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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10.02.07 “세월을 아끼십시오”-조영진 감리사
  2. 2008.09.07 성경을 기록한 목적은-조영진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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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영진 감리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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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월을 아끼십시오”
(Making the Most of Every Opportunity)
--에베소서 5:15-20





 

시간이 정말 빠르게 흐르는 것 같습니다. 감독님의 파송을 받아 감리사 사역을
시작한 것이 엊그제 같은데, 벌써 5년째에 접어들었습니다. 그동안 큰 과오 없이
사역해 올 수 있었던 것 먼저는 하나님께 감사드리고, 늘 기도로 뒷받침해
주시는 여러분께 마음 깊은 곳에서 감사드립니다. 또 와싱톤 한인교회가
흔들림 없이 더욱 깊이 있는 믿음 위에서 신실한 주님의 교회로 자라고 있는
것 참으로 감사하고, 자랑스러운 일입니다. 계속해서 주님께서 믿고,
마음껏 쓰시는 교회로 성숙해 가시기를 기도합니다.

감리사의 일이 감독님을 도와 지방의 행정적이고, 영적인 사역을 담당하는
것이기에 어려움도 많고, 건조함을 느낄 때도 많습니다. 그러나 교회들이
힘을 얻고 새로워지는 모습을 볼 때는 감리사 사역에서 오는 기쁨과 보람을
느낍니다. 특별히 지난여름 Falls Church에 있는 African American 교회의
목사관 수리 작업에 와싱톤한인교회 목공팀이 주도적으로 헌신하셔서
아름다운 열매를 맺게 된 것은 참으로 감사하고 가슴 뿌듯한 일이었습니다.
목사관 수리는 단순한 건물의 수리를 넘어서, 그 교회에 새로운 희망과
용기를 불어넣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그 교회는 이제 교인들 스스로
“New Galloway UMC”를 말하며, 새로운 미래를 향해 걸음을 재촉하고
있습니다. 와싱톤 한인교회 복음증거 사역팀과 모든 교우 여러분께
다시 한번 감사를 드립니다.

I.

오늘 아침 우리는 사도 바울이 감옥에서 에베소에 있는 성도들에게 써 보낸
편지의 한 부분을 읽었습니다. 오늘 본문 속에서 사도 바울은 에베소 교회의
성도들에게, 아니 21세기 이곳 워싱턴에서 살아가고 있는 우리 모두를 향해
권면 합니다: “그러므로 여러분은 어떻게 살아가야 할지를 살피십시오.
지혜롭지 못한 사람처럼 살지 말고, 지혜로운 사람답게 살아야 합니다.
세월을 아끼십시오. 때가 악합니다. 그러므로 어리석은 자가 되지 말고,
주님의 뜻이 무엇인지를 깨달으십시오.”

귀한 말씀입니다. 귀담아들어야 할 말씀입니다. 짐승이라면 모르지만,
사람으로 태어났다면 좀 생각하며 살아야 합니다. 산다고 다 사는 것이
아닙니다. 바로 살아야 합니다. 산다고 다 사는 것이 아닙니다. 뜻이 있게
살아야 합니다. 생각하며 살아야 합니다. 후회하지 않도록 지혜롭게 살아야
합니다. 그냥 일에 떠밀려서 정신없이 살 것이 아니라, 그래도 길을 물어
가면서, 두드려 가면서 살아야 합니다. 이것은 사치가 아닙니다. 사람으로
태어난 우리 모두의 마땅한 본분입니다. 인간답게 살아가는 가장 기본적인
도리입니다.

우리는 지혜로운 삶을 여러 가지로 정의해 볼 수 있을 것 입니다. 각자
나름대로, 주관에 따라 뜻있게 사는 길을 말할 수 있을 것 입니다. 그러나
오늘 본문 말씀이 소개해 주는 지혜로운 삶이란 분명합니다. 세월을 아끼는
삶입니다. 시간이란 기회를 낭비하지 않는 삶입니다. 내게 주어지는 세월을
헛되이 흘려보내지 않고, 값있는 삶으로 채워가는 삶입니다.

산다는 것은 시간이, 세월이 주어짐을 뜻합니다. 여기서 세월이란 흘러가는
연대기적인 시간보다는 기회로서의 시간을 뜻합니다. 무엇, 무엇을 할 수 있는
기회, Chance 혹은 Opportunity를 의미 합니다. 이 세월, 이 기회는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시는 가장 귀한 선물입니다. 자본입니다. 이제 이 세월이 갖는
몇 가지 모습을 생각해 보십시다.

(1) 먼저 세월이 갖는 특징은 유일회성 입니다. 우리는 인생을 단한번
살아갑니다. 어느 종교는 생명의 윤회를 말하지만, 기독교 신앙은 그렇게
말하지 않습니다. 우리는 단 한차례 살아갑니다. 오늘이란 날, 2010년1월31일도
단 한 차례 주어집니다. 내일도 해가 동쪽에서 떠올라서 변함없이 세월이
계속 되겠지만, 내일은 1월31일이 아니라, 2월1일입니다. 시간은 단 한차례
주어지기에, 소중합니다. 그만큼 값진 것입니다.

(2) 그리고 시간은 또한 참으로 공평합니다. 누구에게나 하루는 24시간입니다.
억만 장자인 빌 게이츠에게나, 다리 밑에서 밤을 지새우는 홈리스 피풀에게나,
하루는 똑같이 24시간 입니다. 오바마 대통령에게나, 아프간 오지에서
근무하는 병사에게나, 하루는 똑같이 24시간 주어집니다. 돈이 많다고,
권력이 있다고, 하루가 30시간 주어지지 않습니다. 그런데 이 공평하게
주어지는 하루 24시간이라는 기회로 어떤 사람은 값있게 인생을 살아가는데,
어떤 사람은 그냥 빈둥빈둥 하다가 그 시간을 허비할 수도 있습니다. 이 사실은
세월 앞에서 우리 모두에게 주어지는 책임이 얼마나 중요한가를 일깨워 줍니다.

