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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웅수장군

참전 유공자 정기총회에서-김웅수장군 (2009년 4월 18일) 신사 숙녀 여러분 건강한 여러분들을 다시 만나니 반값습니다. 오늘 은 참전동지회의 정기 총회입니다. 일전에 나는 무공훈장 모임에서 우리가 가장 장스러운 훈장이 종군기장이라는 말을 하엿습니다. 전쟁 에 참가한 군인치고 생명을 걸지 아니한 군인은 없으리라 생각되며 그런 의미에서 전쟁에 참가한 군인은 다 용감한 사람들이기 때문입 니다. 군대도 각종 보직이 필요해 많은 참전자들은 적과의 직접적인 접촉이 허용되지 않게 되 있습니다. 여기 모인분들은 다 젊음을 군을 통해 나라에 이바지한 분들입니다. 나이가 젊다고 다 나라에 몸을 바칠수 있는 것도 아니고 건강이 증명되어야 나라에 봉사할 수 있습니다. 그런 의미에서는 군무에 종사함 자체가 영예이며 감사를 들여야 하겠습니다. 그것이 오늘 우리.. 더보기
워싱톤-무공 훈장 총회에서-김웅수장군 (2009년 4월 10일) 신사 숙녀 여러분 다시 만나니 반값습니다. 우선 무공훈장의 날 행사를 개최해 주시는 재향군인회장 님께 감사를 드립니다. 전쟁에 참가한 군인치고 생명을 걸지 아니한 군인은 없으리라 생각합니다. 그런 의미에서 전쟁에 참가한 군인은 다 용감한 사람들입니다. 하물며 남에게 인정되어 훈장을 받게됨은 그 용감성이 인정되었다는 의미에서 퍽이다 다행한 자들이며 살아있다는 자신이 대견한 일이라 생각됩니다. 말 없이 간 전우를 생각하면 더욱 그렇습니다. 여기 게시는 한국전 참전 용사들은 가장 자랑스러운 훈장이 종군을 증명하는 기장이며 그의 용맹을 증거함이 상의 기장으로 생각합니다. 우리는 다 노인이지만 군대에서는 나이 차와 직종의 차로 여기 게시는 동료 중에는 전쟁 말기에 종군하였던지 자기의 용.. 더보기
미국 동부지역 재향군인회 창립 8주년을 기념하면서-김웅수장군 (2009년 3월 28일) 신사 숙녀 여러분! 건강한 여러분들을 만나니 반갑습니다. 오늘은 우리에게는 특별한 날입니다. 그 첫째는 재향 군인회 탄생 8주년을 기념하는 날입니다. 미 동부 지역 재향군인회는 지난 2001년 3월에 결성되었습니다. 우리의 모임이 이 지역 교포들의 모임으로서는 양적으로나 질적으로 볼때 가장 충실한 모임으로 자리 잡았습니다. 그 시초를 연 것이 8년전이며 초대 김홍기 회장단에 이은 현 이병희 회장단의 노력에 대해 감사를 드리는 바입니다. 모임이 이 정도가 될려면 회장단의 노력이 보통이 아니기에 말씀입니다. 우리의 모임이 지역 이민사회에 모범이 되며 또한 좋은 영향을 주기 바랍니다. 둘째는 2004년 4월 28일 창시된 율곡 forum의 2번째 모임을 겸했습니다. 저는 이 foru.. 더보기
5.16 군사 쿠테타 회고(23)-김웅수장군회고록 5.16 군사 쿠테타 회고: 나의 제 2 인생을 걷게한 5.16 15. 맷는말 나는 충실한 인생과 군인의 본분을 다하기위해 노력했다고 자부한다. 그러나 내가 임관할 때 선서한바 나라의 헌법과 국내외로부터의 적으로부터 국가를 수호 하겠다고 서약한 군인으로서는 실패한 군인이되었다. 그러나 나에게 또 다시 5.16과 같은 입장이 되었드라도 나의 행동은 옛날의 그것과 별 차가 없을 거라고 생각된다. 나는 5.16에서 군의 고급 지휘관으로서의 책임을 다 하지못한데 비해서는 인생의 큰 수획을 얻은 행운자의 하나라고 자위하고 있다. 나는 인생의 가장 성취기의 10년을 제2 인생 준비를 위한 수련기로 썻으나 한국에서의 동료들의 은퇴기를 넘는 75세까지 나는 미국과 한국의 교육계에서 봉사할 수 있는 행운도 갖었다. 그 .. 더보기
5.16 군사 쿠테타 회고(22)-김웅수장군회고록 5.16 군사 쿠테타 회고: 나의 제 2 인생을 걷게한 5.16 14. 5.16 군사 쿠테타에 대한 평가와 재발 방지 나) 군사 쿠테타의 재발 방지 우리는 사고 관습 기호가 다양화되며 국제화되는 세상에 살고있으며 엏떠 한 국가 정책도 군민 전체를 만족시키지 못하는 세상을 살고 있다. 이러한 환경에서는 획일적 사고 방식을 강요하는 군사 독재 정권에 대한 국민의 저항과 희생은 막대할 것이다. 나는 나의 경험을 통해 이러한 사태 발생을 미연에 예방키 위해서는 다음과 같은 조건들이 충족되어야 한다고 생각하고 있다. 그 첫째는 군인 중에 군사력을 이용해 정권을 쟁취하겠다는 생각을 갖이 아니하도록 교육되어여야 하며 국가 이변에 대처할 수 있는 군의 지휘 계통이 살아 국민 신뢰가 유지되어야 하겠다. 둘째로 정치가 최.. 더보기
