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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웅수장군회고록

5.16 군사 쿠테타 회고(19)-김웅수장군회고록

5.16 군사 쿠테타 회고: 나의 2 인생을 걷게한 5.16

12. 군인에서 학자로2 인생 출발

                                                            



 ) 복수심을 버리고 변신을 노력

 

  내가 형무소에 있든 기간 나의 건강을 지킬 있든 중요한 원인의 하나가 내가 5.16 취한 행동에 대한 떳떳한 마음갖임에 있었다고 언급하였다. 나는 미국에 오면서 나의 생활 태도에 대해 생각한바 있었다. 하나는 반드시 후일 나의 동료나 가족이 내가 취한 태도가 옳았다고 증명될 날이 있을 거라는 확신이었다. 둘째는 내가 군문을 떠나게 되고 옥고까지 치룬 원한에 대한 보복심을 버리고 대신 자기 변신을 통해 자신을 증명해 보겠다는 생각이었다. 그것으로 나의 마음도 가벼워지며 겸허함을 유지하며 자기 개선의 노력을 있는 덕을 보았다. 1979 나의 장인이 페암의 말기현상임에도 불구하고 미국으로 이민오셨다. 장인이 이민오시게 동기가 나를 만나 박정희 장군게 대한 개인 복수심을 갖었다면 그를 포기 시키기 위함이라 하셨다. 장인은 오래동안 기독교 장로이시며 복수는 하나님이 하시는 일이지 사람이 없는 일이라 하셨다. 나는 미국에 올때에 그런 생각을 이미 청산했다고 하였더니 본인이 미국에 목적은 달성됬다고 기뿌게 생각하셨다. 장인은 미국 도착후 2개월 반만에 세상을 뜨셨다. 장인의 훌륭한 정신에 머리가 숙으려 진다.

 

) 어께의 별을 떼기 위해 상과 대학에서 기초 과목으로 시작

 

  나는 Seattle 소재 워싱턴 주립 대학에 도착해 상과 대학에 배치를 받았으며 정치학 박사과정을 밟고있든 중앙 대학 교수 김영재씨를 소개 받아 그가 유숙하고있든 하숙으로 숙소를 옮겼다. 어깨에 걸려있든 별을 속히 떼기위해서는 장사 길을 배우는 것이 첩경이라 생각한 것이 상과 대학을 택한 동기였다. 처음 택한 과목은 경제원론 통계학 회계학의 기초 과목이었다. 하루는 대학원장이 만나자는 요청이 있었다. 그는 내가 정치적 망명 신분이니 학과를 택할 필요는 없으며 도서실을 이용하든지 후진국 경제 발전에 관한 대학원 과정을 청강할 있다는 조언을 주었다. 나는 군대 상위 지휘관직을 통해 응용의 경험은 많으나 절실히 필요한 것은 기초지식이며 그것을 위해 기초과목을 택하였음을 설명하여 주었다. 그는 내가 특수한 사람이라고 의아하는 하였다. 실은 내가 육군의 군수 참모부장직을 수행하며 한때는 정부예산의 2배가되는 년간 3억불을 취급하는 소임을 다하기 위해 기초적 통계 제원을 요구했으나 그를 접하지못하여 나에게 맡겨진 책무를 제대로 하지 못하고 있다는 자책을 늣긴바 있었다. 그리고 이것이 나의 기초지식 부족에서 오고 있지 아니한가 하는 반성이 나의 기초지식 과목 선택의 이유였다. 나는 그후 서양사를 포함한 기초과목만 택한 것이 경제학 학사학위를 얻게된 결과가 되었다.

 

 ) 신문 해독을 위한 석사 과정과 전문 지식을 위한 박사 과정

 

  나는 당시 동아 일보 사설을 읽곤하였다. 경제학 학사학위를 얻은 나는 내가 읽고있든 경제 사설에 대한 이해가 더욱 어려워짐을 느끼게되었다. 경제학을 공부하게 되니 사설을 통해 나의 경제이론을 시험하려 들게되고 나의 짧은 이론으로는 사설의 해석에 딸림을 느끼게 되었다. 나에게는 학위가 목적이 아니었다. 내가 경제 사설을 평가할 있는 능력을 얻고저한 것이 나의 석사과정을 택하게된 동기가 되었다. 66 2년이 걸려 워싱턴 주립 대학에서 경제학 석사학위를 얻게되었다. 그리고 대학원 과정이 대학과정보다 어렵고 공부한다는 것이 당시의 나에게는 군인으로서 정쟁터에 있을 때보다 어렵다고 늣꼈다. 아마도 2 인생 개척은 누구에게나 어려운 것이 아닌가 한다. 내가 석사 과정을 끝날무렵 국내에서는 혁명에 가담하였던 인사들이 야당으로 변신하며 부통령의 지위가 논란되고 있었다. 나는 당시 과거의 군의 지위가 사회 지위를 좌우하는 실정이 심히 불공정하다고 느꼈다. 내가 귀국해서는 과거의 나의 군대 지위와 재직시의 친소관계를 이용하는 대신 자기 능력으로 사회 진출을 해야겠다는 결심이 Washington D.C. 소재 카토릭 대학에서 1966 가을 학기부터 경제학 박사 과정을 게속한 동기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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