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FA, 보고 싶은 얼굴] “고향이 그리워요” 실향민의 호소
워싱턴-이현기 leeh@rfa.org
2009-05-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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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향민들의 간절한 소망은 통일돼서 고향을 찾는 것이라고 말합니다. 그러나 실향민들은 고령화하는 데다 상봉 가능성도 적어 더욱 가슴앓이를 하고 있습니다. 이산가족들의 애절한 사연과 가족을 그리워하는 간절한 소망을 소개하는 ‘보고 싶은 얼굴’ 오늘은 워싱턴 일원에 사는 실향민들의 고향 그리는 마음을 소개해 드립니다.
워싱턴 일원의 실향민들은 고향이 그리울 때 워싱턴 DC의 중심을 흐르는 포토맥 강의 주변에 있는 공원을 찾아 고향에 대한 향수를 달래기도 합니다. 가고 싶어도 갈 수 없는 고향을 그리며 공원의 아름다운 나무들과 신선한 공기를 벗 삼아 쓰라린 실향의 마음을 위로하고 언젠가 통일이 되면 고향을 찾겠다는 소망을 토로하기도 합니다.
어느 모임에서 만난 실향민 부부의 이야기를 들어봅니다. 이 부부는 항상 고향에 있는 가족들이 보고 싶다고 호소합니다.
고향이 그리워요. 거기 주민들이 너무 못산다는 소문이 있어서 마음이 아파서 어떻게 사는지 보고 싶습니다. 어릴 적 고향 생각하면 눈물이 나려고 해요. 내 고향에 살았으면 여기보다 마음이 편안했을 텐데 하고 생각을 합니다. 저는 초등학교 1학년 때 나와서 전 친구가 없어요. 다 잊어버렸어요. 좀 나이가 먹어서 왔으면 누가 보고 싶고 할 텐데 지금은 아무것도 생각이 안 나요. 너무 오래되어서요. 저는 1950년도 1.4 후퇴 때 12월5일 잠깐 남한으로 갔다 다시 돌아온다는 것이었는데 지금까지 못 가고 있습니다. 고향에는 어머니와 누이동생 하나 남동생 4명이 있습니다. 지금까지 소식을 모릅니다. 저는 가족들이 어떻게 사는지 죽었는지 살아 있는지 알 수도 없고 기억도 희미해졌어요. 소망은 고향이니까. 한번 가서 동생이 다섯이니까. 1명이라고 만날 수 있지 않을까. 그거지요.
올해에 85살이 되시는 어느 실향민은 북한에 있는 부모 형제-자매가 그립다고 말합니다.
고향에 가고 싶은 생각 많지요. 제일 걱정되는 게 어떻게 만나는 것에 답이 나오질 않아요. 부모님은 다 돌아가시고 안 계실 것 같은데 내가 북한을 나올 때는 부모님 형들 둘, 누이동생 둘을 두고 나왔는데 어휴 지금 들어가서 다 만나는 것은 바라지 않아요. 못해요. 이제 100세가 다 넘었을 거고 한데 살아 있는 것은 기대하기가 어렵겠지요. 고향에 가고 싶고 말고요. 이렇게 다녀봐도 원산만 한곳은 없어요. 원산 참 좋아요. 바다가 가깝고 산이 가깝고 농토가 가까워서 쌀도 좋고 반찬도 좋고 나무도 좋고 그렇습니다. 세 가지가 잘 맞아 있어요. 고향은 지금도 생생하게 기억이 나지요. 지금도 그대로 있기를 바라지만 다 없어졌겠지요. 사람도 없어지고 물건도 없어지고 다 변했겠지요. 고향에 가면 찾고 싶은 것은 친인척밖에 없어요. 동기간하고 가족만 찾으면 다 찾는 거지요.
이 할아버지는 저 멀리 고향 가족들에게 짧은 인사를 합니다.
아 친척 형제들 참 보고 싶어 이루 말할 수 없습니다.