(3) 또 시간은 우리에게 영원히 주어지지 않습니다. 이 땅 위에서 주어지는
시간은 누가 뭐라고 해도 유한합니다. 죽음은 이 유한성의 증거입니다.
천하장사라고 해도, 억만 장사라고 해도, “이제 그만” 하는 죽음의 방문을
어찌할 수가 없습니다. 분명히 우리에게 주어지는 세월은 유한합니다. 그런데
이 시간의 종말은 사전 예고도 없이 갑자기 찾아올 수 있다는 사실이 우리를
더욱 당황하게 합니다. 사실 죽음은 멀리 있지 않습니다. 우리는 죽음을
짊어지고 살아갑니다. 세월의 종점은 뜻밖에도 가까이 있습니다.

여러 해전 어느 여름날 밤이었습니다. 저희 딸 은하가 Blockbuster에 반납할
Video가 있다고 해서 같이 집을 나선 적이 있습니다. Old Dominion길을
운전하는데, 반대편에서 오는 차가 제 차선으로 들어오는 것을 보고 급히
차를 오른쪽으로 꺾었는데, 그만 꽝 소리가 나면서 충돌하고 말았습니다.
순간적으로 이제 죽는구나 라고 생각을 했는데, 그 순간에도 목사가 이런
모습으로 죽으면 안 되는데,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왜냐하면, 잠깐 운전해
주러 나섰기에, 반바지에 슬리퍼 차림을 했기 때문 이었습니다. 구급차가
오고, 저와 은하는 Fairfax병원 응급실에 실려 갔는데, 다행히 다친 데가
없어서 X-Ray 몇 장 찍고 나왔습니다. 자동차는 오른쪽 뒷바퀴가 떨어져
나가고, Total Loss가 되었습니다. 사고를 낸 사람은 담배를 꺼내려 하다가
사고를 냈는데, 음주를 하고 운전 중이었던 것이 발견되어 현장에서
체포되었습니다.

여러분, 그날 밤 집을 나설 때, 이런 일이 일어나리라고는 꿈에도 생각해
보지 않았습니다. 다시 한번 죽음은 결코 멀리 있는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뼈저리게 느껴 보았습니다. 그렇습니다. 이 땅 위에서 우리는 영원히 살지
않습니다. 그 마지막은 어느 때에라도 찾아올 수 있습니다. 이 세월의
유한성에 대한 깨달음이 우리 모두에게 필요합니다.

II.

이같은 특징을 갖고 있는 세월을 오늘 본문 말씀은 아끼라고 권고합니다.
세월이라는 기회를 붙들고 지혜롭게 살아가라고 우리를 일깨웁니다. 여러분,
어떻게 하면 우리는 세월을 아끼며 살아갈 수 있습니까? 어떻게 하면
인생이라는 이 기회를 낭비하지 않고 지혜롭게 살아갈 수 있습니까? 특별히
오늘 이 시대는 시간의 낭비를 재촉하는 유혹들이 그 어느 때보다도 많은 때
입니다. TV, Computer, 각종 Game등, 하다가 보면, 보다가 보면, 시간의
흐름을 잊어버리게 하는 것들이 너무도 많은 세상입니다. 어떻게 하면
세월을 헛되이 보내게 하는 유혹을 이기며 지혜롭게 살아갈 수 있습니까?

(1) 먼저 오늘 본문 말씀이 주시는 메시지가 있습니다. 사도 바울은
에베소교회 성도들에게, 아니 오늘 우리 모두에게 권면 합니다: “그러므로
어리석은 자가 되지 말고 주님의 뜻이 무엇인지를 깨달으십시오.” 그렇습니다.
세월을 아끼는 지혜로운 삶을 살려면, 무엇보다도 먼저 주님의 뜻을 이해해야
합니다. 주님의 뜻을 깨달아야 세월이라는 기회를 놓치지 않는 지혜로운
인생을 살아갈 수 있습니다. 여러분, 어떤 의미에서 주님의 뜻을 깨닫는
것이 중요 합니까? 주님의 뜻을 깨닫는 것과 세월을 아끼는 지혜로운
인생과는 어떤 관계가 있습니까?

두 가지를 생각할 수 있습니다. 첫째는 주님의 뜻을 이해할 때, 우리는
왜, 무엇을 위해서 사는 인생인지를 깨닫게 됩니다. 여러분, 우리가 인생의
목적과 사명을 깨닫지 못하면, 살아도 제대로 사는 것이 아닙니다. 인생의
황혼기에 예수님을 믿게 된 분들께서 종종 하시는 말씀이 있습니다:
“목사님, 지금까지 인생 헛 살았습니다.” 맞는 말씀입니다. 여러분, 생각해
보시기 바랍니다. 뉴욕에 가야 할 사람이 애틀란타에 갔으면, 잘못 간 것이
분명합니다. 세월 허송한 것이 분명합니다.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서 살아야
할 인생이 자기 영광을 위해서 살았으면, 여러분, 인생 헛산것 아닙니까?
생명을 주신 주님께서 맡겨 주시는 일감이 있는데, 그 일감을 까맣게 잊고
살아왔으면, 오랜 세월 허송한 것 아닙니까? 세월을 아끼려면, 먼저 주님의
뜻을 깨달아야 합니다. 주님의 뜻을 깨달아야 우리 인생이 살아야 하는 삶,
해야 할 일을 찾을 수 있습니다.

두 번째로 주님의 뜻을 깨달아야 하는 이유가 있습니다. 여러분, 우리
인생이 하고 싶은 일을 다 하려면, 200년 살아도 시간이 모자랄지 모릅니다.
우리는 이 땅에서 그렇게 오래 살지 못합니다. 앞에서 말씀드린 것처럼 우리
모두에게 주어지는 세월은 유한합니다. 그리고 주어지는 이 세월의 종말은
예고 없이 찾아옵니다. 거기에는 순서가 없습니다. 태어날 때는 순서가 있지만,
갈 때는 순서가 없습니다. 그러기에 유한한 세월 속에서 우리는 중요한
일을 먼저 하게 됩니다. 여러분, 같은 시간대에 두 가지 일이 겹치면, 어떤
일을 선택하게 됩니까? 중요한 일입니다. 내가 해야만 하는 일, 나의
가치관에서 더욱 중요한 일을 먼저 택해서 합니다.