5.16 군사 쿠테타 회고(21)-김웅수장군회고록 5.16 군사 쿠테타 회고: 나의 제 2 인생을 걷게한 5.16 14. 5.16 군사 쿠테타에 대한 평가와 재발 방지 가) 5.16의 평가와 우리나라의 민도 5.16에 대한 역사적 평가는 아직 시기가 적절치 못하며 5.16을 시발부터 반대해온 나로서는 객관성을 위해 그에 대한 평가를 할 수 없는 입장에 있다고 말하였다. 5.16을 주도한 사람이나 그를 반대한 자들 각기 나름대로의 국가관과 생활 철학을 갖이고 있었을 것이다. 우리는 항상 변화를 맛게 마련이고 그 변화는 자기에게 유리할 수도 불리할 수도있다. 또 그것은 시간이 지나감에따라 변할 수있다. 우리가 바라는 것은 각자의 위치에서 자기 최선을 다 하는 것 밖에 없다. 나는 지금 다시 그 당시의 환경이 재현된다 하드라도 약간의 기술적 차는 있어도 같은.. 더보기
5.16 군사 쿠테타 회고(20)-김웅수장군회고록 5.16 군사 쿠테타 회고: 나의 제 2 인생을 걷게한 5.16 13. 일시 귀국과 유신반대 지휘로 미국에서 정착 나의 박사과정은 한국에서 4 남매를 오게함으로 생계의 부담이 늘어 71년 말에야 끝나 72년 2월에서야 경제학 박사학위를 얻게되었다. 학교가 끝나자 다행이 졸업한 대학에서 연구 교수로 시작 교수직을 받게되었다. 나는 학교를 졸업할 무렵 과연 상아탑에서 배운 나의 학문이 현실에 적용될 수 있는가를 의아했으며 귀국전에 미국사회에서 그의 적응을 시험해 보아야겠다는 생각이 카토릭 대학에서의 연구 생활과 교편을 시작하는 동기가되었다. 학교가 끝나고 연구생활이 시작된 무릅 고국에 계신 장모님의 임종을 지키기 위해 임시 귀국하는 일이 생겼다. 10년만의 고국 방문이었다. 권 불 10년이라하였는데 아직도 .. 더보기
5.16 군사 쿠테타 회고(19)-김웅수장군회고록 5.16 군사 쿠테타 회고: 나의 제 2 인생을 걷게한 5.16 12. 군인에서 학자로 제2의 인생 출발 가) 복수심을 버리고 변신을 노력 내가 형무소에 있든 기간 나의 건강을 지킬 수 있든 중요한 원인의 하나가 내가 5.16때 취한 행동에 대한 떳떳한 마음갖임에 있었다고 언급하였다. 나는 미국에 오면서 나의 생활 태도에 대해 생각한바 있었다. 그 하나는 반드시 후일 나의 동료나 가족이 내가 취한 태도가 옳았다고 증명될 날이 있을 거라는 확신이었다. 둘째는 내가 군문을 떠나게 되고 옥고까지 치룬 원한에 대한 보복심을 버리고 대신 자기 변신을 통해 자신을 증명해 보겠다는 생각이었다. 그것으로 나의 마음도 가벼워지며 겸허함을 유지하며 자기 개선의 노력을 할 수 있는 덕을 보았다. 1979년 나의 장인이 페암.. 더보기
5.16 군사 쿠테타 회고(18)-김웅수장군회고록 5.16 군사 쿠테타 회고: 나의 제 2 인생을 걷게한 5.16 11. 아내의 미국도착과 내조 나는 만약 나의 미국 체류가 일년이 넘는다면 집사람에게 미국 경험을 시켜야겠다는 생각을 하고 한국을 떠났다. 그 이유는 내가 어린 시절을 만주 백계 로서아 사람이 많은 국제도시 하얼빈에서 그 것도 아버지의 직책관계로 로서아 사람들이 살고있는 관사지대에서 비교적 개방된 환경에서 자라난 탓도 있었다. 그보다 나는 1944-5년을 Kansas에 있는 미 참모대학 유학동안의 경험을 통해 소박하며 실용주의적 가정 생활과 개방된 미국식 사고방식을 가정과 자녀 교육에 도입해야겠다는 생각을 하고 있었다. 국내에서만 자란 집사람에게 같은 생활 철학을 공감케 하기 위해서는 집사람의 미국 경험이 대가를 치룰 가치있는 일이라 생각하.. 더보기
5.16 군사 쿠테타 회고(17)-김웅수장군회고록 5.16 군사 쿠테타 회고: 나의 제 2 인생을 걷게한 5.16 10. 미 6군 사령관의 호의와 한국 육군 참모 총장의 방문 미국에 도착한 해 여름으로 기억이 된다. 당시 내가 한국에서 속했든 미 1집단 군단장 Ryan 중장이 미 국내군 6군 사령관으로 부임되어 있었고 그의 사령부가 San Francisco 금문교 근처 Presideo에 있었다. 그가 사령부에서 만나자는 전화가 있어 나의 매부인 강영훈 장군(아리조나 대학)과 1군 사령관이었던 이한림 장군 (산호세에서 유학중)을 같이 초대했다고 들었다. 양인 공히 나 보다 일년전에 미 서부지역에 유학 신분으로 와있었다. 우리는 그가 베푸러준 만찬에 참석하며 사령부내 귀빈 숙소에 유하게 되었으며 다음날 그의 전용 선박으로 맑고 푸른 상항만을 함게 유람하며 ..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