실향민들이 가장 바라는 바는 고향을 찾고 산소에 가서 성묘하고 고향 언저리를 한번 밟아 보겠다는 소박한 소망을 말합니다. 실향민들의 바람이 이뤄지기를 기원해 봅니다. 오늘도 워싱턴 일원 실향민들의 고향 그리는 마음을 소개해 드렸습니다.
자유아시아방송의 ‘보고 싶은 얼굴’ 이 시간에 고향에 보내는 편지나 방송에 참가를 원하는 분은 서울 중앙우체국 사서함 4100호 자유아시아방송이나 이 메일 nk@rfa.org 로 연락 주시면 됩니다.
자유아시아방송의 ‘보고 싶은 얼굴’ 제작 구성에 이현기입니다.
어느 모임에서 만난 실향민 부부의 이야기를 들어봅니다. 이 부부는 항상 고향에 있는 가족들이 보고 싶다고 호소합니다.
고향이 그리워요. 거기 주민들이 너무 못산다는 소문이 있어서 마음이 아파서 어떻게 사는지 보고 싶습니다. 어릴 적 고향 생각하면 눈물이 나려고 해요. 내 고향에 살았으면 여기보다 마음이 편안했을 텐데 하고 생각을 합니다. 저는 초등학교 1학년 때 나와서 전 친구가 없어요. 다 잊어버렸어요. 좀 나이가 먹어서 왔으면 누가 보고 싶고 할 텐데 지금은 아무것도 생각이 안 나요. 너무 오래되어서요. 저는 1950년도 1.4 후퇴 때 12월5일 잠깐 남한으로 갔다 다시 돌아온다는 것이었는데 지금까지 못 가고 있습니다. 고향에는 어머니와 누이동생 하나 남동생 4명이 있습니다. 지금까지 소식을 모릅니다. 저는 가족들이 어떻게 사는지 죽었는지 살아 있는지 알 수도 없고 기억도 희미해졌어요. 소망은 고향이니까. 한번 가서 동생이 다섯이니까. 1명이라고 만날 수 있지 않을까. 그거지요.
올해에 85살이 되시는 어느 실향민은 북한에 있는 부모 형제-자매가 그립다고 말합니다.
고향에 가고 싶은 생각 많지요. 제일 걱정되는 게 어떻게 만나는 것에 답이 나오질 않아요. 부모님은 다 돌아가시고 안 계실 것 같은데 내가 북한을 나올 때는 부모님 형들 둘, 누이동생 둘을 두고 나왔는데 어휴 지금 들어가서 다 만나는 것은 바라지 않아요. 못해요. 이제 100세가 다 넘었을 거고 한데 살아 있는 것은 기대하기가 어렵겠지요. 고향에 가고 싶고 말고요. 이렇게 다녀봐도 원산만 한곳은 없어요. 원산 참 좋아요. 바다가 가깝고 산이 가깝고 농토가 가까워서 쌀도 좋고 반찬도 좋고 나무도 좋고 그렇습니다. 세 가지가 잘 맞아 있어요. 고향은 지금도 생생하게 기억이 나지요. 지금도 그대로 있기를 바라지만 다 없어졌겠지요. 사람도 없어지고 물건도 없어지고 다 변했겠지요. 고향에 가면 찾고 싶은 것은 친인척밖에 없어요. 동기간하고 가족만 찾으면 다 찾는 거지요.
이 할아버지는 저 멀리 고향 가족들에게 짧은 인사를 합니다.
아 친척 형제들 참 보고 싶어 이루 말할 수 없습니다.
실향민들이 가장 바라는 바는 고향을 찾고 산소에 가서 성묘하고 고향 언저리를 한번 밟아 보겠다는 소박한 소망을 말합니다. 실향민들의 바람이 이뤄지기를 기원해 봅니다. 오늘도 워싱턴 일원 실향민들의 고향 그리는 마음을 소개해 드렸습니다.
자유아시아방송의 ‘보고 싶은 얼굴’ 이 시간에 고향에 보내는 편지나 방송에 참가를 원하는 분은 서울 중앙우체국 사서함 4100호 자유아시아방송이나 이 메일 nk@rfa.org 로 연락 주시면 됩니다.
자유아시아방송의 ‘보고 싶은 얼굴’ 제작 구성에 이현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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