그런데 주님의 뜻을 깨닫게 되면, 참으로 인생에서 귀중한 것이 무엇인지를
깨닫게 됩니다. 먼저 할 일이 무엇인지, 무엇이 먼저 할 만큼 가치 있는
일인지를 깨닫게 됩니다. 그리고 이 가치관에 따라 인생의 우선순위가
분별 되고, 우선순위에 따라 시간을 쓰게 됩니다. TV에서 스포츠 게임을
중계하는 시간과 속회의 모임이 겹치면, 자기가 좋아하는 것에 따라서든지,
혹은 자신이 더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것에 따라 선택을 하게 됩니다.
그러기에 세월을 아끼는 지혜로운 삶에서 주님의 뜻을 깨닫는 것이 중요
합니다. 주님께서는 그리스도인의 우선순위를 이렇게 정의하셨습니다:
너희는 먼저 그 나라와 그 의를 구하라. 그리하면 이 모든 것- 먹을 것,
마실 것, 입을 것을 더해 주시리라. 이 말씀을 깨달으면 세월을 아낄 수
있습니다. 유한한 세월 속에서 먼저 할 일을 먼저 하는 지혜로운 인생을
살아갈 수 있게 됩니다.

(2) 이어서 우리에게 요청되는 것이 있습니다. 그것은 세월의 유한성,
특별히 우리가 짊어지고 살아가는 죽음을 기억하는 것입니다. 죽음을
생각한다는 것은 분명히 기분 좋은 일은 아닙니다. 아직도 창창한 인생이
남아 있는데, 서둘러 죽음을 생각할 필요가 없다고 생각하실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언젠가 다가올 죽음처럼 우리 인생의 확실한 실체는 없습니다.
죽음은 피한다고 해서, 피해지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는 엄연한 죽음의 실체를 받아들이고 준비하는 지혜로운 삶을
살아가야 합니다. 죽음을 생각하면 남은 세월을 헛되이 보낼 수 없습니다.
우리는 많은 사람이 어느 날 갑자기 가까이 다가온 죽음 앞에서, 인생의
유한성을 뼈저리게 느끼면서 새로운 인생을 살아가는 모습을 보게 됩니다.
남은 세월을 세어 가면서 아름답게 마무리 짓는 이야기를 듣기도 합니다.
그러기에 성경은 어리석은 자의 마음은 파티를 하고 즐기는 집에 있지만,
지혜자의 마음은 초상집에 있다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죽음을 가까이서 느낄 때 우리는 오늘, 현재의 중요성을 깨닫습니다.
남은 세월이 많지 않다는 깨달음 속에서 하루, 하루를 허송하지 않고
살아가게 됩니다. 저는 전에도 늘 말씀드린 것처럼 이렇게 오래 살 줄은
몰랐습니다. 예배에 참석하신 어른들께는 죄송합니다만, 이제 서서히
다가오는 제 목회의 종점을 바라보면서, 많은 것을 느끼고 생각하게 됩니다.
물론 목회는 은퇴 후에도 죽을 때까지 하는 것이지만, active ministry의
남은 세월을 세어볼 때, 먼저는 너무너무 감사합니다. 그래도 여기까지
이끌어 주신 주님의 은혜를 생각하면, 감사, 감사할 뿐입니다. 그리고
남은 세월, 정말 허송하지 말고 열심히 해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여러분, 오늘을 붙드시기 바랍니다. 어제는 이미 지나갔습니다. 돌이킬
수가 없습니다. 내일은 아직 오지 않았습니다. 아니 내일이 주어진다는
보장은 없습니다. 확실한 것은 오늘입니다. 오늘을 붙드는 지혜가
필요합니다. 오늘을 붙드는 사람은 내일도 붙들 수 있습니다. 모레도
붙들 수 있습니다. 세월을 아끼는 지혜로운 삶을 원하십니까? 기분이
찜찜하시겠지만, 죽음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다른 사람 아닌, 나의,
나 자신의 죽음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오늘을 어떻게 살아야 할지
깨닫게 되실 것입니다.

(3) 한 가지 더 드리고 싶은 말씀이 있습니다. 세월을 아끼는 지혜로운
삶을 위해 오늘 본문 말씀이 주시는 또 한가지 권면의 말씀이 있습니다:
“술에 취하지 마십시오. 거기에는 방탕이 따릅니다. 성령의 충만함을
받으십시오.” 그렇습니다. 지혜로운 삶을 위한 필수 요건은 성령의
충만함을 받는 것입니다.

오랫동안 한국교회는 성령의 충만함을 방언이 터지고, 병든 자가 고침을
받는 기적과 같은 외적인 표적들과 연결시켜서 생각해 왔습니다. 물론
성령님의 역사로 온갖 놀라운 일들이 일어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성령의
충만함의 근본은 우리 삶의 모든 영역이 성령님의 다스리심과 지배 아래
놓여짐을 뜻합니다. 우리 인생이 성령님의 지배를 받게 되면, 우리는 주어진
시간을 바로 쓸 수 있는 지혜를 얻게 됩니다. 그리고 악한 세상의 유혹에
빠지지 않고, 세월을 아끼는 지혜로운 삶을 살 수 있는 능력을 얻게 됩니다.

특별히 성령님의 지배를 받게 되면, 우리는 주님의 뜻과 인도하심에 보다
민감해지고, 보다 충성스러운 삶을 살아가게 됩니다. 여러분, 성령님께서
여러분을 쓰시기 위해 부르실 때, 그 부르심을 소멸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그 부르심은 어떤 때 부담스럽고, 불편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순종하면,
주님께서는 우리를 통하여 놀라운 역사를 이룩하시게 됩니다.

Blind Side라는 영화를 본 적이 있습니다. 현재 Baltimore Ravens에서
활약하는 Football 선수 Michael Oher의 실화를 다룬 이 영화 속에서는
감동스러운 장면이 여러 군데 있습니다. 그 가운데 하나는 Big Mike가
기독교 계통 학교에 간신히 입학했지만, 잘 곳이 없어서 비 오는 날
밤길을 걷다가, BMW를 모는 부잣집 Tuohy 가족을 만나게 됩니다.
잠깐 이야기를 나누고 출발했는데, 부인 Leigh Anne은 다시 차를
돌리라고 해서 Big Mike를 집으로 데려가 재웁니다. 하룻밤 재울 것으로
남편은 생각했지만, Big Mike는 그 집에서 살면서 새로운 인생을 살게되고,
후에는 전 미국대학 Football 선수 가운데서 All American Football 선수로
뽑히고, 지금은 Baltimore의 Ravens팀에서 활약하고 있습니다.

