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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04-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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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에 고향을 둔 워싱턴 일원의 실향민들은 머나먼 이국땅에서 살면서 가장 바람이 자유롭게 북한을 방문해 편안한 마음으로 고향을 찾는 일이라고 말합니다.

RFA PHOTO/이현기

(이산가족들이 2006년 9월 서울에서 이산가족 상봉과 생사 확인에 적극 나설 것을 정부에 촉구하는 시위 모습.)

실향민들의 애절한 사연과 가족을 그리워하는 간절한 소망을 소개하는 ‘보고 싶은 얼굴’ 오늘은 미국의 워싱턴 일원에 사는 실향민 1세들의 ‘고향 그리는 마음’을 전해 드립니다.

최근에 만난 실향민은 “고향은 통일돼야 가지 뭐 가겠어요”라는 투정 섞인 말로 고향을 그리는 착잡한 마음을 전해 줬습니다. 실향민 1세들은 이제 나이가 평균 70살이 넘은 고령입니다. 고향에 가고픈 마음은 간절하지만, 고향에 갈 수 없는 안타까운 마음을 떨어 놓습니다.

실향민 1: 통일이 돼야 하는데 큰 걱정입니다. 죽기 전에 통일이 돼야 하는데, 누구나 소원은 통일이고 여러 가지로 걱정이 많습니다.

또 다른 실향민은 죽기 전에 통일이 되어서 조상의 묘를 둘러보는 게 가장 큰 소망이라고 말합니다.

실향민 2: 통일되어서 죽기전에 한번 내 고향땅 갔다 오는 것이 바람입니다. 내 고향땅을 밟아보고 우리조상의 묘 한번 들러보는 것이 제일 큰 소망입니다.

17살 어린 나이에 북한에서 나왔다는 실향민 노인도 죽기전에 고향에 가보는 간절한 소망은 다르지 않았습니다.

실향민 3:
17살 어렸을때 북한에서 나왔습니다. 고향 잘 몰라요. 우리 고향 군 소재지 사람들 500명 다 죽고 20명밖에 살아남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소식을 몰라요. 너나 나나 할 것 없이 그때 나이에 배우지도 못하고 살려고 남한으로 넘어와 살았습니다. 소망은 죽기 전에 통일이 됐으면 원이 없지요. 통일이 돼서 가장 가고 싶은 곳은 고향뿐이겠지요. 부모 형제다 죽었으니까? 그래도 통일이 되면 고향 한번 들여다보는 게 소원이지요.

지금도 자주 고향 꿈을 꾼다는 다른 실향민은 죽는 날까지 ‘고향은 잊을 수가 없다’ 면서 어머니는 이미 돌아가신 것 같은데 어디서 돌아가신지조차 알 길이 없다고 한맺힌 하소연을 합니다.

실향민 4: 잊을래야 잊을 수도 없고 고향이 자꾸 꿈에 나타나서 죽는 날까지 고향을 잊을 수는 없습니다. 아버지 산소가 북한에 있고 어머니도 돌아 가신 것 같은데 어디서 운명하셨는지 알 수가 없어 가슴 아프고 죽는 날까지 잊을 수 없을 것 같습니다.

워싱턴 인근에 사는 실향민들의 고향 그리는 마음을 함께 들었습니다.

이어서 고향에 띄우는 편지 시간입니다.

오늘은 서울에 사시는 김수영 씨가 함경도가 고향인 할아버지 김기순 씨를 찾는 사연입니다.

