을 꿈속에 뇌이면서

달도 없는 어둔 컴컴한 밤하늘에

은하수를 뿌리듯

눈물을 뿌린 밤이 너무나 많았지

누이야 아우야

이제는 그 숱한 한숨일랑

땅속에 묻고

너와 나 손을 마주 잡고

우린 다시 만나야 한다

산과 물을 넘고 건너서

막힌 장벽을 뛰어넘어

우린 다시 만나야 한다

오작교가 없으면

너와 나의 가슴에

징검다리 놓아서

견우와 직녀처럼

우린 만나야 한다

그 멈추어진 세월

그 막혀버린 산천

우리가 되찾아야 한다

누이야 아우야 우린 다시 만나야 한다


실향민 최추봉 씨의 자작시였습니다.

‘고향에 보내는 편지 주실 분은 서울 중앙우체국 사서함 4100호 자유아시아방송이나 이 메일 nk@rfa.org 로 보내 주시면 됩니다.

자유아시아방송의 ‘보고 싶을 얼굴’ 오늘은 실향민 1세들의 고향 그리는 마음을 전해 드렸습니다. 제작 구성에 이현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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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oday's KORUS House English class is an article about Chuseok, one of Korea's biggest traditional.....

전찬윤 씨의 댓글

아래는 2016년 1월 전찬윤 씨가 댓글로 올려 주신 내용입니다. 전찬윤 2016-01-29 04:00 우리나라 동포(교포) 3세가 2052년에 미국의 대통령이 될 것이다 ​ 님의 블로그에서 유익한 내용, 마음에 와 닿는 내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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