Mrs. Tuohy는 성령님의 인도 하심을 소멸하지 않았습니다. 그냥 지나갈
수도 있었지만, 내면에서 말씀하시는 주님의 말씀에 순종했습니다. 성
령님의 충만함을 받으면 우리도 세월을 값진 삶으로 채워 갈 수 있습니다.
 참으로 지혜로운 인생, 세월을 아끼는 인생을 살아갈 수 있습니다

III.

오늘은 특별히 집사, 권사로 천거되신 분들이 세우심을 받는 주일입니다, Centreville 캠퍼스에서도 이명하신 장로님을 비롯한 신천 권사, 집사님들이
세움을 받으십니다. 여러분, 여러분 자신은 어떻게 생각하실 지 모르지만,
주님께서는 그래도 쓸모가 있다고 여기셔서 이 직분을 맡겨 주셨습니다.

섬김의 기회가 주어졌습니다. 여러분, 시간은 그렇게 많지 않습니다.
헌신의 때는 오늘입니다. 이다음 여건이 좋아진 때도, 시간이 여유가 있게
되는 때도 아닙니다. 오늘입니다. 지금입니다. 세월을 아끼시기 바랍니다.
주님의 뜻을 깨닫고, 성령의 충만함을 받아 섬기시기 바랍니다. 주님의
교회는 여러분의 기도, 여러분의 땀, 여러분의 눈물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먼 훗날 주님 앞에서 후회하지 않도록 오늘을 붙드시고, 충성하시기
바랍니다.

세월을 아끼는 삶을 생각할 때, 기억되는 젊은이가 있습니다. Terry Fox라는
캐나다의 청년입니다. 1990년10월24일 미주 한국일보에 실렸던 그의
이야기는 지금도 제게 도전을 안겨 줍니다. 그는 승산이 거의 없는 싸움에
하나님을 믿는 믿음으로 도전, 마침내 승리를 거둔 사람입니다.

Terry는 유난히 농구를 즐기던 대학생이었습니다. 그가 18세 되던 해 암이
발병되어 그만 오른쪽 다리를 절단하고 말았습니다. 그가 캐나다의
브리티쉬 콜럼비아 의 한 병원에 입원하고 있었던 1977년 3월, 문득 자신의
머리를 스쳐 지나간 한 생각을 그는 놓치지 않았습니다. 그는 캐나다
암 협회에 편지를 보내, 암 연구 기금 마련을 위해 절단된 오른쪽 다리에
의족을 달고 전장 5,300마일이 되는 캐나다 국토를 뛰어서 관통하겠다는
편지를 보냈습니다. 암 협회는 Terry의 편지를 무시했습니다. 그와 가까운
친구들도 코웃음을 쳤습니다. 그러나 Terry는 하나님께서 자신처럼 약한
사람을 쓰셔서 많은사람을 암의 고통에서 벗어나게 하려는 계획을
세우셨다고 믿었습니다.

테리는 달리는 훈련을 시작했습니다. 온전한 왼쪽 다리로 두 번 가볍게
뛴 뒤, 의족을 단 오른쪽 다리를 한번 옮기는 독특한 주법을 고안해
냈습니다. 처음에는 하루에 0.5마일도 제대로 뛸 수 없었지만, 8개월이
지니자 하루에 23마일을 거뜬히 달릴 수 있었습니다. 가족들은 거라지
세일을 해서 약간의 돈을 마련해 주었고, 동네의 두서너 명의 사업가들도
소액의 성금을 내어 놓았습니다.

테리는 자신의 마라톤을 통하여 100만 불을 모금하겠다는 희망을 품고
출발했습니다. 1980년4월12일 그는 세인트 존스 항구에 도착했습니다.
절단된 다리에는 물집이 잡히고, 피가 흘렀습니다. 그러나 테리에 대해
관심을 가져 주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습니다. 성금이 들어오기는커녕
경찰서에서는 교통에 방해 된다고 불평을 토로하기도 했습니다.

테리는 쓸쓸하고 낙심이 되었지만, 계속 달려갔습니다. 그가 퀘백에
도착했을 때, 미국 씨애틀의 한 방송국이 그와의 인터뷰를 전파에 실어
보냈습니다. 그 후부터 사람들의 관심이 모아지지 시작했습니다.
TV방송국들은 앞을 다투어 그의 달리기를 취재하고, 저녁 뉴스 시간에
내보내기 시작했습니다. 테리가 캐나다의 벌판을 의족을 달고 혼자서
달려가는 모습은 많은 사람의 마음을 아프게 했습니다.

다리의 염증은 심해지고, 고통은 점점 심해져 갔지만, 테리는 포기하지
않았습니다. 1980년7월11일 테리는 토론토에 도착했습니다. 몹시
더운 날씨였지만, 1만 명의 시민이 길거리에 나와 박수로 그를 맞아
주었습니다. 전국에서 성금이 쏟아져 들어 왔습니다. 테리가 9월1일
온타리오의 선더베이에 도착했을 때, 그는 견딜 수 없는 통증으로 그만
쓰러지고 말았습니다. 병원으로 실려간 후, 암이 이미 폐에 까지 번진
것이 발견되었습니다. 테리의 마라톤은 거기에서 끝났습니다. 그가
달린 거리는 3,339마일 이었고, 모금한 성금은 2,700만 달러에
이르렀습니다. 테리는 1981년 6월 28일 22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났습니다. 캐나다 전국에는 조기가 걸렸고, 당시의 캐나다 수상 이었던
피에르 트뤼도 수상은 “남을 위해 자신을 희생한 테리는 진정한
영웅이었다”라고 추모했습니다. 그가 마라톤을 중단한 썬더 베이는
그가 달리던 모습을 조각한 동상이 세워져, 오늘도 많은 사람에게
감동을 안겨주고 있다고 합니다.