안녕하세요. 저의 이름은 김수영입니다. 6 25때 헤어진 할아버지를 찾고 있습니다 할아버지의 이름은 김기순 씨 고향은 함경남도 영흥군 새개입니다. 저희 할아버지는 90이 넘으셨습니다. 6 25당시 아내와3 살 난 아들 영태를 두고 남한으로 장사 간다고 자동차를 몰고 남한으로 왔다가 전쟁 중에 이별이 되고 말았다고 할머니 한 테서 어렸을 때 들었던 기억이 있습니다. 할머니는 이미 10년 전에 돌아가셨고, 그때 3살짜리 아들도 환갑이 지났습니다. 92년도인가 93년도인지 할아버지가 저의 할머니와 아버지를 찾는다는 소식이 있었지만 그 당시 연락이 되지 않아 아쉽게도 소식을 알 수 없게 되었습니다. 그 이후로 찾으려고 노력하였으나 찾기가 쉽지않았습니다. 이제는 할아버지도 90이 넘으셨으니 살아 계실지 돌아가셨는지도 모르겠습니다. 혹시라도 저희 할아버지의 자제분들이라도 아시는 분이 있으면 연락해 주시기를 부탁합니다. 한평생을 외롭게 보내신 저의 아버지에게 할아버지 소식을 전해 드리고자 자식 된 입장에서 이글을 올립니다 할아버지 이름은 김기순 이고요 저의 할머니 이름은 조순녀 아들은 김영태입니다. 할머니 고향은 경상남도 창영군 교화동이라 들었습니다. 혹 저희 할아버지에 대한 소식을 아시는 분은 저희 방송으로 연락 주시면 고맙겠습니다.

보내 주실 주소는 서울 중앙우체국 사서함 4100호 자유 아시아 방송이나 이 메일 nk@rfa.org 로 보내 주시면 됩니다.

자유아시아방송의 ‘보고 싶은 얼굴’ 오늘은 실향민 1세들의 고향 그리는 마음을 전해 드렸습니다. 제작 구성에 이현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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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고 싶은 얼굴] 재미 실향민 2세들의 소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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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04-07

실향민들은 자나깨나 가족들의 소식을 애타게 기다리고 있습니다. 더욱이 실향민들이 고령화되고 상봉 가능성도 적어 더욱 가슴앓이를 하고 있습니다. 이산 가족들의 애절한 사연과 가족을 그리워하는 간절한 소망을 소개하는 ‘보고 싶은 얼굴’ 오늘은 워싱턴지구 황해도민회의 신춘 대잔치 현장에서 만난 실향민 2세들이 고향 그리는 마음을 소개해 드립니다.

미국 시간으로 지난달 3월 22일 오후 미국 버지니아 주에서 한인들이 많이 거주하는 애난데일에 있는 한성옥 식당의 연회실에는 150여 명의 황해도민이 오랜만에 함께 모여 실향의 한을 달랬습니다.

이날 행사에 특별히 실향민 2세들이 참가해 부모님의 향수를 마음껏 느꼈습니다.

올해 41살 실향민 2세 김성필 씨는 30년 동안 미국 사람이라고 자부하면서 살아왔는데 최근 한국을 다녀와서 피는 속일 수 없다는 점을 알았고 고향을 새삼 중요하게 생각하게 됐다면서 통일이 되는 날에 고향을 찾아 가겠다고 다짐합니다.

김성필 씨: 아버님이 돌아가시고 나서 작년에 도민회를 통해 어머니와 함께 한국을 방문했습니다. 너무나도 오랫동안 한국을 잊고 살았습니다. 미국에서 30년을 살면서 ‘미국 사람이다’ 라는 자부심으로 살아왔는데 한국을 방문했을 때 한국도 많은 발전한 모습을 보았고 아무리 미국 사람의 긍지를 갖고 있어도 피는 한국 사람이니까, 이런 모임에라도 자주 참여를 해서 한국이라는 걸 잊지 않기 위해서입니다. 저희 아이들도 향우회에 데리고 오는 이유는 왜 우리가 모여야 하는지 가르치고, 우리가 한국인으로서 자취를 잊지 않고 살아가는 게 중요하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통일이 되면 가고 싶어요. 그리고 가서 만약 힘이 된다면, 또 남한과 같이 평등해질 수만 있다면 도와주고 싶어요.