테리, 그는 22년의 짧은 인생을 살아갔지만, 참으로 굵게, 그리고
뜻있게 인생을 살았습니다. 삶의 가치는 길이에 있지 않고, 삶의
내용에 있음을 일깨워 주었습니다.

주님께서는 이 아침 사도 바울을 통하여 우리에게 이렇게 권고하십니다:
“그러므로 여러분은 어떻게 살아가야 할지를 살피십시오. 지혜롭지 못한
사람처럼 살지 말고, 지혜로운 사람답게 살아야 합니다.
세월을 아끼십시오.
때가 악합니다. 그러므로 어리석은 자가 되지 말고, 주님의 뜻이
무엇인지를 깨달으십시오. 술에 취하지 마십시오. 거기에는 방탕이
따릅니다. 성령의
충만함을 받으십시오.”

저작자 표시
신고
전세계 기독교인들에게 드리는 감명깊은설교 시간입니다.
전세계와 미국에 있는 목회자들의 "감명깊은설교"를 모아서 보내 드리는 시간,
기독교인들 교회생활의 참뜻에 대한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이 말씀 꼭 놓치지 마십시요.
감명깊은설교 시간에 참가했으면 좋겠다는 목사님들 추천해 주시기 바랍니다.
연락처 메일은 john_lee_rfa@hotmail.com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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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01.02. 조영진 목사 (알링톤지방 감리사)
                           (와싱톤 한인교회에서 설교)
"생명의 복음(1)- 기록한 목적은"

요한복음 20:30-31

성경을 기록한 목적은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생명을 얻기 위함입니다.
내게서 예수님은 누구십니까?
나는 과연 그분을 믿고 있습니까?
나는 오늘 생명을 누리고 있습니까?

예수님의 생애와 가르치심을 전해주는 요한복음서는
공관복음서라고 불리우는 마태, 마가,
누가복음서와는 다른 독특한 모습을 보여주기 때문에,
성서를 연구하는 사람들은 제4복음서라고 부릅니다.
마태, 마가, 누가복음이 같은 관점에서,
비슷한 줄거리를 따라서 예수님의 생애와
가르치심을 전해주기 때문에 공관복음서라고 부르는데,
요한복음서는 공관복음서와
비교할 때 여러 가지 다른 점을 발견합니다.
예수님의 전도활동의 중심지가 공관복음서에는 갈릴리 지방인데 비해서
요한복음서는 예루살렘이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습니다.
전도활동 기간도 공관복음서는
2년 미만인데, 요한복음서는 3년 내외로 추정이 됩니다.
또 예수님의 가르치심의 핵심내용이 공관복음서는
하나님의 나라인데 비해서, 요한복음서는 생명,
영생을 강조합니다. 복음서의 내용 가운데
가나의 혼인잔치, 나고데모, 사마리아 여인과의 대화,
나사로를 살리신 일, 제자들의 발을 씻겨 주시고 고별설교를 하신 일 등은
요한복음서 만이 전해주는 독특한 내용입니다.
공관복음서에는 하나님의 나라가 임하는 것과 연관되어
귀신을 쫓아낸 기사가 많은데,
요한복음서에는 한번도 기록되어 있지 않은 것도 독특합니다.
이밖에 종말이나 심판에 대한 이해라든지 보혜사 성령님에 대한 가르침도
요한복음서 만이 보여주는 특징있는 가르침입니다.
전통적으로 요한복음서는 예수님의 사랑받는 제자였던 사도 요한이
주후 85년 전후해서 기록했을 것으로 추정하고 있습니다.

I.

오늘 저는 복음서의 순서에 따라 1장부터 시작하지 않고
먼저 20:30, 31의 말씀을 택했습니다.
왜냐하면 이 말씀은 요한복음서를 기록한 목적을 분명히 보여주고 있기
때문입니다.
사도 요한은 이 목적을 다음과 같이 밝힙니다: “예수께서는 제자들 앞에서
이책에 기록하지 않은 다른 표징도 많이 행하셨다.
그런데 여기에 이것이나마 기록한 목적은 여러분들로 하여금
예수가 그리스도요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믿게하고,
또 그렇게 믿어서 그의 이름으로 생명을 얻게 하려는 것이다.”

먼저 사도 요한은 요한복음서는 단순히 예수님에 대한 이야기를 모아놓은
collection이 아니라,그 많은 이야기 가운데서 선택된 이야기들의 모음,
selection임을 밝힙니다.
이 사실은 요한복음 21:25, 맨 마지막 절에서도 되풀이 됩니다:
“예수께서 하신 일은 이 밖에도 많이 있어서 그것을 낱낱이 기록한다면,
이 세상이라도
그 기록한 책을 다 담아두기에 부족할 것이라고 생각한다.
” 예수님에 관한 많은 이야기를,
많은 기억과 전승들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이 이야기들, 전승들 가운데서 선택된 내용들이
요한복음서 안에 들어오게
되었습니다.

언젠가 김동길 교수님께서 신앙강좌에서 역사가의 중요한 임무는
별로 중요하지 않은 사람들의 이름을 빼는 것이라고 말씀하신 적이 있습니다.
맞는 말씀입니다.
역사가의 일은 별로 중요하지 않은 이름들,
별로 중요하지 않은 사건들을 빼는 것입니다.
그런데 포함시키거나 뺄 때 무슨 기준 위에서 이런 일을 합니까?
그 기준을 우리는 역사관 혹은 사관이라고 부릅니다.
역사가는 사관에 따라서 판단하고 기록을 합니다.
그런 의미에서 보면 순수하고 객관적인 역사는 없다고 말할 수도 있습니다.

요한복음서 역시 예수님께서 행하신 많은 가르침과 사건들 속에서
선택되어진 내용들을 담고 있습니다.
이러한 이야기나 전승들이 선택된 기준은 무엇입니까?
그 기준은 단순한 사실 전달을 넘어서는 것이었습니다.
예수께서 누구신지를 보여주는 사건들, 또 그 예수님을 통해서 일어난
생명 회복의 역사들이 선택되어 요한복음서에 기록되게 되었습니다.
한마디로 말하면, 요한복음서는 신앙의 사건이 일어나기를 바라는
기대를 안고 기록되었습니다. 믿는 사람들 안에서 생명이 회복되는 역사,
참 생명을 누리는 열매가 맺혀지기를 소망하면서 기록되었습니다.

요한복음 연속설교를 전하게 된 저 자신의 목표와 기대도 여기에 있습니다.
저는 함께 나누는 요한복음서의 말씀 속에서 여러분께서 예수 그리스도께서
누구신지를 깨닫게 되시기를 바랍니다.
깨달으실 뿐 아니라 그분을 믿게 되시기를 바랍니다.
그리고 예수님을 믿으심으로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약속하신 생명,
풍성한 생명을 누리시게 되기를 바랍니다.

II.

좀 더 구체적인 말씀을 드리겠습니다.

(1) 먼저 오늘 본문은 요한복음서는 예수 그리스도가 누구신지를 전해줍니다.

먼저 예수님은 그리스도십니다. 예수 그리스도라는 말은
예수께서 그리스도시라는 신앙의 고백입니다.
하도 두 단어가 같이 붙어 다니니까 first name과 last name처럼
보여질 수 있지만 그렇지 않습니다.
그리스도라는 말은 히브리말로는 “메시야”란 말인데,
문자적인 뜻은 “기름부음을 받은 이”라는 말입니다.
이 말은 이스라엘 민족의 역사에서 하나님께서 보내 주실 구원자,
savior의 의미를 갖게 되었습니다. 그러므로 예수께서 그리스도시라는 말은
우리의 구원자, 내 인생 뿐 아니라 오늘의 이 세상,
이 역사의 구원자가 되신다는 의미입니다.

또한 요한복음서는 예수님께서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강조합니다.
공관복음서와 비교해 볼 때, 처음부터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분명히 밝힙니다.
예수님 자신도 이 점을 확실히 말씀하고계십니다.
그분은 단순한 인간, 위대한 스승을 넘어서는 하나님의 아들이시며,
우리 가운데 오신 하나님이십니다.
물론 어떤 분들은 이같은 고백에 동의하지 않으실 수도 있습니다.
인류의 위대한 4대 성인의 한사람으로 족하다고 생각하실 수도 있습니다.
그런 생각은 그분 선택일 수 있습니다. 그러나 성경은 분명히 밝힙니다.
예수님, 그분은 바로 하나님의 아들이시라고.

예수님이 누구신가?라는 질문에 대한 해답처럼 중요한 것이 없습니다.
예수님을 어떻게 이해하느냐에 따라 그 인생의 목적과 길이 결정됩니다.
죽음너머 영원한 우리의 운명도 결정됩니다. 이 문제는 앞으로 계속해서
말씀을 드리겠습니다. 시인 구상 선생님께서는
“나사렛 예수”라는 시 속에서
이렇게 고백하셨습니다.

나자렛 예수!

당신은 과연 어떤 분인가?

마굿간 구유에서 태어나
강도들과 함께 십자가에 못박혀 죽은
기구망측한 운명의 소유자

집도 절도 없이 떠돌아 다니며
상놈과 창녀들과 부역자들과
원수로 여기는 딴 고장치들과
어울리며 먹고 마시기를 즐긴 당신

가난한 사람들에게
굶주린 사람들에게
우는 사람들에게
의로운 일을 하다 미움을 사고
욕을 먹고 쫓기고 누명을 쓰는 사람들에게
<행복된 사람은 바로 당신들>이라고
<하나님 나라는 바로 당신들 차지>라고
엄청난 소리를 한 당신

소경을 보게 하고
귀머거리를 듣게 하고
앉은뱅이를 걷게 하고
죽은 사람을 살려내고도

스스로의 말대로
온 세상의 미움을 사고
욕을 먹고 쫓기다가
마침내 반역자란 누명을 쓰고
볼꼴없이 죽어 간 철저한 실패자

내가 탯줄에서 떨어지자 맺어져
나의 삶의 바탕이 되고 길이 되고
때로는 멀리하고 싶고 귀찮게 여겨지고
때로는 좌절과 절망까지를 안겨 주고
때로는 너무나 익숙하면서도
생판 낯설어 보이는 당신

당신의 참모습은 과연 어떤 것인가?

당신은 사상가가 아니었다
당신은 도덕가가 아니었다
당신은 현세의 경륜가가 아니었다
아니 당신은 종교의 창시자도 아니었다

그래서 당신은 어떤 지식을 가르치지 않았다
당신은 어떤 규범을 가르치지 않았다
당신은 어떤 사회 혁신운동을 일으키지 않았다
또한 당신은 어떤 해탈을 가르치지도 않았다

한편 당신은 어느 누구의
과거 공적이 있고 없고를 따지지 않았고
당신은 어느 누구의
과거 죄악의 많고 적음을 따지지 않았고
당신은 실로 이 세상 모든 사람의 생각이나 말을 뒤엎고
<고생하며 무거운 짐을 지고 br>허덕이는 사람은 다 나에게로 오라
내가 편히 쉬게 하리라>고
고통받는 인류의 해방을 선포하고

다만, 하나님이 우리의 아버지시오
그지없는 사랑 그 자체이시니
우리는 어린애처럼 그 품에 들어서
우리도 아버지가 하시듯 서로를 용서하며
우리도 아버지가 하시듯 다함없이 사랑할 때

우리의 삶에 영원한 행복이 깃들고
그것이 곧 <하나님의 나라>라고 가르치고
그 사랑의 진실을 목숨 바쳐 실천하고
그 사랑의 불멸을 부활로써 증거하였다.

(2) 이어서 오늘 본문은 요한복음서는 예수님에 대한 믿음을 강조하는,
예수님을 믿게하는 책인 것을 밝힙니다.

그렇습니다. 아는 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습니다. 믿어야 합니다.
예수님이 누구신지 아는 것 중요합니다.
아는 것은 바로 믿음의 출발이 될 수 있습니다.
그러나 많은 사람들이 이 아는 것을 넘어서지 못하고 망설이는
모습을 보게됩니다.
예수님을 믿음은 예수님에 관한 사실을 믿는 것 이상입니다.
왜냐하면 예수님은 과거 속에 묻혀 죽어 계신 분이 아니시기 때문입니다.
예수님께서 돌아가신 것으로 끝났다면,
그분에 관한 사실을 믿음으로 족할지 모릅니다.
그러나 그분은 부활하셔서 오늘도
살아계십니다. 그러기에 믿음은 살아계신 예수님과의 교제입니다.
그분을 내 삶 속에 모셔드림입니다.
그리고 그분께 우리의 삶을 거는 것입니다.
예수님을 주님으로 믿고 신뢰하며 삶을 드리는 것입니다.