40대 후반의 여성 실향민 2세 박의숙 씨는 아버지 어머니의 고향에 대한 이야기는 어려서부터 듣고 자랐고, 아버지가 일찍 돌아가셨지만, 북한에 두고온 형제들을 애타게 찾았다고 회고하고, 통일이 되면 고향을 찾는 포부와 함께 자녀들에게 할머니 할아버지의 고향을 잊지 않도록 가르치고 있다고 말했습니다.

박의숙 씨: 고향에 가보고 싶지요. 당연히 부모님의 고향이고 저희는 북한에서 태어나지는 않았지만, 소망은 하루빨리 통일이 되어서 부모님의 고향에 가는 게 저희 소망입니다. 저희 부모님이 고향 이야기 많이 하셨어요. 어려서부터 부모님에게 고향이야기를 듣고 자랐습니다. 엄마가 들려주는 고향 황해도는 평야라고 했습니다. 어머니는 과일을 드실 때도 우리 고향에서는 이 과일이 이렇게 컸는데라며 비교를 하셨습니다. 아버지는 일찍 돌아가셨지만, 북한에 두고온 형제들을 찾고자 하셨습니다. 돌아가실 때까지도 형제들을 기다렸습니다. 저희는 전쟁을 모르고 자란 세대이지만 아버지 고향이 어디이고 무슨 일을 하다가 오셨는지를 듣고 자랐습니다. 그런데 저희 남편은 경상도 사람인데 실향민들의 애틋한 고향을 그리는 데 대해 잘 이해를 못 하는 것 같아요. 저희는 어려서부터 부모님에게서 듣고 자랐어요. 당연히 자녀들에게도 고향에 대한 애틋한 사랑을 남겨 주겠습니다. 대학에 다니는 아들이 오늘 행사에 다녀갔어요. 제 아들도 마찬가지지만 황해도에서 태어나지는 않았지만, 할머니 할아버지가 태어난 곳이니까. 항상 잊지 말라고 행사에 왔다가 학교로 돌아갔습니다.

실향민 2세 김의근 씨는 저희 부모님은 고향에 두고온 형님과 누님 때문에 가슴앓이를 하고 사신 것을 보고 자랐으며, 고향 분을 만나보고 싶고 고향의 냄새가 그리워서 이렇게 황해도민회를 찾는다며 하루빨리 통일이 되어 고향을 찾고 싶다고 했습니다.

김의근 씨:
북한에 저희 형님과 누님이 계십니다. 그래서 저희 부모님이 형님과 누님을 늘 못 잊어서 울면서 지내는 모습을 봤습니다. 부모님은 돌아가셨지만 부모님을 생각하며 황해도 말씨를 쓰시는 분들의 냄새가 그리워서 도민회에 나오기 시작했습니다. 소원은 사랑하는 형님을 만나보고 싶고 어머니가 얼마나 형님과 누나를 사랑해서 평생 우시다 돌아가셨다는 것을 말하고 싶습니다. 가능하면 미국에 와서 같이 살고 싶은 마음 간절합니다. 하루빨리 통일이 되어야지요. 정말 한을 안고 사는 사람들의 소원을 하나님께서 들어주실 것입니다. 그때가 그리워지고 기다려집니다.

자유아시아방송의 ‘보고 싶을 얼굴’ 오늘은 실향민 2세들의 고향 그리는 마음을 전해 드렸습니다. 제작 구성에 이현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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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03-25 (RFA, 자유아시아방송 보고 싶은 얼굴)

실향민들은 자나깨나 가족들의 소식을 애타게 기다리고 있습니다. 더욱이 실향민들이 고령화되고 상봉 가능성도 적어 더욱 가슴앓이를 하고 있습니다. 이산가족들의 애절한 사연과 가족을 그리워하는 간절한 소망을 소개하는 ‘보고 싶을 얼굴’ 오늘은 워싱턴지구 황해도민회의 신춘 대잔치 현장을 찾았습니다.

RFA PHOTO/이현기

22일 미국 버지니아 주의 애난데일에 있는 한인식당에서 민명기 황해도민회장이 워싱턴지구 황해도민회 신춘대찬치에 앞서 인사말을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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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시간으로 3월 22일 오후 미국 버지니아 주의 한인들이 많이 거주하는 애난데일에 있는 한성옥 식당의 연회실에는 150여 명의 황해도민이 오랜만에 함께 모여 실향의 한을 달랬습니다.