요한복음서는 바로 이 믿음의 결단을 요청합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나의 구원자,
나의 주님으로 인정하고 모셔드리는 결단을 요청합니다.
이 결단은 바로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에게 베풀어 주신
놀라운 하나님의 사랑에 대한 우리 모두의 응답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열어주시는 새날, 새로운 인생,
새로운 역사에 대한 우리 모두의 응답입니다.
그러므로 믿지않는 것은 단순한 나의 선택이 아닙니다.
믿지 않는 것은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님께서 베풀어 주시는
사랑을 거절하는 것입니다. 그 사랑을 받아드리지 않고 자신의 고집에 매여
살아가는 것입니다.

(3) 한가지 더 드리고 싶은 말씀이 있습니다. 여러분,
왜 예수 그리스도께 대한 믿음이 중요합니까?
왜 성경은 우리에게 믿어야 됨을 강조합니까?
그 이유는 바로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함으로,
믿음으로, 생명을 얻게 되기 때문입니다. 영생을 누리게 되기 때문입니다.

여러분, 예수 그리스도를 믿으면 새로운 세상이 열립니다.
요한복음은 이 새로운 세상, 새로운 인생을 “생명”이란 말로 표현합니다.
여러분, 생명은 그저 살아있다고 다 생명을 누리는 것 아닙니다.
생명은 하나님께서 주시는 삶입니다. 풍성한 삶입니다.
그저 목적도, 끝도 모른채 떠밀려 가는 인생이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지으신 목적을 깨닫고
하나님께서 주시는 평화와 능력을 맛보며 살아가는 삶입니다.
그리스도 안에서 임하는 풍성한 삶입니다.

이 생명은 죽음에 매이지 않습니다. 유한성의 굴레로부터 자유합니다.
영원한 생명입니다.
사는 동안 이미 맛보다가 주님께서 부르시면
그 나라에 가서 누리는 영원한 생명입니다.
그러기에 이 생명을 누리는 사람들은 더 이상 죽음을 두려워 하지 않습니다.
죽음의 굴레로부터 자유합니다. 죽음은 바로 끝이 아니라 새로운 시작입니다.
생명의 사람들은 죽음 앞에서도 감사합니다.
찬양합니다. 생명의 사람들은 살아도 감사하고 죽어도 감사합니다.
영원한 생명을 맛보며, 누리며 살아가기 때문입니다.

III.

요한복음서는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생명이 회복되는 이 역사를 위하여
기록되었습니다.
이 말씀은 역사 속에서 수많은 생명을 살려왔습니다.
오늘도 이 말씀 속에서 생명 회복의 역사는 능력있게 펼쳐지고 있습니다.
우리 교회는 “복음으로 사람과 세상을 변혁시키는
교회”를 꿈꾸며 지향하고 있습니다.
네 번째 장기계획의 두 번째 해를 맞으면서 저는 함께
요한복음서의 말씀을 나누면서 이 생명의 역사,
이 변혁의 역사가 능력있게 펼쳐지기를
기도합니다. 여러분, 기도해 주시기 바랍니다.
이 생명을 살리는 역사를 위하여 함께 기도해 주시기 바랍니다.

이국진 목사님께서 쓰신 예수는 있다 라는 책에서 소개하는
주선태 교수의 이야기를
여러분과 함께 나누면서 제 설교를 줄입니다.

아름다운 시작, 이 책은 칠성님을 섬기고 점쟁이를 찾아다니며
원불교나 대순진리회에 푹 빠졌던 어머니의 아들로 태어나
고려대에서 축산학을 전공한 후 국립 경상대학교
축산과학부 교수로 재직하고 있는 주선태 교수가
예수를 믿게 된 과정을 그린 책입니다.

주선태 교수는 대광고를 나오고 고려대를 다신 수재였습니다.
고려대에서 박사 학위를 받고,
위스콘신대 연구원으로 있기도 했던
그는 국립 경상대학교 축산과학부 교수로 있다가
안식년에 코네티컷대학에서 객원 교수로 지냈습니다.
이 모든 과정을 거치는 동안
그는 철저하게 과학적 진리만이 참된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더구나 스스로 효자임을 자처한 그는 “정치하지 마라,
개고기 먹지 마라, 예수 믿지 마라”는 어머니의 3
대 유언을 잘 지키며 살아왔습니다.

그러던 중 코네티컷대학 객원 교수로 있는 동안 그의 삶이 바뀌었습니다.
소영이란 딸을 둔 주선태 교수는 미국 코네티컷대에서
1년 간 객원 교수로 머물면서 처음 6개월 동안은
열심히 연구도 하고, 여행도 다니고, 골프도 배우며
나름대로 보람찬 하루 하루를 보냈습니다.
특히 일요일에 집에 있기 심심해하는 소영이를 옆집 집사님이
교회에 데리고 가주었기 때문에 더욱 활기찬 주말을 보냈습니다.
그러나 언젠가 소영이가 분명히 같이 교회에
 가자고 제안할 것을 예상하고 각종 대비책까지 마련해 두었습니다.
하지만 크리스마스를 앞둔 주말, 교회 사람들이 소영이가 고아인 줄 안다는
교묘한 말에 넘어간 주선태 교수는 난생 처음 아내와 함께
하트포드제일장로교회에 나가게 되었습니다.

사십이 다 된 나이에 처음으로 교회에 나간 그 날,
그는 목사님의 설교에 눈물을 참지 못하는 경이로움을 체험했습니다.
그리고 사우스캐롤라이나 여행을 마친 1월 둘째 주일에는
제 발로 교회를 다시 찾는 사건이 생겼습니다.
그가 예수를 믿는 데는 여러 거지 장애가 있었습니다.
가장 큰 장애는 어머니의 유언이었고, 또 하나의 장애는 자신이 지금까지
쌓아온 과학적 사고방식이었습니다. 하지만 이미 자신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하나님의 아들이 된 것을 느낀 주선태 교수는 예수를 영접하고 말았습니다.

그가 예수를 믿기로 한 후 첫 번째 다가온 어머니의 제삿날이었습니다.
기독교인들은 제사를 안 지내다고 알고 있었지만
그는 제사상을 차려놓았습니다.
주교수는 이렇게 썼습니다:

제사상을 차렸다. 소영이는 제사를 지내는 것을 매우 재미있어 한다.
신난 소영이를 무릎 꿇려 앉힌 다음 나고 그 앞에 무릎 꿇고 앉았다.
“소영아, 지금부터 하나님께 기도 드릴 거야.
아빠가 뭐라고 기도 드리는지 소영이가 증인이다. 알았지?”
우리 둘은 눈을 감았고 나는 기도를 시작했다.

“하나님! 처음으로 목소리를 내어 기도 드립니다.
왜 제가 이렇게 기도 드리는지 다 아시죠?
하나님께 기쁜 마음으로 다가가기 위함인 것 아시죠?
지금부터 엄마 제사를 지낼 겁니다.
다 아시겠지만 노파심에 다시 한 번 말씀 드립니다.
이것은 하나님이 질투하실 그런 우상이 아닙니다.
엄마하고 지낸 시간들을 추억하기 위한 우리들의 방법입니다.
그리고 이번에는 꼭 엄마에게 드릴 말씀도 있어요.
하나님도 다 아실 거에요. 그동안 지켜보고 계셨으니...
제가 얼마나 엄마를 그리워하고 엄마 때문에 가슴 아파했는지
그모든 것을 하나님은 다 알고 계시잖아요. 하나님, 사랑해요.
질투하지 마세요.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 드렸습니다. 아멘.”

예수님 이름으로 드린 나의 어설픈 첫 번째 기도에
아멘을 해준 사람은 소영이었다.

10시까지 열심히 할머니께 절하던 소영이를 2층으로 올려보내고
자정 무렵에 드디어 엄마와 단둘이 마주하고 앉았다.
엄마는 내가 무슨 말을할지 이미 알고 계신 듯했다. 엄마를 만나자
뜨거운 눈물이 줄줄 흘러 나왔다. 한동안 말을 못하고 있었다. 그냥 울기만 했다.
그러다가 말문을 열었다.

“엄마, 엄마가 틀렸어. 이때까지 나 엄마 말 잘 들었지?
나 엄마의 멋진 아들이었지?
그니까 이번엔 내 말대로 해...” 엄마는 말없이 나를 쳐다보고 계셨다.
“엄마, 내가 엄마보다 똑똑하고 많이 배웠지! 엄마보단 현명하게 살라고
그렇게 힘들게 나 가르쳤잖아.
그래서 엄마 아들, 박사 되고 교수 됐잖아. 이제 엄마보다 똑똑한 아들
말 들어. 엄마가 잘 못 알았어...”
내가 계속 울면서 이야기하니 우리 엄마도 같이 우셨다.

“엄마! 우리 집에서 굿할 때 창피하게 동네 사람들 다 쳐다보는데
내게 무당이 시키는 대로 이리 절하고 저리 절하라고 했지?
나 그때 왜 엄마가 시키는대로 절했는지 알아? 엄마가
원하니까. 대학생 아들이 엄마가 시키면 창피한 것도 무릅쓰고 다 한다고,
그만큼 효자라고 으쓱대는 엄마 모습 보고 싶어서
그래서 무당이 시키는대로 나 다 했어. 경동시장에서
사온 자라가 들어있는 물통을 들고 학생들에게 자리 양보 받아가며
몇번씩 버스 갈아타며 그렇게 대성리 팔당댐으로
밤생 다니는 엄마가 안쓰러워 엄마 모시고 나도 많이 따라다녔아.
강물 속으로 들어가는 자라를 보면서 두손 모으고 허리 숙여 절하라고 하면
나 그렇게 했잖아. 엄마가 좋아하니까.
양초, 과일, 쌀, 마른 북어 들... 바리바리 싸들고 힘들게 북한산에 기도
갈 때도 나 엄마 좇아갔어. 엄마가 그랬지,
아들 차 타고 북한산 가면 구름 위에 있는 것 같다고,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시간이라고,
내가 이런 덕 보려고 그렇게 고생했나 보다라고...
이렇게 좋아하는 엄마 모습 보고 싶어 나 엄마 따라다녔어.
지나가는 등산객들이 우릴 쳐다보든지 말든지...
바위 밑에 한 상 차려놓고, 나 엄마 따라 절했어. 엄마 좋아하라고...
이제 엄마 차례야. 엄마의 그 잘난 아들이 하나님에게 선택되었어.
엄마가 그렇게 싫어했던 예수쟁이가 되고 싶어. 엄마가 그랬지?
이런 것은 인력으로 어찌할 수 없는 거라고. 어쩌면
좋을까? 엄마 버려두고 나만 혼자 하나님께 갈까?
엄마가 믿었던 미신들 다 버리고 나랑 같이
교회 가면 안될까? 그동안 아무 생각없이 엄마가 좋아하니까
내가 엄마 좇아갔듯이.
이제 엄마가 엄마의 똑똑한 박사 아들, 교수 아들 좇아오면 안될까?
엄마, 같이 가자, 응?
교회에 하나님 만나러 가자, 응?”

생명을 살리는 역사는 오늘도 계속되고 있습니다.
오늘 나에게서 예수님은 누구십니까?
나는 과연 그분을 믿고 있습니까?
주님께서 우리에게 주시는 생명을 나는 누리고 있습니까?

신고

Today's KORUS House English class is an article about Chuseok, one of Korea's biggest traditional.....

전찬윤 씨의 댓글

아래는 2016년 1월 전찬윤 씨가 댓글로 올려 주신 내용입니다. 전찬윤 2016-01-29 04:00 우리나라 동포(교포) 3세가 2052년에 미국의 대통령이 될 것이다 ​ 님의 블로그에서 유익한 내용, 마음에 와 닿는 내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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