황해도 도민회 제18회 정기총회 및 신춘 대잔치를 시작하겠습니다. 오랜 세월동안 고향땅 황해도에 사랑하는 부모 형제 자매와 이웃 동료를 놔두고 이역만리 타향땅에서 아직도 통일의 염원을 기다린 채 우리는 오랫동안 기다렸습니다. 이제 우리 곁에 계신 분들이 바로 내 부모들과 똑같은 사투리를 쓰는 우리 이웃입니다. 이제 그들과 함께 즐거운 시간을 갖기를 바랍니다.

애국가가 울려 퍼질 때 몇몇 실향민들은 눈물을 흘리기도 했습니다. 민봉기 황해도지사는 실향민들이 낯선 땅 외국에서도 고향을 잊지 않고 향우회원 간의 친목을 다지는 것에 깊이 감사한다고 했습니다.

민봉기 황해도지사(오광동 전임회장 대독) 워싱턴지구 황해도민 여러분! 먼저 정든 고향과 조국을 떠나 낯선 환경과 생소한 문화에도 오늘의 황해도민 한인사회를 이끌어 오신 여러분의 업적과 노고에 깊은 감사를 드립니다. 이번 워싱턴지구 황해도민회의 총회 및 신춘 대잔치를 맞이하여 워싱턴지구 황해도민들이 함께 모여 정담을 나누고 화합과 단결을 위하여 행사를 개최하게 된 것을 진심으로 축하를 드립니다.

민명기 황해도민회장은 돌밭을 가는 소(석전 경우)처럼 묵묵히 일해온 황해도민의 근면성이 이 지역사회와 함께 성장할 수 있었다면서 앞으로 1년 임기 동안 청장년 부의 활성화와 장학회 발전 그리고 새 회원 발굴에 힘써 나가겠다고 말했습니다.

민명기 황해도민회장: 오늘 황해도민회는 18회 생일을 맞고 내후년이면 창립 20주년 맞게 됩니다. 앞으로 1년 임기 동안에 청장년부의 활성화에 힘을 키울 일 것입니다. 이민 1세들은 이제 고령화가 되다 보니까? 제2세들이 나와서 황해도민회를 이끌어 가야 하기 때문입니다. 청장년부의 활성화를 위해 최소한 30명 이상의 회원 확충에 힘을 쓸 것입니다. 저희가 2000년도에 장학회를 설립해서 2006년도에 2만 달러를 한미장학재단에 황해도민회 지정 장학금으로 영구 신탁을 해서 매년 9월에 장학금을 지급받고 있습니다. 2세들을 위한 장학사업을 계속 유지할 것입니다. 그리고 황해도민들이 이 지역에 많이 사시는 데 참여율이 낮아서 그래서 새로운 회원 발굴하는 데에도 힘을 쏟을 것입니다.

이날 행사에 참가한 실향민들의 바람은 무엇인지 함께 들어봅니다.

실향민: 만일 이산가족 상봉을 한다고 하면 한 번에 몇만 명씩 해서 끝내 버리는 것 그렇지 않으면 할 필요도 없어요. 우리같이 나이 먹은 사람들은 가고 싶어도 몇 년 있으면 세상 뜰 텐데 한번에 100명씩 만나서 언제 다 만나볼 수 있겠어요. 그래서 기대도 안 합니다. 빨리 통일이 되는 것만 바라는 거지요. 그래야만 한 발자국이라고 갔다 올 수 있고 볼 사람도 볼 수 있을 것이니까…

고향에는 통일되어야 가지 갈 수 있겠어요? 친척, 부모 형제 만나면 신앙을 심어주고 오는 것이 희망이에요.

황해도민들은 이날 여흥 순서를 갖고 오랜만에 만난 고향친지들과 고향향수에 듬뿍 젖기도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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